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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땅의 소금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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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땅의 소금이라


말씀: 마5:13

요절: 마5:13


음식을 만드는데 가장 귀한 것 중의 하나는 소금입니다.
오늘날처럼 대규모 염전이 개발되기 전에 소금은 언제나 귀한 것이었습니다. 소금은 겉모양이 아름답지 않습니다. 소금은 자신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은 녹아 없어져야 합니다. 소금의 용도는 매우 다양해서 부엌에서부터 의학, 미용, 화학 약품, 방부제 등에 모두 사용됩니다. 소금은 찌든
때를 빠는 세탁에도 사용됩니다. 몇 번을 빨아도 빠지지 않는 더러움은 소금물에 삶으면 어떤 세제보다 탁월한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양말, 흰
빨래, 행주, 기름 때로 더러워진 옷도 소금을 넣어 삶으면 말끔해집니다. 프라이팬의 생선이나 음식물이 눌어붙었을 때도 프라이팬을 불에 달구어
소금을 조금 넣고 신문지로 닦아내면 기분 나쁜 냄새도 사라지고 깨끗하게 닦아집니다. 소금 온천, 소금을 이용한 마사지, 다이어트 등도 있습니다.
소금의 효능은 씻음(cleansing)입니다. 예를 들어 목욕을 하기 전에 소금물을 여러 컵 마시고 사우나를 하게 되면 몸속에 있는
노폐물이 거의 다 빠져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소금 언약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통해 우리의 더러움을 제거하고 씻어낼 수 있습니다.


겨울에 땅이 얼거나 눈이 왔을 때 땅에 소금을 뿌립니다. 소금을
뿌림으로써 자동차나 사람의 미끄러짐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마찬 가지로 소금은 성도들의 영적 타락(backsliding-미끄러짐)을 방지해
줍니다. 언 땅에 소금을 뿌리면 눈이 녹고, 얼음이 녹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이 얼어붙은 마음에 불어 올 때 마음이 녹게 됩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자신의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들이 흐르는도다.]
(시147:18). 말씀은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주님께서 ‘너희는 땅의 소금이니라’고 하셨을 때 듣는 이들은 소금의 영적 의미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소금은 성전 희생 제물에
필수 요소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소금 언약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성전에서 드리는 모든 음식 헌무에는 반드시 소금이 들어가야
했습니다. [네 모든 음식 헌물의 봉헌물에 소금을 칠 것이니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음식 헌물에서 빼지 못할지니 너는 네 모든
헌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레2:13). 소금이 빠지면 안 됩니다.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입술의 헌물인 찬양, 기도, 감사, 고백
등에도 반드시 소금을 뿌려야 합니다. 형제들과의 대화에서도 소금은 필수 요소입니다. [너희 말을 소금으로 간 맞추어 항상 은혜가 있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바를 알게 되리라.]
(골4:6). 우리는 소금의 소중함과 가치와 그 역할을 통해서
소금의 영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소금은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감기 치료와 예방제로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소금물로 입안을 소독하고, 양치를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코로 소금물을 삼켜 입으로 뱉어내는 일 등은 목이나 코감기에 걸리신 분들이나
입 안에 염증이 있는 분들에게 간단하면서 강력한 효과가 있습니다. 저는 치과 치료를 받으면서 항생제 대신 계속해서 소금물을 사용했습니다. 소금을
통해 우리는 우리 몸을 깨끗하게 할 뿐 아니라 병균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소금은 항균 작용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소금 언약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드리는 거제(擧祭) 헌물의 거룩한 모든 것은 내가 너와 네 아들딸들에게 주되 영원한 법규에 따라 주었나니 이것은
[주] 앞에서 너와 네 씨에게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
(민18:19).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우리 마음속에 담아 둘 때 우리의 영혼은
깨끗하게 되며, 영적 유해물들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게 됩니다. 말씀은 죄를 제거하고, 막아 줍니다. 누가 말하기를 “성경이 여러분을 죄로부터
보호해 주든지, 죄가 여러분을 성경으로부터 보해 주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란 말씀은 절대적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소금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사람들은 오늘날처럼 의학적 지식이 없을 때에도 상가 집에
갔다 오면 소금을 뿌렸습니다. 재수 없는 일이 있거나 그런 사람을 쫓아낼 때도 ‘소금 뿌려라’고 외칩니다. 이는 미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소금 속에 있는 소독 작용, 방부 작용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도 이와 같은 기사가 있습니다. [아비멜렉이 그 날 하루 종일
그 도시와 싸워 그 도시를 점령하고 거기 있는 백성을 죽이며 그 도시를 헐고 소금을 뿌리니라.]
(삿9:45). 부정한 것을 제거하는데
소금을 사용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소금을 통해 우리 속에 있는 모든 부정한 것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소금은 깨끗하게 하는 것이며, 먹는데
간을 내는 것입니다. 욥기에 보면 [맛없는 것을 소금도 없이 먹을 수 있겠느냐? 달걀의 흰자위가 무슨 맛이 있겠느냐?](욥6:6)고
합니다. 소금 없이는 음식에 맛을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소금 없이는 음식을 먹을 수 없습니다. 소금은 썩음을 방지하고, 보존하는 역할을
합니다. 소금은 절이는 역할을 합니다. 식물들에 소금을 뿌리면 풀이 죽고 절여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올 때 사람의 속에 끓어 오르던 혈기가
죽고, 정욕이 죽고, 탐심이 죽습니다.


