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astor. Peter Yoon

오늘은 신약 교회의 십일조를 비롯한 헌금에 대해서 같이 공부해 보겠습니다. 올바른 헌금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의 결여는 성도들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올려놓게 됩니다. 우리는 이 시간 성경을 통해 신약이 가르치는 헌금의 원칙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헌금만큼 논쟁의 대상이 되는 주제도 없을 것입니다. 교회의 다양한 행사와 목적을 위해서, 또 일부 탐욕스러운 목회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해 헌금을 강요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반드시 이해하고 바르게 믿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당신이 가진 재산이나 돈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란 사실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성경 구절의 잘못된 이해와 잘못된 적용을 통해 오류로 이끄는 설교를 많이 들었을 줄로 압니다. 다 같이 마태복음 6:20,21을 펴 보시기 바랍니다. [ Mt 6:20 But lay up for yourselves treasures in heaven, where neither moth nor rust doth corrupt, and where thieves do not break through nor steal: Mt 6:21 For where your treasure is, there will your heart be also.] 이 구절은 조국 교회에서 헌금을 설교할 때 거의 단골로 나오는 본문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너희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하늘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본문이 가르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어떻게 보물을 쌓아 둘 수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3:12에서 바울은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건초나 짚으로 이 기초 위에 세우면...]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늘에 금과 은과 보석을 쌓을 수도 있고, 나무나 건초나 짚으로 쌓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보화의 의미를 잠깐 상고해 보겠습니다. 금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예표합니다. 만약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영광을 돌리는 일에 열심을 낸다면 우리는 모두 하늘에 금을 쌓아 둘 수 있을 것입니다. 은은 구속을 나타냅니다. 사람을 구령하는 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속죄의 피를 증거하는 일이야 말로 은을 쌓아두는 일입니다. 보석은 혼을 그리스도께로 이겨 올 때 주어질 것입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을 특별한 보석이라고 했고, 저희 성도들을 특별한 보물이라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은 헌금과 하등의 상관이 없는 구절입니다.

다음으로 자주 오해하는 구절은 말라기서입니다. 말라기3:8-11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강도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내것을 강도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강도질하였나이까? 하나니 이것은 곧 십일조와 헌물이니라. 너희가 저주로 저주를 받았나니 이는 너희 곧 이 온 민족이 내 것을 강도질하였음이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너희는 모든 십일조를 가져다가 창고에 들여 내 집에 먹을 것이 있게 하고 이제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너희를 위해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쏟아 붓되 받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8-11). 이 구절은 구약의 이스라엘 성도들이 십일조를 정확히 내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예나 지금이나 돈내기 싫은 것은 매 한가지입니다. 이들은 바벨론 포로 생활을 70년이나 했기 때문에 십일조나 헌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성전을 재건하고 다시 레위 지파를 세우고, 율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가장 잘 안되는 것이 바로 십일조였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느헤미야와 비슷한 시기의 선지자였기에 이들을 교육할 목적으로 십일조를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십일조를 바쳐야 할 성전이나 먹여 살려야 할 레위 지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구약에서 십일조와 헌물은 율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12지파입니다. 11지파는 모두 땅을 유업으로 받았지만 레위지파는 성전에 관련된 일을 하는 대신 나머지 11지파가 내는 십일조와 헌물로 먹고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십일조를 잘 내지 않으면 레위 지파는 먹고 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성전의 모든 필요도 채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레위 지파가 다 성전의 제사장은 아니었습니다. 20세에서 50세까지 업무가 주어졌으므로 레위 지파들은 각 지파에게서 받은 십일조의 십일조를 다시 성막에 봉사하는 제사장들에게 바쳤습니다. 주님은 11지파의 십일조와 헌물은 주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 누구도 그것을 손대는 자들은 주님의 것을 강도질 하는 것입니다. 반면 십일조와 헌물을 정확하게 내는 자들은 많은 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성전도 성막도, 레위 지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적 십일조 제도는 있을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7:12에 말씀하시기를, [이는 제사장 체계가 변하였은즉 율법도 변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요...]라고 합니다. 구약적 제사장 체계가 변했으므로 십일조에 대한 율법도 변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다고 헌금을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다면 이는 잘못입니다. 성도들이 아무도 헌금을 하지 않는다면 지역 교회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십일조는 구약의 율법이 있기도 전에 이미 드려졌습니다. 아브라함과 야곱은 모두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린 믿음의 조상들입니다. 정상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드리는 헌금은 매우 복된 일이며, 하나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고린도후서 9:11입니다. 2Co 9:11 Being enriched in every thing to all bountifulness, which causeth through us thanksgiving to God.

