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astor. Peter Yoon

성령의 열매(15)- 믿음
말씀. 롬 1:17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의 열매 가운데 일곱째로 믿음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믿음이 성령의 열매란 사실은 개역 성경을 사용하는 한국의 개신교회들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진리입니다. 개역 성경의 수많은 오류 가운데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 치명적인 오류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과 믿음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반대할 법이 없느니라.] (갈5:22-23). 그런데 이 부분을 개역 성경은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갈5:22)라고 말함으로써 성령의 열매 중 ‘부드러움’은 ‘자비’로 ‘선함’은 ‘양선’으로, ‘믿음’은 ‘충성’으로 변개되었습니다. 자비(mercy)는 성령의 열매가 아닙니다. 충성(loyalty) 역시 성령의 열매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그 열매로 나무를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같이 열매가 다르면 나무가 다른 것입니다. 개역 성경에는 충성이란 말이 무려 38번이나 나옵니다. ‘충성’을 매우 강조합니다. 반면 킹제임스 성경은 충성이란 말이 신구약 전체에서 3번 나옵니다. 여기서 충성이란 단어 역시 faithfulness로서 [신실함]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충성이 아니라 믿음과 신실함을 원하십니다. 주의 종은 믿음이 있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신실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교회에서 [신실 하라]는 ‘주의 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신실함(faithfulness)은 믿음의 바탕 위에서만 가능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이익을 쫓아서 일합니다. 명예나 권세나 돈이나 지위 같은 것을 쫓아서 열심히 일합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그렇게 일하는 사람을 향해 우리는 ‘부지런하다. 열심이다. 충성스럽다. 독하다.’ 등의 말을 하지만 그에게 “신실하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신실함은 믿음이란 성령의 열매를 맺음으로써만 가능한 성품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는 ‘믿음’이란 말은 친구 간에 의리, 신의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부모 자녀 간에 친함, 부부 간에 애정, 사제 간에 신뢰 등을 모두 ‘믿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이 누군가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믿음을 주기 위해서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믿음을 주려면 돈도 벌어야 하고, 힘도 있어야 하고, 지위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믿음은 세상 사람들도 모두 갖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믿을만한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복되고 행복한 일입니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고객에게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돈을 빌리는 사람은 채권자에게 신뢰를 주어야 합니다. 믿음을 주기 위해서 우리는 손해를 감수할 때도 있고, 욕을 먹으면서도 참을 때도 있고, 성실하게 일할 때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속성, 일관성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목적이 있으면 그 목적을 성취할 때까지 일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목적이 사람을 이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령의 열매로서 믿음을 근거로 한 신실함은 아닙니다. 성령의 열매로서의 믿음을 바탕으로 한 신실함은 자기에게 손해가 오든지, 시련이 오든지, 그로인해 명예가 손상되고, 수치와 모욕이 오든지 꾸준히 변치 않고 감당하는 것입니다. 신실함과 고집 센 것과는 구별해야 합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 “믿음으로(by faith)”라는 말은 엄청나게 자주 많이 사용되는 단어이고, 관용 어구입니다. 그러나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바르게 사용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것 같습니다. [믿음으로]라는 말은 성도들의 생활 방식이며, 판단의 방법이며, 일하는 방법입니다. 이미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믿음’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지만 그 믿음이 우리의 뜻과 소원을 성취시키는 수단은 아닙니다. 믿음으로 돈을 벌고, 믿음으로 합격하고, 믿음으로 승진하고, 믿음으로 집을 사고, 믿음으로 무엇 무엇을 했다는 식의 간증은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의 힘과 권능과 지혜와 도움을 잘 활용했는가?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으로]란 말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주님을 이용하거나 써먹는 방법을 배우고 갖추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 안에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 봅시다. 우리는 모두 자동차를 타고 다닙니다. 자동차가 없으면 우리는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에 빠른 시간에 도착할 수 없습니다. 자동차는 엄청 중요합니다. 언뜻 생각해보면 차가 사람을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사람이 차로"(by car) 움직입니다. 차가 사람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도 사람이 차로 움직입니다. 우리는 차로(by car) 짐을 나르고, 차로 여행을 하고, 그 안에서 업무를 볼 수도 있습니다. 차로 별의별 일을 다 한다고 해서 “차가” 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차로” 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믿음으로(by faith)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하고, 믿음으로 경주하고, 믿음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으로 걷고, 믿음으로 보상을 얻고, 믿음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든 믿음으로 해야만 합니다. 믿음에서 나지 않는 것은 죄라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롬14:23).