13절입니다. [너희는 땅의 소금이나 소금이 만일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것을 짜게 하리요? 그 뒤에는 아무 쓸모없고 다만 버려져서 사람들의 발 밑에 밟힐 뿐이니라.]
(13). 여기는 우리는
“너희는”이라고 할 때 너희가 누구인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는 성도들은 대부분 교회, 크리스천들이라고 단정하고 읽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듣는 제자들과 무리들을 향해 “너희는 땅의 소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교회 성도들이 아니라
‘유대인들’을 상대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에는 많고 많은 민족들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율법을 지닌 유일한 민족이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들의 특권이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입니다.
민족들마다 민족 종교, 고유한 전통, 신화들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민족은 유대인들이 유일합니다. [그러면 유대인의 나은 점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모든 면에서 많으니 주된 이유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맡기신 것이라.]
(롬3:1~2). 하나님께서
구약 성경은 유대인들에게 맡기셨고, 신약 성경은 교회에 맡기셨습니다. 모세가 말하기를, [이 날 내가 너희 앞에 두는 이 모든 율법과 같이
의로운 법규와 법도를 가진 큰 민족이 어디 있느냐?]
(신4:8)고 한 대로 세상에는 유대인과 비슷한 민족조차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중동의 수많은 민족들이 혈통적으로, 문화적으로 그 뿌리가 같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 민족들 가운데 단 하나도 유대인들과 비교할 수 있는 민족은
없습니다. 유대인들을 모든 다른 민족과 구별되게 하고, 독특하게 만들어 준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자신의 법규들과 판단들을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그분께서 어느 민족도 이와 같이 대우하지 아니하셨나니 그분의 판단들로
말하건대 그들이 그것들을 알지 못하였도다.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
(시147:19-20). 둘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서
나셨습니다. 역사적으로 영웅호걸들이 많고 많지만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과 비교되는 인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로마서 9:4-5, 요한복음
4:22을 보십시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라. 그들에게는 양자(養子) 삼으심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주심과 하나님을 섬김과 약속들이
속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체에 관한 한 그리스도께서도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시며 영원토록 찬송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롬9:4-5).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적으로 유대 민족에게서 나왔습니다. 인류의 구원자가 유대인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경배하고 우리는 경배하는 것을 아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기 때문이라.](요4:22).
*구원=구원자.


우리는 여기서 성경의 중요한 어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너희는
땅의 소금이 되어라.”, “너희는 이러저러하면 땅의 소금이 될 수 있다.”가 아니라 “너희는 땅의 소금이니”란 말씀입니다. 땅의 소금이 되어야
한다가 아니라 이미 “땅의 소금이니라”입니다. 땅의 소금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애를 써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땅의 소금이기 때문에
소금으로서 맛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소금이 되고, 빛이 되려고 기도하고 노력합니다. 주님께 “무엇 무엇이 되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너희는 땅의 소금이니”란 말씀은 약속이나 명령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이는 목표점이 아니라 이미 그러하다는
출발점입니다. 문제는 소금이 소금으로서 그 다양한 역할을 하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세상의 소금인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버림으로써 그 맛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어기고,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그 맛을 잃어 버렸습니다. 종교적 위선과 외식에 빠지고 사람의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중요하게 여김으로써 맛을 잃어 버렸습니다. 소금이 소금으로서의 맛을 잃어 버렸을 때 그들은 버림받아 세상에 짓밟히는 운명을 맞았습니다.
구약에서는 우상 숭배로 인해 맛을 잃었고, 신약에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음으로써 맛을 잃어버린 소금이 되었습니다. 2000년 이스라엘의
역사는 세상에 밟힌 소금이었습니다.


