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성경을 공부하는 방법 가운데 한 가지는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 사실과 교훈을 나누어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도 유익한 방법입니다. 특별히 주님이 신자들에게 주신 명령과 약속은 순종과 믿음의 대상이므로 오해되어서는 안됩니다. 명령은 일방적인 명령이 있고, 약속있는 명령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십계명은 주님이 인간에게 주신 대표적인 명령입니다. 그 중에 9가지는 일방적인 명령입니다. 첫째, [너는 네 앞에서 다른 신들을 취하지 말라]에서부터 열번째 계명인 [너는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출20:3-17)는 것은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인간이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으로 주신 명령입니다. 여기에는 “...하라는 명령”과 “...하지 말라는 명령”이 있습니다. 그 중에 5번째 계명은 약속있는 계명(명령)입니다. 이런 약속있는 계명은 계명을 지킨다는 전제 조건하에서만 약속이 주어지고, 성취됩니다. 명령은 순종의 대상입니다. 약속은 믿음의 대상입니다.

우리는 사실, 명령, 약속, 교훈을 잘 나누어서 공부하고, 우리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이 넷은 서로 다르면서도 절묘하게 연결되어 상호 작용을 합니다. 사실은 역사적 사실과 예언적 사실로 나누어집니다. 그것은 인간이 믿든, 믿지 않든 변화되지 않으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성경은 한권의 역사서요, 법전인 동시에 정치 서적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논쟁이나 토론을 거쳐서 생긴 결론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셔서 대속을 완성하신 것 역시 사실입니다. 3일만에 부활하신 것도 사실입니다. 믿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받는 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역사적 사실은 무조건 믿음의 대상이지만 예언적 사실은 약속을 믿을 때 그것이 내 안에 실제로 이루어지는 그런 것들입니다. 구원에 관련된 모든 사실은 믿음으로 받을 때 내 안에 사실로 이루어지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믿는 자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이 말씀은 사실입니다. 이것은 틀림없습니다. 이 말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내가 믿을 때 그렇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예언적 사실이라고 말합니다. 명령은 무조건 순종과 복종의 대상입니다. 아담에게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는 한 가지 명령을 주셨습니다. 노아에게는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본토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이런 일방적인 명령은 결국 인간을 보호하시려는 주님의 의도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십계명을 비롯한 많은 계명들을 주셨습니다. 이런 명령들은 성경 구절 구절들을 비교해 보면 모두 목적이 있고, 선한 의도가 있는 하나님의 섬세한 배려의 손길이란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제 이 명령의 목적은 순수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딤전1:5)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들을 살펴 보고자 합니다. 신약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 약 173가지가 나옵니다. 이 많은 명령들을 다 지키려면 차라리 포기하는게 낫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날은 불법의 시대요, 무법 천지의 시대입니다. 그래서, 법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철폐했거나 성취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명령들을 명령이 아니라 단순히 교훈이나 권고 사항 정도로 전락시켜 버립니다. 교훈이나 권고는 지켜도 좋고 안 지켜도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명령은 어디까지나 명령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명령을 경찰이나 행정 명령보다 더 하찮게 여기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의 계명 외에는 아무 계명도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실상 아무 것도 사랑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오늘 사 복음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명령들을 살펴보고 명령의 목적대로 순수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을 갖고,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살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 구약 전체의 명령을 단 두 가지로 요약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36-40절,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서 어느 명령이 크니이까?하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첫째 가는 큰 명령이요, 둘째 명령은 그와 같은 것으로서,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 모든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이 이 두 명령에 달려 있느니라.](마22:36-40). 사랑은 율법의 성취이며 많은 명령들은 다 이 말씀 들 속에 다 들어있습니다. 로마서 13:8-10,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이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성취하였음이니 너는 간음하지 말라, 너는 살인하지 말라, 너는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어떤 명령이 있을지라도,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이 말씀 안에 다 들어 있느니라. 사랑은 자기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8-10). 성경은 십계명과 많은 명령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두 가지 명령으로 압축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 두 가지 명령을 한시도 잊지 말고, 항상 마음 가운데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내가 나외에 도대체 누구를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란 생각이 드는 분들은 내 마음에 넓게 부어주신 성령의 사랑을 의지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고, 네 원수들까지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 사람을 향해서 명하신 첫 번째 명령은 [회개하라]입니다. 