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에 속해서는 안됩니다. 요한복음 17:14,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이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에서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살아가는 한 세상에 대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극단으로 치우치는 것을 자주 봅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어야 한다’는 성별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인들이 공동체 생활을 해야 하고, 수도원 생활과 같은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실제로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이외로 많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5:9-10 [내가 너희에게 쓴 서신서에서 음행하는 자들과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인 탐욕을 부리는 자들이나 강탈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과 전혀 함께하지도 말라 함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반드시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하리라.] 우리는 분리된 삶을 살되 세상 밖으로 나가서 살아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은 우리의 교구요, 전쟁터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어떻게 해서든지 ‘주위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세상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의를 전파함으로써 박해를 받는 것이 정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세상을 대해야 합니까? 오늘 공부의 목적은 성도들, 특히 초신자들로 하여금 균형있고 일관된 삶을 영위함으로써, 구원받지 않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나쁜 영향은 받지 않는 반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그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먼저 성경이 보는 세상의 관점을 정확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성경이 보는 세계관은 여느 종교와는 확연히 구별됩니다. 예를 들어 세상을 집이라고 비유할 때, 유교는 집을 수리하자, 고쳐서 쓰자는 종교입니다. 반면 성경은 집을 허물어 버리고, 새로 짓자는 종교입니다.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종교는 가르쳐서 쓸만한 사람, 완전한 사람으로 개발시키자!에 초점이 있습니다. 반면 성경은 이전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고 새 사람을 입으라!에 핵심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 악한 현 세상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자기 자신을 내주셨으니] 주님은 이 세상을 악한 현 세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도들은 세상에 대한 성경적 가치관을 확고히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을 성경적으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구절 더 보겠습니다. 요한일서 5:19, [또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사악함 가운데 있는 것이며]. 온 세상은 사악함 가운데 있기에 주님은 이 세상을 불로 심판하시고, 의가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개혁과 개발의 대상이 아니며, 심판의 대상입니다.
성경이 성도들에게 세상에 대해 내린 명령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주님은 세상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9, [나는 세상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노라.](I pray not for the world)6)고 단언하셨습니다. 많은 기독교 단체들과 교회들에서 “세상을 위한 기도,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와 같은 행사는 주님의 말씀과는 정면으로 반대되는 행위들입니다. 요한 사도는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고 명령했습니다. 요한일서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바울과 동행했던 데마는 세상을 사랑했기에 떠났습니다. 아브라함과 동행했던 롯 역시 세상을 사랑하여 소돔으로 들어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제도를 개선하고, 법을 정비함으로써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지만 악한 사람의 본성이 바뀌지 않는 한 세상은 변화될 수 없습니다. 법과 제도의 정비는 나병 환자의 몸에 옷을 갈아 입혀 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옷, 저 옷 입혀 봐야 몸 속에 나균이 없어지지 않는 것처럼 세상은 아무리 바꾸어도 변하지 않습니다. 바울 사도는 [세상에 동화되지 말라.] 고 말합니다. 로마서 12:2, [너희는 이 세상에 동화(conformed)되지 말고 오직 너희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transformed)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받으실만하며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에 동화되지 않기 위해 생각이 변화되는 것(transformed)입니다. 사람이 바뀌려면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인식의 전환, 발상의 근본적인 전환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 기자가 말한대로 [이는 사람의 마음의 생각이 어떠함같이 그 사람도 그러하기 때문이라...](잠23:7).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서 내게는 많고 많은 변화가 내, 외적으로 일어나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변화는 ‘생각의 변화’입니다. 