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타락상
- 사나움, 부정직 |
사람의 타락상에 대해 바르게 조명해 주는 유일한 성경(ii)-사나움, 부정직
지난 시간에 이어 마지막 시대의 사람의 타락상에 대해서 좀 더 공부하겠습니다.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진화, 발전한다는 인간의
견해와는 달리 성경은 점점 더 타락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거룩함에서 점점 멀어져 부정함에 이른다는 사실을 지난 시간에 배웠습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3:3에서 사람들이 사나와진다고 합니다. 사나움 역시 인간의 본성이라기 보다는 짐승의 본성에 가깝습니다. 인간은 발전과 진보가
아닌 하향과 퇴보를 거듭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세계 곳곳에서 행해지는 전쟁과 살육을 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서 도덕성과 양심을 볼 수 있습니까? 그들의 눈에서 하나님의 형상이나 신성의 불꽃을 찾을 수 있습니까? 절대 없습니다. 이런 인간의
광기와 사나움에 대해서 킹제임스 성경은 바른 조명을 주고 있는 반면, 현대 역본들은 오히려 그 광기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44과 마가복음 11:26을 보겠습니다. "Mt 5:44 But I say unto you, Love your enemies,
bless them that curse you, do good to them that hate you, and pray for them
which despitefully use you, and persecute you;"(KJV). 킹제임스 성경은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라. /잘해 주라/고 명령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약의 가르침이며, 죄인을 향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이며,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고 말씀하시고 몸소 본을 보이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들이 우리 성도들의 마음 가운데 새겨질 때, 우리에게는
짐승의 본능, 육신의 본성대로 살지 않고 신의 본성에 동참한 자로서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 역본들은 이 구절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개역, 마5:44).
주님께서 구체적으로 명령하신 행동 수칙 3가지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이 구절은 누가 원수이고, 누가 누구를 사랑해야 하는지도
불분명하게 만들었습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믿는 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다 삭제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도 다 가려져 버렸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저주를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축복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그러나, 선으로 대해 줍니다. 이것이 단지 저와 여러분에게 상관없는 산상 수훈에 불과합니까? 아닙니다.
바울 사도 또한 동일한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실 것을 줄지니 이는 그리함으로 네가
그의 머리 위에 숯불을 쌓을 것임이라. 악에게 지지 말고 도리어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0,21).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악하게 이용합니다. 그들은 교인이라는 것을 알고나서 은근히 호의를 요구하거나, 돈을 요구하거나, 혜택을 요구합니다. 자기들도 동일한 믿음을
가진 것처럼 다가와서 사기를 치거나 이용해 먹기도 합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당하는 필연적인 현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이 성품에 참여한 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런 구절들을 다 빼 버린 채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의 죄악상을 스스로 은폐해 주는 역할밖에 할 수 없습니다.
Mr 11:26을 보겠습니다. "But if ye do not forgive, neither will your Father which
is in heaven forgive your trespasses." 이 구절은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용서해 주어야 함을 보여 주는
주님의 귀한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해야 할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용서입니다. 용서는 하나님께 은혜입은 자만이 할 수 있는 사랑의
행위요, 믿음의 행위입니다. 그러나, 현대 역본들은 이 말씀을 삭제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용서의 사랑을 모릅니다.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은 용서받은 가치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의 머리에는 교조적이고, 이론적인
용서의 사랑이 자리 잡혀 있고, 그의 입에는 달변이 쏟아질 수 있어도 정작 그 마음 한 가운데는 아무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술 한잔으로 화해하고 용서하고 다 해결될 문제를 정작 그리스도인들은 마음 가운데 품고 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어떻게
용서해야 하는가?를 배웠습니다. "서로 친절히 대하며 상냥한 마음을 품으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인하여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하라."(엡4:32).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죄를 어떻게 용서하셨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용서 받으셨습니까?
