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주님이 듣지 않으시는 기도


하나님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없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증거하기를, [귀를 심으신 분께서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빚으신 분께서 보지 아니하시랴?](시94:9)고 말씀합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이는, 오 [주]여, 보소서, 내 혀의 말 중에 주께서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니이다.](시139:4)라고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전달 과정이나 수신 여부를 확인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의 기도는 이 곳에서 저 하늘의 보좌까지 가장 안전하고, 가장 빠르고, 가장 정확하게 주님께 전달됩니다. 주님은 우리가 기도하는 순간부터 다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부르짖는 기도에 대한 몇 가지 수취 거부 원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도하는 성도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기도의 주의사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의 사항은 말 그대로 주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을 한 후에도 낭패를 면하기 어렵습니다. 성경은 응답받는 기도에 대한 약속이 많이 있지만 왜 응답받지 못하는가?에 대해서도 자세히 언급합니다.

1. 부지런히 기도를 하지만 주님이 듣지 않는 경우는 불신 때문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며, 범죄 했을지라도 용서를 받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켜 세우시리라. 혹시 그가 죄들을 범하였을지라도 용서받으리라.](약5:15). 믿음의 기도는 선한 응답의 역사가 있습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마21:22). 하지만 불신을 가지고 기도할 때 주님은 목소리를 듣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돌아와 슬피 울었지만 주님은 듣지 않으셨습니다. 신명기 1:45을 보십시오. [너희가 돌아와 [주] 앞에서 슬피 울었으나 [주]께서 너희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며 너희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셨느니라.](신1:45). 도대체 무엇 때문에 주님은 돌아와 주 앞에서 슬피 울었지만 듣지 않으셨던 것입니까? 성경은 두 가지 이유를 말해 줍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불신과 불순종’입니다. 신명기 1:32과 43절입니다. [이 일에서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였도다.](신1:32)-불신이 주된 이유임. [내가 너희에게 그와 같이 말하였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고 [주]의 명령을 거역하여 너희 뜻대로 산으로 올라가매](신1:43)-불순종이 주된 이유임. 말씀을 믿지 않으면서 뒤늦게 무슨 행동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너희는 올라가서 내가 너희에게 준 땅을 소유하라”고 하셨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누구도 그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신9:23). 그들은 좋은 땅이란 사실은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돌아가는 사정이나 환경을 볼 때, 특히 정탐꾼들의 보고를 듣고 판단해 볼 때 도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① 너희가 올라가려 하지 아니하고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② 너희 장막 속에서 불평하여 이르기를, [주]께서 우리를 미워하셨으므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넘겨 멸하시려고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③ 우리가 어디로 올라가랴? 우리 형제들이 우리를 낙심하게 하여 말하기를, 그 백성은 우리보다 강하고 키가 크며 그 도시들은 크고 성곽이 하늘에까지 닿았고 또한 우리가 거기서 아낙 족속의 아들들을 보았노라, 하는도다, 하기에](1:26-28). 모세는 불신에 빠진 백성들의 믿음을 도왔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 너희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눈앞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같이 너희 앞서 가시는 그분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광야에서도 너희가 보았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 듯이 [주] 네 하나님께서 네가 걸은 모든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1:29-31). 그러나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이 말씀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그보다 더 큰 죄가 없습니다. 성도에게 말씀을 믿지 않는 죄를 능가하는 죄는 결단코 없습니다.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받을 순간에 불신으로 인해 광야에서 망해 버렸던 사람들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이유는 ‘이 일에 너희가 주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였도다’(신1:32)였습니다. 이와는 정반대로 저주와 심판을 목전에 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민족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에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며 가장 큰 자로부터 가장 작은 자에 이르기까지 굵은 베옷을 입었으니](욘3:5). 요나는 니느웨로 들어가 딱 하루 동안 외쳤습니다. 수 백명이 수 개월, 수 년간 외친 것이 아니라 단 한명의 대언자가 심판을 선포했을 뿐입니다. [비로소 요나가 그 도시로 들어가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라.](욘3:4). 하지만 그들은 곧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금식을 하며 회개했습니다. 주님의 긍휼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들은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행한 일 곧 그들이 자기들의 악한 길에서 돌이킨 것을 보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욘3:10). 하나님은 선민 유대인일지라도 말씀을 믿지 않을 때 기도를 듣지 않으셨지만, 이방 죄인인 앗시리아 민족일지라도 말씀을 믿었을 때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셨습니다.

