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astor. Peter Yoon

2002년 12월 01일- 출애굽기        




출애굽기(IX)




말씀: 출애굽기 3:16-22

요절: 출애굽기 3:18







09.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우리는 중국 고사에서 나온 삼고초려(三顧草廬)란 말을 알 것입니다. 유능한 상관을 모시든지, 아니면 유능한 부하를 얻기 위해 세 번이나 머리를 숙여 간청을 하며 부르는 것입니다. 무능하고 별볼일 없는 사람을 부르는데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예 부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몇 번이나 사명을 주시고 부르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청(請)을 계속해서 거절하기만 합니다. 첫째, 그는 겸손하게 자신의 무능력을 이유로 주님의 청을 거절했습니다(3: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파라오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니](3:11). 이것은 일견 당연하고 합당해 보입니다. 두 번째, 다른 사람들을 핑계로 주님의 청을 재차 거절했습니다(3: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보소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느니라, 하면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그분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매](3:13). 셋째, 모세는 주님의 말씀을 부정하고 자기의 의견을 개진하면서 주님의 부르심을 거절했습니다(4:1).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보소서, 그들이 내 말을 믿지 아니하며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주]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할 것임이니이다, 하매](4:1). 이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는 이후에도 2번이나 더 주님의 청을 거절한 후에야 이집트로 갔습니다.

누가 여러분보다 지체나 권세가 쳐다보지도 못할 만큼 높은 사람이 와서 청을 한다면 그것은 청(請)이 아니라 명령이나 다름없습니다. 군대의 사병이 지휘관의 청을 거절할 수 없고, 부하 직원이 상관의 청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믿음인지 배짱인지 하나님의 부르심의 사명을 계속해서 거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때마다 모세의 불신과 염려를 씻어 내시고, 믿음을 심어 주셨습니다.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주님은 계속해서 모세와 대화하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을 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I AM THAT I AM)이라고 계시해 주셨습니다. 몇 번에 걸쳐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모세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으십니다. 로마서 11:29, [이는 하나님의 선물과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기 때문이니라.](롬11:29).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실망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12 제자들은 주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응답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계속해서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그는 그만큼 자신이 없었습니다. 모세는 이전의 실패가 그만큼 가슴에 깊이 남아 있었습니다. 모세는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능력보다 파라오가 더 크게 보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을 것이란 두려움이 너무 컸습니다. 머리가 있고, 생각이 조금만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일에 대해 예단(豫斷)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망성이 안 보이는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누가 나에게 그런 일을 하라고 할 때 우리의 심정은 미쳐 버리고 맙니다. 신발을 벗고 불타는 가시 떨기나무 앞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 모세는 기쁨과 평강이 넘쳐 나는 것이 아니라 근심과 염려로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너는/ 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함께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 조상들의 [주]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분명히 너희를 찾아와서 너희가 이집트에서 당한 일을 보았노라.](16). 주님은 “가라”(GO) 명하셨습니다. 이제 모세는 행동해야 할 때입니다. 주님은 죄인들을 향해 ‘다 내게로 오라’(마11:29)고 부르시지만, 제자들에게는 세상을 향해 ''가라"(마28:20)고 명령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복음을 들고 어디로든지 가야 합니다. 가서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하고,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오실 우리 주님에 대해서 선포해야 합니다. 모세는 이집트로 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먼저 주님을 증거 해야 합니다. 모세가 처음 할 일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입술로 증거하는 일입니다. 자신이 듣고 본 일을 증거 하는 사람을 증인이라고 말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증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입니다.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님께서 너희에게 임하신 후에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의 맨 끝 지역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주님은 모세에게 이집트를 전복하라거나, 이스라엘 해방 운동을 전개하거나, 파라오를 향해 테러전을 감행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교육을 통해 조용히 힘을 기르라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호렙 산에서 내려가 이집트에서 해야 할 일은 자신이 받은 말씀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세상으로 가서 내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 내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드러내면 됩니다. 빌립보서 2:12-13,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순종한 것같이 내가 있을 때뿐 아니라 지금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완수하라(WORK OUT). 이는 너희 안에서 일하시며(WORK IN) 자기가 참으로 기뻐하는 것을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빌2:12-13).

