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구원받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제 드디어 “구원이란 무엇인가?”라는 가장 중요하고도 기초적인 질문에 들어왔습니다. 지난 시간에 다루지 못했던 한 가지 질문에 더 답변을 하고, 구원의 문제를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각주 참조1). 지금까지 우리는 주로 성경이 어떤 책인가?에 대한 문제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성경이 말하는 구원과 나는 과연 구원받았는가에 대해서 공부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는 바로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점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이는 사람의 아들이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고 왔음이라.](마18:11).

[이는 사람의 아들이 사람들의 생명을 멸하러 온 것이 아니요, 구원하러 왔음이라, 하시고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눅9:56).

[이는 사람의 아들이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고 왔음이니라.](눅19:10).

[...내가 온 것은 양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b).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내가 잃어버린 바 된 사람이라면 나는 주님을 통해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잃어버려진 사람이 아니라면 구원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소중한 무엇을 잃어 본 사람은 경험한 자만이 그 아픔을 알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저는 해마다 이런 잃어버린 아픔을 간접 경험하며 자랐습니다. 집집마다 적게는 한 마리 많게는 몇 마리씩의 소를 키우는데 해마다 송아지를 낳습니다. 돈이 없는 가난한 농가에서는 송아지가 몇 개월 자라면 팔아버립니다. 어미 소는 몇 일간을 새끼를 찾아 구슬프게 울어댑니다. 어미 소는 새끼 송아지를 잃었고, 송아지는 어미를 잃은 것입니다. 우리는 무언가 잃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지갑을 잃었든, 열쇠를 잃었든, 길을 잃었든 잃어 보았을 것입니다. 잃었을 때는 찾고 싶습니다. 사고를 통해 가족을 잃어 본 사람, 화재를 통해, 전쟁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을 비롯해 모든 것을 잃어 본 사람의 아픔은 누구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꿈을 잃어도 슬픕니다. 무엇을 잃었을 때 여러분은 가장 슬프고, 내 생명을 담보로 해서라도 찾고 싶습니까? 나의 조국입니까? 무너진 나의 집안입니까? 구겨진 나의 자존심을 찾고 싶습니까? 잃어버린 명예를 찾고 싶습니까? 선대(先代) 때 도박으로 잃어버린 선산을 찾고 싶습니까?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잃었습니까? 내가 잃은 것 중에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입니까? 가장 슬픈 현상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입니다. 인간은 범죄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에덴의 동산을 잃었습니다. 그 속에 있는 생명 나무의 실과를 잃었습니다. 그보다 더 큰 손실은 나의 창조주이시며, 나에게 생명과 복을 주신 하나님을 잃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거기에 계시며 말씀하시지만 나는 더 이상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내 안에 있는 영(靈)이 죽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대신 얻은 것은 죄와 저주, 진노와 형벌, 죽음과 다가올 심판, 지옥입니다.

신문에 이런 기사가 자주 나옵니다. “사람 찾음”-키 175cm, 경상도 말투, 남자, 용모의 특징: ***함. 연락주시면 후사하겠음. 하나님은 지금 도망간 도망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를 찾습니다. 부모 말을 듣지 않고 매일 놀기만을 좋아하던 자식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친구 집에서 자고 들어오는가 했더니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는 친구들에게 수소문을 해 보아도 알지 못했습니다.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고 찾아 나섰습니다. 알고 보니 부모 몰래 빚을 많이 져서 무단 가출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빚진 대가로 잡혀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안 부모는 어떻게 했겠습니까? ① “빚 다 갚고 돌아와라.” ② “돌아와서 빌어라, 빚 갚아 주마”, ③ “내가 빚 다 갚았다. 돌아 와라.” 하나님은 이 땅에 잃어버린 자를 찾아 오셨습니다. 마귀에게 잡혀 죄와 사망의 노예로 살아가는 저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빚 다 갚았다. 돌아 와라.”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몸값을 지불하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와같이 사람의 아들이 온 것도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이는 사람의 아들이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음이니라.](막10:45).

[그분께서 자기 자신을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내주셨으니 이것은 정하신 때에 증거되기 위함이라.](딤전2:6).

