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astor. Peter Yoon

성령의 열매(14)- 믿음
말씀. 벧전1:8

2005년 6월 08일



성령의 열매 가운데 일곱째로 언급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성령의 은사이기도 하고 성령의 열매이기도 합니다. 성도들이라면 누구나 크고 강한 믿음, 살아서 활동하는 믿음, 증거가 있고 열매를 맺는 그런 믿음을 지닌 사람들이 되고 싶을 것입니다. 산을 움직일만한 믿음, 죽은 자를 일으키고 병자를 고치는 믿음의 기도도 때로는 한번 해 보고 싶은 것이 소원일 것입니다. 복음서에 “믿음으로” 병이 낫고, 마귀가 물러나게 하는 등의 기사를 읽을 때면 우리도 믿음만 있으면 이런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행하는 일을 할 것이요, 또 이보다 더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 (요14:12)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믿으면 주님께서 행한 일을 할 뿐 아니라 더 큰 일도 한다는 말씀에 우리는 “과연 그런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주님은 믿는 자에게는 불가능이 없다(마17:20)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은 한계를 뛰어넘고, 초인이 되고자 하는 소원으로 믿음을 간구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믿음을 크고 강하게 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얻고, 이루고 싶은 것을 다 이루는 강력하고도 효과적인 수단으로 여기는 듯합니다. 오늘날 기독교회 내에 만연하는 기도 만능주의, 믿음 만능주의는 기도와 믿음을 자신의 성취와 출세와 성공의 수단이라고 가르치고 은연중에 그런 인식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이는 극히 비성경적이고 반성경적인 일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믿음의 은사를 주시거나 믿음의 열매를 맺으시는 것은 성도들에게 "How to use the Lord"(하나님을 이용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과학자들이 어떤 원리나 법칙을 활용하여 천연 자원이나 물질을 유용하게 사용하듯이 믿음을 통해 영적인 힘과 지혜를 유용하게 사용하려 하는 성도들이 있다면 그는 극히 실망하고 말 것입니다. 만약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더 많은 기도를 하고, 더 크고 강한 믿음을 소유하기를 원한다면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 안에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은 모두 주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믿음이란 우리가 하나님의 힘과 권능, 지혜와 명철, 권세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how)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신의 뜻대로 사용하실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시는 것입니다. 이 점을 유념하셔야 합니다. 우리 안에 믿음이 있을 때 주님은 그 믿음을 근거로 말씀이 자유로운 행로(살후3:1)를 얻으시며, 성령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일하실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믿음을 은사로 주시고, 열매로 맺게 하시는데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뜻대로 일하시기 위함이란 점에 주목하십시오. 때로 성도들이 반대로 알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역할이나 능력이나 은사, 열매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믿음의 열매를 맺으심으로 믿음으로 살게 하시며(롬1:17), 믿음으로 걷게 하시고, 믿음으로 마귀를 대적하고, 믿음의 시련을 통해 연단되고, 믿음의 보상을 받게 하십니다. 믿음으로 악한 일을 견디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육신과 세상과 마귀를 이기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한 분만을 영화롭게 하라는 것이 성령의 열매로서 맺히는 믿음입니다. 성령께서 믿음의 열매를 맺으시는 것은 우리 속에 믿음의 말씀, 믿음의 영을 통해서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믿음의 헌장’이라고 불리는 히브리서 11장을 볼 때, 그들의 삶이 초인의 삶을 산 자들의 육신이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산 사람들이 아니라 시련과 고난과 역경을 통과한 사람들이란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의 삶이란 고난을 통과하는 삶입니다. 믿음의 삶이란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믿음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늘의 창고에서 마음대로 갖다 쓰는 마스터 키(key)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나를 마음대로 사용하시도록 마스터 키(key)를 넘겨 준 삶입니다. “믿음으로!”란 말은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의 뜻대로’란 말입니다.

