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마귀를 이기는 기도



오늘은 [마귀들을 대적하는 기도]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상고해 보겠습니다. ‘마귀는 기도하지 않는 성도가 무슨 짓을 하든 개의치 않는다. 마귀의 관심사는 성도가 기도하지 못하게 막고 방해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목사의 설교는 설교로서의 능력과 열매가 없고, 기도하지 않는 선교사는 선교지에서 아무리 땀과 눈물을 쏟아도 결코 기대한 결과를 얻을 수 없으며, 기도하지 않는 성도는 결코 마귀를 이겨 승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기도하지 않을 때 교회는 세상의 친구가 되고, 교회는 더 이상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이 아니라 ‘강도의 소굴’이 되고 마는 까닭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큰 바위를 쪼갤 수 있는 강하고 날카로운 정(丁)이라면, 기도는 그 정(丁)을 바위 속에 때려 넣는 망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불이라면 기도는 그 불꽃의 온도를 뜨겁도록 올리며, 활활 타게 하는 바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칼이라면 기도는 칼을 잡을 수 있는 힘있는 손입니다. 성경은 누군가의 뜨겁고도 열렬한 기도없이 하나님이 홀로 일하시는 예를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혼자 얼마든지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지만 성도들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며, 구하라, 요청하라, 간구하라, 명령하라(사45:11)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땅에서 말씀을 믿는 믿음의 기도없이 아무 것도 하지 않으시기로 작정을 하신 것처럼 ‘기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해 주시는 것은 바로 그것을 기도하라는 것이며, 그것을 요청하고,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62장을 보십시오. 주님은 친히 자신이 손수 하실 일을 말씀해 주시면서, 동시에 기도의 일꾼을 세우셨습니다. [오 예루살렘아, 내가 네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웠나니 그들이 낮이나 밤이나 잠잠하지 아니하리라. [주]에 관하여 말하는 자들아, 너희는 잠잠하지 말며 또 그분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사 땅에서 찬양이 되게 하시기까지 안식하시지 못하게 할지니라.] (사62:6~7).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바로 교회의 기도 사역이며, 저와 여러분의 거룩한 임무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8)고 명령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밤낮으로 기도했습니다(살전3:10). 바울은 기도로써 데살로니가 교회의 갓 거듭난 성도들의 부족한 믿음을 완전하게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밤낮으로 매우 넘치게 기도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의 믿음에서 부족한 것을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살전3:10). 기도란 성도가 하나님의 손을 빌려 대신 일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성도들의 기도를 제지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손길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성도들의 기도 생활을 방해하고, 막습니다. 때로는 부부간에 불화를 일으켜서 기도를 방해합니다. 마귀는 성경을 잘 압니다. 부부간의 다툼이나 불화, 애정 문제는 심각한 기도의 장애 요인임을 성도들보다 더 잘 알기 때문입니다(벧전3:7). 때로는 형제간에 문제를 일으켜서 기도를 방해합니다. 마귀는 형제간에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지 않으면 그들의 기도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마음 가운데 은밀한 정욕과 탐심을 심어 줌으로써 기도를 방해합니다. 마귀는 우리가 죄악을 품을 때 그의 기도가 아무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시66:18). 때로는 성경 공부와 묵상을 방해함으로써 기도를 방해합니다. 마귀는 성도가 성경을 멀리한 채 하는 기도가 주님께는 가증한 것이란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잠28:9).

