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역대기상 1-29장
요절: 역대기상 28:20
역대기는 열왕기와 내용이 거의 비슷합니다. 역대기의 저자는 누구인지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유대의 전승에 따르면 에스라일 것이라고 합니다. 히브리 성경으로는 맨 마지막에 위치합니다. 열왕기와 비교했을 때 열왕기는 포로기 전에 씌여진 것이고, 역대기는 포로기 이후에 쓰여진 것입니다(대상6:15참조). 열왕기는 왕들을 통해 예언자적 관점에서 역사를 본 것이라면 역대기는 제사장적인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그래서 역대기는 성전의 제사 의식과 예배에 대해 유난히 강조합니다.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준비했던 다윗 왕과 건축자였던 솔로몬에서 출발해서 성전 예배를 지속했던 유다 왕조와 철저히 성전 예배를 거부했던 북왕국 이스라엘 왕조의 몰락도 잘 대비됩니다. 열왕기와 역대기는 사복음서처럼 같은 사건과 같은 인물에 대한 기사라 할지라도 서로 서로 보완해 주고 있습니다. 역대기상의 전체 개요를 살펴 보면 1:1-9:44은 족보 이야기입니다. 10:1-14은 사울의 종말, 11:1-21:30은 다윗 왕국, 22:1-29:30은 성전 건축을 위해 준비하는 다윗 왕과 후계자 솔로몬의 왕위 계승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장입니다. 1장은 아담에서 에돔의 족장들에게 이르는 족보입니다. 이 족보를 기록한 이유는 다가올 메시야의 계보를 보여 줌과 동시에 구속 사역이 하나님의 택하심과 경륜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기 위한 것입니다. 아담-셈-아브라함-이삭-야곱으로 이어지는 택함받은 자손들과 그 외의 육신의 자손들을 함께 보여 주고 있습니다. 2장입니다. 2:1-4:23은 유다의 족보입니다. 야곱은 열 두 아들을 낳았는데 오실 메시야의 계보는 유다로 이어졌습니다. 창세기 49:8-12에서 야곱은 유다를 통해 메시야가 올 것임을 예언했습니다. 3장입니다. 3:1-24은 다윗의 족보입니다. 4:1-23은 다시 유다의 족보를 좀더 상세하게 기술합니다. 4:24-43은 시므온의 아들들, 5:1-10은 르우벤의 아들들, 5:11-26은 갓의 아들들과 므낫세 지파의 반에 대해 기술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이렇게 계속적인 족보를 읽어 내려가면 자칫 지겹고 의미없는 본문을 읽는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족보의 기록은 성경의 사실성과 역사성을 높여 줄뿐만 아니라 장차 우리의 이름이 저 하늘에 이런 식으로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는 점을 엿보게 해 줍니다. 성도들은 생명의 책에 이런 식으로 우리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족보를 기술한다면 아브라함에서 노아까지를 직계로 하고, 노아의 세 아들들 가운데 하나를 아버지로 두고 거기에서 갈라져 나왔습니다. 영적으로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를 둔 매우 단선적인 계보입니다. 6:1-81절은 레위의 족보입니다. 1-15, 49-53절은 대제사장의 계보, 16-30절은 다윗의 레위의 아들들, 31-48절은 악장들로 성전 성가대원들입니다. 54-81절은 지방 도시들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7:1-40절은 잇사갈, 므낫세의 반 지파, 에프라임, 아셀의 계보, 8:1-28절은 베냐민 지파의 자손들, 8:29-40절은 사울의 집에 대한 족보입니다. 9:1-44절은 바빌론 포로에서 귀환한 후의 각 사람들의 족보와 맡은 직분입니다.
