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보내사(I)
말씀: 시147:18-19
요절: 시147:18-19
저희 교회는 지난 한 해 동안 성경 읽기를 매우 강조하고 모두 3독 이상의 성경을 읽도록 권면한 적이 있습니다. 하루에 30 페이지씩 성경을 읽게 했는데 한영 대역 성경이기 때문에 실제로 그리 많지 않는 양입니다. 돌이켜 볼 때 믿음은 말씀을 읽고, 들은 양에 절대적으로 비례한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는 것은 영적 능력의 힘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핑계도 많고, 변명도 많지만 성경을 꾸준히 읽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결단코 없습니다. 성경을 읽는 일은 주님께서 왕들에게 주신 명령이며, 제사장들에게 주신 명령입니다(신17:19). 이는 아버지가 자녀에게 주는 명령입니다. 이는 성공을 보장하는 길이며, 형통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성경을 읽는 일은 영적인 보화를 캐는 일입니다. 주님은 광산을 주셨고, 캐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성경 읽는 일은 만나를 먹는 것과 같습니다.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는 일은 주님이 하시고 주워서 먹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성경을 읽는 일은 물을 마시고, 씻는 일과 같습니다. 비를 내리시고, 샘을 주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시는 분은 주님이시지만 마시고, 씻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성경을 읽는 일은 주님이 보내신 편지를 읽는 일과 같습니다. 우리는 신약 성경의 대부분이 편지란 사실을 압니다. 로마서에서 유다서까지는 각 교회 성도들에게 주님이 보내신 편지들입니다. 주님이 보내신 편지를 겉봉만 훑어보거나 대충 보았다면 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중요한 편지일수록 읽고 또 읽어 보고,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려 하듯이 주님의 주신 서신을 그렇게 읽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주신 책입니다. 책의 표지만 보거나 여기 저기 대충 보는 것은 저자를 무시하거나 모독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중요한 책을 결코 그렇게 볼 수 없듯이 성경을 결코 그렇게 볼 수 없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반복해서 통독을 해야 하며 읽다가 중요한 부분은 표시를 해두고, 암송해 가면서 읽고 또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는 일은 내 안의 마음 밭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이 주신 씨앗을 창고에만 두고 뿌리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열매를 볼 수도 거둘 수도 없을 것입니다. 전도서 기자가 말하기를, [바람을 살피는 자는 씨를 뿌리지 못할 것이요, 구름들을 주목하는 자는 거두지 못하리로다.](전11:4)고 했습니다. 바람을 살피는 자란 ‘사업이 바쁘다, 아이들 숙제를 봐 주어야 한다, 자매를 도와야 한다, 몸이 피곤하다’ 등의 합당하고 정당한 핑계를 만드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바람은 현재 자신이 접하고 있으며, 피부에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업이나 자녀 양육이나 가정 일 등은 모두 여러분이 현재 피부에 접하는 일들입니다. 이런 일로 씨를 뿌리지 못합니다. 씨앗을 뿌려도 자꾸 날려 버립니다. 구름들을 주목하는 자란 현재보다는 미래에 대한 예측으로 인해 일을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비가 올 것 같은 예상을 하면 할 수 있는 일들이 줄어 듭니다. 사업 계획이나 각종 인생의 계획, 걱정, 염려 등으로 인해 말씀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 내일을 걱정하고 염려하고 자랑하고 계획하면서 부지런히 오늘을 사는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말씀의 씨앗을 뿌릴 수가 없습니다. 이는 단지 전도의 씨앗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먼저 자신 안에 말씀을 풍성히 거하게 하여 열매를 거두어야 합니다(골3:16).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풍성히 거하게...](요15). 여러분은 주야로 성경을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 읽기가 신앙 생활이나 삶에 무슨 큰 도움이나 유익이 될까 생각하기도 하고, 성경을 많이 읽는 것이 영적인 삶의 전부가 아니라며 입에 거품을 뭅니다. 그것은 마귀의 가르침입니다. 성경은 읽어 두면 영육(靈肉)간에 반드시 도움이 되며, 풍성한 복이 됩니다. [/너는/ 아침에 네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네 손을 금하지 말라. 그 까닭은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은 그 둘 다 똑같이 좋을는지 네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라.](전11:6). 하나님은 뿌릴 씨앗을 주셨음에도 이런 저런 핑계와 이유만을 대면서 성경을 읽기를 거부하는 자들은 회개해야 합니다.
