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성도 여러분들과 하나님의 은혜의 분량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은 “--에 따라”(According to)라는 짧은 주님의 말씀을 찾아 보겠습니다. "..따라(According to)"라는 말은 "하나님의 척도"입니다. 옛날의 어떤 청교도들은 이것을 하나님의 측량기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무엇이든지 자신의 뜻대로 하실 수 있고,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성경 곳곳에 [...에 따라]란 말을 남겨 두심으로 그 기준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주님의 일하시는 원칙, 은혜 베푸시는 정도를 보여 주는 중요한 어구입니다.
성경에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몇 가지 어구들을 잠깐 살펴보면 In Christ, By faith, According to, Therefore, Nevertheless, as, like와 같은 말입니다. 성경을 공부하실 때, 통독할 때 반드시 다시 한번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IN Christ(골2:3)- 이곳은 하나님의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는 보물 창고입니다. 이 말이 나올 때마다 여러분들은 마킹을 해 놓고 다시 한번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그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골2:3). 하나님께 속한 것을 찾으려면 이리로 달려가야 합니다. 성도들이 머물러야 할 곳은 늘 IN CHIST입니다. 하나님의 신격, 사랑, 능력, 지혜, 힘, 거룩하심, 구속, 은혜...모든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두셨습니다.
BY FAITH(롬1:17)- 이 말은 성도들의 삶의 자세, 원칙을 제시해 줍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삽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걷습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구합니다. 성도는 믿음으로서야 합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며, 믿음으로 구별되며, 믿음으로 영화롭게 됩니다. 성도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믿음으로 해야 하며, ‘믿음에서 나지 않는 것은 무엇이나 다 죄입니다.’(롬14:23). BY FAITH란 말은 한마디로 그리스도 안에(IN CHRIST)있는 모든 것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도구입니다. 지난 수요일 성경 공부 테잎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THEREFORE(롬4:22, 6:12, 8:1) - 어떤 분은 기독교 신앙은 THEREFORE 신앙이라고 요약했습니다. 특히 바울 서신서에는 유난히도 이 말이 많이 나옵니다. 영적 진리, 원칙, 성경적 사실들과 나와의 관계는 THERFORE란 한 단어로 연결됩니다. 이는 마치 하나님과 나를 연결하는 사닥다리 같은 것이며, 하나로 묶어 주는 링크입니다.
NEVERTHELESS- 심판의 날(출32:34), 불순종(삼상8:19), 주의 구원(시106:8), 자기 부인(눅5:5), 무시당함(행27:11), 마지막 목적지(벧후3:13). 신자의 삶은 그 자체가 Nevertheless입니다(갈2:20).- 다음 주일 오전에 이 부분에 대해 깊이 묵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기대하고 모두 일찍 오시기 바랍니다.
According to(...에 따라서)- 이 말은 하나님이나 성도나 모두에게 중요한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요약하면 "According to the Scriptures"(성경대로)입니다. 고린도전서 15:3,4 [이는 나 역시 전해 받은 것을 너희에게 먼저 전하였음이니 그것은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성경대로 셋째 날에 다시 일어나시고](고전15:3,4). 그렇다면 성도들의 일생 역시 이 원칙에서 벗어나면 안 될 것입니다. 언제나 “성경대로”를 외치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원칙이 아니라 어떤 원칙이 있습니다. 로마서 8:27, [마음을 살피시는 분께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하나님의 뜻대로(According to the will of God) 성도들을 위하여 중보하시기 때문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은혜를 주심에 있어서, 우리들의 "..에 따라"를 측량기로 사용하신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에 따라"에 주어진다는 것에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의 분량은 우리들의 무엇에 『...의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엇에 『의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분량을 점검 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주님의 기뻐하시는 뜻에 따른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순간 그리스도안에서 택함을 받습니다. 양자 입양을 하는 부모들은 누구나 자신의 기뻐하는 뜻에 따라 입양을 계획하고 결정할 것입니다. 싫은데 억지로 입양하는 부모가 몇이나 있겠습니까? 주님은 잃어버린 혼들이 그리스도를 통해 믿고 구원에 이르도록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 이루시고, 복음을 통해 우리를 양자로 입양하셨습니다. 이 사역은 아직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주님을 영접하는(receive) 자들에게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에베소서 1:5, [자신의 크게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according to)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의 자녀로 입양하셨으니] 주님의 예정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미리 아심에 따른 것이지 캘빈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주권적인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전서 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에 따라(according to) 택하심을 받고 성령의 거룩히 구별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에 이른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성도는 자신의 가치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나의 육신, 나의 자아는 아무 쓸모 없는 것이지만 내가 받은 구원은 이 우주와 바꿀 수 없는 존귀한 것입니다. 성도가 되었다는 것, 나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주님께는 큰 기쁨이 된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깊이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결코 행운이나 요행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뜻에 따른 것도 아닙니다. 주님의 크게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에 따라 된 것입니다.
