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지역 교회와 기도 사역


오늘은 지역 교회와 기도 사역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상고해 보겠습니다. 지난 120년 동안 한국 교회를 부흥시켜온 힘은 단연 기도였습니다. 한국 교회의 특징은 새벽 기도, 철야 기도, 금식 기도와 같은 각종 기도회를 그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런 기도 모임이 없는 교회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냉철하게 살펴보면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한 기도의 열심 즉 말씀의 바탕이 없는 기도가 주종을 이루고, 방향없는 열심 즉 기도를 쉬는 죄는 범하지 않았지만 나의 욕구나 필요, 은사를 얻기 위해서 열성을 쏟는 기도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의 기도 사역은 자신과 자신이 속한 교회의 성장, 부흥, 성공에 초점이 맞추어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특별한 은사를 얻으려는 기도 모임이 많아지고, 은사 집회를 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 교회는 성경으로 돌아가서 뜨겁고 효과적인 기도를 해야 할 때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도보다 효과적인 방법을 택하려고 합니다. 기도조차도 하나의 방법으로 이용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나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편에 서는 것이며, 기도는 하나님을 나의 뜻으로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의 뜻을 굽혀 하나님께로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흔히 기도에만 매달리면 미련하게 보이지만, 실제로 기도에만 매달릴 수 있다면 그는 가장 위대한 사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이며, 그런 교회는 가장 강력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에 대한 성경적 진리를 배워야 할 뿐만 아니라 실제 기도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성경에서 처음으로 교회라고 언급된 교회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일컫는 광야 교회입니다. [시내 산에서 자기에게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에 있던 교회에 있으면서 살아 있는 말씀들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바로 이 사람이라](행7:38). 광야 교회는 역사상 어떤 교회보다 많은 이적과 표적, 주님의 영광을 목격했습니다. 광야 교회는 하나님이 친히 택하신 탁월한 목자인 모세를 가졌습니다. 광야 교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교회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데 실패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광야 교회는 목자인 모세를 제외하고 누구도 제대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광야 교회의 성도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약속의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합심 기도하는 대신 늘 합심 불평, 합심 불만, 합심 투정만 부렸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들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받으실만하고, 완전한 뜻을 알면서도 믿지 않았고, 그 일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알면 그것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이 전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불평의 기도를 했습니다. “차라리 광야에서 죽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집트에서 멸했더라면!”란 말이 입에 붙어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입술에 나오는 말, 그들의 기도대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내게 불평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내게 불평하는바 그 불평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께서 말씀하시되, 진실로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너희가 내 귀에 말한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14:27-28). 참으로 생명이 혀의 권세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입술의 말씀을 다 들으십니다. 주님은 알아듣지 못하는 말씀이 없으시며, ‘너희가 내 귀에 말한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광야 교회의 교훈을 경계의 본으로 삼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뜻없이 말하고, 의미없이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불신과 불평에 찬 자멸적인 기도는 주님의 분노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직접적이고, 온전한 뜻이 분명하게 계시되었지만 그 뜻에 교회가 화답하지 않았을 때 가나안 정복이란 주님의 뜻은 40년이나 연기되었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성도들로 완전히 세대 교체가 된 후에나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지역 교회는 모두 하나님의 선하시고, 받아들일만하며, 온전한 뜻 가운데 죄인들에게 복음을, 성도들에게 진리의 지식을 전함으로써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목표와 비전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뜻은 지역 교회 성도들의 자발적인 기도와 헌신 없이는 도저히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교회의 화답에 영향을 받습니다. 광야의 교회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을 때, 불평의 기도를 드릴 때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훗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던 유다 백성들 역시 그런 기도 응답을 받았습니다. [빌라도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도리어 폭동이 일어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나는 이 의로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무죄하니 너희가 그것과 상관하라, 하매 이에 온 백성이 대답하여 이르되, 그의 피가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아오리이다, 하니라.](마 27:25). 