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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성도들이 받는 세 가지 심판



오늘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대해서 다루어 달라는 성도들의 요청에 따라 이 부분을 다루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이 알고 싶은 부분이나,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미리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면 그 주제에 대해서 성경을 찾아 공부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은 여러 가지 심판에 대해서 다룹니다. 성경이 말하는 일곱 가지의 다른 심판에 대해서 공부해 보셨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 중에서 그리스도의 심판석과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이 둘은 같은 심판이 아닙니다. 심판의 대상이 다르고, 심판의 주체가 다르고, 심판의 시기가 다릅니다. 심판의 결과도 완전히 다릅니다. '사람은 아무도 죽음을 피할 수 없듯이 아무도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심판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자신을 돌이켜 보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두려움에 빠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주님이 주시는 분명한 계시를 통해 다가 올 심판에 대해서 분명히 알고, 이 땅에서 그에 대비한 삶을 산다면 그는 가장 현명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대해서 갈보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한번 심판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예외없이 십자가에 처형하여 그 혼을 지옥에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받아야 할 이 심판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집행하시고,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갈보리의 심판은 대속의 심판이었습니다. 갈보리의 심판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함께 보여준 심판이었습니다. 갈보리의 심판은 피의 희생을 통해 죄인들을 구하는 심판이었습니다. 갈보리의 심판은 저와 여러분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한 심판이었습니다. 누구든지 갈보리 언덕에서 십자가에 높이 매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기만 하면 구원을 얻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맞아야 할 채찍을 주님이 대신 맞으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몸으로 행한 모든 죄에 대한 대속의 징계였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못 박혀야 할 손과 발에 주님의 손과 발이 못 박히셨습니다. 우리의 손과 발로 행한 모든 죄를 주님이 대신하셨습니다. 주님의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이 씌여졌습니다. 우리의 악한 마음의 생각과 상상으로 한 모든 죄를 주님이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우리의 피 속에 흐르는 죄의 독소는 온 몸을 불의의 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영이 죽어 버린 인간은 하나님의 계시와 조명을 받을 수 없게 되자 악한 영들과 공중 권세 잡은 자의 이끌림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을 통해서 죄인들로서 심판을 받았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미 갈보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한번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은 더 이상 죄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받을 심판은 없습니다. 죄인으로서의 심판은 받았고, 집행되었습니다. 이 심판을 통해 아담으로부터 내려온 죄와 저주는 완전히 걷히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내 몸 안에 아담의 불복종으로 인해 흐르던 죄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통해 의의 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갈보리의 심판을 통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막론하고 무죄를 선언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거기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해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역사를 믿었기 때문에 주어지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십자가의 우편에 못박힌 강도는 자신이 한 강도짓으로 사람들에게 정죄를 받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심판을 믿음으로 더 이상 하나님께 심판 받지는 않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 잡힌 여인은 사람들에게 정죄를 받아 돌에 맞아 죽을 뻔했습니다. 주님은 이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이 아무 죄나 다 용서하시는 무법주의자이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여인이 받을 정죄를 자신의 몸으로 대신하시기 때문에 용서하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여러분의 죄에 대해 충분히 대가를 지불하셨습니까? 여러분의 죄를 더 이상 정죄할 사람이 없습니까? 만약 십자가의 피 아래 있다면 여러분은 더 이상 누구에게도 정죄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누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를 고소하리요? 의롭다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신 분은 그리스도시오, 참으로 다시 일어나신 분도 그리스도시니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시며 또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느니라.](롬8:33,34).

