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느헤미야 1-13장
요절: 느헤미야 9:38
느헤미야는 구약의 마지막 역사서입니다. 느헤미야의 주된 역사적 내용은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되는 데는 52일이 걸렸습니다. 느헤미야에는 구약 성경에서 유일하게 말씀을 선포하기 위한 강단(설교단)이 등장합니다(느8:4). 느헤미야기 이후에 천사 가브리엘이 침례인 요한의 수태 고지를 하기까지 약 400년 동안 영감받은 성경 기록은 없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남은 자들을 통해 주님이 어떻게 일하시는가? 영적 부흥은 어떻게 이루는가? 성도의 삶의 원칙은 무엇인가? 영적 전쟁은 어떻게 수행하는가? 와 같은 매우 실제적이고도 교훈적인 기사들이 넘쳐나는 책입니다. 느헤미야의 책 이름은 1:1에 따른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포로로 잡혀온 부모에게서 태어난 포로기 2세이지만 믿음이 특출났습니다. 그의 이름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의 위로”란 뜻입니다. 느헤미야는 낯선 이방 땅에서 출세를 거듭해서 왕의 잔을 맡은 자로 발탁되었습니다. 에스라가 고국으로 돌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그들의 영적 필요를 채워 주고 있는 때였습니다. 느헤미야의 사역은 말라기 대언자의 사역과 동시대였습니다. 당시 활동하던 대언자로는 학개, 스가랴, 말라기 등으로 모두 성전 재건과 백성들의 영적 각성과 부흥, 새로운 삶에 대한 기초를 확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단순히 예루살렘 성벽 재건의 역사적 과정뿐만 아니라 어떻게 예루살렘의 성벽이 무너졌고, 떨어진 유대인들의 믿음을 어떻게 회복시키는지, 느헤미야의 지도 아래 원수들을 대적하며 모든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보살핌과 인도하심에 대한 기록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역을 완수하시기 위해서 먼저 사람을 찾으십니다. 1차 귀환 때는 스룹바벨을 통해 5만명의 유대인들을 유대로 귀환하게 하셨고, 예수아와 함께 성전을 건축하도록 했습니다(516 B.C). 2차 귀환 때는 에스라를 통해 적은 무리가 왔지만 백성들의 영적 각성을 이루셨습니다(457 B.C). 이제 하나님은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느헤미야를 보내셨습니다. 느헤미야는 뛰어난 지휘력과 전략가요, 원수들을 두려워 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며,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일에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끝을 맺었습니다. 기도는 그의 삶의 일부였습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계속되는 그의 믿음의 기도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으며, 그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을 하시기에 앞서 사람을 찾으십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준비된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첫째,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거룩히 구별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2:21, [그러므로 사람이 이런 것들로부터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하게 쓰는 그릇 곧 거룩히 구별되어 주인이 쓰기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된 그릇이 되리라.](딤후2:21). 둘째, 하나님의 말씀에 젖어 있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3:16,17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 느헤미야는 이 점에서 하나님께 적합하게 쓰임받을 수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기도 생활을 통해 그가 자신을 깨끗이 하고 구별된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기도는 1:4-11; 2:4; 4:49; 5:19; 6:9,14; 13:14,22, 29,31에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우리는 그의 기도를 통해 그가 말씀에 매우 능숙한 종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느헤미야기를 통해 앞에 놓인 문제들을 극복하고 이기는 지혜와 용기, 믿음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누구나 이와같은 어려움들을 직면하고 있으며, 그런 것들을 이겨야 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제 1장입니다. 때는 아탁세르세스 1세(Artaxerxes I Longimanus 465-424 B.C) 재위 20년에 느헤미야가 왕의 잔을 맡은 자로 근무할 때였습니다. 느헤미야는 늘 예루살렘과 거기 사는 동포들의 소식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우리 신약 성도들은 느헤미야와 같이 하늘의 예루살렘과 본향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고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너무나 참담하였습니다(1-3). 백성들은 고통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또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지고 성문들은 불탔다는 것입니다(3). 그때 그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저는 이곳 교포들이 고국의 어려운 소식을 들을 때마다 성금을 걷고, 모금 운동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매우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입니다. 느헤미야는 이 소식을 접하고 바로 금식과 기도를 했습니다. 4-11절은 느헤미야의 간곡하고도 애통한 기도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 말들을 듣고 앉아서 울고 여러 날 동안 애곡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4). 그의 자세를 보십시오. “앉아서 울고, 애곡하며, 금식하며, 기도하며”(4). 그는 왕궁에서 고위직 공무원으로 평안한 삶이 보장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일신의 평강보다 동족의 아픔을 더 크게 걱정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성도들이 배울 점이 많은 명문의 기도입니다. 먼저 주님을 찬양합니다(5). 그의 기도는 지속적인 기도였습니다. 그는 밤낮으로 기도했습니다(6). 그는 죄를 고백했습니다(6,7).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8,9). 그는 주님께 주님이 이전에 하신 말씀을 기억하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9). 이것이 바로 능력있는 기도,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입니다. 그가 말한 주님의 약속은 신명기 30:1-5입니다1).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특히 자신의 말씀에 특별하게 응답하시고, 약속을 지키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해 믿음의 기도의 원리를 잘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느헤미야는 마지막으로 간청을 드렸습니다(11). 특히 한 가지 구체적인 기도를 했는데 11절에 “이 날 종을 형통하게 하사 이 사람의 눈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11)에서 이 사람은 자신이 섬기고 있던 왕 아탁세르세스를 말합니다. 우리는 2장에서 왕이 그냥 느헤미야에게 호의를 베푼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기도의 응답이요, 하나님의 선한 손길의 역사였습니다. 