때로 신령하고 믿음 좋은 체 하는 사람들이 성경 읽기를 방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격이 중요하다. 마음이 중요하다. 삶이 중요하다” 등등의 그럴듯한 말과 속이는 말을 쏟아내다가 한 마디의 말씀이라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더 좋은 말을 합니다. 그러다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마지막 Finish Blow를 터뜨리는데, “성경 읽는 것 그만 두고 마음을 닦으세요”란 것입니다. 그런 자들을 향해 여러분은 “마귀야 내 뒤로 물러가라”고 담대히 꾸짖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그런 음성이 들려와도 “마귀야 물러가라” 단호히 대적하시고 꾸준히 말씀의 씨앗을 뿌리시기 바랍니다. [씨를 뿌리려고 쟁기질하는 자가 하루종일 쟁기질만 하겠느냐? 자기 땅의 흙덩어리를 캐내어 부수기만 하겠느냐?](사28:24). 땅만 갈아엎고, 쟁기질 하고, 흙덩어리만 부수면 무엇을 합니까? 씨를 뿌려야 합니다. 때로 마음이 너무 완악하고 거짓되어 말씀이 들어가지 않는 땅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회개하면 될 일이지 성경 읽기를 중단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말씀대로 살지도 않으면서 성경은 많이 읽어서 무엇하느냐? 성경 공부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 는 등의 설교나 말은 마귀의 음성입니다. 그것은 나의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가 아닙니다(아2:8). 인격을 갖추고, 생활을 깨끗이 하고, 삶을 거룩하게 한 다음에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마귀의 논리요, 마귀의 음성입니다.
씨를 뿌리는 농부라면 누구나 물가에 뿌리고 싶어 합니다.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의 발을 그리로 보내는 너희는 복이 있느니라.](사32:20). 물가에 심긴 나무, 물가에 뿌려진 씨앗은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성령으로 충만하고, 회개의 눈물이 풍성하고, 주를 위해 수고하는 땀이 난다면 물은 충분합니다. 성령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며, 생수의 강입니다. 누구나 좋은 밭에 씨를 뿌리고 싶어 합니다. 거기에 뿌리면 30배에서 100배의 열매를 거둡니다. 성경을 읽는 일과 땅을 가는 일은 결코 분리되지 않습니다.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께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너희의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씨를 뿌리지 말라.](렘4:3). “보라, 성경은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에 씨를 뿌리지 말라고 했다.” 맞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이 성경을 읽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구절은 “너희는 가시덤불이니 말씀의 씨앗을 뿌리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씨앗을 뿌릴 수 있도록 묵은 땅을 갈아서 뿌리라는 것”입니다. 뿌리지 말라가 핵심이 아니라 “묵은 땅을 갈고 뿌리라”가 핵심입니다. [/너희는/ 너희 자신을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로 거두며 너희의 묵은 땅을 부술지니 이는 지금이 곧 [주]를 찾을 때이기 때문이라. 마침내 그분께서 오사 의를 비같이 너희에게 내리시리라.](호10:12). 우리는 말씀을 읽기 싫어하는 마음이 들 때 이미 내 마음 밭은 묵은 땅이 되어가고 있으며, 가시덤불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설교를 듣는데 달게 받아 들여지지 않고 삐딱하게 받아들여지고 자꾸 토를 달게 되면 여러분의 마음은 갈아엎어야 할 때란 신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보내셨습니다. 받는 것은 여러분이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 주셨듯이 말씀을 보내 주심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가르치시고, 단련하시며, 보호하십니다.
주님은 오늘날 성도들에게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마틴 루터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롬1:17)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주님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쟌 웨슬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믿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오직 성경 한권이면 족합니다. 미국 남부에서는 어느 평신도 부부가 시작한 성경 읽기 모임이 부흥하여 수십 명 이상의 성경 공부팀이 형성되었고, 거기서 헌신된 선교사들이 대거 배출되었습니다. 성경 읽기만으로도 우리는 삶이 완전히 변화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읽는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 읽기만으로도 우리는 삶이 변화되며, 영적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책이기에 그 자체만으로 완전한 책이며, 누구라도 쉽게 읽고 얼마든지 변화 받을 수 있습니다(벧후 1:21). [베레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고귀하여 온전히 준비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이 과연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탐구하므로](행17:11). 주님이 맨 먼저 하신 일도 성경을 읽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가 자라난 나사렛에 가사 늘 하시던 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눅4:16).
주님이 사람들에게 명령하신 것도 성경을 읽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을 탐구하라. 이는 너희가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기 때문이니 성경이 바로 나에 대하여 증거하느니라.](요5:39).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성경 읽기를 가장 강조했습니다.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면하는 것과 교리를 가르치는 것에 마음을 쏟으라.](딤전4:13). 읽어야 합니다. 주님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그가 자기 왕국의 왕좌에 앉거든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 있는 그것에서 이 율법을 책으로 한 권 필사(筆寫)하여 평생토록 자기 곁에 두고 읽어서 [주] 자기 하나님 두려워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법규를 지켜 행할 것이니라.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자기 형제들 위로 올라가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그러면 이스라엘 한가운데서 그와 그의 아들들이 자기 왕국에서 자기 날들을길게 하리라.] (신17:18~20). 여기에는 성경 읽기의 유익이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두려워하기를 배웁니다. 성경을 읽을 때 겸손하게 됩니다. 성경을 읽을 때 좌우로 치우치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날들이 길어집니다. 주님은 평생토록 자기 곁에 성경을 두고 읽으라고 하셨습니다.
