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타락상
- 거룩하지 않음 |
사람의 타락상에 대해 바르게 조명해 주는 유일한 성경(거룩하지 않음)
성경은 사람에 대해서 바른 조명과 계시를 주는 유일한 책입니다. 이는 사람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기원에 대해서
성경적 계시와 조명을 배격하고 인간이 스스로 실존에 대해 탐구했을 때 그들이 찾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종교와 철학의 종결점은
허무주의입니다. 산업 사회의 도래와 과학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찾아 온 진화론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종교가 되었지만 그들이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에 대해서 바르게 알고 싶다면 그는 성경으로 돌아 가야하며, 성경의 계시들을 공부해야 합니다.
철학과 종교는 사람이 본래 착하며, 선하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은 악하다고 말합니다. 철학과 종교는 사람이 점진적으로 진화하며,
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성경은 인간이 점점 타락하며, 결국은 벌레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지막 시대에 인간의 타락상을
부추기는 성경들이 출간되고 있습니다. 시중에 많은 종류의 성경이 나와 있지만 그 중에 하나님의 순수하고 보존된 말씀은 우리가 들고 있는
킹제임스 성경 밖에 없습니다. NIV와 NASB를 필두로 하는 현대 역본들은 인간을 존중하고, 인간의 타락상을 교묘하게 은폐하는 대신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심어 주려 애씁니다. 대신 거룩하신 하나님,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들, 거룩한 교회, 거룩한 말씀, 거룩한 천사들과
같이 거룩이 들어가야 할 대상에는 거룩이란 단어를 빼 버렸습니다.
뉴에이지와 현대역본들이란 책을 쓴 게일 립링거 자매는 “당신이 가진 성경은 거룩한 성경인가?”란 질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성경은 거룩한 성경입니까?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고 바른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할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9:21에는 마지막 시대의 인간들의 타락상에 대해서 이렇게 갈파합니다. "또한 자기들이 행한 살인과 마술과 음행과 도둑질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명명백백한 죄 앞에서 회개를 모르는 시대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시대입니다. 이는 세상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교회도 회개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죄에서 돌이킴이 없는 시대,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이 없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간 잠깐 회개하라는 주님의 몇 마디 음성을 찾아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2:5, 16,21,22; 3:3, 3:19. 주님은 교회들이
무엇을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지를 지적해 주셨습니다. 다음은 요한계시록 9:20,21, 16:9,11입니다. 이 말씀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재앙 가운데서 징벌을 받으면서도 회개하지 않는 인간의 완악함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 우리 시대에 가장 만연하고 보편적인 죄는
음행입니다. 문제는 이것을 회개하기 보다 점점 합리화 해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동성 연애가 합법화되고, 근친상간, 음행과 간음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빌리그래함 목사는 전에 이런 설교를 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 미국을 심판하시지 않는다면, 소돔과
고모라의 시민들이 억울하다고 원통해 할 것이다.”
킹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현대 역본들은 음행이란 단어를 대부분 부도덕(immorality)란 단어로 대체해 버렸습니다. 아예 음행이란 단어를
삭제해 버린 곳도 많이 있습니다. 음행(fornication)이란 단어는 결혼하지 않는 사람이 행하는 불법적 성 관계란 뜻입니다. 반면
간음(Adultery)란 결혼한 사람 편에서의 불법적 성적 관계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두 단어는 현대 역본에서 계속 사라지고 있습니다.