솔직히 우리가 하는 말을 누가 믿겠습니까? 주님은 우리를 전도자로 부르셨지만 우리가 만난 구원자, 내가 누린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증거할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말을 믿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문제가 바로 우리의 문제입니다.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보소서, 그들이 내 말을 믿지 아니하며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주]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할 것임이니이다, 하매](4:1). 모세의 염려, 모세의 걱정은 우리의 염려와 걱정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이가 바로 하나님이시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이 믿고 안 믿고는 모세가 걱정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모세는 다만 주님이 주신 명령에 순종하면 됩니다. 주님은 “내가 하리라”(I WILL)라고 약속하셨습니다(17,20,21).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고, 주님이 하실 일이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내가 해야 할 일인 줄로 알고 불신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는 일은 주님이 하실 일입니다(I will bring you up...). 이집트를 치는 일 역시 모세가 아니라 주님이 하실 일입니다(I will smite...).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인들의 눈에서 호의를 얻게 하는 일 역시 주님이 하실 일입니다(I will give...). 주님께서 I will이라고 하신 말씀들은 불가능이 없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강한 의지요 약속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주님은 여러 차례 I will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주님이 I will이라고 하신 몇 가지 약속의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이 부분은 감사함으로 받으면 되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6:37-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 40, 44, 54 - 부활(내가 일으키리라). 14:3- 재림(다시 오리라). 14:14- 기도 응답 14:16- 위로자를 주시도록 기도하리라. 14:18- 위로없이 버려 두지 아니하리라. 다시 오리라. 14:21- 사랑하리라, 나타내리라. 15:26,16:7-성령을 보내 주리라. 16:22- 내가 너희를 다시 보리라. 17:24- 나있는 곳에 함께 있게 하리라.

17절을 보십시오.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이집트의 고난 가운데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17). 하나님은 모세가 해야 할 일이 말씀을 증거 하는 일이요, 일을 하시는 분은 자신임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난해한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모세에게 믿기 어려운 말이었을 뿐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란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성도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못하는 성도는 많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뜻을 무엇이든지 행하실 수 있습니다. 이사야 46:10, [내가 처음부터 결말을 밝히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들을 옛적부터 밝히 알리고 이르기를, 나의 계획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기뻐하는 일을 모두 이루리라, 하였노라.](사46:10).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대로 가나안 땅을 그의 후손들에게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속박의 땅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땅을 가지게 됩니다. 이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출3:8). 이제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구나 아브라함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들었고,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모두 말씀을 믿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들이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다니든 다니지 않든 사람들은 천국과 지옥, 최후의 심판, 불못, 휴거, 재림과 같은 말씀을 듣고 알고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도 듣고 알고 있습니다. 이 말이 너무 어려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너무 믿기 어려워 이해가 되지 않을 뿐입니다. 정말 필요한 한 가지는 바로 믿음입니다.

주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은 이집트의 강에서 유프라테스 강까지였습니다. [바로 그 날에 [주]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어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이집트의 강에서부터 저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네 씨에게 주노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시니라.](창15:18-21). 아브라함 당시의 10개 족속이었던 부족이 모세의 때에는 6개 족속으로 줄어들었습니다. 400여년 동안 민족의 흥망성쇠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땅은 변함이 없습니다. 주님은 창세기 15:16에서, [그들은 네 세대 만에 여기로 다시 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불법이 아직 충만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하시더니](창15:16). 이제 400년이 지나 아모리 족속의 불법은 충만해졌습니다. 죄악과 불법의 잔이 차고 넘치게 되자 주님은 이들을 심판하시고, 이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네 음성에 귀를 기울이리니 너는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함께 이집트 왕에게 가서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들의 [주]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셨은즉 청하건대 이제 우리로 하여금 사흘 길쯤 광야로 가서 [주] 우리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리게 하소서, 하라.](18). 모세의 가장 큰 걱정거리가 해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입에 전해야 할 말씀을 주셨고, 그렇게 하면 그들에 모세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귀를 여시는 하나님께서는 능히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의 증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특히 이스라엘의 장로들이라고 한다면 모세의 사역은 한결 쉬울 것입니다. 70명의 준비된 장로(출24:1)가 모세의 음성에 귀를 기울인다면 모세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모세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는 않겠지만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신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랍습니까? 엘리야 시대에 파라오에게 무릎꿇지 않는 7,000명이 있었듯이 400년의 종살이 중에도 모세의 증거에 귀를 기울일 70명의 장로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의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은 ‘광야로 사흘 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직선 거리입니다. 신명기 1:2에 보면 호렙에서 가데쉬 바네아까지 열 하루 길이었습니다. 이는 세일 산을 돌아 우회했기 때문입니다. 직선 길로는 8일 길입니다. 이집트에서 시내 산까지는 3일 거리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먼저 증거한 후에, 그 다음에는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파라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장로들과는 달리 파라오는 어떤 경우에도 말씀을 듣지 않을 사람입니다. 주님은 모세 혼자가 아니라 장로들과 함께 파라오에게 가도록 하심으로써 두려움에 질린 모세를 도우셨습니다. 혼자 보다는 둘이 낫습니다. 단신으로 아합 앞에 섰던 엘리야와 달리 혼자서 파라오 앞에 서기를 두려워했던 모세에게 주님은 장로들과 동행하도록 하셨습니다. 주님은 파라오에게 “히브리인들의 주 하나님께서...”라고 증거하도록 하셨습니다. 모세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시지만 파라오에게는 그렇게 증거할 수 없습니다. 파라오는 아브라함이 누군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파라오에게 ‘천지를 창조하신 주 하나님’이라든지, ‘신들의 신’이라든지,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주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주 하나님’이라든지 빛나고 영광스런 칭호를 사용하시지 않으시고, ‘히브리인들의 주 하나님’이라고 계시하셨습니다. 당시 히브리인들은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종살이를 하는 노예 백성의 하나님이란 사실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히브리인들을 자신의 백성이라고 부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고, 당당히 ‘히브리인들의 주 하나님’이라고 계시하셨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를 향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히브리서 2:11, [이는 거룩히 구별하시는 분과 거룩히 구별된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났기 때문이니 이러한 까닭에 그분께서 그들을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히2:11).

