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오늘은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란 제목으로 말씀을 상고해보고, 함께 묵상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가운데 삼위일체(三位一體)의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해야 합니다.

첫째, 기도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해야 합니다. 기도의 대상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드려지지 않는 기도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창20:17). 느헤미야 역시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에 왕이 내게 이르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에 내가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하고](느2:4). 시편 기자 역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할지라도 [주]께서 낮에는 자신의 인자하심을 명령하시며 밤에는 그분의 노래가 내게 있으므로 내가 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시42:8). 성도들이 기도를 하면서 자신이 하는 기도 자체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도 자체보다 더 집중해야 할 것은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는 다 하나님을 향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별로 문제 의식이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아닙니다. 성경은 단지 ‘기도하더라’고 기록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주]께 기도하니라.”와 같이 기도의 대상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감옥에 갇혔으나 교회는 그를 위하여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하더라.](행12:4). “교회는 그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더라”가 아니라 “교회는 그를 위하여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하더라”란 점에 주목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란 우리가 기도할 때 분명하게,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함을 말합니다. R.A 토레이 목사님은 기도를 가르치면서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굽어보시며 기도를 듣고 계신다는 분명하고도 생생한 인식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기도를 하다보면 많은 기도에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거의 들어 있지 않고, 마음은 이리저리 방황하거나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곳 미국 사람들은 대화할 때 상대 눈을 주시하면서 대화를 하는데 이는 상대방을 똑바로 인식하면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듣는 사람 역시 말하는 사람의 눈과 입을 보면서 듣습니다. 반면 동양 사람들은 어른 앞에서는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하면 예의가 없다고 생각해서 눈을 보지 않고 말을 합니다. 이는 성경적으로는 좋지 못한 버릇입니다. 기도하기 전이나 기도하는 경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것과 우리가 간구하고 구하는 것보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으로 더 많이 사로잡혀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성령께 구하지 않고, 그리스도께 구하지 않습니다. 기도의 대상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둘째, 기도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구약 성경에서 전혀 가르쳐 주시지 않는 기도에 관한 아주 중요한 가르침을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의 이름으로 구하라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예수를 [주]요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증거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으라고 하신 바를 믿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은 하나님께 먼저 드린 것이 없기 때문에 무엇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무엇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를 흘리시고, 성경에 약속된 모든 것을 성취하셨으므로 우리는 그분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습니다. 전에 어떤 사기꾼이 고관대작들, 재벌들을 상대로만 대형 사기를 많이 쳤습니다. 그는 잡힌 후에 검찰의 심문(審問)을 받는데 ‘청와대를 사칭하니까 안되는 일이 없더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지금도 이런 예는 허다합니다. 이는 그곳이 권력의 핵심이요,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가 누구를 들이대어도 소용이 없지만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통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것은 너희로 하여금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남아 있게 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그분께서 다 주시게 하려 함이라.](요15:16).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기도의 원칙을 봅니다.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구하지 아니하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면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리라.](요16:23). 여기서 다시 나옵니다.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이것은 기도의 원칙(原則)입니다. 이것은 킹제임스 성경에서만 발견되는 진리입니다.3)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예수를 하나님의 독생자요, 하나님 자신이시며, 구약에 약속하신 구속에 관한 모든 하나님의 사역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음을 내가 믿고 받아들였음을 주님 앞에 간증하는 것이며,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나의 공로나 의가 아니라 우리 주님이 흘리신 피의 공로와 의로 구원받은 것을 근거로 하나님 앞에 나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새롭고 살아 있는 길로 지성소에 들어갈 담대함을 얻게 되었나니](히10:19).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음을 믿을 뿐 아니라 다시 오실 것을 또한 믿는 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나의 죄가 십자가에서 이미 처리되었음을 알며,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그 사실을 선포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진영 밖에 계신 주님을 만나기 위해 진영 밖에 나간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휘장 안에 계신 주님을 만나러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자기 자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히 구별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느니라. 그런즉 우리가 그분의 수치를 짊어지고 진영 밖에 계신 그분께로 나아가자.](히13:12-13)[우리에게 있는 이 소망은 혼의 닻과 같아서 확실하고 굳건하여 휘장 안에 있는 곳으로 들어가나니](히6:19).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에 관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증거를 진리로 받아들입니다’라는 고백인 동시에 우리 역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참으로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신실한 믿음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올라오는 기도에 예외없이 모두 다 응답하십니다.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 [그 날에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라....](요16:26a).

