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기도해야 하는가?
성도들은 왜 기도해야 하는가? 너무나 당연한 질문 같지만 예상외로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는데 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까? 왜 우리는 구해야 합니까? 이는 육신에 호흡이 필요하듯이 속 사람은 기도를 필요로 합니다. 거듭난 생명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불신자들은 기도하는 대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자기 암시를 걸고,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서 훈련을 하고(정신 개발), 수련을 합니다. 하지만 성도는 기도해야 합니다. 자연인은 기도하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은 기도하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일을 하기 위해 방법을 찾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십니다. 신앙의 생명은 기도에 있으며, 성도가 행하는 가장 큰 죄는 기도하지 않는 죄입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듣습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주님께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기도는 믿음으로 할 수 있는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이며, 믿음 없는 기도는 미신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께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시다가 마치시매 그분의 제자들 가운데 하나가 그분께 이르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준 것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소서, 하니](눅11:1). 그들은 무엇보다 먼저 기도하는 법을 알고 싶어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시간 기도하는 법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지상 생애 동안 제자들에게 가장 많이 가르치신 주제는 기도하는 법입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목전에 두시고 제자들에게 무려 일곱 차례에 걸쳐 기도를 가르치셨고, 그 자신 역시 장문의 기도를 하셨습니다(요17장).
우리는 왜 기도해야 하는가?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고 명령하셨습니다. 기도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살전5:25). 기도는 다른 어떤 명령보다도 반복적으로 제시된 명령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히13:18).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라(약5:16).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라(벧전4:7)는 명령은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기도란 사실을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주님은 성전을 ‘내 집은 기도하는 집’(마21:13, 눅19:46), ‘내 집은 모든 민족들에게 기도하는 집’(막11:17)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셨고, 기도를 명령하셨습니다. 침례인 요한 역시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눅11:1).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성도들은 누구나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종에게 주어진 명령은 반드시 수행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누구나 자신이 그리스도의 군사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믿습니다. 군대의 생명은 명령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기도에 대한 명령은 다른 모든 명령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복종해야 하는 중요한 명령입니다.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 기도하라는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던 성도는 없습니다.
다니엘은 바빌론의 종살이를 하는 유다의 죄를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돌이켜서 우리의 불법들에서 떠나 주의 진리를 깨닫고자 하여 [주]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지 아니하였나이다.](단9:13). 성경에 기록된 대로 재앙이 임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도하지 않았던 것이 유다의 죄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기도에 태만한 죄에 대해 별로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듯합니다. 주님은 기도하라는 명령에 불순종한 성도들에게 죄를 물으십니다. 마땅히 기도해야 할 사람들, 즉 기도의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간구할 때 주님은 명령 불복종의 죄에 대해 군법으로 다스리십니다. 아하시야 왕이 왜 죽었습니까? 의사들은 그가 병이 들어서 죽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었다고 합니다. 열왕기하 1:3, [그러나 주의 천사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들을 만나 그들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 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그러므로 이제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 것이요,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왕하1:3). 사울이 왜 망했습니까? 많은 죄가 있지만 그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역대기상 10:13,14, [이같이 사울이 죽은 것은 [주]께 범한 범죄로 인함이라. 그가 [주]의 말씀을 거역하여 지키지 아니하고 또 부리는 영을 지닌 자에게 조언을 구하려고 그 영에게 묻고 [주]께 여쭙지 아니하였으므로 그분께서 그를 죽이시고 왕국을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주셨더라.] 주께 여쭙지 않고 주께 기도하지 않는 것은 성도들에게 흔히 있는 일이지만 그것이 엄중한 죄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두려워하는 이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아사 왕이 왜 죽었습니까? 물론 발에 병이 나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아사가 자기의 통치 제 삼십구년에 발이 병들어 병이 심히 중하나 병이 있을 때에 그가 주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대하16:12). 그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병원에 가서 치료받고, 의사의 진료만 받으면 되는 줄로 알았습니다. 이와는 정반대로 히스기야 왕은 죽을 병에 걸렸지만 통곡하며 기도했을 때 병이 완치되었을 뿐 아니라 15년의 생명을 연장받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누구를 가장 먼저 찾는가?는 그 사람이 누구를 가장 신뢰하는가?를 보여 줍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능력있는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주님께 부르짖지 않는 것, 주님께 구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죄이며 그에 상응한 대가로 벌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하라는 성경의 수백 가지 명령 가운데 가장 강력한 명령입니다.