1장을 정리하면 첫째, 느헤미야는 자신의 백성과 고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우리 성도들이 우리의 본향과 우리의 이웃들에 마땅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둘째, 느헤미야는 필요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관심을 가진 사람만이 남의 필요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해 줄 수 있습니다. 중보 기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이웃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질 때 그들의 필요를 알게 되고, 기도해 줄 수 있습니다. 셋째, 느헤미야는 자신이 그들의 필요를 채워 줄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공직을 사임하더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마음 먹었던 것입니다. 넷째, 그는 백성들의 필요들을 들고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기도는 모든 일에 우선하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기도하기 전에 기도보다 더 크고 위대한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다섯째,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위에 있는 권위자(왕)의 마음을 움직여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많은 성도들은 상관이 허락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는 변명과 핑계를 잘 댑니다. 그러나 이것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위에 군림하는 권위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2장입니다. 느헤미야가 기도한지 4개월이 지났습니다. 기슬르(11-12월)월에 기도한 것이 1장입니다. 2:1은 니산(3-4월)월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2). 흔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성경을 읽다보면 1장에서 기도한 후 바로 다음날이나 몇일 뒤에 느헤미야가 왕 앞에 선 줄로 생각합니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4개월 뒤에 응답되었습니다. 기도한 후 인내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느헤미야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어느날 왕은 느헤미야의 안색을 살폈고, 무슨 연유인지를 물었습니다. 당시 법에 따르면 왕 앞에선 신하는 슬픈 기색을 하거나 나쁜 소식을 전할 수 없었습니다(에4:1-2). 평소대로라면 느헤미야는 죽음을 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 잠언 21:1, [왕의 마음이 [주]의 손 안에 있음이 마치 강물과 같으니 그분께서 친히 원하시는 곳으로 그것을 돌리시느니라.]의 말씀이 성취되는 순간이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이에 왕이 내게 이르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에 내가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하고](4). 그 순간에 느헤미야는 다시 한번 기도했습니다. 지난 4개월 동안 기도했겠지만 그가 기도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순간에 머뭇거리거나 돌려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왕에게 아뢰되, 왕께서 만일 기뻐하시고 종이 왕의 눈앞에서 은총을 입었사오면 나를 유다로, 내 조상들의 돌무덤이 있는 도시로 보내사 그 도시를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5). 왕은 느헤미야를 보내 줄 뿐만 아니라 느헤미야가 요청하는 여러 가지 요구들을 다 들어 주었습니다. 성벽 재건에 필요한 목재, 성벽 재건을 방해하는 강 건너편의 총독들에게 주는 편지등 평소에 기도한 것 이상으로 모든 일이 풀어져 나갔습니다. 느헤미야는 이것을 일컬어,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왕이 내 말을 허락하니라.”(2:8b). 하나님이 일하실 때, 이 일로 인해 근심하고 걱정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10).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돌아와 사흘동안 가만히 있었습니다(11).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밤에 자신의 참모들과 예루살렘 성벽을 시찰했습니다(12-16). 느헤미야는 원수들이 잘 때 깨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12)과 자신의 행적(16)을 철저히 주의하였는데 이는 원수들에게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이렇게 한 이유는 백성들 가운데 원수들과 내통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6:17-19). 17,18절은 성경적인 지도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 주는 위대한 연설입니다. [¶ 그 뒤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하는 곤경은 너희가 보는 바와 같도다.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그 성문들이 불탔으니, 오라, 우리가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여 다시는 수치거리가 되지 말자, 하고 또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내 위에 있었던 하나님의 선한 손과 또 왕이 내게 하신 말씀을 고하였더니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그들이 자기 손을 강하게 하여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니라.](17-18). 느헤미야는 백성들과 자신을 하나로 일치시켰습니다. 그리고 현재 상황을 비관하거나 무턱대고 허황된 공약을 남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사실을 설명해 주고, 지금 해야 할 일과 앞으로의 목표를 제시했습니다(17). 그리고 난 후에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소명과 베푸신 은혜의 역사, 하나님의 선한 손과 왕으로부터 받은 명령을 있는 그대로 백성들에게 전해 주었습니다(18). 느헤미야는 백성들의 손을 움직이기 전에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백성들은 단숨에 일치 단결하여 일어섰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반대자들은 비웃으며 조롱했지만(19) 느헤미야는 한 마디로 일축해 버렸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러므로 그분의 종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몫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념물도 없다, 하였느니라.](20). 2장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을 정리하면 첫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란 점입니다. 하나님은 왕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둘째, 느헤미야는 기도한 후 4개월이 지나 기도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기도에는 반드시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셋째, 믿음이 있다고 해서 주의 깊은 상황 판단, 계획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느헤미야는 왕에게 평소 생각해 두었던 것들을 차례대로 모두 말했고, 예루살렘에 와서도 매우 주의 깊게, 반대자들에게 빌미를 주지 않고, 전격적으로 일을 처리함으로써 원수들의 허를 찔렀습니다. 넷째,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데는 반드시 반대자와 걸림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열어 주신 문으로 밀고 들어가야 합니다.