우리의 부르심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according to)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은 성경에서 성도들에게 준 가장 위대한 약속입니다. 누가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름받은 자들입니까? 위대한 목사나 부흥사, 전도자들을 말하는 것입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바로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주님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도 나를 불러 주는 사람이 없다 해도 나는 외롭지 않습니다. 가장 크고 위대하신 주님이 나를 불러 주셨기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 1:9,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한 부르심으로 부르신 것은 우리의 행위에 따른 것이 아니요, 자신의 목적과 은혜에 따른 것(according to)이라. 이 은혜는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로되]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분명히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은 우리를 구원을 넘어서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과 일치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자신의 목적과 은혜를 따른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만약 우리의 행위에 따라, 우리의 자질이나, 능력, 인격에 따라 부르셨다면 주님의 부르심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되겠습니까? 아마 아무도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의 목적과 은혜에 따라 부르셨기에 아무리 더럽고 추한 죄인이라도 구원하시고, 아들로 삼으시고, 영광스런 상속자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믿음의 경주를 경주하는 자들에게는 상급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사역으로의 부르심입니다. 목사나 선교사와 같은 특정 직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 전파와 증거와 같은 주님의 사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부르심을 높은 부르심(high calling)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높은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푯대를 향해 달려가노라.](빌3:14).
다같이 베드로전서에 나오는 4가지 부르심을 잠깐 살펴 보겠습니다.
벧전 2:9 - [너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신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께 대한 찬양을...]
벧전 2:20,21 - [이는 참으로 너희가 이것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니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심으로 우리에게 본을 남기사 너희로 하여금 자신의 발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느니라.]
벧전 3:9 - 악과 욕을 축복으로 하도록 하기 위해 부르셨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줄 아노니...]
벧전 5:0 - 자신의 영원한 영광에 이르게 하기 위해 부르셨다. [그러나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부르사 자신의 영원한 영광에 이르게 하신 분께서 너희가 잠시 고난을 받은 뒤에 너희를 완전하게 하시고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고 정착시키시리니]
우리들의 구원을 통해서 주님의 은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디도서 3:5,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신의 긍휼에 따라(according to)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고] 구원은 전적으로 은혜입니다. 우리가 행한 행위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풍성한 긍휼에 따르면 구원받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의 피로 씻지 못할 죄가 없으며,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 없습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요, 긍휼에 따른 것입니다. 에베소서 1:7, [우리가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그분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according to) 그분의 피를 통하여 대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 전에 성경을 공부하다 보니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내가 믿고, 내가 영접하면 그것은 행위가 되지 않습니까? 한국의 장로교인들은 오랫동안 구원 예정론에 철저히 세뇌되어 믿는 것조차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영접하는 것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마귀적인 교리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믿는 것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것도 내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이요, 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복음을 믿으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전파하는 사도들은 미친 사람들임에 틀림없습니다. 믿는 것은(believe)는 말 그대로 믿는 것이지 행위(work)가 아닙니다. 영접(receive)은 행위가 아니라 마음속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믿는 것, 영접하는 것에는 손 하나 까딱하는 수고나 노력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질문 한 가지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구원받았습니까?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맞습니다. 은혜로 받았습니다. 맞습니다. 주님의 피를 통해 받았습니다. 맞습니다. [오직 자신의 긍휼에 따라, 그분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능력을 통하여 주님의 은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1:11, [그분의 영광스런 권능에 따라 (according to) 모든 강력으로 강건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인내와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주님은 성도들을 강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체력 단련이나 정신력 강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영광스런 권능에 따라” 하십니다. 사자를 잡아서 갈기갈기 찢을 수 있었던 힘의 소유자인 삼손을 강하게 한 것도 주님의 권능에 따른 것이지만, 일생 몸이 약해서 고생하던 바울의 믿음을 강하게 한 것도 주님의 권능에 따른 것입니다. “나는 약하다, 힘이 없다. 지혜가 없다”고 불평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자신의 영광스런 권능에 따라 모든 강력으로 강건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80세의 노인 모세를 들어서 제국의 왕이었던 파라오를 떨게 한 것이나, 길르앗 거주민 엘리야를 들어서 바알 선지자들을 모두 죽인 일은 모두 주님이 그들을 영광스런 권능에 따라 강건하게 한 결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몸이 약해도 강건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몸이 약하면 모든 것이 싫어지고 귀찮아 지고 마음은 극도로 약해집니다. 하지만, 주님의 권능으로 강건해 진 사람은 병상에서도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을 만큼 강건합니다.