우리가 차를 사용하듯이 주님은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각양 은사들을 주시고, 열매를 맺게 하시고,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만 살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은 우리 안에 믿음의 은사를 주시고, 믿음의 열매를 맺게 하신 후에 우리를 통해 자유롭게 일하십니다.

우리 안에 믿음이 있을 때 주님은 각양 좋은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으로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십니다(행15:9). 믿음으로 우리를 거룩히 구별하십니다(행26:18). 믿음으로 의롭게 하십니다(롬3:28,30, 5:1). 믿음으로 은혜 안에 들어가게 하십니다(롬5:2).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들은 믿는 자들에게 주십니다(갈3:22).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됩니다(갈3:26). 믿음으로 의의 소망을 기다립니다(갈5:5). 믿음으로 일으킴을 받습니다(골2:12).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열매로 맺으신 믿음이요, 은사로 주신 믿음입니다. 믿음의 생성 근거는 첫째 하나님의 말씀이요(롬10:17), 둘째 성령의 은사와 열매요, 셋째 믿음의 창시자인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복음의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믿음을 나누어 주십니다. 믿음의 은사(선물)를 주십니다. 믿음의 열매를 맺기 시작하십니다. 믿음이란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으로 거하시며, 걸으시고, 활동하실 수 있도록 자신을 내어 드리는 행위입니다.

성도라면 거의 대부분 더 큰 믿음, 더 강한 믿음, 살아 있는 믿음을 소원합니다. 사람들이 더 크고 강한 믿음을 소원하는 이유는 믿음으로 병도 낫고, 소원하는 기도도 빨리 응답되고, 승리하고 싶은 소원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믿음은 분명 좋은 것입니다. 믿음은 소망과 사랑과 더불어 주님께서 영원한 것이라고 언급한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 에 대한 답이 나옵니다. 이미 여러분은 답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명의 필수 물, 공기, 온도라고 합니다. 어떤 이는 물, 불, 나무, 금속, 흙이라고 합니다. 어떤 이는 학교 교육이라고 합니다. 머리가 좋아야 한다. 줄을 잘 서야 한다. 운이 좋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주로 돈이라고 합니다. 이들이 말하는 생명은 육신의 생명, 육신의 삶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무엇으로 살 수 있고,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믿음, 말씀, 성령, 복음입니다.

① 의인은 믿음으로 삽니다. 성경은 무려 네 번에 걸쳐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2:4, 롬1:17, 갈3:11, 히10:38)고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밥 먹여 주나, 사랑이 돈 벌어 주냐는 사람들은 밥과 돈이 믿음과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삽니다. 믿음이 아닌 다른 것으로 산다면 그는 여전히 구원받지 못한 죄인일 뿐입니다. 성도는 누구나 다 믿음으로 살며, 믿음에서 나지 않는 것은 죄란 사실을 분명히 기억합니다(롬14:23).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보는 것으로 살게 됩니다.

② 성도는 말씀으로 삽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마4:4/ 눅4:4). 성도의 영적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영적 생명, 영적 삶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말씀을 읽지 않고, 설교를 듣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는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말씀으로 사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믿음으로 살 수 없습니다.

③ 성도는 주(Lord)로 말미암아 삽니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요6:57).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갈2:20 참조.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 있나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갈2:20a).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④ 성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삽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살면 또한 /성/령 안에서 걸을지니](갈5:25). 우리는 성령으로 삽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생명을 줍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권능, 신성 등을 심어주고 자라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성령을 통해 살지 않으면 육신을 따라 살게 됩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육신의 일들을 행하지 않게 됩니다.

