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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Pastor. Yoon

이민교회 100년 이야기

1. 한인교회사 연구의 몇 가지 근본 문제

이제 3년의 짧은 세월이 지나면 한국인들이 미국에 건너와 산지도 1백년이 지나게 된다. 2003년 1월 13일이면 이민사 제 2세기에 접어든다. 지난 1백년의 한국인 미주이민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무엇보다도 한인이민교회의 발자취를 빼놓을 수 없다. 왜냐하면 교회가 우리 민족의 이민 역사와 사회의 한복판에 서 왔기 때문이다. 이것을 부인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여기에서는 한국인 미주이민사(韓國人 美洲移民史) 제 2세기의 여명기에 접어들면서 지난 1백년 동안의 이민교회의 역사를 정리하는 작업에서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몇 가지 기본문제를 서술하려는 것이다.

첫째, 역사 연구 또는 서술작업에 있어서 부딪치는 것이 시대구분(時代區分)의 문제이다. 지난 1세기의 역사 흐름을 어떤 기준에서 여러 시간으로 나누어 쓰는가 하는 것이다.

둘째, 역사를 이끌어 온 주체(主體)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민교회를 이끌어 온 활동의 중심세력이 사회적으로 어느 계층이었느냐에 따라 역사흐름의 성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셋째, 한인이민교회가 민족사와 세계교회사와 관련하여 차지하는 위치(位置)와 성격(性格)이다. 미주한인들의 신앙공동체(信仰共同體)인 이민교회는 세계적인 교회의 일원으로서 민족사적 과제를 수행하여 온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미국사회와 문화 속에서 한민족의 역사적 소명에 충실하였던 이민자들의 신앙공동체가 펼친 활동을 민족사적 내지는 교회사적 입장에서 평가하게 된다.

넷째, 이민교회의 신학적 지향성(神學的 指向性)을 따져야 한다. 이민교회사는 먼저 민족교회(民族敎會)로서 미국에서 전개된 역사이기에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신학적 경향을 지니게 된다. 이민교회의 역사적 참여에 깔려 있으면서 그 참여를 통하여 형성된 신앙의 내용과 신학적 특징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위의 네 가지 문제를 풀어야 미주 한인 이민교회사(美洲 韓人 移民敎會史)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교회사는 하나 하나의 교회의 삶을 기록하자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역사와 문화의 틀 속에 자리잡고 살아 온 전체로서의 한인교회의 삶을 정리하고 평가하는 작업이다. 곧 이민교회에 관한 역사연구이다. 그런데 한인교회의 삶을 좌우하여 온 것은 미국사회의 한 소수민족으로 살아 온 한인공동체(韓人共同體)가 그 구성원들의 생활적인 요구 및 복지향상을 위한 작업과 함께 한민족공동체(韓民族 共同體)가 겪어 온 숱한 시련과 아픔 그리고 기쁨에 참여하여 온 일이다. 때로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한인신앙공동체 구성원들은 비록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민족에 대한 사랑에서 자기를 끊을 수 없다는 정도로 민족에 대한 열정과 연대가 강렬한 것이었다.

1. 이민교회사의 시대구분

1)제 1기
미주한인이민의 역사에는 여명기가 있지만 이민교회사에는 여명기가 없다는 사실을 우선 지적해 두고 싶다. 1882년 5월 22일 한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뒤 그 이듬해부터 1902년 말까지 50명 미만의 한국인들이 개별적으로 미국에 건너왔다. 처음에는 정부 사절단이 그 뒤에는 몇몇의 망명객들과 유학생들 그리고 상인들과 하와이 농장에서 일자리를 잡은 10여명의 노동자들이 일본과 중국을 거쳐 미국에 왔었다. 그러나 그 시기에는 신앙공동체로서의 한인교회가 형성되지 않았다.