마귀는 두려움 없는 존재로 지음 받았기에 세상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땅 위에는 그처럼 생긴 것이 없나니 그는 두려움 없는 존재로 만들어졌느니라.](욥41:33)고 합니다. 게다가 지혜롭습니다. [보라, 네가 다니엘보다 지혜로워서 사람들이 네게 숨길 수 있는 은밀한 일이 없나니](겔28:3). 마귀는 죄없이 지음받은 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는 물론이려니와 구약의 3대 의인이라 불리는 ‘노아, 욥, 다니엘’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다윗, 솔로몬, 삼손, 베드로, 바울 등 어떤 하나님의 사람도 마귀를 두렵게 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천사장 미가엘조차도 마귀를 대적하여 함부로 말하지 못했습니다(유9). 마귀는 어떤 사람도 자신의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고, 이길 수 있으며, 넘어뜨릴 수 있는 힘과 지혜의 소유자입니다. 마귀는 인류 6,000년 역사에서 한 분 예수 그리스도 외에 패배를 모르는 불패(不敗)의 용사입니다. 이런 마귀를 상대로 연전연승할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마귀에게도 약점이 있고, 두려운 존재가 있습니다. 이것만 알면 아무도 이길 수 없었던 마귀를 어린아이도 이길 수 있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을 믿고 떱니다. [네가 한 하나님이 계시는 줄 믿으니 잘하는도다. 마귀들도 믿고 떠느니라.](약2:19). 마귀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두려워합니다. 복음서에는 이런 예가 많이 나옵니다. 마가복음 1:23-27절을 보십시오. [그들의 회당에 부정한 영이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를 지르며 이르되, 나사렛 예수님이여, 우리를 내버려 두소서.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오셨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신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시니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그를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그 부정한 영이 그 사람을 쥐어뜯고 큰 소리를 지르며 그에게서 나오므로 그들이 다 심히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 어찌된 일이냐? 이 얼마나 새로운 가르침이냐? 이는 그가 권위로 명령한즉 부정한 영들조차 순종하기 때문이라, 하더라.](막1:23~27). 주님은 가시는 곳마다 마귀를 꾸짖으시고 내어 쫓으셨습니다(마17:18, 막6:13, 눅11:14, etc). 예수님은 마귀 들려 무덤 가운데 거하던 청년을 구원하셔서 자기 고향의 선교사로 파송하셨고(막5), 일곱 마귀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증인으로 삼으셨습니다(눅8:2, 막16:9). 현 세상에서 마귀를 이긴 유일한 사람은 바로 육신을 입고 오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입니다. 이는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 마귀의 일을 멸하시는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목적은 이것이니 곧 마귀의 일들을 멸하려 하시는 것이라.](요일3:8b).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마귀를 멸하셨습니다. [자녀들은 살과 피에 함께 참여한 자들이므로 그분도 마찬가지로 같은 것에 참여하셨으니 이것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히2:14). 우리는 여기서 사람이 마귀를 이길 수 있는 한 가지 길을 봅니다. 우리는 단독으로 마귀를 이길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길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라면 언제나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마귀의 약점은 자신을 무참히 이기신 유일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성도들과 함께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믿는 성도들에게 마귀를 이길 힘과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미 복음서에서 그 실예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함께 부르사 모든 마귀를 제압하며 질병을 고치는 권능과 권위를 주시고](눅9:1). 그리고 이 권능의 역사는 마태복음 28:18-20에서 모든 제자들에게 위임되었고, 사도행전을 통과해(행19), 2000년 교회사는 물론이고 요한 계시록까지 꾾임없이 이어집니다(계12:11). 마귀를 이기는 비결은 바로 마귀를 이기신 주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승리를 선언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33, 요한일서 4:4 두 구절을 보겠습니다. [너희에게 이 일들을 말하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마귀는 지금 현 세상의 통치자입니다. 주님이 세상을 이기셨다는 말씀은 마귀를 이기셨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 제자들에게 마귀를 이기는 승리의 비결을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그 비결이란 바로 주님이 승리자란 사실을 알고 그분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제 혼자가 아니라 믿는 자녀들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그보다 더 크시기 때문이라.](요일4:4).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마귀를 이기는 승리의 비결이 바로 마귀를 이기신 주님을 믿고, 그분의 이름을 사용하여 기도하는 것이란 간단한 사실에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결코 흉내낼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19:13-16절에는 바울 사도가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고 그대로 흉내내었지만 성공하지 못한 예가 나옵니다. [그때에 떠돌아다니는 유대인들 가운데 마귀를 내쫓는다 하는 자들이 자기들도 흉내내어 악한 영들이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이르되, 바울이 선포하는 예수님을 힘입어 우리가 너희에게 엄히 명하노라, 하더라. ... 15. 그 악한 영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그 악한 영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그들을 눌러 이기니 그들이 벌거벗고 상한 채로 그 집에서 도망하매](행19:13-16). 거짓 신자들은 결코 마귀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자신이 누구인지,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도 모르고 날뛰는 스게바라의 일곱 아들들과 같은 교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거짓 신자들은 교회를 다니면 서 갖가지 믿음을 흉내는 내 보지만 결코 마귀를 이길 수 없습니다.

