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묵상과 경건 중에서
그분께서 어떠하신 것같이(요일4:17)



우리는 성경을 공부할 때나 읽을 때, 묵상할 때 항상 주의해야 하는 단어로 단연 첫 번째로 꼽는 말씀이 as(-처럼, 같이, 대로, 듯이)입니다. 주님은 성경을 기록하실 때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말씀(as)을 유난히 많이 사용하셨습니다. 오늘은 요한일서를 통해서 이 말씀(word)에 대해 같이 상고해 보고, 묵상의 시간을 같겠습니다. 

요한일서에는 열번의 as가 나옵니다. 그 중 여덟 번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성에 관련된 말씀입니다. 같이 찾아보겠습니다. 요한일서 1:7, 2:6, 2:27, 3:2, 3:3, 3:7, 3:23, 4:17입니다. "주님께서 어떠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다는 말씀"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영적 지위와 위치, 상태, 크리스천의 본질적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을 살 때 모든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표준으로, 본으로, 모범으로 삼을 근거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탄생하셨습니다. 여러분과 저 역시 성령으로 출생했습니다(요1:13).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셨듯이, 우리 역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인치심을 받으신 것처럼(눅3:32), 우리 역시 성령의 인침을 받았습니다(엡1:13).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것처럼, 우리 역시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습니다(롬8:14).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기름을 받으신 것처럼 우리 역시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고후1:21).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능하신 일들을 행하신 것처럼 우리 역시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도록 명령받았습니다(행1:18). 이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떠하신 것같이 우리 역시 세상에서 그러합니다. {이로써 우리의 사랑이 완전하게 됨은 우리로 하여금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이는 그분께서 어떠하신 것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기 때문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에 의해서 자신을 죄를 위한 희생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자신을 드리셨습니다(히9:14). 우리도 역시 하나님의 자녀요, 종으로서 하나님께 기쁨의 제물을 드리기 위해 자신을 기꺼이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롬12:2, 롬15;16).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신 것처럼 우리 역시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날 것입니다(롬8:11).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관계는 나무의 뿌리와 가지의 관계요, 머리와 몸의 관계처럼 연합되어 있습니다.  이 시간 주님께서 주님의 어떠하신 것 같이 우리 역시 그러하다는 사실을 저희 마음 속에 깊이 새겨 주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하나님께서 유다의 죄는 철필과 금강석 촉으로 기록하셨으나, 주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 판에 주의 영으로 기록해 주시기를 빕니다.

첫째,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요일1:7)

구원받은 성도로서 우리의 주 관심은 성도로서의 실천적인 면입니다. 영적 생활의 실체, 삶의 실천적인 성화와 관련된 모든 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에 대한 믿음과 이해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이 어떠하신 것과 우리도 세상에서 그렇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저 하늘에서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주님은 빛 가운데 계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역시 빛의 자녀요, 세상의 빛들입니다. 요한일서 1:7, {만일 그분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 걸으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요일1:7). 우리는 마땅히 빛 가운데 걸어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어둠을 밝혀 주며, 말씀은 우리의 등불입니다. 성령과 말씀을 따르는 것은 우리가 빛 가운데 계신 주님과 같이 빛 가운데서 행하기 위함입니다. 이사야 8:20, {/그들이/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를지니 만일 그들이 이 말씀에 따라 말하지 아니하면 그 까닭은 그들 안에 빛이 없기 때문이니라.}  불신과 불순종, 범죄로 주님과 교제가 단절된 이스라엘을 향해 이사야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오 야곱의 집이여, 너희는 오라. 우리가 [주]의 빛 안에서 걷자.}(사2:5). 이사야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주]의 영광이 일어나 네 위에 임하였음이라.} 이는 어느 세대를 무론 하고 성도의 첫 번째 본분이 우리 몸을 통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것임을 말해 줍니다. 성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없다면 세상은 그 무엇으로도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성도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줄기 빛이 세상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집에서 찬란하게 비취일 때,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다 말할 수는 없어도, 모든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비춰줄 수는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인답게 산다면 그들은 우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에베소서 5:8, {이는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기 때문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걸으라.}(엡5:8).

둘째, 그분께서 걸으신 것 같이(요일2:6).