광야의 교회가 합심해서 불평 기도를 해서 망했고, 유다의 백성들 역시 합심해서 외쳤다가 그대로 응답 받았습니다. 현재도 많은 저주의 기도가 그대로 응답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두려워하지는 마십시오. [까닭 없는 저주는 떠도는 새와 날아가는 제비처럼 임하지 아니하느니라.](잠26:2)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광야의 교회는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 새로운 백성들로 약속의 땅에 정착하여 예루살렘에 성전을 가졌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라고 말합니다. 교회 역시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립니다(딤전3:15, 히10:21, 벧전 4:17). 주님은 성전을 가리켜 내 아버지의 집(요2:16), 내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집이라고 부른 성전의 고유한 역할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기도였습니다. 성전을 다른 말로 하면 ‘기도하는 집’입니다. 이사야 56:7에, [곧 그들을 내가 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하리니 곧 그들이 내 제단 위에 드리는 번제 헌물과 희생물을 내가 받을 것이라. 이는 내 집이 모든 백성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라.](사56:7)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이 신약 성경에서 무려 세 차례나 인용하셨습니다(마21:13, 막11:17, 눅19:46). 그렇다면 교회의 일차적인 임무 역시 기도하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기도하는 집이기에 반드시 기도를 해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 기도는 하지 않고 잡담만 하다 돌아가는 것은 성전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 환전상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요2:14-15). 여러분이 교회에 오시면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를 왜 가느냐고 물으면 기도하러 간다고 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교회는 부흥합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는 교회는 어떤 부흥도 성장도 볼 수 없습니다. 집에서 하면 된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집에서 제대로 기도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는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른 기도, 믿음의 기도를 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 그들이 말하는 것을 별로 기억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윌리엄 거널). 하나님의 집인 교회가 해야 할 일은 기도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골방에서도 기도해야 하고, 기도하는 집인 교회에서는 더욱 더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학교에서 공부하기 싫어하는 학생이 집에서 공부하면 된다고 하는 것이나 회사에서 게으름 피우며 집에서 다 해오겠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 기도 하기 싫어하는 성도가 은밀히 많은 기도를 하겠다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며, 본말(本末)이 뒤집어진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라고 말씀하신 후에 주님의 몸된 교회가 세워지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일은 성도들의 합심 기도였습니다. 제자들은 곧 세워질 교회를 위해서 건물을 사거나 땅을 보러 다니거나 성전 건축 헌금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규모 부흥 집회를 연 것도 아닙니다. 주님이 세우실 교회를 준비하는 성도들이 부지런히, 간절하게 한 일은 단 하나였는데, 그것은 바로 주님을 믿는 자들이 모여서 함께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 제자들과 믿는 지체들은 모두 모여서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교회 개척에 필요한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성도들의 합심 기도입니다. 교회 성장에 필요한 한 가지가 있다면 물론 기도입니다. 신약 교회는 오직 하나! 하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성도들의 기도로 세워지고, 기도로 성장하며, 기도로 승리를 쟁취했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I will build my church)라고 말씀하셨다고 해서 교회가 저절로 세워질 때까지 가만히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면 그것 역시 큰 오류입니다. 주님의 교회가 세워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도들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들이 들어가 자기들이 묵고 있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와 빌립과 도마와 바돌로매와 마태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 시몬과 야고보의 형제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의 형제들과 함께 한 마음이 되어 기도와 간구를 계속하더라](행1:13-14). 그들은 모두 기도에 전력했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위해 그들은 기도했고, 주님이 세우신다는 교회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저는 여러 차례 성경에 주어진 약속이 바로 우리의 기도 제목이란 점을 말씀드렸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셨다면 우리는 교회의 설립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내가 속히 오리니’라고 말씀하면 우리는 주님이 속히 오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광야의 교회처럼 저절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려니 생각하다가 그들은 믿음이 없어서 광야에서 죽고 말았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교회를 세우려고 해도 아무도 기도하지 않으면 교회는 세워질 수 없습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이 있으면 그것이 우리의 기도 제목이 되고, 부지런히 기도할 때 하나님은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십니다. ‘기도는 약속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참된 기도, 바른 기도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라면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에베소서 1:22-23, [또 모든 것을 그분의 발 아래 두시고 그분을 교회에게 주사 모든 것 위에 머리가 되게 하셨느니라. 