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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더욱더(MUCH MORE)  


우리는 성경을 읽다가 어떤 특정한 단어나 어구에 마음이 사로잡히는 때가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저희의 눈을 사로잡는 한 어구는 더욱더(much more)입니다. 로마서 5:9-10에는 두 번의 '더욱더'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이 풍성하신 분이시며, 넉넉한 공급자이십니다. 우리는 이 지상에 살면서 주님의 풍요로움을 이해하고, 믿음으로 그것을 누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더욱(much more)란 말을 잘 살펴봄으로써 우리의 영적 능력을 배가하며, 생명이 더욱 풍성해 지기를 간절히 빕니다.

첫째, 로마서 5:9-10,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은즉 더욱더(much more) 그분을 통하여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으리라. 이는 우리가 원수였을 때에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은즉 화해하게 된 자로서 더욱더(much more) 그분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을 것임이라.}(롬5:9-10). "그분의 피를 통해"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면 그분의 피뿐만 아니라 그분 자신의 전 인격과 모든 것을 통해서는 그 구원이 더욱더 확실하다는 강조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그분의 살아나심, 주님의 부활의 생명으로는 우리가 더욱더 확실한 구원이 될 것은 틀림없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피 흘리심과 죽음으로 죄인이요, 하나님과 원수된 저와 여러분을 의롭게 하시고, 화해케 하셨다면, 주님 자신과 자신의 살아나심은 더욱더 구원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하였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셔서, 살아 계심으로 인해 그분의 피와 그분의 죽음을 통해 이룬 모든 구원 사역을 더욱더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피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구원의 사역은 다 이루어졌습니다. 주님은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It is finished)}(요19:30)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부활을 통한 살아 계심, 주님의 생명은 "더욱더" 다 이루었다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더욱더"라고 말씀하신 주님을 깊이 생각해 보시고, 상고해 보십시오.