⑤ 성도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삽니다.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을 선포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9:14). 이 말씀은 특히 사역자들을 위해 주신 말씀입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자들은 복음으로 인해 물질의 필요와 육신적인 것까지 공급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먹을 것과 입을 것에 신경쓰며 사역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 점은 주님께 맡기라고 하십니다(마6:33). 복음을 선포하는 자들은 복으로 삽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맺으시는 열매는 어떤 것입니까? 성도들이 크게 오해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믿음의 대상과 믿음의 근거입니다. 성경 공부 시간이나 교회에서는 [주님을 믿습니다. 말씀을 믿습니다.]는 식으로 바른 믿음, 바른 신앙의 고백을 하는데 반해 막상 기도하거나 생활할 때 보면 자신의 기대 사항, 자신의 원함을 강하게 믿습니다. 그것을 믿어야 하는 줄로 아는 것 같습니다.

어떤 환자가 기도원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주님께서 전능하시며, 저의 병을 능히 고쳐 주실 수 있는 치유자이심을 믿습니다. 그러나 저의 병을 치유해 주실지 안 해 주실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아뢰었습니다. 이는 매우 정직하고도 솔직한 기도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전능하시고 저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고로 저의 병도 낫게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런 식으로 기도합니다. “주님, 이번에는 승진할 줄로 믿습니다.”, “이번에는 잘 될 줄로 믿습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취업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는 목사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올 한 해는 교회가 크게 성장하고 부흥할 줄로 믿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그것을 믿어야 하는 줄로 압니다. 믿고 기도하라는 것이 자신의 꿈이나 이상이나 소원이 이루어 질 줄로 믿고 기도하라는 뜻인 줄로 알고 그런 식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다 잘 안되면, “제가 잘 못 구했나 봅니다. 제 믿음이 약했나 봅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뜻이 있으신가 봅니다.” 란 식으로 변명을 하거나 자책을 하거나 실망을 하는 것을 봅니다. 자신이 기도한 대로, 자신이 믿은 대로 되지 않을 때면 여지없이 여러 가지 준비된 알리바이가 있습니다.

주님은 성경 어디에도 자신의 생각, 기대, 예상, 소원을 믿으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대신 우리는 주님의 약속, 말씀을 근거로 그 일을 이루실 주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의 근거와 대상이 바르지 않으면 그것은 한 낱 몽상이나 종교적 환상에 사로잡힌 사람에 불과합니다. 가능성이나 환경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 없이 믿는”것이 성령이 주시는 믿음입니다. 느낌이나 자신의 상식이나 지식이나 논리나 전통이나 추론이나 별도의 데이터나 증거나 현상을 요구하지 않고 오직 한 가지 “기록된 말씀” 하나만을 근거로 믿는 것이 성령이 우리 안에 주시는 은사요, 열매로서의 믿음입니다. 사람의 육신은 증거를 보여 주어도 잘 믿지 못하는 것이 본성입니다. 진리가 아닌 거짓은 근거가 없어도 잘 믿어 버리고는 후에 속았다고 원망하고 자기를 탓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믿어야 하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은 것을 믿어 버리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보이지 않는 것, 들리지 않는 것, 느껴지지 않고, 마음속에 상상으로 떠오르지도 않는 것일지라도 기록된 말씀을 믿도록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열매로서의 믿음입니다. 성령의 열매로서의 믿음은 세상의 어떤 것이나 사람의 어떤 것이나 눈에 보이는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속한 것들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교회에서 말씀을 전한지 만 4년이 지났지만 양적 성장이 너무나 없는 현실에 막막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한 가지는 정말 자신이 있었는데 그것은 성경 공부였습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일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해 온 일입니다. 저의 전직(前職) 역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성경 교육은 정말로 자신이 있었는데 이곳 미국에 와서 그것이 완전히 무너지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성경 공부를 하는데 성경 공부를 통해 변화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대부분 한두 번 왔다가는 “재미없다, 이상하다, 피곤하다”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성경 공부를 오지 않았습니다. 전혀 그들을 양육해 내지를 못했습니다. 꾸준히 변치 않고 하시는 분들이 있었지만 특이하게도 이들은 아무리 가르쳐도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3-6개월만 가르치면 완전히 변화되어 교회의 신실한 일꾼으로 성장 시킬 줄 알았는데 3년을 가르쳐도 여전히 변화가 없었습니다. 이 때 저는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게 유일한 희망이요, 은사로 생각했던 성경 교사의 자질에 대해서 완전히 낙담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가졌던 자신감이 믿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기 확신이요, 교만이요, 아무 것도 아니란 사실을 처절하게 배웠습니다. 자신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자신이 예측하고 목표하는 것을 정해 두고 기대하며 기도하는 것 역시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있는 잘못된 믿음의 개념, 정의, 근거, 대상 들을 모두 제거해 내시고, 친히 믿음이란 열매를 맺으십니다. 여러분 역시 자신이 정말 잘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무너지는 체험을 한 두 번은 했을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강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무너집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약한 것이 자신을 죽인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반대입니다. 모세는 온유의 대명사입니다. 하지만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최고 강점이던 온유함이 결여되어 성질을 내다 망했습니다. 베드로는 담력과 용기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용기의 부족으로 주님을 저주하며 배반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나 세상에서나 그런 예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이 강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믿음의 부족으로 망하고, 사랑이 넘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이 자랑했던 사랑이 없음으로 절망합니다.

