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기준은 “거룩함”입니다. 선함, 의로움, 거룩함은 성도들의
인격의 특징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의 능력은 죽어서 하늘
행이라는 구원의 보장뿐만 아니라 이 생을 살아가는 평생의
나날 동안 선한 행위의 열매를 맺고, 의의 열매를 맺고,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게 합니다. 골로새서 1:10,
빌립보서 1:11을 보겠습니다. [
주께 합당하게 걸어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게 하시고](골1:10).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았으므로 당연히 선한
일에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들로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양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빌1:11).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의이십니다. 우리는 당연히 의의 열매들로 가득해야 합니다.
생명의 특징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가
없는가는 열매를 맺는가 그렇지 못한가?에 달려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습니까?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주님의 말씀이 현재, 이
시간에 여러분에게 그대로 살아 역사하고 있습니까?
구원받았느냐고 묻는 것이 아닙니다. 열매를 맺고 있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냐고 묻는 것이 아닙니다. 선한
열매를 맺고 의의 열매를 맺고 있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성경은 온통 열매맺는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많은 열매를, 더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성도들이 맺어야 할 열매는
오늘 살펴볼 거룩함의 열매입니다. 로마서 6:22, 11:16을
보십시오. [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그
끝은 영존하는 생명이니라.](롬6:22). 주의하십시오.
거룩함에 이르는 씨를 얻은 것이 아니라 열매를 얻었습니다.
복음의 말씀은 씨입니다. 성경의 기록된 모든 말씀은
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얻은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복음을 통해 예수를 믿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얻은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이듯이, 예수 그리스도 또한 저와 여러분의 소유입니다.
나는 주님의 것이며, 주님은 또한 나의 것입니다. 이전에
어떤 사람이었다 할지라도 예수를 믿었다면 이미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주신 그 열매를 냉대하고,
구박하고, 무시하고, 한 구석에 제쳐놓았다 할지라도
여러분은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이미 소유하고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 안에는 모두 성령의 첫 열매요, 하나님의
형상인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이 점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외모로 취함도 없습니다. 신앙의 연륜의 차이도
없습니다. 저에게나 여러분에게나 그 어떤 위대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사람이나 교회를 잘 나오지도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가
있습니다. 이것이 없이는 거룩함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불씨가 없이 불을 붙일 수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롬11:16, [
이는 첫째 열매가 거룩한즉 덩어리도 거룩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들도 거룩하기 때문이니라.]
예수님이 첫째 열매이고, 우리는 복음의 열매들입니다.
예수님이 뿌리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가지들입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이 사실을 잊고 살아 버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거룩한 뿌리에서 나오는 진액을 그대로 흡수해서 열매를
맺는 가지란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분명히 명심하십시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뿌리로 그 위에 한 그루 나무를
형성하는 가지들입니다. 열매를 맺는 것은 가지만의
특권이요, 의무이며, 존재 목적입니다.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언제나 나무의 가지이지 나무의 뿌리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성도들을 볼 수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가지의 열매를 보고
나무를 판단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성도들이 모인
교회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판단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맺는 열매의 종류는 곧 뿌리의 어떠함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주님은 [
내가 거룩한 것
같이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죄 가운데 태어나 온갖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생의 자랑에 몰두하며 살아가는 저희들에게 이 말씀은
죽으라는 말보다도 힘들고 어려울 수 있습니다. 거룩함은
모든 세상 사람들이 가장 사모하고 간절히 바라는 열망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 평생을 거룩하게 살다 간 사람들을
존경하고 흠모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테레사
수녀에게 성 테레사라고 부르고, 슈바이쩌를 성자라 부르고,
