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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우주의 구조, 세 하늘에 대해서


오늘은 성경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다루고자 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이 우주의 구조는 3개의 하늘과 두 개의 바다로 되어있습니다. 땅은 언제나 이 지구 하나만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천문학자가 아니지만 어떤 천문학자보다 저 하늘 위에 무엇이 있는지 더 잘 압니다. 우리는 미래학자가 아니지만 어떤 학자들도보다 미래에 대해 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인 특별 계시가 저와 여러분의 손안에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이 성경을 읽고, 믿기만 한다면 지혜와 명철이 저 해변의 모래알보다 더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이 지구의 바다가 있고, 저 하늘에 또 하나의 거대한 바다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습니다. 이 우주의 끝없는 공간이 사실은 3개의 뚜렷한 경계가 있는 다른 하늘이란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 중의 하나는 하늘입니다. 이 하늘은 마음 속의 평안이나 꿈 속의 이상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문자적인 저 우주의 공간에 있는 하늘을 말합니다.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은 언제나 하늘의 개념과 믿음이 불분명하며, 실제적이지 못합니다. 저 하늘에 대한 인식과 믿음의 결여는 곧 우리의 소망과 사역과 Vision을 모두 이 땅에 고정시켜 버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설교 주제는 언제나 저 하늘이었으며, 저 하늘의 것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주님이 하늘에서 오셨고, 하늘로 들림받으셨으며 우리 또한 하늘로 올라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하나님이 계신 곳에 마음이 가 있게 마련입니다. 마음과 성품과 힘과 지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이 지금 계신 그곳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며,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도 정확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주님께서 말씀을 통해 이 우주의 구조를 정확히 알고, 하나님이 계신 저 하늘에 대해서도 분명한 조명을 얻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같이 에베소서 3:17-19을 보겠습니다. [3:17 That Christ may dwell in your hearts by faith; that ye, being rooted and grounded in love, 3:18 May be able to comprehend with all saints what [is] the breadth, and length, and depth, and height; 3:19 And to know the love of Christ, which passeth knowledge, that ye might be filled with all the fulness of God.] 많은 성경 독자들이 성경을 읽지만 이 구절을 정확히 이해하는데 실패하는 것은 부주의하게 읽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을 유념해서 보시면 바울은 모든 성도들이 두 가지를 알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18절에서는 모든 성도들이 [너비, 길이, 깊이, 높이]를 깨닫도록 기도합니다. 19절에는 And란 접속사로 연결해서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성경을 두리뭉실하게 읽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 길이, 깊이, 높이를 생각하고 책을 덮어 버립니다. 그러나 본문이 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본문은 우주의 구조를 가르쳐 주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잠언 25:3을 펴 보시기 바랍니다. [The heaven for height, and the earth for depth, and the heart of kings [is] unsearchable.] (KJV). 솔로몬은 하늘의 높이와 땅의 깊이에 대해서 말합니다. 로마서 8:39에서도 높음과 깊은 하나님의 피조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롬8:39). 이로써 우리는 하늘은 매우 높으며 거기에는 빌딩과 같이 층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은 세 개의 층계로 되어 있습니다. [[It is] he that buildeth his stories in the heaven, and hath founded his troop in the earth; he that calleth for the waters of the sea, and poureth them out upon the face of the earth: The LORD [is] his name.] (암9:6KJV). 주님은 하늘에 자신의 층을 지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하늘에 3개의 층을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이 땅과 첫 번째 층계인 1층천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아담에게 명하시기를, 땅의 모든 것들, 바다의 모든 것들, 공중의 날짐승들을 다스리도록 권위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 때 3개의 층으로 만들었습니다(창6:16). 에스겔의 성전은 세 개의 층으로 되어 있습니다(겔41:16). [41:16 The door posts, and the narrow windows, and the galleries round about on their three stories, over against the door, cieled with wood round about, and from the ground up to the windows, and the windows [were] covered;](겔41:16, KJV). 모세의 성막도 세 개의 구분이 주어졌습니다. 성막, 성소, 지성소입니다. 우리 몸의 구조도 세 개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몸, 혼, 영입니다.

하나님은 하늘들을 지으셨습니다. 창세기 1:1은 하늘이 단수입니다. 그러나, 6일간의 창조가 된 2:1에는 하늘들로 복수입니다. 이는 하늘들이 만들어졌다는 증거입니다. 이 하늘들에는 각기 사는 존재들이 다릅니다. 첫째 하늘에는 공중의 새들이 날아다닙니다. 그리고 비와 구름을 내립니다. 인간의 거주 경계는 바로 땅과 대기권까지이며, 이를 첫째 하늘이라고 합니다. 이 하늘은 장차 사라지고 없어질 하늘입니다. 대기권을 기준으로 한 이 물리적 공간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하늘은 첫 번째 하늘이 아닙니다.

