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구원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없지만 구원받은 사람은 구원 그 이후가 매우 중요합니다. 구원을 출발점으로 해서 우리는 자라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성경이 가르쳐 주는 절대적 진리의 조명과 계시가 점점 흐려지고 희미해지는 지금의 교회에서는 구원 그 이후의 삶이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반드시(must)"란 말씀을 써 가며 강조하는 절대적 진리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모든 남녀 성도가 말 그대로 반드시 알아야 하며, 믿어야 하며, 순종해야 하며, 선포해야 합니다. 오늘 저는 성경을 통해서 반드시 해야 할 일 12가지에 대해서 선포하고자 합니다. 이는 구원받은 성도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할 내용인 동시에 여러분과 제가 다시 한번 기억을 새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4:12, 10:43을 보겠습니다.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이는 하늘 아래 사람들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기 때문이니라, 하였더라.(whereby we must be saved.)] 인류의 모든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반드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바른 구원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점에 비추어 볼 때, 예수의 하나님 되심을 부인하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바른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통해 마리아를 경배하는 그녀를 중보자로 믿고 있는 캐톨릭 교도들은 구원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종교마다 나름대로 구원관이 있고, 자기들의 교리가 있겠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예수의 이름으로만 구원받아야 한다”고 단정하셨습니다. 여기는 타협의 여지가 없습니다. 모하메드의 이름으로, 붓다의 이름으로, 마리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구원받았다고 고백하고 주장해도, 그들이 신성한 경험을 했고, 환상을 보았다 할지라도 그런 구원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행10:43, [그분에 대하여 모든 대언자들도 증언하되, 누구든지 그분을 믿으면 그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죄들의 사면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행10:43). 어떤 유니테리안 판사가 있었습니다. 유니테리안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믿는 만인 구원론을 주장하는 이단 종파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믿든지 믿지 않든지 상관없이 결국은 모든 사람을 구원할 것이란 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설교를 비웃었습니다. 지옥에 대해 설교하면 하나님은 왜 그렇게 잔인한 분으로 만드는가? 성질을 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구원받은 줄로만 알았습니다. 어느날 밤에 그는 자신이 정말 구원받았는가?를 깊이 생각하다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평안도, 기쁨도 없었습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전에 들은 설교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오니, 저를 구원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마음은 금방 평안해졌고, 참다운 회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순간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구원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교회를 다니면서도 예수가 많은 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그의 구원은 착각입니다. 예수를 믿는 대신 자기 힘으로 스스로 구원에 도달하려 한다면 그 역시 속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 없어도 충분히 하늘에 갈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하늘에 갈 수 없습니다. 예수 안 믿어도 다 살아가는 방법이 있고, 예수 안 믿어도 잘 살 수 있겠지만 예수 안 믿어도 구원받는 일은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예수의 이름으로만 구원받게 하셨고, 예수를 통해서만 아버지께로 올 수 있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지런히 전파해야 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우리는 전파해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외쳐야 합니다.
둘째, 모든 사람은 반드시 거듭나야 합니다. 요한복음 3:7을 보십시오.[내가 네게, 너희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리라, 말한 것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Marvel not that I said unto thee, Ye must be born again.] 하나님이 인간에게 “반드시”라고 한 첫 번째 내용은 바로 “거듭남”입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반드시 무슨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기 이전에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하십니다. 종교와 철학은 반드시 해야 할 일과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먼저 주어집니다. 성경은 일에 앞서 존재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사람이 다시 태어나기 이전에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 불가능하며,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에 대해서 아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어떤 종류의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살아 내려고 노력함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종교적 체험을 갈망함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뼈를 깎는 고행과 금욕과 수준 높은 교육을 이수함으로써 되는 것도 아닙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군왕이든 권세자들이든 육체적으로 출생하는 데에는 비천한 사람이 태어나는 것과 똑 같은 방법을 거치는 것처럼, 아무리 지적이고, 능력 있고, 부유해도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방법은 비천한 사람이 태어나는 것과 동일한 방법을 거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것은 동서 고금, 남녀 노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예외가 없습니다. “너희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리라!” 신체적 출생의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 이 세상의 삶이 존재할 수 없듯이, 다시 태어남의 영적 출생의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 영적인 삶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이 목사를 하든, 교회에서 어떤 봉사를 하며, 선행을 하든 그것은 차후의 문제입니다. 주님은 “너희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리라!” 선포하셨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거듭남이 없이 교회만 다니시는 분이 있다면 이 시간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성격이나 성질을 개조하라”가 아닙니다. “열심히 일을 하라”도 아닙니다.
