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astor. Peter Yoon


기도는 먼저 듣는 것부터(03)



기도의 가장 일반적인 정의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다’란 말입니다. 대화의 기술은 말하는 것보다 듣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이 기도할 때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의문이 듭니다. 성경은 “말하라”는 명령보다 “들으라”, “귀 기울이라”는 명령이 수 백배 더 많습니다. 제대로 들어야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은 기도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듣기를 잘 하는 사람을 훨씬 더 좋아합니다. 선생님이 가장 좋아하는 학생은 말을 잘 듣는 학생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가장 좋아할 때는 말을 잘 들을 때입니다. 말은 전혀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은 정말 피곤합니다. 하나님 역시 사랑하는 자녀들이 말을 잘하는 것보다 잘 듣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하십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도들은 기도한다고 하면 그냥 막 떠벌이다가 ‘아멘’하고 일어나 버립니다. 기도의 습관이 잘못 든 경우입니다.

누구나 말을 배우기 위해서는 먼저 듣는 법부터 배워야 합니다. 선천성 귀머거리는 구강의 문제가 없더라도 선천성 벙어리가 되는데 이는 듣지 못하면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기도라고 하면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올바른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는 똑바로 듣는 법을 오랫동안 정확하게 배워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두개의 귀를 주시고 한 개의 입을 주신 것은 말하는 것의 두 배만큼 듣기를 원하시는 것이라고 합니다(탈무드). 그래서 성경은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사람마다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진노하는 것도 더디 할지니](약1:19)라고 말합니다. 신체 중에 귀와 마음과 입은 완전히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귀는 마음으로 들어가는 문이며, 입은 마음에서 나오는 문입니다. 마음은 귀로 받아서 입으로 내 보내주는 창고입니다. 주님은 [오 독사들의 세대여, 너희가 악하니 어찌 선한 것을 말할 수 있으리요? 이는 입이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하기 때문이라.](마12:34), [선한 사람은 자기 마음의 선한 보고(寶庫)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자기 마음의 악한 보고에서 악한 것을 내나니 이는 /사람/의 입이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하기 때문이니라.](눅6:45). 듣지 않으면 말 할 수 없다는 것은 기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입력이 없으면 출력도 없습니다. 우리의 속 사람은 성경을 통해서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 말(words)을 배워서(고전2:13-14) 주님과 영적인 대화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일반적으로 대화를 해 보면 ① 판단하며 듣는 사람이 있고, ② 질문하며 듣는 사람이 있고, ③ 조언을 하면서 듣는 사람이 있고, ④ 감정 이입을 하면서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욥기는 듣기는 둔하고 말하기에는 빨랐던 욥과 세 친구(엘리바스, 빌닷, 소발), 그리고 엘리후의 격렬한 웅변과 논쟁으로 이루어진 책입니다. 욥과 그의 친구들의 대화는 동정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듣기보다는 서로 자신의 생각을 기초로 말하기에 바빴습니다. 말을 하면 즉시 판단하고, 곧 바로 반박하는 질문을 하고, 조언(충고)을 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말에서는 조금도 밀리지 않는 달변가들이었지만 듣는데는 전부 0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어리석게 말했으며, 범죄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말이 많으면 실수가 많습니다. 욥기 11:2에 [말이 많으니 어찌 대답이 없겠느냐? 말로 가득한 사람이 어찌 의롭게 되겠느냐?](욥11:2)고 했습니다. 잠언 10:19에도 이르기를, [말이 많은 곳에는 죄가 부족하지 아니하거니와 자기 입술을 금하는 자는 지혜로운 자니라.](잠10:19)고 했습니다. 만약 누가 성도들의 기도를 속기록으로 받아 적어서 분석해 본다면 정말 앞뒤가 맞지 않는 엉터리 기도가 수두룩할 것입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의 뜻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기도를 겁없이 마구 내뱉고 있는 예도 허다합니다. 전도서 기자는 [이는 꿈이 많고 말이 많으면 헛된 것도 많게 되기 때문이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두려워할지니라.](전5:7)고 했습니다. 이는 기도 생활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이시며, 심판관이신 하나님 앞에서 조심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아들로서 아버지에게 말한다 해도 존경과 신뢰를 가지고 말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람간의 대화도 배워야 하는데, 하물며 주님과의 대화인 기도에 대해 배우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죄인으로서 법정에 서 있다면 재판관의 판결문을 흘려듣거나 대충 들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신하라면 왕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가볍게 듣거나 쉽게 잊어버리지 못할 것입니다. 연인이 프로포즈를 하거나 사랑을 고백하는 말을 우습게 듣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듣는 자세는 곧 바로 그 말하는 대상에 대한 존경과 신뢰, 두려움과 복종을 모두 표현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어떻게 듣느냐?를 보면 그 사람의 마음 자세와 관계성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주의 말씀을 들을 때에 얼굴을 땅으로 향하고 거의 죽음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의 말소리를 들었는데 그의 말소리를 들을 때에 내가 얼굴을 땅으로 향하고 얼굴을 대고 깊이 잠들었느니라.](단10:9). 이것이 주님의 말씀을 듣는 자세입니다. 하박국 대언자 역시 그러했습니다. [내가 들을 때에 내 배가 떨었으며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썩게 하는 것이 내 뼈 속으로 들어오매 내 몸이 내 속에서 떨었나니 이것은 고난의 날 곧 그가 백성에게로 올라와 자기 군대로 그들을 침략하는 날에 내가 안식하고자 함이라.](합3:16). 이들은 말씀을 제대로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들을 수 없는 사람은 제대로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너는/ 하나님의 집에 갈 때에 네 발을 지키고 어리석은 자들의 희생물을 드리는 것보다 듣는 것에 더 열중할지니 이는 그들이 자기가 악을 행하는 줄로 생각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로다.](전5:1). 어리석은 자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의무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성전에 희생물을 들고 찾아옵니다. 성전 예배를 다 드립니다. 이들은 율법의 형식과 의무는 다 하려고 하지만 율법의 정신과 본질은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너는 ... 듣는 것에 더 열중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집은 ‘기도하는 집’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듣는 것에 더 열중해야 합니다.

