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몸이 아플 때 필요한 분은 유능한 의사이십니다. 주님은 Divine Healer이십니다. 몸을 고치실 뿐만 아니라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며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는 의사이십니다.
주님은 분명히 치유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날 오순절을 비롯한 은사주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치유 사역 가운데 몸의 치유를 강조하는 반면, 세대주의를 비롯한 근본주의 침례교인들은 몸의 치유보다는 영적 치유를 강조합니다. 일부 킹제임스 성경 신자들은 주님이 치유 사역보다는 병원을 훨씬 더 의존합니다.
성경에서 주님이 치유하신다는 구절은 대환란 때 유대인들에게 해당하는 것처럼 적용하고 현 교회 시대의 성도들에게는 전혀 해당 사항이 없는 것처럼 믿습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치유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치유를 믿지 않는 것은 헛된 기도입니다. [그분께서 네 모든 불법을 용서하시고 네 모든 질병을 고치시며](시103:3), [자신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며 멸망들에서 그들을 건지셨도다.](시107:20). 이는 분명히 육신적 질병을 고치시는 주님의 약속입니다.
전에 이미 성경적 건강법에 대해서 한번 말씀을 증거한 적이 있기 때문에 오늘은 치유 사역에 대해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세상 병원은 사람의 영혼의 병을 고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고치십니다. [마음이 상한 자들을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시147:3). 주님은 놀라운 치료자이십니다. 마음 속의 미움, 분노, 시기, 원망, 불평 등 각종 병들을 다 고쳐 주십니다. 마음의 병이 나으면 육신의 병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 뿐 아니라 병을 담당하신 주님에 대해 증거합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지셨으니 이것은 죄들에 대하여 죽은 우리로 하여금 살아서 의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고침을 받았나니] (벧전2:24). 이 말씀은 재림이 아닌 초림 때 십자가에서 이루신 주님의 사역에 대한 증거입니다. 이사야 53:5을 인용한 것인데 이렇게 증거합니다. [그러나 그가 찔림은 우리의 범죄들로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불법들로 인함이라.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사53:5).
하지만 우리는 실증적으로, 현실적으로 아는 것은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그 순간 모든 질병이 떠나지 않습니다. 당뇨병 환자는 여전히 당뇨를 앓고, 치과에 갈 사람은 여전히 치과에 가야 합니다. 눈이 아픈 사람은 안과로 가야 하고, 암 환자는 지속적으로 의사의 지시에 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분명한 것은 치유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기적을 기대할 수 밖에 없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후에는 말씀을 보내셔서 치유해 주시기를 기도할 수 있고, 주님이 맞으신 채찍에 근거해서 치유를 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의학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의 질병은 70% 이상은 마음에서 기인한다고 합니다. 마음의 변화가 있으면 신체적 질병의 변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통해 영적 평안과 기쁨이 있고, 참된 은혜가 있으면 몸의 질병은 이미 70% 이상 회복된 것이나 같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주시면 그는 일어날 수 있습니다. 웟치만 니는 2주 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살리라. 서리라. 걸으리라”는 세 구절의 성경이 마음 속에 임했습니다. 그는 침상에서 일어나서 믿음으로 걸어서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왔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는 자신을 진단한 의사가 죽는 것을 본 후에도 살아 있었습니다.
이런 예는 부지기수입니다. 콩고 선교사로 갔다가 간암에 걸려서 사형 선고를 받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중 기적을 체험한 어느 목사님의 간증을 읽어본 일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은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치료할 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이렇게 보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아내를 시켜 침대를 양지쪽으로 옮겨놓도록 하고, 따뜻한 햇빛을 받으면서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 분은 콩고 선교사로 나가서 일할 정도였으므로 성경은 일생을 통하여 수십 번 읽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목사님이 읽은 말씀이 베드로전서 2장 24절이었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지셨으니 이것은 죄들에 대하여 죽은 우리로 하여금 살아서 의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고침을 받았나니](벧전2:24). 목사님이 여기까지 읽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친히 나무에 달려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셨다는 말씀이 너무나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목사님은 눈물을 흘리며 다음 성경구절에 주의를 집중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갑자기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거기에는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고침을 받았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선교사는 지금까지 이 말씀은 문자적으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이 말씀이 마음 속에 강력하게 임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믿음이 없는 이유는 그 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하여 귀를 기울이지 않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콩고 선교사로 나갔던 그 목사님은 말씀에 집중적으로 귀를 기울인 결과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이제 병자가 아니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 즉시 목사님은 부인을 불렀습니다. "여보, 내 옷을 가져다주시오." 갑자기 돌변한 목사님의 태도에 부인은 의아스런 눈빛을 하며 물었습니다. "아니, 왜 그래요?" 그러자 목사님은 활기를 띤 목소리로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이 성경말씀을 보시오.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얻었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소. 물론 나는 이 말씀을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 말씀에 전심으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소.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을 내 것으로 받았소. 나는 이제 믿을 수 있소. 나는 간암 환자가 아니오, 나는 정상인이요. 정상인이 왜 드러누워 있어야 하겠소? 그러니 나는 일어나 활동해야겠소." 그리고 목사님은 부인이 말리는 것도 뿌리치고 일어나 활동하기 시작했고 곧 간암에서 고침 받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보내셔서 고침을 주십니다. 완전한 치유 사역은 천년 왕국에 있는 일입니다. 천년 왕국 때는 십자가를 믿음으로 낫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낫습니다. 그러나 현재 이 시대에 우리에게 있는 치유 사역은 말씀을 듣고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병 낫기를 위해 서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장로들은 {주}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켜 세우시리라. 혹시 그가 죄들을 범하였을지라도 용서받으리라. 너희 잘못들을 서로 고백하고 병 고침을 받도록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라. 의로운 자의 뜨겁고 효력 있는 기도는 많은 유익이 있느니라.](약5:14-16).
오늘날 성도들이 이외로 질병으로 오랫동안 고통 가운데 있는 것을 봅니다. 질병을 통해 은혜 가운데 있고, 질병을 통해 성령이 충만해졌다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질병을 통해 믿음이 약해지고, 고통 당한다면 당연히 나음을 입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치유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병 낫기를 기도해도 마음 속에 거의 믿지 않고 형식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낫습니다. 주님께서 채찍에 맞으신 고난은 분명히 천년 왕국 성도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현재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신유의 은사를 가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오순절 교회나 은사주의자들처럼 거짓 은사들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성도가 [믿음의 기도]를 통해 병든 자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약5:14). 믿고 구하는 것은 우리 시대에 성도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어떤 질병은 나음받는 것보다 안고 살아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기도를 해도 나음을 입을 수 없습니다.
첫째, 주님께서 연약함을 통해서 강하신 능력을 완전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둘째, 교만하거나 자만하지 않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셋째,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우게 하실 때도 그러합니다.
넷째, 믿음을 단련하시고, 성장케 하기 위함입니다.
다섯째, 죄를 깨닫고 회개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고침을 받기 위해 기도하고, 말씀을 보내 주셔서 고쳐 주시기를 구해야 마땅합니다. 교회는 치유의 은사를 지닌 사람들을 찾는 대신 우리 자신이 [믿음의 기도]를 함으로 병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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