갈보리의 심판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이제 아들로서 스스로 자신이 자신을 심판해야 합니다. 이는 남이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빛을 받아 날마다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고 난 이후 우리는 저 하늘이 아니라 여전히 이 땅에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여전히 육신을 입고 살아갑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죄를 짓는 본성이 있음을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내 안에 (곧 내 육신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줄을 내가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한 그것을 내가 어떻게 행할는지는 내가 알지 못하노라.](롬7:18).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죄를 성찰하고 고백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요한일서 1:9에 말하기를,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 죄를 고백하는 것은 주님과의 친교의 문제이며, 깊은 사랑과 연합의 문제입니다. 내가 아들이란 사실이 아버지와 깊은 친교 가운데의 삶을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해야 하며, 아버지는 그런 아들의 필요를 채워 주며 서로 친(親)함이 있어야 합니다. 자식을 키워본 부모로서 언제 자식이 가장 사랑스럽느냐?고 물어 보십시오. 백이면 백 예외업이 '부모의 말을 잘 들을 때'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우리에 대해서 마음이 상하실 때가 많으실 것입니다. 성도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걷는다면 우리는 주님과의 사귐이 깊어질 것입니다. 요한일서 1:5-7은 이점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해 줍니다. [ 1Jo 1:5 ¶ This then is the message which we have heard of him, and declare unto you, that God is light, and in him is no darkness at all. 6 If we say that we have fellowship with him, and walk in darkness, we lie, and do not the truth: 7 But if we walk in the light, as he is in the light, we have fellowship one with another, and the blood of Jesus Christ his Son cleanseth us from all sin.] 우리는 세상에서도 아들이 범죄함으로 아버지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다니는 경우를 자주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마약을 함으로, 약물 복용함으로, 술을 먹고 방탕한 생활을 하거나, 못된 친구들을 사귐으로 아버지를 슬프게 만드는 자식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런 이유로 하나님 아버지를 슬프게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라는 공부를 하지 않음으로서, 열심히 생활하지 않음으로서, 게으름을 피우고 일을 하기 싫어함으로서 아버지를 슬프게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읽지 않고, 공부하지 않음으로, 영적 생활을 태만히 함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슬프게 하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형제간에 서로 다투는 일은 아버지의 마음에 근심과 걱정을 안겨 주는 일이듯이 성도들이 교회에서 같은 형제들끼리 다투고 반복하고 불화가운데 지내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가장 슬프게 하는 일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가족 관계를 통해 영적 가족 관계의 조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육신의 아버지가 여러분을 통제하고 강압적으로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는 매사에 여러분을 통제하고 복종시키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친교는 사랑과 자발적인 마음에서 우러 나올 때 빛을 발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자녀가 아버지와 화해하기 위해서는 잘못을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듯이 우리는 자신의 죄와 허물을 발견할 때마다 고백하고 주님의 용서를 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친교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이 잘못했을 때, 육신의 부모가 다루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불순종을 일삼을 때 부모는 분명히 거기에 대해 책망하고, 바로 잡으려 할 것입니다. 징계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책망은 바로잡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기록 목적 가운데 하나가 징계와 바로 잡음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디모데후서3:16을 보십시오. 2Ti 3:16 All script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and is profitable for doctrine, for reproof, for correction, for instruction in righteousness: 17 That the man of God may be perfect, throughly furnished unto all good works. 여기에서 우리는 순서를 유념해서 봅니다. 먼저 교리입니다. 교리는 옳고 그름, 선과 악의 절대적 기준입니다. 성경은 교리를 가르쳐 주며, 우리는 이 교리에 근거해서 믿고, 생각하고, 생활할 때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이 교리를 근거로 우리는 자신을 돌아 볼 수 있고, 성찰할 수 있고, 심판할 수 있습니다. 성경적 교리에 근거하지 않는 책망은 분풀이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성경적 교리에 근거하지 않는 책망은 자기 가치관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성경적 교리에 근거하지 않는 요구는 무거운 부담일 수 있습니다. 성경적 교리에 근거해서 시시비비와 옳고 그름, 영적인 것과 육신적인 것을 구분하여 책망하는 것이 바른 책망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행위에 확신을 갖기에 책망을 좋아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아이라도, 아버지가 자기를 꾸중할 때 싫어하고 칭찬할 때 좋아합니다. 바른 책망이 주는 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책망을 듣고 돌이킬 때 존귀를 얻게 됩니다. 반면 책망을 무시할 때 짐승같은 인간이 됩니다. 잠언 6:23에 말하기를, [훈계하는 책망은 생명의 길]이라고 말합니다. 반면 잠언12:1에 [누구든지...책망을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고 말합니다. 주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마십시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에게 많은 유업과 상을 주기 위해 저와 여러분을 징계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기뻐하시며 의의 열매를 더 풍성하게 맺기 위해 징계하십니다. 히브리서 12:10,11을 보십시오. [Heb 12:10 For they verily for a few days chastened us after their own pleasure; but he for our profit, that we might be partakers of his holiness.] 저와 여러분같은 육신의 부모들은 자식을 징계해도 어릴 때 한 때 뿐입니다. 크고 장성하면 징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verily for a few days(잠시동안)이라고 말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자식을 징계할 때, 우리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매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11 Now no chastening for the present seemeth to be joyous, but grievous: nevertheless afterward it yieldeth the peaceable fruit of righteousness unto them which are exercised thereby. 주님이 주시는 징계를 통해 우리는 의의 평강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징계가 없다면 여러분의 구원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보십시오. 남의 자식에게 매를 드는 부모가 없듯이 하나님은 남의 자녀에게 매를 드시지 않으십니다.