주님 역시 말씀하시기를 [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듣는 것에 주의하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듣는 너희가 더 많은 것을 받으리니](막4:24). 때로 우리는 기도하기 위해 주님 앞에 무릎을 꿇지만 조용히 침묵해야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급한 대로 마음에서 쏟아낸 후에 그것을 실수였다고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기도는 말을 많이 한다고 잘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교도들의 사고 방식입니다(마6:7). 오히려 성경은 [/너는/ 하나님 앞에서 네 입을 경솔히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어떤 것도 말하지 말지니 이는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기 때문이니라. 그런즉 네 말 수를 적게 할지니라.](전5:2)고 합니다. 기도는 결코 얼마나 열심히 많이 말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말만 하더라도 감사함으로 아뢰고, 뜨겁고 효과적인 기도를 한다면 충분합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예를 보십시오. [이제 그들이 길을 갈 때에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로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하는 여자가 그분을 자기 집으로 영접하니라. 그녀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더니 그녀도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들으나 마르다는 섬기는 일이 많아 정신이 없더라. 이에 그녀가 그분께 나아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섬기게 두는 것을 상관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녀에게 명하사 나를 도우라 하소서, 하거늘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에 관하여 염려하고 근심하나 한 가지면 족하니라.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눅10:38~42). 섬기는 일로(about) 정신이 없는 마르다와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 마리아는 성격의 차이가 아닙니다. 마르다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했고, 마리아는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마르다는 자기 집으로 몰려올 사람들을 어떻게 섬길 것인가? 음식은 무엇을 준비하며, 마실 것은 무엇을 내 놓아야 하는가? 반찬은 어떻게 준비하는가? 등 염려와 근심이 많았습니다. 그녀가 주님 앞에 나아와 무엇을 구했습니까? 마르다의 기도는 동생 마리아에게 ‘나를 도우라’고 명령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기도는 응답받지 못했습니다. 많은 일을 준비하고 염려하고 근심하는 것보다는 조용히 말씀을 듣는 것이 좋은 몫입니다. 모두 마리아처럼 아무 일도 않고 앉아서 말씀만 들으면 어떻게 하나? 싶겠지만 오히려 그 편이 훨씬 낫습니다. 그랬다면 모여든 사람들은 음식을 먹는 대신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마르다와 같은 부지런한 사람으로 인해 모여든 사람들은 배부르게 먹을 수 있겠지만 그들은 먹고 마시는데 시간을 다 보냄으로써 주님의 얼굴만 구경할 뿐 주님으로부터 아무 말씀도 듣지 못하고 돌아가야 합니다. 주님께 구한 마르다의 기도는 주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기도였습니다. 주님은 마르다보다 마리아가 탁월한 선택을 했으며, 좋은 몫을 택하였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진지하고도 거리낌없는 대화입니다. 때로는 그것이 간구일 수 있고, 때로는 나의 죄에 대한 심중의 깊은 회개일 수도 있고, 교회와 형제들을 위한 뜨거운 중보일 수도 있습니다. 구하는 것이 없다면 감사와 찬양의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효과적인 기도를 드리고 싶어하며, 자신의 기도에 대해 빠른 응답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그렇게 쉽게 응답이 되지 않는 체험들을 저마다 간직하고 있습니다. 물론 주님은 우리가 하는 말은 다 알아들으십니다. 우리의 속 중심을 다 살피시는 주님께서 말을 잘못 알아들으시는 일은 없습니다. [이는, 오 [주]여, 보소서, 내 혀의 말 중에 주께서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니이다.](시139:4). 기도는 언어의 기술이나 표현력, 발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주님의 말을 들을 줄 아는 귀가 있다면 서툰 발음과 웅얼거리는 소리라 할지라도 주님은 정확하게 다 알아들으십니다.