성령 충만함이란 곧 [믿음 충만]이란 말과 통합니다. 스데반은 믿음이 충만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초대 교회의 일곱 집사(?) 중의 한 명으로 뽑혔습니다. 그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으로 회중의 성도들에게도 충분히 인정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온 무리가 이 말을 기쁘게 여기고 믿음과 성령님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행6:5). 그는 사람들에게만 인기 좋은 그런 성도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증거들이 충분히 나타나 보였습니다. [스데반이 믿음과 권능이 충만하여 백성 가운데서 큰 이적과 기적을 행하니라.](행6:8). 정말 굉장합니다. 우리 교회의 어떤 집사님이 이런 정도라면 엄청나지 않겠습니까? 스데반은 성경에도 능했고, 설교도 잘했습니다. 그 결과 믿음으로 설교를 듣는 회중들을 모두 회개케 하고 구원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청중들을 감화, 감동시키는 대신 분노를 촉발하여 돌에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믿음이 충만한 삶, 성령이 충만한 삶의 결과는 ‘초인의 행복, 영웅의 삶’이 아닙니다. 고난과 박해를 기꺼이 이기는 삶, 죽음을 맞으면서도 그 살인자들을 행해 복을 비는 삶이 바로 믿음이 충만한 삶이요, 성령이 충만한 삶입니다. 성령께서 맺으시는 열매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인 사람으로 바나바가 있습니다. 바나바는 일곱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성령님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는 점에는 동일합니다. 바나바는 자신의 소유를 모두 팔아 교회에 구제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바나바로 인해 초대 교회는 수가 더해졌습니다. [이는 바나바가 선한 사람이요, 성령님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기 때문이라. 이에 많은 사람들이 {주}께 더해지더라.](행11:24).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은 믿음이 충만함으로 모두 바나바와 같은 결과를 얻기를 바라지, 스데반과 같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 것 같습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현재적 승리를 경험합니다만 그 승리란 것이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께서 맺으시는 열매로서의 믿음은 지식과 결합하여 우리를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가 다 믿음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지식에서 하나가 되어 완전한 사람을 이루고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長成)한 분량에까지 이르리니](엡4:13). 믿음은 성장의 원동력입니다. 믿음과 올바른 성경 지식이 결합하여 하나가 되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성장을 바라십니다. 속사람이 강건해지고 영이 자라나기를 바라십니다. [자라나라](벧후3:18)고 말씀하십니다. 아이들은 아이일 때는 결코 부모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라나면 부모를 이해하게 되고, 더욱 친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아이일 때는 선생님의 징계나 훈육을 매우 싫어합니다. 그러나 자라고 나면 고마워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어린 아이일 때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고, 그 뜻이 잘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쉽게 속기도 하고 잘 넘어지고 다칩니다(엡4:14).

아이일 때는 말하는 것이나 깨닫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 다 아이일 뿐입니다. 유치하기 그지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처음부터 영적으로 장성한 어른이 아니었습니다. 놀라운 빛을 받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그 음성을 들었지만 그는 성장이 필요한 아이였을 뿐이지 처음부터 어른으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아이와 같으며 생각하는 것이 아이와 같았으나 어른이 되어서는 유치한 일들을 버렸나니](고전13:11). 그도 누구나 마찬가지로 어린 아이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이일 때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종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제 내가 말하노니 상속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아이일 때에는 종과 다름이 없고](갈4:1). 어린 아이일 때는 아무리 설교를 듣고, 성경을 배워도 여전히 세상의 초등 원리 밑에서 종노릇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아이였을 때에 세상의 초등 원리 밑에서 종노릇하였느니라.](갈4:3). 이는 우리의 경험이 스스로 증명합니다.

아이들을 보십시오. 아이들은 남보다는 자기 밖에 모릅니다. 주는 것보다는 받기만을 좋아합니다. 힘이 없고, 약합니다. 악을 쉽게 배웁니다. 판단력이 약합니다. 어린 아이란 말은 육신에 속한 자란 말과 거의 같습니다. 고린도전서 3:1-3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가 영에 속한 자에게 말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갓난아이들에게 말하는 것같이 하였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단단한/ 음식으로 하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지금까지 너희가 그것을 능히 감당하지 못하였으며 지금도 못하기 때문이라.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다툼과 분열이 있으니 /어찌/ 너희가 육신에 속하여 사람들처럼 걷는 것이 아니리요?] (고전3:1~3). 여기서 우리는 성장하지 않은 어린 아이 상태에 있는 교인들을 “육신에 속한 자”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봅니다. 믿음의 열매를 맺지 못한 상태에 있습니다. 여전히 돌봄이 필요합니다. 고기가 아니라 젖이 필요합니다. 시기와 다툼과 분열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잘 놀다가도 금방 싸우고, 웁니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열매인 믿음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으로 자라게 하셔서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게 합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물으면 믿음은 성령의 은사 즉 하나님의 선물이요, 성령의 열매라고 답하시면 됩니다. 믿음이란 성령께서 우리 안에 맺으시는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믿음의 저자요, 완성자이신 주님”(히12:2)께서 믿음의 말씀을 가지고 돌 판이 아닌 우리의 마음 판에 기록하시는 것이요(고후3:3), 믿음의 영(고후4:13)으로 가득 채우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대답해 주십시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히11:6). 믿음이 없는 세대를 주님은 가장 싫어하십니다.

