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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사실을 조명해 주는 유일한 성경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사실을 조명해 주는 유일한 성경



아마 기독교인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셨다가, 부활하신 후 승천하셨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중요한 사실을 성경을 직접 펴서 하나 하나 살펴보는 가운데,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는 달리
킹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모든 성경에 그런 사실이 가려져 있거나, 변개되어 있다는 사실을 살피고, 확인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신 사실을 각 성경은 어떻게 기록하고, 증언하는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6:16, 7:33을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 위해 체포되기 전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다시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요16:16).
하늘에서 오신 주님께서 이 지상에서 기록된 모든 말씀을 성취하시고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NIV 성경을
비롯한 새 역본들에서 이 구절을 읽을 수 없을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신대"(개역, 요16:16). 개역 성경은 주님께서 아버지께로 간다는 말씀이 완전히 삭제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7:33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분에게로 돌아가겠노라."(요7:33).
주님은 이전에도 제자들에게 십자가에서 죽으신 뒤에 부활하실 것과 승천하실 것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주님이 아버지께로 가지 않으신다면 성도들은 어떻게 됩니까? 부활하신 후에 2000년동안 지상에 계신다면 첫째, 우리는 예루살렘에
거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는 있겠지만 성령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성령은 주님이 승천하심으로써 우리에게 내려 주신 선물입니다. 요한복음
16:7과 사도행전 2:33을 보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니라.
이는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위로자께서 너희에게 오시지 아니할 것임이라. 그러나 내가 떠나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리니"(요16:7).
주님께서 승천하심으로 위로자 성령께서 오십니다. 우리가 현재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올라 가셔서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그분은 외계인이 아니시며, 어디로 다른 차원의 세계로 가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셨음을 입증해 주는 것이
바로 성령의 강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하나님의 오른손으로 높임을 받으시고 아버지께로부터 성령님을 약속으로 받으셨으므로
너희가 지금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2:33). 성령이 이 땅에 오셔서 믿는 자들에게 임하심으로써 우리는 구원받은
사실을 확증할 수 있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바로 나의 죄를 위한 죽음이요, 새로운 생명을 준 것이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약
성령이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 사실을 확인할 방도가 없으며,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은 역사 가운데 아름다운 전설로 그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매월 메니저나 은행을 통해 페이먼트를 냅니다. 그러면 내가 낸 돈이 정확히 그곳에 전달되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다. 돌아온
영수증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위해 변호사를 사서 일을 하고, 서류를 꾸며 어디에 보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그 서류가 무사히 도착했는지, 상대방이 받았는지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일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Receipt
Notice를 받거나, 확인 전화나 메일을 받으면 우리는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사역과 말이 사실이요, 진리임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입증되었음을 성령을 통해 확인 받은 것입니다. 우리를 대신해 죽으시고, 모든 것을
대신 담당하신 십자가의 구속과 대속의 사역이 완전무결함을 예수 그리스도 혼자의 말로만 아니라 승천하사 성령을 보내심으로 확증해 주셨습니다.


성령이 이 땅의 신자들 안에 강림하신 것은 우리가 열심히 기도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성령의 강림은 오직 주님의 승천으로 인해 이 땅에
주어진 선물입니다. 주님의 승천이 없다면 이 땅에 성령의 강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승천에 대한 사실을 가린 성경을 가진 성도들은
성령의 내주하심에 대한 믿음도, 의식도 희미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둘째, 주님께서 승천하시지 않으셨다면 하늘에 우리의 집(mansion)이 마련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15:1,2을 보십시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저택들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말해 주었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요15:1,2). 주님이 승천하신 것은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저 하늘에서도 하실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저택들을 준비하십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아야 할 장소는 이 땅이 아니라 저 하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단지 나그네요, 여행자로 살아갈 뿐입니다. 주님의 승천에 대한 기록이 삭제되고 변개된 성경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하늘의 영광과
본향에 대한 소망이 적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하늘의 소망을 잃고 이 땅에서 잘 살아 보겠다는 기복 신앙을 소유하게
된 데는 변개된 성경에서 기인한 잘못된 신앙에 일차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셋째, 주의 재림이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시지 않았다면 주님은 이 땅에 우리를 위해 오실 수 없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재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재림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은 헛된 신앙이며, 망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재림에 관련된 모든 예언은 하나도 성취될
수 없으며, 우리 또한 아무 소망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5:3, 14:18을 보겠습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5:3). "내가 너희를 위로
없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14:18). 성경은 초림에 관련된 예언보다 재림에 관련된 예언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주님의 승천은 이런 점에서 볼 때 너무나 귀중한 교리입니다.


