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Pastor. Yoon

11/18/2018 주의 첫날 설교

믿음을 드러내자.
말씀: 약2:18




동영상 https://youtu.be/H2mj6_rxZAs

음성 파일 https://www.mediafire.com/file/k7f7aa03f776d5h/Med842-show_thy_faith.mp3/file


내용 요약


오늘은 “믿음을 드러내자”(manifestation of faith)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다양하게 표출됩니다. 우리 속에 주어진 그리스도의 믿음은 말로, 행위로, 빛으로, 열매로, 향기로 드러납니다. 우리 속에 있는 믿음은 다양한 모습으로 반응합니다. 믿음은 행위로 보이고 드러납니다. 믿음의 말은 들립니다. 믿음의 행위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믿음이라고 하면 살아있는 믿음, 구원하는 믿음, 큰 믿음, 작은 믿음, 거짓 없는 믿음(딤전1:5), 꾸밈없는 믿음(딤후1:5), 행위 없는 믿음(= 죽은 믿음) 등으로 많이 나옵니다. 우리는 어떤 믿음의 소유자인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히11:6). 복음서의 백부장과 수로보니게 여인은 큰 믿음의 소유자로 칭찬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리라.”(마8:7)라고 말씀하시자 백부장은 “[주]여, 주께서 내 지붕 아래로 오심을 내가 감당할 자격이 없사온즉 오직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종이 낫겠나이다.”(마8:8)라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와서 고쳐 주기를 원합니다. 손이라도 얹어 주거나 기도해 주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이런 사람들과는 달리 오실 필요가 없이 다만 말씀만 하시면 자기 종이 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그 말을 들으시고 놀라셨습니다. 그리고 따르던 자들에게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에서 이렇게 큰 믿음은 내가 결코 보지 못하였노라.”(마8:10)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놀란 일은 이것이 유일합니다. 수로보니게 여인 역시 이방인이었습니다. 주님은 “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가 원하는 대로 그 일이 이루어질지어다.”(마15:28)란 말을 들었습니다. 큰 믿음이란 주의 말씀만으로 족한 믿음입니다. 증거나 표적을 구하지 않고 오직 주님으로 충분하고, 주의 말씀으로 충분하다고 믿는 것이 ‘큰 믿음’입니다. 


적은 믿음은 염려하는 믿음입니다. 주를 믿지만 사건이나 어떤 환경에서 근심하고 두려워하고 의심하는 자들을 향해 주님은 “오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하십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걱정하고 장래 일을 염려하는 크리스천들은 모두 “오 너희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6:30)란 책망을 듣게 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오 믿음이 적은 자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마8:26)란 꾸중을 듣습니다. 믿음으로 행하다가 실족해서 “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하는 자들 역시 주님으로부터 “오 믿음이 적은 자여, 어찌하여 의심하였느냐?”(마14:31)란 말씀을 듣습니다. 제자들은 광야에서 백성들에게 빵을 준 뒤에 그것을 가져오지 않는 것을 걱정했습니다. 그들은 늘 먹을 것에 대한 염려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경제 사정에 민감합니다. 돈 문제는 누구나 심각합니다. 그 때 주님은 “.. 오 믿음이 적은 자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빵을 가져오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끼리 의논하느냐?”(마16:8)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떠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모든 필요를 공급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문제는 믿음입니다. 믿으면서도 염려하는 것은 적은 믿음입니다. 의심하면서 믿는 것이 적은 믿음입니다. 우리는 모두 큰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구원하는 믿음이란 주께 믿음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주께 왔지만 구원하는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극히 적었습니다. 혈루증을 앓는 여자는 군중들 속에 있는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그분의 옷단에 손을 댔습니다(마9:20). 손을 댄 이유는 이러했습니다. “그녀가 속으로 이르기를, 내가 그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온전하게 되리라, 하였기 때문이더라.”(마9:21). 주님은 그녀를 보시며, “...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온전하게 하였느니라,”(마9:22)고 하셨습니다. 주께서는 자신이 고쳐 주셨지만 “네 믿음이 너를 온전하게 하였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믿고 나오는 자는 믿음의 보상을 받습니다. 주의 이름을 믿고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그 시각에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하는 믿음은 주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어떤 소경은 “다윗의 자손 예수님이여,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막10:47)라고 외쳤습니다. 사람들이 입 다물라고 하자 더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란 사실을 믿었고 불렀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주여, 내가 시력을 받게 해 주옵소서.”(막10:51)라고 했습니다. 이 소경의 말을 주목하십시오. 그는 예수님을 “주여”라고 불렀습니다. 랍비나 선생이라고 부른 것이 아니라 다윗의 자손, 주라고 불렀습니다. 그분이 주요, 그리스도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믿고 구했습니다. 결과는 구원입니다. “네 길로 가라. 네 믿음이 너를 온전하게 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즉시 시력을 받고 길에서 예수님을 따르니라.”(막10:52). 이 사람은 눈을 떴지만 우리는 혼의 구원을 받습니다. “이는 너희가 너희 믿음의 결말 곧 너희 혼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라.”(벧전1:9). 구원을 얻는 믿음이 ‘구원하는 믿음’입니다. 