로마서 1:29에는 음행이란 단어를 삭제 해 버렸습니다. 갈라디아서 5:19에는 간음과 음행, 부정과 색욕이 나옵니다. "이제
육신의 행위들은 명백하니 곧 간음과 음행과 부정함과 색욕(色慾)과" 이 부분을 개역 성경으로 읽어보면 "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라고 말합니다. NASB에는 이 부분에서 간음과 음행을 합쳐 간단히 “부도덕”이라고 처리해
버렸습니다. 도덕은 계속해서 변합니다. 도덕은 인간과 사회 관습이 기준입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도덕은 성경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부도덕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쌍방간에 충분한 합의와 완전한 이해 없이 행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1990년에 도날드 P. 오르(Donal
P. Orr) 박사가 행한 조사에 따르면 12-14세의 677명의 중학생 가운데 555명이 음행에 연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복음주의
교육을 받았다는 학생들조차 간음과 음행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8개 교단의 1438명의 10대 청소년들을 상대로
조사해 본 결과 반 이상이 음행의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음행이란 명백한 단어를 제거한 성경이 미치는 효과는 곧 바로 성도들의 타락과 교회의
세속화를 부추깁니다. 오늘날 “이혼”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합법적 간음, 음행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교회를 불경건과 부도덕으로 물들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정녕 죄라는 사실을 모른단 말입니까? 회개를 모르는 교회와 성도들로 인해 이제 기독교는 더 이상 거룩하고 경건한 종교가
아니라 세속적이고, 타락한 종교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2을 보겠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탐욕을 부리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며 부모에게 불순종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대로 잡아다가 고소하고 정죄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린 사람들이
그분의 말씀을 마음대로 요리하지 않을 리 없습니다. 거룩한 성경에서 거룩을 제거함으로써 그들은 점점 더 악해지고, 불경건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2:64, 68을 보겠습니다. "그분의 눈을 가리고 얼굴을 때리며 물어 이르되, 대언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고"(KJV)- "그의 눈을 가리우고 물어 가로되 선지자 노릇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고"(개역, NIV).
예수님의 얼굴을 때린 인간들이 얼굴을 때린 사실을 슬쩍 빼버린 것은 마치 거짓 조서를 꾸미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때린
그 손이 하나님의 말씀을 때리고는 시치미를 뗍니다. 68절, "내가 또한 너희에게 물어도 너희가 대답하지 아니할 것이요, 나를
가게 하지도 아니하리라."(KJV), - "내가 물어도 너희가 대답지 아니할 것이니라."(개역,NIV). 현대
역본들은 인간들이 주님에게 행한 죄악들을 숨기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1:54을 보십시오. "그분을 기다리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것을 책잡아 그분을 고소하고자 하더라."(KJV)- "그 입에서 나오는 것을 잡고자 하여 목을 지키더라."(개역).
이 세상의 역사는 어느 개인이나 국가나 자기들이 소유한 도덕적 가치와 종교적 이상을 넘어서 발전한 예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가진
성경이 말하는 이상으로 거룩해지거나 경건해 질 수 없습니다. 성경이 거룩하지 않으면 교회와 성도는 거룩함을 추구할 수도 나아갈 수도 없습니다.
개역 성경을 들고 경건하고 거룩한 신앙적 인격을 소유한 목사님이나 영적인 설교를 추구하는 교회가 있다면 그들은 는 모두 개역 성경을 손에
들고 청교도들의 서적을 탐독하고 그들이 남겨준 유산들을 연구하여 얻은 결과입니다.
마가복음 15:28을 보십시오. "이로써, 그가 범죄자들과 함께 계수(計數)되었다, 하신 성경 기록이 성취되었더라."(KJV).
드디어 예수님은 죄인들의 손에 못 박히셨고, 성경의 기록이 성취되었습니다. 개역 성경을 펴서 이 부분을 읽어보십시오. "(없음)".(개역,
NIV). 아무리 읽으려고 해도 읽을 수 없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예 말씀이 없습니다. 예수님에게 한 인간들의 행위들을 살펴보면 그들이
오늘날 그분의 말씀에 한 행위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5:31을 보십시오. 거룩한 천사. "사람의 아들이 자기의 영광 중에 모든 거룩한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의 영광의
왕좌에 앉으리니"(KJV)-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개역).
거룩한 천사와 그냥 천사는 같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천사가 있고 마귀의 천사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늘의 천사가 있고, 범죄한 천사가
있습니다. 이 둘은 완전히 다릅니다. 불신자들고 뉴에이지 운동가들에게 천사는 아무나 O.K!겠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7:39을 보십시오. 거룩한 성령. "(그러나 이것은 자기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니 이는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아니하셨으므로 /주께서/ 아직 성령님을 주시지 아니하셨음이더라.)"(KJV). 킹제임스 성경이 성령의
신격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HOLY GHOST는 NIV에서 모두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들은 단지 Spirit이라고만 표현할 뿐입니다.