2. 주의 은혜가 족할 때 주님은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만족함이 없고, 탐욕을 기초로 하는 기도는 그 사람이 누구라 할지라도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구약과 신약에서 대표적인 믿음의 사람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 경우가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모세, 신약에서는 바울입니다. 주님이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것은 이미 은혜가 족하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너희로 인하여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것으로 충분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신3:26). 모세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절규하는 듯한 애절함이 베어 있는 그런 기도였지만 하나님은 듣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기도를 들어 보십시오. [오 {주} [하나님]이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강한 손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 시작하셨사오니 하늘이나 땅의 어떤 신이 능히 주께서 행하신 일과 주의 크신 능력과 같이 행할 수 있사오리이까? 원하옵나니 나로 하여금 건너가게 하사 요르단 너머의 아름다운 땅 곧 저 좋은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였으되](신3:24~25). 40년의 긴긴 여정의 목적지를 눈 앞에 두고 들어가지 못하는 모세의 마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기도의 요령과 방법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으로 충분하니 이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하셨습니다. 모세는 좀 더 원했지만 하나님은 충분하다고 하셨습니다. 때로 우리는 정도를 넘어서 구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 때 주님은 ‘그것으로 충분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역할이 요르단 강 앞까지로 충분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신실한 종이라 할지라도 정도 이상 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침례인 요한은 침례를 받으러 오는 군인들이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자, [...너희가 받는 급료(給料)로 만족하라, 하니라.](눅3:14)라고 했습니다. 직업 군인이 미국은 군인도 먹고 살만하겠지만 국민 개병제인 나라에서 군인의 월급은 형편없이 작습니다. 탐욕을 기초로 하는 기도는 주님의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만족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만족함이 있는 경건은 큰 이득이 되나니](딤전6:6),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니라.](딤전6:8), [너희 행실을 탐욕이 없게 하고 너희가 가진 것들로 만족하라. 이는 그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음이라.](히13:5). 많은 성도들은 하나님과 친교가 있는 지금 많이 구해서 하나님이 없는 그날을 대비하려는 것처럼 기도합니다. 내 인생에 하나님이 없는 그날을 대비해서 지금 미리 준비하자! 그런 자세를 보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몸이 아픈 문제로 이 진리를 배웠습니다. 바울은 세 번이나 주께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나의 강한 능력이 약한 데서 완전해지기 때문이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오히려 크게 기뻐하며 나의 연약한 것들을 자랑하리니 이것은 그리스도의 권능이 내 위에 머무르게 하려 함이라](고후12:9).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하나님의 은혜가 족함에도 불구하고 구하는 것은 절대 얻을 수 없습니다.

3. 잘못된 선택을 할 때 주님은 우리가 택한 문제로 인해 생긴 결과에 대해서 기도해도 듣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가르치시고, 경고하신 내용을 응답받았을 경우에 주님은 책임지지 않으십니다. 사무엘상 8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민족들과 마찬가지로 왕정 국가를 세우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신정 국가보다 왕정 국가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세우시는 재판관(사사)보다는 자신들이 뽑은 왕을 선호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에 너희가 택한 왕으로 인하여 너희가 부르짖을 터이나 [주]께서 그 날에 너희를 듣지 아니하시리라, 하니라.](삼상8:18). 왕정으로 인해 왕의 횡포와 독재, 무거운 세금, 공역 등으로 인해 하나님께 울부짖을 때 주님은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잘못된 선택인 줄 알면서 행하는 성도는 반드시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자신이 책임져야 합니다. 불신자와의 결혼은 잘못된 것인줄 알지만 그대로 강행하는 성도는 그 날에 자신이 택한 배우자로 인하여 부르짖을 터이나 주님은 듣지 않으실 것입니다. 불법인 줄 알면서 택한 직업, 하나님의 뜻이 아닌 줄 알지만 택한 어떤 것들은 그로인해 반드시 울부짖을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날에 너희가 택한 ***으로 인하여 너희가 부르짖을 터이나 듣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4. 헛된 것은 주님이 듣지 않으십니다.