둘째 하늘에는 정사와 권세들이 살고 있으며, 악한 영적 존재들이 거하고 있습니다. 이 곳을 high places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6:12에 [이는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정사들과 권능들과 이 세상 어둠의 치리자들과 높은 처소들에(in high places) 있는 영적 사악함을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이라.](엡6:12). 다니엘서에는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오는 가브리엘을 막아서서 21일이나 지체시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페르시아 왕은 지상의 페르시아 왕일 수는 없습니다. 지상의 페르시아 왕이라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천사 가브리엘을 21일씩이나 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페르시아 왕국의 통치자가 이십일 일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서 페르시아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었느니라. 그러나, 보라, 우두머리 통치자들 가운데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 주므로...](단10:13). 둘째 하늘은 때로 영적인 전투가 벌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성도들에게 오는 것을 가로막는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바로 둘째 하늘에서 우리를 향해 불화살을 날리는 악한 영적 존재들과의 싸움입니다. 둘째 하늘이 이들의 처소란 사실은 창조의 과정에서도 암시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1:8 [하나님께서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그 저녁과 아침이 둘째 날이니라.] 그러나, 모든 날에 다 있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주님의 말씀이 여기에만 없습니다. 이는 하늘이 주님이 보시기에 깨끗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거기에 온갖 영적 악들이 거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욥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성도들을 신뢰하지 아니하시나니 참으로 하늘들이라도 그분의 눈앞에서 깨끗하지 아니하거든](욥15:15). 둘째 하늘에는 은하와 성단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 악들이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곳은 앞으로 큰 전쟁이 일어날 전쟁터이기도 합니다. 계시록 12:7에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싸울 때에 용과 그의 천사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고 또 하늘에서 자기들이 있을 곳을 더 이상 찾지 못하더라.](계12:7). 이들은 이제 자기들의 거처인 둘째 하늘에서 인간의 거처인 첫째 하늘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합니다. 둘째 하늘이 마귀들의 처소라는 또 다른 증거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눅10:18). 사탄은 이 땅위의 아무 곳이나 자유롭게 왕래합니다. 마귀들은 이 땅위에서 살면서 인간들을 괴롭히지만 주 거처는 저 하늘입니다. 아름다운 별과 은하수, 광활한 우주에 생명체가 없어 보이는 그곳에 정사와 권세들, 영적 악들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인간들이 섬기는 대부분의 우상들이 바로 저 하늘, 이층 천에 몰려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주 어디에도 지구에 생명체를 창조하시듯이 창조해서 두신 적이 없습니다. 창세기의 기록에는 분명히 이 땅에서만 생명의 창조 행위를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 우주에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무지입니다. 성경은 거기에 누가 살고 있는지 분명히 계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장차 이 땅에 몰려 들 때는 하늘에서 쫓겨날 때인 것입니다. 그들은 둘째 하늘에서 셋째 하늘로 올라가지는 못합니다. 둘째 하늘과 셋째 하늘의 중간에는 거대한 물층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물과 물을 나누심으로 하늘을 만드셨습니다. 그 물이 바로 이층천과 삼층천을 가르는 경계입니다. 이 사실은 극히 최근에야 밝혀진 과학적 사실이지만 성경은 이미 옛날 옛적에 이 사실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다윗은 시편 148:4에 말하기를, [하늘들의 하늘들아, 너희는 그분을 찬양하라. 하늘들 위에 있는 물들아, 너희도 그분을 찬양할지어다.]라고 말합니다. 하늘들 위에 있는 이 물들은 땅위의 물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양의 물입니다. 주님은 이 물을 이용해서 노아의 홍수를 일으키셨습니다. 이 물들은 용들의 거처입니다. 시편 74:13에 [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 물들 가운데 있는 용들의 머리를 깨뜨리셨으며](시74:13). 여기서 물은 대서양이나 인도양, 태평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주님의 보좌 아래에 있는 궁창 위의 물입니다. 시편148:7에 [용들과 모든 깊음들아, 너희는 땅에서부터 주를 찬양하라.]고 말합니다. 이런 사실을 가르쳐 주는 유일한 과학적, 천문학적 지식은 오직 성경에서만 발견됩니다. 주님이 너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하신 하늘은 2층천이 아닙니다. 이 하늘도 장차 다 사라지고 없어질 것입니다. 주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지으실 때 이 하늘은 옷처럼 말려질 것이며, 다 타서 녹아 없어질 것입니다. 사라지고 없어질 것에 애정을 둘 수는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늘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가게 될 실제적인 장소요, 우리의 애정을 다 쏟아 부을 수 있고, 우리의 보화를 쌓아 두어야 할 하나님의 보좌가 계신 하늘을 말합니다.