성경 읽기는 성공을 형통함과 성공의 첫 단추입니다. [너는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밤낮으로 그 안에서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이는 그리하면 네가 네 길을 형통하게 하며 또한 크게 성공할 것임이라.](수1:8).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고 하셨는데 이는 성경 읽기를 말합니다. 묵상은 읽은 말씀을 마음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며,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은 읽은 말씀을 몸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어야 할 책은 많아 보여도 오직 한 권 성경 읽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성경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내 아들아, 이것들이 네 눈에서 떠나지 말게 하고 건전한 지혜와 분별을 지킬지어다.](잠3:21), [그것들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 한가운데 간직하라.](잠4:21).
이스라엘이 타락했을 때 그들은 성경을 읽음으로써 영적 회복과 부흥을 맞았습니다. 출애굽의 여정 속에서 그들은 성경을 읽었습니다. [언약의 책을 가져다가 백성이 듣는 데서 읽으매 그들이 이르되, [주]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행하고 순종하리이다, 하니](출24:7). 그들은 낭독되는 말씀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하나님께 순종할 것을 결단했습니다. 이것이 헌신이요, 예배요, 참된 섬김입니다. 여러분들은 말씀을 통해 이런 결단을 하게 된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제대로 들은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회개와 부흥이 옵니다.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주]의 집에서 율법
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왕하22:8). 사반은 성경을 읽고 나서 왕
앞에서 그 책을 읽었습니다. [또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보여 주며 이르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었나이다, 하고 왕 앞에서 그 책을 읽으매 왕이 율법 책의 말씀들을 듣고는 자기 옷을 찢으니라.](왕하22:8~11).
사반이 성경을 읽었고, 왕이 사반이 읽는 성경의 말씀을 들었을 때 이스라엘은 타락의 긴 터널을 벗어나 영적 부흥을 맞았습니다. 히스기야는 민족이 왜 이토록 망해가는지 알았고, 주님이 왜 진노하셨는지 깨달았으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주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통해서 자신의 문제, 가족의 문제, 교회의 문제, 조국의 문제를 깨닫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 영적 각성과 부흥이 옵니다. 참된 경배는 성경을 펴들고 읽는데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온 백성이 한 사람처럼 물 문 앞 거리에 함께 모여 서기관 에스라에게 [주]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 책을 가져 오라 말하매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 책을 가져다가 남녀 회중과 지각(知覺)이 있어 들을 수 있는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 물 문 앞 거리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와 여자와 깨달을 수 있는 사람들 앞에서 읽으매 온 백성이 그 율법 책에 귀를 기울였더라.] (느8:1~3). 제사장 에스라가 성경을 들었고, 백성들은 새벽부터 정오까지 에스라가 읽는 성경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30-40분 설교하는 것을 에어콘이 켜진 방에서 평안히 앉아서 듣는 것이 아니라 야외의 내리쬐는 햇볕에서 서서 들었습니다. [(서기관 에스라가 온 백성 위에 있으므로) 온 백성의 눈앞에서 책을 펴니 그가 책을 펼 때에 온 백성이 일어서니라. 에스라가 [주] 곧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송하매 온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머리를 숙여 얼굴을 땅에 대고 [주]께 경배하였느니라.] (느8:5~6). 그들은 성경책을 펴서 주님을 찬송할 때 온 백성들은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성경을 통해 주의 말씀을 들은 백성들의 반응이야말로 참된 경배입니다. 이들은 성경 낭송을 통해 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울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에서 책을 명료하게 낭독하고 그 의미를 알려 주어 그들로 하여금 그 낭독하는 것을 깨닫게 하니라. /그때에/ 온 백성이 율법의 말씀들을 듣고 울므로 디르사다인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서기관인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온 백성에게 이르기를, 이 날은 [주] 너희 하나님께 거룩한 날이니 애곡하지 말며 슬피 울지 말라, 하고](느8:8~9). 말씀을 펼 때 경배하고, 말씀을 듣고 우는 백성들!! 이것이 바로 영적 부흥입니다. 이후에도 그들의 성경 읽기는 계속되었습니다. [또 그들이 낮 사분의 일 동안에는 자기 자리에 서서 [주] 자기들의 하나님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또 낮 사분의 일 동안에는 /죄를/ 고백하며 [주] 자기들의 하나님께 경배하니라.](느9:3). 영적 각성과 영적 부흥은 기록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말이 아니라 그 자체가 생명입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삽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눅4:4). 하나님의 말씀은 빵이요, 물이요, 꿀이며, 불이요, 칼이요, 망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빛이요, 방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영적 자원을 공급합니다.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이라면(약2:26) 영적 자원이 없이 사는 삶은 죽은 삶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요6:63).
2.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습니다.
[믿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깨닫나니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니라.](히11:3).
3.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붙들고 계십니다.