이로써 에덴의 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대신 마귀의 말을 믿고 순종하여 완전히 신세를 망쳤던 인간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인해 다시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오셨고, 십자가에서 값을 지불하고 다시 사셨습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의(義)나 행위나 노력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가끔 이런 질문을 합니다.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의 피로 모든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가? 이는 일견 합리적인 질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밤에 거리의 길을 밝히는데 수 백, 수 천개의 가로등이 줄줄이 늘어서야 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래도, 어둡습니다. 그러나, 이 넓은 세상을 어둠에서 빛으로 환하게 밝히는데 태양은 하나면 족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모든 죄를 대속하고 구원하는데는 성전이 필요했고, 양과 염소와 황소의 피가 매일 흘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피로도 완전하게 구속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로는 죄들을 제거함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히10:4). 마치 수만개의 가로등과 형광등을 일시적으로 밝게 해주는 것 같아도 밤을 낮으로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짐승의 피로는 죄를 제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단번에 영원히 인류의 모든 죄를 제거했습니다. [바로 이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번 모든 사람을 위해 드려짐을 통해 우리가 거룩히 구별되었노라.](히10:10).

미국은 남북전쟁이 끝나자 군인들이 벽에다 “미합중국에는 노예가 없습니다. 누구나 가정을 가질 수 있고, 재산을 소유할 수 있으며...”란 벽보를 붙였습니다. 노예들이 구원받을 의(義)가 있어서 노예 해방이 된 것이 아닙니다. 노예들이 전쟁에서 북군들을 도와 혁혁한 전과를 올린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들을 노예로 부리는 주인을 도와 북군들과 전쟁을 했습니다. 그러나, 노예 해방을 선언한 링컨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모두 해방되었습니다. 여기서 전쟁을 이야기 하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노예가 노예에서 해방된 것은 노예들의 행위나 노력없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구원에는 인간의 행위나 노력없이 이루어졌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자신의 피값으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이는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음이라. 그런즉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20).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으니 너희는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고전7:23).

흔히 구원에 대해서 사람들이 쉽게 범하는 오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교회를 다녀야 구원받는다. → 구원받으면 저절로 주님의 몸된 교회의 일원이 됩니다. 지역 교회에 나가는 것은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씀을 배우고, 성도들과 함께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2. 침례(세례)를 받으면 구원받는다. → 구원받은 사람이 침례를 받습니다. 침례는 하나님은 향한 선한 양심의 고백이란 사실을 말해 주십시오. 베드로전서 3:21을 읽어 주십시오. 만약 사도행전 2:38을 펴면

3. 계속 죄를 회개함으로 구원받는다. →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죄의 회개는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과의 올바른 교제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요일1:9). 마귀의 속임수 중 하나는 십자가의 대속이 불완전하다거나 부분적이라고 믿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원죄는 용서받았지만 자범죄는 내가 매 순간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피는 나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완전하게 해결하셨습니다.

4. 착하게 살고 좋은 일을 많이 하면 구원받는다. → 구원은 나의 행위가 아니라 주님의 행위에 근거해 받는 것입니다. 선행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엡2:9).

5. 방언을 해야 구원받는다. → 이는 은사주의자들의 주장일 뿐입니다. 방언은 믿지 않는 자들이 구하는 표적입니다. 육체적인 체험과 느낌을 강조하는 이들은 구원을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대신 자신의 감정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방언, 입신, 환상, 꿈, 계시 등 눈에 보이는 것들을 찾고, 구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구원은 감정에 상관없이 기록된 말씀을 믿음으로 오는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6. 택함 받은 자들만이 구원받는다. → 캘빈주의의 예정 교리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자들을 하나님은 택하십니다.

7. 깨달아야 구원받는다. → 이는 구원파의 교리입니다. 이들은 복음을 깨달은 날짜와 시간, 깨달은 성경 구절이 무엇인지 물어 봅니다. 이들은 개역 성경의 한 구절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1:6입니다.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그것을 듣고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안(know--개역은 ‘깨달은’이라고 번역되어 있음) 그 날부터 온 세상에서처럼 너희 안에서도 열매를 맺는도다.](골1:6). 기독교는 불교와 같이 깨달음의 종교가 아닙니다. 깨달아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고 구원을 얻습니다. 깨달음은 구원받은 후에 올 수도 있습니다.