다시 13절입니다.
“너희는 땅의 소금이나”
란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우리는 일차적으로 “너희”란 유대인들이란 점을 말씀을 드렸고 좀 더
구체적으로 적용하자면 이들은 3-11절까지 언급된 복된 자들입니다. 단지 육신적으로 유대 민족이라고 해서 진정한 유대인이 아닙니다. 이는 바울이
정의한 바 [이는 겉으로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겉으로 육체에 행하는 할례가 그 할례가 아니기 때문이라. 오직 속으로 유대인이
유대인이요, 할례는 마음의 할례이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하니라. 이런 사람에 대한 칭찬은 사람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에게서
나느니라.]
(롬2:28-29)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유대인들이 모두 세상의 소금이 아니고, 할례를 행하고 율법으로 지키는
유대인들이 다 세상의 소금이 아니란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라고
말씀하실 때 “너희는”에 해당하는 이들은 앞에서 이미 언급하신 사람들입니다. “영이 가난한 자들,
애통하는 자들, 온유한 자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 긍휼이 있는 자들, 마음이 순수한 한 자들, 의로 인하여 핍박받는 자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비난받는 자들”
(마5:3-11)이 바로 세상의 소금입니다. 마음이 교만해지고
거만해지는 것은 소금이 맛을 잃어버린 결과입니다. 죄로 인해 애통할 줄 모르는 이들은 맛을 잃어버린 소금입니다. 세상이 너무나 살만하고 자신에
대해서 만족스럽고 아무 것도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는 맛을 잃어버린 소금입니다. 목이 곧고 완악한 자들은 맛을 잃어버린 소금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대신 자기 의로 충만한 이들은 맛을 잃어버린 소금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소금 맛은 긍휼, 순수, 의로 인해 받은 짠 맛이
있습니다. 사람들이나 세상으로부터 칭찬과 존경과 인정과 영광을 받는다면 그는 맛을 잃어버린 소금입니다. 주님께서 복된 자들이라 말씀하신 그런
사람들이 세상의 소금입니다. 소금은 홀로 맛을 내는 것이 아니라 음식물 속에 들어가서 맛을 냅니다. 필요할 때는 끓는 물에 던져지고, 환자의
고름 난 상처에 뿌려집니다. 소금을 필요로 하는 곳은 화려한 곳이 아닙니다. 급히 소금을 필요로 하는 곳은 대부분 어둡고, 더럽고 추한 곳,
힘들고 어려운 곳입니다. 소금이 들어감으로써 병은 고쳐지고, 더러운 곳은 깨끗하게 씻겨 지고, 맛을 내지 못하던 것이 간이 맞추어집니다. 성경에
이런 기사가 있습니다. 도시의 위치는 너무 좋은데 물이 좋지 못했습니다. [그 도시의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보소서, 내
주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도시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좋지 못하므로 땅이 황폐하나이다, 하니]
(왕하2:19). 물이 나쁘면 땅도
황폐하게 됩니다. 이 때 엘리사는 소금을 가져 오게했습니다. [엘리사가 이르되, 새 항아리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오므로 엘리사가 물들의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 던지며 이르되,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물들을 고쳤으니
여기에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황폐한 땅이 생기지 말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왕하2:19~21). 주님은 소금으로 물을 고쳐
주셨습니다. 주님은 이 땅을 고치실 때 소금을 필요로 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소금이라면 이런 곳에 던져질 것입니다. 만약 소금이 맛을 잃어
버렸다면 주님은 그 소금을 사용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맛을 잃어버린 소금은 버려져서 사람들에게 짓밟힙니다. 주님 안에 거하지 않음으로 열매 맺지
못한 가지는 사람들이 모아서 불에 던집니다.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들처럼 버림받아 시드나니 사람들이 그것들을 모아 불 속에
던져 태우느니라.]
(요15:6). 성도들은 자신들 안에 소금을 두어야 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막9:50)고 하십니다.


다시 본문 말씀인 13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땅의
소금이나 소금이 만일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것을 짜게 하리요? 그 뒤에는 아무 쓸모 없고 다만 버려져서 사람들의 발 밑에 밟힐 뿐이니라.]

