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출애굽기 29:30-46
요절: 출애굽기 29:44
이스라엘의 정치 체계는
신정 일치였습니다. 공화정이나 왕정이 아니라
신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제사장 왕국입니다. [또
너희는 내게 제사장 왕국이 되며 거룩한 민족이 되리라.
너는 이 말들을 이스라엘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출19:6).
제사장 왕국에서 최고 높은 지위는 당연히 제사장이며,
대제사장은 가장 위대한 직분입니다. 하나님은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임명하시고, 계속 그 직분을 그 아들들로
하여금 계승하도록 하셨습니다. 제사장 직분은
대물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능력 있는 자를 선별해서
제사장을 삼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매해 시험이나
공채를 통해서, 경쟁을 통해서 선발하신 것이 아니라 아론은
그 아들에게 그 아들은 그 아들에게 대제사장직을 물려주게
하셨는데 이는 영적 직분이나 믿음의 사역이 대를 이어야
함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일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나 겉멋 들린 교인들이라면 ‘세습 체제’라고
격렬히 비판하겠지만 왕위가 계승되었듯이 대제사장직은
계승되었습니다.
29절입니다. [아론의
거룩한 의복들은 그의 뒤를 이을 그의 아들들의 것이 될
것이며 그들이 그것들을 입고 기름부음을 받아 거룩히
구분될 것이니라.] (출29:29). 아론이 입었던 대제사장의
의복은 직위의 계승과 더불어 승계되었습니다. 왕은 왕위를
물려주었던데 반해 대제사장은 옷을 물려주었습니다. 실제
장면을 보겠습니다. [아론의 의복을 벗겨 그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히라. 아론은 거기서 죽어 자기 백성에게로
합쳐지리라. 모세가 [주]께서 명령하신 대로 온 회중의
눈앞에서 그들과 함께 호르 산에 오르니라. 모세가 아론의
의복을 벗겨 그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히매 아론이 그
산꼭대기에서 죽으니라. 모세와 엘르아살이 산에서
내려오니] (민20:26~28). 아론의 의복이 벗겨지는 순간 그의
대제사장 직분은 끝났고, 아론은 죽었습니다. 제 2대
대제사장은 아론의 아들 가운데 하나였던 엘르아살이
계승했습니다. 대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기 위해서 옷을
입고, 기름부음을 받아 직무의 공백 없이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대제사장이 취임할 때마다 옷을 새로 만들어 입은
것이 아니라 물려 입었습니다. 옷 한 벌을 수 십년, 수 백년
입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싶지만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내가
사십 년 간 광야에서 너희를 인도하였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낡지 아니하였으며](신29:5).
40년을 입어도 헤어지지 않는 옷과 신발을 생각해 보십시오.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능력 외에는 달리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30절입니다. [그를
대신하여 제사장이 되는 아들이 회중의 성막에 들어가
거룩한 곳에서 섬길 때에는 이레 동안 그것들을 입을지니라.](30).
‘이레 동안’이란 기간은 성경에서 계속 반복되는 중요한
수입니다. 우리는 십진법을 사용하지만 주님은 7진법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일하시고 일곱째 날을
쉬심으로 7일 체계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두심으로 언약을 주셨는데 무지개는 일곱 색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7천년 체계입니다. 7은 현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완성의 수입니다. 할례를 행할 때 8일째
행하도록 하셨는데 이는 일곱째 날까지 있었던 것을 잘라
내어 버리는 것입니다. 장막절은 8일째에 거룩한 집회로
모이도록 되어 있는데 이는 주님이 창조하실 새 하늘과 새
땅이 있게 될 때를 예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이든지
일곱의 법칙에 따라 행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맹세
하신다’고 할 때 이 맹세라는 말은 히브리어로는 일곱으로
하겠다는 뜻입니다. 레위기 23,25장에는 일곱째 날, 일곱째 주,
일곱째 달, 일곱째 해 등 계속해서 7의 연속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역시 이 일곱 체계에 따라 이루어 질
것입니다.