8. 구원은 죽은 뒤에야 알 수 있다. → 요한일서 5:13을 읽어 주라. 우리는 현재 우리가 구원받은 사실과 영생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9. 영접 기도하면 구원받는다. → 구원을 주문 외우듯이 공식화하고 암기식으로 영접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마음으로 믿은 다음에 하는 영접기도가 아니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논리가 깔려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하셨다. 현재 사람들은 자신의 죄가 용서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 뿐이다. 고로, 그 사실을 알고 인정하기만 하면 나는 구원을 받는 것이다.> 이 말은 비슷하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해결해 놓으셨습니다. 누구든지 믿을 때 죄는 용서되며, 제거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순간 이전까지는 누구의 죄도 용서해 주시지 않습니다.

10. 내가 믿으면 나의 가족도 구원받는가?(행16:31) → 사도행전 16:31에서 바울이 간수에게 말한 이 구절은 너무나 유명해서 자주 애용되지만 부작용도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라.] 이 구절은 마치 내가 믿기만 하면 나의 집도 구원받는다는 식으로 오해되고 있습니다. 바울은 간수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했을 때, “너만 믿으면 너의 집도 구원받는다”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도 구원받고 너의 집도 구원받고, 누구라도 구원받는다는 의미로 말한 것입니다. 이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누구나 구원받는다는 말입니다. 32절에 보면 바울은 간수뿐만 아니라 간수의 가족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했으며, 34절에서 온 가족이 다 믿었음을 보여 줍니다. 이는 고넬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행전 11:14을 보십시오. 천사는 고넬료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가 네게 말씀을 전하리니 그 말씀으로 너와 네 온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다, 하거늘](행11:14). 천사는 고넬료 혼자만 믿으면 된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전하게 될 복음의 말씀을 통해 모두가 구원받을 수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제시하는 바른 구원은 무엇입니까?

첫째,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인한 구원이어야 합니다. 기록된 말씀으로 우리의 영은 거듭나며, 혼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벧전1:23, 약1:18)

둘째, 믿음의 대상이 주 예수 그리스도이어야 합니다.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이는 하늘 아래 사람들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기 때문이니라, 하였더라. ](행4:12).

요한복음 1:12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요한복음 3:15 [이는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셋째, 죄로부터의 구원이어야 합니다. 이는 지옥의 심판과 형벌로부터의 구원을 말합니다. 가난, 위험, 재앙, 질병, 육신의 위협등으로부터의 구원과는 전적으로 구분되어야 합니다.

넷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피, 부활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골1:14, 고전15:3-4).

[그러므로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주 예수님을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것을 네 마음 속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니](롬10:9).

다섯째,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영원히 완전한 단번 속죄입니다. 이는 다시 반복될 수 없으며, 사람에 의해서 계속될 수 없습니다(요19:302), 히9-10). 유다는 이 믿음을 가리켜 “성도들에게 단 한번 전달된 믿음을 위하여 힘써 싸우라”(유3)고 권면했습니다.

구원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관심이며, 최우선적인 사역입니다. 교회가 해야 할 어떤 사역도 잃어버린 혼들의 구원보다 우선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성도들은 가정에서, 직장에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혼을 이겨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혼을 이겨오기 위해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자유하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며 율법 없는 자들에게(내가 하나님께 율법없는 자가 아니요, 그리스도께 율법 아래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된 것은 어찌하든지all means--모든 수단을 다해>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라.](고전9:19-22). 하나님께서는 매일 성경을 연구하는 신학자들을 축복하신 것이 아니라 거리에 나가 설교하고 복음을 증거하는 구령자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성경의 모든 조명과 계시는 신학교 교실에서 교수에게 배워서 나온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증거하는 설교단에서 나온 것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주님은 니고데모 한 명을 앉혀두고 거듭남과 구원이란 주제로 설교하셨습니다. 우리는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구령의 본을 살펴보고 실제 구령에 적용하는 지혜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 [의로운 자의 열매는 생명 나무니 혼들을 얻는 자는 지혜로운 자니라.](잠11:30). 요한복음 3:14을 보십시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사람의 아들도 반드시 들려야 하리니]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이미 두 가지 예를 들어서 설명하셨습니다. 첫째는 출생에 대한 예를 드셨고, 둘째는 바람에 대한 말씀을 하셨고, 이제 마지막으로 구약의 예를 드셨습니다. 이는 니고데모가 바리새인으로서 이미 구약 성경에 정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고, 이미 성경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을 구령할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성경을 인용하는 것입니다. 이는 민수기에 나오는 유명한 사건(민21:4-9)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이 사건을 예로 십자가의 죽으심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자신이 어떤 죽음으로 죽은 것인지 표적으로 보여 주신 것이라.](요12:32-33). 예수님이 십자가에 높이 들리지 않으셨다면 인류는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놋뱀의 사건은 인류의 구원 방법을 예표적으로 보여줍니다. 뱀에 물린 사람들이 모세에게 달려 왔을 때 하나님은 “물린 자마다 그것을 쳐다보면 살리라.”(민21:8)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쉬운 것입니다.