[이아들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분의 인격의 정확한 형상이시라. 그분께서 자신의 권능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붙드시며 친히 우리의 죄들을 정결하게 하신 후에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히1:3).
4.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보관하고 계십니다.
[지금 있는 하늘들과 땅은 /주께서/ 같은 말씀으로 보관하사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에 불사르기 위하여 예비해 두신 것이라.](벧후3:7).
5.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자신의 뜻에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으니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피조물 가운데 첫 열매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약1:18). [너희가 다시 태어난 것은 썩을 씨에서 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에서 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니라.](벧전1:23).
6.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을 줍니다. [그가 네게 말씀을 전하리니 그 말씀으로 너와 네 온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다, 하거늘](행11:14).
오늘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말씀인지 그 성격에 대해서 전하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은 순수한 말씀입니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단련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시12:6). 불순물이 도가니에서 완전히 정제된 은은 자신의 얼굴을 볼 때 환히 보이는 거울과 같은 정도의 은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든지 그 앞에 서면 마음 속 깊은 곳까지 다 비추어 주는 거울과 같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거짓말할 수 있고, 합리화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고, 감출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주의 말씀은 심히 순수하므로 주의 종이 그것을 사랑하나이다.](시119:140). 말씀이 순수하다는 것은 말씀의 정화 작용에 대한 언급입니다. 순수한 말씀은 생각이나 상상조차도 악한 것으로 기울게 하지 않습니다. 순수한 마음, 순수한 양심, 순수한 신앙은 순수한 말씀에서만 나올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순수한 말씀을 제쳐두고 마음이 순수해야 성경을 읽는다는 식의 생각을 한다면 어리석기 그지없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순수하며 그분은 자신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방패가 되시느니라.](잠30:5). 순수한 말씀이란 왜곡, 거짓, 편견, 부풀림이 전혀 없고, 불순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안심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신뢰할 수 있습니다. 조금의 오염 물질도 없을 만큼 완벽하게 순수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수 천년이 아니라 영원히 지나도 변질되지 않으며, 부패되지 않으며, 해롭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신뢰할 때 주님은 방패가 되십니다. [새로 태어난 아기들로서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여 이 젖으로 자라가도록 하라](벧전2:2). 순수한 말씀은 성도를 자라나게 하는 양식입니다. 왜 오늘날 교회의 성도들이 성장이 없고, 열매가 없느냐고 물으면 교회가 어쩌고 설교가 어쩌고, 오늘날 기독교가 어쩌고 별별 진단이 많지만 핵심은 그들이 순수한 말씀의 젖을 사모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 말씀을 먹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 주의 말씀은 단련된 말씀입니다.
단련되었다는 것은 마치 금이나 은이나 놋 등이 불속에서 단련되어 불순물이 다 제거되었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불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은 광택이 나고 단단해지고 깨끗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꼭 그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금속보다 강하여 불속이나 물속에나 그 어디라도 들어갈 수 있으며, 그런 과정을 통해서 더욱 단련됩니다. 여러분은 10년 전에 들었던 설교나 지금 들었던 설교의 내용이 같아도 동일하게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몇 십년 전에 읽었던 성경을 읽으면 또 다르게 느껴지고, 또 다르게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은 살아 있으며 단련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 말하건대 그분의 길은 완전하고 [주]의 말씀은 단련되어 /순수하니/ 그분은 자신을 신뢰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가 되시는도다.](삼하22:31). 여러분이 한 때는 의심했고, 싫어했고, 무관심했고, 멸시했던 말씀들이 새롭게 능력있고 은혜롭게 내게 다가오는 체험이 있을 것입니다. 말씀은 수천년의 역사를 통해서 수없이 시험과 공격과 근거없는 비방과 의심과 욕을 먹었지만 그럴 때마다 더욱더 강력하게 역사했습니다. 우리 개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으로 말하건대 그분의 길은 완전하고 [주]의 말씀은 단련되어 /순수하니/ 그분은 자신을 신뢰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가 되시는도다.](시18:30). 단련된 말씀이 여러분을 단련합니다. 말씀이 단련된 것처럼 여러분은 말씀을 통해 단련됩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그분께서 한 사람을 그들보다 앞서 보내셨으니 곧 요셉이라. 그가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족쇄에 상하고 그는 쇠/사슬/에 매였으니 그분의 말씀이 임하기까지 /그러하였도다/. [주]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시105:17-19). 고난과 시련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진리임이 드러나듯이 여러분은 고난과 시련을 통해 우리가 읽고 듣고 믿는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신뢰할 만한 말씀이란 사실이 입증됩니다. 이것은 모든 신앙인들이 간증하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단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은을 단련함같이 우리를 단련하셨음이니이다.](시66: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분께서 아시나니 그분께서 나를 단련하신 뒤에는 내가 정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10). 어떻게 단련합니까? 말씀을 보내셔서 단련하십니다. 여러분은 한 가지 사건에서 한 마디 말씀을 더욱 깊이 배우게 됩니다.