[헛된 것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그것을 중히 여기지 아니하시느니라.](욥35:13). 주님은 우상을 헛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참 하나님이 아닌 헛된 것들을 섬기고 따르면서 주님을 경배하고 기도할 때 주님은 결코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셨습니다. 헛된 것들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① 헛된 영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기 영광을 구하는 것은 헛된 영광입니다. 갈라디아서 5: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시기하지 말지니라.](갈5:26). 그래서 주님은 [무슨 일이든지 다툼이나 헛된 영광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고](빌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② 헛된 말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말이 아닌 말은 헛된 말입니다(엡5:6). [아무도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는 이러한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자녀들 위에 임하기 때문이니](엡5:6). ③ 헛된 지식이 있습니다. 주님을 알지 못하는 지식은 모두 헛된 지식입니다. ④ 철학이나 과학은 헛된 속임수요 헛된 지식입니다(골2:8, 딤전6:20). ⑤ 헛된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다른 이방인들이 헛된 생각 속에서 걷는 것같이 걷지 말라.](엡4:17). ⑥ 헛된 행실이 있습니다. 흔히 전통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들입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들로부터 전통으로 물려받은 헛된 행실에서 너희가 대속(代贖) 받은 것은 금이나 은같이 썩을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벧전1:18). 이런 헛된 것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그것을 중히 여기지 아니하십니다. 성도들이 헛된 영광, 헛된 말, 헛된 지식, 헛된 속임수, 헛된 생각, 헛된 행실을 하면서 하는 기도를 한다면 아무리 오랫동안 많은 기도를 한다 해도 주님은 결코 듣지 않으신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5. 우리의 마음 속에 불법을 생각하면 주님은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마음 상태는 기도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내가 마음 속으로 불법을 중히 여기면 {주}께서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리라.](시66:18). 이것은 영적 가치관의 문제입니다. 성도들 가운데 자신이 스스로 불법을 중히 여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경우에 불법을 매우 중히 여깁니다. 아간은 불법을 중히 여겼습니다. 그는 저주받은 물건을 자기 장막 안에 숨겨두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엘리사의 종 게하시는 불법을 중히 여겼습니다. 그는 엘리사 몰래 나아만 장군을 쫓아가 은 이달란트와 옷 두벌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문둥병이 걸렸습니다(왕하5). 아나니야와 삽비라는 불법을 중히 여겼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즉사했습니다(행5). 사람들은 탐욕으로 인해 불법을 중히 여깁니다. 저는 이 시간 ‘조선에 성령이 임했을 때’란 글에서 몇 가지 실화를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조선의 선교사들은 평양의 한 교회에서 1906년 9월부터 4개월간 매일 정오에서 오후 4시까지 기도회를 갖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자 기도회를 중단하자, 각자 집에서 하자 등의 제안이 있었지만 계속해서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4개월간의 기도회 마지막 날 저녁 집회에는 약 1000명의 사람이 모였습니다. ‘그때 갑자기 한국 교회의 지도자인 길 선주 장로가 일어나서 자기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저는 아간 입니다. 하나님께서 나 때문에 축복하실 수 없습니다. 나는 1년 전 내 친구가 임종하면서 맡긴 재산을 관리하면서 그 미망인의 돈 100불을 가로챘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가로막았습니다.” 그 순간 장애물이 걷혀졌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가 인식되었습니다. 곧이어 죄의 자각이 모든 신자들을 휩쓸었습니다. 그날 저녁 예배는 새벽 2시가 되어도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수십 명이 울면서 그들의 죄를 고백할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것은 마치 지옥의 뚜껑을 열어놓은 것 같았습니다. 이 집회를 기점으로 조선에서는 회개의 역사가 놀랍게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기간에 있었던 회개의 예를 몇 가지 들어보겠습니다. 거의 완전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존경을 받던 한 집사는 부흥운동이 진행되는 동안 안절부절 하다가 드디어는 교회 구제기금을 훔친 것을 자백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놀라면서 그를 용서하고 다시 평안을 되찾기를 바랬지만 그는 더 큰 불안에 떨었고 결국 자기가 지금도 도적질을 하고 있음을 고백했습니다. 한 여인은 며칠간을 지옥의 고뇌를 통과하는 것 같았다가 어느 저녁 군중이 모인 자리에서 간음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그 모임을 인도하던 선교사는 너무나 당황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남편이 거기에 있었으므로 그녀를 조선의 법대로 죽일지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남편은 눈물로 걸어나와서 범죄한 그의 아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그녀를 용서했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사건들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교회는 사람들로 들끓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조롱하기 위해 교회에 왔다가 두려움 중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도둑 두목은 호기심으로 왔다가 죄를 깨닫고 자기를 감옥에 넣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깜짝 놀란 경찰관은 그를 고소하는 사람도 없고 증거도 없으므로 체포할 수 없다고 맞섰고 그는 결국 풀려났습니다....(중략) 참으로 기도하기 위해 보낸 몇 달의 대가는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성령이 오셨을 때에 선교사 모두가 반년 동안에 할 수 있었던 일을 반나절에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부흥의 운동은 평양에서 출발하여 조선 전역에 넘쳤고 시간이 지나가도 계속되었습니다....(후략). 기도회를 하는 4개월 동안 죄를 고백하지 않았을 때 아무런 역사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 품은 죄를 회개했을 때 조선에는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임했던 것입니다. 이런 역사가 저희 교회와 이 땅에 임하기를 간절히 빕니다. 마음에 자기 야심과 탐욕과 꿈이 가득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자신의 출세의 수단으로, 자신을 돕는 종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혀 그런 사람들을 후원하고 도와주는 종이 되려 하지 않으십니다.