살아 있는 믿음이란 겨자씩 한 알만한 작은 믿음이지만 산을 움직이고 뽕나무를 바다에 옮겨 심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불가능이 없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믿지 아니하기 때문이로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에게 만일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 있을진대 너희가 이 산에게 말하여, 여기서 저 너머로 옮겨 가라, 하면 그것이 옮겨 갈 것이요, 또 너희에게 불가능한 것이 아무것도 없으리라.”(마17:20). 열매를 맺는 믿음이 살아 있는 믿음입니다. 주의 능력이 임하는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제자들은 이 믿음을 갖기를 원했습니다. 사도들은 주님께 구했습니다. “사도들이 [주]께 이르되, 우리의 믿음을 증대시켜 주옵소서.”(눅17:5). 그때 주님은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7:6절,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만일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너희가 이 뽕나무에게 이르기를, 뿌리째 뽑혀 바다에 심겨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눅17:6). 살아 있는 믿음이라면 작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면 불가능이 없다는 것입니다. 산을 옮기기 위해서 산만한 믿음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통해 주의 권능, 힘, 능력이 역사할 수 있도록 하면 충분합니다. 

거짓 없는 믿음, 꾸밈없는 믿음은 우리의 마음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행위 없는 믿음은 믿음의 행위, 열매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도 행위가 없으면 그것만으로는 죽은 것이니라.”(약2:17). “그러나, 오 허무한 사람아, 행위 없는 믿음이 죽은 것인 줄 네가 알고자 하느냐?”(약2:20). 이 말씀은 믿음과 은혜만 강조하는 크리스천들에게 머리통을 내려치는 말씀입니다. 육신의 행위, 율법의 행위와 상관없이 ‘오직 믿음, 오직 은혜’로 구원 받는다는 교리를 붙들고 있는 크리스천들에게 야고보서의 이런 말씀은 양립불가, 조화가 안되는 말씀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크리스천들이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야고보는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위와 함께 일하고 행위로 믿음이 완전하게 되지 아니하였느냐?”(약2:22), “그런즉 너희가 보거니와 사람이 행위로 의롭게 되고 단지 믿음만으로 되지 아니하느니라.”(약2:24),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위 없는 믿음도 죽었느니라.”(약2:26)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행위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행위를 한 사람은 NOTHING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권능, 생명이 흐르는 통로입니다. 믿음은 열매를 맺게 하는 수단입니다. 믿음은 능력을 발휘하는 도구입니다.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고 믿음이 없는 행위는 죽은 행위들이요(히6:1), 육신의 행위, 종교 행위입니다. 믿음은 행위를 통해서 보입니다.  -설교 중에서 부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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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 Peter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