레위기 8장에 따르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성막 안에서 일주일의 시간을 보내고(레8:33)
8일째 나왔습니다. [너희를 거룩히 구분하는 날들이
끝나기까지 이레 동안은 너희가 회중의 성막 문에서 나가지
말지니 이는 그분께서 너희를 이레 동안 거룩히 구분하실
것임이라](레8:33). 8일째 밖으로 나와서 제단에 희생물을
드리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왔고, 온 회중 앞에서 주의
불이 나와서 그 제물을 삼켜 버렸습니다(레9:24). 이는 성경이
철저하게 칠칠체계(seven systems)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를
대신하여 제사장이 되는 아들이’란 말에서 우리는
완전하지 못한 레위 제사장의 한계를 봅니다. 아론의 계열의
제사장은 영원한 제사장이 아닙니다. 죽으면 다시 세움 받고,
죽으면 또 다시 세워져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십니다. [또 율법은
연약함을 가진 사람들을 대제사장으로 삼거니와 율법이
있은 뒤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무궁토록 거룩히 구분된
아들을 대제사장으로 삼기 때문이니라.](히7:28). 주님을
대신해서 대제사장 직분을 수행할 사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를 대신하여’란 말에
주목하십시오. 우리는 앞에 누가 죽어서 그 직임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주님께서 대사의 직임을 맡겨 주셔서
대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구약과 신약의 제사장
직분의 확연한 차이점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복음
사역을 위임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시며 사람들의 범법을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해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맡기셨느니라. 그런즉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한 대사(大使)가 되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너희에게
간청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해하라.](고후5:19-20). 우리는 사역을
맡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일을 맡기신 것은 보상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를 드림은 나를 신실한 자로 여기사
내게 사역을 맡기셨음이니](딤전1:12).
31-32절입니다. [너는
거룩히 구분하여 드리는 숫양을 취하여 거룩한 곳에서 그
고기를 삶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회중의 성막 문에서 그
숫양의 고기와 바구니에 있는 빵을 먹을지니라.](31-32).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드린 희생물을 자신들의 양식으로
삼았는데 이는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양식입니다. 레위 지파에게 따로 땅을 주지 않으시고 성전에
바쳐지는 십일조와 헌물을 통해 살게 하셨듯이, 주님을
섬기는 자는 주님께 드려지는 것이 양식이 됩니다. 이는
신약 교회의 목회자들에게 동일한 원리가 적용됩니다. [거룩한
것들에 관하여 섬기는 자들이 /성/전에서 나오는 것으로
살며 제단에서 섬기는 자들이 제단과 더불어 /희생물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을 선포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9:13~14). 하나님의 제단에서 나오는
숫양의 고기와 바구니에 있는 빵은 주님을 섬기는 직무에
대한 보상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대형화되고, 목회자들이
많은 급여를 받는다는 비판이 많지만 한국 교회의 85%이상의
목회자들은 한 달 1000불이하의 월급을 받고 있습니다.
생계의 위협을 받는 목회자들이 수두룩한 현실입니다. 현재
이곳 L.A 주변에 있는 많은 한인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자들은 목자를 하기 위해서 따로 직업을 하나 가질 생각을
해야 할 형편입니다. 그러나 그 자체는 그리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레위 사람 제사장들과 온 레위 지파는
이스라엘과 함께 /나누는/ 몫도 없고 상속도 없을 것이니
그들은 불로 예비하는 [주]의 헌물과 그분의 상속물을 먹을
것이니라.](신18:1). 이는 구약이나 신약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이스라엘 각 도시로
보내면서 [여행을 위하여 짐보따리나 덧옷 두 벌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준비하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라.](마10:10)고
하셨습니다. 일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33절입니다. [그들이
속죄하는 데 쓰는 것들(the atonement was made)을 먹어 스스로를
거룩히 구분하고 거룩히 구별하되 타국인은 그것들을 먹지
못할지니 이는 그것들이 거룩하기 때문이니라.](33).