6. 범죄한 손으로 하는 기도는 주님이 듣지 않으십니다.

[너희가 손을 내밀 때에 내가 내 눈을 돌려 너희에게 숨기겠으며 참으로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너희 손에는 피가 가득하니라.](사1:15). 우리의 행위는 우리의 기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도둑놈이 도둑질을 계속하면서 기도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삶과 행동이 바뀌어야 합니다. 거짓말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그 직업을 버려야 합니다. 환자를 등쳐먹는 의사, 사건 의뢰인의 돈을 뜯어먹는 변호사, 탈세와 부정을 저지르는 세무사나 회계사 등은 자신이 하던 짓을 그만두던가 아니면 수입이 반으로 확 줄더라도 부정을 버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여전히 이전에 하던 짓을 계속하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은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하십니다. 이사야 59:3에 이르기를, [이는 너희 손이 피로, 너희 손가락이 불법으로 더러워졌기 때문이며 너희 입술이 거짓을 말하고 너희 혀가 사악한 것을 내기 때문이니라.](사59:3)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몸은 부정과 불법에 내어 주어서는 안됩니다. 악한 행위를 그대로 간직한 채 기도할 때 주님은 얼굴을 돌리시고 맙니다. 미가서 3:4에, [그때에 그들이 [주]께 부르짖을지라도 그분께서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겠고 그들이 자기 행위로 악하게 행한 것같이 그때에 그분께서 자신의 얼굴을 돌려 그들에게 숨기시리라.](미3:4)고 하십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우리의 불법을 버리고, 죄를 버리고, 죄에 연루된 일들을 처리해야만 합니다. 범죄한 이스라엘은 급한 마음에 금식하고, 성전 예배를 드리고, 희생물과 봉헌물을 바쳤지만 주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지 않으셨습니다. 기도보다, 희생물보다, 예배보다 더 급한 것이 회개이며, 죄를 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그들이 번제 헌물과 봉헌물을 바칠지라도 내가 그것들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오히려 칼과 기근과 역병으로 그들을 진멸하리라, 하시니라.](렘14:12). 여러분이 만약 고난과 슬픔의 때에 자신의 행위를 회개하지 않고 막연히 금식을 선포하고, 십일조를 내고, 주일 예배에 잘 참석한다고 해서 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향을 바꾸고,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7. 성경 읽기를 게을리 하고, 말씀을 듣지 않을 때 주님은 결코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귀를 돌이켜 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 기도마저도 가증한 것이 되느니라.](잠28:9). 말씀은 기도의 길잡이이며, 기도의 능력입니다. 말씀없는 기도는 의미 없는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말씀이 배제된 기도는 이교도들의 주문(呪文)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말씀 없는 기도는 기도라 할 수 없습니다. 효과적이고도 강렬한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과 얼마나 일치되는가? 에 달려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말씀과 기도’란 제목으로 따로 집중적으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선포하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기도란 사실을 우리는 지난 시간에 배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판을 받고, 멸망당한 것은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급해지면 말씀으로 돌아가는 대신 급한대로 금식도 하고, 부르짖기도 했지만 주님은 그런 기도에 대해서 일절 들으시지 않으셨습니다. 스가랴는 그들이 얼마나 말씀과 동떨어진 삶을 살았는가?를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너희는 너희 조상들과 같이 되지 말라. 