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장(덮개)
요절: 출애굽기 26:7 성막의 앙장은 네 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그룹을 수놓은 앙장은 성소 안의 천장에 사용되는 것이며, 총 10장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성막이라고 불렀고, 성소나 지성소에 들어간 제사장들과 대제사장이 하나님이 계신 곳이란 임재를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4가지 색으로 된 고운 실로 정교하게 짠 성막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모두 드러내 보입니다. 그룹을 수놓은 앙장 위에 놓는 앙장은 염소 털로 만든 것입니다. 앙장은 4장을 덮어 두었는데 첫째가 그룹을 수 놓은 앙장이고 그 위에 염소 털로 만든 앙장이고 그 위에 숫 양의 가죽으로 만든 앙장이고, 그 위는 오소리 가죽으로 만든 앙장을 덮었습니다. 이렇게 4중으로 덮으면 완벽한 지붕이 됩니다. 지성소와 성소를 만든 다음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앙장을 만들어서 덮었던 모양입니다. 사진이나 그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제 2 앙장부터 제 4앙장까지를 살펴보겠습니다. 7절입니다. [너는 염소털로 앙장(仰帳)들을 만들어 성막을 덮는 덮개가 되게 하되 열한 개의 앙장을 만들지니라.](7). 염소 털로 만든 앙장은 첫 번째 만든 앙장 위에 덮음으로써 성막위의 천막이라고 불렸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첫 번째 앙장은 고운 세마포에 4가지 색실을 사용해서 그룹을 수놓은 것인데 그 자체로 성막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앙장은 그 위에 덮는 덮개용인데 성막의 지붕은 4중 덮개로 되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앙장 위에 덮었기 때문에 그룹을 수놓은 앙장보다 약간 더 큽니다. 처음 것이 길이 28큐빗 너비 4큐빗으로 10장이었는데 반해 이번에 만드는 것은 길이 30큐빗, 너비 4큐빗으로 11장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것을 덮을 수 있었으며, 아래에 수놓은 아름다운 앙장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성막을 덮는 덮개”라고 말합니다. 영어 킹 제임스 성경으로 보면 'curtains of goats' hair'라고 되어 있습니다. 염소 털로 만든 커튼인데 창을 덮는 것이 아니라 지붕을 덮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앙장은 덮개용 커튼으로 만드셨는데 이는 하늘의 모양을 그대로 드러낸 말씀입니다. [주께서 옷으로 덮는 것같이 빛으로 자신을 덮으시며 하늘들을 휘장같이 펼치시고/the heavens like a curtain](시104:2). [그분께서는 땅의 원 위에 앉으시나니 땅에 거하는 자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분께서 하늘들을 휘장같이 펴셨으며/the heavens as a curtain/ 거주할 장막같이 치셨고](사40:22).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하늘들을 휘장같이(커튼처럼) 펴셨다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커튼은 당연히 우리가 창이나 벽에 치는 커튼이 아니라 성막을 만들 때 사용된 커튼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막의 커튼은 천장에 쳐졌습니다. 성막은 우주의 모형이란 점에서 성막 제작에서 염소 털로 만들어진 커튼 역시 하나님이 만드신 하늘의 모형입니다. 커튼은 남성이 아닌 여성에 가깝습니다. 커튼은 무엇인가를 가리는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외부와의 분리를 나타냅니다. 커튼을 치면 우리는 외부를 차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염소 털의 실을 누가 자았는지 보십시오. [지혜로 마음이 감동된 모든 여인들이 염소털로 실을 자았으며](출35:26).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염소하면 양과 비슷하게 생각해서 무조건 흰색의 실을 생각하지만 당시 중동 지역의 염소는 대부분 검은 색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실 역시 검은 색입니다. 솔로몬의 아가 1:5에 나오는 여자들의 커튼을 보면 [오 너희 예루살렘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어도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들과도 같고 솔로몬의 휘장들(curtains)과도 같으니라.](아1:5) 했고, [네 눈이 나를 사로잡으니 내게서 그 눈을 돌려 다오. 