간디를 마하트마 간디라고 부르고, 공자나 석가를
성인이라고 부르며 존경하는 것은 모두 거룩함에 대한
열망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을 숭배하는 것도
천사들이 거룩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순수, 거룩은
세상이 죄와 어둠가운데 물들면 물들수록 더 간절히
열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
거룩하신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모두 거룩해지고
싶어하는 깊은 내적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처럼,
저 하늘의 천사들처럼 거룩해지고 싶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거룩에 이르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사람이라고 부르고, 추앙하고, 숭배하는 모든
사람들도 사실은 죄인이란 사실에 동의합니다. 공자가
죄없는 사람이었겠습까? 물으면 아무도 “예”라고 답하지
못합니다. “슈바이쩌가 죄없는 삶을 살았을까요?”라고
물으면 누구도 “예”라고 하지 못합니다. [
의인은 없나니
없도다. 단 한 사람도 없도다.]란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
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전도서 기자였던
솔로몬은 일찍이 [
이는 선을 행하고 범죄하지 않는 의인이
땅 위에 하나도 없기 때문이로다.](전7:20)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시간 거룩함에 이르는 길에 대해서 공부해
보겠습니다. 거룩함에 관련된 성경 구절은 최소한 1,066개나
됩니다. 거룩이란 본래의 뜻은 분리하다, 떼어놓다의
의미입니다. 죄로부터 분리되어 하나님께로 간다는
의미입니다. 시편 4:3과 레위기 11:44을 보겠습니다. [
오직
주께서 자신을 위하여 경건한 자를 따로 두신 것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주를 부를 때에 그분께서 들으시리로다.](시4:3).
“따로 두신 것”이 바로 거룩입니다. [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너희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서 기는 것 즉 기어다니는 어떤
것으로 인하여 너희 자신을 더럽히지 말지니라.](레11:44).
구별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거룩이란 어떤 것과 어떤 것을
철저히 구별하는 것입니다. 거룩은 더러움과 떨어져
구별되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거룩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씻기는 순간, 우리가 하나님의
증거를 믿자마자 우리는 이미 깨끗해지고, 성결해지고,
하나님께 구별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성전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는데 쓰는 각종 그릇들이
있습니다. 이 그릇들은 모두 피를 뿌려 깨끗하게 합니다. 이
그릇들은 단 한번의 피뿌림으로 거룩한 기명이 되는 것처럼
모든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단 한번의 피뿌림으로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단회적인 것으로 과거의
일입니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단번에 의롭게 되는
것처럼 단번에 거룩해 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11,
히브리서 10:10-12을 보십시오. [
전에는 너희 가운데 이 같은
자들이 더러 있었으나 이제는 너희가 우리 하나님의 영을
통하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씻겨지고 거룩히 구별되어
의롭게 되었느니라.](고전6:11). [
바로 이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 한번 모든 사람을 위해
영원히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히 구별되었노라.
제사장마다 날마다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희생물들을
드리되 이것들은 결코 죄들을 제거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이
사람은 죄들로 인하여 한 희생물을 영원히 드리신 뒤에
하나님의 오른 편에 앉으사](히10:10-12). 우리가 거룩해
지는 근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사실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의지나
감정, 행위나 결심과 상관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이는 모두 과거 시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받아 들일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받아 들일 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 영적 할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통해 영을 살리시고, 혼을 몸으로부터
분리해 내심으로 거룩한 새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골2:1-12).
만약 거룩함을 입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직도 하나님의
면전에 나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우리는
필요한 순간에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갑니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 주변에 경계를 정하고
모세만 올라 갈 수 있었습니다. 성전에서 지성소는 일년에
단 한번 대 제사장만이 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저 하늘의 지성소로 곧 바로 달려간다는 것은 이미
모세와 대제사장의 지위를 뛰어 넘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나아갈 뿐만 아니라 담대히 나아갑니다(히4:16). 매월
첫째 주에 교회에서 행하는 성만찬은 우리가 이미 거룩하게
되었기 때문에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9:33,
에베소서 2:19을 보십시오. [
그들이 속죄하는데 쓰는
것들을 먹어 스스로를 거룩히 구분하고 거룩히 구별하되
타국인은 먹지 못할지니 이는 그것들이 거룩함이라.](출29:33).