오늘은 성경을 통해 주님 앞에 말하기에 앞서 주님 앞에서 듣는 법을 배우는 것이 가장 훌륭한 기도의 길잡이란 사실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참된 기도는 주의 말씀을 주의해서 듣는데서 시작됩니다. 기도의 핵심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듣는가? 무엇을 듣는가?에 주의하는데서 비롯된다는 점을 깊이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주의하라. 이는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있는 줄로 여기는 그것까지도 빼앗길 것임이라, 하시니라.](눅8:18)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귀에 할례를 행하사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성도들이 되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성도가 범죄하는 주된 이유는 ‘주의 말씀을 듣는데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고를 주어야 그들이 듣겠느냐? 보라, 그들의 귀가 할례받지 못하였으므로 그들이 귀를 기울이지 못하는도다. 보라, [주]의 말이 그들에게는 치욕거리가 되며 그들이 그 말을 기뻐하지 아니하는도다.](렘6:10).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납니다(롬10:17). 들을 줄 모르면 믿음의 기도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기도는 미신이며, 믿음으로 드려지지 않는 기도는 자신의 염원을 담은 주문(呪文)에 불과하며, 믿음이 없는 기도는 발신자는 있으나 수신자가 없는 기도이며, 믿음이 없는 기도는 창 밖을 통과하지도 못한 채 허공에서 사라지는 소리에 불과합니다.