저는 한국의 고시 공부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쓴 수기를 묶어 놓은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제목이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이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고, 얼마나 삶의 절제와 눈물과 부지런함이 있었는지 줄줄이 베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후회 없이 공부했고, 합격을 통해 그 결과를 보상받았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성실과 근면, 눈물과 피, 뼈를 깎는 고통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 주지 못합니다. 사람이 죽어서 100번을 다시 태어난다 해도 육신은 여전히 육신일 뿐입니다. 핵심은 몸이 아니라 영입니다. 몸은 다시 태어날 필요도 없습니다. 불교는 윤회를 통해 계속해서 몸이 다시 태어나는 것을 가르치지만 성경은 말합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아무 유익도 없느니라.]
언젠가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집안 대대로 기독교이며, 자신도 기독교에 입문한지가 벌써 몇 년째라며 자랑하는 간증이었습니다. 듣던 제가 “그런데, 선생님은 언제 거듭났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혼비백산하였습니다. 대답하기를, “나는 모태 신앙이여!” 제가 “모태 죄인은 있어도 모태 신앙은 없습니다. 선생님은 모태 출석 교인이었다는 말이겠지요. 언제, 어떻게 거듭나셨습니까?” “어허, 참, 모태 신앙이라니까. 태어나기도 전부터 믿었는데 다시 태어날 일이 뭐가 있어!” “태어나기 전부터 교회에 다닌 사람은 있어도 예수를 믿은 사람은 없습니다. 주님은 선생님에게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했더니, “중학교 때 수련회를 갔는데 마지막 날 밤 찬송가를 부르는데 몸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주변에서 교회를 다니지만 거듭남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이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해주고, 다시 태어나게 해야 할 일이 저희들의 의무입니다.
셋째, 이런 질문이 있어야 합니다. [그들을 데리고 나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Sirs, what must I do to be saved?). 그들이 이르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 다시 태어난 적이 없는 교인들은 반드시 이런 질문을 해야 합니다. “선생들이여, 내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무엇이니이까?” 죄와 죽음, 지옥과 심판,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에 대한 강력한 설교를 들었다면 사람의 반응은 무시하거나, 배척하거나, 받아 들여야 합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일에 대한 인간의 질문에 하나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답변하십니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 누가 물어도 답변은 동일할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이것이 바로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하나님의 답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주의자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택함을 받으면 구원받는다고 대답합니다. 캐톨릭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마리아의 중보를 받고, 성인들에게 빌고, 침례를 받고, 성사를 받고, 자선을 베풀고, ...끝이 없이 나가다가 그래도 구원받았는지는 죽어 봐야 안다고 말합니다. 오직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만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구원의 처음이며, 마지막입니다. 더 이상 더하거나 뺄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어떤 가게에 아이와 엄마가 들어갔습니다. 아이는 진열장에 놓인 맛있는 케잌을 보았습니다. 종업원에게 “내가 어떻게 하면 저것을 먹을 수 있습니까?” 종업원이 무엇이라고 답하겠습니까? 간단합니다. “돈만 내면 돼”. 아이는 “엄마가 돈을 냈어요.” “그럼 가져가서 먹어”입니다.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다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믿기만 하면 됩니다.”
