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9: 오리겐은 누구입니까?
☞ 성경 변개의 장본인으로 오늘날의 여호와의 증인들의 믿음과 동일한 믿음을 지닌 사람입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소수 본문"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만들어진 "국지적 본문"(A Local Text)이었고, 그 곳에서 유세비우스는 대음모자 콘스탄틴 황제(Emperor Constantine)의 요청을 수행하기 위하여 50개의 복사본을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유세비우스는 참된 크리스천들이 공통적으로 받아들인 순수한 본문을 사용하기 위해 안티옥으로 가지 않았고, 대신에 이집트에 있는 교육의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거기에서 "학자들의 수정판"을 얻었습니다다.
그렇다면 왜 유세비우스는 안티옥 대신에 알렉산드리아를 선택했을까요? 그 주된 이유는 그가 이집트 학자인 오리겐을 열렬히 추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리겐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아드만티우스 오리게네스(주후 185~254년)는 성경 본문 부패의 주장본인입니다. 현재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교회사 자체가 로마카톨릭 교회사이므로, 대부분의 신학교 교과서나 참고서들은 오리겐을 가리켜 "위대한 크리스천 학자요, 고대 교회의 가장 뛰어나고 영향력 있던 신학자"라고 잘못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오리겐은 한때 그리스의 아테네 철학의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한 이단자로서 판명되었습니다. 그는 또한 예수님께서 '창조된 하나님'이었습니다는 이단교리를 퍼뜨렸습니다. 이같은 오리겐의 믿음에 대해 「뉴스탠다드 백과사전」(New Standard Encyclopedia), 제9권은 다음과 같이 잘 요약해 주고 있습니다.
"오리겐의 사상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그의 '로고스(Logos) 교리'였다. 이 사상은 요한복음 1장 1-5절과 기타 다른 기독교 저술 안에도 나타나 있으나, 특히 오리겐은 이 문제를 철저히 다루었다. 그리스 철학에서 로고스란 창조의 신적 원리와 이성세계의 질서에 대한 이름이었는데, 오리겐은 이 원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적용시켰다. 그는 아들을 아버지에게 종속된 존재로 만듦으로써, 그리스도를 세상에 이성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에 의해 피조된 로고스'로 취급하였다. 그리하여 오리겐은 실제로 이 땅에서 사시며 가르치시기도 하셨던 사람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특성을 무시하였다. 이같은 교리는 4세기경의 이단 그룹인 아리우스파의 교리 정립을 위한 토대를 제공해 주었다."
다시 말해 오리겐은 오늘날의 여호와의 증인들처럼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은 것이 아니고 하나의 피조된 신으로 믿은 것입니다. 심지어 그는 예수님께서 육체로 땅에 거하셨다는 사실조차 믿지 않았습니다! 오리겐의 저술에는 많은 모순들이 있는데, 바로 이같은 사실은 부패한 사본들 속에 들어 있는 모순들을 설명해 주는 열쇠가 됩니다. 간혹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다가도, 이내 돌아서서는 그것을 부인하곤 했습니다.
사실 오리겐은 요한복음 1장 1절 말씀을 변개하고는 "말씀(the word)은 한 신(a god)이었습니다."고 말했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말씀'과 '신'을 소문자로 쓴 것에 유의해야 합니다. 이같은 믿음은 참으로 우리 세대의 여호와의 증인들이 고수하는 그릇된 교리에서 나온 믿음과 동일한 것입니다. 사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같은 자신들의 교리를 부패한 알렉산드리아 사본의 요한복음1장 1-5절과 3장 13절에서 취하고 있는데, 바로 이 오리겐이라는 인물이 자기 자신의 이단교리를 합리화하기 위해 "보편적 본문"을 변개 시켜 여호와의 증인들을 위한 토대를 마련해 준 것입니다. 오리겐이라는 인물이 성경 사본의 변개에 미친 영향이 지대하므로, 우리는 그의 생애와 작품, 그리고 철학 및 성경 변개 등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려 합니다.