예) 제가 아는 한 목사님의 형은 10년 이상 폐병을 앓았기 때문에 가족들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아침에 세수를 하다 대야에 피를 가득 쏟아 놓았습니다. 그날 죽음을 직감했던지, 식구들을 모아 놓고 찬송가를 부르게 했습니다. 식구들이 3절을 부르는데, “평안하구나, 이제 먼저 간다. 저 하늘에서 보자” 하며 숨을 거두셨습니다. 온 가족들은 죽음 앞에서 그토록 엄숙하고 평안하게 가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을 뿐 아니라 크게 도전을 받아 10년간의 병 수발로 겪은 고통과 수고를 그 날 다 보상 받았다고 간증했습니다. 예수를 믿고 죽는 죽음이 저토록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로구나! 그분은 살아서 아무런 간증도 보여주지 못했지만, 사망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의 죽음을 통해 살아 있는 가족들과 친지들의 가슴에 복음의 확신과 능력을 깊이 심어 주었던 것입니다.
로마 제국 쇠망사를 쓴 에드워드 깁번에 따르면 초대 교회의 순교자들은 사자나 칼, 불을 전혀 두려워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로마 황제 네로는 그리스도인들이 두려움과 공포에 질린 비명 가운데 죽지 않는다고 화를 내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모두 “그분의 영광스런 권능에 따라 (according to) 모든 강력으로 강건하게 하시며”를 몸소 보여 준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강한 사람이 있습니까? 빌립보서 4:13,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들의 필요를 채워주심으로 주님의 크신 은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4:19, [오직 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하여 영광 가운데 자신의 부요하심에 따라(according to) 너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리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는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부요하십니까? 설교자 죠나단 에드워드는 어느날 환상을 통해 저 하늘을 보았는데, 거기에는 성도들이 찾아가지 않는 보화들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지혜가 필요하십니까? 능력이 필요하십니까? 돈이 필요하십니까? 필요를 말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자신의 부요하심에 따라 모든 필요를 공급해 주십니다. 이 우주의 Owner 이신 주님이 너무 큰 약속을 하신 것 같지 않습니까? 에베소서 3:20, [이제 우리 안에서 활동하는 권능에 따라(according to)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 이상으로 더욱 넘치도록 능히 행하실 분에게]
주님이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원리는 위의 두 가지입니다. 자신의 부요하심에 따라, 우리 안에서 활동하는 권능에 따라. 이는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너무나 잘 보여 주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주님의 은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3:21,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자기에게 복종시킬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사 우리의 천한 몸을 변화시켜 자신의 영광스런 몸과 같게 하시리라.]-한글로 번역이 안되었으나 영어 KJV에는 according to the working이라고 되어 있다. 이는 미래에 주님이 하실 일입니다. 이는 성경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죽은 몸들이 일어나고, 흙으로 지음 받아 허무한 것에 굴복하는 썩을 몸들이 순식간에 홀연히 영광스럽게 변화될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전 프랑스에서는 시체를 냉동보관 하라는 유언을 하고 죽었지만, 법원에서 시체는 화장하거나 매장하는 것 외에 달리 둘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인간이 그토록 집착하는 몸에 대한 미련을 다 벗게 될 것입니다. 약함도 병듦도 없는 그런 몸,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며 날개가 없지만 날 수 있는 그런 몸, 피곤하지도 졸립지도 않으며 항상 최상의 condition을 유지할 수 있는 몸, 무엇보다 죄의 유혹을 받지 않아도 되는 그런 몸을 입게 됩니다. 이것을 생각하고 묵상하노라면 우리의 기도 제목은 나도 모르게 “주여, 지금 오시옵소서!”가 되고 맙니다. 요한일서 3:2,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되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분과 같게 될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을 계신 그대로 볼 것임이라.]
'주제별(글) > 새신자시리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님은 언제 못 박히셨는가? (0) | 2005.04.13 |
---|---|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관점 (0) | 2005.04.13 |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 (0) | 2005.04.13 |
경건의 시간 (0) | 2005.04.13 |
지역 교회 (0) | 2005.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