넷째, 믿음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이 계신 것과 자신을 부지런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이심을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히11:6, 출3:14).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가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또 그분께서 자신을 부지런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기 때문이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두 가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 없겠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생각 없이 살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최고, 최대의 실존이시기에 만약 하나님의 살아 계심에 대한 의식이 다른 어떤 것보다 희미하다면 그 자체가 불신앙입니다. 나의 집에 나의 아내가 있다는 생각, 나의 조국에 나의 친구가 있다는 생각보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나와 함께 하신다는 생각과 의식이 덜 뚜렷하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이 내 밖에 있는 사람들이나 사물들보다 덜 가까이 다가온다면 그 자체가 불신이란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기도를 할 때도 기도하는 기도 제목과 자신의 간구에 파묻혀 정작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결여된 기도를 하는 성도들은 기도의 응답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 중얼거리다 말고, 사람들에게 하는 기도를 봅니다. 이는 모두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고, 성령이 내 안에 계시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믿음이 없는 결과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부지런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부지런히 찾는다는 것은 어떻게 찾는 것인가? 누가복음 15:4,8에 나옵니다. 양을 잃어버린 목자가 양을 찾듯이, 한 드라크마를 잃어버린 여자가 돈을 찾듯이 찾는 것입니다. [어떤 여자에게 드라크마 열 개가 있는데 한 개를 잃어버리면 등잔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을 때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주님을 찾을 때 이런 자세로 부지런히 주님께 찾는다면 여러분이 얻지 못할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입니다. 복음 전도자들은 잃어버린 혼들을 찾으러 거리로, 도시로, 집집마다 찾아 나서기에 앞서 먼저 주님께 나아가 그 혼들을 찾았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하나님 앞으로 찾으러 나가는데 실패한다면 아무 것도 얻을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죠지 뮬러는 돈을 구하러 사방을 돌아다니는 대신 하나님께로 갔습니다. 제가 아는 선교사 한 분은 선교지에서 열매가 하도 없어서 낙담하고 절망했습니다. 먼저 온 선교사님들은 어쨌든 열심인데 자기는 너무 힘이 빠져 움직이기조차 싫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면서 길거리에 오고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내려다보면서 ‘저 사람들을 다 구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혼자 생각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무릎을 꿇어라. 무릎을 꿇어라”는 음성이 귓전을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날부터 혼을 찾으러 캠퍼스로 거리로 나가는 대신 골방으로 들어가 하나님께로 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바쁘게 설치는데 혼자 기도한다며 골방으로 들어가 버리니 동료들에게는 손가락질이요, 양심의 가책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동료 선교사들 모두가 구령해 오는 수고의 열매보다 갑절의 열매를 거두어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나머지 선교사들도 모두 회개하고 주님께 부지런히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위대한 주님의 종들은 이와 같이 모두 주님께 부지런히 구하고, 보상하시는 분이심을 철저히 믿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부지런히 구했는지 몇 명의 기도를 들어보겠습니다.
조지 휫필드(영국의 유명한 복음 전도자) - "오 주여, 저에게 혼들을 주시던지 아니면 제 혼을 취해 가소서!(Give me souls, or Take my soul!)"
헨리 마틴(선교사) - "주여, 제가 여기 있사오니 저로 하여금 하나님을 위해서 불타게 하소서."
토마스 아 켐피스(1379-1471) - "주님께서 가지고 계신 것을 제게 주시고 주님께서 소유하신 대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주소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저를 두시고 주님께서 오직 저만 소유하신 것처럼 저를 다뤄주소서."
웟치만 니 - “주님, 저는 저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서는 모든 것이 필요하나이다.”
기도의 사람 하이드(인도에서 사역한 선교사) - "아버지시여, 이 사람들을 저에게 주시지 않을 바에는 차라리 저를 죽여주소서."
다섯째, 하나님께 반드시 영과 진리로 경배해야 합니다(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가 반드시 영과 진리로 경배할지니라. God is a Spirit : and they that worship him must worship him in spirit and in truth.] 주님은 믿음의 대상인 동시에, 경배의 대상입니다. 첫째, 반드시 하나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사람이나 천사나 태양이나 달, 별과 같은 천체나 우상들을 경배해서는 안됩니다. 한국인들은 유난히 사주 팔자, 토정비결, 풍수지리 등 운세에 약합니다. 서양인들은 점성술에 약합니다. 연초가 되면 점 집은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이는 모두 미신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하나님께 경배 드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아닌 것을 경배할 때, 저주와 심판과 재앙이 따를 것입니다.