듣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여러분은 만약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겠습니까? 나의 말을 무시하는 사람의 말을 존중합니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기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주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주님 역시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잠언 1장은 듣는 것이 기도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실하게 보여 줍니다.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거절하였고 내 손을 내밀었으나 중시하는 자가 없었으며](잠1:24).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주님 역시 그들의 기도를 거절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그들이 나를 부를 터이나 그래도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그들이 아침 일찍 나를 찾을 터이나 그래도 그들이 나를 발견하지 못하리니](잠1:28). 주님의 명령, 주님의 약속, 주님의 권고를 듣는 것을 거절한 채 주님께 나의 요구를 들어 달라고 떼를 쓰는 것은 올바른 기도가 아닙니다. 조국의 교회는 일찍부터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새벽 기도회를 정착시켰고, 매주 철야 기도회를 통해 열정적인 기도의 불길을 당겼습니다. 그러나 묵상과 경건의 시간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듣는 노력은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잘못된 기도의 습관이 몸에 베인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스가랴 7장에는 듣지 않는 사람들이 바른 기도를 할 수 없음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귀 기울이기를 거절하여 어깨를 빼고 듣지 아니하려고 자기 귀를 막으며 참으로 그들이 율법과 만군의 [주]가 이전의 대언자들을 통해 자신의 영으로 보낸 말씀들을 듣지 아니하고자 하여 자기 마음을 금강석같이 /굳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큰 진노가 만군의 주께로부터 나왔느니라. 그러므로 그가 외쳐도 그들이 들으려 하지 아니한 것같이 그들이 외쳐도 내가 들으려 하지 아니하리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슥7:11-13). 주님은 자신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 귀를 막고, 듣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외침을 들으려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기도 생활을 점검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내가 지금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주님께 울부짖고 외치는데 앞서 먼저 주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마음 속 깊이 받아야 할 가르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때로 주님 앞에서 침묵은 많은 말보다 훨씬 더 귀합니다. 기도는 말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듣고 말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주님은 복음서에서 계속 반복해서 외치신 말씀 가운데 하나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마11:15, 13:9,43 막4:23, 7:16, 눅8:8, 14:35)였습니다. 이는 듣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교회에게도 동일한 명령을 주셨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계2:7,11,17,29, 3:6,13,22).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입을 열기 전 먼저 귀를 열어야 합니다. 주님이 일곱 교회에게 말씀을 주시기 전에 계속해서 ‘들을지어다’를 반복하신 것은 교회의 사역이 주님의 말씀을 듣는데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주님을 경배하고 섬긴다고 하면서 정작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철저히 거부하고 있습니다. 먼저 자신들의 기도 제목을 정해 놓고 함께 기도하는 일은 익숙하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모세는 출애굽한 백성들을 향해서 ‘오 이스라엘아, 들으라’는 설교를 자주했습니다(신6:4, 9:1, 20:3). 여호수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수3:9). 모든 대언자들의 한결같은 가르침은 ‘들으라, 귀를 기울이라’였습니다. 욥기 37:2에서 엘리후는 욥과 세 친구들을 향해 [그분의 요란한 음성 곧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주의 깊게 들으라.](욥37:2)고 외쳤습니다. 문제는 말을 잘 못해서가 아니라 잘 듣지 못해서 생깁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의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 능력있는 기도는 믿음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말씀하신 것을 들은 사람들은 그 말씀을 믿고 구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습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마21:22). 말씀을 듣지 않으면 믿음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결코 믿음의 기도를 드릴 수 없습니다. 기도하면서 ‘믿습니다!’를 아무리 힘주어 강조해도 그것이 자기 암시이지 믿음이 아닙니다.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에 근거해서 하는 기도가 ‘믿음의 기도’인 것입니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울부짖을 때 응답하지 않으셨던 적이 여러 차례 있습니다. 이유는 그들이 말을 못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가 말하노라. 너희가 이 모든 일을 행하였으므로 이제 내가 너희에게 일찍부터 일어나 말하고 말하였어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고 내가 너희를 불렀어도 너희가 대답하지 아니하였도다.](렘7:13). 그래서 주님은 이들을 심판하셨습니다. 느헤미야는 주의 심판을 받아 70년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동족 유대인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다시 주의 율법으로 데려오려고 그들에게 증거하셨으나 그들이 교만히 행하여 (사람이 행하면 그 가운데서 살게 되는) 주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주의 규례를 범하여 범죄하고 어깨를 뒤로 빼며 목을 굳게 하고 들으려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러나 주께서 여러 해 동안 그들을 참으시고 또 대언자들을 통해 주의 영으로 그들에게 증거하시되 그들이 들으려 하지 아니하므로 여러 땅의 백성들의 손에 그들을 넘겨주시되] (느9:29~30). 유다의 죄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아니한 것이란 점을 분명히 말한 것입니다.