그러나 헌금을 드리기에 앞서 여러분 자신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5을 보십시오. 2Co 8:5 And this they did, not as we hoped, but first gave their own selves to the Lord, and unto us by the will of God. 고린도교인들은 헌금에 앞서 먼저 자신들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것이 올바른 드림이요, 섬김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2:1에서도 동일한 말씀을 했습니다. [ Ro 12:1 ¶ I beseech you therefore, brethren, by the mercies of God, that ye present your bodies a living sacrifice, holy, acceptable unto God, which is your reasonable service.] 하나님은 여러분이 가진 것보다 여러분 자신을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신다면 바른 헌금을 드릴 수 있는 기초가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마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마음이 은혜로 차고 넘친다면 연보나 구제는 저절로 차고 넘칠 것입니다. 헌금은 그냥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8:8과 9:8을 보십시오. [내가 명령으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이 열심인 것을 기회로 삼아 너희의 사랑이 진실함을 입증하려고 말하는 것이라.](고후8:8). [하나님께서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것은 너희로 하여금 항상 모든 일에서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선한 일에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9:8). 우리가 많은 십일조와 넘치는 연보를 하기 전에 주님이 우리에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모든 은혜를 넘치게 주십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자신의 이기적 목적에 따라 전용해 버리고, 선한 일에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주님으로부터 오는 은혜를 스스로 막아 버리고 맙니다. 하나님은 헛된 용도로 사용할 사람들에게 넉넉히 은혜를 베푸셔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주님의 은혜를 헛되이 사용하지 않는다면 경제적 빈핍과 어려움으로 고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영광의 풍요하심에 따라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돈이 없어!라는 분은 돈이 없기 이전에 자신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 은혜가 메말라 있지 않나 살펴보아야 합니다. 어떤 가난한 형제는 자신이 알고 있는 선교사에게 선교헌금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돈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얼마를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뜻하지 않는 돈이 생겼습니다. 전에 자기 이름으로 전화를 개설했는데 deposit한 돈이 25만원이었습니다. 전화국에서 deposit제도를 없애고 기본 요금을 올리는 것으로 정책이 바뀌었기 때문에 찾아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돈을 찾아서 10만원씩 2곳에 선교 헌금을 보냈습니다. 저는 대학교를 다닐 때 매우 가난한 고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직장인보다 많이 헌금을 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제 마음에 남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꾸준히 part-time job을 주셔서 헌금을 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당시로는 파격적으로 일주일에 6시간 일을 하고 90만원의 돈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넘치게 하셨던 것입니다. 헌금 생활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빌립보서 4:17, 사도행전20:35을 보십시오. [내가 선물을 바라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회계장부에 열매가 풍성하기를 바랄 뿐이라.] 올바른 헌금은 내는 사람들의 회계 장부에 열매가 풍성히 맺는 길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을 전폭적으로 지원했습니다. 바울이 세운 교회는 많이 있었지만 모두 바울에게 헌금을 하고 지원하지는 않았습니다. 4:15에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빌립보 사람들아, 이제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초기에 내가 마케도니아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일로 나와 교제한 교회가 너희 외에는 없었느니라.](빌4:15). 저희 교회는 지금 Homeless people을 위해 헌신한 목사를 위해 주고받는 일로 교제를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입으로 사랑을 외쳐도 물질로 주고받는 교제보다 더 은혜롭고 강한 교제는 없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0:35, [너희에게 모든 것을 보여 주었노니 너희가 마땅히 이렇게 수고하여 약한 자들을 도와주고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노라,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우리는 어떻게 드려야 합니까?