교회는 그분의 몸이니 곧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의 충만이니라](엡1:22-23). 몸이 없으면 머리에 아무리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넘치는 상상력, 창의력이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몸은 머리 속에 든 것들을 실천하는 도구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란 말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실천하고 드러내는 도구란 뜻입니다. 머리 속에 떠오른 사상이나 생각들을 표현해 내고, 만들어 내기 위해서 우리 몸은 수 십번, 수 백번의 시행 착오를 거뜬히 감당합니다. 마음이 만족할 때까지 몸은 힘들고, 지치면서도 계속 해 내고야 맙니다. 몸이 너무 힘들면 쉬었다가 다시 또 시도합니다. 이것이 몸의 기능입니다. 마찬가지로 몸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나 뜻을 그대로 수행해야 합니다. 몸이 머리를 따라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음은 있지만 육신이 말을 듣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역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뜻을 완벽하게 수행해 내지 못하는 경우는 많습니다. 몸은 끊임없는 단련, 훈련,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머리 속에 있는 것들을 표현해 내듯이, 교회는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머리되신 주님을 표현해 냅니다. 기도는 몸의 훈련입니다. 기도는 몸을 머리에 맞추는 사역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모든 일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너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라고 명령했습니다. 흔히 성도들은 바울 서신을 읽을 때 그것이 교회에 보낸 교회 서신이란 점을 잊어버린 채 읽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해야 할 일을 명령한 것입니다. 바울이 보낸 교회 서신은 각 지역 교회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주님이 주신 주의 명령들입니다. 결코 개인 서신이 아닙니다. 교회에 주신 명령은 교회에 속한 지체들에게 그대로 전달됩니다. 그러나 오늘날 성도들은 교회는 빼버리고 곧 바로 자신에게만 적용하는데 이는 큰 잘못입니다.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살전5:24). 이 역시 교회에 준 명령입니다. 교회에 주어진 명령은 교회에 속한 형제들에게 주어진 명령이 됩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회, 고린도에 있는 교회,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 에베소에 있는 교회, 빌립보에 있는 교회, 골로새에 있는 교회, 데살로니가에 있는 교회 이렇게 일곱 지역의 지역 교회에 서신을 보냈습니다. 이 편지들에 공통적으로 있는 명령은 ‘기도하라’입니다.

교회마다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비전과 목표를 제시합니다. 그러나 지역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성도들이 모여서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세계 선교, 말씀 선포, 구제 등 할 일이 많이 있지만 이런 것보다 훨씬 먼저 해야 할 일이 기도하는 일입니다. 마음을 합해 기도하지 않고 행해지는 교회 사업은 그냥 사업일 뿐, 하나님의 영광이나 성령의 열매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초대 교회는 무엇보다 기도에 전념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승천하신 후 날마다 함께 모여 기도했습니다. 120명의 사람이 합심해서 기도했다는 점은 오늘날 교회가 해야 할 우선 순위가 무엇인지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모이면 기도하고 흩어지면 전도하자!는 표어를 가장 잘 실천한 교회가 바로 초대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교회에 어려운 문제가 터질 때 곧 바로 기본으로 돌아갔습니다. 사도행전 6장을 보십시오. 구제 문제로 인해 교회의 분란이 일어났습니다. 불평과 반목이 생겼고, 성령의 하나됨이 깨어졌습니다. 그때 문제를 해결하는 베드로와 제자들의 해법이 무엇이었습니까? [우리는 오직 계속해서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념하리라, 하니라.](행6:4). 기도와 말씀에 자신들을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기도는 문제 해결을 위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방법입니다.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념했을 때 교회는 계속적으로 부흥했습니다.

이후에 교회는 헤롯의 심한 박해로 야고보가 목베임을 당하고, 베드로는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제 무교절이 끝나면 베드로 역시 목이 베여 죽게 되었습니다. 그 때 교회는 무엇을 했습니까? 그들은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감옥에 갇혔으나 교회는 그를 위하여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행12:5). 교회는 기도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초대 교회에 불어닥친 엄청난 위기를 해결하는 유일한 한 가지 방법은 모여서 함께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교회’가 기도했다는 말을 유념해야 합니다. 성도들 각 개개인이 따로 각자 기도한 것이 아니라 교회가 기도했습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집합체, 모임을 뜻합니다. 성도들은 집에서 각각 골방에서 은밀히 기도해야 하는 동시에 교회로 모여서 교회가 기도하는 일 역시 중요합니다. 그들의 기도에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주셨고, 베드로는 감옥에서 나왔습니다. 토마스 왓슨은 말하기를, ‘천사는 베드로를 감옥에서 나오게 했지만, 천사를 나오게 한 것은 기도였다’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일하게 하는 것이며, 천사의 조력을 받는 길입니다.