여기서 속죄(atonement)란 단어가 성경에서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히브리어로 이 단어는 ‘Kaphar'인데 뭔가를
덮는다(to make a covering)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에덴에서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을 지어 덮어
주셨다는 사실을 압니다. 사람의 죄는 덮어져야 합니다.
속죄(덮는 것)는 주님이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어린 양을
속죄로 만드시는 것 역시 주님이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속죄를 제사장이 먹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빵이요, 음료로
먹고 마십니다. 이는 입으로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주님을 속죄(atonement)로
만드셨고 우리에게 영적 양식으로 주셨습니다.
제사장들에게 제단에서
나는 것을 양식으로 먹게 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이 누가 주는 급여를 받고, 누가 주는 양식을
먹는가? 에 따라서 그 사람의 거의 모든 것이 결정됩니다.
밥줄이 누구냐? 는 누구의 명령을 받고, 누구의 권위 아래에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국가에서 주는 급여를 받으면
공무원입니다. 적국에서 주는 돈을 받으면 스파이입니다.
제단에서 난 것들을 먹는 다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먹을 것을
직접 받는 다는 것을 의미입니다. 사람의 돈을 받으면 그
사람의 영향력 아래 있게 되며, 돈을 주는 사람을 위해
일하게 됩니다. 주님은 제사장들에게서 그런 지위를 벗어나
완전히 오직 주님을 섬기는 일만 전념하도록 독립적인
지위를 누리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목회자들 역시
‘누가 나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급여를 주시는가?’를
확고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자신의 밥줄이 교회 회원이라고
생각하는 목사와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목사는 결코 같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돈을 받으면 사람의 이익을 대변할
것이고, 하나님에게 돈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이익을
대변할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철저히 하나님 중심, 하나님을
대변해야 합니다.
34절입니다. [거룩히
구분하여 드리는 고기나 빵이 조금이라도 아침까지 남아
있으면 너는 남은 것을 불로 태울지니 그것이 거룩한즉 먹지
못할지니라.](34). 백성들은 광야에서 그 날 주시는 만나를
그날 거두어 먹어야 하듯이 제사장들은 제단에 드리는
고기나 빵 역시 그날 먹어야 합니다. 남겨 두거나 따로
보관하거나 저장할 수 없습니다. 이는 매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양식만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남은 것은 모두 불로
태워서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제단에서 나오는 남는 고기를
고아나 과부 등에게 불우 이웃 돕기에 쓰거나 밀거래를
하거나 장사를 하는 따위 역시 용납될 수 없습니다. 이는
복음으로 사회 운동을 하거나 예수님의 이름을 팔아 헌금을
걷고, 교회의 돈을 유용해서 쓸데없는 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
35절입니다. [너는 내가
네게 명령한 모든 것에 따라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와
같이 행하여 이레 동안 그들을 거룩히 구분할지니라.](35).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성막 문에서 나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들을 거룩히 구분하는 날이 7일이었습니다. 8은
새로운 시작을 나타내는 수입니다. 인류는 7천년이 지난
후에 완전히 불타고 새 하늘과 새 땅이란 새 창조의 역사가
있습니다. [너희를 거룩히 구분하는 날들이 끝나기까지
이레 동안은 너희가 회중의 성막 문에서 나가지 말지니 이는
그분께서 너희를 이레 동안 거룩히 구분하실 것임이라.](레8:33).
이레란 주님이 주신 전 시간입니다. 여덟째 날은 새로운
일주일의 시작입니다. 이레 동안 거룩히 구분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날들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있는 날들이 거룩히 구분하는 날들입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하나님 앞에 두심으로 하나님을 그들을 거룩히
구분하셨듯이 모든 성도들은 늘 주님의 임재 앞에 있음으로
거룩히 구분됩니다.