거룩히 구분되고 구별된 사람만이 주의 만찬에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이제는 너희가 더 이상 낯선
자도 아니요, 외국인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더불어 동료
시민이요, 하나님의 집안에 속한 자들이라.](엡2:19). 주의
만찬은 우리가 거룩히 구별되었다는 표시이며, 간증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받았다고 고백하고, 거룩함에
참여하면서도 거룩함의 참된 의미를 너무나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룩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죄에 대한 참된 이해와 깊은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사망에 몰아넣는 것은 오직 하나 죄입니다. 사람을 흑암으로,
영원한 저주에 빠지게 하는 유일무이한 한 가지도 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외에는 어떤 다른 것으로도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피흘려 죽게 하신 것은 많고 많은 방법 중의 하나가 아니라
유일무이한 방법이셨습니다. 죄에 대한 희미하고도
불분명한 관점은 오늘날 모든 타락과 더러움의 원인입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피를 통해 믿는 저와 여러분을 영원히
거룩하게 구별하셨다는 사실만큼 죄에 대한 처절하고도
철저한 증오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렵고 힘든 일이 없으셨지만 단 하나 죄의
무게만큼은 무겁고 힘드셨습니다. 천지 창조가
힘드셨습니까? 홍해를 가르고 만나를 내리는 것이
힘드셨습니까? 주님을 힘들고 고뇌하게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골고다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고뇌하도록 한 것은 바로 저와 여러분의 죄를 지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누가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 가락 하나
손상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저와 여러분의 죄는 그분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놓도록 채찍질하고, 그 몸의 사지에
못을 박게 할 정도로 무섭고 참혹한 것이었습니다. 거룩함을
입은 이후에 우리는 어떻게 거룩함을 입었는가? 우리의 죄가
성육신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만들었는가?에 대해
잊어버린다면 그는 거룩함을 멸시하는 것밖에 달리 아무
것도 아닙니다. 히브리서 10:10,14절을 보겠습니다. [
바로 이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모든
사람을 위해 드려짐을 통해 우리가 거룩히 구별되었노라.](10).
[
이는 그분께서 거룩히 구별된 자들을 단 한번의 헌물로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음이라.](14). 이제 저와 여러분은
거룩함에 관한한 영원토록 완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데는 전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이 있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단번에 거룩해진 사실을 바탕으로 이제 이 세상을
거룩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고린도후서 7:1 [
그러므로 지극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 약속들을 가졌은즉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모든
더러움에서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단번에
이루어진 거룩함과는 달리 우리의 삶 속에서 이루어 가는
거룩은 성화의 과정입니다. 이는 현재적이고, 진행적인
것입니다. 이런 거룩한 삶을 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분리입니다. 뒤섞여 사는 곳에 거룩이란 없습니다. 일단
따로 떨어져 나와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2:21 [
그러므로
사람이 이런 것들로부터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하게 쓰는
그릇 곧 거룩히 구별되어 주인이 쓰기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된 그릇이 되리라.](딤후2:21). 성화의 첫 단계는
말씀에 있는 그대로 세상과 분리되는 것입니다. 내가 만나는
친구들과 그대로 만나고, 내가 읽던 책들, 내가 보던
프로그램들, 내가 먹고 마시던 것들을 그대로 다 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숯을 품에 안고서
옷이 타지 않기를 바랄 수 없듯이 세상과의 분리 없이
거룩함을 온전히 이룰 수는 없습니다. 죄와 세상은 언제나
나의 친구였듯이 나를 붙잡고 늘어집니다. 죄는 가룟 유다가
입맞춤을 하면서 접근했듯이 요압이 아첨하는 말로
접근했듯이, 금지된 나무의 실과가 보기에 좋고
먹음직스러웠듯이 그런 모습으로 나에게 접근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분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충직한 제자를 자임하던 베드로가 육신의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 화로 곁에 사람들과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사람들과 어울려 앉아 있는 동안 예수님과는