당시 고대 민족들 사이에는 각기 민족들마다 다양한 신들이 있었고, 지배 민족들은 피지배 민족들의 신보다 강하고 우월한 신을 섬기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모세와 장로들이 파라오 앞에서 ‘히브리인들의 주 하나님께서...’라고 말을 시작하면, 파라오는 웃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민족들에게 히브리인들의 주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를 분명히 보여 줄 작정이셨습니다. 그리고, 이 기회를 통해 히브리인들이 하나님의 택하신 민족이요, 이들을 통해서 각 민족들이 섬기는 이교도들의 신과 살아계신 주 하나님과의 분명한 차이를 보여 주시고, 증거하시고자 하셨습니다. 노예 백성 히브리 민족들을 통해 이집트를 심판하고, 가나안 땅을 차지한다면 이 세상은 자연스럽게 히브리인들의 주 하나님이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이란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의 교회(행7:38)라고 불리는 이유가 바로 주 하나님을 온 세상 민족들에게 증거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부름받은 이유는 살아 계신 주 하나님을 민족들 가운데 증거하고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19-20절을 보십시오. [내가 확신하노니 이집트 왕이 너희가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리라. 아니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내가 내 손을 내밀어 이집트 한가운데서 행할 모든 이적(異蹟)으로 그 나라를 친 뒤에야 그가 너희를 가게 하리라.](19,20). 하나님은 결과를 미리 아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말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것은 시간 낭비에 불과하지 않는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의 종이 할 말이 아닙니다. 주의 종은 주님께서 하라고하는 일에 순종할 뿐입니다. 주님은 미리 아심을 통해 장로들은 모세의 말을 들을 것이고, 파라오는 듣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아셨고, 이런 사실은 모세로 하여금 더욱더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파라오는 매우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 9:10, [파라오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 땅의 온 백성에게 표적과 이적을 보이셨사오니 이는 그들이 우리 조상들에게 교만히 행함을 주께서 아셨음이라. 이와 같이 주께서 이름을 내심이 이 날과 같았나이다.](느9:10).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그를 꺾으십니다. 교만한 자는 결코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여기서 강한 손은 주님의 손이 아닙니다. 주님은 강한 손으로가 아니라 펴신 손으로 이적을 베푸셨고, 그 나라를 치셨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파라오를 통해 계획하신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성경이 파라오에게 이르기를, 내가 너를 일으켜 세운 목적이 바로 이것이니 곧 네 안에서 내 권능을 보이고 내 이름을 온 땅에 두루 알리려 함이니라, 하셨음이니](롬9:17). 파라오는 주님의 권능과 주님의 이름을 온 땅에 두루 알리는 강력한 전도 수단이요, 효과적인 도구였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주님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악한 자는 악한대로 주님께서 사용하십니다. 우리는 주님께 쓰임 받는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성입니다. 농부는 풀을 베는데 낫을 유용하게 사용하지만 다 쓴 후에는 헛간에 던지지 방안에 들이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을 위해 큰 일을 하고, 많은 일을 하기 때문에 자신이 훌륭한 사람인 줄로 압니다. 그러나 파라오도 주님의 일꾼이었고, 느부갓네살도 주님의 일꾼이었으며, 고레스는 주님의 택함받은 종이었고, 사탄도 주님의 사자란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겸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오직 내가 내 몸을 억제하여 복종하게 함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한 뒤에 어떤 방법으로든 내 자신이 버림을 받을까 염려함이로다.](고전9:27)라고 고백했는데, 이는 우리들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파라오는 악인으로서 악한 일로 주님의 쓰임을 받았는데, 그는 적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잠언 기자는 말하기를, [[주]께서는 자신을 위하여 모든 것을 만드셨나니 참으로 사악한 자도 악한 날을 위하여 만드셨느니라](잠16:4)고 했습니다. 사탄과 마귀들을 만드신 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이렇게 해서는안된다’는 본으로 쓰임받지 않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마음이 교만하고 악한 자들은 심판받는 순간까지 주님의 인도함을 받습니다. 주님은 주의 성도들을 인도하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악인들, 사악한 자들을 보존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욥기 21:30, [곧 /그 증거는/ 사악한 자를 멸망의 날까지 남겨 두신다 함이니 그들이 진노의 날까지 인도함을 받느니라.](욥21:30).