우리는 왜 기도해야 하는가? 기도는 주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혼자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결코 혼자서 다 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성도의 기도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오스왈드 스미스는 말하기를, ‘우리가 일할 때 일하는 건 우리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는 하나님이 일하신다.’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일하게 하시는 방법입니다. F.B 마이어 목사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창세기에는 뜻하지 않는 재앙을 입은 아비멜렉의 재앙을 푸는 방법으로 아브라함에게 기도를 부탁하게 하신 장면이 나옵니다. 창세기 20:7, [그러므로 이제 그 남자에게 그의 아내를 돌려보낼지니 이는 그가 대언자(代言者)이기 때문이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그녀를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모든 것이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창20:7).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잘못과 실수로 야기된 문제를 아브라함의 기도를 통해 해결하도록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가 없으면 아비멜렉과 그의 식솔들은 모두 죽습니다. 창세기 20:17을 보십시오.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께서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그의 여종들을 치료하사 자녀들을 낳게 하셨으니](창20:17). 주님은 아비멜렉이 회개하고, 순종하면 곧 바로 재앙을 풀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한 후에야 비로소 재앙을 거두시고 치료해 주셨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주님의 사역을 거부하는 것이며, 주님과의 동역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주님의 사역을 늦추는 것이며, 마귀를 돕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성도는 주님의 사역자요, 동역자이지만 기도하지 않는 성도는 마귀의 동역자입니다.
이런 예는 욥기에도 나옵니다. 하나님은 욥과 욥의 세 친구의 잘못을 다루실 때 욥에게 기도를 명하셨고, 욥의 기도를 통해서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욥이 자기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주]께서 욥의 포로 된 것을 돌이키시고 또 [주]께서 그에게 이전에 소유했던 것의 두 배를 주시므로](욥42:10). 하나님은 욥의 기도없이도 얼마든지 모든 일을 행하실 수 있는 분이시지만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욥의 본을 따라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왜 기도해야 하는가? 제대로 일을 수행하고, 최상의 것을 선택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철벽도 거미줄 같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거미줄도 철벽과 같다.”는 말대로 주님은 기도를 통해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지만 기도 없이는 가능해 보이는 것들도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리십니다. 참으로 어려운 임무를 부여받은 한 사람이 가장 쉽고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는 장면을 통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를 살펴봅시다. 창세기 24장에는 아브라함의 집사 ‘엘리에셀’이 주인으로부터 독자 이삭의 신부를 구해오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이 일은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는 처녀들의 외모를 보거나 학력을 보거나 건강 상태나 성격이나 집안을 보거나 그 지역에 사는 매파를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엘리에셀이 이삭의 신부를 구하기 위해서 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가 한 일은 기도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고, 최상의 신부 ‘리브가’를 구했습니다(창24:42-44).
기도는 어렵고 힘든 일, 판단이 서지 않는 막막한 일들에 최상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아무리 연약한 사람이라도 기도할 때 가장 좋은 것을 얻고, 아무리 위대한 사람일지라도 기도하지 않을 때 최악을 선택합니다. 구약의 위대한 제사장이요, 대언자였던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새의 집에 왔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이새의 아들들 중에 한 명을 선택하여 기름을 붓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하지 않았을 때 그는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엘리에셀은 막막한 가운데 한 명의 여자를 택하는데 한 치의 실수없이 단 한번에 정확히 리브가를 찾아내었지만, 사무엘은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 한 명을 제대로 골라내지 못했습니다. 그는 실수 연발이었습니다. 사무엘상 16:6-7을 보십시오. [그들이 오매 그가 엘리압을 보고 이르기를, [주]의 기름부음 받을 자가 참으로 그분 앞에 있도다, 하였으나 [주]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나 키의 크기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이는 [주]가 보는 것이 사람이 보는 것과 같지 아니하기 때문이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주]는 마음을 보느니라.](삼상16:6~7). 그는 다윗을 찾아내는데 이새의 일곱 아들들을 차례대로 지나가게 했습니다. 결국 마지막으로 들에 있는 이새의 막내 아들 다윗을 불러와서야 제대로 일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기도의 사람이었고, 기도를 쉬지 않는 기도의 대명사로 불릴만한 사람이었지만 중요한 사안에서 막상 기도하지 않았을 때 여지없이 실패했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께서 주신 임무가 아무리 쉬워 보여도 우리는 기도를 통해 그 일을 바르게 수행할 수 있고, 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음을 배웁니다. 여러분은 거의 날마다 선택의 연속일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바르게, 최상을 선택하기 위해 기도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왜 기도해야 하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본을 보이셨고 몸소 기도에 매진하셨습니다. 기도할 필요가 전혀 없으신 분이 존재한다면 예수님이란 생각이 드는데, 정작 예수님의 삶은 기도하는 삶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침례인 요한의 침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신 후에 하신 첫 번째 일은 요한의 손을 붙들고 악수하거나 백성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향해 기도하신 것이었습니다. [이제 온 백성이 침례를 받더니 이때에 예수님께서도 침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시는데 하늘이 열리고](눅3:21). 