우리는 믿는다고 하지만 환경에 따라서, 감정에 따라서, 들어오는 정보에 따라서 믿음이 마구 흔들리고 변합니다. “나는 너를 믿었는데 너는 나의 믿음을 배반했다.”, “나는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어” 등등의 말은 사람들의 믿음이 얼마나 허망한가를 보여 주는 일상적인 예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그렇지 않습니다. 환경과 여건, 세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저는 소위 그리스도인들이란 사람들의 입에서 믿음이란 말이 얼마나 악용되고 오용되는지 선명하게 듣고 봅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신성 모독적인 말이 마구 쏟아져 나오거나 반대로 믿음이란 말을 자기 편한 대로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교인들이 “믿음으로”라는 말을 거의 주문처럼 사용하고,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면 놀랄 일이 많습니다. “모든 일이 잘 될 것입니다. 나는 기도했고 주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또는 “나는 요즘 성경을 규칙적으로 읽고 공부하면서 놀랍도록 믿음이 성장했어.” 이런 식입니다. 어떤 이는 엉망으로 살면서도 “나는 별로 걱정하지 않고 삽니다. 하나님이 항상 나와 함께 하시고 도우신다는 기본적인 믿음은 있으니까요.”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주변에는 이런 식으로 자신의 믿음을 강조하거나 크고 강한 믿음은 아니어도 그래도 믿음은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신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크고 강한 믿음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믿음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을 자신의 안위와 평안과 먹고 살만한 무엇을 하는 도구 정도로 생각하는 듯합니다. 만약 이들에게 “당신이 가진 믿음은 당신 개인의 생각일 뿐이지 성경적 믿음과는 거리가 멀어요.”라고 말해 주었다가는 당장 싸움이 벌어지고 말 것입니다.

믿음은 감정적 동의가 아니며, 지적 이해가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으로” 누구는 ****을 했다. 이것이 정확한 문장입니다. “믿음으로 ...를 하다.”(동사). 하지 않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말씀에 대해 순종으로 행동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든지, 걷든지, 죽든지, 맞든지, 바치든지, 달리든지, 서든지, 싸우든지, 떠나든지, 만들든지, 구하든지 간에 무엇을 하는 것이 믿음이지 행함이 뒷받침되지 않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약2:26)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렸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주님과 동행했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야 할지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고향을 떠났습니다. 믿음으로 이삭을 제단에 바쳤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세상을 버리고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믿었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고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께서 우리 안에 맺으시는 열매로서의 믿음입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믿음은 기대 심리나 가능성일 경우가 많습니다. 막연하게 자신이 현재 믿음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 스스로 자신을 냉철하게 점검해 봅시다. 우리 안에 성령의 열매로서 믿음이 존재하는가? 그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은 믿음을 통해서 때로는 시련을 이기게 하시고, 때로는 환란을 통과하게 하시고, 때로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수치와 모욕을 받게 하십니다.