3장입니다. 느헤미야의 설교에 감화를 받은 유대인들은 성벽 건축을 위해 모두 한 마음으로 일어섰습니다. 3장에는 무려 42개 그룹의 일꾼들이 역할을 분담하여 일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3장에는 느헤미야란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3:16은 다른 느헤미야임). 하나님은 한 사람이 백 가지 일을 하는 것보다 이와같이 백 사람이 한 가지씩 일을 하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먼저 대제사장 엘리아삽과 제사장들이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고 문짝을 달았습니다(1). 모두 한 가지씩 일을 맡았습니다. 3장에 가장 많이 나오는 표현은 '그 다음은'(next unto them)이란 말입니다. 우리는 옆에서 일하는 동료들로부터 자극을 얻고, 위로와 힘을 얻어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1절에서 대제사장이 일어서고, 옆에서 또 일어서고, 옆에서 또 일어서는 이런 일이 바로 동역의 역사요, 부흥의 현장입니다. 그런데 5절을 보십시오. [...그들의 귀족들은 자기들의 주의 일에 협력하지 아니하였으며](5b)라고 말합니다. 모범을 보여야 할 사람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손을 놓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로마서 12:11, [일을 게을리 하지 말고 영이 뜨거운 가운데 {주}를 섬기며], 고린도후서 9:2b, [너희의 열심이 참으로 많은 사람을 분발하게 하였느니라.] 제사장들, 통치자들(12-19), 여자들(12), 기술자들(8,32), 다른 도시에서 온 유대인들(2,5,7)이 모두 동참해서 일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꺼이 자신들이 맡은 부분 외의 일도 했습니다(11,19, 21,24,27,30). 어떤 사람들은 집에서 자기 집 맞은 편을 보수했습니다(10,23,28-30). 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디서부터 일을 시작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열심을 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11,20).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을 짓게 하실 때나, 솔로몬에게 성전을 건축하게 하실 때,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할 때 어느 한 순간에도 기적을 일으켜서 일을 완수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 백성들의 자원하는 손길을 통해서 모든 일을 이루셨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역의 원칙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스스로 힘을 내어 주의 일을 해야 합니다. 백성들은 헌금을 내고, 노동력을 제공하고, 자신들의 모든 것을 드려서 주님을 위해 일했습니다. 주님께서 하늘에서 금을 주시거나, 땅에서 돈을 솟아나게 하시거나, 천사들을 대거 동원해서 성전을 재건하고, 성벽을 쌓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성벽의 문들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양 문(Sheep gate)입니다(1). 이 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말해 주는 문입니다(요10:5). 이 문이 맨 처음 수리되었는데, 이는 희생이 없으면 구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양 문은 자물쇠나 빗장이 없다는 점에 유의하십시오. 구원의 문은 죄인들에게 항상 열려있습니다. 이 문은 특별한 목적으로 거룩히 구별된 유일한 문입니다. 둘째, 물고기 문(Fish gate)입니다(3). 물고기는 우리로 하여금 구령을 생각나게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람들을 낚는 어부로 삼으셨습니다. 마가복음 1: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하여금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셋째, 옛 문(old gate)입니다(6). 사람들은 뭔가 새로운 것을 찾습니다(행17:21).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옛 길을 가라고 하십니다. 오래된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대로 사는 것이 가장 마음을 새롭게 하는 길입니다. 예레미야 6:16,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길들 가운데 서서 보며 옛 행로들 곧 선한 길이 어디 있는지 물어 보고 그 길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들을 위한 안식을 얻으리라, 하였으나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는 그 길로 걷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며], 18:15 [내 백성이 나를 잊어버렸으므로 헛된 것에게 분향하였으며 이러한 것들이 그들로 하여금 옛 길을 떠나 그들의 길에서 걸려 넘어지게 하고 길들 곧 닦지 아니한 길로 다니게 하였느니라.] 넷째, 골짜기 문(Valley gate)입니다(13). 골짜기 문은 하나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인간으로 낮아져 오셔서 사망의 골짜기를 걸으신 우리 주님을 기억하게 하는 문입니다. 우리는 이 문을 좋아하지 않지만 주님은 우리를 이리로 인도하신 후에 넓은 초장으로 인도하십니다(시23). 다섯째, 거름 문(Dung gate)입니다(14). 이 문은 도시의 쓰레기들과 더러운 것들을 버리는 문입니다. 우리는 이 문을 통해 우리의 더러운 죄를 다 내어 버려야 합니다(고후7:1).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면 도시에 사는 것이 불쾌하고, 힘들 듯이 죄를 버리지 못한 사람들은 혼이 괴롭고 힘듭니다. 여섯째, 샘 문(Gate of the Fountain)입니다(15). 샘 문은 성령의 사역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7:37-39, [그 명절의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이 말한 것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이것은 자기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니 이는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아니하셨으므로 /주께서/ 아직 성령님을 주시지 아니하셨음이더라.)] 문의 순서를 주목해 보십시오. 