누가복음 24:51,52과 마가복음 16:9-20을 살펴 보겠습니다. 먼저 누가복음을 펴 주십시오. 24:50부터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주님께서 이 땅을 떠나실 때 제자들을 축복하신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주님의 지상 마지막 사역은 제자들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힘을 줍니다. 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올림을
받아 하늘로 들어가시니라. -- 부활 때와 마찬가지로 주님은 스스로 올라 가셨습니다.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외에 자기 힘으로 스스로
하늘에 오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에녹, 모세, 엘리야가 하늘에 올라 갔지만 이들은 모두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들림받은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사도 바울과 요한이 성령 안에서 하늘로 들림 받았지만 이 또한 자기 힘이 아니라 들림받은 것입니다. 장차 우리도 들림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스스로 힘으로 부활하셨고, 스스로 힘으로 하늘에 올라 가신 분이십니다. 이 점에서 다른 모든 사람과 전적으로
구별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NIV 성경을 펼쳐 보면 51절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사실을 완전히 지워
버렸습니다. 개역 성경을 보면 이 부분이 괄호로 처리되어 있습니다. “(하늘로 올리우)시니”라고 하여 승천 사실에 대한 것은 믿을 수 있는
고대 사본에는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개역 성경은 믿을 수 없는 사본에서 번역했다는 자기 고백이요, 간증을 한 셈입니다. 52 그들이
그분께 경배하고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에 돌아가 -- 제자들은 주님의 축복을 받고 승천하는 그분의 모습을 목격한 후에 주님께 경배하였습니다.
이는 자연스런 마음의 반응이요, 양심의 응답일 것입니다. 그러나 NIV를 비롯한 새본들을 읽는 사람들은 제자들이 경배했다는 말을 읽을 수
없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주님의 승천을 보지 못했으니 어찌 경배할 수있겠습니까? 개역 성경은 이 부분에서도 (그에게 경배하고)를
괄호로 처리하였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으로 누가복음 24:50-53절을 읽으면 이렇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올림을 받아 하늘로 들어가시니라. 52 그들이 그분께 경배하고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에 돌아가 53 계속해서 /성/전에 있으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찬송하니라. 아멘." NIV로 이 부분을 읽으면
이렇게 됩니다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시니 저희가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니라."(NIV-눅24:50-53). 우리는 이 두 성경 중 어느
성경이 참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묻기 위해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에게 감별을 의뢰해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1,2에서 누가는 자신이 기록한
누가복음의 진위 여부를 알 수 있는 말씀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오 데오빌로여, 내가 작성한 이전 보고서는 예수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기를 시작하심부터 친히 선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님을 통하여 명령들을 주시고 들려 올라가신 날까지의 모든 일을 기록한 것이라."(행1:1,2).
그렇다면 주님이 들려 올라가신 날의 이야기가 없는 성경은 누가가 기록한 진짜 성경이 아니라 누군가가 누가의 이름을 빌려 거짓으로 기록한
위작(僞作)임이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값나가는 고(古) 미술품 중에서 진짜 화가의 작품이 아닌 모조품들을 자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누가가 기록하지 않는 가짜 누가복음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자주 봅니다. 모조품은 아무리 비슷해 보여도 진품과는
다릅니다. 안목이 없는 사람에게는 진품과 모조품의 구별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 몰라도 전문가에게 그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쓴 계약서가 위조되었다거나, 여러분의 부모님이 남긴 유서가 아버지의 것이 아니라 위조된 것이란 사실을 안다면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런데, 주님의 말씀에 대해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란 증거와 자기 신분을 스스로 포기해 버린 결과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마가복음 16:19-20을 보겠습니다.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뒤에 하늘로 올려지사 영접(迎接)을 받으시고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시니라. 그들이 나가서 모든 곳에서 /복음을/ 선포하매 {주}께서 그들과 함께 일하시며 따르는 표적들로 말씀을 확증해 주시니라. 아멘."
누가복음과 마찬가지로 마가복음에서도 주님의 승천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로써 두 번의 증거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한 번 말한 것과 두 번 말한 것은 증언의 능력에서 차이가 납니다. 개역 성경을 비롯한 새 역본들은 누가복음에서 승천 사실을
삭제한 후에 이곳은 아예 “믿을 수 없다고 단정” 짓고 있습니다. NIV와 NASV에 보면 16:9-20까지는 꺽쇠{}로 처리하였습니다.
이 꺽쇠처리는 원래 원문에는 없음이란 뜻입니다. 그렇다면 원래 원문에도 없는 것을 무엇 때문에 꺽쇠로 처리해 가며 넣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그들은 한꺼번에 12구절이란 엄청난 양을 빼버리면 킹제임스 성경과 너무 차이가 나 독자들이 금방 눈치챌 것을 두려워 하였고,
성경이 아니란 비난을 받을까봐 감히 빼지 못했던 것입니다. 대신 성경을 읽는 독자들의 마음에 의심의 씨앗을 던져 주었습니다. 친절하게도
각주를 처리하여 “고대 사본에는 없음”이라고 밝혀 놓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란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이는 요한복음 6:62에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면 너희가 사람의 아들이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려느냐"?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신다면 이는 사람으로 태어나시기 전에 하늘에 계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지금 사람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성경 변개자들은 이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불신을 회개하는 대신 과감하게 성경을 변개시켜 버린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은 현재 우리의 신앙 생활과 영적인 삶에 있어서 매우 실제적이고, 중요한 요소입니다. 스데반은 순교할 당시 승천해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승천해 계신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주님의 신성에 대한 증거일 뿐만 아니라
그분의 재림의 방식을 묘사한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너희에게서 하늘로 들어올림을 받으신 바로 이 예수님(this same
Jesus)께서는 너희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1:11). 이 구절은 장차 '다시 오시는 왕'과 '적그리스도'를
구별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줍니다. 우리는 "바로 이 예수님, 즉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님, 같은 예수님"(same
Jesus)의 오심을 기다립니다. 하늘로 올라가시지 않는 예수를 기다린다면 그는 외계인을 기다리는 것이거나, 적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광스런 소망, 복된 소망 가운데 기다리는 간절한 고대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사, 승천하신 바로 그 예수님의 오심이지 다른
예수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으로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문자적으로, 육체를 입으시고, 영광 가운데 구름을 타고 누구나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재림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나타나지 않는 예수님은 우리가
기다리는 예수님이 아닙니다. 적그리스도는 성경에서 기록한 모양대로 올라 간 적이 없기 때문에 동일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없을 것입니다.