36-37절입니다. [너는
날마다 속죄에 쓸 수소 한 마리를 드리고 또 제단을 위해
속죄할 때는 제단을 정결하게 하고 그것에 기름을 부어
거룩히 구별할지니라. 너는 이레 동안 제단을 위해 속죄하여
그것을 거룩히 구별할지니라. 그리하면 제단이 지극히
거룩한 제단이 될 것이요, 그 제단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지
거룩하게 되리라.](36-37).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일주일동안 성막 안에 가만히 앉아 놀거나 누워 자는 것이
아닙니다. 성막 안에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성막 안에
있는 일주일동안 날마다 속죄에 쓸 수소 한 마리를 드리고
제단을 정결하게 하고, 기름을 부어 거룩히 구별했습니다.
성막 제단이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매일
수소 한 마리씩 드렸으니 일곱 마리의 수소가 드려졌고,
기름이 부어졌습니다. 예물이 제단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제단이 예물을 거룩하게 합니다. [너희 어리석고
눈먼 자들이여, 어느 것이 더 크냐, 예물이냐 예물을 거룩히
구별하는 제단이냐?](마23:19). 무엇이나 제단 위에 놓이면
그 예물은 거룩히 구분됩니다. [너는 또 번제 헌물 제단과
그 모든 기구에 기름을 발라 그 제단을 거룩히 구별할지니
그 제단이 지극히 거룩한 제단이 되리라.](출40:10). 제단은
자체로도 거룩하지만, 그 제단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지
거룩하게 됩니다.
심지어 살인자 요압이 그
제단의 뿔을 잡았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요압은 자신을
죽이려고 오는 병사들 앞에서 얼른 성전의 제단 뿔을
잡았는데 그 순간 요압은 거룩해졌습니다(왕상2:28-32).
덕분에 요압을 잡아서 죽이는 문제는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그러나 사형에 해당하는 살인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법은
제단을 잡고 있는 거룩한 자를 파멸로 구분했습니다. 주
앞에 드려진 것은 무엇이나 거룩합니다. 반역자들이 들었던
향로라 해도 주님은 그것을 거룩하다고 하셨습니다(민16:38
참조). 여러분이 주님 앞에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린다면 여러분은 이미 거룩히 구별된 것입니다.
38-39절입니다. [이제
네가 제단 위에 드릴 것은 이러하니라. 날마다 계속해서 일
년 된 어린양 두 마리를 드리되 한 마리 어린양은 아침에
드리고 다른 어린양은 저녁에 드리며](38-39). 제사장의
직무는 날마다 계속해서 일 년 어린 양 두 마리를 아침,
저녁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항상 드릴 번제 헌물”(42)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 드려진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는
항상 하나님 앞에 드려진 번제 헌물입니다. 주님의 몸은 ‘단번에,
영원히’ 드려졌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어린 양을 드리게
한 것은 끊임없이 죄를 기억하고 우리를 구속하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드린 것은 우리의 시작과 마침이 오직 주님께
드려진 어린 양 사이에 있어야 함을 말해 줍니다.
우리의 하루 일과는 아침에 바쳐진 어린 양과 저녁에 드려진
어린 양 사이에 놓여 집니다. 이는 성도의 일생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희생의 바탕에서만 시작되고
마무리 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드려진
주님과 함께 하루가 시작되고, 주님과 함께 끝이 납니다.
아침에 하나님께 번제
헌물을 드리는 것은 제사장이 하루에 처음 해야 할 일인데,
이는 우리가 하루 중 맨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말해
줍니다. 번제 헌물은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향기를
맡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침에 기도와 감사와 찬양의
희생물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의 아침은 무엇으로
시작됩니까? 오늘 하루의 시작을 하나님 앞에 두고, 주님의
대속의 근거 위에 두십시오. 저녁에 희생물을 드리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한 모든 일들, 모든 시간들을
주님 앞에 결산 보고를 하고, 바치는 것입니다. 일꾼은
아침에 일어나서 자신이 오늘 해야 할 일을 보고하고 지시를
받아야 합니다. 저녁에는 오늘 한 일에 대해서 보고를 하고
지시를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대제사장은 아침, 저녁으로
어린 양을 번제 헌물로 드렸습니다. 저와 여러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주님께 기도와 말씀과
감사와 찬양의 제단을 쌓으시기 바랍니다.
