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상에 믿음을 보여 주는 유일한 한 가지 방법은 ‘몸의 행실’입니다. 성도는 제 2의 성경이란 말이 있습니다.
[너희는 우리의 마음에 쓰여 있는 우리의 서신으로 모든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너희는 우리의 사역을 통하여 분명히 드러난 그리스도의 서신이니 이것은 잉크로 쓴 것이 아니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 판에 쓴 것이 아니요, 육체의 마음 판에 쓴 것이라.](고후3:2-3).
우리는 ‘그리스도의 서신’으로서 모든 사람이 읽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믿음은 ‘몸의 행위’를 통해 보여 주어야 합니다.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약2:18)는 말씀대로 믿음은 ‘몸의 행위’를 통해 알고 읽혀집니다. 우리 속에 계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행실을 통해 드러납니다. 우리 속에 계신 성령은 열매를 통해서만 드러납니다. 우리 속에 무엇이 있는지는 향기로, 빛으로, 열매로, 행실로 밖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 우리의 행실은 복음에 합당해야 합니다. [오직 너희 행실을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할지니 ..](빌1:27). 우리는 바른 믿음, 진리에 근거한 정확한 교리적 지식 뿐 아니라 ‘바른 행실’을 가져야 합니다.
• 우리의 행실에 탐욕이 없어야 합니다. [너희 행실을 탐욕이 없게 하고 너희가 가진 것들로 만족하라....](히13:5a). 자본주의 사회, 맘몬을 신으로 섬기는 이 시대에 성도들은 물질에 대한 탐욕을 갖지 않음으로써 확연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돈 버는 일에 헌신한 성도들이 많습니다. 이익이 경건인 줄로 알고(딤전6:5), 주의 복인 줄로 아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 자들의 행실은 ‘복음에 합당한 행실’이 아닙니다. 그것은 ‘맘몬’을 섬기는 것입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우리가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니라.](딤전6:8)는 이 말씀은 탐욕에 물든 성도들이 도저히 수용하지 못하는 진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성경을 알고 믿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대로 사는 것은 쉽지 않다고 합니다. 왜 영적 지식이 믿음과 영적 생활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입니까? 바로 육신을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우리의 행실은 거룩해야 합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같이 너희도 온갖 행실에서 거룩할지니](벧전1:15). 거룩함이란 세상과 구별되고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세속적, 향락적, 육신적, 마귀적인 이 세상의 삶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살 때 ‘거룩하다’고 말합니다. 거룩한 말씀, 거룩한 믿음, 거룩한 성령을 지닌 성도들이 거룩한 행실을 보이지 못하는 것은 육신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육신이 걸림돌입니다.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합니다.
• 우리의 행실은 정직해야 합니다. [이방인들 가운데서 너희 행실을 정직하게 하라.](벧전2:12a).
• 크리스천 자매(아내)들의 행실은 정숙해야 합니다.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숙한 행실을 그들이 눈여겨보느니라.](벧전3:2). 사람들은 언제나 우리의 행실을 봅니다. 불신자들은 성도들의 언어와 행실, 추구하는 가치관을 눈여겨봅니다. 교리와 믿음은 바른 것 같은데 행실은 엉망이라는 말은 수치입니다.
• 우리의 행실은 본이 되어야 합니다. [오직 너는 말과 행실과 사랑과 영과 믿음과 순결에서 믿는 자들의 본이 되어](딤전4:12). 육신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를 때 우리는 거룩한 행실, 선한 행실, 복음에 합당한 행실, 정직한 행실, 본이 되는 행실을 할 수 있습니다.
믿음과 지식이 바로 몸의 행실로 나타나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죄와 율법에서 해방된 성도가 옛 사람의 행위들을 벗지 못해 여전히 예전과 동일한 모습으로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몸의 행실을 죽이지 못한 이들은 이전의 생활을 그대로 유지합니다. 교회를 나오고, 성경을 배우고, 예배를 드리고, 각양 다양한 영적 일들에 참여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술, 담배, 도박, 음행, 포르노, 영화, 더러운 잡지, 소설, 유행가 등 옛 생활을 단절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노력은 하지만 잘 안된다고 말합니다. 돈벌이가 되면 잠시 양심을 접어두고, 의(義)를 포기합니다. 구원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육신에 져서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육신을 처리하지 못한 성도들은 말만 있고 능력이 없습니다(고전4:20). 육신적인 일은 하지만 열매가 없습니다. 다양한 은사는 있어도 덕을 세울 수 없습니다.
글.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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