이제 우주의 1층과 2층을 공부했습니다. 둘째 하늘과 셋째 하늘 사이에 있는 물의 표면은 얼어 있습니다. 욥은 이렇게 말합니다. [물들은 돌로 숨긴 것같이 굳게 숨겨져 있고 깊음의 표면은 얼어 있느니라.](욥38:30). 이제 깊음의 표면 위에 셋째 하늘이 펼쳐집니다. 요한 사도는 계시록에서 이 곳을 일컬어 유리 바다라고 표현했습니다. 계시록 4:6과 15:2을 보십시오. [왕좌 앞에 수정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왕좌 한 가운데와 왕좌 둘레에 네 짐승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계4:6). [또 내가 보니 불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는데 짐승과 그의 형상과 그의 표와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승리한 자들이 하나님의 하프를 가지고 유리 바다 위에 서서](계15:2). 사탄이 저 하늘에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욥에 대해서 주님과 이야기를 했다는 것은 그가 보좌의 유리 바다 아래서 주님과 대화를 나눈 것입니다. 주님이 계시는 그곳에는 어떤 악도 거할 수 없으며,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마귀는 유리 바다 위의 하나님을 유리 바다 아래에서 대면하며 이야기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셋째 하늘은 바로 저와 여러분이 꿈에도 그리던 바로 그곳이며, 장차 우리가 가게 될 곳입니다. 이 곳은 시, 공간상 분명이 존재하는 하늘이지, 관념이나 마음 속의 이상향이 아닙니다. 하늘은 이 세상이 개혁되거나 지상 낙원으로 변화된 것이 아닙니다. 이 땅은 아무리 에덴의 동산처럼 변화되어도 땅일 뿐 하늘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그토록 많이, 자주 등장하는 주제가 바로 하늘인 것은 이곳이 하나님의 보좌가 계신 곳이며, 거룩한 천사들과 새 예루살렘이 있는 곳이며, 우리 모두가 가야 할 본향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설교단에서 행해지는 사악한 가르침 가운데 하나는 “죽어서 가게 될 하늘이나 천국 타령을 하지 말고 이 땅에서 최선을 다해 살라”는 것입니다. 저 하늘에 대한 실제적인 믿음과 소망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육신의 정욕이요, 탐심이란 사실을 알지 못한 결과입니다. 저 하늘에 대한 구체적인고 분명한 믿음과 소망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어느 누구보다도 더욱 경건과 절제 가운데 의를 추구하게 만듭니다.

사도 바울은 이곳을 셋째 하늘이라고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12:2과 4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여년 전에 셋째 하늘로 채어 올림을 받은 자라...4절, 그가 낙원으로 채어 올림을 받아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이 말들을 하는 것은 법에 어긋나는 일이라.] 바울이 채여 올림을 받은 것처럼 우리 모두는 얼마가 못되어 저 셋째 하늘로 채어 올려질 것입니다. 이 하늘은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과는 달리 거룩한 곳입니다. 시편 20:6절에는 거룩한 하늘이라고 말합니다. 이 하늘은 측량할 수 없습니다(렘31:37). 거기는 우리가 살아야 할 집이 있습니다. 거기는 우리가 만나 뵈어야 할 주님이 계십니다. 거기는 우리가 소원하고 바라던 모든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저와 여러분에게 [위에 있는 것들에 애착을 두고 땅에 있는 것들에 두지 말지니라.]고 말했습니다. 저 위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은 애착을 둘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땅위에 애착을 두는 사람은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궁리를 하지만 저 위에 있는 것을 본 사람은 이 땅에 아무런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롯과 아브라함의 차이가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데마와 바울의 차이가 바로 이 소망의 차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저 위에는 저와 여러분이 영원히 살 집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14:2과 고린도후서 5:1을 보겠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저택들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에게 말해 주었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2,3). 하늘에 있는 mansion은 이 땅의 어떤 고관 백작이나 황제들이 누렸던 것보다 더 호화롭고 멋있는 집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것은 나의 집을 떠나 멀리 여행자로서 잠시 살다가 가는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모두 순례자요, 나그네입니다. 고향과 집을 그리워하지 않는 나그네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돌아갈 집이 없고, 고향이 없는 사람은 나그네가 아니라 방랑자요, 순례자가 아니라 도피자입니다. 고린도후서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이 장막 집이 해체되면 하나님의 건물 곧 손으로 지은 집이 아니요, 하늘들에 있는 영원한 집이 있는 줄 우리가 아느니라.](고후5:1). 하늘들에는 우리가 입을 새 옷이 있습니다. 이 육신의 장막 집이 무너지고, 해체되면 우리는 영원히 흙으로 돌아가는 한 줌 먼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저 하늘에 새롭게 입을 옷이 있습니다. 이 옷은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광스런 옷입니다. 달려도 지치지 않습니다. 늙지도, 병들지도, 피곤하지도, 목마르지도, 배고프지도 않습니다.