악을 생각하던 이전 습관이 주의 말씀을 생각하고, 자기만을 생각하던 내가 주님과 이웃을 생각하고, 부정적이던 생각이 매사에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생각으로 변화를 받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생각이 변화를 받으면 취미가 바뀌고, 기호가 바뀝니다. 생각이 변화를 받으면 삶의 양식이 바뀝니다. 생각이 바뀌면 인격이 바뀝니다. 야고보 사도는 [세상과 친구가 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야고보서 4:4, [간음하는 남자들과 간음하는 여자들아, 세상과 친구가 되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인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느니라.] 주님과 세상이 얼마나 원수지간인지 아시겠습니까? 주님은 세상을 악하다고 증거했습니다(요7:7). 주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세상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명령들을 내리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한 이와같은 기본적인 인식들을 마음 속에 깔고서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이 세상 제도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대적한다는 점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대해 가져야 할 자세는 첫째, 분리입니다. 세상과 나는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 둘은 합해질 수 없습니다. 둘째, 비 동조입니다. 세상이 제시하는 어떤 제안에도 동조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럴싸하고 멋진 플랜을 내 놓아도 성경에 맞지 않으면 동조하지 않아야 합니다. 저는 교회들에서 많은 사회 운동을 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대의 명분이 아무리 좋아도 교회가 할 일이 아닙니다. 셋째, 비 일치입니다. 세상이 제시하는 모든 것에 보조를 맞추지 말아야 합니다. 낙태는 합법이지만 성경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사형제 폐지는 종교적, 사회 운동이지만 성경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세상에서 무엇입니까? 성도는 이 세상에서 어떤 자들입니까? 첫째, 성도는 이 세상에서 타국인이요, 순례자입니다. 히브리서 11:13, 베드로전서 2:11을 보겠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 안에서 죽었으며 약속들을 받지 못하였으되 멀리서 그 약속들을 바라보고 확신하며 기꺼이 받아 들였으며 또 땅에서는 자기들이 나그네요(타국인-strangers), 순례자로 고백하였으니](히11:13). [지극히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순례자인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들을 삼가라.](벧전2:11). 우리는 목적지가 따로 있으며, 저 하늘에 본향이 있습니다. 둘째, 성도들의 집은 하늘에 있으며 생활권이 바로 저 하늘입니다. 에베소서 2:6, 빌립보서 3:20, [또 함께 일으켜 세우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함께 하늘의 처소들에 앉혔으니](엡2:6), [이는 우리의 생활권이 하늘이기 때문이라. 우리가 또한 거기로부터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3:20). 세상을 십자가에 못박고, 세상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힌 성도라면 누구라도 이 세상을 내가 영원히 살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옛 생명이 죽고, 그분의 부활과 함께 일어난 성도라면 주님이 계신 그 곳을 사모하고,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살 것입니다. 이것은 특별한 신앙의 표현이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의 자연스런 생활 태도인 것입니다. 구원받은 것이 사건이 아니라 관념이나 지식으로 다가온 사람들은 성경의 기준에 합당한 종교적 행위를 하기 위해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주님의 보혈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저 하늘에 대해 자연스런 갈망이 있습니다. 저 하늘에 대한 소원은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의 본성입니다. 셋째, 성도들에게 이 세상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한 "선교 현장"입니다. 사도행전 1:8, 마태복음 28:18-20, [오직 성령께서 너희에게 임하신 후에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의 맨 끝지역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버지께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능을 내게 주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며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아멘](마28:18-20). 이 세상은 우리의 일터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나가서 혼들을 이겨와야 합니다. 부지런히 수고하고, 애써야 합니다. 농부가 밭을 돌보지 않는다면 수확을 얻을 수 없듯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혼들을 이겨 올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의 전쟁터입니다. 성도는 자신의 믿음을 지켜야 하는 동시에 싸워서 승리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승리를 약속하셨고, 믿음으로, 어린 양의 피로 세상을 이길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성도는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져야 합니까? 세상 사람들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두려워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말로써가 아니라 행동으로써 보여 주어야 합니다. 성도는 성경을 보지만 세상 사람들은 성도들을 봅니다. 성도의 생활은 세상으로부터 성별되어야 하며, 행동 또한 그들에게 성경적으로 비추어져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경을 모른다 해도 성경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을 판별해 내는 특이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거룩한 삶을 살지 않을 때, 그들은 “당신과 내가 뭐가 다르다고 그런 말하느냐?”고 따질 것입니다.