겸손의 골짜기 문, 죄를 버리는 거름 문, 다음에 성령의 충만함을 나타내는 샘 문입니다. 일곱째, 물 문(Water gate)입니다(26). 물 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며, 말씀은 신자들을 씻어 주는 물입니다(엡5:26, 요15:3, 시119:9). 이 문이 일곱 번째 언급된 것은 7이 성경에서 완전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곱 번 단련된 은과 같습니다(시12:6). 하나님의 말씀은 완벽합니다. 이 문은 더 이상 고칠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십시오(‘보수하였고’란 말이 없습니다-26절 참조!!!). 시편119:89, [오 [주]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정착되었사오며] 여덟째, 말 문(Horse gate)입니다(28). 말은 전쟁을 기억나게 합니다. 병거를 끌며, 전쟁에서 두려움을 모릅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군사들이며, 전쟁에 뛰어든 말과 같습니다(딤후2:1-4). 아홉째, 동 문(East gate)입니다(29). 동문은 우리 주님이 재림하실 때 입성하실 문입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동 문으로부터 떠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겔10:16-22). 그러나 후에 성전 동문으로 다시 주의 영광이 돌아 왔습니다(겔43:1-5). 열번째, 밉갓 문(Gate of Miphkad)입니다(31). 이 문은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밉갓이란 히브리어는 “약속, 설명, 검열, 소집”등을 나타내는 어휘입니다. 이는 군대를 제 시간에 소집하여 검열하는 것이나 어떤 모임을 위해 특정한 장소를 말하는 그런 용어입니다. 하나님은 언젠가 모든 혼들을 한 자리에 모아 검열하시고, 조사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심판입니다. 우리는 문들과 그 순서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일생을 볼 수 있습니다. 구원의 양 문으로 시작하여 심판의 밉갓 문으로 끝이 납니다. 3장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정리하면 첫째, 아무도 혼자서 하나님의 모든 일을 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합심해서 하는 것이 몇 사람의 all star player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영웅을 좋아하지만 하나님은 작은 일에 신실하게 충성하는 일꾼을 좋아하십니다. 둘째, 일을 하기로 결정했으면 끝이 날 때까지 부지런히 해야 합니다. 셋째, 일을 하는 사람들 중 누구도 일로 인해 낙담하거나 질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동역의 결과입니다. 넷째, 모든 사람이 만장일치로 참여하고 호응하지는 않습니다. 이 일에도 빠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5). 다섯째, 하나님은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불가능해 보였지만 사실은 실제로 일어나서 시작했을 때 해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해 보기도 전에 불가능해 보인다는 이유로 중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우리 눈에 불가능해 보여도 실제로 순종해보면 다 가능한 일들이란 사실입니다.
4장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대적과 방해가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4-6장까지는 대적들의 방해와 그것을 이겨나가는 영적 전쟁에 관한 기록입니다. 1-6절은 조롱입니다. 7-9절은 물리적 위협입니다. 10절은 유대인들 안에 낙담을 심어 줍니다. 11-12절은 협박에 대한 굴복과 두려움입니다. 이상은 원수 마귀가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할 때 사용하는 전술입니다. 조롱, 물리적 위협, 낙담, 내분 조장, 두려움...이것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역을 완수하지 못하게 하고, 중간에 물러서거나 포기하도록 합니다. 이에 대해 느헤미야는 어떻게 대응했습니까? 첫째, 그들의 기지를 지키도록 했습니다(13). 둘째, 군대를 격려했습니다(14). 셋째, 싸워야 할 명분을 분명하게 기억시켰습니다(14). 넷째, 일하면서 싸울 수 있도록 경계를 세우고, 경계하면서도 계속 일을 해 나갔습니다(15-18). 이는 싸움이 목적이 아니라 일을 완수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때로 사람들은 해야 할 일을 그만두고 싸움에만 골몰하다가 일을 하지 못함으로 마귀에게 당하고 맙니다. 느헤미야는 더욱더 일하는 시간을 늘려 동이틀 때부터 별이 보일 때까지 했습니다(21).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경비를 섰습니다. 옷을 빨 때를 제외하고는 갈아 입지 않았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이 모든 일에 앞장 서고 본을 보인 사람은 바로 느헤미야 자신이었고, 그 다음이 그의 형제들이었고, 다음이 그의 종들이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leadership이며, 목자의 본입니다. 느헤미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성벽을 재건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원수들의 위협과 고된 수고 없이 일을 마무리 할 수 있도록 허락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위험과 눈물과 땀을 흘리며 이루어 나가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현대 기독교의 한탕주의, 무사안일, 은사주의야 말로 얼마나 성경적인 진리와 거리가 먼 것입니까? 원수와 대적, 위험과 방해가 없다면 목자는 필요없습니다. 마귀가 없다면 성령의 인도와 조명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기도 생활에서, 영적 생활에서 대적은 필수 요소입니다. 악한 자의 방해가 점점 커질 때 기도가 전부는 아닙니다. 기도 한 후에 지혜를 얻어 적절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10,11절을 요약하면 “힘의 상실, vision의 상실, 확신의 상실, 신변의 안전에 대한 두려움”의 엄습입니다. 느헤미야는 이들에게 어떻게 힘을 주었습니까? 첫째, 전열을 정비했습니다(13). 일을 잠시 멈추고 성벽 뒤에 높은 곳과 낮은 곳에 사람들을 세우고, 칼과 창과 활을 잡게 했는데, 가족대로 세움으로써 자기 방어 본능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성벽 뒤에 세운 이유는 때로 한 발짝 뒤에서 보면 상황을 더욱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느헤미야는 백성들의 관심을 주님께로 향하도록 했습니다. 