네 머리털은 길르앗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염소떼 같고](아6:5)라고 말합니다. 아시아 사람들의 머리카락이 검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검은 색 커튼임에 틀림없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성막 사진이나 그림에 보면 흰색으로 그려 놓고 있는데 이는 성경에 대한 고증이 부족한 탓입니다. 주님께서 염소 털로 앙장을 만들게 하신 것은 염소에 대한 영적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숫염소는 백성들의 죄를 덮기 위한 속죄 제물로 사용되었습니다. 숫염소는 이스라엘의 주요 절기에 항상 헌물로 사용되었습니다. 무교절에는 어린 양과 더불어 속죄를 위해 숫염소가 죄 헌물로 드려졌습니다. [또 너희를 속죄하기 위하여 숫염소 한 마리를 죄 헌물로 드리되](민28:22). 나팔절에도 역시 숫염소가 속죄 헌물로 드려졌습니다. [또 너희를 속죄하기 위하여 염소 새끼 한 마리를 죄 헌물로 드리되](민29:5).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명절이라 할 수 있는 속죄일에도 여전히 숫염소가 드려졌습니다. 레위기 16:5-7을 보면, [제비뽑아 속죄 염소가 된 염소는 산 채로 주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기 위하여 그것을 속죄 염소로 광야로 보낼지니라. 아론은 자기를 위한 죄 헌물로 자기의 수소를 드려서 자기와 자기 집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 두 마리 염소를 취하여 회중의 성막 문에서 주 앞에 둘지니라](레16:5-7).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서 죄 헌물로 숫염소 새끼 두 마리와 번제 헌물로 숫양 한 마리를 취할지니라.](레16:10). 장막절에도 속죄 염소가 드려졌습니다. 국가적 중요 명절에서 속죄 헌물은 어김없이 숫염소가 드려졌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숫염소는 알지 못하고 지은 죄에 대해 죄 헌물로 사용되었습니다. [만일 치리자가 알지 못하여 마땅히 행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관한 [주] 곧 자기 하나님의 명령 중 하나라도 어겨 범죄하고 조금이라도 행하여 유죄가 된 경우에 자기가 범한 죄를 알게 되거든 그는 흠 없는 숫염소 새끼를 헌물로 가져다가 그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고 [주] 앞에서 사람들이 번제 헌물을 잡는 곳에서 그것을 잡을지니 이것은 죄 헌물이니라.](레4:22~24). 보통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지은 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보통 사람들 중에서 어떤 이가 알지 못하여 범죄하되 마땅히 행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관한 [주]의 명령 중 하나라도 어기고 조금이라도 행하여 유죄가 된 경우에 자기가 범한 죄를 알게 되거든 그는 흠 없는 암염소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가 범한 죄로 인하여 그것을 헌물로 삼아 그 죄 헌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번제 헌물을 /드리는/ 장소에서 그 죄 헌물을 잡을 것이요,](레4:27~29). 주님께서 특별히 숫염소로 죄 헌물을 드리도록 요구하신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어린 양에 대해서는 너무나 쉽게 예표성을 이해하지만 숫염소에 대해서는 성도들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숫염소는 주님을 예표하기 보다는 우리 자신을 예표합니다. 성경에서 염소는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 않습니다. 염소는 늘 죄와 악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리브가와 야곱이 합작해서 아버지 이삭을 속인 장면에 등장하는 털이 염소 털입니다. [또 염소 새끼의 가죽을 그의 손과 목의 털이 없는 곳에 붙여 주고](창27:16). 야곱이 염소 털로 아버지를 속였지만 후에 야곱의 아들들은 역시 염소로 자기 아버지를 속였는데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법칙이 이보다 더 생생한 예가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들이 요셉의 옷을 취하고 염소 새끼를 죽여 그 옷을 피로 적시고](창37:31). 