21-22을 보십시오. [내가 이집트 사람들의 눈앞에서 이 백성에게 은총을 베풀리니 너희가 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할 것이요, 모든 여인이 자기 이웃 사람과 자기 집에 거하는 여인에게 금 보석과 은 보석과 의복을 빌려서 너희 아들들과 딸들에게 입힐지니 너희가 이집트 사람들을 노략할 것이니라.](21-22). 이것 역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성취입니다. 주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나올 때 큰 재물을 가지고 나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내가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심판하리니 그 뒤에 그들이 큰 재물을 가지고 나오리라.](창15:4). 그런데 주목하실 말씀은 “너희가 이집트 사람들을 노략할 것이니라”(22b)는 표현입니다. 사실 히브리인들은 오랫동안 노예 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집트 사람들은 마땅히 금과 은과 의복을 그냥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금 보석과 은 보석과 의복을 빌려서...노략할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열 가지 재앙을 통해 이집트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해 착취한 모든 것들을 충분히 심판하셨습니다.

많은 성경 학자들은 여기서 ‘빌리다’와 ‘노략하다’란 말은 킹제임스 성경의 오역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사실은 그들의 무지가 드러나고, 오류였음이 밝혀졌습니다. 이집트인들은 주님의 심판으로 이들이 빨리 떠나 주기를 바랐고, 이들이 나갈 때 기쁘게 금과 은과 옷을 빌려 주었습니다(출11:2, 12:35). [이제 백성의 귀에 고하여 모든 남녀로 하여금 각각 자기 이웃에게 금은 보석을 빌리게 하라, 하시니라.](11:2).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이집트 사람들에게서 금은 보석과 의복을 빌리매](12:35). 빌린다는 말은 언젠가 갚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후에 자신들이 받은 금, 은 , 보석들을 모두 이집트에 돌려주었습니다. 신명기 28:26, 예레미야 44:26, 호세아 12:1, 역대기하 12:9에서 이들은 종살이를 통해, 공물을 통해 이집트에서 가져 나온 그대로를 이집트로 돌려주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시며, 계산에 철저하신 분이십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빚을지지 말아야 합니다. 행여나 빚을 졌다면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합니다. 전에 어떤 그리스도인은 ‘주님 오시기 전에 잔뜩 대출을 받아쓰고 그냥 휴거되어 버리면 좋겠다’는 푸념섞인 소원을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심지어 Y2K 문제로 어수선할 때, 은행 대출을 받아서 행여나 갚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들도 보았습니다. 누가복음 12:59,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네가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눅12:59). 바울 사도는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롬13:8)고 명령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매우 자세하게 앞으로 있을 일들에 대해서 미리 말씀해 주시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I will(내가 하리라) 말씀하심으로 모세에게 믿음을 심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하심으로 말씀만 증거하면 마음을 열고 들을 수 있는 장로들이 준비되어 있고, 그들이 동역자가 될 것입니다. 모세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위로는 하나님이 계시고, 아래로는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빈틈이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모두 부름받은 자들입니다(롬1:6). 우리는 모세처럼 세상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세상에는 이스라엘의 장로들처럼 분명히 우리의 증거를 받을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말을 결코 듣지 않을 파라오 같은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증거하는 일은 우리의 몫이고, 일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약속의 말씀을 믿고, 전능하신 주님을 믿고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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