다행히 개역 성경은 이 점에서는 안전합니다. HOLY GHOST와 HOLY Spirit의 차이는 강조점의 차이입니다. 신격을 강조하는가?
그분의 행하시는 사역을 강조하는가입니다. 만약 우리가 성령을 HOLY GHOST라고 표기하지 않는다면 제 3위의 하나님인지, 영향력인지,
어떤 힘인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것이 물질이나 어떤 에너지가 아니라 영원하시고도 거룩한 하나님이십니다. (고전2:13참조-HOLY
GHOST TEACHES...).
사도행전 6:3을 보십시오. 거룩한 집사.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는 너희 가운데서 정직하다는 평판이 있고 성령님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KJV). -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개역). 현대 역본들은 정직이란 단어를 빼 버렸고, Holy
Ghost 대신에 Spirit이라고 표기했습니다. 거룩한 성령대신에 그냥 성령이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 말로는 성령 할 때 이미 거룩한
이란 뜻이 포함되지만 거룩한 이란 말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매우 차이가 큽니다. 영어로는 그냥 영(Spirit)입니다. 이는 읽을 때
전혀 표시가 나지 않습니다. 이는 한국어에서도 상당히 자주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예를 들어, 단단한 강철- 강철(강한 철이란 의미를 강조).
생일-생일날(반복적 용법으로 의미 강조). 역전- 역전 앞(반복으로 의미 강조). 힘센 장사야!(강조)- 장사야! 하얀 백색 미인- 백색
미인, 시커먼 흑인 - 흑인...
데살로니가전서 5:27을 보십시오.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에게 명하노니 모든 거룩한 형제들에게 이 서신을 읽어 주라."(KJV)-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들리라."(개역, NIV). 바울은 거룩한 성경을 거룩한
형제들에게 읽어 주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주의 거룩한 백성이요, 거룩한 형제들입니다. 이런 형제들이 모임으로 거룩한 교회가 됩니다.
그런데, 거룩이란 말은 설교에서 뿐만 아니라 성경에서조차 점점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거룩이란 말을 포기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베드로후서 1:21을 보십시오. "이는 대언이 옛적에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아 나오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감동을 받아 말하였음이라."(KJV) -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개역, NIV). 우리는 드디어 왜 우리가 보고 듣는 킹제임스 성경과 현대 역본들이
이다지도 큰 차이가 나는지 알았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스스로 증언하기를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감동을 받아
말한 것’인 반면 현대 역본들은 거룩함과는 상관이 없는 보통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 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감춤으로써 성경의 가치를 일반 문학 수준으로 전락시켜 버렸습니다.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이 모두 죄가 없는 완전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었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들은 성령의 영감을 받았으며,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말씀 앞에 떨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란 사실을 안 사람들, 말씀의 신성을 직접 체험하고, 믿고 순종한 사람들이 성경의
기록자들이었지 Shakespeare나 Milton과 같이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서 성경 기록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요한 계시록 22:6을 보겠습니다. "또 그가 내게 이르기를, 이 말씀들은 신실하고 참되도다. {주} 곧 거룩한 대언자들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이루어질 것들을 보이시려고 자신의 천사를 보내셨도다."(KJV) -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개역,
NIV). 하나님은 거룩한 대언자들의 하나님이시며, 그 종들에게 말씀을 주시고, 선포하게 하십니다. 현대 역본들은 하나같이 “거룩”이란
단어를 삭제했습니다. 마귀는 거룩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거룩이란 말을 붙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것은 세 가지입니다. 성경(Holy Bible), 성령(Holy Spirit), 성령이 거하는 몸된 성전(Holy Temple)입니다.
이 셋은 우리가 현재 소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는 거룩한 천사들을 볼 것이며, 거룩한 도성을 거닐 것이며, 거룩한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대면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잡고 있는 책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인 성경입니까? 아니면 오류와 삭제와 변개로 얼룩진 Unholy Bible 입니까? 여러분의
몸 안에는 성령이 거하십니까? 아니면 이 세상의 악한 영들이 거하고 있습니까?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까? Unclean Spirit(불결한
영)의 인도를 받습니까? 여러분은 거룩한 형제들입니까? 속된 형제들입니까?