  • 목마른 사람이 냉수를 마시는 것보다 쉽습니다.
  • 우체부가 전해 주는 선물을 받고 서명을 하는 것보다 쉽습니다.
  • 초청장을 받고서 Yes라고 응답하는 것보다도 쉽습니다.

구원은 이와같이 단순하고 쉬운 것입니다. 만약 여기서 나는 놋 조각 따위로 만든 뱀이 무슨 효능이 있겠소? 차라리 약을 먹거나 수술을 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며 자가 진단을 하고, 해결책을 찾아 나선다면 죽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가서 어떻게 하면 불뱀에게 물린 독을 치유하겠느냐고 묻는다면 역시 바른 해답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쉬운 방법을 제시하셨습니다. 놋 조각을 약초에 달여서 먹으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놋뱀에 담긴 깊은 신학과 철학 사상을 이해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는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속죄 원리와 대속의 신학을 이해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단지 쳐다보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설교의 황태자로 불리는 찰스 스펄젼은 눈이 오는 어느 날 아침 더 이상 걸어가지 못하고 조그마한 교회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거기서 집사가 하는 설교를 통해 구원을 받았는데 말씀인즉 “거기, 젊은이 예수를 쳐다 보시오. 예수를 쳐다보시오.”라는 말에 예수를 쳐다보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땅의 모든 끝이여 나를 바라보라. 그리하고 너희는 구원을 받을지어다.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나외에 다른 이가 없기 때문이니라.](사45:22). 내일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나의 몸에 퍼진 독이 좀 더 나으면 그 때에 가서 쳐다보겠다고 한다면 그는 구원도 받기 전에 죽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몸에 퍼진 상처를 봐가면서 때가 되면 쳐다보리라 결심한다면 생명을 보장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이는 그분께서 이르시되, 받을 만한 때에 내가 네 말을 들었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하셨음이니, 보라, 지금이 받아 주시는 때요, 보라, 지금이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요한복음 3:15을 보십시오.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놋뱀을 쳐다본 자는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치유함을 받았듯이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 여기에 다른 조건이 있을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라고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은 지상의 모든 인간이 구원을 받을 길을 여셨습니다. 누구를?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원의 믿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만 유효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족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이란 사실을 믿을 때, 구원은 값없이 주어집니다. 주님은 “믿는 자”라고 말씀하심으로 율법의 행위를 비롯한 어떤 인간의 행위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높이 달리시는 이유가 바로 15절입니다. 피흘려 죽으시는 이유는 바로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를 구원하사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3:16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영존하는 생명을 얻으리라--단순미래 ·AV>. 여기서 구원은 하나님과 인간의 조화가 있어야 함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이는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구원을 위해 인간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이 주신 독생자를 믿는 것입니다.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인간이 스스로 결정해야 할 의지의 문제입니다. 믿음에는 나의 지성과 감성을 넘어서 나의 의지적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 결과 인간은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됩니다. 믿고자 하는 의지마저 포기한 채 하나님의 은혜를 주장하는 구원 예정론은 비성경적이며, 마귀적인 악한 교리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외에 어떤 것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구원에 관련된 나머지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17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정죄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이 분명해 졌습니다. 초림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알라를 통해서, 마호메트를 통해서, 공자를 통해서, 석가를 통해서, 마리아를 통해서, 요셉 스미스를 통해서, 문선명을 통해서는 이루어지는 일은 마귀의 사역이지 하나님의 사역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제한 어떤 종교 행위도 하나님께는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는 구원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자 이제 여러분이 예수를 믿었다면 구원받은 것입니다. 구원의 ABC를 말하면서 Admit(사실을 인정하라.), Believe(사실을 믿으라.), Confess(믿음을 고백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권면입니다. 이는 로마서 10:9-10말씀을 정확히 요약한 핵심입니다. 구원받았다면 나는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요한복음 1:12,13- 이것은 영적 출생입니다. 육신의 탄생으로 아버지의 아들이 되듯이, 영적인 출생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새로운 출생을 “거듭남”(born again-요3:5,6)이라고 합니다. 나의 혼은 구원을 받습니다(약1:21, 벧전1:9). 몸은 영광스런 구속을 기다립니다(빌3:21). 나의 몸은 아직 변화가 없지만 나의 몸 안으로 성령이 들어오셔서 영원히 거하십니다(고전3:16, 6:19). 이제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닙니다.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고후5:17-18, 갈6:15).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가 되시고, 나를 아들로서 대우하십니다. 죄를 지으면 징계가 따릅니다(히12:5-7).