주님의 공생애 첫 번째 설교 제목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막1:15)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 가운데 하나는 [...이는 내가 의로운 자를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고 왔음이라, 하시니라.](마9:13). 회개는 이중적인 것입니다. 죄에서 떠나는 것과 더불어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이같이 무지하던 때에는 하나님께서 눈감아 주셨으나 이제는 어디에서나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 명령하셨으니](행17:30). 회개는 주님이 주신 명령입니다. 이것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 아닙니다. 반드시 해야 합니다. 신자들이라고 해서 더 이상 회개가 필요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이 죄를 지었을 때 반드시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마음은 완악한 마음이요,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나갈 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두 번째 명령은 [복음을 믿으라]입니다. [복음을 믿으라.] 이것은 명백한 명령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막11:22)고 명령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1에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 이 명령에 순종할 때 주어진 약속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 명령에 불순종할 때 주어질 심판과 진노는 영원한 지옥입니다. 우리는 이 한 가지 명령에 순종한 것만으로도 현재와 미래에 약속된 수많은 약속들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도는 위대한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위대해 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와 알라를 믿는 성도와 마리아를 믿는 성도와 죽은 사람들은 믿는 사람들이 같은 삶의 수준을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믿는 바에 따라 격이 달라져야 합니다. 전에 어떤 자매가 법률회사에 근무했는데 변호사 한명에 비서 한명씩이 배정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서가 다 같은 비서가 아닙니다. 대표 변호사 비서와 신참 변호사의 비서는 격이 다르다고 합니다. 이유는 그들이 섬기는 대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비서 실장과 총리 비서실장이 같은 격일 수 없습니다.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이 우주에서 가장 위대하시고, 지존무상하신 분이라면 우리는 다른 잡신들, 우상들을 숭배하는 자들과는 당연히 철저히 차별화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세 번째 명령은 [성령을 받으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죽은 사람이며, 하나님의 소유가 아닙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요20:22)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까?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회심만이 유일한 방법이며, 믿음만이 우리를 복된 소망 가운데 있게 해 줍니다. 불신자들은 성령을 받기 위해 복음을 믿어야 하는 반면 이미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엡5:18)는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주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복종할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성령을 받고, 헌신으로 성령 충만함을 받습니다. 성령을 받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신분과 관계된 일입니다. 죄인에서 의인으로,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는 신분의 전환입니다. 성령 충만은 신분이 아니라 능력있는 사역, 봉사, 열매맺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령과 연관하여 몇 가지 명령이 더 주어져 있습니다. [성령을 억누르지 말라](살전5:19).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엡4:30). 우리는 이런 명령을 아주 가벼운 것으로 여기고 있지 않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때로 우리는 너무나 자주 명령 불복종의 죄를 짓고 있습니다. 기도하라고 할 때 TV를 보고 있든지, 성경을 읽으라고 할 때, 잡담을 하고 있든지, 전도를 하라고 할 때 유희를 즐기는 일들은 모두 성령을 억누르고 슬프게 하는 죄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네 번째 명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라]입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를지니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요12:26). 이 명령은 약속이 분명하게 주어진 명령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삶은 곧 제자로의 부르심에 응하는 삶입니다. 오늘날 믿는 신자들이 모두 제자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신자입니까? 제자입니까?”란 책을 본 적이 있습니다. 사실 신자는 모두 제자의 삶을 살도록 부름을 받았지만 주님을 따르는 대신 세상을 따르거나 자신의 육신을 따름으로 주님을 섬기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군복을 입고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지나가는 사람이 “군인이 여기서 뭐합니까?” 물었습니다. “저는 군인이 아니고 군복을 일복으로 입고 있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삽니다. “저는 크리스챤이 아니고 교회만 다닐 뿐입니다.” “저는 신자는 아니고 그냥 왔다갔다 할 뿐입니다.” 이런 대답을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라.] 이것 역시 엄중한 주의 명령입니다. 사람들이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은 명령권자의 권위를 업신여기기 때문입니다. 영이 서지 않고, 기강이 서지 않는 군대가 강할 수 없고, 그 사회가 건강할 수 없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 서지 않는 교회는 잘 정비된 사회 단체만도 못한 법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그들 모두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 어느 명령보다 이 명령은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는 명령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삶은 어느 한 순간에 단 한번의 결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순종해야 하는 지속적인 명령입니다. 