사람들은 믿음을 가짐으로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를 기대합니다. 그것은 권능일 수도 있고, 지혜일 수도 있고, 성공일 수도 있고, 하늘의 다양한 복일 수도 있고, 가정의 평안이나 건강과 같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 안에 믿음을 갖게 하시는 것은 이런 것보다 주님의 영광과 교회의 덕을 세우고 형제들을 사랑하게 하기 위한 것일 때가 대부분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나 설교를 들을 때면 믿음으로 산 사람들의 일생에서 그들이 겪은 고난이나 인내, 환란이나 오래 참음, 시련을 보이지 않고 그들이 얻었던 열매, 승리, 복된 결과들만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는 것이 보통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갈렙, 다니엘 등의 기사는 우리를 감동하게 하고 우리 역시 그런 믿음의 소유자가 되고 싶은 열망을 불러일으키지만 그들이 겪었던 고난의 세월과 오래 참음 등은 결코 바라지 않습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믿음의 승리를 경험한 예를 하나 들어 봅시다. 다니엘이나 그 세 친구는 믿음으로 살다가 사람들의 미움을 받아 사자 굴에 던져지고, 용광로에 던져졌지만 무사히 나왔습니다. 요셉은 감옥에 갇힌 죄수에서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것을 믿음의 승리라고 환호합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런 간증을 원합니다. 이런 강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산도 옮겨 보고, 뽕나무를 바다에 심을 수 있는 그런 믿음을 한번 소유해 보고 싶을 것입니다.

이런 승리를 원한다면 하나님과 말씀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해 수치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사자 굴에 던져지고 용광로에 던져질 일을 해야 합니다. 믿음의 일을 하지 않고, 믿음으로 걷지도 않고, 믿음으로 살아 본 적도 없고, 믿음으로 싸워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믿음의 승리를 경험할 수 있고, 열매를 맛볼 수 있습니까?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나올 줄 예측하고 기대하면서 기도한 것은 아닙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믿었지 사자 굴에서 살아나올 것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그 친구들 역시 살아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지 자신들이 용광로에서 죽지 않을 것을 믿었던 것은 아닙니다. 무고하게 감옥에 갇혀 있던 요셉이 감옥에서 나와서 총리가 될 줄은 자신도 전혀 알지 못했던 일입니다. 이들은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기적을 기대하는 삶은 아닙니다. 요셉은 이집트에서 평생을 종노릇을 하다 감옥에 살았다 하더라도 여전히 주님을 믿고, 신실하였을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이집트의 총리가 될 것이라고 믿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이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믿는 것이지 자신이 원하는 이상이나 기대하는 소원을 믿는 것이 아님을 봅니다.

예를 들어 “나는 멋지게 성공할 것이다.”, “나는 장래에 재벌이 되고, 유명인이 될 것이다.” 이렇게 책상 앞에 써놓고 그 길로만 매진했다고 합시다. 그렇게 해서 실제로 그렇게 되었을 때 “꿈은 이루어진다.”며 출세한 이야기를 책으로 내기도 하고 간증을 하기도 합니다. 그가 믿은 것은 자신입니다. 그가 믿은 것은 꿈입니다. 그가 믿은 것은 희망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성경적 믿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해서 병이 안 생기는 것도 아니고, 믿음으로 산다고 해서 실패가 없거나 고통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당하는 모든 시험을 다 당하며 삽니다(고전10:13).