사람들은 믿는 것을 은근히 두려워합니다. 믿었다가 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믿었다가 속은 경우도 있고, 결과가 허망한 경우도 있고, 믿었던 자기만 바보가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육신은 모든 것을 의심하고 불신합니다. 이들은 “믿는 도끼에 발 등 찍힌다.”는 식으로 ‘아무도 믿지 말라’고 합니다. 이들이 말하는 믿음은 성령에게서 난 믿음이 아니라 육신에서 난 것입니다. 한 마디로 출처가 다릅니다. 믿음과 속임수의 차이를 압니까? 둘 다 무엇인가를 믿는 것은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천양지차입니다. “믿었다가 속았다”는 말은 믿음의 결과가 없었을 때 하는 말입니다. 믿음은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결과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근거가 없고, 증거가 없고, 대상이 없고, 결과가 없다면 그의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또 그것이 잘못되었다면 역시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누구, 다른 무엇을 믿는 것은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속임수입니다. 사람들은 믿어야 할 대상을 잘못 알고, 잘못 믿어서 결국 그 혼이 멸망을 당하는데 이는 믿은 것이 아니라 속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을 믿으라](막11:22)고 말씀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행16:31)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친히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고 하셨습니다. 믿음의 대상을 분명히 밝혀 주신 것입니다.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의 말씀입니다(롬10:8, 딤전4:6). 하나님의 말씀에서 믿음이 나옵니다(롬10:17). 고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고 믿음을 소유했다고 하면 그는 속은 것이지 믿은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속임을 당하면서도 믿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믿음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의 말이거나 자신의 확신이나 느낌이나 상황입니다. 교육을 통해 배운 지식에 근거한 예측이나 실험과 관찰을 통해 얻은 예상 등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믿는다고 해서 믿음은 아닙니다.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 외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시편 기자는 광야의 조상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으로 그들이 그 기쁨의 땅을 멸시하며 그분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시106:24). 그들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의 존재(대상)를 믿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 일에서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의 말씀을(believe God) 믿지 아니하였도다.](신1:32). * believe in God-하나님의 존재나 인격 등을 믿는 것/ believe God-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 이 점에 대해서 모세는 거듭 그들을 책망했습니다. [또한 [주]께서 너희를 가데스바네아에서 보내실 때에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올라가서 내가 너희에게 준 땅을 소유하라, 하셨으되 그때에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그분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나니] (신9:23). 주님을 믿지 않았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누가 여러분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여러분이 한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면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은 말씀을 믿지 않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멀리 계시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나니 그러므로 네가 그것을 행할 수 있느니라.](신30:14). 분명하고 확실한 근거가 아닌 것들을 믿었다가 낭패를 당하는 경우는 허다합니다. 진리를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거짓을 믿는 것은 속임입니다.