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보여 주지 못하면서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과도하게, 특이하게 자신의 믿음을 보여 주려고 하다가 사이비나 광신자로 비쳐져서도 안됩니다. 성도 여러분이 믿음과 성령으로 충만하고, 마음 가운데 말씀으로 채워져 있다면 여러분은 의식하지 않아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 뿜을 수 밖에 없습니다. 성도들은 모든 면에서 개방적이고 정직하게 비쳐져야 합니다. 로마서 12:17,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아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의 눈 앞에서 정직한 일들을 예비하라.], 고린도후서 8:21, [주의 눈앞에서 뿐 아니라 사람들의 눈 앞에서도 정직한 일들을 예비하려 함이라.] 사람들 앞에서 가장 강력하게 appeal 하는 것은 정직입니다. 속고 속이는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정직은 다른 무엇보다도 깊은 감동을 주며, 사람을 달리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이 세상에서 맛을 잃은 소금처럼 되어 버린 가장 큰 원인은 부 정직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같은 세상 사람들에게서 당하는 사기와 속임수는 참아도 소위 교인들에게 당하는 사기는 참지 못합니다. 교인들의 부정직과 부도덕, 위선은 사방에서 번뜩이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산 증거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빌립보서 2:14-15, [모든 일을 행하되 불평이나 시비가 없이 할지니 이것은 너희로 하여금 흠이 없고 해를 끼치지 아니하는 자 곧 구부러지고 비뚤어진 민족 가운데서 책망 받을 것이 없는 하나님이 아들들이 되게 하며 또한 세상에서 그 민족 가운데 빛들로 빛나게 하려 함이라.] 성도가 단지 교회 내에서 예배만 보고, 집에서 성경 읽고, 기도하는 일만이 전부라면 전혀 힘들지도, 어렵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살아가는 동안 세상에서 내 몸을 통해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선포해야 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늘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가 나를 다스리지 않는다면 나는 도저히 다른 사람들과 차별된, 분리된, 성별된, 정직한 삶을 보여 줄 수 없을 것입니다. 설령 보여 줄 수 있다 해도 몇 일이나 지속될 수 있겠습니까? 성도는 모든 면에서 성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선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사는 것이 자연스런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위선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들은 삶에 관한 한 세상 사람으로부터 "좋은 평판"을 들어야 합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성경에 대한 믿음에 관한 한 거부하며, 강한 적개심을 드러낼 것입니다. 특히 자신들의 죄에 동참하지 않고, 동조하지 않고, 일치하지 않을 때, 그들은 강한 거부감을 드러냅니다. 상이한 생활 방식을 포용하거나 버려 두지 않습니다. 바보에게 바보라고 하면 성질을 내고, 도둑에게 도둑놈이라고 할 때 열받는 것처럼 죄인들에게 죄를 지적하면 참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세상을 향해서 먼저 시비를 걸거나 불필요한 싸움을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항한 것이 아닙니다.
이 시간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에 대한 몇 가지 성경적 처세술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유순하게 대답하십시오. 가능한 한 언제든지 싸움은 피하십시오. 잠언 15:1, [부드러운 대답은 진노를 돌이키게 하거니와 가혹한 말들은 분노를 일으키느니라.]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 율법사들에게 가혹한 말을 하셨지만 세리들과 창녀들, 연약한 사람들에게 결코 가혹한 말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 형제들 가운데 손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입은 깡패같은 사람들이 이외로 많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인지 시비를 거는 것인지 모를 행동을 하며 영적 전투를 했다고 자랑하는 간증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로마서 12:18, [너희 쪽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화평하게 지내라.] 사랑은 온유하며, 무례히 행하지 않습니다.
둘째, 성도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 앞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 받으십시오. 로마서 14:18, [이러한 것들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며,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느니라.]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주님과 씨름을 한 후에 그는 형 에서를 만났을 때, 형의 얼굴을 천사의 얼굴 같다고 고백했습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야곱에게 형 에서는 살인자요, 강도이며, 자신의 원수의 얼굴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고 새벽에 절뚝 거리며 걸을 때 그는 자신의 모든 영적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우리는 때로 나와 하나님과의 불화하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인해 세상 사람들과 틀어지고, 싸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먼저 주님과 나와의 걸림돌을 모두 제거하십시오. 성도 여러분이 주님과 펑안하면 일상 문제로 세상 사람들과 부딪힐 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성도의 믿음은 세상을 이기는 근원입니다. 요한일서 5:4-5, [이는 무엇이든지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 세상을 이기기 때문이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믿음은 불가사의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믿음의 신비라고 부릅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이깁니다.