10장입니다. 역대기 기자는 사울의 패배와 죽음을 시작으로 다윗 왕조의 출현을 알립니다. 사울이 왜 죽었는가?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13-14절, [이같이 사울이 죽은 것은 [주]께 범한 범죄로 인함이라. 그가 [주]의 말씀을 거역하여 지키지 아니하고 또 부리는 영을 지닌 자에게 조언을 구하려고 그 영에게 묻고 [주]께 여쭙지 아니하였으므로 그분께서 그를 죽이시고 왕국을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주셨더라.](13-14). 사울의 죄는 크게 세 번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제사장직을 더럽힌 죄입니다. 사무엘상 13: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어리석게 행하였도다. 왕이 [주] 왕의 하나님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이제 [주]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왕국을 영원히 세우려 하셨을 터이나] 그는 사무엘의 할 일을 급하다는 이유로 자기 마음대로 행함으로 성경에 기록된 희생제에 관련된 규례를 모두 무너뜨려 버렸습니다. 급하다는 이유로 제사장 대신 희생제를 드릴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편의대로, 생각대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죄를 용납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위기의 때에 참된 믿음과 거짓된 믿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법입니다. 두 번째 불순종은 자신의 탐욕으로 인해 주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사무엘상 15: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마술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불법과 우상 숭배와 같기 때문이니이다. 왕이 [주]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그분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더라.](삼상15:23). 하나님께서 아말렉 자손과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남김없이 진멸하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보기에 나쁜 것들만 진멸하고 보기에 좋은 것들을 그대로 남겨 두었습니다. 그는 백성을 두려워하여 주의 음성에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백성들을 주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이끌어야 할 왕이 반대로 백성들에게 끌려 다녔습니다.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백성이 두렵고, 원수가 두렵고, 모든 것이 두렵습니다. 세 번째, 사울의 죄는 이전보다 더욱 컸습니다. 사무엘이 죽고 블레셋이 쳐들어오자 그는 엔돌에 있는 부리는 영을 지닌 여자에게로 달려가 자신의 운명과 전쟁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이에 사울이 자기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부리는 영을 지닌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녀에게로 가서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부리는 영을 지닌 여인이 있나이다, 하니라.](삼상28:7). 사울은 처음에 주님께 물었지만 주님께서 답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할 수 없이 신접자에게 달려 갔는데, 이는 마지막 시험이었습니다. 사무엘상 14:37절과 역대기상 10:13절은 모순처럼 보이지만 전혀 모순 구절이 아닙니다. 사무엘14:37에서 사울은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무 것으로도 대답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사울이 [주]께 여쭈었으나 [주]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대언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니라.](삼상28:6). 반면 역대기에는 사울이 주님께 묻지 않고 부리는 영을 지닌 여자에게 조언을 구하러 갔다고 말합니다. 사울은 주님께 묻는 것이 매우 형식적이고, 위선적이어서 주님께서 그의 물음에 대답해 주시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사울의 질문(기도)를 기도로 인정해 주시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예입니다. 그는 전에 이미 하나님께 물었지만 응답받지 못한 적이 있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조언을 구하되,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쫓아 내려가리이까? 주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주시겠나이까? 하였으나 그분께서 그 날에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삼상14:37). 그 때는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그는 백성들의 우두머리를 모아 놓고, [사울이 이르되, 너희 백성의 모든 우두머리들아, 여기로 가까이 오라. 이 날 이 죄가 어디에 있나 알아보자.](삼상14:38).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과정이 없었습니다. 그는 주님이 응답하시지 않는 이유를 전혀 생각해 보지도, 찾지도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이 아니어도 물을 수 있는 비장의 카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악령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마음 가운데 이미 다른 물을 곳을 정해 두고, 주님께 구하는 것은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역대기상에서 사무엘이 주께 묻지 않고, 부리는 영에게 조언을 구하러 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주님의 응답 외에 다른 해결책, 다른 조언, 다른 방법을 이미 마련해 두고 구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을 시험하는 것이며, 죄를 더하는 악이란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11장입니다. 역대기는 사무엘하에 기록된 다윗의 왕위 등극에 관한 과정들을 거의 대부분 생략하고 등극 사실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기름부음 받은 후 전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의 힘든 과정이 사무엘하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1-9절은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왕이된 다윗입니다.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의 왕으로 7년을 지냈고, 이스라엘이 모두 다윗에게 복종함으로써 예루살렘을 다윗의 도시로 건축하여 수도로 삼았습니다. 10-47절은 다윗의 수하에 있던 위대한 용사들의 목록입니다. 이미 사무엘하 23:8-39에서 살펴 보았습니다. 다윗을 보좌하는 용사들은 다윗을 목숨걸고 따랐고, 충성했는데 그 중에 세 명의 용사들의 용맹성과 충성심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17-19). 그들은 다윗의 말 한마디도 땅에 떨어뜨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의 모델을 보게 됩니다. 디모데후서 2:3-4, [그러므로 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서 고난을 견디어 내라. 전쟁을 치르는 자는 아무도 이 /세상/ 삶의 일에 얽매이지 아니하나니 이것은 자기를 군사로 택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2:3-4).