믿음의 증거는 성령의 나타나심과 열매입니다. 성령의 은사들도 믿음의 증거입니다. 우리는 말로만 믿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나타나는 증거로 전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11:1)입니다. 때로 사람들은 “믿음”이 뜬 구름 잡는 것보다 더 추상적이고 허망한 줄로 압니다. 믿음은 실체와 증거가 있습니다. 믿음의 실체와 믿음의 증거가 없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망상이거나 허상입니다. 하나님의 증거는 사람들의 증거보다 훨씬 큽니다.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이는 하나님의 증거가 곧 그분께서 자신의 아들에 관하여 증언하신 것이기 때문이라.](요일5:9). 사람들의 증거도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증거인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믿지 못하는 것은 죄에 대한 종교적 변명 외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믿지 못해서 또는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못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믿지 않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살인자요, 거짓의 아비인 마귀의 자녀이기 때문에 진리는 믿기지 않는 대신 거짓은 믿다가 망하고, 믿었다가 속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 지상에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살아 계심에 대한 증거는 너무나 많습니다. 자신의 양심도 증거 합니다. 성령께서 증거 하십니다. 수많은 교회가 증거 합니다. 성경이 증거 합니다. 세상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결과는 혼의 구원입니다. 결과에 따라서 모든 것의 최종 결론이 납니다. 믿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너희가/ 너희 믿음의 결말 곧 너희 혼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라.](벧전1:9). 믿음의 결과는 혼의 구원입니다. 혼의 구원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 속임수요, 기만입니다. 우리는 올바른 믿음의 근거를 가지고, 올바른 믿음의 대상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음의 결말 즉 혼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혼의 구원이 없는 모든 종류의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 속임수입니다.

성령의 열매로서의 믿음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 안에 맺으시는 열매입니다. 다른 모든 성령의 열매가 그러하듯이 믿음은 feeling(감정)이 아니라 willing(의지)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을 보지 않으시고 우리의 의지를 보십니다. 주님을 믿고자 하는 마음(의지), 말씀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마음(의지), 깨닫고자 하는 소원(의지) 등 모두 의지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물론 믿은 이후에 기쁨이나 평강, 희락과 같은 감정적 요소가 우리 마음에 넘치도록 부어지고 찾아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순서가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시고(행14:27), 믿음의 의를 인치시고(롬4:11), 믿음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셨으며(롬4:12), 믿음의 말씀을 통해 살게 하셨습니다(롬10:18). 믿음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방패입니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취하며 이것으로 능히 저 사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끄고](엡6:16). 이 모든 일에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믿음이란 열매를 맺게 하심으로 우리는 환경에 상관없이, 자신의 기분이나 느낌에 상관없이 일관된 믿음, 꾸준한 믿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말은 종교나 철학에서 가르쳐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어느 종교에서도 종교 창시자를 믿기만 하면 되는 종교는 없습니다. 종교 창시자는 자신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에게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죽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죽어 버린 사람의 가르침, 죽은 자의 교리는 믿고 실행해도 결국 죽음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우리가 배우는 진리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 중국, 일본과 같은 유교 문화권에서 ‘공자’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가르침은 없습니다. 공자의 말을 믿기만 하면 군자가 되고,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교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세계의 3대 종교 중의 하나로 일컫는 불교에서도 석가모니를 믿어야 해탈에 들거나 열반에 든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수행을 강조할 뿐입니다. 그리고 모든 교리는 수행에 대한 방법론입니다.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 인격 완성의 방법,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어떤 경지에 이르는 방법론만 있을 뿐입니다. 반면 성경의 가르침은 세상의 종교와 철학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방법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구원의 방법을 찾아서 수행을 하거나 금욕을 하거나 선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선물로 얻습니다. 하나님의 생명과 성품을 우리 안에 받습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얻습니다. 우리의 행위는 소용이 없습니다. 믿음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도 우리는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없고, 새로운 성품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 육신의 행위가 아닌 믿음, 땀과 피의 수고(labour, work)가 아닌 믿음(faith)이 전부입니다. 율법은 [...하라, 하지 말라]는 명령이 있고, 그 명령을 지키지 못할 때는 유죄(guilty)를 선언합니다. 저주를 선포합니다. 심판을 집행합니다. 율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육신은 하나님의 어떤 율법 조항도 지킬 수가 없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믿음] 한 가지면 족하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해야 할 모든 일을 다 하시고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는 그 말씀해 주신 사실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믿으면 끝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믿음의 열매를 맺습니다. 믿음은 영원한 것입니다. 방언이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다 그치고 폐하여져도 믿음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믿음은 성령의 열매이며(갈5:23), 믿음의 창시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히12:2). 믿음을 산출하는 씨앗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롬10:17).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 안에 더 풍성한 믿음, 크고 강한 믿음을 주시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육체적으로는 고달파 보여도 보상이 있고, 열매가 있고, 결과가 있는 삶입니다. 이 땅에서 열매를 맛보지 못한다 해도 저 하늘에서 우리는 그 보상을 얻게 될 것입니다.