셋째, 주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영생은 모든 사람의 꿈입니다. 생명이 없이는 삶이 없습니다. 생명이 출발이고 삶이 결과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통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 생명을 얻으려고 합니다. 이는 본말(本末)이 전도된 것입니다. [처음부터 계신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1:1).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이시며, 생명의 말씀이십니다. [... {주}여, 영원한 생명의 말씀들이 주께 있사온대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6:68). 여러분들은 이 생명의 말씀을 통해 더욱 풍성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영적인 생명이 없이 영적인 삶을 사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아예 불가능합니다. 때로 영적인 것처럼 산다 해도 그것은 위조품이요, 흉내 내는 것이지 영적인 삶이 아닙니다. 경건한 삶은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성품(divine nature), 신성한 권능이 없이는 나올 수 없습니다. [우리를 부르사 영광과 덕에 이르게 하신 분을 아는 것을 통하여 그분의 신성한 권능이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나니](벧후1:3). 생명의 말씀을 받지 않고 영적이고 경건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일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제시해야 할 말씀입니다. [가서... 이 생명의 말씀을 백성에게 다 말하라](행5:20). [또한 /너희는/ 생명의 말씀을 제시할지니...] (빌2:16). 우리는 삶을 제시하기 전에 생명을 제시해야 합니다. 우리는 당연히 우리가 땅에 속한 생명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생명으로 살고 있음을 삶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말로나 행위로나 우리 속에 있는 생명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살아 계신 생명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갈2:20). 내 안에 사는 생명은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생명의 말씀이시기에 우리에게 말씀을 보내셔서 살리십니다. [내가 고난 당할 때에 이것이 내 위로가 되었사오니 이는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시119:50).
넷째, 주의 말씀은 믿음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말하느냐? 그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이라](롬10:8). 믿음의 말씀이란 믿음을 주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읽을 때 믿음이 생기며, 이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즉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느니라.](롬10:17). 믿음은 성도들에게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믿음을 어떻게 크고 강하게 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여러분이 믿음의 말씀들을 얼마나 읽고 듣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믿음의 말씀들로 양육됩니다. [네가 형제들에게 이것들을 기억하게 하면 네가 도달한 믿음의 말씀들과 선한 교리의 말씀들로 양육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사역자가 되리라.](딤전4:6). 여러분이 주님의 사역자가 되고, 무슨 영적인 일을 하고자 한다면 필히 믿음의 말씀으로 양육 받아야 합니다.
다섯째, 주의 말씀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너로 하여금 진리의 말씀들의 확실함을 알게 하며 또 너에게 /사람을/ 보내는 자들에게 진리의 말씀들로 답변하게 하려 함이 아니겠느냐?](잠22:21). [ .../여기/ 기록된 것은 올바른 것이요, 곧 진리의 말씀들이로다](전12:10).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확실히 알아야 하며, 답변해 줄 수 있기 위해서 공부해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은 믿음의 대상을 넘어서 부지런히 공부해야 할 것들입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2:15). 성경을 읽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이외로 많은 성도들이 일주일에 교회 오는 것이 전부인 사람도 있고, 그것마저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대신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속기를 잘하며, 이리 저리 흔들리는 법입니다. 믿음이 약하다는 형제들을 보면 그들이 성경을 읽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읽는 척을 하기에 부지런히 읽나 보다 싶으면 지속성이 전혀 없습니다. 일주일을 채 가지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진리의 말씀을 낳으셨습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뜻에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으니... ](약1:18). 이는 우리가 진리를 통해서만 살아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 태생의 근원이 바로 진리의 말씀입니다.
여섯째, 주의 말씀은 은혜의 말씀입니다.
