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고전1:18
저는 여러 차례 십자가의 그리스도에 대해서 설교하고 가르쳤지만 앞으로도 평생 동안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설교하게 될 제목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십자가는 아무리 들어도 새롭게 다가오는 진리입니다. 십자가에 대해서는 저와 여러분이 끊임없이 묵상해야 할 진리 중의 진리입니다. 단순히 역사적 사건이 아닙니다.
먼저 고린도전서 1:23-24절을 보겠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기 때문이라. /그분은/ 유대인들에게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요, 그리스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에게나 그리스인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권능이시요, 하나님의 지혜이시니](고전1:23-24). 이 말씀에 따르면 철학이 고도로 발달하고 지혜만을 추구하던 그리스인들도 십자가의 진리를 깨닫게 되지 못한다면 그는 다른 아무 지혜도 영원히 깨닫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입니다(고전1:24).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고,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일으키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우리는 계속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여러분이 성경을 읽을 때 주목해서 읽을 것은 문자 그대로 주의해서 읽는 것입니다. 바울이 누구를 선포했다고 말합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입니다. 갈릴리를 거니시던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승리의 입성을 하시던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가장 꺼리는 바 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권능이란 것입니다. 일견 가장 어리석어 보이고, 약해 보이는 것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인데 전혀 반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② 십자가는 하나님의 권능이란 사실을 알지 못하면 그는 어떤 영적인 능력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는 십자가를 선포함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이 되기 때문이라.](고전1:18). 여러분은 십자가를 선포하는 것이 하나님의 권능이란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영적 능력의 결핍은 십자가를 통해 나오는 하나님의 권능을 알지 못하는데서 기인합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십자가에서 비롯됩니다. 십자가의 진리를 배제한 채 구하는 하나님의 권능, 성령의 권능은 모두 마귀의 속임수입니다.
그가 누구라 할지라도 십자가로 만족 할 줄 모른다면 영원히 다른 아무 것으로도 만족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혀 죽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첫 관문에서 이미 '나'(자아)의 장례식을 요구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옛 사람 곧 '자기'를 십자가에 매달 것을 명령하십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자신을 매달 수 없고, 자신을 못 박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한 손이 한 손을 못 박는다 해도 다른 한 손은 여전히 범죄할 것입니다.
누구라도 십자가의 풍요한 영적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영적 가난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헬라인들에게 십자가는 어리석은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거치는 돌이었습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장소이지만 그곳은 우리의 생명의 탄생지입니다. 십자가는 주님이 저주를 받은 곳이지만 우리에게는 축복의 장소입니다. 십자가는 주님이 우리를 위해 죄가 되신 곳이지만 그곳은 우리에게 값없이 의가 주어진 곳입니다. 십자가의 진리는 역설의 진리입니다. 우리는 못 박혀야 다시 살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자기'의 장례식을 치르지 않고 교회에 와서 앉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그리스도와 함께 침례로 장사 지낸바 된 사람들이 아닌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아직도 자신을 죽음에 넘겨주지 않고 왔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자신을 장사지내지 않는 사람은 결코 부활의 생명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 보지 않는 사람은 결코 그리스도와 함께 생명의 새로움 속에서 살아 본 적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③ 십자가를 질 줄 모르면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이 말씀하시기를,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내 뒤를 따르지 아니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마10:38)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주님의 제자가 될 수도 없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자기 십자가란 무엇입니까? 자신이 못 박힐 십자가를 사형 집행장까지 스스로 지고 가서 거기에 매달려 못 박혀 죽임을 당하는 곳이 바로 ‘자기 십자가’입니다. 한국 말에는 ‘자기 무덤을 판다’는 말이 있습니다. 스스로 죽음의 길을 재촉하거나 죽을 짓만 골라서 할 때 쓰는 말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유대에서는 비슷한 말로 ‘자기 십자가를 진다’고 말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말은 죽음으로 간다는 말입니다. 죽음을 짊어진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영광의 길이 아닌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길입니다. 십자가를 알지 못하면 그는 결코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장식이 아닙니다. 상징이 아닙니다. 그것을 지고 형장으로 가서 거기에 매달리라는 것입니다. 갈보리 언덕에 가서 그리스도가 못박힌 그 십자가에 자신을 매달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목에 걸고 다니거나 지붕 위에 세워 두라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죽은 사람은 그것 자체로서 모든 사람들의 문제의 해결이 됩니다. 자기가 죽은 사람은 그가 그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있는 곳의 풍요함이 됩니다(요12:24). 자기가 죽은 그것 자체가 헌신이요 사랑입니다. 자기가 죽었을 때 인간은 비로소 죄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새 사람이 됩니다. 자기의 장례식이 끝난 사람 안에만 성령께서 거하시며, 주님이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십자가 처형이 안 된 '나'(자아)는 성령을 거스르며, 대적하며,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갈5:17). '나'란 자아가 살아 있으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고, 친절할 수도 없고, 어떤 영적인 열매도 맺을 수 없습니다. 나란 자아로 인해 모든 문제가 발생합니다. 나란 자아는 존중받기를 원하고, 자랑하기를 원하고, 사랑받기를 원하고, 무엇이나 소유하고 싶어 합니다. 남이 상하는 것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나란 자아가 상하면 분노와 성질이 일어납니다. '나' 때문에 성령께서는 슬픔을 당하시고, 억눌림을 당하시고, 제한을 받으시며, 반역을 당하기도 하십니다. ‘나’란 자아로 인해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시면 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십니다. 