오늘은 순종했지만 내일은 순종하지 않을 수 있고, 어제는 불순종했지만 오늘부터 순종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는 이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베드로는 이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누구를 따르고 있습니까? 아무도 나를 불러 주는 사람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십시오. 주님의 명령은 믿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약속과 보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다섯 번째 명령은 [기도하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기도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기도에 대한 명령은 너무나 많습니다. 이는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요, 반드시 지켜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명령에는 여타 어떤 명령보다도 풍성한 축복이 약속되어 있으며, 순종하는 당사자에게 많은 복을 가져다줍니다. 주님의 명령은 살펴보면 볼수록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눅21:36).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제자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시고 엄한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을 피하고 사람의 아들 앞에 서기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눅21:36). 주님은 제자들이 십자가를 앞에두고 우왕좌왕하지 않고, 시험에 빠지지 않고,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고, 넉넉히 승리할 수 있도록 한 가지 명령을 내리셨는데, 그것은 영성 훈련이 아니었습니다. 멀리 도망하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후일을 도모하자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제자들이 해야 할 한 가지 일로 명하신 주님의 명령은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였습니다. 이는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닥칠 환란과 재앙, 내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모든 사건들로부터 피하고 합당하게 서기 위해 여러분이 해야 할 한 가지 일은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입니다. 주님이 체포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다시 한번 명령하셨습니다. [그분께서 그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눅22:40). 제자들은 이 명령에 불순종했습니다. 그들은 육신이 피곤해서 곯아 떨어졌고, 예수님이 체포되자 모두 도망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잠이 온다고 다 잠자고, 피곤하다고 잠자고, 할 일이 없어서 잠자고, 자야 할 시간이어서 잠자고, 내일을 위해서 잠자고 하다보면 아주 작은 시험도 이기지 못합니다. 기도는 여타 어느 명령보다 체감 지수가 높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여섯 번째 명령은 [성경을 공부하라]입니다. 동양인들은 이성이나 논리보다는 직관과 감각을 중시합니다. 그래서, 책을 통해 공부하는 것보다 명상이나 마음을 닦는 수행이 한 차원 높은 것이라는 생각을 은연 중에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몇 천년의 문화 유산이기도 합니다. 특히 한국인들은 문서에 매우 약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그 의미를 깨치고 내 것으로 만들려는 것보다 성경없이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영에 직접 접해 보고자 하는 무속적인 시도를 신령하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탐구하라. 이는 너희가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기 때문이니 성경이 바로 나에 대하여 증거하느니라.](요5:39).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공부하고, 기억하고, 인용하고, 사용하십시오. [성경을 탐구하라.] 이것은 어느 명령보다 우선되어야 할 명령이며, 우리의 삶에서 맨 윗줄에 자리 잡아야 할 명령입니다.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고민이 있을 때, 어느 문제에 부딪혔을 때 성경을 찾아보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은 여러 차례 [성경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는 매우 엄한 책망을 하셨습니다. 저는 몇 일 전에 어떤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모든 이단 교리들을 두루 섭렵한 사람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그 때 나눈 대화를 생각하며 몇일간이나 성경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제 머리를 스쳐지나간 한 가지가 있습니다. 논쟁을 위하여 이렇게 찾을 것이 아니라 매사에 이렇게 말씀을 찾아야 한다!였습니다. 우리는 형제들간에 서로 성경에 대해서 이야기 해야 하며, 사회 문제, 정치 문제, 경제 문제, 가정 문제, 교육 문제 등 모든 사안에 대해서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찾아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일곱 번째 명령은 [빛을 비추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요, 생명의 빛이십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당연히 빛 가운데서 걸어야 합니다. [이와같이 너희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로 하여금 너희의 선한 행위를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그리스도인들이 빛을 비추면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성도들은 성경을 보고, 불신자들은 신자들의 행동을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종교에 무관심한 사람 같아 보여도 기독교에 대해서 말이 나올 때면 자기 주위에 기독교인들이 하는 행태에 대해서 보고들은 것을 매우 소상하게 말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절대 성경이나 성경의 교리에 대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기독교인들이라고 하는 동료나 친구들, 친지들에게서 본 그들의 행동을 말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고 있고, 교회가 어떻고 어떻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들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절대 무관심하지 않습니다. 철저히 유념해서 지켜봅니다. 성도는 제 2의 Bible입니다. 성도는 매우 존귀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빛을 발하지 못하는 등이 무슨 소용이 있고, 유익이 있겠습니까? [이는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기 때문이라. 빛의 자녀들 처럼 걸으라.](엡5:8).