12장입니다. 다윗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함께 했던 용사들의 이야기입니다. 다윗이 학대받았을 때 그의 친구인 듯하고 그렇게 행동했던 사람들로 인해 다윗은 왕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어려움이나 위험이 없다면 죄인들이 구세주 앞에 나아오지 못하며, 믿는 자들이 십자가의 길을 가지 못합니다. 아마새의 말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충성을 어떻게 입증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18). [그때에 그 영(靈)이 대장들의 우두머리 아마새에게 임하므로 그가 이르되, 다윗이여, 우리가 당신에게 속하며 이새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의 편이니 원하건대 평강이 함께하소서. 당신에게도 평강이 있고 당신을 돕는 자들에게도 평강이 있을지니 이는 당신의 하나님께서 당신을 도우시기 때문이니이다, 하매 다윗이 그들을 맞이하여 무리의 대장들로 삼았더라](18). 성령이 임한 성도들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에수 그리스도에게 속하며, 그분의 편이라고 고백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통해 유업과 상급을 기대하고, 그분 앞에 머리를 숙임으로써 주님이 우리를 받아들이시고, 사용하실 것입니다. 각 지파별로 다윗을 도왔는데 그 중에 잇사갈 자손들과 스불론 자손들은 특히 성도들에게 깊은 교훈을 줍니다. [잇사갈 자손 중에서 때를 깨닫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바를 아는 우두머리가 이백 명이니 그들의 온 형제들이 그들의 명령을 따랐더라. 스불론 중에서 싸움에 필요한 모든 기구를 가지고 전투대형을 취할 줄 알며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고 전쟁에 나가서 싸움을 잘하는 자가 오만 명이요](32-33). 때를 깨닫고 마땅히 행할 바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지금이 어느 때인지, 무엇을 해야 할 때인지 모른 채 살고 있는 성도들은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마태복음16:3, [또 아침에는, 하늘이 붉고 낮게 깔렸으니 오늘은 날씨가 궂으리라, 하나니, 오 너희 위선자들아, 너희가 능히 하늘의 생긴 모습은 분별하거니와 시대의 표적들은 분별하지 못하느냐?], 고린도후서 6:2, [(이는 그분께서 이르시되, 받을 만한 때에 내가 네 말을 들었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하셨음이니, 보라, 지금이 받아 주시는 때요, 보라, 지금이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우리는 잇사갈 자손 중에 때를 깨닫는 사람들과 같은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할 것이며, 스불론 자손 중에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전쟁에 나가 싸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13장입니다. 다윗이 기럇여아림으로부터 언약궤를 옮겨 오고자 계획했습니다. 다윗은 이 문제를 천인대장들, 백인대장들, 모든 지도자들과 의논했지만 정작 주님과는 의논하지 않았습니다(1). 그들은 올바른 영적 명분과 선한 의도를 가지고 일을 했지만 성경적 방법과 절차를 무시했습니다(7). 다윗이 무엇보다 먼저 언약궤를 옮기려고 한 것은 바른 행동이었습니다. 