하나님은 모든 성도들이 거룩하기를 바라십니다. 거룩함은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내가 거룩한 것 같이 너희도 거룩하라”는 명령은
시대와 세대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3-7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곧 너희가 거룩히 구별되는 것이라.
/그런즉/ 너희는 음행을 멀리하고, 4 저마다 거룩히 구별함과 존귀함으로 자기 그릇을 소유할 줄 알되 ...7.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정함에 이르도록 부르신 것이 아니요, 거룩함에 이르도록 부르셨음이니..." 그렇다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은 우리는 거룩하신
성령을 통해 거룩한 성경의 조명을 받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중 어느 한 가지라도 잘못된다면 어떤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무관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거룩하기를 바라신 것과 마찬가지로 롯도 거룩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주님은 바울이
믿음의 경주를 다 마치기를 바란 것처럼 데마도 믿음의 경주를 잘 달리시기를 바라셨습니다. 문제는 우리 편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성도가
모두 예외없이 거룩하기를 바라십니다. 베드로전서 1:15,16을 보겠습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같이 너희도
온갖 행실에서 거룩할지니, 이는 기록된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셨음이니라."(벧전1:15,16). 거룩하고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풍성히 거하지 않을 때 도덕적 불결과 타락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와 신성”에
대해 충분히 인식되고 조명되지 않을 때, 성도들의 영적 감각은 무디어져 죄악을 혐오하고 메스꺼워 하는 마음이 사라지며, 지긋지긋했던 과거의
생활로 돌아 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12:14은 말합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과 거룩함을 따를지니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성경의 기록된 말씀을 통해 완전해 지기를 바라십니다(딤후3:17).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 모든 성경 기록 즉 창세기 1:1에서 계시록 22:21절까지의 모든 말슴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이요,
이를 통해 우리는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을 받아 완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 가운데 일부가 더해지고, 빼지고, 변개되었다면
우리는 결코 완전하게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를 완전하게 하는 것은 모든 성경 기록, 즉 하나님의 모든 말씀입니다. 현대 역본들은 말씀을
통해 완전하게 되는 대신 “adequate”(적절한)라고 말합니다. 변개된 말씀으로는 적절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성도가 순수한 마음을 갖기를 바라십니다(벧전1:22). "너희가 /성/령을 통해 진리에 순종함으로 너희 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없이 형제들을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순수한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거룩함, 깨끗함, 순수함은 맥이 통하는 말씀입니다.
순수한 마음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새롭게 창조하신 새 사람을 따라 지음 받은 것입니다. NIV를 비롯한 새 역본들은 “순수한”이란 말을
빼 버렸습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일지 생각해 보십시오. 순수하지 않는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사랑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사랑이라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진리를 바탕으로 해야 하며,
성령을 통해 진리에 순종함으로 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대신 잡지와 영화, 신문, T.V에
미친 사람들이 이런 사랑을 어디서 배울 수 있겠습니까? 이들은 오직 마귀가 조장하는 사랑의 개념에 마음이 더럽혀져 있습니다. 그래서 욕정과
탐욕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현대 역본들은 이들의 이런 입맛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온 몸과 영과 혼이 흠이 없기를 바라십니다(살전5:23). "화평의 하나님께서 친히 너희를 온전하게 거룩히 구별하시는도다.
그런즉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흠 없이(blameless) 보존해
주시기를 구하노라." 주님께서 온전하게 거룩히 구별하신 성도들이 흠이 없이, 비난받을 것이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죄와 허물로 우리의 영을 더럽힙니다. 음행은 우리의 몸을 더럽힙니다. 악하고 어리석은 생각은 우리의 혼을 더럽힙니다. 우상
숭배는 우리의 영을 더럽힙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주님께서 우리를 흠없이 보존해 주시기를 함께 기도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기를 바라십니다(막10:21). "... 그리고 와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kjv). 개역 성경은 “십자가를 지고”란 말이 삭제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십자가 없이는 영광도 없기 때문입니다. NO CROSS, NO CROWN.
십자가 없는 영광은 마귀가 주님을 시험할 때 제안했던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달콤한 유혹은 십자가 없는 영광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은 십자가를 지는 삶이요, 주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우리는 어린 양의 발자취를 따름으로써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시간 헌신과 결단의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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