하나님이 주신 여덟 번째 명령은 [탐심을 물리치라.]입니다. 이는 우리의 생활 방식, 경제 활동 등에 대한 표준이 되는 명령입니다. 어떤 선교사가 쵸코파이를 한 개 먹었습니다. 그는 한 개를 더 집다 말고, 이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탐심을 물리치라.] 내가 지금 집은 것은 순전히 먹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란 사실에 그는 집었던 쵸코파이를 내려 놓았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탐심은 자금의 순환을 돌게 하는 힘이며, 생산과 소비를 촉진시키는 일등 공신입니다. 모든 광고는 탐심을 자극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생활의 규모를 줄이고, 단순하게 사는 것이 좋습니다. 이는 충고나 권면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할 명령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주님의 명령들을 깊이 생각하고, 틈날때마다 다시 한번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의 명령은 순수하여 눈을 밝게 한다](시19:8)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탐심은 영적인 눈을 멀게 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2:15,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탐욕을 조심하라.](눅12:15). 마태복음 5: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고 네게 빌리고자 하는 자에게 등을 돌리지 말라.] 이 명령은 거지들이 구걸할 때 실천하기 어려운 명령입니다. 잠언3:27,28을 보십시오. 11:24,25을 보십시오. 19:17을 보십시오. 이 말씀들은 마음 가운데 탐욕이 있을 때 절대 순종할 수 없는 명령들입니다. 탐욕은 그 한 가지 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명령들을 걸고 넘어지는 그런 죄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아홉 번째 명령은 [위선을 조심하라]입니다. 위선이란 겉다르고 속 다른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보다 사람들 앞에서 더 거룩하고, 더 정직하고, 더 헌신적이고, 더 순수하고, 더 신실하다면 그것이 위선입니다. 반대로 하나님 앞에서는 정직하고, 순수하고, 헌신적인데 사람들 앞에서는 무례하고, 거칠고, 형편없어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위선이 아닙니다. 훈련이 덜 되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접하면 접할수록 거칠고 투박한 행동들을 비집고 나오는 아름다운 영혼의 빛이 나오게 됩니다. 반면에 위선자는 처음에는 매우 훌륭해 보여도 접하면 접할수록 솟아 나오는 악취로 인해 등을 돌리게 만듭니다. 하나님 앞에서 있는 모습과 사람들 앞에서의 모습이 다른 것을 성경은 위선이라고 하고, 세상은 예의바르다, 인격 수양이 잘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먼저 이것을 이르시되, 너희는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라.](눅12:1). 이들은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종교적이고, 믿음 좋고, 신앙에 충실하고, 훌륭하다고 평가받았는지 모릅니다. 백성들은 이들의 종교적 경건성에 대해서 감복하고, 그들이 하는 말이라면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서 마귀를 힘입어 한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위선자였습니다. 위선자는 위선이 벗겨지기 전까지 최고의 인격자입니다. 만약 우리가 믿는 바를 그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우리를 종교적 위선자라고 할 것입니다. [이르시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너희에게 지키라고 명하는 것은 지키고 행하되 그들의 행위대로 행하지는 말라. 이는 그들이 말만하고 행하지는 아니하며](마23:1,2). 이것이 그들의 위선입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철저히 성경적이었고, 그들의 믿음은 근본, 보수의 정화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위선자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위선자가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바리새인들처럼 분리와 성별을 외칩니다. 우리는 바리새인들처럼 성경의 근본 진리들을 추구하고, 영적 지식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우리의 가르침은 철두철미하게 성경적입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보다 위선자가 되기에 합당한 조건과 여건을 구비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열 번째 명령은 [복음을 전파하라]입니다. 신자들은 각자 처해 있는 곳에서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이 명령은 가장 영광스러운 명령이며, 의무가 아니라 특권입니다. 누가복음 24:47, 마가복음 16:15, 마태복음 28:19,20. 요한복음 21:15-17.각 복음서의 말미에 대미를 장식하는 명령이 바로 [복음을 전파하라.]입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주제별(글) > 새신자시리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According to(...에 따라)  (1) 2005.04.13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관점  (0) 2005.04.13
경건의 시간  (0) 2005.04.13
지역 교회  (0) 2005.04.13
균형잡힌 삶  (0) 2005.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