우리도 마땅히 이런 선한 목적과 의도를 늘 지녀야 합니다. 그러나 방법 역시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7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웃사와 아히오는 수레를 몰며](7). 언약궤나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들은 레위의 아들들이 어깨에 메고 날라야 되며, 결코 만져서는 안됩니다. 민수기 4:15, [진영이 앞으로 나아갈 때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를 덮는 것을 끝마치거든 고핫의 아들들이 와서 그것을 나를지니라. 그러나 그들이 거룩한 것은 아무것도 만지지 말지니 이는 그들이 죽을까 염려함이니라. 회중의 성막에 있는 이것들이 고핫의 아들들이 나를 짐이니라.](민4:15,민4:5참조). 율법을 어기면서 춤을 추며 기뻐하는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8). 이들은 고의적으로 한 일은 아니지만 성경적 무지로 말미암아 부지 중에 죄를 짓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 행위입니다. 사람들은 레위 지파가 어깨에 메든지, 그냥 수레에 나르든지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라며 오히려 따지고 성질을 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적 규례와 절차를 무시하면서 편리를 추구하고자 합니다. 침례가 얼마나 번거로우냐? 간단히 세례로 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 것인가? 누룩없는 빵을 굽는게 얼마나 귀찮으냐? 시중에 파는 카스테라 빵으로 성찬을 한다고 문제가 될 것이 무엇이냐? 그런 식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성경의 몇 구절이 서로 맞지 않는 것 가지고 뭘 문제 삼느냐? 사랑, 은혜, 믿음, 구원 등 큰 줄기만 맞으면 되지...하지만 참 종교와 거짓 종교의 차이는 바로 이런 작은 것에서 확연히 구분됩니다. 9-11절은 율법을 무시한채 자의적으로 행한 웃사의 행동에 대해 주님께서 어떤 경고를 주셨는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웃사는 흔들리는 언약궤를 잡고자 손을 댔습니다. 일견 이것은 상을 받을 일이지 벌을 받을 일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성경은 누구라도 선한 의도가 나쁜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거룩한 것에 대해 무례하고, 무분별하고, 불경스런 행동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웃사의 징벌은 하나님께 다가가는데 있어서 감히 하나님을 경시하지 말도록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도록 합시다.
14장입니다. 다윗의 왕국은 점차 안정되었습니다. 두로 왕 히람은 다윗의 집을 건축해 주었고(1), 다윗은 예루살렘에서 몇 명의 아내들을 더 얻었습니다(3-7). 블레셋은 다윗이 통일 왕국의 왕이 되자 바로 쳐들어 왔는데, 다윗은 두 차례에 걸쳐 이들을 격퇴했습니다. 10,14절은 다윗이 전쟁을 하기 전에 먼저 주님께 여쭈어 물었습니다(10,14). 승리의 비결은 언제나 일에 앞서 기도에 있습니다. 역대기의 기자는 다윗 왕조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습니다. 17절, [다윗의 명성이 온 땅에 퍼지고 [주]께서 모든 민족들로 하여금 그를 두려워하게 하셨더라.](17).