성도는 예외 없이 모두 영적 전쟁을 치르는 그리스도의 군사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딤후2:4). 주님은 구원의 대장이시며, 전사이십니다. [[주]는 전사(戰士)시요, [주]가 그분의 이름이시로다.](출15:3). 용장(庸將)밑에 약졸(弱卒)없다는 말대로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단련, 기도의 훈련을 통해 모두 훌륭한 군사가 될 수 있습니다. 군사는 적과 싸워 이겨야 하는 존재입니다. 이기지 못하는 군대는 존재 의미가 없습니다.

그럼 우리는 누구와 싸웁니까? 우리는 영적인 군대이기 때문에 영적인 원수인 마귀와 싸워야 합니다. [너희가 마귀의 간계(奸計)를 능히 대적하고 서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全身甲?)를 입을지니 이는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을 대적(對敵)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정사(政事)들과 권능들과 이 세상 어둠의 치리자들과 높은 처소들에 있는 영적 사악함을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이라.](엡6:11~12). 주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들을 통칭해서 마귀들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주님으로부터 마귀를 대적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께 복종하라.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에게서 도망하리라.](약4:7).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는 물러납니다. 그럼 어떻게 대적합니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검을 잡고 싸워야 하는데 그 싸움의 바탕이 바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갑옷과 검을 잡아도 적의 속임수에 당하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전투에는 이기고 전쟁에는 지는 그런 비극이 발생합니다. 마음껏 칼을 휘둘러도 적의 옷자락 하나, 머리카락 하나도 베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는 기도를 통해 마귀의 교활한 간계와 속임수를 능히 파악할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약1:5). 마귀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를 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뒷받침되지 않는 힘은 마귀를 이길 수 없습니다. 마귀를 이기는 기도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엡4:27). 기도할 때 죄를 깨닫게 되고, 기도할 때 말씀의 조명을 얻게 됩니다. 어떤 군대도 내부의 적을 두고 승리할 수는 없습니다. 틈을 주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승리의 비결입니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4:27). 이는 거룩한 삶, 경건한 생활을 위한 기도를 해야 함을 말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제 아무리 위대한 성도라 할지라도 다 죄를 짓습니다.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성군 다윗이 패한 것은 마귀에게 틈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죄를 지으며 삽니다. 그러면 어떻게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을 수 있습니까? 죄를 안 짓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이미 지은 죄를 씻어내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것은 바로 회개의 기도입니다. 잘못을 시인하고 죄를 회개할 때 마귀는 우리 안에 구축해 둔 모든 진지가 허물어집니다. 죄를 자백하고 말씀의 빛 가운데로 나오면 마귀가 장악한 마음속의 모든 어둠의 요새들은 다 드러나고 맙니다. 주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의 은밀한 죄를 책망하시고 바로 잡아 주십니다.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밝히 드러나게 되나니 이는 무엇이든지 밝히 드러나게 하는 것은 다 빛이기 때문이라.](엡5:13).

