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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 90 - 88. 헌신 - 영적 생활의 첫 걸음
말씀: 시119:38


‘헌신된 성도’, ‘주께 헌신’이란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헌신했다는 것은 믿은 후에 [주님께 자신을 바친 것]을 말합니다. 어느 조직이나 자발적인 헌신을 요구하게 마련입니다. 회사는 직원들이 가진 젊음과 시간, 재능을 전적으로 바쳐 주기를 바랍니다. 목숨까지는 아니더라도 애정을 갖고 시간을 쏟아 주기를 원합니다. 가족은 서로 가정에 좀 더 많은 시간과 애정을 쏟아 주기를 바랍니다. 교회 역시 성도들이 좀 더 교회에 많은 시간과 정열을 쏟아 부어 주기를 바랍니다. ‘열정과 헌신’없이는 발전도 성장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원하시는 헌신은 무엇입니까? 흔히 “주께 헌신(獻身)하라”는 말을 듣습니다. ‘헌신’이란 말은 [자신을 드린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몸을 바치는 것을 헌신이라고 합니다. 무엇에 바치든지, 누구에게 바치는 것이 헌신입니다. 헌신했다는 것은 종교적 열성이 있다는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헌신은 주님께 [자신의 몸을 내어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몸은 누구의 것입니까? 주님의 것입니다(* 참조: 고전6:20, 7:23). 우리 몸을 누가 사용하는가? 이것이 핵심입니다. 나의 몸을 내가 사용하지 누가 사용하는가? 그렇게 생각하고 말면 모든 것이 간단하겠지만 헌신과는 동떨어진 일입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들어와 살기 때문입니다(골1:27). 우리 몸은 주님의 성전입니다(고전3:16, 6:19). 우리가 이제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은 우리를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그분을 위해 사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는 우리 중에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도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기 때문이라.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살든지 죽든지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롬14:7~8).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했다는 것은 그분이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모든 것을 소유해도 좋다는 소유권을 인정해 드린 것이며, 나의 주인되심 즉 주권을 인정해 드린 것입니다. 주님을 단지 나를 구원해 주신 고마우신 분 정도로 믿고 이해하는 것은 영적인 삶의 첫 발도 딛지 못한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단지 죽어서 하늘에 가는 것만을 말씀하지 않습니다. 우리 혼의 구원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사는 삶은 더욱 중요합니다. 십자가의 구원이 단지 혼이 지옥에 가지 않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복음의 10%도 인식하지 못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의 의의는 이것입니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이제부터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를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5:15).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목적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고 있든지 자신과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살전5:10).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즉 그는 자기 육체의 남은 때를 더 이상 사람들의 정욕대로 살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리라.](벧전4:2).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한 첫 걸음이 헌신입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받아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아예 하나님이 내 안에 사는 것이 바로 영적인 삶입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갈2:20)이 바로 영적인 삶인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이는 그분께서 자신을 드리실 때에 이 일을 단 한 번에 행하셨기 때문이요,](히7:27). ‘자신을 드린다’ 이것이 정확한 헌신의 의미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몸을 거룩한 제물로 주님 앞에 내어 드리셨습니다. [또 그분께서는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들의 피를 가지고 거룩한 곳에 들어가는 것같이 자주 자신을 드려야 할 필요가 없으시니 이는 그리하였더라면 그분께서 반드시 창세 이래로 자주 고난을 당하셨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세상 끝에 단 한 번 나타나사 자신을 희생물로 드려 죄를 제거하셨음이니라.] (히9:25~26). 몸을 드리셨다는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모든 면에서 우리의 본이시며, 우리가 따라야 합니다. 몸을 드리는 헌신 역시 주님의 본을 따르는 것이 합당합니다. 헌신은 회심이나 죄 없는 완전한 상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헌신은 충동적 결심이 아닙니다. 헌신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자신을 굴복시키고 주님께서 전적으로 나의 주인이 되어 주실 것을 소원하며 간구하는 것입니다. 헌신이라 우리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님을 완전히 인정하고 주님의 소유권, 지배권, 왕권을 인정해 드리는 엄숙한 서약이며, 그대로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주님께 헌신한 적이 있습니까? 주님을 구원자로 믿느냐? 고 물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 헌신한 적이 있느냐? 고 물었습니다. 믿지 않는 자는 불신자이고, 믿지만 헌신하지 않는 성도는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입니다.