반드시 영과 진리로 경배해야 합니다. 아무렇게나 경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한 영이시기 때문에 반드시 영과 진리로 경배해야 합니다. 오늘날 경배만큼 변질된 것도 드물 것입니다. 반드시 영과 진리로 경배 드려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은 간 곳 없고, 이상한 음악으로, 아니면 정해진 외적 형식으로 경배 드리는 사람들이 즐비합니다. “경배와 찬양”이란 프로그램을 만들어 청년들을 모아다가 몇 시간이나 노래만 불러 댑니다. C.C.M, Christian Rock Music으로 경배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별 희한한 경배가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제일 압권은 [갈대로 그분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고 무릎을 꿇어 경배하더라.](막15:19)일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기분에 따라 경배합니다. 복음서에는 마귀 들린 사람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하며 경배했습니다. 나는 오늘 경배를 드렸다! 그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주님은 구약에서 성전에서 제사법을 가르쳐 주신 것처럼, 신약 성도들에게 경배하는 법과 경배의 대상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반드시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경배해야 한다.” 이것이 주님이 정해 주신 경배 방법입니다. 이렇게 드리지 않는 경배는 모두 규칙 위반이며, 주님의 말씀을 멸시한 가증스런 행위요 헛된 경배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사람들의 명령들을 교리로 가르치니 내게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막7:7). 우리는 언제나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생활의 일부이며, 하나님께 마땅한 것입니다.
여섯째, [수고하는 농부가 (반드시) 먼저 열매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는 것이 마땅하니라. The husbandman that laboureth must be first partaker of the fruits.](딤후2:6) 이 구절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서 풍부한 의미를 보여 주는 용례입니다. 첫 번째 의미로는 갈라디아서 5:7에 나오는 것처럼 자신이 수고한 열매를 먼저 먹는다는 말입니다. [어느 때고 누가 자기 비용을 들여 전쟁에 나가겠느냐? 누가 포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양떼를 먹이고 그 양떼의 젖을 먹지 아니하겠느냐?](고전9:7). 목자는 일을 하면 거기에 따르는 수고의 대가를 받습니다. 고린도전서 9:14에서 주님은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을 선포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두 번째 의미는 주님께서 수고하는 농부에게 먼저 열매의 참여자가 되게 하셔서, 맛을 보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처음 전도할 때 많은 열매를 맛보았을 것입니다. 처음 기도할 때 응답이 빨랐을 것입니다. 처음 교회 나올 때 예배의 기쁨이 컸을 것입니다. 처음 성경을 읽을 때 그 맛이 달았을 것입니다. 이는 미리 맛을 보여 주심으로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세 번째 본문의 의미는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고자 한다면 반드시 자신이 먼저 행해야 합니다. 농부가 먼저 열매에 참여하지 않는데 누가 앞서서 열매를 거두러 밭으로 뛰어 들 수 있겠습니까? 목자가 앞서 가지 않는데 양들이 어찌 앞으로 나아가겠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바울 역시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희어져 추수하게 된 들판으로 달려가서 먼저 열매에 참여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본을 따라 추수할 들판으로 달려들어가 열매를 거두어야 할 것입니다.
일곱째, 절대 다투어서는 안됩니다(딤후2:24). [{주}의 종은 결코 다투지 아니하며 오직 모든 사람에게 부드러우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인내하며 And the servant of the Lord must not strive; but be gentle unto all men, apt to teach, patient,] 디모데 전, 후서가 목회 서신이란 점을 감안할 때, 주의 종은 일차적으로 목회자들을 의미합니다. 광범위하게 보면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주의 종입니다. 바울 사도는 “주의 종은 다투어서는 안 된다”고 못박고 있습니다. 교만하고 악한 영을 지닌 목회자에게 배운 양들은 어디 가서도 다투고 싸웁니다. 직장에서도 싸우고, 집에 와서도 싸우고, 복음 전하러 가서도 싸웁니다. 남의 가게 앞에서 나팔을 불어 내며 거리 설교를 하다 주인과 다투어 놓고, 그것을 자랑이라고 간증하는 형제도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시비가 붙어서 싸움질을 하는 형제들도 있습니다. 주님은 날카로운 책망의 설교를 하셨지만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다투시지는 않으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죄와 심판에 대해, 불신에 대해 유대인들을 향해 험한 말로 설교를 했지만 그들과 싸우지는 않았습니다. 때리면 맞았고, 고소하면 감옥에 들어갔고, 욕을 하면 욕을 들었습니다. 성숙하지 못한 형제들은 영적 전투를 하는 것과 싸우는 것의 차이를 모릅니다. 다툼은 육신의 시기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시기와 다툼”(strife and envying)이 짝을 이루어 나올 때가 많습니다. 다툼으로 이루어 낼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주의 종은 절대 다투어서는 안됩니다.