교회의 사역은 기도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이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임명하고 금식하며 기도하고 자기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맡기고](행14:23). 그들은 금식하며 기도함으로써 장로들을 세우고,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마다 이 원칙대로 집사를 임명하고, 장로를 세운다면 교회의 타락은 한결 덜어질 것입니다. 주님은 열두 제자를 세우실 때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그때에 그분께서 기도하러 산으로 가사 밤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니라. 날이 밝으매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의 열둘을 택하시고 또한 사도라 이름하셨으니](눅6:12-13). 그렇다면 우리가 장로나 집사, 성경 교사를 세우는 일에 얼마나 기도하며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습니까?

교회의 기도 사역에 대해서 우리는 분명한 성경적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에 교회 설립과 교회 사역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하늘의 왕국의 열쇠들을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묶으면 하늘에서도 묶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16:18-19). 주님은 베드로의 신앙 고백 즉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친히 자신의 교회를 세우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교회의 권세는 지옥의 문들이 이기지 못할 정도로 강합니다. 주님은 하늘의 왕국의 열쇠들을 ‘네게 주노니’라고 했는데 이는 로마 카톨릭이 주장하는 것처럼 베드로 한 명에게 주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바로 베드로의 신앙 고백과 동일한 고백을 한 무리들의 모임인 교회에게 주셨다는 뜻입니다. 이는 마태복음 18:17-18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만일 그들의 말도 무시하여 듣지 않거든 교회에게 말하되 교회의 말도 무시하여 듣지 않거든 이교도나 세리같이 여기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묶으면 하늘에서도 묶일 것이요,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8:17-18). 하나님은 교회를 무시하는 자를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로 보십니다. 교회의 말을 무시하는 자를 이교도나 세리로 여기도록 하셨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겼는데, 덕분에 그들은 병들거나 죽었습니다(고전11:22, 30). 교회를 멸시하는 일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가 되기 전에 하나님의 교회를 몹시 핍박했습니다. 사도 바울 자신이 스스로 고백하기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일컬음을 받기에 합당치 못한 자”(고전15:9)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또 고백하기를 [과거에 내가 유대인들의 종교 안에 있을 때에 행한 나의 행실에 관하여 너희가 들었거니와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피폐하게 하였고](갈1:13)라고 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그에게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가 이르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하니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행9:5, 22:8, 26:15). 사울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했지만 주님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시며 주신 중요한 임무는 기도였습니다. 교회는 왕국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습니다(마16:18-19). 이 열쇠들을 사용하는 법이 바로 기도입니다. [너희에게 다시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어 주시리라. 이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곳에 나도 그들 한가운데 있기 때문이니라.](마18:19~20). 이는 교회의 기도 사역이 얼마나 큰 능력이 있는지를 보여 주는 확실한 말씀입니다. 교회는 기도해야 합니다. 지역 교회는 하늘을 묶고 풀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교회의 기도 사역에 대한 말씀입니다.