“새 역본들은 예수님께서 이미 말씀해 주신 거짓 그리스도들의 등장을 돕는 무언의 조력자입니다. 마태복음 24:24-28을 보십시오. "이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대언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이적(異蹟)을 보여 할 수만 있으면 그 택하신 자들까지도 속일 것임이라. -->
우리는 속지 않습니다. 우리는 올라가신 모양대로 내려 오지 않는 그리스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승천에 대해서 삭제하고 가린 성경에 세뇌당한 성도들은 속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2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너희에게 이르되, 보라, 그리스도가 사막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그리스도가 은밀한 방에 있다, 하여도 그 말을 믿지
말라. 이는 번개가 동쪽에서 나서 서쪽까지 번쩍이는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할 것임이요, 또 어디든지 사체(死體)가 있는 곳이면
독수리들이 함께 모여들 것임이라."(마24:24-28). 주님의 이런 명확하고도 분명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쉽게 속고
있습니다. 뉴에이지 추종자들은 "지혜의 스승(Masters)이 대부분 먼 사막에 머물러 계신다."고 말한다. NASB에
등장하는 메시아는 "그리스도가 여기 세상에 있다."는 제목으로 「USA 투데이」 지의 전면 광고에 나타나 있다.(154)
이같은 주장을 후원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이 지상에 ... 비밀히 숨어 ... 있었기 때문에 다시 돌아올
필요가 없다. .....그는 영적 계급제도에 관여하고 있었을 뿐이다.(155)