저는 선교 단체에 있으면서 세상의 모든 유형의 죄인들을 거의 다 만났습니다. 젊은 20대의 대학생들이 지은 죄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끔찍한 죄들을 다 접했습니다. 도벽, 근친상간, 간음, 강도, 동성연애, 사기, 절도, 살인, 강간 등.... 이것이 대학생들의 모임인지 어느 교도소 잡범들의 수용소인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저도 그 죄인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마귀는 어린 혼들이라고 해서 결코 봐 주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주님 앞에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자백함으로써 깊은 죄 사함의 은혜와 감격을 누리고 일생을 주님께 헌신함으로써 세계 각국에 선교사로 생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인생의 패배자요, 죄인들의 우두머리라고 서로 경쟁하던 그들이 영적 거성으로 변화되는 것을 자주 목격했습니다. 마귀는 주님 앞에 잘못했다고 자백하고, 자신의 죄를 시인하는 회개하는 죄인을 삼킬 수 없으며,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마귀를 이기는 기도란 곧 회개하는 기도입니다. 회개는 마음을 청결하게 해 주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받아 내 마음 구석구석까지 다 깨끗하게 해 줌으로써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 줍니다. 회개는 마귀의 진지를 부수는 강력한 기도입니다. 회개의 기도는 마귀에게 일방적으로 패배하던 성도들이 역전의 카운터 펀치(counter punch)요, 승리의 히든(hidden) 카드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는 우리의 대적 마귀가 쉼없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현재 전시(戰時) 상태입니다. 한 순간의 방심이 영원한 나락으로 떨어지고, 패배와 수치로 직결됩니다.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對敵)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겪는 줄 너희가 알기 때문이니라.](벧전5:8-9).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이는 방어와 공격의 필수 요소입니다. 마귀를 이기는 기도란 깨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깨어있지 못해서 망했습니다. [시험에 빠지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영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26:41). 주님은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하는 것이 육신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는 비결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기도하지 못하는 핑계로 ‘영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란 주님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육신이 약하기 때문에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란 의미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망각의 천재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쉽게 잊고, 속지 말아야 할 것들에는 쉽게 속습니다. 반면 잊어야 할 것들은 오래 기억합니다. 그것이 육신의 연약함이요, 죄성입니다. 가나안 정복의 믿음의 영웅 여호수아도 이웃 부족이었던 기브온 족속들에게 감쪽같이 속았습니다(수9:3-15). 이유는 간단합니다. 깨어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어디로 가든지 항상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받은 여호수아였지만 기도하지 않았을 때는 그는 꼼짝없이 속았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이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는 [주]의 입에서 조언을 구하지 아니하고](수9:14).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마귀를 이길 수 없습니다. 마귀의 전술은 속임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항상 기도하고 기도 중에 감사를 드리며 깨어 있으라.](골4:2)고 권면했습니다. 특히 말세(末世)를 살아가는 우리는 더욱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오직 모든 것의 끝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라.](벧전4:7).