구약에서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호수아가 아말렉과 싸울 때 모세는 산 위에서 기도했습니다.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승패의 결정이 모세의 손이 올라가느냐? 내려가느냐?에 의해 결정 났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손과 상관없이 승리를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늘이 땅을 움직인 것이 아니라 땅이 하늘을 움직입니다. 에스겔 36:37을 보십시오.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의 집이 이것을 위해 내게 구하여 나로 하여금 자기들을 위해 이 일들을 행하게 하여야 하리라. 내가 그들을 불어나게 하되 사람들로 양떼같이 불어나게 하고](겔36:37).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의 사람들을 양떼같이 불어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집은 그것을 하나님께 구해야 했으며, 주님이 자신들을 위해 이 일들을 행하게 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사람들의 수를 양떼같이 많아지게 하기를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시면 되지 누가 그분을 방해할 수 있겠느냐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땅에서 풀지 않으면 하늘에서 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한 가지 예를 더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이스라엘을 만드신 이 곧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내 아들들에 관하여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내게 묻고 내 손으로 행하는 일들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라](사45:11). 내게 묻고(ask), 내게 명령하라(command). 우리는 기도를 통해 주님께 묻고, 기도를 통해 주님께 명령합니다. “내게 명령하라”는 말은 성도들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말씀일 것입니다. 감히 인간이 하나님께 명령을 하다니 신성 모독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게 묻고, 내게 명령하라.” 이것이 바로 교회가 땅에서 기도를 통해 풀고 매는 사역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일하시며, 교회를 통해서 말씀하시며, 교회를 통해서 이 땅뿐만 아니라 저 하늘의 존재들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가르치십니다. [그 목적은 이제 교회를 사용하사 하늘의 처소들에 있는 정사(政使)들과 권능들에게 하나님의 갖가지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엡3:10). 그래서 교회는 무엇보다 기도 사역이 중요합니다. 하늘의 처소들에 있는 정사들과 권능들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배웁니다. 그래서 교회의 기도 사역은 말 그대로 사역입니다. 기도는 하나의 일입니다. 교회가 하나님께 “하나님, 우리는 당신의 뜻을 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서 입을 벌려 그것을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 라고 명령하는 것이 바로 교회의 기도사역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시고, 교회가 그분의 몸이라면 우리는 머리와 몸의 관계를 통해 교회의 사역에 대해서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머리에 만가지 지혜가 있고, 세상을 담을 수 있는 마음이 있다고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머리에 상상력이 넘치고, 영감이 차고 넘치는데 그것을 손으로 표현할 수 있으면 화가가 되고, 목소리로 표현할 수 있으면 훌륭한 가수나 연주자가 됩니다. 언어로 표현하면 시인이나 소설가, 극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온 몸으로 표현하면 무용수가 될 것이며, 연기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몸이 말을 듣지 않으면 그의 머리 속에 있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무한한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몸된 교회가 병들어 있으면 주님의 어떤 지혜와 능력도 표현될 수 없습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의 생명은 몸된 교회의 활동으로 인해 그 생명이 표현됩니다. 그리고 일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몸이 죽어 있다면 그는 식물 인간에 불과합니다. 마찬가지로 살았다는 이름을 가졌지만 죽은 교회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계3:1).

교회가 기도하는 것은 머리되신 주님의 뜻을 원활하게 자유롭게 수행하기 위한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몸된 교회를 통해서 자신의 모든 능력과 지혜를 드러내시고자 하십니다. [너희에게 다시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어 주시리라. 이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곳에 나도 그들 한가운데 있기 때문이니라.](마18:19~20). 교회가 할 일은 먼저 합심입니다. 성령안에서 하나되는 것,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이 제일 조건입니다. 우리는 이전에 ‘십자가와 하나됨’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중간에 막힌 담을 열고, 성령의 띠로 하나되면 우리는 두 사람이 아니라 백 사람이라도 땅에서 합심할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120명이 합심해서 기도했습니다. 지상에서 주님의 간절한 기도 제목은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17:11,21,22)였습니다. 하나가 되지 않으면 주님은 기도를 들어주실 수 없습니다. 이는 비단 교회만이 아니라 가정, 단체, 학교, 심지어 시위대조차도 그들의 의견을 통일해서 요구합니다. 자신들조차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한 상태에서 요구하면 아무도 그 요구를 들어 주지 않습니다. 하물며 교회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사분 오열되고, 서로 다르게 기도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두 사람이 땅에서 하나가 되어 구하면[합심하여 구하면], 하늘에서 이루어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땅에서의 합심 기도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일하시는 근거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로 나와서 모여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모일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받아 모여야 합니다. 말씀에서 모이기를 힘쓰라고 했기 때문에 모이는 것이 바로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모인 것입니다. 반면 뭔가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없나 모이거나 누구를 만나기 위해서 모이는 것은 교회가 아니라 밖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모이는 것과 부르심을 받아 모이는 것은 다릅니다. 부르심을 받아 모이는 것은 주님에 의해 부르심을 받아 모이는 것으로서 여러분 스스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여러분을 부르시므로 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습관으로, 단지 보기 위해서나 관람하기 위해 오기 때문에 교회에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들 속에 주님이 말씀하시므로 속에서 오늘 집회에 가지 않으면 무언가 잃을 것이라는 느낌을 갖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온 사람들은 주님의 이름 안으로 모인 것이고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모인 것입니다.”(교회의 기도 사역-웟치만 니).