다음으로 우리의 삶의 지표요 기준은 '주님이 걸으신 것 같이'입니다. 요한일서 2:6, {그분 안에 거한다고 말하는 자는 그분께서 걸으신 것같이 자기도 그렇게 걸어야 할지니라.} 우리는 주님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삶이어야 합니다. 주님은 분명히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기록된 말씀대로 걸으셨습니다. 주님은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신 말씀을 모두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주님의 삶은 '믿음과 순종'으로 요약됩니다. 자기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광을 구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구하지 않고 아버지의 영광을 구했습니다. 이는 우리 역시 '그분께서 걸으신 것같이 그렇게 걸어야만 합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 역시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혼의 안식은 주님의 십자가, 주님의 멍에를 멜 때 찾아옵니다. 마태복음 12:28,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혼이 안식을 찾으리니}(마12:28). 몸은 잠을 잠으로써, 휴식을 취함으로써 안식을 얻을 수 있지만 혼은 그렇게 해서 안식을 얻지 못합니다. 혼의 안식은 주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일을 함으로써 얻어집니다.

누가복음 9:23, [¶ 또 예수님께서 그들 모두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 사람은 사명이 있을 때 행복합니다. 아담으로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산 사람 외에 누구도 행복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멍에를 메지 않을 때 결코 행복을 알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직장인이 직장에서 할 일이 없고, 학생이 학교에서 해야 할 공부가 없고, 가정 주부가 집에서 할 일이 없고, 운동 선수가 뛰어야 할 그라운드가 없고, 군인이 싸워야 할 적이 없다면 어떻게 살아 갈 수 있겠습니까? 바울 사도는 자신의 기쁨에 대해 간증하기를,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 대한 나의 기쁨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길은 주님이 걸었던 것같이 걷는데 있습니다.

셋째, 기름부음이 가르친 대로(요일2:27)

우리는 모두 제사장입니다. 우리에게는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었듯이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있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21, {이제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게 세우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분은 하나님이시니} 그렇지 않다면 아무도 영적 제사장 직분을 수행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너희에게는 그분에게서 받은 기름부음이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 기름부음이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며 또 그것이 진리요 거짓이 아닌즉 그 기름부음이 너희를 가르친 대로 너희가 그분 안에 거하여야 하리라.}(요일2:27). 이 말씀은 기름부음이 있기 때문에 성경을 배울 필요도 없고, 성경 교사도 필요없고 오직 하늘로부터 직통 계시를 받아서 다 깨우칠 수 있다는 그런 이단 교리를 지지하는 구절이 아닙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이단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이단들로부터 보호 해 주는 것이 바로 우리 안에 부어진 성령의 기름부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고백한 사람들에게 거하는 이 기름부음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우리를 떠나지 않도록 지키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게 하는 모든 악한 가르침들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우리 안에 부어진 기름부음은 전천년 세대주의, 독립 침례 교회, 캘빈주의 같은 신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부어진 성령께서 가장 먼저 확실하게 가르치시는 한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자시며, 하나님이란 사실입니다. 이 가르침을 받아 예수님을 주로 믿고, 시인하고 고백한 사람들은 예수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주시는 또 하나의 이유는 영적 제사장으로서의 사역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베드로전서 2:5, {너희도 살아 있는 돌들로서 영적인 집으로 건축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받으실 영적 희생물을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도다.} 제사장으로서 우리는 우리 몸을 영적 희생물로 드립니다(롬12:1). 제사장으로서 우리는 이웃에게 선을 행합니다(히13:16,빌4:18). 제사장의 직무를 게을리 할 때 영적 타락과 배교는 가속화됩니다.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여야 하리니 이는 제사장이 만군의 [주]의 사자(使者)이기 때문이니라.}(말2:7).

넷째, 그분과 같게 될 줄 아노니(요일 3:2)