저 하늘에는 생명 나무와 생명수가 있습니다. 계시록 22:1,2을 보겠습니다. [또 그가 하나님과 어린양의 왕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정결한 강을 내게 보여 주니라. 그 도시의 거리 한 가운데와 강의 양쪽에는 생명 나무가 있어 열두 종류의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내고 그 나무의 잎사귀들은 그 민족들을 치유하기 위하여 있더라.](계22:1,2). 여기에는 못 고칠 질병이 없습니다. 죽음이 없습니다. 누구나 생명 나무의 실과를 통해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생명 연장의 꿈을 찾아 헤매던 모든 사람들의 꿈이 단번에 해결되었습니다. 신비한 영약을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저 하늘의 새 예루살렘은 우리가 거할 처소입니다. 성벽 건물은 벽옥으로 되어 있고 그 도시는 순금인데 맑은 유리 같으며, 성벽 기초석들은 온갖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열두 문은 진주로 되어있으며, 도시의 거리는 순금인데 투명한 유리같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도시를 본 적이 있습니까? 들은 적이 있습니까? 화려한 건축 양식과 각종 예술품으로 장식된 현대식 건물에 들어가 본 사람들도 ‘나는 언제 이런데서 한 번 살아 보나?’ 부러워합니다. 아름다운 정원이 있고, 물이 있고, 거기에 어울어진 멋들어진 조명이 있다면 사람들은 ‘이런 집에서 사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살게 될 저 하늘의 도시 새 예루살렘에 대해서는 전혀 감각이 없는 분들이 많습니다. 도시 가운데로 생명수가 흐르며, 강가에는 열두 종류의 과실을 맺는 생명 나무가 있고, 거리는 정금으로 되어 있으며, 해와 달이 필요없는 완벽한 조명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여러분이 본 어떤 성이나 저택도 우리가 살게 될 집에 비하면 초라한 헛간에 불과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이 도시에는 단 한 명의 죄인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좋은 도시와 집이나 왕실이라 할지라도 그곳에 도적이 들끓고, 온갖 악행이 벌어진다면 광야보다도 좋다할 수 없을 것입니다. 셋째 하늘에는 단 한 명의 죄인도 없습니다. 더욱이 지금까지 우리와 영적 전쟁을 벌이던 마귀가 없습니다. 에덴의 낙원에 침투하듯이 마귀가 침투할 수도 없습니다. 악으로 시험을 받지 않으며, 마음의 소원대로 생각하고 행동해도 잘못이나 죄가 되지 않는 곳이 바로 셋째 하늘입니다. 도둑이나 믿지 않는 자들, 우상 숭배자들, 두려워 하는 자들, 살인자, 음행자, 마술하는 자들,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아무리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완전한 의와 화평이 거하는 곳입니다. 거기에는 사망도 없습니다. 울부짖음도 슬픔도 없습니다. 아픔도 없습니다. 밤과 어둠도 없습니다. 이곳이 바로 저와 여러분이 살게 될 영원한 우리의 고향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하늘에 대해서 조금만이라도 정확한 인식과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이 땅에서의 삶은 아무리 지치고 낙심되어도 문제조차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애정을 갖지 말라고 해도 마음 가운데 저절로 소망과 넘치는 기쁨이 있게 될 것입니다.