오늘날 현대 사회는 너무 바쁘고 복잡합니다. 그러나 200 마일을 달려서 기도 모임을 오는 사람들이 있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바로 곁에서도 교회에 오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특히 30분 기도하기 위해 2시간을 달려야 한다면 개스비, 시간, 오고가는데 드는 체력 등을 감안하여 포기하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예배가 무엇입니까? 구약에서는 희생물(sacrifice)을 드린다고 했는데, 말 그대로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는 것입니다. 시간, 경비, 체력,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희생하지 않으면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희생하는 모임이 아니라 뭔가를 얻기(gain) 위한 모임이라면 이는 바른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준비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자신의 무엇을 희생하면서 모인 모임에 주님은 그 가운데 함께 계십니다. 성도들이 부르심을 받아 모이고 합심해서 주님의 이름을 부른다면 주님은 “나도 그들 한 가운데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모임 가운데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고, 땅에서 메면 하늘에서 메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교회에 권한을 주신 것은 주님이 그분의 교회와 함께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기도 사역을 가장 방해하는 것은 기도 모임에 대한 지독한 불신과 회의, 효용성에 대한 의심입니다. 이렇게 모여서 기도할 필요가 있는가? 기도는 남모르게 은밀하게 하면 되지 않는가? 등의 말이 많습니다. 흔히 어린 성도들이 겪는 문제 가운데 하나는 ‘기도만 하면 되느냐?, 아니면 기도는 기도대로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다 해 보아야 하는가?’ 따위의 질문을 자주 합니다. ‘저는 기도만 하고 앉았다고 베드로가 나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몇 명을 뽑아서 헤롯을 만나 보고, 전 성도들의 서명을 받아서 법무부 장관에게 탄원도 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해 보아야 그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해요.’ ‘기도는 기도대로 하고 돈을 거두어서 간수에게 뇌물을 바칩시다’. 이런 것은 기도가 아니라 주님을 우롱하는 짓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기도는 하면서도 차마 하나님만 믿을 수 없기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을 부지런히 찾습니다. 이것은 지독한 불신이며, 헛된 기도입니다. 교회 내에서 기도 모임을 가장 방해하는 부류 가운데 하나는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기도 외에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서 뭔가를 해 보자는 부류입니다. 기도만 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것 같고, 너무 안일한 것 같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책임 회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데이빗 딕슨은 “어려움으로부터 구원받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는 것은 잘못된 신앙이다. 참된 신앙은 오직 한 가지 방법, 곧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는 방법만을 따른다.”란 명답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기도한 후에는 기도를 통해 얻은 성경적 방법, 영적 지혜만을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때로는 인내로 기다려야 하고, 때로는 과감하게 행동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잔꾀를 부려서는 안됩니다. 한 마음으로 기도하기 시작하면 해야할 일도 보이게 됩니다. 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우리가 요구하고 명령하는 일들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모두 뜨겁게 기도합시다.

교회의 부흥을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그러면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안일함, 나태함, 불신, 기도하지 않는 죄, 주께 대한 열정이 없는 죄악을 회개하게 해 주십니다.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마음에 대한 찔림을 주십니다. 기도하면 방향이 생기고, 기도하면 해야 할 일이 생기며, 기도할 때 회개의 역사가 있습니다. 교회의 성장을 위해 함께 기도합시다. 그러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마음에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순종하려는 마음을 부어 주십니다. 더 많이 기도해야겠다는 은혜와 간구의 영을 부어 주십니다. 선교를 위해 기도합시다. 그러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마음 안에 혼들에 대한 연민과 복음 선포에 대한 부담을 부어 주십니다. 기도할 때 주님은 우리 안에 일하시고, 우리 앞에 일하십니다. 주님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순종할 마음을 갖는다면 주님은 이 교회를 통해 놀라운 일들을 능력있게 이루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약속들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내게 구하라. 내게 명령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할 때 주님은 이루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주님은 일하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약속의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에 상응하는 일을 할 마음과 소원을 넣어 주시며, 일을 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의 기도는 주님이 일하시는 스케쥴이 됩니다. 이것이 참된 교회의 기도 사역입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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