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비유(18)
잃어버린 아들
말씀: 눅15:11-32
동영상. http://youtu.be/Hx9vAuHuejc
음성파일.
http://www.mediafire.com/download/zjtoop2qzbi82gx/parable(18)-lost_son.mp3
내용 요약.
1. 탕자의 비유는 혼의 구원에 대한 것이 아니라 타락에서의 회복에 관한 말씀이다.
2. 구원은 아들이 아닌 자, 종이 은혜로 아들로 입양되는 것이지 본래 아들이 타락해서 다시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3. 크리스천은 미리 상속을 요구할 수 없다.
4. 크리스천은 주님이 오시기 전 아버지께 상속을 받아 멀리 떠날 수 없다.
5. 율법에 따르면 진노와 심판의 대상인 죄인들에 대한 주님의 긍휼, 사랑이 복음의 핵심이다.
6. 주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딤전1:15).
7. 주님은 잃어버린 것을 찾고 또 찾으시고 기뻐하신다(눅15:6,9).
8. 탕자는 스스로 아버지를 떠났고, 아버지는 아들을 찾으러 가지 않았다(양과 드라크마 비유의 차이).
9.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구약과 달리 신약에서는 주로 둘째가 타락하고 죄를 지었다(마21:28-30, 눅15:11-32)
10. 작은 아들은 아버지에게 상속을 요구했고 아버지는 "그들에게" 주었다.
11. 먼 나라로 가서... 성경에서 먼 나라는 바빌론이다(왕하20:14, 사13:5, 39:3, 46:11).
12. 작은 아들은 재산을 다 탕진했고 비로소 궁핍했다(파산, 신용 불량자)
13. "그가 가서 그 나라의 국민 중 하나에게 연합하니..."(15). 타락하면 세상과 연합한다.
14. "...아무도 그에게 주지 아니하므로"(16).
15. "그제야 그가 정신을 차리고..."(17). 고난을 통해 회개를 이룸.
16. 어리석음으로 받느 고난(시107:17). 고난의 유익에 대해 정리하라(시119:71)
17. "...그런데 나는 굶어 죽는구나."(17). 우리는 독립적 존재가 아니라 그리스도 의존적 존재이다.
18. "아버지, 내가 하늘을 대적하여 죄를 짓고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사오니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릴 자격이 없나이다."(18,19).
19. 탕자의 고백에 주의하라. "하늘을 대적하여,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다. "하나님 앞에, 아버지를 대적하여" 죄를 지은 것이 아니다. -성경과 반대로 이해하지 않도록 하라.
20. 다윗- Against thee, thee only(주를 대적하여, 오직 주를 대적하여 죄를 짓고-시51:4
21. 요셉-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하나님을 대적하여) 죄를 지으리이까? 하니라."(창39:9).
22. 많은 이들이 "나는 죄를 지었도다"(I have sinned)라고 하지만 회개가 아니다.
23. "나를 죄를 지었노라."- 파라오(출9:27, 10:16), 발람(민22:34), 아간(수7:20), 사울 왕(삼상15:24,30,26:21), 가룟 유다(마27:4). 이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죄를 지은 것에 대해 무지하고 인정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았다.
24. 회개란 자신을 시인하고 돌이키는 것이다. 이사야(사6:5), 욥(욥42:6), 베드로(눅5:8), 바울(롬7:18)
25. 돌아오는 아들을 본 아버지는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20).
26. 품꾼이 아니라 아들로 지위를 회복해 주고 잔치를 벌였다(22-24).
27. 회개한 아들은 아버지에게 기쁨이지만 형에게는 분노를 자아냈다(28-30).
28. 아버지와 형의 차이- 영적인 관점과 육신적 관점의 확연한 차이를 보여 준다.
a. 아버지의 관심은 잃어버린 돈이 아니라 무사히 돌아온 아들이었다.
b. 형의 관점은 돌아온 동생이 아니라 잃어버린 돈이었다.
c.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보았고 형은 돌아오기 전(떠난) 동생을 보았다.
d. 형은 동생이 아니라 동생과 돈을 묶어서 보았다.
e. 세상은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재물을 묶어서 그 사람의 가치를 판단한다.
f. 주님은 그 사람의 소유가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 그 사람 자체를 보신다.
.... 이 부분을 듣고 좀 더 자세히 정리하라.
29. 첫째 아들은 동생을 '나의 형제, 나의 동생'이라고 부르지 않고 '아버지의 아들'이라고만 불렀다.
30. 돌아온 죄인을 볼 때 분노하는 것이 마땅한가? 기뻐하는 것이 마땅한가?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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