성전에서 희생제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심판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희생제를 꼬박꼬박 드렸습니다. 그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아서 심판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종교 의식과 행위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그들의 범죄와 타락에 대해서 책망하셨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그 책망과 경고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믿는 성도라 할지라도 누구나 죄를 짓습니다. 교회를 꾸준히 다니지만 죄를 짓습니다. 범죄하지 않는 인간은 없습니다. 이는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후에 봉헌 헌물을 드릴 때 주님 앞에 드린 기도에 나와 있습니다. [(범죄하지 않는 사람이 없사오니)...](왕상8:46, 대하6:36), 전도서에도 [이는 선을 행하고 범죄하지 않는 의인이 땅 위에 하나도 없기 때문이로다.](전7:20)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범죄했을 때, 더욱 귀를 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면 주님은 반드시 오래 참으시며, 설교자를 통해 말씀해 주십니다. 그 때 듣고 돌이키면 다윗처럼 회복됩니다. 그러나 사울처럼 변명하고 회개를 거부하면 멸망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범한 죄악에 대해 분노하시는 것보다 우리가 말씀을 듣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않는데 더욱 분노하십니다.

심판의 직접적인 원인은 지은 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는 죄에 있으며, 주님의 책망과 권고와 조언을 거부하는데 있습니다. ‘기도합시다’란 말은 주님의 말씀을 들읍시다! 란 말과 동의어입니다. 말씀을 듣지 않으면 그 기도는 기도가 아닙니다. 주님은 도무지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는 백성들을 향해 [오 내 백성이여, 들으라,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오 이스라엘이여, 너희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하면 /얼마나 좋을까/.](시81:8) 탄식하셨습니다. 만약 말씀을 듣지 않으면 저와 여러분이 기도를 한다고 해도 그 기도는 주님께 가증한 기도가 되고 말 것입니다. [사람이 귀를 돌이켜 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 기도마저도 가증한 것이 되느니라.](잠28:9). 이는 듣는 것이 기도의 대 전제가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주는 가장 분명한 증거의 말씀입니다.

듣는 다는 것은 매우 수동적인 말입니다. 그러나 듣는 다는 말은 가장 적극적인 순종을 포함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내 말 잘 들어!’란 말은 내 말에 순종하라는 의미입니다. 말을 잘 안 듣는다는 말은 좀처럼 순종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귀로 듣는 다는 것은 온 몸과 마음이 다 순종하는 것입니다.