전에 제가 공항에 경찰로 근무할 때 어떤 택시 기사가 한국 여행을 하던 미국인을 끌고 왔습니다. 기사의 말인즉 손님이 택시를 내릴 때 요금을 달라고 했더니 돈을 주지 않고 종이에 뭐를 써서 주더란 것입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이곳 미국인들이 쓰는 개인 수표(personal check)을 봤습니다. 택시 기사 역시 개인 수표에 대한 개념이 없었는데다, 그 check은 한국에서는 어느 은행에 가더라도 현찰로 쓸 수가 없는 것이기에 사기꾼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미국인 여행객은 현찰이 없어서 수표를 줬는데 왜 안받느냐?고 했습니다. 저는 “당신은 한국의 어떤 은행에도 계좌가 없으므로 당신의 이름으로 된 수표는 소용없소!”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저 하늘에 어떤 계좌도 없기 때문에 우리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거부가 자신의 서명이 된 수표 책을 한 권 준다면 우리는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가 마음대로 필요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서명이 된 백지 수표 책이 있는데, “나는 돈이 없다.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할 바보는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된 백지 수표 책을 평생동안 사용해도 남을 만큼 많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은 좀처럼 사용하지 않고 자꾸 다른 방법으로 주님께 청구하려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셋째,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 안에서’란 기도에 대한 이 두 가지는 기도에 대한 가장 중요한 계시라고 할 수 있으며, 성도들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항상 기도하되 모든 성도를 위하여 모든 인내와 간구로 이 일에 주의를 기울이고](엡6:18). 제자들은 이전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신약 성도들에게 이 둘은 모든 종교와 구분해 주는 것이며, 참된 기도의 능력이요, 비결입니다. 유대인들은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많은 이단 종파에 속한 사람들도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결코 성령 안에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예수의 이름으로, 성령 안에서 하는 기도가 아닌 것은 결코 바른 기도로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의뢰하고 있습니다. 이 중 어느 한 가지만 깨어져도 바른 기도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성령의 이름으로 예수께 구하는 것은 바른 기도가 아니며, 예수의 이름으로 성령께 기도하는 것 역시 바른 기도가 아닙니다. 바른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 안에서] 하는 기도입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성령과의 인격적 교제와 인도하심에 순종하면서 기도한다는 것이요,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기도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믿는 자에게 풍성하게 부어주시는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인해(딛3:5-6) 우리는 성령 안에서 살며, 성령 안에서 걸으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거듭난 성도라면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외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여전히 신비처럼, 애매 모호하고 추상적으로 남아 있는 말이 ‘성령 안에서’란 말입니다. 도대체 성령 안에서 걷는 것이 무엇인지, 성령 안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성령 안에서 의롭게 되고,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는 말이 무엇인지 모른 채 그냥 살아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여러분은 성령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보통 그 사람이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대해서 알려면 그 어휘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지 보면 됩니다. 여러분은 성령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순절 교회나 은사주의 교회 성도들은 흔히 성령하면 방언이나 신유와 같은 기적을 일으키는 은사나 불같은 능력을 생각합니다. 많은 교회들과 거짓 교사들이 그렇게 가르친 까닭에 성도들 가운데는 성령 세례, 성령 은사 등과 같은 것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성령’하면 지혜와 지식, 계시의 영으로 이해하는 분도 있습니다. 성령하면 '성령의 불'이라고 폭발적인 부흥, 강력한 권능을 연상시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마다 성령에 대해서 자기 마음 가운데 배운 대로, 들은 대로 이해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받은 성도라면 성령 세례(침례)가 아니라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하며, 성령의 은사를 많이 받기를 구할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가 많이 맺히기를 구해야 합니다.