마지막 시대의 인간들이 타락상은 용서할 줄 모르는 마음입니다. 부부 지간에도, 형제 지간에도, 부자지간에도, 사제지간에도, 동료간에도 용서는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형제들끼리도 피터지게 싸우고 평생을 안 볼 것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용서하지 않는 마음이 갖게
될 결과에 대해서 무지합니다. 용서하는 마음을 닫으면 그 순간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이는 변개될 수 없고, 삭제될
수 없는 성경의 진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나와 하나님과의 교제는 단절되며, 기도는 공허한 메아리로 되돌아
올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온전한 성경을 통해 이 진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시간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3:14절을 보십시오. "Lu 3:14 And the soldiers likewise demanded of him,
saying, And what shall we do? And he said unto them, Do violence to no man,
neither accuse any falsely; and be content with your wages." 침례인 요한은 "어떤
사람에게도 폭력을 행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사회가 민주화되고, 의식 수준이 높아지고, 시민들의 교양이 함양되어 이제는 더 이상
폭력이 없는 시대라고 말할 수 있는 나라는 지상에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점점 군인들을 더 무장시키며, 조폭들은 더 활개를 칩니다. 우리는
정말 생각하기 어려운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상적인 사회를 향한 사람들의 생각은 한낱 꿈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을 공동 번역으로
읽어보면, "군인들도 "저희는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요한은 "협박하거나 속임수를
써서 남의 물건을 착취하지 말고 자기가 받는 봉급으로 만족하여라" 하고 일러 주었다."(공동번역, 눅3:14). 새 역본들은
"돈을 강탈하지 말라"고 의역을 하여 본래의 의미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음행, 폭력, 술취함은 마치
세 쌍둥이 마냥 붙어 다니는 죄목입니다. 계시록 17:2,5,6을 보면 음행, 술, 폭력의 상관 관계를 볼 수 있습니다. " Re
17:2 With whom the kings of the earth have committed fornication, and the inhabitants
of the earth have been made drunk with the wine of her fornication. Re 17:5
And upon her forehead was a name written, MYSTERY, BABYLON THE GREAT, THE MOTHER
OF HARLOTS AND ABOMINATIONS OF THE EARTH. 6 And I saw the woman drunken with
the blood of the saints, and with the blood of the martyrs of Jesus: and when
I saw her, I wondered with great admiration." 이 구절을 읽는 독자들은 누구라도 대환란 시대의
왕들이 음행과 술과 여자에 미친 광포하고 사나운 왕들이란 인상이 마음 가운데 느껴질 것입니다. 성경의 정확한 어휘와 문장은 성경 독자들에게
진리에 대한 올바른 조명을 마음 가운데 비춰주지만 빠지고, 더해지고, 변질된 역본들의 본문은 성경 독자들의 마음을 어두움 가운데 몰아 넣어
버립니다. 이것은 작은 차이 같지만 그 차이는 나라와 나라를 가르는 대양보다 더 넓고 깊은 간격입니다. 술 취함에 반대되는 어휘는 "깨어
있는 맑은 정신"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sobriety란 단어를 사용하여 이 뜻을 분명하게 전해 줍니다. 이것이 세상의 타락하고,
더러운 시대 풍조와 물결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대 역본들에서는 이 단어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이유는 이 단어가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중요한 어휘이기 때문입니다. 라틴어로 어원을 분석하면, sobriety= so(apart) +briety(drunkeness)란
뜻입니다. 그래서, 동일한 의미의 다른 단어로 대체하면 이 의미가 사라져 버립니다. 몇 가지 예를 보겠습니다. 1Ti 2:9 ¶ In like
manner also, that women adorn themselves in modest apparel, with shamefacedness
and sobriety; not with broided hair, or gold, or pearls, or costly array; =>오늘날
여자들이 술을 먹는 것이 보편화되었습니다. 현대 역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켜 맥주, 포도주, 와인을 마시는 것이 전혀 문제되지 않도록
해 주었습니다. 음행은 정신이 깨어 있는 사람과 술 취한 사람과 누가 더 쉽게 저지르는 범죄입니까? 폭력은 술 취한 사람과 정신이 멀쩡한
사람 가운데 누가 더 쉽게 저지르는 범죄입니까? 음행과 폭력은 술 취함과 함께 시작됩니다. 딤전2:15 참조. Tit 1:8 But a
lover of hospitality, a lover of good men, sober, just, holy, temperate; 목자는
술을 마셔서는 안됩니다. 현재 술을 마시면서 "사제"라고 떠벌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술을 마시고 싶은 사제들과 목사들은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는 대신 sensible이라고 번역된 성경을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딤전 3:2 참조. 이로써 이제 술을 조금 마시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며 성경에서도 술 마시지 말라는 말은 없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뜯어고친 성경을
가지고 그렇게 주장할 수도 있겠습니다. 포도즙과 포도주를 구분하지 못하고, 마시는 것(drunk)과 취하는 것(drunken)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기 위해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술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딛2:2 -연로한
남자들. 1991년 한 조사에 따르면 고등학생의 50% 이상이 정기적으로 술을 마신다고 합니다. 청소년 음주 문화는 이제 규제의 범위를
넘어섰다는 진단입니다. 우리는 다음 시간에 "술에 대해서 바른 조명을 주는 성경"이란 제목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 깊이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디모데후서 4:2, 데살로니가후서2:10을 보십시오. " 1Ti 4:2 Speaking lies in hypocrisy; having
their conscience seared with a hot iron;" 마지막 시대의 인간의 타락상 가운데 하나는 거짓말입니다.