15장입니다. 다윗은 전에 잘못된 방법으로 언약궤를 옮기다 당한 실패를 경험삼아 이제 율법에 기록된 대로 바르게 행하고자 했습니다. 주의 경고와 징계를 통해 바로 잡힐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욥기 5:17, [보라, 하나님께서 바로잡아 주시는 자는 행복한 자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욥5:17). 다윗은 전에 실패를 잘 기억하고, 그 원인과 이유를 알았습니다. 2,13-15절을 보십시오. [그때에 이르되, 레위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이는 [주]께서 그들을 택하사 하나님의 궤를 메고 영원토록 그분을 섬기게 하셨음이라, 하고] 지혜롭고 선한 사람들도 그들이 간과해서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것을 깨닫는 대로 교정할 것입니다. 성경은 교리와 책망과 바로 잡음과 의로 훈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딤후3:16). “다윗은 잘못된 것을 정당화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 죄를 씌우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당연히 지켜야 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은 죄를 인정했습니다.”(Matthew Henry). 다윗은 모든 것을 바르게 행했습니다. [처음에는 너희가 그것을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주]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셨나니 이는 우리가 합당한 규례대로 그분께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매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주] 이스라엘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올라가고자 하여 자기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고 모세가 [주]의 말씀에 따라 명령한 대로 레위 사람들의 자손들이 /운반/ 막대들로 하나님의 궤를 꿰어 어깨에 메니라.](13-15). 우리는 여기서 주의 일을 하는 것이 아무리 간단하고 쉬운 일처럼 보인다 해도 주님의 도우심과 능력에 철저히 의지 않는 한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는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주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우리는 늘 치명적인 실수와 잘못을 반복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드디어 언약궤가 다윗의 도시 예루살렘으로 들어왔습니다. 다윗을 비롯하여 온 이스라엘이 크게 외치며 코넷 소리를 내고, 나팔을 불며, 심벌즈를 치고, 비파와 하프로 소리를 내며 춤을 췄지만 이 순간에 전혀 은혜에 동참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29절, [[주]의 언약궤가 다윗의 도시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춤추며 뛰노는 것을 보고 마음 속으로 그를 업신여겼더라.](29, 삼하6:16-23참조). 주님을 기뻐하고, 찬양할 때 그것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주님을 따라 다니면서 주의 행하신 표적과 기사, 말씀을 책잡고자 했습니다. 비판의 영에 사로 잡힌 혼들은 은혜를 입을 수 없습니다.
16장입니다. 다윗은 언약궤를 옮긴 후에 헌신 예배를 드렸습니다. 번제 헌물과 화평 헌물을 드리고(1), 성막을 섬기는 일에 알맞은 직분들을 주어 계속해서 주님을 섬기고, 찬양하고, 감사하고, 경배하도록 했습니다. 7-36절은 위대한 한 편의 시입니다. 이 내용은 시편에 다시 반복됩니다.
17장은 다윗의 언약이라고 불리는 매우 유명한 장입니다. 다윗은 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위한 성전을 건축하려는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1-2).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에게 이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3). 하지만 주님은 다윗의 집을 통해 메시야 왕국의 통치자를 보내시고, 영원한 왕국을 세우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의 언약입니다. 11-14절, [¶ 네 날들이 다해 네가 반드시 네 조상들에게 돌아가야 할 때에 내가 네 뒤를 이을 네 씨 곧 네 아들들 중에서 하나를 일으켜 세우고 그의 왕국을 굳게 세우리니 그는 나를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왕좌를 영원토록 굳게 세우리라.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될 것이요, 또한 그에게서 내 긍휼을 빼앗지 아니하기를 내가 네 전에 있던 자에게서 빼앗은 것같이 하지 아니할 것이며 내가 영원히 그를 내 집과 내 왕국에 세우리니 그의 왕좌가 영원히 굳게 서리라, 하셨다, 하라.](11-14).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게 하시고, 그를 통해 영원한 의의 왕국을 건설하실 것입니다(눅1:32, 삼하7:18-29참조).
18장입니다. 다윗 왕국은 외부로 영토를 확장하고, 주위 민족들을 완전히 복속시켰습니다. 다윗은 전쟁을 통해 얻어온 갖가지 공물들을 주께 봉헌했습니다(11). 하나님 중심의 확고한 신앙적 바탕위에 선 왕국은 번창합니다. 다윗이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을 높였을 때 주님은 다윗을 높였고, 모두 다윗의 종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13-14절, [¶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매 온 에돔 족속이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주]께서 이같이 그를 보존하시니라. ¶ 다윗이 이같이 온 이스라엘을 통치하며 자기의 온 백성에게 공의와 정의를 행하더라.](13-14). 다윗 왕은 메시야 왕국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잘 예표합니다. 천년 왕국의 특징은 공의와 정의입니다. 이 시대는 은혜와 믿음입니다. 아모스 5:24, [오직 공의를 물같이, 의를 힘찬 물줄기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암5:24). 다윗 왕국의 특징을 들어 주님의 왕국을 설명하는 예는 성경에 매우 흔하게 등장합니다. 이사야 32:1, [보라, 앞으로 한 왕이 의로 통치하며 통치자들이 공의로 다스릴 터이니], 예레미야 23:5, [¶ [주]가 말하노라. 보라, 날들이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요, 한 왕이 통치하고 형통하여 땅에서 공의와 정의를 집행할 것이며] 33:15, [¶ 그 날들과 그때에 내가 다윗을 위하여 한 의의 가지가 자라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의와 의를 집행하리라.]