성령은 성도의 거듭남에서부터 전 일생을 관장하시지만 오늘 저희가 특별히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성령과 기도]의 관계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기도를 돕는 기도의 동역자요,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해 구하시는 기도의 중보자이십니다. 하늘에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고, 이 땅에서는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 기도하시고 계십니다. 성령은 그 다양한 역할로 인해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지치고 상한 영혼을 위로하시는 위로자요, 진리 한가운데로 인도하는 인도자이시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증인이시며, 놀라운 카운슬러(상담자)이십니다. 그 중에 하나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돕는 자이신데, 특히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이는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신음으로 친히 우리를 위하여 중보(仲保)하시기 때문이니라.](롬8:26). 성령은 우리를 직접 도우실 수 있지만 먼저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고, 기도해 주심으로 우리를 돕는 방법을 택하십니다. 우리가 바른 기도를 드릴 수 있다면 하나님의 도우시는 능력과 지혜와 필요한 모든 것들을 능히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 안에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게 하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게 하셨습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기도란 뜻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진리 한 가운데로 인도하심으로 자신의 욕심이나 욕망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대로 구하도록 도우십니다.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성/령 안에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욕심을 따라 구할 때가 많습니다.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육체의 소욕을 대적하십니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먼저 간구하는 영을 부어 주심으로 그들을 도우십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주민들 위에 은혜의 영과 간구하는 영을 부어 주리니...](슥12:10).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성령이 기도를 도우시는 역할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간구하는 영’을 부어 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뜨게 하고, 회개로 돌이키기 위한 것입니다. 주님은 바르게 기도할 수 있도록 성령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자신의 뜻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심으로 우리에게 기도 제목을 주십니다. 우리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알게 되는데, 성령께서는 바로 그 역할을 하십니다. [너희는 내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내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잠1:23). 주님은 자신의 영(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내 말들’(말씀들)을 알려 주리라 말씀하십니다. 성령께서 조명을 주시고, 성령께서 이해하게 하시며, 성령께서 알려 주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바른 기도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성령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아버지께 기도한 결과입니다. 주님이 성령을 보내주시도록 아버지께 구한 것은 첫째, 우리와 영원히 함께 거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분께서 다른 위로자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거하게 하시리니](요14:16). 둘째, 우리를 가르치시고 말씀을 기억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위로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 그분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말하였든지 다 기억나게 하시리라.](요14:26). 셋째,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위로자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는 진리의 영께서 오실 때에 그분께서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15:26). 넷째, 우리를 도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기 위함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이는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신음으로 친히 우리를 위하여 중보(仲保)하시기 때문이니라.](롬8:26).

성령 안에서 기도할 때 우리는 사역에 필요한 지혜와 명철을 얻고, 주님을 섬기는데 필요한 온갖 일을 할 줄 알게 됩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는 말씀은 우리의 타고난 지혜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명철로 하나님이 명하신 모든 것을 할 줄 알기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6:1을 보십시오. 역사상 처음으로 성막을 짓게 되었을 때, 그 일을 누가 했습니까? [그때에 브살레엘과 아홀리압과 마음이 지혜로운 자 곧 [주]께서 지혜와 명철(明哲)을 부어 주사 성소에서 섬기는 데 필요한 온갖 일을 할 줄 알게 된 자들이 [주]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에 따라 일을 하니라.](출36:1). 일찍이 배운 적도, 본 적도 없는 각종 모형과 그릇들, 정교한 모든 것들을 그들은 주님께서 주신 지혜와 명철을 통해 온갖 일을 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성령을 통해서 지역 교회를 세우고, 지역 교회를 섬기는데 필요한 온갖 일을 할 줄 알게 됩니다. 지역 교회를 섬기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성령은 기도를 가르치시고, 기도로 사역을 지원하게 합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는 말씀은 성령을 통해 열매맺기를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는 비결은 주님 안에 꾸준히 거하는 것이며, 말씀이 풍성히 우리 속에 거하는 것입니다. 핵심은 우리의 마음 상태입니다. 