둘째, 로마서 5:17, 20, {이는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군림하였은즉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더욱더(much more) 생명 안에서 군림할 것임이라. 또한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가 넘치게 하려함이거니와 죄가 넘친 곳에 은혜가 더욱더(much more) 넘쳤나니}(롬5:17,20). 아담을 통해 세상에 들어온 죄와 사망의 권세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들어온 은혜와 생명은 훨씬 더 큽니다. 주님은 아담 안에서 죄와 허물로 망가진 우리를 고치시고, 수리 하셔서 원상 복구하는 정도가 아니라, 거듭나게 하시는 새로운 창조를 통해 망가지고 버려지기 전보다도 훨씬 더 낫게 하셨습니다. 집을 고쳐 주기만 고마운 일인데 훨씬 더 좋은 집으로 지어 준 꼴입니다. 구원받은 후에 구원받기 전에 자연스럽게, 열심히 죄를 짓듯이 그렇게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신 적이 없습니까? 자신의 육체가 좋아하는 것을 할 때에 밤을 새워도 피곤하지 않고, 아무리 해도 싫증나지 않고,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은밀히 하고 싶은 욕망이 솟아오르면서 다시 이전 죄의 쾌락을 즐기시는 분들은 모두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거듭나기 전의 죄의 욕망만큼이나 거듭난 후의 의의 욕망이 넘치고, 죄의 권세(power)보다 생명의 권세(power)가 더 강하면 얼마나 좋을까? 밤을 세워 도박을 즐기고, 휴일이면 라스베이가스로 가는 길이 멀게 느껴지지 않는 죄의 욕망은 10분의 성경 읽기도 지치고, 1-2 시간의 교회 가는 길도 그렇게 멀게만 느껴집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이는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군림하였은즉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더욱더(much more) 생명 안에서 군림할 것임이라. 또한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가 넘치게 하려함이거니와 죄가 넘친 곳에 은혜가 더욱더(much more) 넘쳤나니}(롬5:17,20). 이전에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내 안에 군림하던 사망보다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와 의가 더욱더 생명 안에서 군림한다고 말합니다. 복음의 능력은 죄의 능력을 훨씬 능가합니다. 복음의 생명은 죄의 사망을 압도합니다. 사람들은 죽인다고 하며 모두 다 겁을 내고, 굴복하고 맙니다. 그러나, 죽음을 비웃는 순교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타고나면서부터 그런 담력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은 은혜와 의의 선물이 훨씬 더 강한 생명의 능력, 죽음을 삼키며 죽음을 이기는 부활의 생명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죄가 넘치는 곳에 죄를 압도하는 풍성한 은혜가 더욱 넘침으로 어떤 죄인이라도 구원받는데 부족하거나 모자람이 없습니다.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더욱더 넘치는 은혜, 더욱더 넘치는 생명을 지닌 성도들이라면 이전에 즐기던 죄의 쾌락들보다 더 열심히 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전에 내 안에 있던 죄의 욕망대신 넘쳐나는 의(義)의 소욕으로 인해 복음을 증거하고, 기도하고, 형제 사랑에 전념하며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넘치는, 풍성한> 이 두 마디를 기억하십시오. 홍수가 나서 물이 넘치는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는 넘치는 은혜입니다(고후9:8). 모든 것을 공급하고도 남으며, 모든 필요를 채우고도 남으며, 죄가 넘치는 곳에는 죄보다 훨씬 더 은혜를 넘치게 함으로 죄의 소욕을 물리칩니다. {하나님께서는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것은 너희로 하여금 항상 모든 일에서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선한 일에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9:8). 뭐든지 넘치는 것은 부족한 것보다 못하다는 세상 진리와는 반대로 주님의 은혜는 조금의 아쉬움도, 부족함도 없는 차고 넘치는 은혜입니다. 주님은 주린 백성들에게 빵을 주실 때도 알맞게가 아니라 넘치게 주셨습니다. 생명의 양식도 마찬가지입니다. 14절,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 15절 {이루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15)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풍성한 생명입니다(요10:10). 울창한 초목이 우거진 삼림을 보면서 우리는 그 푸른 생명력에 대해 감동합니다. 반면 늦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면 우리는 그 초목에서 생명력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주시는 영적 생명을 통해 사그러지지 않는 불꽃처럼 주체할 수 없는 생명력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생명을 더욱(more)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저와 여러분이 지닌 생명은 땅에서 난 생명이 아닙니다. 뿌리가 잘려진 나무나 가지도 아닙니다. 우리의 생명은 피조된 생명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명은 생명의 창조주이시며, 생명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에게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 생명은 죽음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삼키는 생명이요, 부활의 생명입니다. 겨우 겨우 근근히 살아가는 그런 빈핍한 공급이 아니라 넘치는 공급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망은 넘치는 소망입니다(롬15:13). 흔히 과거가 없으면 미래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미래가 없으면 현재가 없습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소망을 넘치게 해 주셨습니다. 다가올 영광을 미리 보게 하시고, 우리에게 주어질 유업의 상급이 어떤 것인지 알려 주셨으며, 우리의 몸이 어떻게 변화될지, 장차 이 세계가 어떻게 될지 한 장의 선명한 그림보다 더 상세하게 마음속에 심어주셨습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 성도의 공중 들림, 몸의 부활, 천년 왕국, 새 하늘과 새 땅, 영원한 왕국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계시가 쏟아 부어져 몸은 지금 이 순간에 있지만 마음은 벌써 저 멀리서 빠르게 다가오는 그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소망의 하나님께서 믿음 안에서 모든 기쁨과 평강으로 너희를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권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13).