저 하늘에는 완전한 섬김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어린 양의 보좌가 그 안에 있으며, 그의 종들이 모두 주님을 볼 것입니다. 지금까지 아무도 주님을 본 적이 없었지만 이제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주님을 뵈올 것입니다. [다시는 저주가 없으며 오직 하나님과 어린 양의 왕좌가 그 안에 있으리니 그분의 종들이 그분을 섬기며 그분의 얼굴을 볼 것이요, 그분의 이름이 그들의 이마 안에 있으리라.](계22:3,4). 주님이 이 땅에서 죄인들을 섬기시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는가를 몸소 보여 주신 그 섬김이 바로 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을 주신 그분을 섬기는 특권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본래 그곳에 살고 계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승천하셔서 그 곳으로 가셨으며(행3:21), 하늘에 또 수많은 피조물들인 천사들이 있으며(마18:10), 구약의 믿음의 영웅들과 신약의 사도들을 비롯한 모든 형제, 자매들이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에녹과 엘리야, 모세와 다니엘, 다윗과 솔로몬을 거기서 보게 될 것입니다. 롯과 데마는 물론이요,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곳은 완전한 민족이 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족, 친지, 친구들이 이미 먼저 거기에 가 있거나 우리를 뒤따라 그리로 올 것입니다.

저 하늘은 완전한 사귐이 있는 곳입니다. 주님의 얼굴을 볼 것입니다. 성경의 저자이시며, 창조주이시며, 모든 것의 처음이시며 끝이신 우리 주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될 것입니다. 강제적이고 의무적인 사귐이 아니라 자발적인 사귐이요, 빛 가운데의 교제가 있습니다. 주님의 얼굴을 보는 성도들이 같은 성도들을 향한 섬김과 교제는 어떠하겠습니까? 완벽 그 자체일 것입니다. 이 땅에서 지역 교회를 통해 희미하게나마 꿈꾸어 보던 이상적인 교제와 섬김과 사귐이 저 하늘에서는 실제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저 하늘에는 완전한 충성과 신실한 복종이 있습니다. [그분의 이름이 그들의 이마 안에 있으리라]는 말은 주님이 우리를 완전히 소유했다는 소유의 표시입니다. 솔로몬의 아가에서 신부가 노래했듯이, [나는 나의 사랑하는 이의 것이요, 그분은 나를 사모하시는도다.](솔7:10)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완전한 소유이며, 주님은 우리의 소유입니다(솔6:5). 생각해 보십시오. 만유의 주 곧 하나님과 완전한 연합을 이루는 그곳이 바로 저 셋째 하늘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곳이 그립도록 사무치지 않습니까? 바울이 빨리 죽어서라도 가고 싶어했던 것은 그가 정신이 이상해서가 아닙니다. 하늘에 대해서 제대로 알았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라도 성경에 기록된 하늘에 대해 한 줄기 빛을 받아 보았다면, 재림에 대한 열렬한 소망은 절로 용솟음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시간 저희 마음에 가리워진 어두운 커튼을 걷어 주시고, 악한 자들이 빛을 가리지 못하도록 해 주시기를 간절히 빌고 원합니다.

예전에 시골에 살던 사람들은 서울에 한 번 가보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단지 서울이 어떤 곳이란 소문만 듣고도 꿈에서라도 한번 가서 구경해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 하늘에 대해서 듣고 배운 것이 시골 사람 서울 소식만큼만 된다면 모두 절치부심 저 하늘에 대한 소망으로 차고 넘칠 것입니다. 후진국에 살던 사람들은 미국에 한 번 가보는 것이 소원인 사람이 많습니다. 말로만 듣고, 책으로, 사진으로만 보던 미국을 직접 보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습니다. 먹고 살 것이 많고,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말한 마디에 미국이란 나라에 광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이 만약 저 하늘이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이며, 영광스런 곳인지 제대로 듣고, 그 사실을 믿었다면 모든 것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떠나는 유학생이나 이민자들보다 훨씬 더 강한 소망과 욕구를 가지고 하늘을 바라며 소망할 것입니다. 어떤 이는 예술의 도시 파리를 가보고 싶어했고, 어떤 이는 제국의 수도였던 이탈리아의 로마를 한 번 가보고 싶어했습니다. 멋진 경치를 즐기고 싶어 스위스를 꿈꾸는 사람들, 아니면 저 극지방의 얼음산과 펭귄들이 노는 그린랜드를 보고 싶어합니다. 이들은 모두 거기에 자신의 꿈과 이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저 하늘에 무엇이 있고, 무슨 일이 있는지 알고, 내가 거기서 어떻게 살 줄을 안다면 여러분의 삶은 저 미래가 아니라 지금 현재 완전히 바뀌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주님이 계시고, 우리의 형제들이 살고 있고, 거룩한 천사들이 있고, 우리의 집이 있고, 완벽한 환경과 완전한 의와 거룩함이 있는 곳에 여러분의 마음이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여러분의 이성과 감정은 지금 정상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저 하늘에 대한 소망과 소원이 어린아이가 자기가 놀던 놀이터에 다시 가보고 싶은 욕망보다 적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진실을 위장한 거짓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 모두 이 시간 자신을 살펴보고 말씀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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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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