여기서도 염소는 좋은 의미가 아닙니다. 죄악에 연루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아내 미갈은 아버지 사울을 속일 때 염소털을 사용했습니다. [13미갈이 형상 하나를 취하여 침상에 누이고 그의 베개 대신 염소털로 만든 베개를 놓고 옷으로 그것을 덮었더니 16사자들이 들어가니, 보라, 침상에 형상 하나가 있고 그의 베개 대신 염소털로 만든 베개가 있었더라.](삼상19:13,16). 우리 주님께서 이방 민족을 심판하실 때 양과 염소로 나누시는데 염소는 악한 민족들을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염소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죄성을 지닌 인간들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속죄 헌물로 염소를 요구하신 것은 염소를 죽이심으로 우리를 죽이시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모두 담당하셔서 죄와 저주가 되신 사건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죄와 상관없지만 죄가 되셨고(고후5:21), 저주가 되셨습니다(갈3:13). 주님은 마치 염소처럼 우리를 위해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인간이 되셔서 자신을 속죄 헌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그가 상함 받는 것을 기뻐하사 고통을 받게 하셨은즉 주께서 그의 혼을 죄로 인한 헌물로 삼으실 때에 ...](사53:10). [... 그는 많은 사람들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들을 위하여 중보(仲保)하였느니라.](사53:12). 이로써 제사장들이 숫염소를 잡아서 그 피를 헌물 제단 밑에 쏟아 부은 제사를 정확하게 성취하셨습니다. [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죄 헌물의 피를 찍어 번제 헌물 제단의 뿔들에 바르고 그 피는 번제 헌물 제단 밑에 쏟고](레4:25).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숫 염소 털로 만든 두 번째 앙장은 11개라는 숫자가 의미하는대로 5(죽음) + 6(인간)의 완벽한 일치입니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염소 털을 마음이 감동된 모든 여인들이 실을 자아낸 것처럼(출35:26) 우리 주님은 여자에게서 나셔서 어머니의 모태에서부터 죄와 불법 가운데 형성된 우리들을 모두 속량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숫염소의 가죽이 아니라 털로 만들게 하신 점에 주목해 보십시오. 첫 번째 앙장이 고운 아마포 와 색 실로 만든 것이고 두 번째 것은 염소 털로 만들었고 세 번째는 숫양 가죽, 네 번째는 오소리 가죽으로 만들었는데 털은 세상으로부터의 보호를 상징합니다. 털은 몸의 체온을 유지해 주며 외부로부터 공격 때에 상처를 막아 줍니다. 몸을 더러움으로부터 지켜 줍니다. 동시에 털은 분리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털을 깎아 버리면 털에 묻었던 더러움이 모두 제거됩니다. 이런 이유로 이교도의 종교 가운데는 머리를 깎음으로서 세상과의 단절을 선언하는 예가 허다합니다. 남자들은 머리를 깎고 수염을 깎습니다. [만일 남자가 긴 머리를 가지면 자기에게 수치가 되는 것을 본성 그 자체도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고전11:14). 이스라엘 남자들은 이방인들과 달리 머리를 짧게 깎았습니다. 성도들이 주로 오해하는 한 가지는 나실인들은 머리를 깎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들은 머리를 깎지 않았다고 믿는 것입니다. 나사르 사람들은 자기가 헌신한 일정동안만 머리를 깎지 않았고 그 후에는 머리를 잘랐습니다. [13나사르 사람의 법은 이러하니라. 그를 구별한 날들이 차면 그 사람을 회중의 성막 문으로 데리고 갈 것이요, ...18나사르 사람은 회중의 성막 문에서 자기를 구별한 머리를 밀고 자기를 구별한 머리털을 취해 화평 헌물의 희생물 밑에 있는 불에 놓을 것이며 19나사르 사람이 자기 머리털을 민 뒤에 제사장은 삶은 숫양의 어깨와 바구니에서 누룩 없는 납작한 빵 한 조각과 누룩 없는 얇은 과자 한 개를 취하여 나사르 사람의 두 손에 두고] (민6:18~19). 히피족들이나 건달들이 장발의 머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리면서 삼손이나 예수님의 머리 스타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경에 대한 무지를 그대로 드러낸 것입니다. 