현실을 직시한 후에 주님께 눈을 고정시키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셋째, 행동과 사고의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일을 하면서 병기를 잡았습니다. 넷째,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싸우신다(20)는 믿음을 주었습니다. 다섯째, 서로가 서로를 돌보게 했습니다(22). 두려움과 낙심을 이기는 길은 서로 서로를 돌보고, 돕는 것입니다. 5장입니다. 4장이 외부의 적에 관한 내용인데 반해 5장은 내부의 적에 관한 기사입니다. 백성들에게 기근이 닥치고(3), 세금을 내기 위해 땅을 담보로 잡혀야 했습니다(4). 게다가 형제들을 상대로 고리 대금을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7). 백성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습니다. 형제들과 형제들의 경제적 격차가 벌어지고, 어떤 사람들은 가족들이 팔리게 되었고, 어떤 이들은 땅을 다시 무를 능력이 없었습니다. 이기심과 탐욕은 외부의 원수보다 더 큰 문제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경제적 어려움이 아니라 영적인 문제였습니다. 느헤미야는 분노했습니다(6). 이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음으로 오는 내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귀족들과 치리자들을 꾸짖었습니다(7). 형제들에게 이자를 취하는 것은 율법에 어긋나는 일입니다(출22:25). 특히 이교도들에게 형제를 파는 일은 큰 범죄였습니다(레25:42). 이런 이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나쁜 간증을 남기고, 악한 선례가 됩니다(9). 느헤미야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두려워 함으로 걸으라(9). 둘째, 이자 받는 일을 그치라(10). 지금 당장이라도 땅과 포도원, 올리브원과 집, 그들에게 취한 돈, 곡식, 포도즙의 백분의 일을 돌려 주라(11)고 촉구했습니다. 성경적인 권면과 책망을 이들은 모두 받아 들였고, 느헤미야의 말대로 했습니다. 성경적인 원칙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문제를 이기는 지름길입니다(12-13). 느헤미야는 말만 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이 모든 일에 본을 보인 지도자였습니다. 느헤미야 자신 역시 총독으로서 월급도 받지 않고 일했습니다(15-16). 그는 자신이 받는 급여로 인해 백성들의 짐이 더 무거워 지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18). 대신 하나님께 축복을 구했습니다(19). 5장에서 배울 수 있는 몇 가지 교훈은 첫째, 모든 하나님의 일은 희생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입니다. 백성들은 내적, 외적 어려움을 감수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경제적 어려움 가운데서도 성벽 건축이 지속되기를 원하십니다. 시작된 사역은 계속 지속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핑계거리만 생기면 그것을 빌미로 일을 중단하고 싶어합니다. 셋째,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이용해 먹는 부류는 언제나 있습니다. 넷째, 지도자는 본이 되어야 설득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를 직시하고 성경적 원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여섯째, 책망을 받아들이면 바로 잡힐 수 있습니다.
6장입니다. 원수들은 전략을 바꾸어 지도자 느헤미야를 공격했습니다. 4번이나 사람을 보내어 느헤미야를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들은 terror 계획을 세웠습니다(2). 그러나 느헤미야는 일을 멈추고 그들을 만나지 않았습니다(3). 이들은 공개 편지를 보내어 유대인들이 반역을 하고, 느헤미야가 왕이 되고자 한다(5-7)는 소문과 인신 공격을 가했습니다. 사람들은 나에 대해 무엇이라고 하는 것은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은 우리의 해야 할 일입니다. 느헤미야는 이 문제를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9). 험담, 소문, 거짓말은 언제나 주의 사역자들을 둘러싸고 있는 마귀의 불화살입니다. 느헤미야는 그들이 던진 미끼에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2차 공격을 해 왔는데 내부의 적을 이용한 것입니다(10-12). 느헤미야는 영적 분별력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군과 적군을 정확히 구분해 내었습니다. 성벽은 52일만에 완성되었습니다(15). 이 일로 인해 원수들은 크게 낙담했습니다(16). 17-19절은 간첩 활동을 벌인 유다의 귀족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거짓 형제들로 고난을 당한 바울 사도와 같은 예입니다(고후11:26). [자주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내 동포로 인한 위험과 이교도들로 인한 위험과 도시에서의 위험과 광야에서의 위험과 바다에서의 위험과 거짓 형제들 가운데서의 위험을 당하였고](고후11:26). 6장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정리하면 첫째, 원수들의 제안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 타협, 동맹, 굴복 어느 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믿고 묵묵히 주님의 사역을 완수해 나가면 됩니다. 둘째, 원수들이 만드는 험담, 거짓말, 비방에 대해 낙담하거나 싸우지 말라. 하나님께 맡기고, 처리해 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셋째, 거짓 형제들의 호의적인 제안에 넘어 가지 말라. 성경적인 원칙과 선한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같은 형제들의 제안이라도 거절해야 합니다(11). 그 사람이 만약 거짓 형제라면 비방 거리와 험담, 악한 소문을 나게 하며 나로 범죄하게 합니다. 깨어 의를 행하고, 순수하고 선한 양심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면 거짓 형제들의 위험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항상 흠잡힐 것이 없어야 합니다. 친구든 측근이든, 형제에게라도 말입니다. 넷째, 주님의 일이 완수되면 원수들은 낙담합니다.