밭의 상태에 따라 씨는 좋은 열매,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지만 가시 덤불, 돌짝 밭에는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면 광야가 열매를 맺는 밭이 되고, 밭은 아예 울창한 숲으로 변합니다. 이는 풍성한 생명력을 통한 넘치는 수확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주께서/ 위로부터 영(靈)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열매를 많이 맺는 밭이 되며 열매를 많이 맺던 밭은 숲으로 여겨지리라.](사32:15). 주님은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좋은 땅(밭)에 뿌려진 씨앗은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막4:20). 씨앗은 모두 동일하지만 밭의 상태에 따라서 열매를 맺는 비율이 다릅니다. 여기에 좋은 밭이 되는 비결이 제시되어 있는데, 광야같은 곳이라 할지라도 /주/께서 위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면 열매를 많이 맺는 밭이 됩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의 마음 밭을 일구는 것입니다. [[주]께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너희의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씨를 뿌리지 말라.](렘4:3). 세상 근심과 염려로, 마음의 완악함과 불신으로 교회는 겨우 겨우 나오지만 전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기도를 거의 하지 않거나, 기도를 해도 성령 안에서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마음 밭은 묵은 땅이요, 가시덤불과 같아서 씨가 뿌려져도 자랄 수가 없습니다. [/너희는/ 너희 자신을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로 거두며 너희의 묵은 땅을 부술지니 이는 지금이 곧 [주]를 찾을 때이기 때문이라. 마침내 그분께서 오사 의를 비같이 너희에게 내리시리라.](호10:12). 호세아 역시 열매 맺지 못하는 백성들을 향해 ‘너희의 묵은 땅을 부술지니’라고 권면합니다. 대충 아무렇게나 기도하고 기도했다고 생각하면 그는 어떤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그것은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멋대로 하는 기도입니다. 주님은 생물들을 창조하신 후 ‘열매를 맺으라’(창1:22, 28)고 명하셨습니다. 주님은 성도들에게 많은 열매, 더 많은 열매를 맺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일이 성령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는 열매를 맺는 기도가 됩니다. 주님은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며,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각양 좋은 은사들을 주십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을 통해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성령을 통해서만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성령으로 거듭난 생명이 없는 사람은 거짓 은사를 자랑할 수는 있지만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는 말씀은 성장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생명은 성장하지 않으면 그것은 재앙이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성장하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잎사귀도 못 내는 나무가 열매를 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기도한다면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도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는 내가 목마른 자에게 물을 부어 주며 마른 땅에 큰 물들을 내고 내 영을 네 씨에게 내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줄 것임이니 그들이 풀 가운데 있는 것같이 솟아나며 수로(水路) 옆의 버드나무같이 솟아나리라.](사44:3~4). 빈들의 마른 풀 같고 광야의 히스나무 같은 백성들이 솟아나기 위해서는 주님이 큰 물들을 내고, 성령을 부어 주셔야만 가능합니다. 성령은 주로 물로 상징됩니다.

수로(水路) 옆의 버드나무처럼 솟아나기 위해서 우리는 주야로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1복있는 사람은... 2오직 [주]의 율법을 기뻐하며 그분의 율법을 밤낮으로 묵상하는도다. 3그는 강가에 심은 나무가 제 철에 열매를 맺으며 또 그 잎사귀가 시들지 아니함 같으니 무슨 일을 하든지 다 형통하리로다.](시1:1-3). 강가의 나무는 더위가 와도,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심겨있는가? 우리의 뿌리는 어디에 내려져 있는가?는 우리의 영적인 삶에 승패를 좌우하는 매우 중대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생수의 근원되신 주님 안에 깊이 뿌리 내릴 때 강가에 심긴 나무와 같이 될 것입니다.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 속에 거하게 하옵시고 또 너희가 사랑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터를 잡아](엡3:17).

 강가에 심긴 나무처럼 되려면 주를 신뢰하고 주께 소망을 두면 됩니다. [[주]를 신뢰하며 [주]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이는 그가 물가에 심은 나무 같아서 그 뿌리를 강가에 뻗치고 더위가 오는 때를 보지 아니하며 그 잎이 푸르르고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으며 열매맺는 일을 그치지 아니할 것임이라.](렘17:7-8).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는 말씀은 영적 전투의 승리를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기도는 전투의 승리를 결정지어주는 가장 핵심 요소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전투를 수행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제 전신갑주를 지어 주셨습니까? 에덴에서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신 이후로 주님은 우리에게 옷을 입혀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새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옷은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기도 하고, 직업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군인이 전쟁터에서 입어야 할 옷은 갑옷입니다. 우리는 사울이 다윗에게 준 그런 종류의 갑옷을 입을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닙니다. 우리의 싸움은 기업간의 전쟁이나 국가간의 첩보전이나 정보 전쟁이나 무역 전쟁이 아닙니다. 우리의 싸움은 빛과 어둠의 전쟁입니다. 주님은 자신이 군사로 모집한 자들에게 빛의 갑옷을 입게 하셨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행위를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13:12).