* 믿음과 말씀의 관계(롬10:8, 딤전4:6)- 믿음은 그냥 속으로 “믿음을 갖자, 믿음을 소유하자” 외친다고 강해지고 커지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를 잘하고 싶은 학생이 밤을 새워 공부를 하는대신 “공부를 잘 하자!”를 노트에 천 번을 쓴다 해도 잘하는 것이 아니듯이, 믿음은 구호로 외치고 마음에 암시를 걸고, 계속해서 “믿음”이란 단어를 읊조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흔히 이교도들은 묵주나 염주 같은 보조 도구를 사용해서 반복적으로 같은 말을 읊조림으로써 믿음이 길러지는 줄 압니다. 같은 말을 헛되이 되풀이 하는 기도나 주문같은 것으로 믿음을 기를 수는 없습니다(마6:7).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만 나옵니다. [그런즉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느니라.](롬10:17). 고로 믿음을 강하게 하고 싶고, 성장하고 싶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고, 양식으로 취해야 합니다. 몸이 빵과 물을 필요로 하듯이 영은 하나님의 말씀을 필요로 합니다. 말씀은 생명의 씨앗인 동시에 믿음의 씨앗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어떤 경우에도 기록된 말씀과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했듯이 우리 역시 어떤 경우에도 주님을 신뢰하게 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가르침을 받아서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의 출처는 오직 하나 성경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믿음을 주는 씨앗입니다. 믿음은 인간의 신념이나 세뇌가 아닙니다. 믿음은 감정(느낌)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받아들일 때, 불같은 시련 속에서 단련되고, 자라납니다. 특이하게도 믿음은 시련이 크면 클수록 더 깊이 뿌리내리고 강하게 자라지만 편하면 편할수록 자라나지 못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소원이 있을 때 성령께서는 믿음으로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 - 흔히 기독교인들은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고백이 사실일 때 그들은 구원받은 자들임에 틀림없습니다. 때로 구원의 간증도 불분명하고 자신이 구원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도 모르는 그런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고 있고, 여러 가지 직분을 맡았고, 교회 행정이나 믿는 사람들과 자주 교제한다는 이유로 이미 자신은 믿는 사람, 구원받은 사람으로 스스로 확신하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아직 믿음이 약해, 믿음이 적어...” 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당연합니다. 그에게는 약하고 적은 믿음도 없습니다. 전혀 없을 지도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 속에 주요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the Lord)이심을 마음으로 믿고, 인정하고,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믿음이 생성되고, 자라기 시작합니다. 몇 년씩 교회를 다니고, 성경 공부를 하고 있지만 자신이 구원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것은 구원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불확실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불분명한 것도 물론 아닌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교인들이 믿음이 적느니, 약하느니 하는 말은 아예 성립조차 되지 않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의 창시자입니다(히12:2). 우리의 믿음은 근본적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믿음은 선물입니다. [이는 너희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니 이것이(믿음이)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이 구절은 한글 성경의 어순 상 지시 대명사 “이것이” 가리키는 것이 ‘은혜’처럼 보이지만 “은혜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고,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때로 믿음을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택을 강조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 의해 “믿음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란 왜곡된 거짓 교리를 가르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 현실이지만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히브리서 12:2을 보십시오.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히12:2a).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믿음의 창시자(author-저자)임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믿음을 저술(기록, 창시)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 인간적 신념(creed)이나 자기 확신(self confident)에 불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이며 완성자이십니다.