7장입니다. 느헤미야의 귀환 목적이었던 성벽 건축은 완공되었습니다. 그는 즉시 몇 명의 지도자들을 임명했습니다(1-4). 적절한 사람을 적재적소에 임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교회든 단체든 국가든 인사(人事)는 만사(萬事)입니다. 느헤미야의 인사 기준은 능력, 재력, 학식과 같은 그런 외모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2). 5-69절은 인구 등록 조사입니다. 이는 스룹바벨의 지휘 아래 귀환했던 자들입니다(에2). 이 중에 제사장직에서 해고된 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순수한 계보를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7장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을 요약하면 첫째, 지도자는 적절한 인사를 통해 업무를 분담해야 한다(1,2). 둘째, 인사의 원칙은 신실함과 주를 두려워 함이다(2). 셋째, 지도자는 솔선수범하는 본을 보여야한다(70). 70절에서 다르시다는 느헤미야입니다. 그는 헌금을 내는데도 본을 보였습니다.
8장입니다. 영적 부흥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에스라는 율법 책을 가져다가 새벽부터 정오까지 율법 책을 읽어 주었습니다(2). 물 문(Water gate)은 말씀을 상징하는 문이라고 배웠습니다(3). 온 백성이 율법 책에 귀를 기울였습니다(3). 그들은 일어섰고,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주님께 경배했습니다(6). 이 장면은 오늘날 예배의 순서와 흡사합니다. 말씀을 듣고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 그리고 주님께 경배하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제사장들은 율법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7,8). 들은 말씀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제사장들의 역할이며, 임무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울었습니다(8). 그리고 기뻐했습니다(10). 주를 기뻐하는 것이 힘이란 사실을 알고 힘을 얻었습니다(10). 말씀을 깨달을 때 큰 기쁨이 있고, 친교가 있습니다. 백성들은 말씀을 깨달은 대로, 기록된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장막절을 지켰고 날마다 율법 책을 낭독했습니다(18).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을 책임진 정치적 지도자였지만 성경을 가르치는 일은 에스라에게 맡겼습니다. 이 점은 매우 본받아야 할 점입니다. 그는 주어진 역할과 임무를 분담할 줄 알았습니다. 성벽을 재건하는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진정한 목적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영적 부흥은 백성들이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옵니다. 성경을 읽는 성도들이 많을 때 교회는 부흥됩니다. 말씀의 의미를 생각하고, 배우고, 깨달을 때 영적 기쁨과 힘과 거룩함을 덧입고 해야 할 일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기록된 말씀을 깨달은 대로 행할 때 집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큰 기쁨을 얻습니다(17). 이스라엘의 전민족적인 부흥은 여후수아 이래 처음있는 일이었습니다. 이 일도 거슬러 올라가면 한 사람 느헤미야의 간절한 기도로 출발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느1:11).
9장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막절이 끝난 바로 그달 24일에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겸손), 자신들을 분리하고, 죄를 고백하며, 율법 책을 낭독하고, 주님을 경배했습니다. 이것이 부흥의 결과입니다. 느헤미야 9장은 성경 전체에서 기록된 가장 긴 기도입니다. 백성들의 태도는 성도들의 기도 생활에 대한 훌륭한 본입니다. 첫째, 금식입니다. 금식은 자신의 혼을 징계하는 것입니다. 시편 69:10, [그때에 내가 울며 금식으로 내 혼을 징계하였더니 그것이 /도리어/ 내게 모욕거리가 되었고] 혼을 괴롭게 하고 징계하는 수단으로 금식을 합니다. 단지 몸을 굶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진정한 금식의 의미는 이사야 58:3에 나옵니다. 금식은 혼을 낮추는 것입니다. 시편 35:13, [나로 말하건대 그들이 병들었을 때에 굵은 베로 내 옷을 삼고 금식하며 내 혼을 낮추었더니 내 기도가 바로 내 품에 돌아왔도다.](시35:13). 굵은 베옷을 입는 것은 겸손의 표시입니다(왕상20:31,32, 욥16:15, 요엘1:8). 겸손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뿐만 아니라 더 많이 받는 길입니다. 야고보서 4:6,[그러나 그분께서 더 많은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되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신다, 하시느니라.](약4:6). 분리입니다. 세상과 죄로부터 분리는 거룩함에 이르는 첫 걸음입니다(에9:2,고후6:14,17). 고백은 죄의 용서를 받는 방법입니다(요일 1:7,9). 시편 32:5, [내가 이르기를, 내 범죄들을 [주]께 고백하리이다, 하고 주께 내 죄를 시인하며 내 불법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주께서 내 죄의 불법을 용서하셨나이다. 셀라.] 성경을 읽는 것은 믿음을 얻고 더 강화시키는 지름길입니다(요5:39). 경배는 성도의 가장 본질적인 의무이며, 특권입니다(출20:3, 계19:19, 골2:18, 계19:10). 역사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배운 하나님은 첫째, 주님은 마음이 주 앞에 신실한 사람을 복주시는 분이란 사실입니다(8). [그의 마음이 주 앞에 신실함을 보시고 그와 더불어 언약을 맺으사...