첫째, 마음에 정한대로 드리시면 됩니다. 10%를 정한 것은 성경적 전통에 따른 기준입니다. 이것은 율법이나 강요, 의무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가 적더라도 짐을 서로 나누어 져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9:7입니다. [저마다 자기 마음 속에 정한대로 낼 것이요, 마지 못해 하거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거이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마지 못해 억지로 하지 마십시오. 잘못된 자세로 드린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내십시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누가 간섭하거나 강제적으로 규정할 문제가 아니라 나와 하나님과의 문제입니다. 즐거이 내는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친교가 정상적인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헌신적으로 드릴 수 있습니다. [이는 내가 증거하노니 그들이 힘닿는 데까지 하였을 뿐 아니라 참으로 힘에 넘치도록 자원하여 하였으며](고후8:3). 사람이 자신의 능력보다 넘치게 하나님께 드리려면 그는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희생했다는 말입니다. 이는 옥합을 깬 마리아와 같은 드림입니다. 이러한 영적 수준에 도달했을 때, 그는 드리는 삶이 가져다 주는 은혜를 가장 풍성하게, 강력하게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번성케 하신 대로 드리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얼마를 하든지 신경쓰지 마십시오. 단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복대로 드리시면 됩니다. 고린도후서 8:12, 고린도전서16:2을 보겠습니다. [먼저 자원하는 마음만 있으면 사람이 가진 대로 주께서 받으실 것이요, 그가 갖지 아니한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고후8:12). 이 말씀을 통해서 볼 때 작정 헌금이나 대출, 빚을 내서 하는 헌금은 성경적으로 잘못된 헌금이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자원하는 마음이 첫째입니다. 헌금을 내는 사람은 헌금을 통해 어떤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으면 안됩니다. 자신의 영성을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든지, 자신의 믿음과 헌신을 보이고 싶어하든지, 교회 내에서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그런 헌금은 의미가 없습니다. 고전16:2, [주의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하나님께 형통하게 하신대로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모으는 일이 없게 하라.] 어떤 사람들은 헌금을 많이 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에 상응하는 복을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성경적 원칙을 어겨 가면서 드리는 헌금을 주님이 열납하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셋째, 뿌린대로 거두리라는 원칙은 드림의 생활에서도 적용됩니다. 고린도후서 9:6을 보겠습니다. [오직 내가 말하려는 바는 곧 인색하게 뿌리는 자는 또한 인색하게 거둘 것이요, 후하게 뿌리는 자는 후하게 거두리라 하는 것이라.](고후9:6). 우리는 주위에서 이런 생생한 간증을 부지기수로 들을 수 있습니다. 청교도들은 아이에게 10달러의 용돈을 정하면 9달러를 주고 그 자리에서 1달러를 제했습니다. 너희의 수입 중 10%는 언제나 하나님의 것이란 사실을 잊지 않도록 어릴 때부터 철저히 교육을 시켰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가르침이 매우 절실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십일조와 헌금 생활은 나의 경제적 주권, 물질이 나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란 청지기적 삶을 영위하게 해 줍니다. 여러분은 소작농을 아십니까? 땅 주인이 땅을 주면 그 땅에서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 소출을 올려 주인에게 몇 %를 준 뒤에 자신의 것을 갖습니다. 이는 주인이 준 땅에서 소득을 올렸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제공해 주시는 은혜에 따라 소득을 올립니다. 그래서, 드리는 생활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금전만 하나님께 드리고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시간과 노력,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완전히 드려야 합니다. 24시간의 십분의 일은 144분입니다. 하루에 두 시간은 하나님과의 친교를 나누는 일에 드려져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문, 텔레비젼, 인터넷에 허비하는 시간이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보다 훨씬 많습니다. 이는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주님께 더 많은 시간을 드릴수록 거둘 수 있는 열매도 더 많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살펴 볼 것은 어디에 드려야 하는가?입니다.

우선적으로 자신이 속한 지역 교회에 드려야 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모든 헌금은 지역 교회의 사역을 위해 드려졌고 또 쓰여집니다(고전16:1-3). 물론 자신의 재물을 자신이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지역 교회 외에 기부하고 싶은 곳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내는 기부의 손길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공급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사역과 계획의 중심은 지역 교회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아원이나 양로원, 사회 단체, 구호 단체, 선교 단체, 자선 기금 등 여러 곳에 돈을 보낼 수 있지만 이 모든 사역은 지역 교회의 감독과 지원을 받을 때 하나님의 사역이 됩니다. 지역 교회 이외의 대상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교회를 위해 바치기를 원하는 것을 희생하면서 이루어져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비단 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과 노력, 관심과 애정 등 모든 것을 다 말하는 것입니다. 지역 교회는 어떤 사회 단체나 봉사 단체보다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교회의 일꾼이 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꾼이란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에 헌신적인 사람이 하나님께 헌신적이지 않을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이 교회에 헌신적이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생활은 눈에 보이는 지역 교회를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는 영적 충만함이 몸을 통해서 드러나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지역 교회는 다른 지역 교회를 도와 줄 수 있고, 개인을 도와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모든 사역은 지역 교회가 중심입니다. 우리는 지역 교회가 강성해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구약이 이스라엘을 상대로 죄를 지적하고, 징계하고, 축복하고, 회복하셨다면 신약 성경은 온전히 교회를 상대로 죄를 지적하고, 징계하고, 축복하십니다. 주님은 계시록에서 각 지역 교회들의 죄를 지적하고, 칭찬하고, 해야 할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개인주의적 신앙에 젖어 있는 결과 이외로 지역 교회의 역할과 중요성을 잊고 지낼 때가 많습니다. 교회야말로 진리의 터전이요, 하나님의 집인 것입니다. 건전한 지역 교회가 없다면 성도들의 영적 성장은 있을 수 없으며, 하나님의 사역이 효과적으로 수행될 수 없습니다.