유다 민족이 멸망하기 직전에 활동했던 대언자 예레미야는 계속해서 ‘너희는 들으라, 너희 모든 유다 사람들아 너희는 들으라’고 외쳤습니다(렘6:18,19, 7:2, 17:20, 19:3, 21:11, 28:7,15, 44:24,26, 49:20,50:45). 들으면 들은 말씀을 기초로 기도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을 기초로 하는 올바른 기도이며, 가장 확실한 응답을 얻는 보증 수표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마리아입니다. 누가복음 1:38에,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을 보소서. 당신의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리이다, 하매 천사가 그녀를 떠나가니라.](눅1:38).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주의 말씀을 들었고, 들은 말씀을 기초로 기도했습니다. 이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면서 믿었으니 이것은, 네 씨가 이와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그로 하여금 많은 민족들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롬4:18).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었고, 그 말씀을 믿었고, 그 말씀대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후로 이스라엘 민족은 어려울 때마다 이 말씀을 기초로 자신들을 구원해 줄 것을 기도했습니다. 이삭, 야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문에 관용구처럼 들어가는 말이 된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이 어떤 기도보다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 준 사람은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주]께서 번제 헌물과 희생물을 [주]의 목소리에 순종하는 것보다 더 좋아하시겠나이까? 보소서, 순종이 희생 헌물보다 낫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 그는 어릴 때 주님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평생동안 주의 음성을 들은 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첫 번째 기도 제목은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나이다.](삼상3:10) 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들을 수 있는 귀를 얻고, 깨닫는 마음을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주의 말씀이라면 그 말씀이 무엇이든지 그대로 순종하겠다는 마음이 있을 때 주님은 자신의 뜻을 계시해 주십니다. 순종할 의사가 없는 사람에게는 결코 말씀이 들리지 않는 법입니다.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다른 것에 귀를 기울이게 마련입니다. 거짓 대언자, 거짓 제사장, 거짓 교사들은 듣기에 좋은 것만 말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이스라엘에게 표적을 주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귀를 기울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광야에서 멸망했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중보로 극적인 용서를 받았지만 광야에서 죽어야 했습니다. [내 영광과 또 이집트와 광야에서 내가 행한 내 기적들을 보고도 이제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한 이 모든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격노하게 한 사람들 중 아무도 그 땅을 보지 못하리라. ](민14:22-23). 귀를 기울이지 않을 때 주님은 일곱 배나 더 벌을 주십니다(레26:18). 귀를 기울이지 않을 때 지은 죄에 대한 재앙은 일곱 배가 내려집니다(레26:21). 귀를 기울이지 않을 때 징계 역시 일곱 배가 내려집니다(레26:27-28). 이미 말씀드린 대로 성도가 죄를 짓는 것은 잘못한 일이지만 그 죄는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은 이후에 고백하거나 회개하거나 죄를 버리고 돌이키는 대신 주의 음성을 듣지 않을 때 그는 일곱 배의 벌, 일곱 배의 징계, 일곱 배의 재앙이 더해지는 것입니다. 회개의 기도는 주의 음성에 순종하는 기도입니다. 죄인이 주의 음성을 듣고 마음 문을 열면 그는 구원을 받게 됩니다. 성도가 주의 음성을 듣고 귀를 기울이면 주님과 교제가 회복됩니다(계3:20).

저는 오늘 성경을 통해 주의 음성을 듣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모든 기도의 초석임을 분명히 증거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기고, 믿음의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경고와 책망의 음성을 들을 때 올바른 회개의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조언과 권고의 음성을 들을 때 감사의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주의 음성을 들었을 때 욥은 회개하고 위대한 기도를 했습니다. 주의 음성을 들었던 사도 요한은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주의 음성을 들었던 바울은 ‘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시나이까?’(행9:6) 하며 기도했습니다. 주의 음성을 들었던 마리아는 ‘주의 여종을 보소서, 당신의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리이다’고 순종의 기도를 했습니다. 주의 음성을 들었던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기도했습니다. 선교사로 결단했던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이사야처럼 주의 음성을 듣고 헌신의 결단을 했습니다. 추수 밭이 희게되었다는 주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만이 ‘추수할 일꾼을 보내 주소서’ 기도하는 법입니다. 물론 주의 음성을 듣고 모세처럼, 요나처럼 변명하거나 도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의 음성을 들었지만 믿지 못해 주저했던 기드온은 시험을 했고, 주의 음성을 들었지만 믿지 못했던 사가랴는 요한이 태어날 때까지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기도에 앞서 듣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 준 생생한 성경적인 예들입니다. 이제 모두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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