“그리스도는 지난 2000년간 히말라야에서 살던 밀교의 한 스승(master)으로서, 그리스도의 영이 다시 성육신한 것이다.”-엘리스
베일리-


“자유주의자들 혹은 사교를 추종하는 자들은 그리스도가 구름을 타고 오지 않으며 다른 방식으로 재림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새로운 역본들이
그들의 기호에 잘 부합되는 것이다. ”-벤자민 크림-


1.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분께서 1914년에 '영적으로' 재림하셨다고 말한다.


2. 문선명은 자신이 DC-10 비행기를 탐으로써 재림이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3. 웨스트코트는 "수많은 그리스도의 강림이 사회적으로 '유력한 인물로서' 나타난다"고 했다.


4. 자유주의자들은 '세례 시'에 혹은 '교회로서' 그분께서 강림하신다고 말한다.


자유주의자들 및 사교 추종자들 그리고 뉴에이지 추종자들은 그리스도의 승천을 부정하면서도, "나는 죽지 않고 승천한다 ... 왜냐하면
내 생각의 힘을 동력화시켜 내 육체를 취할 수 있는 비법을 나는 터득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는 영교주의자 람다(Ramtha)의
주장을 즐겨 탐독한다.(157) 람다가 TV 토크 쇼에서 자신의 허황된 승천 주장으로 대중을 사로잡는 동안, 어린아이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터무니없이 모방한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E.T에 매료된다.


사람들이 현대역 성서(bible)의 매 페이지로부터 퇴색된 그리스도를 보는 동안에 거짓 그리스도들의 이미지가 창출되고, 이 이미지가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를 대신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것들을 우상이라 부르십니다. 우리는 변개된 성경이 성도들의 마음 가운데 심어주는
우상의 이미지를 주시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순수하게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명확하고도 분명한 조명을 받음으로써 거짓으로 채색된
악을 분별해 낼 수 있습니다. 저는 한국은행의 어떤 직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위폐를 감식하는데 일반 은행 직원들과는
달리 특별한 기계나 정밀한 조사없이 직감으로 구분해 낸다고 합니다. 위폐를 감별하는 특별한 훈련을 받은 것이 아니라 매일 정폐를 만지고,
세는 일을 반복합니다. 그러면 손의 감각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폐의 종이 무게, 질감, 느낌, 촉감 등이 손에 베이게 되고, 아무리
정교한 위폐라 할지라도 손에 잡혔을 때는 금방 잡아낸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영적 교훈을 줍니다. 우리는 바른 말씀을
끊임없이 읽고, 묵상하고, 사용함으로써 성령에 대해, 진리에 대해 예민한 영적 감각과 분별력을 소유합니다. 우리 안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정확한 말씀에 근거한 교리가 형성됩니다. 특별한 신학 교육과 교리적 지식이 없어도 마귀의 궤계와 간계를 간파하고 부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이 원하든 원치 않든 여러분들은 모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로 모집되었고, 하나님의 전신갑옷을 입고, 성령의 칼을 들고 싸워야 합니다. 전쟁은 한쪽이 항복하거나 죽기
전까지 끝이 나지 않으며, 패배는 곧 죽음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살펴 본 것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에 대한 이런
사실들이 삭제되고, 가려진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신다면 그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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