넷째, 여러분의 적을 사랑하고 그들을 도우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원수를 위해 죽기까지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세상은 이런 사랑을 이해할 수 없지만, 진리를 찾는 사람들은 그 사랑에 이끌림을 받을 것입니다. [너희를 핍박하는 자들을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20. 그러므로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실 것을 줄지니 이는 그리함으로 네가 그의 머리 위에 숯불을 쌓을 것임이라.](롬12:14,21). 이것은 신약 시대의 성도들의 행동 강령입니다. 우리는 성경적인 교리를 파괴하고, 배교한 형제들이나, 믿음을 부인하는 이단들을 대하는 태도와 세상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는 완전히 달라야 합니다. 세상 죄인들을 향해서는 안타까움, 눈물, 연민으로 대해야 합니다. 분별력 없는 형제들이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선포한 저주만을 기억하고 있다가 거리 설교에서 써먹는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이 나를 어떻게 용서했는가? 내가 어떤 죄인이었다가 용서받았는가? 에 대한 체험적 지식이 없는 형제들은 결코 죄인들을 향해 흘릴 눈물과 연민의 가슴이 없습니다. 하지만 복음의 진수를 제대로 체득한 형제들은 세상 죄인들을 향한 뜨거운 가슴과 눈물이 있습니다.
다섯째, 여러분의 원수나 적을 위해 기도하되, 순수한 동기를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들을 사랑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고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며 앙심을 품고 너희를 대하며 핍박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마5:44). 우리는 형제라고 하는 자들이 교회 내에서 엄청난 범죄를 하거나, 복음을 모독하거나, 하나님을 대적한다면 그의 육신을 멸해 주시도록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단지 나를 괴롭힌다고 해서 죽여 달라고 기도할 수는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의 형제 가운데 어떤 사람과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를 죽여주시도록 기도했지만(딤전1:20) 동족 유대인들이나 로마의 병사들을 죽여 달라고 기도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돌을 던지고, 죽이려고 호시탐탐 틈을 노리는 동족들과 복음의 원수들을 향한 뜨거운 가슴을 지니고 있었으며, 늘 담대하게 복음의 신비를 말하게 해 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
여섯째, 좋은 친구들을 사귀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분을 섬기기 원하는 사람들과 교제하십시오. [속지말라. 악한 사귐은 선한 행실을 부패시키느니라.](고전15:33). 우리는 빛 가운데서, 진리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교제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벗들을 만들어 줍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 열매로 나무를 알 듯이 친구로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잠언13:20, [지혜로운 자들과 함께 걸으면 지혜로우려니와 어리석은 자들과 사귀는 자는 멸망을 당하리라.]
세상 정부에 대한 성도들의 의무는 무엇입니까? 로마서 13장과 베드로전서 2장에는 성도들의 국가관, 국가에 대한 의무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세 가지 기관 중 하나가 바로 정부입니다. 나머지 둘은 가정과 교회입니다. 모든 정부는 사탄이 조정하기 때문에(누가복음 4:5-6)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그래도 당신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에 복종해야 합니다.(로마서 13:1-2). 여러분이 올바르게 행한다면 두려워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올바르게 행할 때 칭찬하실 것입니다(롬13:3-5). 세금을 비롯한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십시오(롬13:6,7). 베드로전서 2장을 펴 보십시오. 13-15절, 제도에 복종하십시오. 17-23절, 권세 있는 자들을 존중하되 그들이 악할지라도 그들의 악에 동참하지는 마십시오. 하나님께 대해 어떤 모양으로든 대항하지 말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루실 것을 기다리십시오. 베드로가 이 말씀을 기록했을 때는 네로가 왕이었습니다. 그는 아마 로마 역사상 가장 포악한 왕이었을 것입니다.
도덕을 법으로 강요할 수 없으며 정치적 행위로 인류를 바꿀 수 없음을 명심하십시오. 인간은 본성적으로 타락했으며 죄인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안에서부터 밖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앎으로써 변화받아야 하는 것입니다(딛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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