19장입니다. 다윗이 암몬 족속과 시리아 연합군을 대파했습니다. 다윗은 외부의 적들을 물리치고, 그들을 철저히 굴복시켜 식민지로 삼았습니다(삼하10장 참조). 다윗은 평생 동안 외부의 적을 물리치는데 실패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내부의 적이며, 자기 자신 안에 싹트는 불신과 죄성입니다. 성을 무너뜨리는 것보다 마음을 지키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반면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선 사람은 외부의 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20장입니다. 1-3절은 랍바를 치고, 4-8절은 블레셋과의 전투입니다. 3절은 한글 흠정역 성경의 오역입니다(영어 킹제임스 성경과 비교할 것). 6절에 거인의 아들들이 나오는데, 이들은 정상적인 인간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창세기 6장에서부터 등장하여 다윗 때에까지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들을 철저히 진멸했습니다.
21장입니다. 다윗은 인구 조사를 명령했습니다. 인구 조사는 사탄이 이스라엘을 대적하려고 일어나 다윗을 선동한 것입니다(1). 이 구절은 흔히 사무엘상 24:1절과 모순처럼 이야기되는 구절입니다. 이는 모순 구절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높아진 마음과 교만으로 인해 사탄이 다윗을 격동하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교만으로 마음이 높아지면 마귀의 정죄에 빠지며, 마귀의 올무에 걸려 들 수 있습니다(딤전3:6,7). 요압은 인구 조사를 적극 만류했지만 다윗의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의 인구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사무엘하 24장에서는 무려 9개월 20일간 시행되었다고 말합니다. 다윗의 인구 조사는 정책 수립과 국가 경영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왕이 되어 이스라엘에 이룬 번영과 성장을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 자부심과 업적을 자랑하려는 마음 때문에 시작된 것입니다. 이는 다윗의 생애에 밧세바를 취한 죄보다 훨씬 더 큰 죄입니다. 설령 인구 조사를 하더라도 원칙이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30:12-14에 인구 조사를 할 때 계수된 자는 주께 대속물을 드려야 합니다.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에 따라 그들을 계수(計數)하여 총수를 조사할 때에 각 사람은 자기 혼(魂)을 위하여 [주]께 대속물(代贖物)을 드릴지니 이것은 네가 그들을 계수할 때에 그들 가운데 재앙이 없게 하려 함이니라. 계수된 자들 가운데 속하는 자마다 성소의 세겔에 따라 반 세겔을 바칠지니 (일 세겔은 이십 게라라.) 이 반 세겔은 [주]의 헌물이 될지니 계수된 자들 가운데 속하는 자 곧 스무 살이 넘는 자는 [주]께 헌물을 드릴지니라.](출30:12-14). 이들은 성소의 원칙에 따라 반세겔을 드려야 하며, 이것은 주의 헌물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재앙이 임합니다. 다윗은 다시 한번 율법을 무시하고, 자기 임의대로 인구 조사를 하다가 철저하게 징계를 받는데, 3가지 중 한 가지를 선택하도록 했습니다(11). 다윗은 주의 긍휼을 의지해 역병을 선택했습니다(13). 지도자의 잘못은 자신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엄청난 피해로 귀결됩니다. 우리는 이 기사를 통해 사람은 아무리 영적이라 해도 육신의 유혹이 없을 만큼, 모든 유혹을 이길만큼 영적이지는 않다는 점입니다. 다윗은 매우 영적인 사람이었지만 그에게도 시험은 왔고, 시험에 여지없이 패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구 조사 기간 동안이라도 언제든지 중단하고 회개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징계에 앞서 충분한 회개의 시간을 주십니다. 영적인 죄는 육신의 죄보다 다 무섭습니다. 다윗은 간음과 살인보다 주님의 영광을 가로채려는 자신의 부패하고 타락한 마음이 훨씬 더 큰 재앙을 초래했음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죄가 자신에게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또는 후대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죄는 확산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윗의 뒤늦은 회개와 눈물어린 기도에 응답해 주셨고, 용서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죄에 대해 십자가를 통해 철저히 심판하시고, 풍성한 은혜를 주십니다.