셋째는 바로 잡음입니다. 책망을 받아 들인 사람들만 바로 잡힙니다. 성경을 통해서, 설교를 통해서, 다른 형제들을 통해서 여러분은 책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책망을 받아 들인다면 여러분은 바로잡힙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르치고, 그들을 책망하고,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로잡힘을 거부했습니다. 예레미야 5:3과 7:28을 보십시오. [Jer 5:3 O LORD, are not thine eyes upon the truth? thou hast stricken them, but they have not grieved; thou hast consumed them, but they have refused to receive correction: they have made their faces harder than a rock; they have refused to return. (그러나 그들은 바로잡힘 받기를 거부하며...), Jer 7:28 But thou shalt say unto them, This is a nation that obeyeth not the voice of the LORD their God, nor receiveth correction: truth is perished, and is cut off from their mouth. (바로 잡힘을 받지도 아니하며). 저는 전에 누가 제게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가 좀 더 어린 나이에 누가 나를 바로잡아 주었더라면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바로 잡아 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필요가 없습니까? 나의 마음을 바로 잡아 줄 사람, 나의 가치관을 바로 잡아 줄 사람, 나의 행실을 바로 잡아 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굽은 자를 가지고 측량할 수 있습니까? 굽은 연장을 바로 잡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마찬가지로 사람이 바로 잡히지 않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일꾼으로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Job 5:17 ¶ Behold, happy is the man whom God correcteth: therefore despise not thou the chastening of the Almighty:

넷째, 의로 교육하는 것입니다. 만약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만으로 기뻐하고 만다면 우리는 그것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카이로프랙틱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척추를 바르게 펴줌으로써 신체의 여러 가지 질병을 고쳐 주는 운동이며, 의학입니다. 척추를 교정해 주기 전에 바른 자세와 나쁜 자세에 대해서 비디오를 보여 주면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척추를 바로 잡아 주어도 바른 자세를 습관화시키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람들은 곧 다시 옛날로 돌아 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마찬 가지입니다. 형제들은 반복적으로 말씀을 배우고, 책망을 듣고, 바로 잡혀도 지속적인 의의 교육이 없다면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 같은 싸이클을 그리고 맙니다. 지역 교회는 여러분들을 의로 교육하는 기관입니다. 저희 조국은 교회를 쓸 때 모일 교(校)자가 아니라 가르칠 교(敎)를 씁니다. 이는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의의 교육 기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성경적으로 바른 뜻이 아니라 할지라도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의로 교육한다는 것은 곧 성장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될 때 하나님의 사람들, 저와 여러분은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대신한 갈보리의 첫 번째 심판이 과거적인 것이라면 아들로서의 심판은 현재적인 것입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것입니다.

이제 또 하나 알아보아야 할 것은 종으로서의 심판입니다. 저희들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종으로, 의의 사역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전에 이미 한 번 설교한 것과 같이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장사꾼들입니다. 많은 이익을 남겨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몸으로 행한 일들에 대해서 회계 보고를 요구하실 것입니다. 로마서 14:2을 보겠습니다. Ro 14:12 So then every one of us shall give account of himself to God.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행했는지 상세하게 보고할 것입니다. 이 일은 교회가 휴거된 후 곧 바로 있을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행해질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한 가지는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석과 그리스도의 심판석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백보좌 심판은 천년 왕국이 끝난 후에 불신자들이 부활하여 받을 심판입니다. 이 심판은 그리스도인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행해지는 심판은 저와 여러분을 흠없고 점없는 정결한 어린양의 신부로 단장하는 것입니다(계19:7-9, 고후11:2, 엡5:25-27). 다음으로 행해지는 일은 지상에서 행한대로 보상을 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0-11을 보십시오. [2Co 5:10 For we must all appear before the judgment seat of Christ; that every one may receive the things done in his body, according to that he hath done, whether it be good or bad. 11 Knowing therefore the terror of the Lord, we persuade men; but we are made manifest unto God; and I trust also are made manifest in your consciences.?] 우리는 주님 앞에서 선악간에 행한 일들을 다 설명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태만하고, 주님의 의와 그분의 영광을 구하는 일에 게으른 죄악에 대해서 책임을 저야 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악을 행한 결과를 받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서 그 대가를 지불하게 될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구원받은 성도들을 늘 조롱하고 비웃습니다.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을 조롱하고 비웃습니다.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교회에서 모두 인정받으며, 양다리를 걸친 신앙 생활을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무엇을 받게 될지 생각하면 그들의 이중적인 생활이 아무 쓸모없는 헛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이곳에 사는 교포들의 악행을 수없이 보고 듣고 있습니다. 그들이 믿는다는 이름을 가졌지만 얼마나 악한지, 그들이 교회를 한다고 하지만 그들이 하는 짓은 하나님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드는 것이란 사실을 보고 듣고 있습니다. 전도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Ec 12:14 For God shall bring every work into judgment, with every secret thing, whether it be good, or whether it be evil. 우리는 그 날에 우리가 행한 생각, 비밀들까지 모두 드러날 것입니다. 현재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이토록 느슨한 것은 그들이 다가올 심판에 대해서 무감각하기 때문입니다. 