[이제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의 말씀에 맡기노니 이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워 거룩히 구별된 모든 자들 가운데서 너희에게 상속을 주리라.](행20:32). 은혜의 말씀은 강건하게 합니다. 여러분들의 은혜의 말씀을 맛보면 볼수록 속 사람은 강건해지고, 든든히 세움을 입습니다. [그러므로 내 아들아, 너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은혜 안에서 강건한 자가 되고](딤후2:1). 여러분은 마음 속에 늘 말씀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獨生)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성령 충만이란 말씀 충만이며, 말씀 충만이라 곧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을 증거하실 때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은혜로운 말씀’이었다는 점입니다. [모두가 그분을 증거하고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혜로운 말씀에 놀라서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하더라.](눅4:22). 그들은 주님을 아는 지식이나 진리의 지식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했지만 주님의 말씀이 매우 은혜로운 말씀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사도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오랫동안 머물며 {주} 안에서 담대하게 말하매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이적을 행하게 하사 은혜의 말씀에 증거를 주시니라.](행14:3). 성경의 모든 말씀이 은혜의 말씀이 아닌 것이 없지만 특히 우리에게 힘과 위로를 주는 은혜로운 말씀들이 있습니다. 은혜를 얻기를 원한다면 말씀을 보고 들으십시오. 은혜가 풍성한 삶은 은혜로운 말씀을 통해서 나옵니다. 주님은 은혜가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주]께서 그 앞으로 지나가시며 선포하시되, [주]로다. 긍휼이 많고 은혜롭고 오래 참고 선함과 진리가 풍성한 [주] 하나님이로다.](출34:6). 풍성한 은혜의 주님을 맛보려면 말씀의 은혜를 맛보시기 바랍니다. 설교를 통해 은혜를 입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예배가 끝난 후에 얼굴 표정이 다르고, 말투가 다릅니다. 은혜를 입은 사람이 은혜가 풍성한 삶을 삽니다.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하여 있나니 이것은 많은 사람의 감사를 통하여 풍성한 은혜가 넘쳐 나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려 함이라.](고후4:15), [그런즉 너희가 모든 일 곧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열심과 우리를 사랑하는 일에 풍성한 것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할지니라.](고후8:7). 고린도 교회가 은혜가 풍성한 일을 했던 것은 이들이 은혜를 풍성이 받았음을 보여 주는 예입니다. 여러분들의 감사, 찬양, 헌금, 물질의 나눔, 구제 등은 강요로 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은혜의 말씀을 받아 누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일곱째, 주의 말씀은 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음식에 비유하자면 은혜의 말씀이 우유라면 의의 말씀은 고기에 해당합니다. [이는 젖을 사용하는 자마다 갓난아이이므로 의의 말씀에 능숙하지 못한 자로되](히5:13). 성경은 때로 어렵고 사람을 시험에 들게 하며, 부담스럽습니다. 어떤 부분은 입에는 달지만 배에는 씁니다. 오늘날 교회는 은혜의 말씀을 잘 증거하는 목사님들이 많고, 은혜를 받았다는 분들의 간증도 많습니다. 감동이 되고, 전적으로 뜻을 같이하는 말씀들을 들으면 기분도 좋습니다. 덕분에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기저귀를 차고 있는 성도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귀엽지만 성장이 멈추었다면 그보다 더 슬픈 일은 없습니다.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단단한/ 음식으로 하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지금까지 너희가 그것을 능히 감당하지 못하였으며 지금도 못하기 때문이라.](고전3:2). 이들은 의의 말씀을 접하지 않았거나 거부했기 때문에 늘 젖으로만 살아야 하는 성도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자라나야 하며, 장성해야 합니다. 의의 말씀은 지각을 사용해서선악을 분별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담스러워하지 말고 의의 말씀을 바라고 사모해야 합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과 주의 의의 말씀을 바라며 쇠약하오니](시119:123). 젖을 주지 않는다고 떼를 쓰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젖을 떼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고통스럽고, 울고, 불어도 과감히 젖을 떼고 입에다 어른들이 먹는 음식을 넣어주고 씹게 해야 합니다. 못 먹으면 굶겨서라도 먹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젖을 떼어야 할 나이에도 젖을 물고 있게 됩니다. 우리 교회는 지금 이런 성장통을 겪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나는 저런 설교가 싫어!! ....앙앙 웁니다. 얼굴은 굳어지고, 노려봅니다. 그러나 이 과정은 필수적입니다. 젖을 떼고 고기를 줄 때 아이들이 보이는 반응입니다. 그러나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반드시 그 과정을 거칩니다. 매정하고 매몰차 보여도 그 일을 합니다. 늘 삼강오륜(三綱五倫)과 같은 도덕적인 설교, 젖에 해당하는 부드럽고 은혜로운 설교만 하지 않습니다. 단단하고 질긴 고기를 내어 놓고 먹게 합니다.
여덟째, 주의 말씀은 권능의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그분의 가르침에 깜짝 놀라니 이는 그분의 말씀에 권능이 있었음이더라.](눅4:32). [이에 그들이 다 심히 놀라며 서로 말하되, 이 어떠한 말씀인가! 권위와 권능으로 부정한 영들에게 명령한즉 그들이 나가는도다, 하더라.](눅4:36). 주님의 말씀의 권능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의 말과 차이입니다. 사람들의 말은 그냥 말입니다. 산을 향해 말하는 것은 고사하고, 책상을 향해 “움직여라!” 백번을 말해도 움직이게 하는 권능(힘-power)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을 하시면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되어지는 권능이 있습니다. [이 아들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분의 인격의 정확한 형상이시라. 그분께서 자신의 권능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붙드시며 친히 우리의 죄들을 정결하게 하신 후에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히1:3). 하나님은 말씀으로 모든 것을 지으셨을 뿐 아니라 말씀으로 모든 것을 붙들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권능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권능이 있어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骨髓)를 찔러 나누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니](히4:12). 우리가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그냥 말씀을 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권능의 말씀을 통해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입의 말로는 아무 것도 되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말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입으로는 무엇을 못하느냐? 는 조롱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입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갈 때 우리 입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입에서 생명의 말씀이 나가면 생명을 주고, 진리의 말씀이 나가면 해답이 없는 인생들에게 답변을 주며, 은혜의 말씀이 나가면 강건하게 하고, 믿음의 말씀이 나가면 믿음을 주며, 의의 말씀이 나가면 정확한 판단력을 줍니다.