A. 오리겐의 삶
오리겐은 알렉산드리아에서 부유하게 살던 크리스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젊은 나이에 교사로서 크게 성공했습니다. 그의 삶은 세르베루스 황제의 박해가 있었던 주후 202년경에 극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순교했고 그의 가정은 가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1년 뒤에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도망갈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었고, 결국 오리겐은 18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클레멘트가 창설한 알렉산드리아 교리 학교의 교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천재였으며 수많은 책들을 모으고 읽고 저술했으며 또한 영지주의자였던 암브로스의 책들을 소장했습니다. 그는 또한 이교도로서 신플라톤주의를 창설한 사카스 밑에서 공부했고, 매우 금욕적인 삶을 살았는데 신발도 신지 않고 맨 땅에서 잤으며 스스로 거세했던 매우 특이한 인물이었습니다. 로마 황제의 박해를 당하면서도 그는 개인적으로 매우 용감했고 인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주후 213년에 로마를 방문했으며 그 뒤 알렉산드리아를 떠날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어 주후 215-219년 사이에는 팔레스타인의 캐사레아로 이주했습니다. 후에 알렉산드리아로 되돌아온 그는 주후 231년까지 거기에 거하다가 알렉산드리아의 지도부와의 마찰로 인한 출회로 영구히 그 곳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232년에 그는 캐사레아에 알렉산드리아 교리 학교에 버금가는 학교를 세웠고, 데시우스트라얀 황제의 모진 박해로 인해 캐사레아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B. 오리겐의 믿음
비록 오리겐이 초기의 위대한 교부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를 추앙하는 사람들마저도 그가 교리적으로는 정통이 아니었음을 인정합니다.
1. 그는 영지주의적 신념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2. 그는 플라톤 철학에 심취했습니다.
3. 그는 종종 구약성경을 신비적으로 해석했고, 신약성경과 더불어 비유적으로 해석했습니다. 이에 대해 저명한 학자 피커링은 마쉬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평가합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알렉산드리아에서 배운 철학에 비추어 볼 때 문자 그대로 해석한 것이 불합리하거나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면, 오리겐은 곧바로 문자적 해석을 버리고 비유 해석을 택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성경이란 기록된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겐 거의 쓸모가 없다.' 이 말은 곧 자기가 느끼는 바가 바로 성경이 의미하는 바라고 오리겐이 생각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피커링, 「신약성경본문의 본질」(The Identity of the New Testament Text), 1977, pp. 140, 192)
4. 그는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의 기록을 부인했고, 오히려 영혼이란 영원 전부터 계속해서 존재해온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5. 그는 또한 죽음 이후에 사람의 혼이 그 사람의 행위에 따라 좀더 고차원의 혹은 저차원의 생명으로 바뀐다는 윤회사상을 믿었습니다.
6. 그는 또한 보편적 구원을 믿었으며, 악한 자들도 형벌을 받은 후에는 즉 연옥에서 고통을 받은 후에는 구원받는다고 믿었습니다.
7. 그는 또한 육체의 부활을 믿지 않았고 별이나 달도 혼을 갖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8. 그는 결국에는 마귀들도 구원받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9. 그는 목사를 제사장(혹은 신부)으로 부른 사람들 중 하나이며 주교들이 큰 죄를 용서하는데 한 몫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10. 대부분의 교부들이 성경대로 '전천년주의'를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기 전에 교회가 세력을 확장해서 평화를 가져온다는 '후천년주의'를 신봉했습니다.
C. 오리겐의 작품
오리겐은 그 자신의 저서들을 통해서 온 기독교계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그 평생에 6,000 여권의 책을 저술했고 초기 교부들이 신약성경에서 인용한 글 중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의 50% 정도가 그의 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니케아 종교회의 이전의 7명의 중요한 교부들이 신약성경을 인용한 것 중에서 오리겐의 것이 약 18,000개나 될 정도로 그는 왕성한 저술 활동을 했습니다.
1. 오리겐의 대규모 작품
a. 그는 성경의 거의 모든 책에 대한 주석서를 썼다.
b. 그가 저술한 「De Principiis」라는 책은 조직신학 책이다.
c. 그가 지은 「셀수스에 반대하여」(Against Celsus)는 변증학 책이다.
d.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헥사플라」(Hexapla)이다.
2. 「헥사플라」 : 구약성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침.