22장입니다. 열왕기상의 기록 목적이 바로 22장에 다 들어 있습니다. 1절, [그때에 다윗이 이르되, 이것은 [주] 하나님의 집이요 이것은 이스라엘을 위한 번제 헌물 제단이라, 하였더라.](1).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성전 건축을 불허했음에도 아들 솔로몬이 넉넉히 성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건축 자금과 건축 재료들을 준비했습니다(5). 그리고 솔로몬에게 어떻게 성전을 지어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습니다(6-16). 그리고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에게 솔로몬의 성전 건축을 돕도록 했습니다(17-19). 하나님은 성전 건축을 할 수 있도록 이스라엘 주위에 안식을 주셨고, 필요한 물질들을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필요한 것은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열정적인 마음, 주님을 향한 순수한 믿음입니다. 19절, [이제 너희는 마음과 혼을 가다듬어 [주] 너희 하나님을 구하라. 또 너희는 이런 까닭에 일어나서 [주] 하나님의 성소를 건축하고 [주]의 언약궤와 하나님의 거룩한 기구를 가져다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집에 드릴지니라, 하였더라.](19).
23-24장은 레위 지파와 제사장들의 준비입니다. 새로 건축되는 거대한 성전에는 일꾼들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레위 지파를 다 계수해서 성전 문지기에서부터 성전 희생제를 드리는 대제사장직까지 업무를 분담시켰습니다. 성전이 건축되면 더 이상 성막과 성막 기구들을 나를 필요가 없습니다(26). 대신 성전에 관련된 다른 일들을 해야 합니다.
25장은 성전 성가대에 대한 준비입니다. 악기를 타며 주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일에 종사할 사람들로서 총 288명이었습니다(7). 이들은 24개조로 나누어 각 조별로 12명씩 찬양대를 구성했습니다. 오늘날 군대에서 사열을 할 때, 외국 귀빈들이 올 때 군악대가 연주하며 노래하듯이, 이들은 성전에서 예배를 드릴 때 연주를 담당했습니다. 교회에서 성가대를 갖추는 것도 여기서 유래한 것입니다.
26:1-19절은 성전 문지기들에 대한 준비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다윗의 왕궁보다 규모가 더 큽니다. 왕실 수비대 정도에 해당하는 성전 문지기들이 필수적으로 필요했습니다. 20-28절은 성전의 재정을 담당할 사람들입니다. 성전에 들어오는 헌금들, 각 지파별로 올라오는 십일조와 봉헌물들, 성전 보물들을 담당할 사람들을 뽑아 세웠습니다. 27장은 성전 경비를 맡은 성전 수비대입니다. 이들은 매달 번갈아 가며 성전의 수비를 맡았는데 거의 2개 사단 병력이 배치되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인구는 기하 급수적으로 팽창했습니다(23). 16-22절은 지파별 우두머리들의 이름입니다. 25-34절은 다윗 왕의 보좌진들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로 치면 청와대 비서진들 정도에 해당합니다.