멀찍이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바로 타락이
시작됩니다. “예수님과 가까이, 사람들과는 멀리” 이것이
바로 분리입니다. [
죄와 세상으로부터 분리] 이것은
구호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의 독소는 우리 몸
구석구석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주님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죄 또한 우리 곁에 더 가까이 붙어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죄가 마음놓고 활동하는
playground입니다. 우리가 죄와 세상으로부터 분리되는 길은
언제나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적용하는
것입니다. 죽음만이 우리를 완전하게 분리시키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외치는 것이 분리된 삶의 초석인
것입니다. 주님이 그러하셨듯이 우리는 자신을 하나님의
제단 앞에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삶이 필요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3,7을 보겠습니다. [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가 거룩히 구별되는 것이라. 그런즉 너희는
음행을 멀리하고...](살전4:3). [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정함에 이르도록 부르신 것이 아니요, 거룩함에 이르도록
부르셨음이니](살전4:7). 구약 성도들이 주로 우상 숭배의
죄에 탐닉하고 반복적으로 걸려 넘어졌다면, 신약
성도들에게 가장 흔한 죄는 음행입니다. 교회 내는
음행이라고 불릴만한 많은 것들이 누룩처럼 퍼져 있습니다.
거룩함에 이르는 길은 주님께서 죄라고 여기시는 것들을
죄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음행을 멀리하라고 하면 멀리해야
합니다. 그것은 결코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탐심은 언제나
우상 숭배이지 주님을 향한 선한 양심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죄를 죄로 보지 않는 순간 성도들은 죄의 속임수에
빠져 거룩함에 이르지 못합니다. 타협의 속삭임은 언제나
있습니다. 죄에 성경적 원칙과 명확한 기준이 내 안에 미리
정립되어 있지 않는 사람은 늘 갈등과 번뇌 속에서 거룩함을
저버리고 맙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신 것을
나는 붙들기를 열망하지 않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거룩함은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디모데전서 4:5과
요한복음 17:17입니다. [
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그것이
거룩히 구별되기 때문이라.](딤전4:5). [
아버지의 진리로
그들을 거룩히 구별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17:17).
날마다 읽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는 거룩히 구별됩니다.
누가 말했듯이 성경이 여러분을 죄로부터 보호해 주지
못한다면 죄가 여러분을 성경으로부터 보호해 줄 것입니다.
어느덧 집에서 성경을 안 읽은지가 하루, 이틀이 지나고
한주, 두주가 지나고 한달 두달이 지났다면 여러분의 죄가
철저하게 여러분을 성경으로부터 지켜 준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자리에 하나님의 말씀을 방패로 삼지 않고,
죄의 보호를 받는 자들이 있다면 속히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죄를 여러분의 목자요, 인도자로 삼는 분들이 해야 할 일은
통곡과 눈물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은
결코 거룩함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들의 칼이요, 방패입니다. 백발 백중의 명수 마귀가
날리는 불화살을 온 몸으로 감당하려는 미련한 자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성도들은 매일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이
되시며 죄를 깨닫게 하시고, 이미 지은 죄를 깨끗하게 씻어
주시며, 의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요한복음 15:3과
에베소서 5:26을 보겠습니다. [
이제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깨끗하게 되었으니...](요15:3). 오늘날 성도들과
교회들에서 거룩함을 찾아 볼 수 없는 것은 그들이 말씀을
읽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읽는 것은 여러분이 생각해
보고 나서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시간이 나면 하고,
바쁘면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종이, 아니면 자녀가 바쁘다는 핑계로 주인의 지시 사항이
담긴 글을 몇 날 몇 일이고 호주머니에만 넣어 둘 수
있습니까? 그럴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 아버지의 귀한 약속이 담긴 말씀들을 팽개쳐
버린다면 어떤 약속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적힌 법전을 보지
않고 선반에만 올려놓았다면 그는 죽도록 얻어맞아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학생들이 선생님이 지정해 주신 책을