여덟 번째, 위에 있는 권세에 반드시 복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진노로 인하여서만이 아니라 양심을 위하여서도 반드시 복종해야 하느니라.](롬13:5). 이 구절 전후 문맥을 보면 국가 공무원은 모두 하나님의 사역자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경찰, 군인, 세무 공무원 등은 교회의 목사나 집사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너무나 쉽게 잊고 지냅니다. [내가 네게 권고하노니 왕의 명령을 지키고 하나님께 맹세한 서약을 중히 여기라.](전8:2). 그 왕이 네로와 같은 폭군이라 할지라도 그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전에 민주화 운동에 동참했던 많은 크리스챤 대학생들이 반정부 데모에 가담하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역설하는 것을 자주 보고 들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반정부 활동을 해서는 안됩니다. 설령 기독교를 핍박하고, 복음 전파를 금지하는 정부라 할지라도 불복종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혼들은 위에 있는 권력들에게 복종할지니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은 권력이 없으며 이미 있는 권력들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기 때문이니라.](롬13:1). [너는 그들로 하여금 명심하여 정사(政事)들과 권능들에게 복종하며 행정관들에게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되게 하며](딛3:1). 때로 하나님의 말씀과 국가의 명령이 상반되어 고뇌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국가가 정한 형벌을 받으면 됩니다. 그것이 태형이든, 벌금이든, 징역이든, 심지어 죽음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감당하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대가를 치르기를 거부하는 형제들이 반정부 시위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을 보십시오. 13-18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주}를 위하여 사람의 모든 규례에 복종하되 왕에게는 최고 권위자에게 하듯 하고 총독들에게는 악을 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을 행하는 자를 칭찬하기 위하여 {주}께서 보내신 자들에게 하듯 하라. 그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 이것은 너희가 잘 행함으로 어리석은 자들의 무식한 /말/을 잠잠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에게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를 악을 가리는 도구로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들로서 행하라. 모든 사람을 존경하며 형제들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경하라. 종들아, 모든 두려움으로 너희 주인들에게 복종하되 선하고 부드러운 자들에게만 아니라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이것은 가능하면 하고, 어려우면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하는 것입니다.
아홉 번째, 성도들은 반드시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합니다. [제자들의 혼을 굳건하게 하고 믿음 안에 거하라 권면하며 또 우리가 반드시 많은 환난을 거쳐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야 하리라 하더라.](행14:22). 이는 유업의 상속을 함께 받기 위함입니다. 이 말씀은 축복만을 외쳐대는 조국의 교회에 일침을 가하는 뼈아픈 말씀입니다. 육신의 평안과 안락을 구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재앙과 같은 이 말씀은 불행하게도 “반드시”라는 조동사가 붙어 있습니다. [아무도 이런 박해로 인해 흔들리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런 박해를 받도록 세우심을 받은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아느니라. 이는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참으로 환난 당할 것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더니 과연 그렇게 되었고 너희가 /그것을/ 알기 때문이니라.](살전3:3,4). 쟌 웨슬레 목사는 자신에게 단 하루라도 핍박이 없으면 자신이 하나님께 그만 쓰임받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다고 합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참다운 생명력이 없기 때문에 사실 환난도 없는 것입니다.