이것은 미래의 일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우리는 모든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되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분과 같게 될 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을 계신 그대로 볼 것임이라.}(요일3:2). 우리의 모델이 누구입니까? 어떤 모습이 되고 싶습니까? 인류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공통적인 꿈과 소망이 있다면 신(神)의 모습이나 신(神)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으로 생각하면서도 여기에 도달하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시도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모든 종교의 본질이요, 핵심입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이상적인 모델을 만들어 제시했는데 각기 자기 종교의 믿는 신(神)들처럼 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정말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들도 죽는 다는 사실입니다. 시편 82:6,7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라. 너희는 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자녀들이라, 하였으나 너희는 사람들같이 죽을 것이요, 통치자들 중의 하나같이 넘어지리로다.}(시82:6,7). 불교도들은 부처가 되고 싶어하지만 부처는 죽었습니다. 유교도들은 공자와 맹자처럼 되고 싶어하지만 그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노자와 장자처럼 자연 합일의 신적 경지에 도달하고 싶어해도 그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신들로 불리는 것들은 모두 죽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은 죽지 않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처럼 변합니다. 빌립보서 3:21,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자기에게 복종시킬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사 우리의 천한 몸을 변화시켜 자신의 영광스런 몸과 같게 하시리라.}(빌3:21). 이것이 바로 인류가 오랫동안 꿈꾸어 오던 영생 불사의 영적인 몸입니다. 우리는 영광스런 몸,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같이 됩니다. 늙지도 병들지도 않고, 피곤하지도 지치지도 않습니다.

다섯째, 그분께서 순결하신 것 같이(요일3:3)

성도의 일상은 순결, 청빈, 정직, 거룩 등이어야 합니다. 주님은 순결하십니다. 주의 말씀은 순수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새롭게 하심, 피로 씻음, 말씀의 물로 자신을 날마다 씻음으로서 주님께서 순결하신 것 같이 자기를 순결하게 합니다. 요한일서 3:3, {그분 안에서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분께서 순결하신 것같이 자기를 순결하게 하느니라.}(요일3:3). 맑은 정신, 깨끗한 혼은 단순히 정신 수양이나 독서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우리를 더럽히는 온갖 그림들이 T.V, 신문, 영화, 인터넷, 잡지 등을 통해 우리 안으로 들어오고, 비속하고 허황된 말들이 넘쳐나는 가운데 자신을 정결하게 지키는 것은 계속해서 자신을 씻어내는 일 외에 방법이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7:1, {그러므로 지극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 약속들을 가졌은즉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완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모든 더러움에서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의 정욕을 자극합니다. 탐심을 부추기며, 헛된 것들에 눈을 돌리게 합니다. 몸의 더러움을 씻는데 물이 필요한 것처럼 혼의 더러움을 씻는데는 말씀의 물이 필요합니다. 영의 더러움을 씻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늘 지속적으로 자신을 살피고, 특별히 선하고 순수한 양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가 거룩함으로 나아가게 하는 가장 강력한 이유가 됩니다. 주님의 순결함이 우리가 순결해야 할 이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소망하려면 그분께서 거룩하심같이 우리도 거룩해야 할 것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온전하신 것 같이 우리도 온전해야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에 의해 그분의 은혜로 우리가 순결하여질 수 있으니 우리는 끊임없는 기도로 거룩함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순수하지 못한 욕망과 정욕을 기쁘게 하도록 허락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아니라 위선자들의 희망입니다.

여섯째, 그분께서 의로우신 것 같이(요일3:7)

예수 그리스도는 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의이시며, 믿는 자들에게 자신의 의(義)를 전가해 주신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성품 역시 의로와야 할 것입니다. 요한일서 3:7, {어린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분께서 의로우신 것같이 의로우며} 빛과 어둠이 함께 할 수 없듯이 의와 불의는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마땅히 의를 추구하고 의를 사랑하며, 악을 미워해야 합니다. 죄를 증오하는 마음,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이 의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부숴 버리기 위해 오신 것을 섬기거나 만족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미워하신고, 저주하신 것을 옹호하거나 사랑하는 것은 의로운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기술이나 기민함이나 기교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본성, 새로운 성품의 문제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나기 이전처럼 그리고 거듭나지 않은 다른 사람처럼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의를 행하는 것을 보고 그가 그리스도에게서 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2:29, {그분께서 의로우신 줄을 너희가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분에게서 난 줄을 아느니라.} 꽃이 피고, 잎이 푸르고, 열매가 맺히는 것이 식물이 살아있는 증거이듯이 올곧은 양심과 그에 따른 의로운 행위는 그가 구원받았다는 충분한 증거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면서 사탄처럼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진흙 속에서 뒹구는 것이 돼지의 속성이지만 어린 양은 그렇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설령 양이 뒹굴었다 해도 그것은 양들의 본성이 아니기 때문에 큰 불편과 어려움을 느끼며 나오려고 애를 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죄를 지으면서 그것을 기뻐하고 즐기지만 거듭난 신자들은 죄를 짓는다 할지라도 결코 행복을 느낄 수 없습니다. 때로 거짓 교사들이 현실론을 들어 실제로 참신자나 거짓 신자나 구별이 없다고 가르치거나 말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짓는 것을 합리화시켜 주고, 죄의식을 없애 주는 일을 합니다. 그것은 기만입니다. 구원받은 거듭난 신자는 마땅히 주님이 의로우신 것처럼 의를 행하는 것을 기뻐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속지 마십시오. {어린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분께서 의로우신 것같이 의로우며}