헌신하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헌신하지 않으면 영적 성장이 없습니다. 헌신된 무리들을 통해 주님은 자신의 뜻을 펼치십니다. [백성이 기꺼이 헌신했을 때에 너희는 [주]를 찬양할지니 이는 /그분께서/ 이스라엘의 원수를 갚으셨음이라.](삿5:2). 백성이 기꺼이 헌신했을 때 주님은 승리를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몸의 지체들을 지휘하는 권한을 주님께 내어 드리고 목숨까지도 주님이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100% 내어 드리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헌신입니다. 주님의 마음은 언제나 헌신된 자에게로 향합니다. [내 마음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들에게로 향함은 그들이 백성 가운데서 기꺼이 헌신하였기 때문이니 너희는 [주]를 찬송하라.](삿5:9). 헌신은 감정적 충동이 아니라 의지적 행위입니다. 헌신은 우리 자신을 다스릴 권리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완전히 위임하는 것이며, 영원히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는 최소한 4번의 경우에 헌신된 모습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처음에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것이었습니다(창12:1). 지금처럼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찾아 떠난 것이 아닙니다. 더 나은 교육을 위해서, 더 나은 경제력을 위해서, 자신의 꿈을 위해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다면 헌신이 아니라 그냥 모험이거나 진취적 기상이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면서 [믿음으로] 떠났습니다. 두 번째는 롯과의 결별이었습니다(창13:9). 먼 타국에서 유일한 혈육인 롯과의 분리 역시 인간적 본성을 부인하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셋째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 쫓는 일이었습니다(창21:10). 이 일은 인간으로서, 아버지로서 결코 행하기 쉽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육신과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했습니다. 넷째는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일(창22)이었습니다. 이 일은 아브라함의 믿음 생활의 백미(白眉)라 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그는 믿음으로 이삭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헌신은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포함해서 하나님을 향해 거룩히 구별되는 것을 내포합니다(민6:12).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따로 세움 받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출28:3).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헌신’을 간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 몸을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의 합당한 섬김이니라.](롬12:1). 우리가 헌신하는 기초는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① 헌신은 자발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다른 무엇을 드리기에 앞서서 우리 자신의 몸을 드리는 것이 우선임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재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헌신을 필요로 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바라던 대로 하였을 뿐 아니라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고후8:5).

② 헌신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너희 몸을’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남의 몸을 대신 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몸을 드릴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몸은 남이 대신 할 수 없습니다.

③ 헌신은 희생적인 것입니다. ‘살아 있는 희생물’이란 말에 주목하십시오. 주님께 헌신하는 것이 경배입니다. 합당한 섬김(reassonable service)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고 오는 것을 일컬어 경배하고 온다고 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자기 청년들에게 이르되,... 나는 아이와 함께 저기에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창22:5).

우리 몸을 드리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드리는 것인가? 우리의 각 지체들을 주님이 사용하시도록 드리는 것입니다. 몸의 각 부분들 즉 손과 발, 입, 눈, 귀 등 신체의 각 부분들이 다 주님께 드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너희 지체(肢體)를 불의의 도구로 죄에게 내어 주지 말며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난 자로서 하나님께 드리고 너희 지체를 의의 도구로 하나님께 드리라.](롬6:13). 우리 몸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발은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약한 자와 쓰러진 자를 돕기 위해 우리 손을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바친 손을 도박, 술마심, 도둑질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돌보고 그들을 찾아 내도록 눈을 사용해야 합니다. 어려운 형제를 향해 눈을 가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우리의 귀 역시 늘 열려 있어야 합니다.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막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몸이 우리 자신의 것이었을 때는 닫든지 돌리든지, 막아 버리든지 우리 마음대로 했지만 이제는 주님의 것이기에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과 혀는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며 힘과 위로를 주는 일에 사용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헌신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스케쥴을 마음대로 주장할 수 있도록 내어 드리는 것이 바로 헌신입니다. 이 시간에 내가 무엇을 한다고 결정하는 것은 자신이 여전히 주인이란 뜻이지 헌신된 것이 아닙니다. 나의 시간을 내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것, 내가 하기 싫은 일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종입니다. 종의 시간은 곧 주인의 것입니다. ‘지금 시간이 없습니다.’란 말은 애당초 성립되지 않는 말입니다. 헌신이란 바로 나의 시간을 주님께 내어 드린 것입니다. 주님은 시간을 되찾으라고 하십니다. [시간을 되찾으라. 이는 날들이 악하기 때문이니라.] (엡5:16). [바깥 사람들에게는 지혜롭게 걷고 시간을 되찾으라.] (골4:5). 주님께 이 시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순간 순간 인도함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가진 것들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것은 다 주님의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은사이든지 소유이든지 주님의 것임을 알고 주님께 사용권을 넘겨 드리는 것이 헌신입니다. 십일조를 바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요즘 성도들은 십일조도 구약의 율법이라면서 그마저도 바치려 하지 않는 것이 대세이지만 신약 성도들은 십일조가 아니라 자신의 가진 것 전부를 바쳐야 합니다.

헌신의 결과는 무엇인가?

다윗은 헌신의 결과를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종이 헌신하여 주를 두려워하오니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굳게 세우소서.](시119:38). 헌신의 결과는 주의 말씀이 내 안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드린 자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시고 말씀을 가르치시며, 굳게 세워주십니다. 성경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구원받은 것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주님께 헌신해야만 가능합니다.

여러분이 주님께 헌신할 때 주님은 여러분 안에 살아 역사하십니다. 우리 몸은 주님이 일하시는 도구요, 열매 맺는 가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 암송할 말씀: 시119:138, 고후8:5

☜ 생각해 볼 문제:

- 헌신의 의미를 적어 보시오.
- 헌신의 근거는 무엇인가?
- 나는 구원받은 후 주님께 헌신을 결단하고 주님께 자신을 드린 적이 있는가? 있다면 그 때가 언제인지 적어 보시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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