* 믿음과 성령의 관계 - 믿음은 성령의 은사(선물)입니다. 성령의 선물이란 말은 말 그대로 성령께서 자신의 뜻대로 주는 선물이란 말씀입니다. 선물은 주는 쪽에서 기뻐하는 대로 주는 것이지 받는 쪽에서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통하여 믿음을....이 모든 것은 같은 한 /성/령께서 행하사 자신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전12:9a, 11).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은사의 목록에 “믿음”이 있습니다. 믿음은 분명히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 속한 그리스도의 믿음(갈2:16,20)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내게 주신 은혜를 힘입어 너희 가운데 있는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으로 자기에 대하여 생각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냉철하게 생각하라.](롬12:3).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믿음을 분량대로 나누어 주시는 분이심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누어준 믿음의 분량대로 생각하고 믿음의 분량대로 대언하라(롬12:6)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은 성령의 은사인 동시에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은 믿음의 영이라 불립니다. [기록된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노라, 한 것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영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으므로 또한 말하노라.](고후4:13). 사람들은 보이는 것을 믿고, 자기 판단을 믿으려는 경향이 매우 강합니다. 별 근거가 없어도 자신의 느낌이나 지식을 신뢰합니다. 사람은 느낌에 따라 기분에 따라 판단이 섰다가 무너졌다가를 반복합니다. 환경의 변수에 따라서 믿음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합니다. 돈이 있고, 상황이 유리하게 돌아가면 잘 될 것 같은 믿음이 생깁니다.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바뀌고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말하거나 내 속에 솟아오르던 자신감도 점점 약해지면 믿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서도 기분은 쉽게 바뀝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믿음을 믿음이라고 하지도 않거니와 성령을 통해서 우리 안에 맺어진 [열매로서의 믿음만]을 믿음으로 봅니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기 때문이라.)](고후5:7)고 하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들이라면 믿음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성령님도 보이지 않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보이지 않습니다. 천사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입게 될 영광스런 새 몸도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한 것들이 이루어질 것인가 역시 앞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는 것처럼 바라고, 그렇게 확신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아니하는 것이니 이는 보이는 것은 잠깐 있을 뿐이요, 보이지 아니하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이니라.](고후4:18).

가망성도 없고, 가능성도 전혀 없고, 예측 불가능한 것들, 설령 예측을 하더라도 전혀 일어날 수 없을 일들을 단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바라고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노아는 당대에 홍수로 온 세상이 멸망당할 것을 믿었고, 아브라함은 자신의 몸에서 씨가 나올 것과 큰 민족을 이룰 것을 믿었습니다. 그들이 믿었던 내용은 우리처럼 지금 돌이켜서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당시 당사자들에게는 보통 어려운 문제들이 아니었습니다. 증거라고는 오직 ‘말씀’ 하나뿐이었습니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라면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만한 것들이지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꾸준히 기다리고 인내하고 바라고 소망하고 있다면 그것은 믿음입니다. 우리는 ‘보이는 소망’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기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받았음이라. 그러나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롬8:24)라고 말씀합니다.

지금 이곳에 앉아 계신 분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믿고, 성령을 믿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하나님을 보지 못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했고, 성령을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우리는 지금과 같이 살아갈 것입니다.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느껴지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다면 변화가 있고, 진보가 있고, 열매가 있고, 성장이 있습니다. [너희가 예수님을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지금도 보지 못하나 그분을 믿으며 이루 말할 수 없고 영광이 가득한 기쁨으로 기뻐하니](벧전1:8).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활동적입니다. 믿음은 정적이지 않고 동적입니다. 믿음은 죽어 있지 않고 살아 있습니다. 믿음은 생명이 있기에 살아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고, 말씀을 읽고 믿는 자들의 마음속에 믿음의 열매를 맺으십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믿음을 생산하시고 풍성하게 맺히게 하심으로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으며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기뻐하며 살 수 있게 됩니다. 소망하며 살게 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맺으시는 믿음은 놀라운 것입니다. 모든 영적인 복은 믿음을 통해서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냥 주실 수 있는 것들도 좀처럼 그냥 주시는 법이 없습니다. 끊임없이 믿음을 심어 주시고, 믿음으로 구하게 하시고, 믿음으로 걷게 하시고, 믿음으로 서고, 믿음의 경주를 하며, 믿음으로 싸우고, 믿음으로 취하며, 믿음으로 살게 하십니다. [믿음으로(by faith)]란 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Key word입니다.

감정에 따라 살지 말고, 세상이 주는 정보나 예상에 따라 살지 말고, 자신의 지혜와 명철을 따라 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대로 살도록 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서고, 말씀에 이끌림을 받도록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저도 때로 닥치는 일이나 처한 환경을 기초로 생각하고 예측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모두 부인하고 주님의 기록된 말씀만을 믿으며 인내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성령께서 우리 안에 믿음의 열매를 맺어 가신다는 증거입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 주님 앞에서 내 안에 있는 불신과 의심을 모두 걷어 버리고 오직 믿음으로만 살 수 있기를 소원하며 기도합시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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