일곱째, 그분께서 명령을 주신대로(요일3:23)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이 수없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 단연 압권이 두 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23 {그분의 명령은 이것이니 곧 우리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을 주신 대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라.} 하나님의 일이 많고 많지만 가장 시급하고 큰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요6:29). 예수를 믿는 것은 이미 이 세상의 어떤 경건하고 거룩해 보이는 종교인들보다 하나님 앞에서 더 큰 일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는 일, 하나님이 지정해 주신 일,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일을 하는 것이 가치있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죄인이 예수를 믿는 일은 하나님께서 가장 높은 점수를 주시는 일이요, 높이 평가하는 일입니다. 반면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일, 하나님께서 아무런 가치도 두시지 않는 일에 평생을 바친 후에 하나님 앞에 자기 의를 주장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일일 뿐만 아니라 무(無)로 돌아갈 헛된 것입니다. 예수를 믿은 다음에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요한복음 13:34,45 {새 명령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는 가장 강력하고도 효과적인 전도 방법이며,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란 사실을 알리는 성경적인 홍보 수단입니다. 성경을 들고 다니고, 교회를 다닌다고 사람들이 우리를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찬양을 한다고 '아, 저 친구야 말로 정말 진정한 크리스찬이구나!'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신학 서적을 매일 쳐다 본다고 참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인 줄로, 정말 믿을만한 크리스찬으로 인정받는 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을 통해 사람들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진리를 배제한 사랑이 너무나 넘쳐나 그것에 대해 경고하고, 주의를 기울이다가 어느덧 자신은 감각이 무뎌지고 사랑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웃 사랑은 신약 성경에만 있는 교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옛부터 있었던 계명입니다. {너는 원수를 갚지 말고 네 백성의 자녀들에게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주]니라.}(레19:18). 구원받은 성도가 서로 사랑하라는 이 명령을 어긴 채 다른 만 가지 일에 신실하다 해도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영적 은사가 많다, 능력이 많다, 재능이 많다, 구제를 잘한다, 방언을 한다, 예언을 할 줄 안다, 책을 많이 읽어 지식이 특출나다, 뭐가 어떻고 어떻다 해도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킨 후에라야 그 가치를 발휘합니다. 고린도전서 13:1-3, {내가 사람들의 언어와 천사들의 언어로 말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징과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대언하는 은사가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알며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모든 재산을 바쳐 가난한 자를 먹이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13:1-3). 로마서 13:8,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이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성취하였음이니}

여덟째, 그분께서 어떠하신 것 같이(요일4:17)

모든 기준은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도덕적 기준, 영적 기준을 한번도 낮추어 보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요한일서 4:17 {이로써 우리의 사랑이 완전하게 됨은 우리로 하여금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이는 그분께서 어떠하신 것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기 때문이니라.} 주님의 어떠하심이 곧 바로 우리의 어떠함입니다. 주님의 거룩하심은 우리의 거룩함입니다. 주님의 지혜는 우리의 지혜입니다. 주님의 의는 우리의 의(義)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이 됩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한 시라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점점 더 깊이 주님의 어떠하심을 알아 나갑니다.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기다림으로써 주님의 어떠하심을 알아 갑니다. 말씀을 연구함으로써 주님의 어떠하심을 알아갑니다. 믿음으로 순종할 때 주님의 어떠하심을 체험적으로 알아 갑니다. 기도와 말씀의 연구, 믿음의 순종없이 달리 주님의 어떠하심을 아는 것은 피상적인 지식이요, 남들에게 주워 들은 간접적인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 요한일서에 있는 as(같이, 처럼, 듯이)란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이 땅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웠습니다. 이 시간 이 말씀을 기초로 함께 묵상하는 시간을 갖기 바랍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목자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경에 북(악기)이 나오지 않는 이유  (0) 2005.01.14
성령을 예표하는 여자  (1) 2005.01.14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0) 2005.01.14
이곳 미국은!  (0) 2005.01.14
성경의 특성 간단히 요약  (0) 2005.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