권능은 모두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경건의 능력, 성령의 능력, 믿음의 능력, 학습 능력, 돈을 벌 능력조차도 다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능력을 얻고자 한다면 여러분은 믿음으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고, 사용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재물과 존귀가 다 주께로부터 나오며 또 주는 모든 것을 다스리사 손에 권능과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29:12). 주님을 통해 권능을 얻고자 한다면 권능의 말씀을 보십시오. [이 하나님은 곧 능력으로 내게 띠를 두르시며 내 길을 완전하게 하시는 이시니](시18:32). 다윗이 능력이 있었던 것은 그의 학문이나 지혜나 가문이나 인물이나 백성들의 인기나 지지 기반이 튼튼해서가 아닙니다. 그는 늘 주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데서 말씀의 권능을 힘입어 살았습니다. [오 나의 능력이시요, 나의 구속자(救贖者)이신 [주]여, 내 입의 말과 내 마음의 묵상(默想)이 주의 눈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 되기를 원하나이다.](시19:14).
아홉째, 주의 말씀은 선한 말씀입니다. [또 시내 산에 강림하시고 하늘에서부터 그들과 말씀하사 바른 법도와 참된 율법과 선한 법규와 명령을 그들에게 주시고](느9:13).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선한 말씀입니다. 선한 말씀, 선한 법규, 주의 선하심을 맛보고 알아야 합니다. [오 /너희는/ [주]의 선하심을 맛보고 알지어다.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은 복이 있도다.](시34:8). 우리 말에는 “쓴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린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혜로우심을 맛보고 알아야 제대로 사람이 됩니다. 주의 말씀이 송이 꿀보다 달고, 생수보다 시원하고, 버터보다 달콤한 경험을 해 보아야 합니다. [너희가 {주}의 은혜로우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벧전2:3). 우리의 입이 어디에 길들여지고, 무엇을 맛보아 아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을 읽고 또 읽을 때 여러분은 그 맛을 알게 됩니다.
열 번째, 주의 말씀은 지혜와 지식과 명철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으면 단순한 자는 민감하게 되며, 우둔한 자는 지혜로운 자가 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통하여 지식의 말씀을,](고전12:8). 어떤 많은 책을 읽어도 사람은 지혜를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공부할 때 누구나 지혜를 얻게 됩니다. 요즘 어려서부터 조기 교육을 시키고, 아이들 교육이라면 정신을 못차리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지혜를 주는 교육은 학교나 학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또 어린 아이때부터 네가 성경 기록들을 알았기 때문이니 그것들은 능히 너를 지혜롭게 하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느니라.](딤후3:15). 어릴 때부터 성경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이 지혜와 지식과 명철을 주기 때문입니다. 새벽 기도를 열심히 나가는 어떤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서 매일 기도했습니다. 자기 자식이 솔로몬과 같이 하나님의 지혜를 얻어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기를 구하고 또 구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성경을 보았는데 다음가 같은 구절을 보았습니다. [주의 증거들이 나의 묵상이 되므로 나의 모든 스승보다 더 많은 명철이 내게 있으며 내가 주의 훈계들을 지키므로 노인들보다 잘 깨닫나이다.] (시119:99~100).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나의 모든 스승”-학교에서든 사회에서든 인생에서든 누구를 막론하고-보다 더 많은 명철이 있게 되며, 그것들을 지킬 때 노인들보다 잘 깨닫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자신이 지혜롭게 되는 것이나 자녀를 지혜롭게 하는 방법은 같습니다. [네 귀를 기울여 지혜로운 자의 말씀들을 들으며 네 마음을 내 지식에 쏟을지어다.](잠22:17)란 말씀에 순종하면 됩니다. 여러분은 부지런히 설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성경 공부, 기도 모임, 주일 예배 등 모임에는 가능한 한 다 참석하십시오.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일은 집중력과 인내력을 요구합니다. 성경을 읽는 일은 어떤 직업에 종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힘을 쏟아야 하는 일입니다. 말씀의 효능에 대해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요약합니다. [[주]의 율법은 완전하여 혼을 회심(回心)시키고 [주]의 증거는 확실하여 단순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주]의 법규들은 정당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의 명령은 순수하여 눈을 밝게 하는도다. [주]의 두려우심은 깨끗하여 영원토록 지속되고 [주]의 판단들은 진실하고 다 의로우니 참으로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또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주의 종이 또한 이것들로 경고를 받나니 이것들을 지킬 때에 큰 보상(報償)이 있나이다.] (시19:7~11). 지혜와 지식, 명철의 말씀들은 쉽게 습득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말씀들은 그동안 자라오면서 배우고, 익혀온 가치관, 생각, 사상 등을 모두 깨뜨리고 버리게 하며, 처리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채찍을 맞는 것처럼 아프기도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때 내 가슴 속으로 강하게 파고드는 못과 같이 박힙니다. 