-풍성한 사랑(빌1:9). {내가 이것을 기도하노니 곧 너희의 사랑을 지식과 모든 판단에서 더욱더 풍성하게 하사}(빌1:9).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부어 주셨습니다. 아무리 애정 결핍 가운데서 자라나고, 사랑이 뭔지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라도 복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고, 그 사랑으로 형제들을 사랑하게 됩니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에 의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넓게 부어졌음이니}(롬5:5). 내 안에 부어진 이 사랑은 창고의 물품처럼 그 자리에 굳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more and more) 풍성하게 되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바로 이 점을 기도했습니다. {내가 이것을 기도하노니 곧 너희의 사랑을 지식과 모든 판단에서 더욱더 풍성하게 하사}(빌1:9). 우리의 육신, 옛 자아는 자기 외에 누구도 사랑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사랑을 공급받아 그 사랑으로 살 때 원수를 축복하고 자기를 대적하는 자를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인격의 수양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학문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사랑은 바로 내 안에 부어진 사랑이 있고, 그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하게 됨으로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들 간에도 사랑이 전혀 없다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표지는 형제간에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형제 사랑을 통해 세상은 우리가 주님의 제자인줄 알게 됩니다.

-주의 일을 넘치게 하라(고전15:58). 성도는 절대로 게으르거나 나태한 자들이 아닙니다. 성도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주님께 할 일을 아뢰고, 주의 명을 받아 땀흘려 수고하는 종들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받아 놀고먹는 백수건달이 아니라 사명을 부여 받은 ministry(사역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을 넘치게 하는 자가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알기 때문이니라.}(고전15:58). 주님의 종 죠지 휫필드는 '내 몸이 녹슬어 없어지기 보다 닳아 없어지겠다'며 사역했습니다. 그는 결코 적당히 하지 않았습니다. 힘에 넘치도록 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항상 주의 일을 넘치게 하는 자가 되라." Amazing Grace의 가사를 썼던 쟌 뉴튼은 동료 사역자들과 후배들이 은퇴를 권유했을 때, "내가 아직도 말을 할 수 있는데 어찌 입을 다물 수 있겠소!"라며 죽는 그 순간까지 주의 일을 넘치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자신의 일을 하느라 주의 일을 저 멀리, 저 뒤로 내 팽개쳐 버리고 있지는 않습니다.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 먹고 사는 일에만 매진하다 주일에 교회 한 번 나오는 것이 주의 일이 전부인 줄 알지는 않습니까?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을 넘치게 하는 자가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알기 때문이니라.}(고전15:58).

-넘치는 고난과 위로(고후1:5). 성도들은 누구나 다 주님의 일꾼 즉 사역자들이며, 주님의 군사들입니다. 일꾼이 일하는 동안에 어찌 평안과 자기 만족만을 추구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그리스도의 고난이 넘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5절, {이는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 안에 넘치는 것같이 우리의 안위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기 때문이라.}(고후1: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 안에 넘치면 주님이 주시는 위로 역시 차고 넘치게 될 것입니다. 고난이 없이 놀고먹는 자들에게 주님이 무슨 위로와 격려와 힘을 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정녕 불가능하며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내 안에, 우리 안에,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넘친다면 그리스도의 위로 역시 그러합니다.

- 기도에 대해 넘치는 응답(엡3:20). {이제 우리 안에서 활동하는 권능에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 이상으로 더욱 넘치도록 능히 행하실 분에게}(엡3:20). 성도들은 무엇에나 부족함이 없습니다. 기도에는 제한이 없으며, 응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기도에 제한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응답에도 제한을 두시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위대한 것들을 구하십시오. 나의 능력에 맞는 일을 구하지 말고, 일에 맞는 능력을 구하십시오. 언제나 지혜를 구하십시오. 기도에 서툰 분은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 기도하십시오. 기도를 통해 주님께 구하고, 주님께 응답받는 체험을 통해서 신앙은 점점 더 강해지며, 성장합니다.

셋째, 빌립보서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순종한 것같이 내가 있을 때뿐 아니라 지금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완수하라(work out-드러내라)}(빌2:12). 이는 구원받은 이후 우리의 성화, 성장, 성숙에 대한 말씀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뻐하시는 뜻을 두시며, 행하시기도 하시는 것들에 두려움과 떨림으로 순종하여 열매로, 선한 간증과 고백으로, 형제 사랑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구원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영적 생활에서는 단지 출발점에 지나지 않습니다. 구원 그 이후는 더욱더 중요합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후에 우리가 이루어 가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베드로는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1:5-8, {이것과 더불어 너희는 열심을 다하여 너희의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이것들이 너희 안에 있어 풍성한즉 너희로 하여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빈약하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벧후1:5-8). 구원받았으니 다 되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구원받았기에 더욱더 두려움과 떨림으로 그 구원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하십시오.