이들은 믿음에서 떠나 거짓을 말합니다. 지금 조국 대한민국에는 "예수란 없다"(오강남 저, 현암사)란 책을 써서 화제가
된 주인공이 있습니다. 그는 위선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교회 가운데 이런 위선자들이 하는 거짓말에 휘둘리는 양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강단은 어느덧 마귀의 일군들이 다 차지해 버렸고, 참다운 하나님의 말씀대신 거짓 성경으로 정치 구호인지, 선동인지 모를 설교를
하는 현실을 보고, 듣고 있습니다. 2Th 2:10 And with all deceivableness of unrighteousness
in them that perish; because they received not the love of the truth, that they
might be saved. 저명한 기독교 상담 심리학자가 말하기를, 사람들은 하루에 평균 100번의 거짓말을 한다고 말합니다(Gail
Riplinger, New Age Bible Versions, p.174.). 문선명은 말하기를, "만약 네가 한 거짓말이 어떤
사람을 그전보다 더 낫게 만들고자 한 것이라면 그것은 죄가 아니다. ...하나님도 매우 자주 거짓말을 하신다."(Moon, Heavenly
Deception). 우리는 지금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진리인지 묻기를 포기한 그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실로 하나님은 참되시나 사람은 모두 다 거짓말쟁이라."(롬3:4)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거짓말하시지
않으십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단 한 글자도 거짓이나 오류가 없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신약 성경에서만 10번 이상(제가 세 본 바로는 12회)
정직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그러나, NIV를 비롯한 현대 역본들은 단 한번만 정직이란 말이 나옵니다(눅20:20에서). 사정이 이렇다면
킹제임스 성경을 읽고, 믿는 신자들이 현대 역본을 읽고 믿는 신자들 보다 정직한 그리스도인들을 더 많이 양육해 내지 않겠습니까? 로마서
13:9을 보십시오. "Ro 13:9 For this, Thou shalt not commit adultery, Thou shalt
not kill, Thou shalt not steal, Thou shalt not bear false witness, Thou shalt
not covet; and if there be any other commandment, it is briefly comprehended
in this saying, namely, Thou shalt love thy neighbour as thyself." 새 역본들에는
이 부분이 없습니다. 위증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개역 성경을 펴서 이 부분을 읽으면,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삭제),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찌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롬13:9).
정직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위증을 하거나, 증언을 거부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하듯이, 자신에게 피해가 올까봐
거짓 증언해서도 안됩니다. 정직은 모든 일에서 최상의 정책이며, 하나님 앞에서 가장 중요한 성품 중의 하나입니다. 아주 사소한 일에 임시적으로
어색함과 난처함을 모면하기 위해 너무 쉽게 거짓말을 내뱉는 자연스러움을 하루에도 몇 차례씩 겪어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후 우리는
양심이 깨끗해지고, 성경을 읽음으로써 영이 정결해짐으로써 우리는 거짓말을 할 때마다 가책을 느끼게 됩니다. 바른 하나님의 말씀만이 인간의
가속적인 타락에서 우리를 막아 주는 든든한 방패인 것입니다.
- 정직한 마음에서만 말씀이 열매를 맺습니다. Lu 8:15 But that on the good ground are they, which
in an honest and good heart, having heard the word, keep it, and bring forth
fruit with patience.
- 정직하다는 평판(보고)를 받아야 교회의 사역을 맡을 수 있습니다. 특히 교회의 집사는 정직한 사람이어야 하며, 사람들로부터 그런 평을
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Ac 6:3 Wherefore, brethren, look ye out among you seven men of
honest report, full of the Holy Ghost and wisdom, whom we may appoint over this
business.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정직하다는 평판을 듣는-삭제>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개역). 오늘날 개신 교회에서 아무나 집사의 자격을 주는 것은 개역 성경에 이 부분이
삭제되었기에 가능할 것입니다.