(마5:13). 여기서 구체적으로 너희는 할 때 문맥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의로 인하여 핍박받는 자들, 주님의 이름으로 인하여 고난을 당했던
대언자들과 사역자들”을 말합니다. 의로 인하여 핍박받았던 사람들은 모든 유대인들이 아니라 주님의 대언자들, 의의 전파자들이었습니다. “너희는
땅의 소금이나”라고 한 대상을 더욱 축소하면 말씀을 전한 사역자들입니다. 본문을 주목해서 보십시오. 하나님의 대언자가 맛을 잃어버리면 거짓
대언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제사장들이 맛을 잃어버리면 우상 숭배자가 됩니다. 서기관들과 율법사들이 맛을 잃어버리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눈먼
안내자가 됩니다. 성경 교사들이 맛을 잃어버릴 때 거짓 교사가 됩니다. 주의 말씀을 선포하고 주님을 증거하는 사역자들이 “맛을 잃어버리면”
세상에는 더 이상 맛을 내는 소금이 없게 됩니다. 오늘날 주변의 교회들을 보십시오. 거짓 사도들, 거짓 대언자들이 난무하고, 거짓 교사들이
넘칩니다. 의의 사역자들은 없고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의 귀를 긁어주며 즐겁게 해 줄 리더십이 있는 목사들만 넘칩니다. 지금은 좋은 신학교를
나오고, 높은 학위를 가진 것이 훌륭한 목회자의 자격이 되는 세대입니다.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일]은 고사하고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과 영광을
받는 일을 하는 것이 성공적인 리더십을 지닌 목사가 됩니다. “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습니다. 거름으로도 적합하지 않는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복음의 맛을 잃어버린 설교는 사실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철학과 교육학, 심리학과 상식으로 무장된 설교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지만 그것들은 모두 쓰레기처럼 버려져 짓밟히고 맙니다. 오늘날 강단의 설교가 어떻게 취급되어지고 있는가? 살펴보십시오. 사람들은 설교를
듣자마자 잊어버립니다. 소금으로서의 맛이 없기 때문입니다. 들은 바 말씀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코미디나 개그
프로그램을 보고 들은 시청자들처럼 그 내용은 쓸모없이 버려집니다. 제 맛을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했던 사도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매를 맞고, 돌에
맞고, 감옥에 갇히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베드로가 늘 3000명씩 전도를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사도 바울이
늘 성공적인 집회를 가진 것이 아닙니다. 어떤 때는 전혀 회심자를 얻지 못한 채 맞기만 했습니다. 그들이 전한 복음은 듣는 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고, 쓰라리게 했습니다. 사도행전 5:33, 7:54입니다. 앞은 베드로의 설교이고, 뒤는 스데반의 설교인데 내용은 동일합니다. 이들은 의로
인해 핍박을 당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욕을 당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상하여 사도들을 죽이려고 의논하더니]
(행5:33). *마음이 상하여= cut to the heart. 베드로가 전한 복음은 순도가 높은 짠 소금이었습니다. 듣던 이들이
마음에 성령의 칼로 깊은 칼자국이 생겼습니다. 우리가 전한 복음이 이런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맛을 잃어버린 소금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상하여 그를 향해 이를 갈거늘]
(행7:54). *마음이 상하여= cut to the heart. 스데반이
전한 복음에 듣던 이들은 베드로에게 보였던 것과 동일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복음은 회심을 불러일으키거나 대적자를 만들어 내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사도 바울은 가는 곳마다 회심자를 얻거나 대적자들을 얻거나 둘 중의 하나였습니다.


주님은 소금으로서의 제자들이 당할 고난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나로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며 너희를 대적하여 거짓되이 온갖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크게
즐거워하라. 이는 하늘에서 너희 보상(報償)이 크기 때문이라. 그들이 너희 전에 있던 대언자들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마5:11~12)고 하십니다. 이들이야 말로 "세상의 소금"입니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세상에서 박해를 받는 성도들과 교회들이 있다면 그들이야
말로 세상의 소금입니다. 인기 좋은 교회, 대형 교회가 세상의 소금이 아닙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하여 비방을 받으면 행복한
자로다. 이는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위에 머물러 계시기 때문이라. 그분께서 그들 편에서는 비방을 받으시나 너희 편에서는 영광을
받으시느니라]
(벧전4:14).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있는 그대로 전함으로 회심자르 얻거나 대적자를 얻기를 원합니다. 복음의 동역자를
얻거나 복음의 원수들, 복음의 대적자들을 만나기를 소원하십시오.