새벽을 깨우는 기도는 마귀를 이기는 첩경입니다. 마귀는 저녁 문화, 심야 문화를 주도합니다. 심야 문화에 익숙한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새벽을 깨울 수 없고, 이른 아침 맑은 정신으로 하나님께 새벽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새벽을 마귀에게 빼앗김으로써 아침은 출근 준비, 식사, 자녀들 학교 등의 문제로 분주하게 되고 결국은 하루를 기도없이 시작함으로써 죄와 세상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맙니다. 우리는 주님이 새벽 일찍 일어나서 기도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 교훈을 마음 속 깊이 받아 들여야 합니다. [새벽에 아직 날이 밝기 훨씬 전에 예수님께서 일어나 외진 곳으로 나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1:35). 성경의 위인들, 교회사의 믿음의 선배들 가운데 새벽에 엎어져 자면서 믿음의 승리를 쟁취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새벽을 깨우리로다 노래하는 시편 기자의 신앙을 배워야 합니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하프야, 깰지어다. 나도 직접 새벽을 깨우리로다.](시57:8). 주님은 이른 새벽에 우리를 도우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도시/ 한가운데 계시매 그 /도시/가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요, 하나님께서 그 /도시/를 도우시되 이른 새벽에 도우시리로다.](시46:5). 주님은 새벽에 긍휼로 우리를 만족하게 하십니다. [오 새벽에 주의 긍휼로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가 평생토록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소서.](시90:14). 종교 개혁자 존 칼빈은 4시에 잠을 깨어 아침 예배를 드리고 경건의 훈련을 먼저 쌓은 후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였습니다. 마틴 루터에게 있어서도 그는 매일 아침 기도를 마치고 그 후에 가족과 같이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만약에 내가 매일 새벽 두 시간을 기도로 보내는 것을 실패하면 그날의 승리는 마귀에게 돌아갈 것이라" 고 했다.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레도 매일 새벽 4시에 기도를 시작하여 두 시간을 보낼만큼 강조하였고 겨울에 춥다고 새벽기도회에 나오지 않는 신자들을 향하여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자들" 이라고 하였습니다. 찰스 시므온은 새벽 4시에 기도를 시작하여 아침 8시까지 시간을 바쳤고, 애즈버리 감독은 새벽 4시에 일어나 두 시간 동안 기도와 묵상으로 보내기를 좋아했습니다. 찰스 스펄젼도 매일 아침 기도를 규칙적으로 하였으며 매일 매일 성경을 읽고 그 속에 몰입되어 깊은 묵상을 하였습니다. 중국의 유명한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도 매일 아침 기도하는 습관과 매일 매시간 하나님과 말씀으로 교제하는 생활을 끊임없이 하였습니다. 그는 기도야말로 "하나님께로 상승하는 마음" 이라고 표현했습니다(‘조용한 개벽-이것이 새벽기도 운동이다’에서 발췌).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마귀를 이기는 기도입니다. 회개의 기도가 상처와 병을 치료하는 과정이라면, 깨어 기도하는 것은 미리 병을 예방하는 예방 의학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죄와 싸우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죄를 즐기는 성도는 적과 동침한 군인이며, 동료를 배신한 군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군인은 대충 전쟁을 할 수 없습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였노라.](히12:4).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능력이 약화된 가장 큰 원인은 죄에 대한 기준이 너무나 완화되고, 약화되었다는데 있습니다. 죄에 대한 성경적 기준이 아닌 세상 기준을 잣대로 삼아 버리면 싸워야 할 죄는 거의 다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고, 죄도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법이 새겨져 있지 않으면 여러분은 결코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할 줄 모를 것입니다. 분명한 영적 기준, 확고한 성경적 가치관이 금강석 철필로 바위에 새긴 것보다 더 선명하게 내 양심과 지성 속에 십자가의 피로 새겨진 성도만이 악을 거부하고, 그것을 미워하고, 선을 택할 줄 압니다. 교회가 경건의 능력, 영적 능력을 잃어버리고, 맛을 잃어버린 원인 가운데 하나는 신약 성경이 가르치는 영적, 윤리적 삶의 기준을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학교 교육은 죄에 대해 바른 기준을 제공해 주지 않습니다. 어린 학생들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이 왜 죄인지 학교에서 결코 배우지 못합니다.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이 왜 죄인지, 기도하지 않는 것이 왜 죄인지, 믿음으로 행치 않는 것이 왜 죄인지 어디서 어떻게 배울 수 있겠습니까? 탐심은 죄입니다. 성경은 모든 불의가 죄라고 말합니다(요일5:17).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큰 죄입니다. 불신은 치유할 수 없는 큰 죄입니다. 죄에 대한 이런 성경의 절대 기준이 아니라 상황 윤리, 상대주의, 인본주의를 기준으로 삼으면 죄와 싸울 수가 없습니다.