이전의 대언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이제 너희는 너희의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떠나 돌아서라,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주]가 말하노라.](슥1:4). 오늘날 조국의 교회는 성경을 탐구하고 진리의 말씀을 듣는 훈련에 너무나 게으른 나머지 주님이 주시는 영적 복을 모두 거부하고 저주받을 짓만 골라서 하고 있습니다. 흔히 금식 기도회, 철야 기도회, 새벽 기도회와 같은 기도 모임이 매우 많이 있지만 성경에 대한 진지한 연구의 결여로 인해 그들의 기도는 아무런 힘도 없고,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좋은 직장을 선택하는 것보다 좋은 교회를 선택하는 것이 훨씬 나으며, 명문 대학에 입학하는 것보다 바른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보다 바른 말씀인 킹제임스 성경을 만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스가랴 7:11-12에 [그들이 귀 기울이기를 거절하여 어깨를 빼고 듣지 아니하려고 자기 귀를 막으며 참으로 그들이 율법과 만군의 [주]가 이전의 대언자들을 통해 자신의 영으로 보낸 말씀들을 듣지 아니하고자 하여 자기 마음을 금강석같이 /굳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큰 진노가 만군의 주께로부터 나왔느니라.](슥7:11-12).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멸시를 받습니다. [누구든지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멸망할 것이나 명령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받느니라.](잠13:13). 덕분에 그들은 기도 응답은 고사하고 모두 멸망했습니다. 말씀과 기도의 연관 관계는 뿌리와 가지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존중하는 만큼 성도를 존중하며, 말씀을 두려워하는 만큼 은혜를 베푸시며, 말씀을 사랑하는 정도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정도를 측정하시며, 사랑하십니다(요14:21). 하나님께 기도 응답을 받는 법이나 하나님의 은혜와 보살핌을 받는 법이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법은 동일합니다. [나의 명령들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들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우리의 거처를 그와 함께하리라.](요14:23). 주님은 말씀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말씀을 사랑하는 자는 기도할 때 금방 응답됩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내가 사랑하나니 일찍 나를 찾는 자들이 나를 만나리라.](잠8:17). 성경에 기록된 가장 처절하고 놀라운 기도 가운데 하나는 누가복음 16장에 나옵니다. 지옥에 간 부자가 지옥에서 한 기도였는데 그의 기도는 일언지하에 거절되었습니다. 거절 사유는 이렇습니다.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그들이 모세와 대언자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확신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눅16:31). 성경으로 족하다는 것입니다. 산 자들이 지옥에 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죽은 자가 일어나서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선포라는 것입니다. 지옥에 간 부자는 성경으로는 부족하니 죽은 자들 가운데 하나를 보내 주기를 구했는데, 그 기도는 응답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죽은 자를 살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불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때로 성도들은 성경의 증거, 설교 말씀으로부터 확신을 얻지 못해서 다른 것을 구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기도에 결단코 응답해 주시지 않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롬10:17). 성경 읽기를 게을리 하고, 말씀을 듣지 않을 때 주님은 결코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귀를 돌이켜 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 기도마저도 가증한 것이 되느니라.](잠28:9).

8. 잘못된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있을 때 기도해도 주님은 듣지 않으십니다.