주님의 공생애 사역은 이렇게 기도로 시작하셨습니다. 주님은 곧 바로 40일동안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는데 광야에서 하신 일 역시 기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로 물러가사 기도하시더니](눅5:16). 주님은 새벽 미명에 일어나 기도하셨습니다. [새벽에 아직 날이 밝기 훨씬 전에 예수님께서 일어나 외진 곳으로 나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1:35).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루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위대한 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도없이 시작한 하루는 아무 열매 없는 하루며, 패배한 하루입니다. 스펄전은 말하기를 ‘기도로 새벽을 열고 기도로 저녁을 닫는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일을하시기 전, 일을 끝낸 후 항상 기도하셨습니다. [그들을 보내신 뒤에 기도하러 산으로 떠나가시니라.](막6:46). 주님은 기도하시기 위해 따로 시간을 만드셨고, 공간을 마련하셨습니다. 습관을 좇아서 기도하셨으며, 무릎을 꿇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마26:39). 주님의 기도는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라 간절하고 처절한 기도였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모든 부분에서 따라야 할 본을 남기셨지만 우리는 특별히 기도하신 주님의 본을 따라 간절하고도 뜨겁게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기도로 시작한 주님의 생애는 마지막 십자가 위에서 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도에 매진하셨다면 성도들이 무엇을 가장 우선 순위에 두고 매진해야 하는가?는 물어 볼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육체로 계시는 동안 어떻게 기도하셨는가? 한번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육체로 거하는 동안에 자기를 죽음으로부터 능히 구원하실 분에게 강렬한 부르짖음과 눈물로 기도와 간구를 드리셨고 또 친히 두려워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 그것을/ 들어 주셨느니라.](히5:7). 강렬한 부르짖음, 눈물로 기도와 간구를 드리셨습니다. 주님의 기도 사역은 승천하신 이후에도 다시 오실 그날까지 쉼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기도해야 하는가? 시험에 들지 않고 깨어 있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육신이 약합니다. 그래서 늘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을 때 인간의 결심은 모래 위의 성보다 더 쉽게 무너집니다. 베드로의 굳은 결심은 기도하지 않았을 때 얼마나 쉽게 무너졌습니까? 주님 앞에 맹세한 제자들의 결심은 그날 밤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주님을 배반하고 도망간 이유는 그들의 성격이나 인간성의 문제가 아니라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성도는 마귀의 공격에 대적할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주님은 [시험에 빠지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막14:38a)고 하셨습니다. 기도에 실패한 제자들은 시험에 빠졌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일생은 기도하지 않고도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저절로 항해하는 삶이 아닙니다. 오히려 역경과 시련, 환란과 핍박, 고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을 피하고 사람의 아들 앞에 서기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눅21:36). 마귀는 성도가 기도만 하지 않는다면 그가 무엇을 하든지 그냥 둔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귀는 다니엘이 성경을 읽을 때보다 다니엘이 기도할 때 그를 방해했고, 대적했습니다. 바빌론의 원수들은 다니엘이 기도하는 것을 보고 고소했습니다. [그때에 이 사람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단6:11). 하루 세 번 하나님께 기도한 것으로 인해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그는 기도한 덕분에 사자의 입을 틀어막을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이 기도했을 때 마귀들은 그에게 기도 응답을 들고 오는 천사 가브리엘을 막았습니다. 이는 성도들의 기도가 영적 세계에 얼마나 큰 파장을 미치는지 보여 주는 예입니다(단10:13). [그러나 페르시아 왕국의 통치자가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서 페르시아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었느니라. 그러나, 보라, 우두머리 통치자들 가운데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 주므로](단10:13). 공중 권세잡은 자들, 높은 처소에 있는 악한 영들은 성도들의 기도 응답을 지체시키고, 막는데 주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귀가 두려워하는 것은 연약한 성도들이 주님께 향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밤낮으로 기도했고,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그의 사역이 온전히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졌음을 증거한 것입니다(골1:3,9, 딤후1: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며...](골1:3), [이런 까닭에 우리도 그것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이것을/ 원하였노니 ...](골1:9), [내가 밤낮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너를 기억하므로 ...](딤후1:3). 기도에 성공한 사람은 사역에 성공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왜 기도해야 하는가? 마귀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강력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마귀의 존재입니다. [또 {주}께서 이르시되,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갖기 원하였으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약해지지 않도록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뒤에 네 형제들을 굳세게 하라, 하시니](눅22:31~32). 주님은 베드로에게 마귀가 어떻게 할 것인지 말씀해 주셨고, 베드로를 위해 기도해 주셨습니다. 반면 베드로는 사탄은 염두에 두지도 않고, 큰 소리쳤습니다. [그가 그분께 이르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감옥에도, 죽는 데에도 갈 각오가 되어 있나이다, 하매](눅22:33).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의 호언장담은 허풍에 지나지 않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전에 마귀를 제어하고, 쫓아 내 본 경험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았을 때 그들은 완전히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마가복음 9장 역시 이런 예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그분의 제자들이 그분께 은밀히 여쭙되, 어찌하여 우리는 그를 내쫓지 못하였나이까? 