마귀는 성도들에게 죄에 대한 기준을 애매모호하게 하고, 낮춤으로써 승리를 쟁취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율법주의자들이 아니지만 구약의 율법보다 훨씬 더 엄격하고 수준 높은 내적 도덕률이 있습니다. 이것을 성령의 법이라고 말합니다. 저와 여러분 안에는 세상 사람들이 결코 알 수 없는 성령이 내주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법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롬8:2). 성령 안에서 살고, 성령 안에서 걸으면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며,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않게 됩니다.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성/령 안에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만일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살면 또한 /성/령 안에서 걸을지니](갈5:25).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았고,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의 법으로 살아야 합니다(롬3:27).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은 다 죄란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롬14:23).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왕가의 법입니다. [너희가 성경에 따라,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왕가의 법을 성취하면 잘하는 것이거니와](약2:8). 우리는 서로 남의 짐을 저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법입니다. [너희는 서로 남의 짐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6:2).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행동에 책임과 의무가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유의 법에 따라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자유의 법에 따라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약2:12). 이것이 성경의 기준입니다. 여러분은 죄에 대한 기준을 높여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거룩한 삶, 경건한 삶에 대한 열망을 높여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마귀를 이기려면 먼저 죄에 대한 바른 기준을 잡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기준이 없으면 방비도 없고, 기준이 바로 서지 않으면 회개도 없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의 승리 비결은 기준이 분명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배의 기준, 기도의 기준이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그의 세 친구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성령을 대적하는 육신과 싸워야 합니다. 싸우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죽여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군사의 임무입니다. [이는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로되 /성/령을 통하여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임이라.](롬8:13). 자신의 육신을 이기는 길은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갈보리의 십자가에서 육신을 처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렇게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 자신의 몸을 내어 드려야 합니다. 그 때 주님은 우리 안에서 성령을 통해 역사하시며, 육신의 남은 생애를 자신의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됩니다. 마귀는 우리 육신의 정욕을 자극합니다. 십자가는 육신의 정욕을 죽입니다. 선택은 각자의 몫입니다. 마귀를 이기는 기도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정욕과 애정을 처리한 순결한 기도입니다. 육신은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되는 것을 구함으로써 마귀를 돕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아에서 나온 모든 이기적인 욕심을 못 박아 버림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아직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기도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기도하지만 육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기도가 대부분입니다. 많은 열매를 맺기를 원하는 기도를 하지만 주님이 나에게 있는 쓸모없는 가지들을 잘라내는 것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얻고자 간절히 기도하지만 그것을 위해 주님이 내게 주시는 단련은 한사코 거부합니다. 영광을 얻기는 원하지만 고난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는 하면서도 승리를 경험해 본 적이 없거나 어쩌다 한번 자신을 완전히 포기함으로써 얻게 되는 그런 체험이 전부입니다. 때로 우리는 너무나 욕망에 충실한 기도에 열정적이어서 금식 기도원이나 기도원에 올라가서 기도하는 것도 기꺼이 감수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죽음에 처하지 않는 자아에서 나온 기도는 결코 받지 않으십니다. 그런 기도는 마귀를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마귀를 이기는 기도란 십자가에서 못박힌 자아에서 나온 기도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성도의 기도는 순결한 기도입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구하는 그런 기도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마귀를 이기지 못했던 제자들에게 주님이 그 원인과 진단을 주신 본문을 통해 배움을 얻고자 합니다. 마가복음 9:28-29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그분의 제자들이 그분께 은밀히 여쭙되, 어찌하여 우리는 그를 내쫓지 못하였나이까? 하니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런 종류는 오직 기도와 금식으로만 나가느니라.](막9:28-29). 제자들은 예전에 마귀를 이겼던 놀라운 경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귀를 이기는데 실패하자 주님께 은밀히 물었습니다. 그 때 주님은 놀라운 대답을 해 주셨는데, 이런 종류의 마귀는 ‘오직 기도와 금식’으로만 나간다고 하셨습니다. 기도와 금식 없이는 결코 이길 수 없는 마귀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도로 사역을 시작하셨고 기도로 공생애 사역을 마치셨습니다. 일견 기도는 가장 수동적이고, 연약한 행동으로 보이지만 가장 적극적이고 전투적인 신앙 행동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능동적인 Action입니다. 주님은 마귀를 대적하고 물리치는 방법으로 기도와 금식을 제시하셨습니다. 이 현 세상은 마귀의 대적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위험이 많습니까?