헌금한 돈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성경적 예를 보겠습니다.

성도들이 드린 헌금은 첫째, 교회의 전담 사역자들을 지원하는데 사용됩니다. 고린도전서 9:13-14절을 보십시오. [1Co 9:13 Do ye not know that they which minister about holy things live of the things of the temple? and they which wait at the altar are partakers with the altar? 14 Even so hath the Lord ordained that they which preach the gospel should live of the gospel.] 물론 많은 경우에 자비량 선교를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규모가 작고 형편이 안 된다면 자기 일을 하면서 목회를 해야 합니다. 바울은 손수 천막을 짜면서 일을 해서 먹었습니다. 이는 복음이 막히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중국의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 역시 자비량 선교를 했습니다. 그는 의사였기 때문에 자비량 선교에 무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도 선교 헌금의 지원을 전혀 받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교회들이 보내주는 헌금을 받았습니다. 허드슨 테일러 역시 각 지역 교회가 보내주는 헌금을 받았습니다. 이들을 책임지고 안정적으로 급여를 주는 교회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전에 제가 다니던 교회에는 다른 지역 교회를 몇 곳이나 지원하면서도 정작 자기 교회 목자에게는 급여를 아주 작게 주었습니다. 전임 사역을 하려면 교회가 목자에게 200만원의 급여를 줘야 하는데 그 정도는 안되었기 때문에 50만원만 주었고, 목사님은 아침마다 학원에 나가서 강의를 했습니다. 후에 100만원으로 올려 주었지만 그래도 충분하지 않아서 계속해서 강의를 하다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교회의 선교 비용은 총 수입의 50%를 육박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성경적으로 올바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교 비용을 줄이더라도 목회자를 지원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6에 이르기를, [말씀을 가르침 받는 자는 가르치는 자와 함께 모든 좋은 것을 나눌지니라.]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5:17-18은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두배나 존경할 자로 여기되 특별히 말씀과 교리에 수고하는 이들에게 그리할 것이니라. 이는 성경이 이르기를, 너는 곡식을 밟는 소의 입에 마개를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자기 품삯을 받는 것이 합당하다, 하였음이니라.](딤전5:17-18).

성도들이 드린 헌금은 교회의 사역을 위해서 사용됩니다. 교회는 건물 유지비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 비용이 듭니다. 선교 사역을 한다면 선교비가 필요합니다. 교회가 커지면 커질수록 교회의 사역에 더 많은 돈이 지출됩니다. 테잎을 복사하는 것도 모두 돈입니다. 주보를 찍어내는 일도 돈이 드는 일입니다. 각자 해결하는 식사를 교회에서 해결하려면 돈이 듭니다. 이것은 모두 성도들이 낸 헌금에서 충당됩니다. 사정이 안되면 못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드린 헌금은 교회 내의 형제, 자매들을 돕는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5:9-10에 60세가 넘은 과부, 고난받는 과부들을 구제하라고 말합니다. 미국처럼 연금이 잘 나온다면 교회는 구제하지 않아도 됩니다.

성도들이 드린 헌금은 교회에서 지원하기로 결정한 일들을 위해서 사용됩니다. 이는 주로 선교 헌금입니다. 다른 지역 교회를 돕거나, 다른 지역 교회의 목회자를 돕거나, 지역 교회들끼리 힘을 합해 추구하는 사역을 위해 지원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오늘 성경적 헌금의 원칙을 살펴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적으로 판단하여 올바른 헌금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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