그럼 왜 믿음으로 사는가?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시험에서 그들과 다르게 반응하고, 다르게 행동하고, 다르게 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망했다고 불안해 할 때 성도들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외치며 살고, 사람들은 불안과 염려와 걱정에 매여 잠을 못 이룰 때 성도들은 동일한 상황인데 말할 수 없는 평강을 누리며 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울며 절망할 때 오히려 기뻐하며, 남들이 환란 속에서 쓰러질 때 도리어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by faith)란 의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겪는 문제가 내게는 전혀 다가오지도 않고, 겪지 않아서가 아니라 동일한 문제를 겪고, 심지어 더 심한 상황에 처할 때 믿음으로 주님처럼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선함과 부드러움을 지니고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안에 주님이 믿음을 주시는 이유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고, 성령이 거하시는 사람의 삶은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가를 보여 주라는 것입니다. 이런 삶이야말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열매를 맺고,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인데 이것을 일컬어 주님은 ‘믿음의 삶’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으로 살다가 맞으면 그 고통이 덜한 것이 아닙니다. 맞으면 아픈 것은 믿음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같습니다. 믿음으로 살다 감옥에 갇힌다고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믿음으로 조롱을 받는다고 조롱이 즐거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면 믿음으로 맞을 때는 육체의 고통 가운데서 찬양이 나오고 기쁨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갇히면 몸의 속박 가운데서 영혼의 참 평강과 자유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조롱을 받고 박해를 받으면 그들을 위해 기도해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히브리서 11:36-38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으로/또 다른 이들은 심한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참으로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겪었으며 돌로 맞기도 하고 톱으로 잘리기도 하고 시험을 받기도 하고 칼로 죽임을 당하기도 하며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떠돌아다니며 궁핍과 박해와 고난을 당하였으니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였느니라.) 그들이 사막과 산과 땅굴과 동굴에서 떠돌아다녔느니라.”(히11:36~38). 그들은 믿음으로 조롱과 채찍과 결박과 투옥을 맞이했으며, 돌에 맞았고, 톱으로 잘리며, 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들은 패배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그들이 믿음의 승리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분명히 승리했습니다. “믿음으로 승리했다”는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십시오. 믿음으로 돌에 맞고, 채찍에 맞았다는 말은 역설적인 것 같지만 성립합니다. 믿음으로 엄청 고생했다, 믿음으로 살다 파산했다, 믿음으로 살다 가정이 박살났다, 믿음으로 살다 병들었다, 믿음으로 살다 죽었다, 믿음으로 살다 평생 큰 돈 한번 구경 못하고 가난에 찌들어 살았다, 믿음으로 살다 사람들에게 조롱과 멸시와 박해와 고난을 당했다. 이런 모든 말이 성경적으로 정확히 성립하는 말입니다. 믿음으로 살아도 얼마든지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그렇게 사는 것이 ‘믿음의 삶’이라면 저는 차라리 포기하고 싶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육신적인 것을 기대하고, 현실의 복을 구하는 기복주의 신자들이라면 저의 이런 설교는 희망과 위로를 주는 대신 불쾌감을 주고 기분 나쁜 설교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 한 분만이 모든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으로 살라]고 하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같은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입니까? 우리 안에 성령의 열매로서 믿음이 자라나고 강해질 때 가능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자라나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시련을 통해 강해 져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믿음을 자라게 하시기 위해 말씀을 듣게 하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성령을 거역하지 않고, 멸시하지 않고, 억누르지 않고 차분히 인도함을 받는다면 주의 기름 부으심이 모든 것을 가르치시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지만 열매를 맺으시고자 하시는 주님의 뜻에 기꺼이 동참하고 자신을 내어 드릴 수는 있습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께 내어드릴 때 성령께서는 그 안에 가장 먼저 믿음의 열매를 맺으십니다. 성령의 확신에서 나온 믿음은 결코 환경이나 기분에 따라 흔들리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육신을 따라서 믿는 믿음이 아니라 성령께서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부어 주시기를 기도해야 겠습니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잘못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더디 일하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 바른 방향, 바른 기도, 바른 소원을 가지고 기도할 때 주님은 즉각적으로 우리 안에 믿음의 은사를 주시고, 믿음의 열매를 맺어나가시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크고 강한 믿음, 살아 있는 믿음으로 이 땅에서 죄와 세상과 마귀와 육신을 당당히 이겨내는 그런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주제별(글) > 성령을 알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령의 열매(17) -온유  (0) 2006.04.12
성령의 열매(16) -믿음  (1) 2006.04.11
성령의 열매(15) -믿음  (1) 2006.04.10
성령의 열매(14) -믿음  (0) 2006.04.09
성령의 열매(13) -선함  (0) 2006.04.03
성령의 열매(12) -선함  (0) 2006.04.02
댓글 로드 중…

최근에 게시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