하니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런 종류는 오직 기도와 금식으로만 나가느니라.](막9:28~29). 주님은 그들의 실패가 일차적으로 기도 생활의 결여임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마귀는 지금도 울부짖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만 합니다. 마귀는 성도들의 마음 안에 뿌려진 말씀의 씨앗을 빼앗아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사무엘 제드윅은 "마귀의 관심 중에 하나는 기독교인이 기도를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다. 마귀는 기도 없는 학문, 기도 없는 사역, 기도 없는 그리스도인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마귀는 우리의 노력을 조롱하고 지식을 무시하지만 기도할 때 두려워한다."고 하였습니다. 기도는 영적인 전쟁이요 기도 그 자체가 그리스도인의 사역입니다. 특히 영혼구원, 즉 선교사역에 있어서 기도는 최대의 무기이며 빼놓을 수 없는 지원입니다. 사도 바울은 선교 사역에서 성도들의 끊임없는 기도 지원을 부탁했습니다(롬15:30, 몬22,엡6:19). 이는 기도야말로 마귀를 이기는 가장 능력있는 도구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6:11-18절에는 마귀를 대적하며, 정사들과 권능들과 이 세상의 어둠의 치리자들과 높은 처소들에 있는 영적 사악함을 대적하는 방법에 대해 기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성도가 마네킹처럼 서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는 허수아비나 다름없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성령의 검을 든 성도가 마귀를 대적하여 능수 능란하게 싸울 수 있는 힘과 지혜는 바로 기도에서 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성/령 안에서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항상 기도하되 모든 성도를 위하여 모든 인내와 간구로 이 일에 주의를 기울이고](18). 기도하지 않는 성도가 성령의 검을 쥐면 마귀와 싸우지 않고 동료들을 향해 칼을 휘두르거나 자신을 찌르는 바보같은 짓을 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성도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면 몸이 불편하다고 벗어 버리려고 합니다. 기도하는 성도만이 마귀를 대적할 줄 압니다.
우리는 왜 기도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아무도 혼자서 살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며, 도움을 주면서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도울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도움을 요청할 비밀의 통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를 통해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16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은 나아가지 않으면 절대 얻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기 위해 기도를 명하셨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아뢰라.](빌4:6). 주님은 우리의 요청에 언제나 들을 준비가 되어 있으시며, 주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기도 사역이 점점 쇠퇴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기도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크게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기도가 형식적이고 위선적입니다. 주님은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믿고 구하는 것은 무엇이나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약속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기도는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는 도움을 구하러 이집트에 내려가면서 주님께는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해서 살았던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다윗입니다. 그는 [나의 도움이 하늘과 땅을 만드신 [주]께로부터 오는도다.](시121:2)고 노래했습니다. 주님은 공급자이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십니다. [오직 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영광 가운데서 자신의 부요하심에 따라 너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리라.](빌4:19).
우리는 왜 기도해야 하는가? 기도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전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이며, 주님을 심히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배운 적이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했습니다(계4:11). 우리가 주를 기쁘시게 해 드리는 방법은 믿음입니다(히11:6). 에녹처럼 주님과 동행하는 삶은 주님을 기쁘시게 합니다(히11:5). 복음을 전할 때(살전 2:4),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할 때(골3:20),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 때(골1:10)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구제를 하는 것 역시 주님이 매우 기뻐하시는 향기요, 희생물입니다(빌4:18). 찬양과 감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감사로 그분을 크게 높이리니 이것이 또한 수소나 뿔과 굽이 있는 황소보다 [주]를 더 기쁘시게 하리라.](시69:30-31). 이와 마찬가지로 기도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잠언 15:8에 [사악한 자의 희생물은 [주]께 가증한 것이나 곧바른 자의 기도는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니라.](잠15:8)고 했습니다.
올바른 기도는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바른 기도 생활을 통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오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시65:2)고 한 대로 우리는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께 나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기도해야 하는 이유를 몇 가지 살펴보았습니다. 이 외에도 기도할 이유를 찾자면 몇 시간이라도 부족할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를 찾고, 변명을 늘어 놓지만 기도하는 사람들은 내가 왜 기도해야만 하는가? 확실한 동기와 목적을 붙들고 있습니다. 모두 기도합시다. “짐을 가볍게 하기 위해 기도하지 말고 더 튼튼한 등을 갖기 위해 기도하라”(로저 밥슨)는 말대로 우리는 기도의 공부를 통해 주님을 기쁘게 하는 기도를 드리는 종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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