이제 그 말씀들을 이루셨사오니 이는 주께서 의로우심이로소이다.](8). 둘째, 하나님은 필요하다면 굶주린 자에게 기적적으로 먹여 주십니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15). 40년을 먹이시고 입히셨습니다. 농사를 짓지 않고 나무 열매도 열리지 않는 사막에서 40년을 여행만 하며 산 민족이 지구 역사상 누가 있습니까? 주님은 하늘에서 양식을 내어 주시고 바위에서 물을 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우리가 무엇을 입을까? 하지말라. (이 모든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한 줄 아시느니라. 오직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1,32). 셋째, 하나님은 항상 용서해 주시는 용서의 하나님이십니다(17).16,17절을 읽을 것. [오직 주는 항상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진노하기를 더디하시며 큰 친절을 베푸시므로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17). 넷째, 주님은 은혜와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31). 끊임없는 반역과 범죄의 반복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31절을 보십시오. [주의 긍휼이 크시므로 그들을 진멸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도 아니하셨사오니 이는 주께서 은혜로우시고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니이다.](31). 백성들은 더 깊은 헌신의 단계로 나아갔습니다. 그들은 역사의 교훈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38).
9장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첫째, 우리는 지나간 역사를 통해 교훈을 배워야 한다는 점입니다. 둘째, 개인이든 국가든 하나님의 뜻과 일치할 때 복을 누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마찬가지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역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시며, 믿는 자들을 향해 선한 손길을 베푸시는 분이란 사실입니다. 과거에 그러했듯이 지금도 앞으로도 주님은 적극적으로 역사를 이끌어 나가십니다.
10장을 보십시오. 1-27절은 언약을 맺은 사람들의 명단입니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인을 치고 몇 가지를 굳게 결의했습니다. 첫째, 성경을 최종 권위로 삼고 복종하겠다(29). 그들은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율법 안에서 걷고 철저히 지킬 것을 결단했습니다. 특히 이방인과 결혼하지 않을 것을 굳게 결의했습니다. 둘째, 그들은 예배를 철저히 드리고자 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고, 안식년을 준수하며, 하나님의 집에 필요한 경비를 채우는 헌금, 헌물, 십일조 등을 철저히 할 것을 결단했습니다. 36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율법에 기록된 대로" 물질을 바쳐 제사장들에게 주고, 하나님의 집을 버리지 아니하리라(39) 맹세했습니다(29). 이들의 이 맹세는 손해가 나더라도 지키는 것이 유익이며, 덕입니다. 전도서 5:4,5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미루지 말라. 이는 그분께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니 네가 서원한 것을 갚을지어다. 네가 서원하고 갚지 않는 것보다 서원하지 않는 것이 더 나으니라.](전5:4,5). 10장에서 배울 수 있는 몇 가지 교훈을 정리하면 첫째, 맹세나 서원을 하기 전에 깊이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둘째, 문서로 확실한 언약을 세우는 것은 마음의 결단보다 더 깊이 각인됩니다. 흐릿한 잉크도 뚜렷한 기억보다 더 오래갑니다. 셋째,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구별되는 특징들을 잘 간직하십시오.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기독교인의 삶을 구별지어주는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잘 행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11장입니다. 느헤미야는 백성들의 거주지를 정해 주었습니다. 치리자들과 제비 뽑아 1/10은 예루살렘에 거하게 하였고 9/10는 다른 도시들에 거하게 했습니다. 백성들은 느헤미야의 말대로 잘 따라 주었습니다. 행정 제도를 개편하고, 나라의 기틀을 세우는 일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통치자들을 세우고, 주거지를 정해 주는 일을 잡음(雜音)없이 하는 것은 성벽을 세우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순조롭게 모든 일은 진행되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성벽을 짓는데 수고한 사람이며, 함께 영적 부흥을 체험한 사람들이며, 하나님 앞에 결단한 사람들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11장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요약하면 첫째, 각자의 은사와 사역은 비록 유명하게 만들어 주지 않을지라도 가치있는 것이다. 둘째, 사랑으로 행한 모든 수고는 하나님이 기억하시며, 갚아 주신다(갈6:7-9). 셋째, 우리가 받을 마지막 상급은 신실함에 다라 결정나는 것이지 사람들로부터 받은 갈채로 정해지지 않는다.
12장입니다. 1-9절은 스룹바벨과 함께 올라간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입니다. 10-21절은 제사장들의 후손들입니다. 22-26절은 레위 사람들의 우두머리들의 명단입니다. 27-43절은 예루살렘 성벽 봉헌입니다. 44-47절은 성전 규례의 회복입니다.
