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10:
질문 10 :70인역(LXX)이란 무엇입니까?
☞ 누군가가 상상해서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먼저, 70인역에 대한 기존의 추측부터 정의해 보도록 합시다. 히브리어 성경(구약, the Old Testament)을 그리스어로 번역하여 공식적인 그리스어 번역본을 만들고자 한 계획이 '아리스테아스의 편지'(the Letter of Aristeas)라 불리는 한 고문서에 드러나 있습니다. 그 편지에 따르면 이 그리스어 번역본이 유다인들의 공식 성경으로 받아들여지고 히브리어 성경을 대체할 만큼 권위를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추측컨대 이 번역 작업에 참여한 72인의 유다인 학자들(?)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에서 각각 6명씩 선별되었을 것입니다.
그 작업이 행해진 가상의 장소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이며, 번역의 추측 연대는 대략 B.C. 250년 경인데, 이 시기는 B.C. 397년 구약의 마감 시기와 그리스도의 탄생 시기인 B.C. 4년 경(달력상으로 4년의 오차가 있기 때문) 사이에 있었던 약 400년 간의 침묵기간 중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상으로 70인역이 무엇인가에 대한 일반적인 답변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번역본은 '셉튜아진트'(Septuagint), 혹은 '70 장로들의 번역'으로 알려져 왔으며, L=50, X=10, X=10, 합하면 70이라는 값을 지닌 로마(?) 숫자로 표시됩니다. 그런데 72 명이 번역했다는 그 번역본을 왜 칠십이인역(LXXII)이라 부르지 않는지 저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소위 '아리스테아스의 편지'라 불리는 이 서신이 이 불가사의한 문서 즉 '70인역'의 존재를 입증하는 유일한 증거물인데, B.C. 250년 혹은 그 전후로 구약 전체를 번역한 그리스어 필사본은 현재 확실히 하나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유다 역사의 어디를 보아도 그런 일을 고려했다거나 진행시켰다는 기록은 전무합니다.
이런 전설적인 문서의 존재를 입증할 수있는 확실한 증거를 제조하라는 압력이 오자 학자들은 급히 A.D. 200년 경 오리겐의 육단 성경(헥사플라, Hexapla)을 그 증거로 제시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70인역(LXX)이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때보다 거의 450년이나 지나서 기록된 것이며 신약 성경이 완성된 후 100년도 훨씬 지나서 기록된 것입니다.
오리겐의 헥사플라 두 번째 단은 오리겐 자신(결코 72인의 유다 학자의 번역이 아닌)이 그리스어로 구약을 번역한 것이며, 그밖에도 '벨과 용'(Bel and the Dragon), '유디스서'(Judith), '토비트서(Tobit)와 같은 위조된 책들과 로마 카톨릭만이 유일하게 권위를 인정하는 다른 외경들조차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70인역의 허상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은 오리겐이 헥사플라의 제5단에다 직접 구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단지 70인역을 복사한 것뿐이라고 주장하려 들 것입니다. 이 주장이 정당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그 주장이 옳다면, 빈틈없는 유다 학자 72인이 외경들을 - 심지어 그것들이 쓰여지기도 전에 - 그들의 작품 속에 첨가했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역주: 유다교는 지금도 외경을 거부하고 있으며 오직 로마 카톨릭만이 인정함).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그 때는 오리겐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이러한 위조된 글들을 제멋대로 첨가했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계 22:18).
이렇게 조금만 주의해서 살펴보면 헥사플라 제5단이 구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오리겐의 사역본(私譯本)이며, 정체가 탄로날 수밖에 없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어딘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는 유세비우스(Eucebius)와 필로(Philo), 이 두 사람이 그리스어 모세오경(Greek Pentateuch)을 예로 들면서 이처럼 전설 같은 책의 존재를 주장하지만, 구약 전체나 혹은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진 어떤 번역본으로 언급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엔 구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필사본이 하나도 없습니까? 있긴 합니다. 하나의 작은 파편에 불과한 라일랜드의 파피루스 458번(the Ryland's Papyrus, #458)인데, B.C. 15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신명기 23-28장의 내용을 담고 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부서진 채 발견된 이 파편들의 존재로 인해 유세비우스와 필로는 "모세오경 전체가 어떤 성경 기록관(서기관)에 의해 번역되었으며, 그것은 이방인들에게 유다인의 역사를 알리기 위함 이었다."라는 망언을 한 것 같습니다. 이 파편들을 근거로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구약이 그리스어로 번역되어 공식적인 그리스어 번역본으로서 존재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더 더구나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B.C. 250년 경 그 번역 작업을 위해 선발된 72인의 유다 학자들은 B.C. 150년에는 실력 없는 미숙한 학자들로 판명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번역된지 100년 후에는 그 번역본이 쓸모 없게 되어 다시 새로운 번역본을 필요로 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아리스테아스의 편지', '오리겐의 헥사플라', '라일랜드의 458번' 그리고 '유세비우스와 필로의 주장' 등은 변명할 수 없는 여러 가지의 모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순들 때문에 그들의 주장은 더욱 신뢰할 수 없습니다.