넷째, 빌립보서 1:14 {주 안에 있는 형제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내가 결박당한 일로 인하여 확신을 갖게 되어 두려움 없이 말씀을 더욱(much more)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빌1:14). 이는 우리의 봉사에서 '더욱더 '입니다. 힘들고 어려우면 우리는 더욱 순수해지고, 더욱 겸손해지고, 더욱 주님을 의뢰하게 됨으로 주님을 훨씬 더 많이 섬기게 되고, 더 많은 사역을 수행하게 됩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히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복음 전파 사역과 교회들은 와해될 것처럼 생각하지만 결과는 정 반대였습니다. 교회에는 기둥같이 여기는 일꾼들이 어느 날 교회를 떠남으로써 이제 그 교회는 끝장난 것 같아도 오히려 교회는 더욱더 강건해집니다. 리챠드 범브란트 목사님은 회교권 선교를 하다가 오랫동안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 낳을 때, 어린양들이 다 흩어지고 없을 줄로 알았는데 2배로 불어 나 있었습니다. 사역자가 떠나가거나 방해하는 것 같은 어떤 일이 터졌을 때 우리는 주님을 의뢰함으로 더욱더 많은 일을 주님이 이루시는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역은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주님이 이루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베드로전서 1:7, {이것은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단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훨씬 더(muh more)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으로 드러나게 하려 함이니라.}(벧전1:7). 고난의 '더욱더'입니다. 금의 단련과 믿음의 단련 중 어느 것 더 귀한 것인지 말씀합니다. 금은 땅에서 나지만 믿음은 말씀에서 납니다. 금은 사라질 것이지만 믿음은 영원한 것입니다. 금은 물질적인 것이지만 믿음은 영적인 것입니다. 금은 사람을 노예로 만들지만 믿음은 사람을 자유 하게 합니다. 금은 단련을 통해 순금으로 드러나지만 믿음은 단련하면 칭찬과 존귀와 영광으로 드러납니다. 우리는 능동적이며, 드러나는 주의 사역도 있지만 고난의 사역도 있음을 기억합시다. 때로는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그런 삶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삶 자체도 외치는 사역 못지 않게 위대하며 존귀한 사역입니다. 어떤 주의 종은 평생 고문과 박해, 시련과 고난 가운데 살다 죽는 것으로 마치는 삶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삶이 몇 만명을 전도하고, 책을 쓰고, 유명한 목사가 되는 것보다 훨씬 큰 사역일 수 있으며, 존귀와 칭찬과 영광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고난이 영원한 영광의 무게(weight)를 더 나가게 만듭니다. 고린도후서 4:17, {이는 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이 우리를 위하여 훨씬 더 뛰어나고(more exceeding) 영원한 영광의 중(weight of glory)한 것을 이루기 때문이니라.}(고후4:17). 고난이 없는 사람들은 영광의 무게도 없습니다. 고난이 없는 살은 주님이 저울에 달아보실 때 항상 '부족하다'란 판결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섯째, 히브리서 10:25, {우리의 함께 모이는 일을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서로 권면하여 그날이 다가옴을 볼수록 더욱(much the more) 그리하자}(히10:25). 모임의 '더욱더'입니다. 갈수록 모임의 결속력이 약화되고 개개인이 놀아나는 세상입니다. 특히 교회의 모임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주님은 마지막 날들의 시대 정신을 거슬러 성도들이 더욱 모임을 가질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위해서 모여야 합니다. 골방의 은밀한 기도가 중요한 것처럼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은 너무나 귀중한 것입니다. 주님은 {이는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곳에 나도 그들 한가운데 있기 때문이니라(in the midst of them0}(마18:20). 합심하여 구하는 기도는 주님의 응답을 약속하셨고, 그 모임 가운데 주님이 친히 참석해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기 모이면 거기에는 두 사람이 아니고 세 사람입니다. 세 사람이 모이면 셋이 아니라 넷이 됩니다. 기도에 주님의 임재와 함께 하심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결코 없습니다. 우리는 성만찬을 위해서도 모여야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빵을 나누시고, 잔을 나누셨습니다. 결코 개개인이 각자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여서 해야 합니다. 성도의 친교를 위해서 모여야 합니다. 주님은 성도들에게 서로 해야 할 일을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개개인이 각자 따로 논다면 성도는 서로가 서로에게 함으로써 배울 수 있는 영적 진리를 다 놓치고 말 것이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혼자 드리는 예배와 모여서 같이 드리는 집회의 예배는 결코 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여서 서로 권면하고, 서로를 살펴보고, 사랑과 선행에 이르도록 격려해야 합니다(히10:24). 모임의 와해는 곧 마귀의 전술 전략이며, 모임의 와해는 교회의 와해입니다.