그래서 빠지지 않고 평생 동안 내 마음 속에 있게 됩니다. 저는 처음 성경을 공부할 때 요한복음 8:32절과 로마서 1:17 두 구절이 얼마나 깊게 박혔는지 아직도 그 말씀에 모든 것을 걸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말하기를 [지혜로운 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집회의 스승들이 굳게 박은 못들 같으니 이 말씀들은 한 목자께서 주신 것이니라.](전12:11)고 했습니다. 저 역시 여러분에게 지혜의 말씀들을 주기를 힘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고치시고, 건지시고, 녹이시며, 필요를 공급하십니다. 말씀으로 비추시고, 말씀으로 깨닫게 하시며, 책망하시고, 징계하십니다. 말씀으로 위로를 주고 말씀으로 씻으시며, 먹이십니다. [자신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며 멸망들에서 그들을 건지셨도다.](시107:20). 주님의 말씀으로 추운 겨울에 얼어 있는 대지를 녹이시고 싹이 나게 하시며, 얼어붙은 강을 녹이사 물이 흐르게 하십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자신의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들이 흐르는도다. 그분께서 자신의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자신의 법규들과 판단들을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시147:18~19). “말씀을 보내사” -이것이 핵심입니다. 주님은 말씀을 보내 주셨습니다.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시매 이 말씀이 이스라엘 위에 임하였으므로](사9:8). 이제 여러분이 받을 차례입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어떻게 대하는가? 에 따라 주님은 그 말씀에 있는 대로 복을 주시기도 하고, 저주를 내리시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보내 주시는 말씀을 거부했을 때 포로가 되었고, 멸망했습니다.
말씀을 보내시는 하나님께서는 동시에 말씀을 선포할 자신의 사자들을 보내십니다. 대언자, 목사, 교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보내신다는 것은 주님께서 사람을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성령의 역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보내시고, 세운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혀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나옵니다. 우리는 역대기를 기술한 한 성경 역사가의 증언을 들어 보아야 합니다. [[주]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과 자신의 거하는 곳을 불쌍히 여기사 자신의 사자(使者)들을 통하여 백성에게 /말씀을/ 보내고 늦기 전에 일어나 보내셨으나 그들이 하나님의 사자들을 조롱하고 그분의 말씀들을 멸시하며 그분의 대언자들을 학대하여 마침내 [주]께서 자신의 백성을 향해 진노하사 구제할 방법이 없게 되었으니] (대하36:15~16). 주님이 하신 일은 자신의 사자들을 통하여 ‘말씀을 보내신 것’입니다. 이 일은 신, 구약을 막론하고 동일합니다. 주님은 자신의 종들을 통해 말씀을 보내십니다. 성령이 있고, 성경이 있으면 족할 것 같은데 주님은 목자와 교사를 세우시고 그들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저는 누가 저를 욕하는 것이나 무시하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저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거나 딴죽을 걸고 불평하는 것은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누가 제 개인을 욕하고 비난하는 것은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말씀과 기도로 섬기고 가르치기 위해 이곳에 있지 군림하고 섬김 받고 존경받기 위해 이곳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하는 말씀을 받지 않는 일은 목사의 힘을 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주]께서 너희에게 자신의 모든 종 대언자들을 일찍부터 일어나 보내시고 보내셨으나 너희가 주의하여 듣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여 듣지도 아니하였도다.](렘25:4). 이것이 패망의 지름길이었습니다. 주님은 말씀을 보내 주실 때 선생들을 보내 주십니다. 주님은 선생들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비록 {주}께서 너희에게 역경의 빵과 고통의 물을 주시나 다시는 네 선생들을 구석진 곳으로 옮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선생들을 볼 것이며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나는 말을 네 귀가 들으리니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 길로 걸으라, 할 것이며] (사30:20~21). 성경을 가르치는 일은 목자들이 전념해야 할 일입니다.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면하는 것과 교리를 가르치는 것에 마음을 쏟으라.](딤전4:13). 성경을 읽고, 권면하고, 교리를 가르치는 일을 하는 것이 제가 주께로부터 받은 사역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도록 촉구하고 권면하는 일 역시 제가 할 일입니다. 저는 올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여러분들에게 성경 읽기를 다시 한번 촉구하며 이 말씀들을 생명의 양식이요, 삶의 법전이요, 능력이요, 지혜요,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이곳 말씀 침례교회를 통해 여러분이 배움을 입고 영적 성장을 이룬다면 주님께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입니다. 이곳이 여러분의 영적 삶의 터전이 되고, 이곳의 사역자가 되고, 섬기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말씀을 보내시고 계심을 믿으시고, 그 말씀을 받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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