- 정직하게 행하자. 이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철칙입니다. Ro 13:13 Let us walk honestly, as in the day;
not in rioting and drunkenness, not in chambering and wantonness, not in strife
and envying.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정직이란 말이 왜 이리도 자주 빠지는 것입니까? 이는 그들이 부정직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정직이란 단어를 보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어찌
정직이란 품성이 마음 가운데 심겨질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 모두 정직하게 걸읍시다.
- 감추어진 정직한 일들을 버리라. 2Co 4:2 But have renounced the hidden things of dishonesty,
not walking in craftiness, nor handling the word of God deceitfully; but by
manifestation of the truth commending ourselves to every man's conscience in
the sight of God.
- 주님 앞에서 뿐만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도 정직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8:21, 데살로니가전서 4:12을 보겠습니다. 2Co 8:21
Providing for honest things, not only in the sight of the Lord, but also in
the sight of men.(KJV).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개역).
1Th 4:12 That ye may walk honestly toward them that are without, and that ye
may have lack of nothing. 그리스도인의 대인 관계입니다. 원칙은 정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하며, 같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정직해야 하며, 외인들을 향해서 정직해야 합니다. 개역 성경을 비롯한 현대 역본들은 정직이란 말이 없습니다. "이는
외인을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개역 성경).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과 형제들과 외인들
즉, 모든 사람들을 상대로 정직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정직이란 말이 없는 성경은 성경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 2Co 13:7 ¶ Now I pray to God that ye do no evil; not that we should appear
approved, but that ye should do that which is honest, though we be as reprobates.
이 부분에도 "정직하게"란 말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하노니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는 버리운 자 같을찌라도 너희로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개역,고후13:7).
- Php 4:8 Finally, brethren, whatsoever things are true, whatsoever things
are honest, whatsoever things are just, whatsoever things are pure, whatsoever
things are lovely, whatsoever things are of good report; if there be any virtue,
and if there be any praise, think on these things. 개역 성경은 무엇에든지 "정결하며"라고
말함으로써 다시 한번 정직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정직의 범위가 "무엇이나"라고 말하는 것을 봅니다. 매사에,
모든 일에,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정직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정직함이 없는 성경은 언제나 부정직한 사람들을 양산해
낼 뿐, 어떤 선한 것에도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 Heb 13:18 ¶ Pray for us: for we trust we have a good conscience, in all things
willing to live honestly." "모든 일에 기꺼이 정직하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이것이 결여되어 있다면 위선적인 삶, 가식적인 삶 밖에 살 수 없습니다. 누가 말하기를,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보면 광신자라고 욕하며,
성경대로 살지 않으면 위선자라고 욕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광신자이든 위선자이든 둘 중의 하나로 판단받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 교회를
주도한 많은 목사님들은 지난 반세기동안 주로 이런 설교를 했습니다. "잘 살아 보세". 설교의 핵심은 모두 이 한 마디로
요약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바르게 살아보세", "정직하게 살아 보세"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현대
역본들은 잘 살아 보자!는 논지를 펼치고 있는 반면 킹제임스 성경은 선한 양심으로 정직하게 살라고 말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개역)
- 1Pe 2:12 Having your conversation honest among the Gentiles: that, whereas
they speak against you as evildoers, they may by your good works, which they
shall behold, glorify God in the day of visitation. (이방인들 가운데 너희 행실을 정직하게 하라.)-KJV.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마지막 시대의 사람들은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는 거짓의 영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매사에 정직함으로 행하시기를 빕니다. 우리는 킹제임스 성경을 손에 잡고 있습니다. 그것이 저와 여러분의 마음 속에도 깊이 뿌리 내려 온갖
의의 열매를 가득 맺을 수 있기를 빕니다.
틀린 성경, 거짓의 아비 아래에서 일하는 사탄의 일꾼들의 손길이 스쳐 지나간 성경을 들고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아무 것도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점점 더 악함으로 나아갈 뿐이며, 사나움과 음행과 술취함에 자신을 내어 주며, 거짓말하는 사람들에 불과할
뿐입니다. 종교의 탈을 쓰고 자신들을 가리고 있지만 모든 일에 위선과 가식으로 행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에서 본 대로 모든 일에 정직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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