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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Pastor. Yoon


아래 쓴 글 -[하나님의 어린양은 언제 죽임을 당하셨는가?]에 보충 설명이다. 


"세상의 창건 이후로..."(계13:8, 17:8).


아래 두 구절을 자세히 비교해 보자. 똑 같은 문장 구조이다. 


1. whose names were not written "in the book of life" from the foundation of the world,(계17:8). ---생명 책이 누구의 생명 책인지 뒤에 설명을 달면 아래와 같이 된다. 

2. whose names are not written "in the book of life of the Lamb slain" from the foundation of the world.] (계 13:8). 



자, 그럼 첫번째 문장에서 "세상의 창건 이후로..."란 말이 무엇을 수식하는지 보자. 

whose names were not written "in the book of life" from the foundation of the world,(계17:8). "세상의 창건 이래로"란 부사구가 수식하는 말은?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이다.  수식어란 수식하는 말과 연결했을 때 자연스럽게 말이 된다. "세상의 창건 이후로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완벽하게 문장이 된다. 어디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는 자들인가?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았다. "이름들"은 주어이다. 본문을 다시 한 번 보자.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세상의 창건 이후로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계17:8). 
whose names are not written "in the book of life of the Lamb slain" from the foundation of the world.] (계 13:8).

"세상의 창건 이후로"란 부사구가 수식하는 말은? "기록되지 않는"이다. 수식어는 피수식어와 완벽하게 호응을 이룬다. "세상의 창건 이래로 기록되지 않는 자들..." 어떤가? 완벽하다. 어디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인가? "어린양의 생명책이다." 어린양은 그냥 어린양이 아니고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다. 그래서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의 생명책"이 된다. 세상의 창건 이래로 말이 무엇을 수식하는지 알려면 영어를 못해도 성경만 비교해도 정확히 알 수 있다. "slain"(죽임당한)은 어린양을 꾸미는 수식어로 분사이다. *the Lamb (which was) slain이란 문장으로 '어린양'을 수식하는 말일 뿐이다.

*FROM을 BEFORE, WHEN으로 이해하는 이들은 일고의 가치가 없다. 창세 전이니, 창세 때라고 말하는 이들은 아예 신경 끊자. 자기 주장을 위해 말씀을 바꾸는 이들은 상대할 가치가 없다.

계시록 13:8에서는 17:8에 있는 생명책이 누구의 생명책인지 말해 주고 있다.  생명책이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의 생명책"이라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이다."창세 이후로"란 부사구의 수식 관계가 바뀌는 것이 아니다.

창세기 13:8의 본문은 [땅에 거하는 모든 자들 곧 세상의 창건 이후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그에게 경배하리라.] (계 13:8)이다. 본문은 <세상의 창건 이후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 아니고 "세상의 창건 이후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으로 읽는 것이 정확한 수식 관계이다. 

자, 만약 필자의 문법적 구문 분석의 주장이 틀렸다고 하자. 

그럼 문법을 떠나 성경 자체의 의미론적으로 한 번 살펴 보자. 영문법의 기본 원칙은 형태보다 의미가 우선이다.

주님은 창세 이후로 죽으셨다. 창세 때나 창세 전에는 당연히 죽을 수가 없으시다. 
주님은 창세 이후로 역사적 어느 시점에 죽임을 당하셨다. 그게 언제인가? 
약 2,000년 전 갈보리 사건이다. 

창세 때는 아니고 창세 전은 더욱 아니고 창세로부터 쭉 죽었던 것은 더욱 아니다. "창세로부터, 이래로, 이후로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라고 한다면 주님은 계속해서 고난을 받았거나 여러 번 고난을 받으신 것이 된다. "영문법은 형식 우위가 아니라 내용 우위이다." 내용상 말이 안된다.

[... 이는 그분께서 친히 자신을 드리실 때에 이 일을 단 한 번에 행하셨기 때문이라.](히7:27).
[...그러나 이제 세상 끝에 그분께서 단 한 번 나타나사 자신을 희생물로 드려 죄를 제거하셨느니라.](히9:26).


성경은 *단 한번이라고 말한다. 단 한 번 나타나사 죽으셨지 창세로부터 계속해서 여러번 죽으신 것이 아니다. 그 한 번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죽음이다. 고로 '창세로부터 죽임을 당한'(slain)'이란 말은 자체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창세로부터"가 수식하는 말이 무엇인지 쉽게 결정지을 수 있다. 창세기 17:8에 완벽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약 2,000년 전 딱 한 번 자신을 죽으셨고 자신을 희생물로 드리셨다. 

자, 내용을 좀 더 살펴 보자. 

[참으로 그분께서는 세상의 창건 이전에 미리 정하여졌으되 이 마지막 때에 너희를 위해 드러나셨으며](벧전1:20). 


주님은 세상의 창건 이전에 죽임당할 어린양으로 정해지셨다. 죽으셨다는 말이 아니다. 죽음이 정해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미리 계획하신 예정이다. 하나님은 누가 십자가에 못박힐 것인지는 창세 전에 미리 정하셨다. 

그럼 주님은 언제 죽으셨는가? "이 마지막 때에 너희를 위해 드러나셨으며"라고 한다. 본문이 스스로 다 설명한다. 솔직히 영어 분석 따위가 필요치 않다. 


이 마지막 때가 언제인가? 히브리서 9:26절에 답이 있다. "이제 세상 끝에..."라고 한다. [그랬더라면 그분께서 반드시 세상의 창건 이래로 자주 고난을 당하셨어야 할 것이라. 그러나 이제 세상 끝에 그분께서 단 한 번 나타나사 자신을 희생물로 드려 죄를 제거하셨느니라.](히 9:26). 


주님은 여러번 나타나신 적이 없다. 고로 여러 번 죽으실 수 도 없다.


한 구절 더 보자.

[그러나 충만한 때가 이르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있게 하셨나니](갈 4:4).


주님께서 언제 오셨는지 알 수 있다. "충만한 때가 이르매"-미리 정하신 계획대로 이 마지막 때에 드러나셨다. 베드로가 말한 "마지막 때"요, 히브리서에 말한 "이 세상 끝에..."라고 한 그 때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 죽으심, 부활은 그분께서 미리 계획하시고 정하신 것이다.


[그분께서 [하나님]의 정하신 계획과 미리 아심을 통하여 넘겨지매 너희가 그분을 붙잡아 사악한 손으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나](행 2:23). 


베드로전서 1:20에 기록된 창세 전에 미리 정해지고 계획된 일이 성취된 사건, 시점이 여기다! 창세 전에 계획된 일이 언제 이루어졌는가 보라. 


[무엇이든지 주의 손과 주의 계획이 미리 작정하사 이루고자 하신 것을 다 행하려 하였나이다.](행 4:28). 


그분의 받으신 고난, 죽음은 창세 전에 정해진 일이고 마지막 때에 드러나 성취된 일이다. 

고로 우리는 말씀을 통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으셨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창세로부터 죽은  어린양이 아니라 창세전에 미리 정하시고 계획하신 대로  충만한 때가 이르러, 마지막 때, 이제 이 세상 끝에 나타나 죽임을 당하셨다. 이것이 성경 기록이다!


계시록 13:8의 "창세로부터"는 "죽임을 당한 어린양"을 수식하는 말이 아니라 "기록되지 않는 자들"임을 확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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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 Peter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