40-41절입니다. [어린양
한 마리에 밀가루 십분의 일 /에바/와 찧은 기름 사분의 일
힌을 섞고 또 음료 헌물로 포도즙 사분의 일 힌을 드리며
다른 어린양은 저녁때에 드리되 아침의 음식 헌물과 아침의
음료 헌물과 같이 드려서 향기로운 냄새 곧 불로 예비하여 [주]께
드리는 헌물로 삼을지니](40,41). 어린 양과 함께 밀가루,
찧은 기름, 포도즙도 같이 드려졌습니다. 여기서 처음으로
음료 헌물이 언급됩니다. 이는 우리 주님께서 피를 쏟으시는
장면을 예표합니다. 음료 헌물은 주님이 쏟으신 물과 피를
예표합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그냥 죽으신 것이 아니라 온
몸의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성도들에게 영적으로
적용하면 이렇습니다. 밀가루는 땅에서 나는 밀을 빻아서
가루로 만들어 빵을 만듭니다. 밀가루는 주님이 땅에서
육신을 입으신 주님을 예표하며 그분의 인생이 한 알의
밀알처럼 되시는 것을 보여 줍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짓이겨지시고 가루가 되어 생명의 빵이
되셨습니다. 기름은 성령을 예표합니다. 주님은 성령을 통해
잉태되셨고,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광야로 가셨고, 성령을
통해 드려지셨고, 성령을 통해 부활하셨습니다. 어린 양과
성령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린 양 한 마리에
찧은 기름이 함께 드려지는 것은 자연스런 일입니다.
포도즙은 성도의 기쁨을 예표합니다. [다른 어린양은
저녁때에 드리되 아침의 음식 헌물과 아침의 음료 헌물과
같이 드려서 향기로운 냄새 곧 불로 예비하여 [주]께 드리는
헌물로 삼을지니](시104:15). 성도의 일생은 기쁨으로
가득한 삶입니다. 잔치 집에서 포도즙을 마시는 것처럼
기쁨이 가득 찬 생활이 성도의 삶입니다. 약간 웃고 마는
그런 기쁨이 아닙니다. a. 영광이 가득한 기쁨- [너희가
예수님을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지금도 보지
못하나 그분을 믿으며 이루 말할 수 없고 영광이 가득한
기쁨으로 기뻐하니](벧전1:8). b. 넘치는 기쁨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으므로
기뻐하라. 이것은 그분의 영광이 드러날 때에 너희 또한
넘치는 기쁨으로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벧전4:13). c.
충만한 기쁨 -[내가 너희에게 이 일들을 말하는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15:11). d.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 -[이제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넘어지지 아니하게 하시고 너희로
하여금 자신의 영광이 있는 곳 앞에 흠 없이 넘치는
기쁨으로 서게 하시는 분](유1:24). 기쁨이 없는 성도는
향기를 잃은 꽃이나 색상이 없는 물감이나 맛을 잃은
소금이나 빛이 없는 등이나 동력이 없는 엔진과
마찬가지입니다. 무늬는 성도이지만 차마 성도라 할 수
없습니다. [항상 주를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성도들에게 기쁨의 결여는 주님과의
교제의 결여입니다. 기쁨의 상실은 주님과의 영적 친교가
상실되었다는 신호입니다.
42절입니다. [이것은
너희 대대로 [주] 앞에서 회중의 성막 문에서 항상 드릴 번제
헌물이니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42).