열 번째, 우리는 반드시 육신의 몸을 벗습니다.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보여 주신 바와 같이 내가 머지 않아 반드시 이 장막(帳幕)을 벗어야 할 줄을 알기 때문이라.](벧후1:4). 이 생은 잠시 살다가는 나그네요, 순례자의 인생입니다. 이 몸은 잠깐 입고 벗을 옷과 같습니다. 이 몸을 치장하고, 보양하고, 아끼는데 모든 것을 다 허비하지 마십시오. 대신 속 사람을 단장하는데 온 힘을 기울이십시오. 날마다 속 사람을 먹이시고, 새롭게 하십시오. 우리는 반드시 육신의 몸을 벗습니다.
열한 번째, 우리는 반드시 죽지 아니함을 입어야 합니다. [또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반드시 죽지 아니함을 입어야 하기 때문이라.](고전15:53). 저와 여러분이 가장 바라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불멸의 영광스런 몸을 입습니다. 죽지 않고 쇠하지 않는 몸을 입어야 합니다. 이 몸을 입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듭나야 합니다.
열두 번째,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날 것임이라. 이로써 각 사람이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 안에서 행한 것들을 받으리라.](고후5:10). 이 땅에서 우리가 몸으로 행한 모든 행실을 주님 앞에서 계산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영원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오늘 지금 바로 오늘 우리는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상은 모든 성도들에게 공통 사항입니다. must란 말을 may로 바꾸지 마십시오.
이외에 교회의 직분을 맡은 사람들은 몇 가지 더 추가 사항이 있습니다. 감독이나 집사들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점검해야 합니다. 이는 "반드시"라고 말한 필수 사항이지, 교회의 형편이나 여건에 맞추어서 적당히 탄력적으로 운영되어서는 안됩니다(딤전3:2,7,8). 성도가 500명이 넘어도 집사를 한 명도 못 세울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몇 천명의 성도가 교회에서 제 집처럼 생활할 때도 집사를 7명만 뽑았습니다.
감독은 외인들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가족들과도 적절한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저는 이혼한 사람들이 목사를 하고 있는 경우를 참 많이 보았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들 가운데도 여러 번의 이혼 경력이 있는 분도 계십니다. 성경으로 비추어 볼 때 신학원을 운영하든, 출판사를 운영하든 상관이 없겠지만 목회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회의가 듭니다. 주님의 말씀은 must인데 비해, 사람들은 may로 바꾸어 버린 것 같습니다.
<감독>
딤전3:2 “그러므로 감독은 반드시 책망 받을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며 깨어 있으며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행실이 바르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는 재능이 있으며”
3:7 또한 감독은 반드시 밖에 있는 자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아야 하나니 이것은 그로 하여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지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집사>
3:8 이와 같이 집사들도 반드시 신중하며 한 입으로 두 말하지 아니하며 자기를 많은 술에 내어 주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아니하며
<집사의 아내>
[이와 같이 집사들의 아내들도 반드시 신중하며 헐뜯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일에 신실한 자라야 할지니라.](3:11).
감독은 대적들의 입을 막아야 합니다.
[/너는/ 반드시 그들의 입을 막아야 하리라. 이런 자들은 더러운 이익을 얻으려고 자기들이 마땅히 가르쳐서는 안될 것들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뒤엎는도다.](딛1:11).
반드시 겸손해야 합니다. [그분은 반드시 흥하여야 하겠으나 나는 반드시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3:30).
친구 관계를 잘 두어야 합니다.
[여러 친구를 두는 자는 반드시 자기 자신을 정답게 보여야 하나니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너희를 다스리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너희 자신을 낮추어 복종하라. 이는 그들이 너희 혼을 위해 깨어 있기를 마치 자기가 회계 보고할 자인 것같이(as they that must give account,) 하기 때문이니 그들로 하여금 기쁨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13:17).
'주제별(글) > 새신자시리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경이 말하는 헌금에 대해 (1) | 2005.04.12 |
---|---|
신앙과 돈 (0) | 2005.04.12 |
예수님은 누구신가 (3) (0) | 2005.04.12 |
예수님은 누구신가 (2) (0) | 2005.04.12 |
예수님은 누구신가 (1) (0) | 2005.0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