「헥사플라」(혹은 '6주 성경')는 여섯 개의 난에 여러 가지 언어로 기록된 성경 즉 '폴리글롯'으로 오직 구약성경만을 담고 있습니다. 이 여섯 개의 난 마다 각각 다른 구약 역본이 들어 있습니다. 시가서 같은 경우에 그는 서너 개의 다른 번역을 더 추가하여 '8주 성경' 혹은 '9주 성경'을 만들었습니다.
a. 「헥사플라」는 50 개로 구성된 매우 큰 폴리오 책으로서 그 분량이 자그마치 6,500쪽이나 된다.
b. 이 책은 주후 250년경에 완성되었다.
c. 그는 7명의 속기사들과 7명의 필사하는 사람과 함께 일했다.
d. 첫째 난은 히브리 본문으로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마소라 본문과 거의 같다.
e. 둘째 난은 히브리어 본문을 그리스어로 음역한 것을 담고 있다. '음역'이라 함은 다른 말의 문자를 사용하여 원어 단어의 소리대로 적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히브리 단어인 "샬롬"(Shalom)과 그리스 단어인 "뱁타이즈"(baptize)는 음역한 것이며, 만일 이 말들을 번역하면 "평화"(peace)와 "푹 담근다"(dip)가 된다.
f. 셋째 난은 아퀼라가 번역한 그리스어 역본을 담고 있다.
g. 넷째 난은 시마쿠스가 번역한 그리스어 역본을 담고 있다.
h. 다섯째 난은 오리겐의 작품으로 현재 「70인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i. 여섯째 난에는 테오도티온의 그리스어 역본이 있다.
j. 「헥사플라」는 주후 638년까지 캐사레아의 도서관에 있었으나 그 뒤 모슬렘들의 침략으로 인해 소실되었다.
k. 「헥사플라」는 단지 그 일부분만 복사되었고, 특히 「헥사플라」의 다섯째 난은 「바티칸 사본」(B 사본), 「시내 사본」(알레프 사본), 「알렉산드리아 사본」(A 사본), 「에프레미 사본」(C 사본) 등에 남아 있다.
D. 신약성경 본문에 미친 오리겐의 영향
오리겐은 성경본문 비평가들이 소위 "가정하여 수정하는 기법"이라 부르는 기법을 사용하여 종종 신약성경 사본을 자기 마음대로 뜯어 고쳤습니다. 이 기법은 한 마디로 당신이 원하는 대로 본문을 고치라는 것입니다. 오리겐이 플라톤 철학의 관점에서 일했으므로, 그의 작품은 참으로 신약성경 본문을 망가뜨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신실한 성경학자였던 딘 버건은 다음과 같이 오리겐의 신약성경 본문 비평의 멋있는 예를 들고 있습니다.
"부자 청년과 예수님의 대화를 기록한 마태복음 19장 17-21절에 대한 주석에서,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매우 포괄적인 요구조건으로 하나님의 명령 전부를 다 포함하게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오리겐은 추측했다. 왜냐하면 부자 청년이 '이 모든 명령은 제가 어려서부터 지켰습니다.'라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부자 청년의 말을 그대로 인정하셨다. 그런데 만일 그 부자 청년이 자기 이웃을 자기의 몸과 같이 사랑했다면 그는 완전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율법 전체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한 마디 말씀으로 요약될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자 청년의 대답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네가 완전하게 되려거든......'이라고 대답하시면서, 그 부자 청년이 아직 완전치 못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러므로 오리겐은 사실 예수님께서 그 부자 청년에게 '너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이 말씀이 원래의 마태복음에는 없었던 것이라고 추정했다. 다시 말해 그는 후대의 어떤 서기관이 이 구절을 집어넣었다고 믿은 것이다."
위의 예를 통해서 우리는 저 유명한 오리겐이라는 본문 비평가가 자기가 받은 본문에 만족해하지 않고, 스스로 무엇인가를 상상해서는 자기 마음대로 본문에 가감을 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알렉산드리아에는 오리겐보다 더 자유롭게 본문을 수정한 학자들이 많이 있었음에 틀림이 없으며, 바로 이런 사람들의 영향으로 부패한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등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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