그 첫 번째 충돌은 '아리스테아스의 편지' 자체에서 발견됩니다. 한 가지 아이러니컬한 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그 편지가 아리스테아스라는 이름의 사람이 썼다는 것을 믿지 않을 뿐더러, 아예 어떤 이들은 그 편지의 저자가 사실 필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그 편지의 저작 연대가 '기원 전'이 아니라 사실은 '기원 후'라는 것을 말하며,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 편지를 쓰게 된 속셈은 믿는 자들로 하여금 오리겐의 헥사플라 제5단을 70인역(LXX)의 복사본으로 믿도록 속이고자 함일 것입니다. 그 용의주도한 계획은 외견상으로 볼 때 '확실히' 성취되었습니다.
만약 아리스테아스가 실존 인물이라면, 그는 극복할 수 없는 두 가지 난관에 부딪혔을 것입니다. 설명할 수 없는 첫 번째 난제는, 각 지파에서 대표적인 학자 6명씩을 선발하기 위해 그가 어떻게 열 두 지파의 위치를 알아내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러 차례의 패배와 포로생활을 통해 뿔뿔이 흩어져 살아왔기 때문에 12 지파의 경계선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이스라엘의 12 지파를 하나하나 구별할 수는 없었습니다. 두 번째로, 만일 그가 12 지파를 식별할 수 있었다 손 치더라도 그들 72인은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런 번역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1) 모든 유다인들은 성경기록을 취급하는 공식 책임자가 신명기 17:18; 31:24,25,26과 말라기 2:7에서 입증되듯이 레위 지파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나머지 11 지파의 어느 지파도 감히 그런 금지된 계획에 가담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2) 성경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유다인들이 그들 주위의 이방 민족들과 거룩히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할례, 안식일 성수, 깨끗케 하는 세세한 법 조항들과 고유의 여러 가지 법들을 고유한 전통으로 삼아 왔습니다.
이와 더불어 히브리인들의 언어 계승의 열심에서도 이방 민족과 구별되고자 하는 동일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오늘날의 중국이나 인도에 거주하는 유다인들은 여전히 자기 자녀들에게 히브리어 외에 다른 언어를 가르치는 것을 거부하고 있고, 이디오피아의 팔라샤 유다인들(역주: 흑인들; Falasha Jews)은 자기들이 유다인들의 언어를 이어받았다는 증거로서 히브리어를 간직하고자 힘쓰고 있으며 그 때문에 그 나라의 여타 부족들과 구별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유다인들 즉 이방인을 개처럼 여기는 민족이 자기들의 유산인 히브리어를 버리면서까지 지극히 거룩한 재산인 성경을 이방인의 언어(그리스어)로 기꺼이 번역하려 했다"는 학자들의 이러한 모순된 이야기를 믿을 만큼 순진하십니까? 그런 가정은 지극히 불합리하며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것입니다.
누군가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약의 수많은 구약 인용들이 70인역(LXX)과 일치하는데 그것은 어떻게 된 거죠?"
그들이 알고 있는 70인역(LXX)이란 바로 오리겐의 헥사플라 제5단을 가리킬 뿐 그 이상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신약 성경의 인용 구절들은 절대로 70인역(LXX) 혹은 헥사플라에서 인용한 것이 아닙니다. 신약에 있는 구약의 인용들은 저자이신 성령님께서 자신이 원하는 모든 방식을 통해 구약으로부터 자신의 작품 안에 자유롭게 인용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우리는 그분께서 누군가 꾸며낸 70인역(셉튜아진트)에서 단 한 구절도 인용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해결해야 할 의문이 하나 더 남아있습니다.
"왜 학자들은 70인역의 존재를 부정하는 반박할 수 없는 이러한 진실에 대항하면서 이 거짓된 70인역의 존재는 그처럼 쉽게 받아들이는 걸까요?"
그 대답은 슬프지만 단순합니다.
"히브리어를 배우는 것이 대단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에 대한 간단한 지식을 습득하는 데만도 수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될 뿐더러 학문연구 수단으로 충분히 정통하기까지는 더 많은 세월이 필요합니다. 이와 비교할 때 그리스어에 대한 지식은 보다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만일 그리스어로 된 구약의 공식 번역본이 존재했다면, 성경 비평가들은 히브리어로 성경을 연구해야 하는 고충을 겪지 않아도 되고, 단 번에 성경비평학 분야에서 그 영향력을 세 배로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애석하게도, 그런 얄팍한 근거를 토대로 셉튜아진트(70인역)의 존재를 수용하는 것은 단지 교만과 탐욕에 기초를 둔 행위일 뿐입니다.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비평가들은 70인역 같은 위조 문서가 실제로 존재했다고 믿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이 총애하는 70인역이 히브리어 본문과 동등한 권위를 갖는 번역본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왜 킹제임스 성경에 대해서는 "어떤 번역본도 원어와 같은 권위를 갖지는 못한다."라는 이유로 킹제임스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걸까요?
이러한 학자들의 일구이언을 통해 우리는 "원어들을 학습한 적이 없는" 즉 그리스어나 히브리어를 배운 적이 없는 사람들 위에서 자신의 학자적 위치를 고수하고, 스스로 권위를 지키고자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명백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만일 여러분이 그런 논리를 받아들이려 한다면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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