머리는 나사르 사람을 구별하는 법에 해당했습니다. 머리가 길었던 아름다운 남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용모가 수려하고 머리가 길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긴 머리로 인하여 죽음을 당했습니다. [압살롬이 다윗의 신하들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의 무성한 가지 밑으로 지나갈 때에 압살롬의 머리가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그가 하늘과 땅 사이에 들리고 그 밑에 있던 노새는 가버렸으므로](삼하18:9). 머리를 자른다는 의미는 분리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두 번째 앙장의 특징은 그룹들이 새겨진 첫 번째 앙장을 보호하고 세상으로부터 분리를 나타내는 앙장입니다. 제사장들은 머리를 밀어서 중들처럼 번쩍이게 해서도 안 되지만 장발의 머리를 해서도 안 됩니다. [그들은 또 머리를 밀지 말며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도 하지 말고 머리털을 깎기만 할 것이며](겔44:20). 8-9절입니다. [각 앙장의 길이는 삼십 큐빗, 넓이는 사 큐빗으로 하고 열한 개의 앙장을 같은 치수로 하며 앙장 다섯 개를 서로 연결하고 또 앙장 여섯 개를 서로 연결하되 여섯번째 앙장은 성막의 맨 앞에서 겹치게 할지니라.](8-9). 이미 말씀드린 대로 앙장을 만들어서 첫 번째 만든 앙장 위를 덮습니다. 11이란 숫자를 보십시오. 다섯과 여섯으로 분리했습니다. 다섯은 성경에서 언제나 죽음을 나타내는 수입니다. 우리 주님 역시 다섯 번째 갈비뼈에 창이 찔리셨습니다. 여섯은 인간의 수입니다. 인간은 여섯째 날 지음받았습니다. 인간은 육일간 일해야 됩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한 사람의 수는 666입니다(계13:18). 느부갓네살이 세운 금상을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한 형상을 만들었으니 그 높이는 육십 큐빗이요, 넓이는 육 큐빗이라. 왕이 그것을 바빌론 지방의 두라 평야에 세웠더라.](단3:1)고 했고, 솔로몬이 사람들에게 거두는 세금의 양에서 금의 무게를 보면 [이제 한 해에 솔로몬에게 들어오는 금의 무게가 육백육십육 달란트요,](왕상10:14)라고 말합니다. 하루는 24시간입니다. 이는 6을 네 번 더한 것인데 역시 인간의 수입니다. 우리의 시간은 늘 60초를 1분, 60분을 1시간으로 하며 6시간을 네 번(이는 전체를 나타내는 수)하면 하루가 끝납니다. 우리 주님께서 세상의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을 당한 시각이 언제입니까? 주님이 재판을 받기 위해 빌라도의 법정에 선 시각은 정확히 여섯 시입니다(요19:14). 우리는 이런 숫자의 배열이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님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성경이 바로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당한 수난이 몇 가지인지 아십니까? Passion of Chirst란 영화를 보지 않아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주님이 당한 수난을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기록해 둔 성경을 보십시오. 첫째, 등에 채찍을 맞으셨습니다. [그때에 빌라도가 이런 까닭에 예수님을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요19:1). 둘째, 주먹과 손바닥으로 얼굴을 맞았습니다(마26:67). [이에 그들이 그분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그분을 주먹으로 치고 다른 자들은 손바닥으로 치며](마26:67). [어떤 자들은 그분께 침을 뱉기 시작하며 그분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그분께 이르되, 대언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그분을 치더라.](막14:65). 셋째, 침을 뱉으며 갈대로 머리를 맞으셨습니다(마27:30). [그분께 침을 뱉으며 갈대를 빼앗아 그분의 머리를 치더라.](마27:30). [갈대로 그분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고 무릎을 꿇어 경배하더라.](막15:19). 넷째, 가시나무로 만든 왕관을 머리에 씌워 졌습니다. [그들이 가시나무로 왕관을 엮어 그분의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분의 오른손에 쥐어 주며 그분 앞에서 무릎을 꿇고 그분을 조롱하며 이르되, 만세, 유대인들의 왕이여! 하고](마27:29). 