이 옷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훌륭한 군사로 소집된 군인들에게 모두 값없이 지급해 주셨기에 ‘하나님의 전신갑주’(엡6:11,13)라고 불립니다. 이 옷은 진리의 허리 띠, 의의 흉갑, 화평의 복음을 예비한 신발,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이 한 세트로 된 그런 옷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8은 [그러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려 믿음과 사랑의 흉갑(胸鉀)을 입고 구원의 소망을 투구로 쓰자.](살전5:8)고 말하는데 ‘의의 흉갑’이 ‘믿음과 사랑의 흉갑’으로, ‘구원의 투구’가 ‘구원의 소망의 투구’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갑옷에서 가장 중요하게 언급하고 보호하는 부분인 바로 가슴(흉갑)과 머리(투구)란 점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가슴을 찔리면 즉사합니다. 머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가슴을 지키는 장비를 의의 흉갑이요, 믿음과 사랑의 흉갑이라고 언급하는 점을 볼 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의, 말씀을 통한 믿음,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이란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의, 믿음, 사랑 이것이 우리의 가슴을 지켜 줍니다. 우리의 머리를 지켜 주는 것은 구원의 투구, 구원의 소망의 투구란 점을 볼 때 분명한 구원의 확신이 없이는 머리가 텅빈 것과 같으며, 뇌성마비 환자와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이 흔들리면 머리가 흔들리는 것이며, 구원에 대한 확신이 공격받으면 머리를 두들겨 맞고 있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갑옷만 입었다고 전쟁을 잘 하는 군사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성령의 검을 잡았으면 그에 해당하는 실전적 전술과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항상 기도하되 모든 성도를 위하여 모든 인내와 간구로 이 일에 주의를 기울이고](엡6:18). 여호수아가 칼로 적과 싸울 때 모세는 산에서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미스바에 모여 죄를 회개할 때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왔습니다. 그 때 사무엘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양을 취하여 전체로 번제 헌물로 [주]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주]께 부르짖으매 [주]께서 그의 말을 들으셨더라. 사무엘이 번제 헌물을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왔으나 그 날에 [주]께서 큰 천둥으로 블레셋 사람들을 치사 그들을 무찌르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므로 ](삼상7:9-10). 이스라엘에 기도하는 엘리사가 있을 때 시리아는 이스라엘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먼저 엘리사를 잡고 난 후에 전쟁을 하고자 군대를 보냈지만 주님은 불말과 불병거를 시리아 군대보다 더 많이 배치해 두셨습니다. 엘리사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시리아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그가 [주]께 기도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이 사람들을 치사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니 그분께서 엘리사의 말대로 그들을 치사 눈을 어둡게 하시니라.](왕하6:18). 엘리사의 이 짧은 한 마디의 기도로 그들은 모두 눈이 어둡게 되어 버렸습니다. 기도없이는 아무리 좋은 갑옷, 좋은 칼을 잡았다 해도 승리할 수 없습니다. 유대의 아사 왕은 이디오피아의 100만 대군을 맞아서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했을 때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아사가 [주] 자기 하나님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여, 많은 사람들로 돕든지 능력이 없는 자들로 돕든지 주께는 문제가 되지 아니하나이다. 오 [주]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를 도우소서. 이는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으로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음이니이다. 오 [주]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대하14:11). 히스기야 역시 이런 좋은 기도의 본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가 당시 최강의 앗시리아의 공격을 받았을 때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런즉, 오 [주] 우리 하나님이여, 간청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땅의 모든 왕국이 주는 유일하신 [주] 하나님인 줄 알리이다, 하니라.](왕하19:19). 이것이 바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는 칼도 활도 잡지 않았지만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주님은 주의 천사를 보내셔서 전쟁을 단숨에 끝내시고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 밤에 [주]의 천사가 나아가 아시리아 사람들의 진영에서 십팔만 오천 명을 치매 사람들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니, 보라, 그들이 다 죽어 송장이 되었더라.](왕하19:35).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은 갑옷이나 무기의 덕이 아니라 주를 이름을 믿고 부르는 믿음에 있었듯이 우리 역시 언제나 성령 안에서 기도함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할 뿐 아니라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법을 배워서 항상 기도하고, 모든 성도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을지라도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너희 자신을 세우며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고](유20). 마지막 때에 우리는 더욱더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빕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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