나는 자녀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고전10:31, 롬14:7-8,골3:16, 벧전4:11).

<복음 전파의 예>

구원의 길--로마서. 흔히 로마서의 대로(大路)라고 알려진 효과적인 복음 전도 방법입니다.

1. 죄인 -롬3:10, 23, 롬1:27-29
2. 죄의 심판- 롬5:12, 6:23a, 롬1:18
3. 그리스도의 대속-롬6:23b, 롬5:8-9, 롬3:24,25, 롬3:22
4. 믿음의 영접- 롬10:9,10, 롬1:17
5. 구원의 확신- 롬8:33.34a, 롬8:38,39

히브리서의 길

1. 죄인 -전7:20
2. 죄의 심판- 히9:27, 10:28,29, 12:29
3. 그리스도의 대속- 히9:22, 9:14, 10:19,20, 10:10-12,13:12, 7:25, 4:15, 2:14,15
4. 믿음의 영접-히11:1
5. 구원의 확신- 히8:12, 10:17

요한일서의 길

1. 죄인 -요일1:8, 3:4
2. 죄의 심판- 요일5:17, 5:16
3. 그리스도의 대속- 요일1:7b, 2:1b, 4:9, 3:5
4. 믿음의 영접- 요일4:15
5. 구원의 확신- 요일 5:11, 12

요한복음의 길

1. 죄인 - 요8:44, 34

2. 죄의 심판- 요8:24, 3:18, 16:9, 3:36,5:28,29

3. 그리스도의 대속- 요14:6, 3:16, 15:13,14, 6:40.

4. 믿음의 영접- 요1:12

5. 구원의 확신- 요5:24, 10:28,29

구원에 관한 필수 구절들
-반드시 알아야 할 구원에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들

1. 죄에 대하여

롬3:23 요일3:4 롬5:12 시51:5 시39:5 엡2:1-3 약1:14-15 롬1:29-31 갈5:19-21 막7:20-23 전7:20 롬3:4 요일1:7-8

2. 죄의 삯 - 사망에 대하여

롬6:23 겔18:4 롬5:12 창2:17 엡2:1 히9:27 민32:23 계20:14-15, 21:8 막9:44, 46, 48-49 눅16:19-24

3. 죄의 용서 - 피에 대하여

히9:22 롬5:8 요19:34 요일1:7 골1:14 엡1:7, 2:8-9 벧전1:24 고후5:21 갈2:16 롬11:6 요14:6 딤전2:5 행4:12

4.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 - 영접(받아들임)에 대하여

행16:31 계3:20 롬10:9-10 요16:9, 3:18 갈3:26 롬3:28

참고 : 요일5:17, 요16:9

암기해야 할 구절들 - 롬5:12, 요3:3, 요일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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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분이 저에게 어린 아이의 구원에 대해서 질문하신 분이 계셔서 간단히 답해 드리겠습니다. 어린 아이는 어떻게 해야 구원받는가? 성경을 통해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성경이 답변한 것이 이상으로 논리를 전개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범위 내에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태에서 유산하거나 사산한 경우- 욥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Job 3:11 Why died I not from the womb? why did I not give up the ghost when I came out of the belly?

욥은 모태에서 죽지 않았던 것을 후회합니다. 만약 태에서 유산하거나 사산 하는 경우 그 아이가 지옥으로 간다면 욥은 이런 고백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둘째, 나자마자 곧 죽는 경우-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의 범죄로 말미암아 태어난 죄악의 씨앗이 있었습니다. 사무엘하 15:14에서 나단 선지자는 다윗을 엄히 책망하면서 그 아이는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무엘하 12:23에서 다윗은 "But now he is dead, wherefore should I fast? Can I bring him back again? I shall go to him, but he shall not return to me."