위에서 말씀드린 것이 제사장의 직무입니다. ‘항상 드릴
번제 헌물’입니다. “항상”이란 말은 계속적으로,
지속적으로란 말입니다. 대제사장의 직무는 영속적인
것입니다. 이는 대제사장이신 우리 주님이 영원한
대제사장이시요, 그 직무가 영원함을 보여 줍니다(히3:1).
지속성이 없는 일은 참된 것이 아닙니다. 한, 두번 반짝 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섬기는 일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영적 희생물 역시 ‘항상’
드려져야 합니다. [회중의 성막 문에서]란 말은 주님께서
우리의 문이심을 말해 줍니다. 성막 문이 성막 안에 계신
주님을 만나러 들어가는 유일한 문이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의 지성소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러 들어 갈 수 있는
유일한 문이십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는
양들의 문이라](요10:7).
주님은 ‘이곳’에서
만나주시고, 이곳에서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번제 헌물이
드려진 그 곳에서만 만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으면 하나님과 만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옛적에 다양한 방식으로 말씀하셨으나 마지막 날들에는
아들을 통해서만 말씀하십니다(히1:1-2, 2:3-4). 주님의 음성은
번제 헌물이 드려진 회중의 성막 문에서만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지만 주님이 백성을 만나 주시는
곳은 ‘아무 곳이나 어느 곳이든지’가 아닙니다. 이는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갈보리 십자가에서만
성도들을 만나 주십니다. 십자가의 주님 앞에 나아오지
않으면 여러분은 결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으며, 거기서가
아니라면 결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갈보리 십자가를 통해서만 말씀하시고, 십자가를 통해서만
일하시며, 십자가를 통해서만 만나주십니다. 여러분 안에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피를 흘리신 십자가를 세워
두십시오. 우리의 희생 제물이 되시고, 영원한 번제 헌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드십시오. 하나님과의 깊은 친교는
오직 십자가 위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십자가는 우리의 죄에 대한 공의로운 심판이 집행된 곳이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난 곳입니다. 십자가 없는
신앙은 성막이 없는 이스라엘과 다를 바 없습니다.
43절입니다.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으로 인하여
회중의 성막이 거룩히 구별되리라.](43). 주님은 다시 한번
만남의 장소를 일러 주셨습니다.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주님이 말씀하신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아무리 주님을 찾아도 만날 수 없고, 아무리 기다려도
소용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종교에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만나려고 애를 쓰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정해 주신
장소인 갈보리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만은 철저히
외면합니다. 그래서 결코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려면 이스라엘 자손은 자신들의 죄가 처리된
회중의 성막으로 와야 하듯이, 우리는 갈보리 십자가로
나와야 합니다. 모든 식물은 자신이 죽은 무덤 자리가
자신이 태어나는 탄생 장소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성도는 십자가를 통해 죽고, 십자가를 통해 새 생명을
얻습니다. 주님은 거기서 우리를 만나시고, 주님의 영광으로
인해 성도들은 거룩히 구별됩니다.
성막 자체가 거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해 성막이 거룩히 구별되듯이,
모든 성도는 그 사람 자신의 인격이나 삶을 통해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해 거룩히
구별됩니다. [/전에는/ 너희 가운데 이 같은 자들이 더러
있었으나 /이제는/ 너희가 우리 하나님의 영을 통하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씻김을 받고 거룩히 구별되어 의롭게
되었느니라.](고전6:11). 저와 여러분은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화평의 하나님께서 친히 너희를 온전하게
거룩히 구별하시는도다. 그런즉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흠 없이 보존해 주시기를 구하노라.](살전5:23).
주님은 우리를 말씀을 통해, 성령을 통해 거룩히 구별해
주십니다.
44절입니다. [내가
회중의 성막과 제단을 거룩히 구별하며 또 아론과 그의
아들들도 다 거룩히 구별하여 제사장 직분으로 나를 섬기게
하리라.](43). 성막과 제단을 거룩하게 구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물건이 아닙니다.