야고보서 4:2-3, [너희가 욕심을 내도 갖지 못하고 죽여서 갖고자 해도 얻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워도 갖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에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4:2~3).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이유와 목적을 스스로 생각해 보도록 하십니다. 왜 이런 기도를 드리는가? 기도가 응답되면 어디에, 무슨 목적으로 쓸 것인가? 스스로 물어 보고 답을 얻어야 합니다. 기도의 요건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필요할 것. 둘째, 합법적일 것. 자식이 도박 밑천이 필요하니 돈을 주십시오라고 말하는데, 돈을 줄 부모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마약을 사기 위해, 술을 마시고, 유흥비로 탕진하기 위해 돈을 달라고 하면 돈을 주겠습니까? 아마 아무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도 자기 자녀가 잘못 구하면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부를 하기 위해서, 책을 사기 위해서라고 말하면 빌려서라도 주려고 할 것입니다. 바르게 구하는 것과 잘못 구하는 것의 차이가 기도 응답의 차이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너무나 이기적으로 구합니다. 이는 곧 자신의 신세를 망치고 다른 사람의 신세를 망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냥 막무가내로 달라고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기도는 응답받는 것이 재앙입니다. 기도 응답을 받고 오히려 망한 예가 나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께서 행하신 일들을 곧 잊어버리고 그분의 계략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광야에서 크게 탐욕을 부리고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이에 그분께서 그들이 요구한 것을 주셨으되 그들의 혼은 야위게 하셨도다.](시106:15). 돈을 주십시오. 더 많은 돈을 주십시오 라고 기도할 때 주님은 그것은 네가 큰 슬픔에 이르는 길이며, 믿음에서 떠나는 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반대로 주님은 [그분 안에서 우리가 가진 담대함이 이것이니 곧 우리가 그분의 뜻대로 무엇이든 구하면 그분께서 들으시는 것이라.](요일5:14)고 하십니다. 정욕으로 쓰려고 구할 때는 얻지 못하지만 그분의 뜻대로 구할 때 우리는 무엇이든지 얻습니다.

9. 부부간의 불화와 갈등은 기도 생활을 방해합니다.

베드로전서 3:7, [남편들아, 이와 같이 너희도 지식에 따라 아내와 동거하고 그녀를 더 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자로 여기고 존중하라. 그리하여야 너희 기도가 방해를 받지 아니하리라](벧전3:7). 예전에는 아내들이 남편들로 인해 마음 고생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남편들이 아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위축되는 일이 많습니다. 바울 사도는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모질게 대하지 말라.](골3:19)고 권면했는데, 오늘날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반대로 “아내들아,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지 말라”고 해야 할 판국입니다. 부부 관계의 핵심은 상호 존중입니다. 이는 우리의 기도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남편들은 자기 아내를 사랑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아내들은 자기 남편을 존경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건전하지 못한 가정 생활, 부부 관계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지 못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10. 이제 마지막으로 ‘기도는 방법이 아니라 사람됨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을 증거하고자 합니다.

[이는 {주}의 눈은 의로운 자들 위에 거하며 그분의 귀는 그들의 기도에 열려 있으되 {주}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를 대적하기 때문이니라.](벧전3:12).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기도의 형식이나 요령보다는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 기도자의 자세가 더 중요합니다. 교만한 사람이 무슨 미사여구를 늘어놓아도 그의 기도는 바른 기도가 아닙니다. 그가 찬양을 하든 무엇을 하든 주님은 그를 대적하십니다. 악인의 기도는 그 기도 자체가 죄가 됩니다. [그가 심판 받을 때에 정죄 받게 하시고 그의 기도가 죄가 되게 하시며](시109:7). 핵심은 어떤 행동을 하느냐?보다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말은 듣지 아니하시나 하나님을 경배하며 그분의 뜻을 행하는 사람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이제 우리가 아나이다.](요9:31)라고 한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딤전6;11, 딤후3:17)으로 완전하게 되고,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 지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를 덧입고, 십자가의 피를 통해 저희 양심이 선하고 순수하게 씻음받고, 말씀의 물로 모든 더러움을 씻어 냄으로써 온전한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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