만약 아이가 죽어서 지옥에 갔다면 다윗은 슬픔을 그치고 빵을 먹으며 이런 말을 태연하게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아이가 간 곳을 알고 있었으며, 자신도 그곳에 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셋째, 뱃 속에 있는 아이는 아무 것도 모르는가? 침례인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은 모태 속에 있는 자기 아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 And it came to pass, that, when Elisabeth heard the salutation of Mary, the babe leaped in her womb; and Elisabeth was filled with the Holy Ghost: Lu 1:41

For, lo, as soon as the voice of thy salutation sounded in mine ears, the babe leaped in my womb for joy."Lu 1:44

뱃 속에 있는 아이는 어른 들이 하는 소리를 알아 듣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태아 교육에 힘을 기울이는 이유 중이 하나이기도 합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 소리를 들었을 때 엘리사벳 보다 뱃속의 아이가 먼저 반응을 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고 단정짓는 경우가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들에 대해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친히 계시해 주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아버지는 이 세상의 현자들이 알 수 없는 것들을 어린아이들에게 계시해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아이들은 하나님이 계신 것과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어른들보다 훨씬 더 잘 압니다. 아이들은 어떤 면에서 어른들보다 뛰어난 영적 지각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In that hour Jesus rejoiced in spirit, and said, I thank thee, O Father, Lord of heaven and earth, that thou hast hid these things from the wise and prudent, and hast revealed them unto babes: even so, Father; for so it seemed good in thy sight. Lu 10:21

예표적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의 어린 아이들을 자주 예로 듭니다. 그들은 선악간의 구별이 없었다고 말씀합니다. 이들의 나이를 몇 살까지로 잡을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저는 참고로 요나서 4:11이 참고 구절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물며 저 큰 도시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간하지 못하고(한글로 된 흠정역은 hand를 빼 먹었군요 -discern between their right hand and their left hand; 오른 손과 왼 손을 구분하지 못하고-킹제임스). 오른 손과 왼 손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정도를 선악간의 구별이 없다고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들어 몇몇 정신지체아의 경우에는 20살이 넘어도 오른손과 왼손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어린아이라고 해서 모두 다 구원해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출애굽의 10번째 재앙의 경우에 이집트의 어린이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장자는 다 죽었습니다. 이는 선악에 따른 심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홍수 때도 어린아이들이라고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가족 외에는 모두 진멸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수아를 통해 정복 전쟁을 할 때도 어린아이들을 칼날에서 면제해 주지 않았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잔인해서가 아니라 그 혼들을 다 구원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육신은 죽었지만 그들의 영과 혼은 하나님께서 다 구원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나 육은 아무 유익도 없느니라-요6:63a"

예수님은 하늘 나라(하나님의 나라가 아님)가 이런 자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Mt 19:14 But Jesus said, Suffer little children, and forbid them not, to come unto me: for of such is the kingdom of heaven.

어린 아이들은 충분히 하늘 나라를 차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져 있습니다.

성인들이 회개한 상태가 바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된 상태와 동일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달리 말하면 어린 아이들의 마음 상태는 어른들이 회개한 상태만큼은 깨끗하다는 증거입니다.

Mt 18:3 And said, Verily I say unto you, Except ye be converted, and become as little children, ye shall not enter into the kingdom of heaven. - 이 말은 원죄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해 없으시기를.

원죄 부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성경은 아이들이 원죄를 타고 태어난다는 사실을 곳곳에서 증거하고 있으니 따로 쓰지 않겠습니다. sin 과 sins는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셨습니다"(요1:29).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내려 오는 모든 죄는 다 해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왜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느냐?고 책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이미 십자가에서 해결되었습니다. 그리고, 원죄를 타고난 문제는 우리 각 개인이 책임져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한 사람 아담으로 인해 세상에 들어온 이 죄는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히 해결하셨습니다. 어느 누구도 아담의 원죄로 멸망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한 결과로 주어지는 거듭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들은 Kingdom of heaven 과 연관되어 있지 Kingdom of God와 연관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는 구약의 유대인들, 환란 때의 유대인들과 (이들도 거듭남과는 상관이 없다.) 마찬가지입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