미국의 한인이민교회는 첫 이민자들이 집단을 이루어 하와이섬에 첫발을 디디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1903년 1월 13일 겔릭(S.S.Gaelic)호로 호놀루루에 내리게 된다. 그들은 구한말(舊韓末) 시대의 한국의 여러 교회에서 하와이농장에서 일할 노동자로 모집되었으며 이곳에 도착하여서는 목사 또는 교회 지도자들의 안내를 받고 하와이 여러 섬에 나뉘어 농장에서 일하기 시작하였다. 공휴일인 주일(主日)에는 대개가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린 뒤 향수를 풀고 나라를 살리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물론 이들의 교회는 이민자들이 집단적으로 일하고 살고 있던 오아후섬의 가후쿠와 와이알루아 농장에 맨 먼저 세워졌다. 그러나 지금까지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교회는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의 전신인 한인감리교선교회이다. 1903년 11월 3일호 놀루루에서 시작한 교회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가 그 뒤 미국 대륙으로 건너와 역시 오렌지 및 포도밭과 논에서 일하면서 공부하려고 역시 미국에 건너 온 유학생들과 더불어 살게 되었다. 이 때에도 곳곳에 있는 한인교회를 중심 삼아 공동체 생활을 하였다. 조국이 이웃 나라 일본에게 먹히고 민족이 그들의 노예가 된 세월에 그들은 교회에 모여 독립운동을 줄기차게 펴나갔다.

1919년 3월 한반도 전역에서 벌떼처럼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의 열매로 세워진 중국 상해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도왔던 이민교회의 활동은 특기할 만한 것이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 제국의 호놀루루항 공격으로 시작된 태평양전쟁 중에는 하와이와 캘리포니아에 있던 몇 십개의 한인교회가 중심이 되어 전쟁에 나아가 광복을 위하여 싸울 지원병을 모았으며 수도 워싱턴 D.C.에 구미위원부를 세워 독립외교를 펼치는 일을 도왔다.

대개는 1903년에서 1905년까지 한국인 노동자들이 하와이 농장에 들어오기 시작한 이민 초창기(移民 草創期)부터 주권상실(主權喪失)과 독립운동을 거쳐서 독립과 주권을 되찾은 1945년까지를 이민사 제 1기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이민교회사 또한 이 시기를 제 1기로 잡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구분은 미주한인사회나 이민교회의 삶을 민족사의 한 부분으로만 간주한다는 뜻은 아니다. 한인사회나 이민교회는 분명히 우리 민족의 활동 영역이면서도 그 공동체가 자리잡고 있는 미국의 역사와 문화에 속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그 시대구분에 있어서는 미국사의 흐름이나 특정시기의 문화적 특성도 그 기준으로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이 시기에 미국은 흑인 노예문제로 일어난 남북전쟁(1861-65년)이후 광활한 서부를 개척한 여세를 몰아 문호개방정책(門戶開放政策)을 내세워 태평양연안의 아시아지역까지 진출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서구 제국과 그들의 뒷받침을 받은 일본의 침략으로 반식민지화(半植民地化)했었고, 러시아는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뒤 제 1차 세계대전에 휘말리면서 볼쉐비키 혁명이 일어나 세계에서 공산주의 혁명의 본산지가 되었으며, 일본은 군국주의의 길을 걸어서 마침내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과 태평양전쟁(太平洋戰爭)을 벌이게 되었다. 이미 영국과 프랑스의 동맹국이 되어 연합국의 주축이 되었던 미국은 독일과 이탈리아 그리고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최강국이 되었다.

미국은 문화적으로 민주주의 교육을 통하여 고도의 자유주의 사회가 되고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민주당 정부에 의한 뉴 딜(New Deal)정책으로 복지사회로 거듭났으나 전통적으로 이민의 나라인 미국은 아시아로부터의 이민은 극도로 제한하면서 주로 유럽인 이민자들을 해마다 받아들여 백인 위주의 문화를 발달시켰다. 그 밑바닥에는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에 대한 경멸과 차별이 짙게 깔려 있었다. 1945년 소련군과 더불어 진주한 미국군이 이미 남북 분단계획에 따라 한국문제를 다루게 된 것은 미국사회의 인종주의와 세계지배를 겨냥한 패권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민교회사의 제 1기를 전기(前基)와 후기(後基)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여러 이민교회의 정착기간과 상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하는 독립운동의 참여기간의 양분이다. 물론 이 시기의 분기점을 1910년의 국권상실로 잡을 수도 있고 아니면 미주한인사회에서 항일민족단일조직으로 결성되었던 재미한족연합위원회(宰美韓族硏合委原會) 출범을 계기 삼아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으로서 민족의 최고 지도자였던 도산 안창호 선생을 1919년 4월 대한국민회 중앙총회의 대표로 상해에 보내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조직하도록 한 한인사회의 연합적인 행동에서 출발한 본격적인 민족 독립운동의 전개를 분기점으로 삼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이 시기를 전후하여 재미한인교회의 활동과 역할이 확연히 달아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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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크리스천 헤럴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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