다섯째, 양손과 발에 못을 박히셨습니다. [때가 세 시가 되매 그들이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으니](막15:25). 여섯째, 옆구리를 창으로 찔리셨습니다. [그 군사들 가운데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찌르니 즉시로 거기서 피와 물이 나오더라.](요19:34). 주님은 여섯 가지 수난을 당하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시각 역시 여섯 시간입니다. 주님은 세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아홉시에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이제 여섯 시부터 어둠이 온 땅을 덮어 아홉 시까지 계속되더니 아홉 시쯤에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것은 곧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27:45~46). 10-11절을 보십시오. [너는 연결한 것의 가장 바깥쪽의 앙장 끝단에 고리 쉰 개를 만들고 두번째 것을 연결하는 앙장 끝단에 고리 쉰 개를 만들며 놋으로 걸쇠 쉰 개를 만들고 그 걸쇠들을 그 고리들에 넣어 장막을 함께 연결하여 하나가 되게 하고](10-11). 첫 번째 앙장은 금으로 고리와 걸쇠를 만들었는데(6) 반해 두 번째 앙장은 놋으로 걸쇠를 만들었습니다. 금은 그리스도의 왕권과 신성을 상징합니다. 아마포와 색실로 그룹들을 수놓아 만든 앙장은 주님의 신성을 그대로 상징하기 때문에 금으로 만들었다면 염소 털로 만든 두 번째 앙장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고난을 상징하기 때문에 놋으로 만들었습니다. 놋은 주님의 진노를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때는 어김없이 놋을 예로 드셨습니다. [또한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쇠가 될 것이며](신28:23). [네 신은 쇠와 놋이 될 것이니 네 날들이 어떠함같이 네 힘이 그러하리로다, 하니라.](신33:25). 하늘과 땅이 놋이 된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으로 인해 비가 오지 않고, 열매를 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양들을 죽여서 피를 흘리고 태우는 제단이 놋 제단이란 사실을 볼 수 있는데 제단 위의 제물은 죄와 저주를 대신하는 제물이었습니다. 여기에 주님이 불로 응답하셔서 태우시는데 놋은 주님의 불의 심판을 받는 장소에 사용된 재료입니다. 주님의 저주를 보십시오. [내가 너희 권능의 교만을 꺾고 너희 하늘을 쇠 같게 하며 너희 땅을 놋 같게 하리니](레26:19). 역시 놋이 나옵니다. 광야에서 모세에게 만들게 한 뱀 역시 놋 뱀이었습니다.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 뱀을 쳐다본즉 살더라.](민21:9). 이로써 놋이 가리키는 성경적 의미는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이란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 앙장에 사용된 걸쇠와 고리가 놋이란 점은 그 영적 의미와 정확히 일치를 이루고 있습니다. 12-13절입니다. [그 장막의 앙장들에서 남아 있는 부분 즉 남아 있는 반쪽 앙장은 성막의 뒤에 늘어뜨리고 그 장막 곧 앙장들의 길이에서 남은 부분은 이쪽에서 일 큐빗, 저쪽에서 일 큐빗씩 내어 성막의 양쪽으로 늘어뜨리되 이쪽 저쪽으로 늘어뜨려 성막을 덮게 할지니라.](12-13). 첫 번째 앙장보다 길이가 더 길고, 갯수가 한 장 더 많았기 때문에 덮고도 약간의 여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남은 부분으로 첫 번째 앙장을 완전히 덮도록 하셨습니다. 14절입니다. [또 너는 붉게 물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장막의 덮개를 만들고 오소리 가죽으로 그 위에 덮개를 만들지니라.](14).세번째 앙장은 숫양의 가죽으로 만들었고, 네 번째 앙장은 오소리 가죽으로 만들어서 차례대로 그 위에 덮었습니다. 이로써 성막의 천장은 4장의 앙장으로 평평하지만 두꺼운 지붕이 되었습니다. 붉게 물들인 숫양은 거의 모든 헌물에 사용된 희생물이었습니다. 범법 허물(레6:6), 죄 헌물(레8:2), 화평 헌물(민6:14), 번제 헌물(레8:18-21) 등에 다 사용되었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우리 주님의 보혈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앙장입니다. 