사도 바울은 [내게 크고 효력 있는 문이 열렸으며 대적(對敵)들도 많기 때문이라.](고전16:9)고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들에게 자신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 해 줄 것을 간절히 부탁했습니다(살전5:25, 살후3:1, 골4:3, 엡6:19). 이는 그가 효과적인 영적 전투를 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적들이 많다, 마귀들이 많다, 장애물이 많다....어떻게 대처해야 하겠습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합심 기도, 중보 기도는 마귀를 능히 이기는 비결입니다. 힘들면 혼자 기도 요청을 하십시오. 같이 기도하자고 부탁하십시오. 사자는 모여있는 동물이 아니라 무리에서 떨어져 있는 놈을 공격합니다.

주님은 마태복음에서 제자들의 실패 원인을 한 가지 더 지적하셨는데, 그것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그 까닭은 너희가 믿음이 없기 때문이로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에게 만일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에게 말하여, 여기서 저 너머로 옮겨 가라, 하면 옮겨 갈 것이요, 또 너희에게 불가능한 것이 아무것도 없으리라.](마17:20). 마귀를 이기는 기도란 믿음의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기도는 결코 마귀를 대적할 수 없고, 물리칠 수 없습니다. 한국 최고의 명문 대학에 입학해서 학사 장교로 군대를 간 형제가 있었습니다. 머리 좋고, 나름대로 믿음이 좋다고 자부하는 형제였는데 군대 제대 후 사람이 확 변해 버렸습니다. 본래 열심히 하던 공부는 더 열심히 해서 유학 갔다와서 모교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늘 얼굴에는 고뇌와 수심이 가득했습니다. 사연인즉 군 생활하면서 군부대 근처에 있던 어떤 아가씨와 연애를 했는데, 아이까지 임신시킨 상태였습니다. 몇 십년이 지났지만 그 생각만 떠오르면 온 몸에 힘이 쭉 빠지곤 했습니다. 그는 수십 년간 남모르게 하나님 앞에 반복적으로 회개했고, 자백했지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마귀는 집요하게 그 문제를 물고 늘어졌습니다. 그는 회개했고, 자백했고, 기도했지만 도무지 참소하는 마귀를 이길 방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때 한 목사님이 ‘감정에 의지하지 말고, 기록된 말씀을 믿으시오’라고 했습니다. 죄를 사함 받았다는 느낌을 얻으려고 하면 실패합니다. 그러나 예수의 피를 통해 죄를 깨끗하게 하시고, 다 사해 주시는 말씀을 믿을 때 마귀를 이깁니다. [우리가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그분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그분의 피를 통하여 대속(代贖)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엡1:7). 구원받은 성도가 죄를 지을 때 우리는 자백하고, 회개한 후에는 주님의 용서를 확신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르기를, 내 범죄들을 [주]께 고백하리이다, 하고 주께 내 죄를 시인하며 내 불법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주께서 내 죄의 불법을 용서하셨나이다. 셀라.](시32:5). 마귀를 이기는 기도란 자신의 느낌이 아니라 기록된 말씀에 의지하는 믿음의 기도입니다. 성도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을 때 그의 기도는 터진 자루처럼 아무 것도 담을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 주님의 신실한 약속을 믿고 마귀를 물리치십시오. 믿음은 느낌이나 감정이 아닙니다. 믿음은 사실입니다. 마귀는 성도의 감정을 흔들 수는 있어도 믿음의 기도를 하는 성도를 흔들지 못합니다. 유다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너희 자신을 세우며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고](유1:20).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라.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이것은 강력한 기도이며, 마귀를 대적하며 이기는 기도입니다.

오늘 우리는 [마귀를 이기는 기도]에 대해서 함께 성경을 상고해 보았습니다. 우리 모두 바른 기도 생활을 통해 마귀를 이기고,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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