일곱째, 히브리서 12:25, {너희는 조심하여 말씀하시는 분을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말씀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늘 하물며(much more) 우리가 하늘로부터 말씀하시는 분에게서 돌아선다면 어찌 피할 수 있으리요.}(히12:25). 엄격함의 '더욱더'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땅에서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고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늘로부터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경히 여기고 불순종한다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은 물어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에게 주님은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2:7, 11, 17, 29; 3:6, 13, 22)를 반복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하는 태도를 통해 주님을 배우고, 은혜를 누리기를 거부할 때, 주님은 징계의 채찍을 통해 우리를 배우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부활하시고, 살아 계시며, 다시 오시는 주님의 이런 "더욱더"(much more)란 말씀 속에서 매일의 생활을 주님과 깊은 친교 가운데 믿음으로 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더욱더"라고 말씀하신 풍성함과 넘치는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누릴 수 있는 형제, 자매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주님, 우리 가운데 오셔서 함께 하시는 주님을 통해 풍성한 삶, 넘치는 은혜 가운데 선한 열매, 의의 열매를 가득히 맺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빕니다.


오늘 말씀을 요약합니다.

 
첫째, 로마서 5:9-10,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은즉 더욱더(much more) 그분을 통하여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으리라. 이는 우리가 원수였을 때에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은즉 화해하게 된 자로서 더욱더(much more) 그분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을 것임이라.}(롬5:9-10). 구원에서의 "더욱더"입니다.

둘째, 로마서 5:17, 20, {이는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군림하였은즉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더욱더(much more) 생명 안에서 군림할 것임이라. 또한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가 넘치게 하려함이거니와 죄가 넘친 곳에 은혜가 더욱더(much more) 넘쳤나니}(롬5:17,20).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의 "더욱더"입니다.

셋째, 빌립보서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순종한 것같이 내가 있을 때뿐 아니라 지금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완수하라(work out-드러내라)}(빌2:12). 이는 구원받은 이후 우리의 성화, 성장, 성숙에 대한 말씀입니다.

넷째, 빌립보서 1:14 {주 안에 있는 형제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내가 결박당한 일로 인하여 확신을 갖게 되어 두려움 없이 말씀을 더욱(much more)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빌1:14). 이는 우리의 봉사에서 '더욱더 '입니다.

다섯째, 베드로전서 1:7, {이것은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단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훨씬 더(muh more)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으로 드러나게 하려 함이니라.}(벧전1:7). 고난의 '더욱더'입니다.

여섯째, 히브리서 10:25, {우리의 함께 모이는 일을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서로 권면하여 그날이 다가옴을 볼수록 더욱(much the more) 그리하자}(히10:25). 모임의 '더욱더'입니다.

일곱째, 히브리서 12:25, {너희는 조심하여 말씀하시는 분을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말씀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늘 하물며(much more) 우리가 하늘로부터 말씀하시는 분에게서 돌아선다면 어찌 피할 수 있으리요.}(히12:25). 엄격함의 '더욱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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