숫양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예표입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뿔이 덤불에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자기 뒤에 있으므로 이에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자기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 헌물로 드렸더라.](창22:13). 이삭 대신 주님이 친히 준비하신 양이 바로 숫양입니다. 숫양은 양떼들의 우두머리이며 강함을 나타냅니다. [산들은 숫양들같이 뛰며 작은 산들은 어린양들같이 뛰었도다.](시114:4). [산들아, 너희가 어찌 숫양들같이 뛰었느냐? 작은 산들아, 너희가 어찌 어린양들같이 뛰었느냐?](시114:6). 숫양의 가죽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숫양이 반드시 죽임을 당해야 합니다. 털이 아니라 가죽입니다. 붉게 물들인 것은 피를 상징합니다. 이로써 세 번째 앙장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흘린 피를 통한 구속을 상징하는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두 번째 앙장에서 염소 가죽이 아닌 염소 털로 만든 것과 얼마나 큰 대조를 이루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갈보리 십자가의 희생을 보십시오. 죄인들을 위해 흘린 피가 온 세상의 모든 사람의 죄값으로 지불되었습니다. 네 번째 앙장은 오소리 가죽인데 밖에서 볼 때 곧 바로 보이는 앙장이 이것입니다. 성소 안에서 볼 때는 그룹이 수놓인 첫 번째 앙장이 보이고, 성막 밖에서 볼 때는 오소리 가죽으로 만든 앙장이 맨 겉에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보입니다. 오소리 가죽은 고급 가죽이 아닙니다. 매우 거칠고 투박한 가죽입니다. 이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외모가 매력 있고, 사람들이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음을 나타냅니다. [이는 그가 주 앞에서 연한 초목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같이 자랄 것임이라. 그에게 /고운/ 모양도 없고 우아함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그를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도다.](사53:2). 주님은 결코 꽃 미남이 아니셨습니다. 주님의 모습은 사람들을 끌만한 요소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주님의 가치를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권능도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볼 때 너무나 어리석게 보였을 뿐입니다. [이 지혜는 이 세상 통치자들 중에서 아무도 알지 못하였으니 만일 그들이 그것을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2:8). 불신자들은 예수님의 가치를 결코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겉에서 오소리 가죽으로 만든 성막의 표면만 보기 때문에 그 안에 붉은 가죽으로 된 앙장이나 염소 털로 된 앙장, 그룹이 수놓인 아름다운 앙장을 결코 볼 수 없습니다. [스스로 무명(無名)한 자가 되사 자기 위에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의 모습이 되셨으며](빌2:7). 사람들은 예수님의 겉모습을 아무리 보아도 하나님인 줄 알지 못합니다. 성도들 역시 육신을 따라서 주님을 알아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거룩하시며 영원무궁하신 하나님으로서 예수님을 알아야지 단지 갈릴리의 나사렛 예수를 전부로 안다면 그는 예수님을 전혀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니 참으로 전에는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분을 더 이상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고후5:16). 우리 주님을 아는 방법은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서입니다. 다른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이 시간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풍성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주님을 더욱 알게 하시기를 간구 드립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