어떤 업적이나 일이 아닙니다. 주님은 회중의 성막과 제단을
거룩히 구별하셨는데, 회중의 성막과 제단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제단은 예루살렘이나 로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영 밖’에 있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일은
주님께서 거룩히 구별하여 주셔야만 가능합니다. 주님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다 거룩히 구별하여 제사장 직분으로
주님을 섬기게 하셨듯이, 이 세상에는 60억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룩히 구별된 영적 제사장들뿐입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제사장의 직분을 주셨고, 제사장으로서 주님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영적 희생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제사장은 주님을 섬기는 자들이요,
주님의 사자들입니다.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여야 하리니 이는
제사장이 만군의 [주]의 사자(使者)이기 때문이니라.](말2:7).
제사장은 장차 왕국의 통치자요, 왕입니다(계5:10). 현재 저와
여러분의 신분이요, 위치입니다. 여러분은 한 가정의
아버지요, 남편이요, 직장의 직원이기에 앞서서 ‘하나님의
제사장’이란 신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가장 앞선
신분입니다. 제사장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제사장이
바쁘다는 이유로 아침, 저녁에 희생물을 드리지 않고,
시간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습니까? 집에 급한 일이
있다는 이유로, 개인적인 일로, 다른 일 때문에 주님을
섬기는 일을 뒤로 미룰 수 있습니까? 만약 그러하다면
제사장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왕같은
제사장이라면 여러분의 개인사, 가정사, business 문제로
주님을 섬기는 일을 소홀히 하는 일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취미 생활로 교회 나가는 것이 아니며, 교양으로
성경을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종으로서 주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며 순례의 참배객이 아니며,
구경꾼으로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배의 주체자요,
섬기는 자인 제사장 직분으로 예배를 드린다는 점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45-46절입니다. [내가 또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내가
[주] 곧 그들의 하나님으로서 그들 가운데 거하려고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낸 자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나는 [주]
곧 그들의 하나님이니라.] (45,46).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 가운데 거하십니다. 멀리
떨어져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한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저 멀리 하늘이나 바다
밖 어떤 성지(聖地)가 아니라 자신들의 한 가운데 있는
회중의 성막에만 나오면 즉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고,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군대에 가면 병사들이
자는 막사가 있습니다. 직업 군인들인 중사, 상사, 장교들은
저녁이면 퇴근을 하고, 아침에 출근합니다. 그러나 어떤
장교들은 막사에서 사병들과 함께 먹고 자는데 이들은
사병들과 훨씬 더 친밀하고 가깝습니다. 온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12지파의 진영 한가운데 회중의 성막을
지어 거기에 거하신다는 사실은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은 장교 정도가 아니라 구원의 대장이시지만
따로 출퇴근하시지 않으시고 항상 우리 가운데 함께
거하십니다.
신약에서는 더욱
충격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영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요일4:13).
이는 고난도의 수련이나 오랜 세월의 연단이나 시련을
통해서, 인격적 수련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주심으로 우리는 이런 사실을 압니다. 때로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전3:16). 이것을
알지 못하면 영적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시인하면 하나님께서 그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알고 또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께서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4:15-16).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으로
넣어 주시고, 거기에 거하게 하시며 하나님은 우리 몸을
성전으로 삼으시고 우리 안에 영원토록 거하십니다. 여러분
안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여러분 안에 누가 있습니까? 텅
비어 있다면 마귀들이 들어 옵니다. 주님이 거하시도록
하십시오. 성령이 충만히 거하시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을 찾기 위해 멀리
갈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러나 너희 안에 하나님의 영께서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나니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성/령은 의로 인하여 생명이
되시느니라. 만일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 세우신
분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 세우신 분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분의 영을 통하여 너희의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롬8:9~11).
하나님의 영, 성령, 그리스도의 영, 그리스도가 서로
교차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출하셔서 그들 가운데 거하셨듯이, 하나님은 죄와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구출 하셔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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