주인없는 집의 종들이 마치 자신이 주인인줄 알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이 곧 돌아오신다는 사실을 망각한 종들의 거들먹거리는 꼴을 상상해 보십시오. 바로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요, 성도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마태복음 12:26,27은 말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쓸데없는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회계 보고를 하리니 네 말로 네가 의롭게 되며 네 말로 네가 정죄를 받으리라.] 우리의 언어 생활이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손과 무릎이 약한 형제들을 위로하고, 힘을 주었는가? 그들을 멸시하고 낙담시켰는가?는 바로 심판의 대상이요, 유업의 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입으로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전쟁에서 동료 군인들의 사기를 진작시켜 주고, 그들에게 힘을 준 군인들에게 포상을 주지만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상사를 모독하고, 작전의 기밀을 누설하고, 군사들의 사기를 저하시킨 군인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은혜로 소금을 뿌리듯이 말해야 합니다. 어리석은 말, 추하고 더러운 말, 농담은 성도들에게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날마다 자신을 심판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하게 하지 않는 모든 죄는 다 드러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판석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심판의 주체가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3:11-15을 보겠습니다. [ 1Co 3:11 ¶ For other foundation can no man lay than that is laid, which is Jesus Christ. 12 Now if any man build upon this foundation gold, silver, precious stones, wood, hay, stubble; 13 Every man's work shall be made manifest: for the day shall declare it, because it shall be revealed by fire; and the fire shall try every man's work of what sort it is. 14 If any man's work abide which he hath built thereupon, he shall receive a reward. 15 If any man's work shall be burned, he shall suffer loss: but he himself shall be saved; yet so as by fire.]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등장하는 이 불은 지옥의 불이 아닙니다. 이 불은 각 사람의 일한 것의 종류를 밝히는 불입니다. 여기서 불타는 것은 나무와 짚과 그루터기로 쌓은 일들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서 우리에게 저 하늘에 보화를 쌓아두라고 명하셨습니다. [너희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이 먹고 녹이 슬며 도둑이 들고 훔치느니라. 오직 너희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쌓아 두라....](마6:19-20).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쌓았는지 주님 앞에서 직접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이날 많은 성도들의 눈에 눈물이 쏟아 질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영원한 상급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 버리고 세상의 쾌락을 즐기느라 인생을 허비해 버린 사람들의 눈에서 무엇이 쏟아지겠습니까? 또 성경을 무시하고 나름대로, 자기 기준으로 열심히 살아 그리스도인들이 한 일이 산더미 같다가 모두 불타 한 줌의 흙으로 남을 때 그들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 질 것입니다. 통일 운동이 그리스도인이 해야 하는 일인 줄 알고 한 평생을 보낸 목사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의 사회 참여가 예수님의 가르침인 줄 아는 사람들, 병원을 짓고, 빈민 운동을 하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의 삶인 줄 아는 사람들도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계시록에는 성도들이 두 번이나 눈물을 흘리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계시록 7:17은 그리스도인들이 흘릴 눈물입니다. Re 7:17 For the Lamb which is in the midst of the throne shall feed them, and shall lead them unto living fountains of waters: and God shall wipe away all tears from their eyes. 한번은 백보좌 심판석에서 흘릴 눈물입니다. Re 21:4 And God shall wipe away all tears from their eyes; and there shall be no more death, neither sorrow, nor crying, neither shall there be any more pain: for the former things are passed away. 우리는 우리가 구원할 수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영원한 불못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눈에서 쉼없는 눈물을 흘려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부모들, 여러분의 자녀들, 여러분의 친구들, 친지들의 혼을 볼 때 우리는 울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 여러분들이 그들을 구원했다면 저 하늘에서 얼마나 기쁘고 자랑스럽겠습니까? 우리는 다음 시간에 받을 상급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살펴 본 심판은 모두 신자와 연관된 심판이었습니다. 백보좌 심판은 신자들과 하등의 상관이 없습니다. 이 심판은 불신자들이 받는 심판입니다. 요한계시록20:11-15입니다. 이 둘을 오해하는 것은 개역 성경이 말씀을 변개시켜 놓았기 때문입니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개역, 롬14:10-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변개).

[Re 20:11 ¶ And I saw a great white throne, and him that sat on it, from whose face the earth and the heaven fled away; and there was found no place for them. 12 And I saw the dead, small and great, stand before God; and the books were opened: and another book was opened, which is the book of life: and the dead were judged out of those things which were written in the books, according to their works. 13 And the sea gave up the dead which were in it; and death and hell delivered up the dead which were in them: and they were judged every man according to their works. 14 And death and hell were cast into the lake of fire. This is the second death. 15 And whosoever was not found written in the book of life was cast into the lake of fire.] 이 심판은 상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불못으로 던져지는 판결을 받는 심판입니다. 갈보리의 십자가 심판을 거부한 모든 사람들이 이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해 한 사람이라도 구원하여 이 심판대에서 영원한 저주를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명하셨습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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