13장입니다. 성벽 봉헌식에 이들은 모세의 율법 책을 낭독함으로 암몬 족속과 모압 족속 간에 하나님이 주신 명령을 알게 되었습니다(1-3, 신23:3-5,민22:5,6). 그래서, 그들은 즉시 섞여 사는 모든 무리들을 이스라엘에서 분리시켰습니다(3). 그러나 4절을 보십시오. 이 일이 있기 전에 제사장 엘리아십이 도비아를 가까이 하며 친구로 지내고 있었습니다(4).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저주로 맹세하고 하나님 앞에 결단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벌써 잊어 먹고 있습니다. 엘리아십은 도비야를 위하여 성전에 있는 방을 하나 내 주었습니다. 도비아는 이스라엘의 원수이며, 성전 건축을 방해하던 자며, 암몬 족속입니다(2:19). 때려 죽여도 시원찮을 자와 함께 지내는 것은 타락이요, 배교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메지 말아야합니다(고후6:14). 악한 사귐은 선한 행실을 부패(고전15:33) 시킵니다. 느헤미야는 다시 아닥사스다 왕에게 돌아 간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13:6). 휴가를 얻어 다시 예루살렘에 왔을 때 그 악한 사실을 알고(7), 심히 근심했습니다(8). 그가 한 행동을 보십시오(8,9절 참조).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 상인들에게 분노하신 것을 연상시킵니다(요2:14-16). 11,15,17절의 느헤미야는 의로운 분노로 가득찬 모습입니다. 악에 대한 증오, 죄에 대한 미움이 없다면 그는 의와 거룩함에 대해 말할 수 없습니다. 느헤미야가 없는 사이 십일조와 헌물을 내고, 하나님의 집을 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사람들이 모두 자기들의 맹세를 저버리고, 제대로 헌금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레위인들은 먹고 살기 위해 성전에서 도망쳐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10-11). 느헤미야는 그들의 죄를 꾸짖고, 모두 헌물과 십일조를 바치게 했습니다. 성전에 신실한 사람들을 세워 성전 재정을 담당하게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일을 하나님 앞에 기도했으며, 장차 보상을 주실 것을 구했습니다(14). 15-22절은 안식일을 어기는 몇몇 유대인들에 관한 기사입니다. 10:31에서 그들은 철저히 안식일을 준수할 것을 인을 치며 저주로 맹세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들은 언약을 모두 파괴하고 말았습니다. 느헤미야는 안식일 전에 아예 성문을 닫아 버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키게 했습니다. 22절에서 그는 이 일로 하나님께 보상을 구했습니다. 23-31절은 다시 이방인들과 결혼하는 유대인들의 범죄에 관한 기록입니다. 백성들 뿐만 아니라 제사장들과 그 가족들이 이런 죄에 동참하고 있었습니다(23,28-29). 이방인과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유대 말도 할 줄 몰랐습니다(24). 느헤미야는 그들을 꾸짖고, 저주하며 몇 사람을 때리고, 머리털을 뽑으며, 주께 이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시켰습니다(25). 그는 솔로몬이 왜 범죄하고 타락했는지를 생생하게 증거했습니다. 백성들 가운데 있는 죄악들을 차례대로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31절, [내가 이와 같이 그들을 모든 타국인에게서 떠나게 하여 깨끗하게 하고 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직무를 정해 주어 각각 자기 일을 맡게 하고 또 정한 때에 나무 헌물과 첫 열매를 드리게 하였사오니, 오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31). 느헤미야는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끝을 맺습니다. 13장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정리하면 첫째, 죄와 악을 철저히 미워하고 증오하라. 둘째, 죄악을 철저하게 다루어라. 셋째, 책망과 바로잡음으로 완전히 고쳐 놓으라. 넷째, 기도로 맺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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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네 앞에 둔 이 모든 것 즉 복과 저주가 네게 임하므로 네가 [주] 네 하나님께서 쫓아내신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이것들을 생각하고 너와 네 자손들이 [주] 네 하나님께로 돌아와 내가 이 날 네게 명령한 모든 것에 따라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여 그분의 음성에 순종하면 [주] 네 하나님께서 너의 포로 된 것을 돌이키시고 너를 불쌍히 여기사 [주] 네 하나님께서 너를 흩으신 그 모든 민족들로부터 너를 모아 되돌아가게 하실 것이요, 네게 속한 자 가운데 누가 하늘 맨 끝에 있을지라도 [주] 네 하나님께서 거기서 너를 모으시고 거기서 너를 데려오시리라. [주] 네 하나님께서 네 조상들이 소유했던 땅으로 너를 돌아오게 하시리니 네가 그 땅을 소유할 것이며 또 그분께서 네게 선을 행하사 네 조상보다 너를 더 번성하게 하실 것이며(신30:1-5)
2) 유대인 달력의 주기: 티쉬리(9-10월), 헤쉬반(10-11월), 키슬렙(11-12월), 테벳(12-1월), 쉐밭(1-2월), 아달(2-3월), 니산(3-4월), 이얄(4-5 월), 시반(5-6월), 탐무즈(6-7월), 압(7-8월), 엘룰 (8-9월).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