전도는 열심히 하지만 동역자도 없고, 대적자도 없으면 맛을 잃어
버린 소금이 아닌가 점검해 보십시오. 복음을 전하기는 하는데 죄에 대한 책망이 없고, 죄의 결과에 대한 심판과 지옥에 대한 형벌이 없고, 죄의
유일한 해결책인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이 없다면 그가 전한 복음은 맛을 잃어버린 소금에 지나지 않습니다. 교회가 얼마나 크고 좋은지, 교육
시설이 얼마나 잘 되어 있고, 목사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이시고, 교제와 프로그램이 풍성하고 다양하다는 등의 이야기로 사람을 전파할 때 그는 맛을
잃어버린 소금입니다. 죄, 십자가, 피, 지옥, 심판, 형벌 등에 대한 복음의
핵심과 본질은 듣는 이들에게 쓰라리고 짠 맛을 냅니다. 복음은 듣는 이들의 육신, 자아를 사정없이 죽입니다. 죄인들에게 복음의 맛은 마치 헌데
소금을 뿌린 듯이 쓰리고 짠 맛을 냅니다. 마음에 뿌려지면 칼로 자르듯이 상처를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치료제입니다. 그 속으로
소금이 녹아 들 때 더러움이 씻어지고, 상처가 치료됩니다. 이 시대는 맛을 잃어버린 소금을 신제품의 복음, 새 시대의 새로운 가르침인 양
선포합니다. 우리 목사님 설교, 우리 교회 설교는 사람들에게 절대 상처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 큰 자랑입니다. 이미 병든 사람들을 고치기 위해서는
치료를 위해 칼을 잡아야 합니다. 치료를 위한 수술은 누구에게나 싫고 고통스런 일입니다.


롯을 보십시오. 그는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가
전한 내용이 틀렸다거나 오류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롯의 사위들은 롯이 전한 말씀을 어떻게 여겼습니까? [이에 롯이 나가서 자기 딸들과
결혼한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이 도시를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을 떠나라, 하였으나 그의 사위들이 그를 농담하는
자로 여겼더라.]
(창19:14). 왜 롯이 전한 말씀이 맛을 잃은 소금처럼 되었습니까? 우리는 평소 롯의 행실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롯의 딸들과 사위들이 너무나 육신적이어서 그렇다, 세상이 말씀을 받을 수 없다 등등의 다양한 진단을 내릴 수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롯의 말에
소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위들은 롯의 말에 동의도 하지 않았고 대적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 마디로 싹 무시해 버렸습니다. 농담으로 여겼다는
것은 그의 말을 짓밟아 버렸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전하는 복음을 롯의 말처럼 농담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이미 롯과 같이 세상에 들어와 살고 있고, 세상에 동화되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롯처럼 살면서 아브라함과 같은 열매를 맺기를 원하는 것이 이
시대의 대부분 교회 신자들의 소망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습니다.


맛을 잃은 소금은 그 무엇으로도 맛을 낼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것을 맛내게 하리요?]
(눅14:33~34). 소금이 맛을 제대로 내는데는 완전한 헌신이 필수적입니다. 자기의 소유를
아무 것도 버리지 않는 채 모든 것을 버린 제자들과 같은 열매있는 삶을 원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자신들의 소유 일부분을
숨기고도 모든 것을 바친 것처럼 사람들 앞에서 행세할 수 있겠지만 결코 모든 것을 다 바친 바나바와 같은 믿음과 성령 충만을 얻지 못했습니다.
온전한 헌신없이 완전한 헌신의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뿌리지 않는데서 열매를 거두려는 것보다 더 황당한 일입니다. 타락한 육신의 본성은 데마처럼
살면서 바울과 같은 영광을 얻으려고 합니다. No Cross, No Crown!! 십자가 없이는 부활이 없고 그리스도와 함께한 고난 없이는
그리스도와 함께한 영광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교회들은 그것이 가능한 것처럼 가르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삶은 고난 없이 사는 삶인
줄로 가르치고, 기도를 많이 하면 고난 없이 살 수 있는 것처럼 듣고 배운다면 그는 소금으로서의 맛을 낼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세상의 소금이 되었습니까? 소금의 용도와 소금이 내는 결과를 주목할 뿐 아니라 소금이 어디에 뿌려지고, 어디에 사용되어야 하는지에 더욱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다 같이 본문 말씀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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