28장입니다. 다윗은 왕명으로 전국의 공무원들을 모조리 소집하여 마지막 유훈 설교를 했습니다. 특히 아들 솔로몬이 어떻게 성전 건축을 완수해야 하는가에 대한 각별한 당부가 있었습니다. 성전 건축은 일단 시작되면 멈출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완전한 마음과 자원하는 생각으로 그분을 섬길지어다. 이는 [주]께서 마음을 다 살피시고 생각으로 상상하는 바를 다 아시기 때문이니 네가 만일 그분을 찾으면 만날 것이로되 네가 만일 그분을 버리면 그분께서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그런즉 이제 너는 조심할지어다. 이는 [주]께서 너를 택하여 성소의 집을 건축하게 하셨음이니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이 일을 행할지니라, 하니라.](9-10). 다윗은 성전 건축에 관련된 것들을 모두 하나님의 영으로 미리 설계도를 받았습니다. 12,18,19절 참조. 힘을 내고, 용기를 내어 성전을 건축하라고(10,20) 말합니다.
29장입니다. 성전 건축은 어린 솔로몬이 감당하기에 너무나 큰 공사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이 살아있을 동안 거의 모든 준비를 완료해 두었습니다. 특히 재정을 충분히 확보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는데 백성들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필요한 금과 은과 놋등을 내어놓았습니다. 성전 건축은 강제로 세금을 징수해서 한다면 백성들의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며, 아무리 웅장해도 백성들의 마음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다윗은 철저히 자원하는 마음으로 헌금하도록 했습니다. 5절, [금은 금으로 된 것들을 /만들/며 은은 은으로 된 것들을 /만들며/ 또 기술자의 손으로 만드는 온갖 일에 쓰게 하였나니 이 날 누가 자원하여 자기의 섬길 것을 [주]께 거룩히 구분하여 /드리겠느냐/? 하니라.] 백성들은 매우 잘 호응하였습니다. [이때에 백성이 자원하여 드리되 완전한 마음으로 [주]께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스스로 기뻐하였으며 다윗 왕도 크게 기뻐하며 즐거워하니라.](9). 이는 신약 교회에서 헌금의 원칙으로 삼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7, [저마다 자기 마음 속에 정한 대로 낼 것이요,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거이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9:7). 우리는 주님 앞에서 자원하는 헌물을 통해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는 주님께서 능력이 없으셔서 성도들의 헌금을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좋아 보이는 사람들도 막상 헌금 앞에서는 한없이 움츠려 들고 망설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헌금은 누가 보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과 나 사이에 바른 신앙 양심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바른 경제관, 바른 물질관은 올바른 헌금 생활에서 나옵니다. 12,14절과 16절을 보십시오. [재물과 존귀가 다 주께로부터 나오며 또 주는 모든 것을 다스리사 손에 권능과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14,나는 누구며 내 백성은 무엇이기에 우리가 이런 식으로 자원하여 드릴 힘이 있겠나이까? 이는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나왔음이오니 우리가 주의 것에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16,오 [주]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해 집을 건축하려고 예비하여 저축한 이 모든 것이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12, 14,16).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지녀야 할 바른 경제관이요, 물질관입니다. 주님께서 내게 주신 것을 다시 주님께 드리는 것이며, 모두 다 주님의 것이란 청지기적인 자세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입니다. 다윗은 백성들에게 헌금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헌금을 촉구하는 설교를 한 것도 아닙니다. 그는 왕으로서 자신이 먼저 본을 보였습니다. 17절,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시험하시고 올바른 것을 기뻐하시는 줄 내가 또 아나이다. 나로 말하건대 내가 올바른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자원하여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니 심히 기쁘나이다.](17). 이렇게 하여 솔로몬은 무사히 성전 건축을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을 통해 우리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 준비하시고, 계획하셨습니다. 때가 되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사역을 완수하도록 하셨습니다. 주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모든 것을 가지고 믿음과 순종, 자원함으로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 주시고, 피를 통해 대속을 완성하셨습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