보지 않고 배움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일꾼이 주인의 지시
사항이 적힌 노트를 보지 않고 주인의 마음에 합당한대로
일을 해 줄 수 있습니까? 그런데 왜 성도들이 성경을 읽지
않는 것입니까? 성경을 읽는 성도만이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으며, 점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피곤해서 성경을 못
읽었습니까? 성경을 못 읽게 할 정도로 피곤한 일이라면 그
일을 그만두십시오.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거룩함이고,
거룩함을 유지하는 비결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면 그것을
방해하는 것은 언제나, 단호히 배척하십시오. 잘라
버리십시오. 성경을 읽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필요를 채워
주시기 위해 정하신 방법입니다. 기도 외에 어떤 다른
것으로 얻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찬양을 드리고,
필요를 아룁니다. 기도는 설교자와 달리 특정 사람이 부름을
받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직분이 없습니다. 기도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모임이 죽은 교회, 기도의 열정이 죽은 성도는 이미
거룩함과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저 타락의 한 가운데 들어
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교회의 모습, 이 교회
성도들의 모습은 주일 오전 11시 예배에 나온 그 얼굴들에서
찾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 시간, 이 자리에 있는 얼굴들을
통해서 찾는 것입니다. 뜨겁고 열렬한 기도를 해 본 적이
없고, 그에 대한 응답을 받아 본 적이 없다면 거룩함은
고사하고 타락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저는 교회 설교를 들으러 오는 어떤 성도보다
기도 모임에 오는 성도들이 백 배는 더 거룩하고, 성숙하며,
귀한 형제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요즘 동계
올림픽을 보면서 특히 유념해 보는 것이 피겨 스케이팅
점수입니다. 거의 10명의 심판이 점수를 메기는데 6점 만점에
각기 점수를 매겨서 그 평균 점수를 통해 금, 은, 동을
결정합니다. 기술 점수, 예술 점수...이런 식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 교회의 성도들은 제도권 교회의
성도들에게서 한 두 가지 면에서 뛰어난 점수를 받을지
몰라도 종합적인 점수를 따지면 훨씬 뒤쳐지는 것을 봅니다.
성경 문제나 거리 설교하는 능력은 더 뛰어난 것 같은데,
다른 점에서는 거의 바닥을 헤맵니다. 특히 기도와 성도의
섬김과 사랑에는 거의 0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균형잡힌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특히 선함, 의로움,
거룩함에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는 성도라면 이미 주님
앞에서는 형편없는 성도에 불과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3을
보겠습니다. [
화평의 하나님께서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히 구별하시는 도다. 그런즉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흠 없이 보존해 주시기를 구하노라.](살전5:23). 이
말씀은 과거나 현재 시제가 아니라 미래 시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는 온전히 그분과 같이 죄
없는 완전한 모습이 될 것입니다. 처음에 말한 거룩은
우리의 속사람에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이는 이미 과거
시제로 이루어 진 것입니다. 구원받았을 때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받았습니다. 우리의 속 사람은 거룩함을 입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죄의 권능으로부터 구원받습니다. 이는
성령의 능력으로 현재 죄를 이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피, 부활의 능력이 현재 나의 몸을 통해
드러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 생활입니다.
앞으로 죄의 존재, 그 자체로부터 구원받게 됩니다. 우리의
겉사람, 즉 몸이 변화 받음으로 더 이상 죄의 유혹과 시험을
받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그 날이 오기를 간절히
사모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거룩함에
대한 3가지 면을 살펴 보았습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에게 묻고자 합니다. 거룩해지고 싶습니까? 거룩을
열망하십니까? 그렇다면 이제 주님께 밀착하시고, 그분 안에
거하며, 그분의 말씀 안에 거해야 합니다. 주님은 거룩의
원천이시며 시작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거룩이 되십니다.
거룩함은 주님과의 온전한 연합에서 나옵니다. 거룩함은 참
포도나무의 살아 있는 가지에 맺히는 열매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거룩하십니까? 이 순간 여러분은 거룩하십니까?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