나란 자아로 인해 성령은 주인이 아니라 종처럼 취급받습니다. 말씀이 자라나지도 못합니다. 모두 십자가에 자아를 처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란 어떤 사람들입니까?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는 말들이 있지만 그리스도인이란 의미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육신과 함께 그 애착과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5:24). 죄에 대해서 죽은 나, 세상에 대해서 죽은 나, 육신에 대해서 죽고 율법에 대해서 죽은 나를 생각해 보십시오. 죄에 대해서 죽었으면 죄는 더 이상 죽은 사람을 이끌지 못합니다. 세상에 대해서 죽었으면 세상은 그 사람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나’라는 자아가 죽어 버리면 교회나 직장이나 가정이나 어디나 다 평안해집니다. '내'가 만약 오늘 '십자가'에 처형이 되고 만다면 교회는 얼마나 복되고 능력이 넘치겠습니까? 사도 바울의 고백을 보십시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혔고 나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그는 세상에 대해서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기를 거부하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짓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생기는 여러 가지 박해를 피하려고 타협을 모색합니다. [육신으로 잘 보이고자 하는 모든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한 핍박을 받지 아니하려 함뿐이니](갈6:12). “우리는 개방적이고 포용적이다. 꼭 십자가만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란 사람들이 하는 짓이 교리적 타협, 신학적 타협을 하는데 갈라디아 교회가 그러했습니다. 오늘날 교회 내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으로는 아무 것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그래서 인본주의, 합리주의, 실용주의를 비롯한 세속화의 물결이 교회 내로 스며들고 있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라고 말합니다. [(이는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이기 때문이라.](빌3:18).
여러분은 십자가의 원수들입니까? 아니면 십자가를 지고 가는 종들입니까?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주님은 나에게 다른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나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요, 기준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실 수 있는 조건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인간을 사랑하실 수 있는 절대 조건을 얻으신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직도 미워하실 수 있는 죄인은 없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용서받지 못할 죄인 역시 없습니다. '자기'가 죽은 사람이 아니면 '자기'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섬길 수 없습니다.
④ 십자가는 화해입니다. [또 십자가로 그 원수 되게 하는 것을 멸하사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려 하심이라.](엡2:16). 누구와 화해를 원합니까? 하나님과 원수 된 죄인이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과 화해했다면 그는 누구와도 화해할 수 있습니다. 그냥 덮어 두는 식의 화해가 아니라 진정으로 모든 것을 용서하는 그런 화해는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아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진리를 알지 못한다면 그는 진정으로 용서를 받고, 용서해주는 그런 화해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입니다. 십자가는 죄인들 상호 간에 인종적, 민족적, 언어적, 정치적, 종교적, 신분적, 학력별, 남녀 성별 등의 모든 차별적 요소를 다 없애고 진정한 형제애로 화해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같은 형제, 같은 가족, 동료들끼리의 화해는 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⑤ 십자가는 순종입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빌2:8).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순종은 자발적으로 죽는 것입니다.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은 살인이지만 죽음에 자신을 내어 놓는 것은 순종입니다. 주님은 스스로 목숨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⑥ 십자가는 승리입니다. 성도들이 승리를 소원하며 기도하는 분들이 많지만 진정한 승리는 십자가를 통해서만 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의 비결은 오직 십자가를 지신 것뿐입니다. 주님의 사역에서 십자가를 지신 것 외에 그것과 쌍벽을 이룰 수 있는 다른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승리하는 비결도 십자가 지는 것 외에 달리 무슨 방법도 없습니다. [정사(政事)들과 권능들을 노략하사 십자가에서 그들을 이기시고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셨느니라.](골2:15). 영적으로 승리하는 비결은 영적 존재들, 마귀 사탄을 이기신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이기셨습니다. 십자가는 승전터입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란 승리 선언은 십자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승리: 고전15:57, 고후2:14, 요일5:4 참조.
⑦ 십자가는 우리의 모든 법적 문제들을 해결했습니다. [손으로 쓴 규례들 곧 우리를 대적하고 반대하는 규례들을 지우시고 그것들을 길에서 취하사 그분의 십자가에 못박으시고](골2:14). 갈보리 십자가 위에는 세상의 죄를 지시고,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시고, 저주가 되신 주님이 못 박혀 계십니다. 갈보리 언덕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선 이후로 하나님은 우리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다시는 문제 삼으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죄인으로 정죄된 율법의 모든 문서를 다 처리해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죄악은 갈보리의 십자가로 처형이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미 처형되고 만 우리들의 죄악은 하나님도 다시 찾아내 문제 삼으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갈보리 산 십자가에 처형된 분은 아들 안에서 하나님 자신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육신으로 태어난 생명, 세상에서의 우리에 대한 재판은 이미 끝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영적 의미를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자만이 살아있는 자들에게 생명을 증거하고 공급할 수 있습니다.
☜ 암송할 말씀: 고전1:18, 고전1:24
☜ 생각해 볼 문제:
-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무엇인가?
-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룬 영적 사역들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시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은혜의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흥 90 - 82. 무엇을 선포할 것인가? (1) | 2006.01.17 |
---|---|
부흥 90 - 81. 그리스도의 피 (1) | 2006.01.16 |
부흥 90 - 79. 너희는 땅의 소금이라 (0) | 2006.01.15 |
부흥 90 - 78. 영적 생활의 핵심 (1) | 2006.01.13 |
부흥 90 - 77. 그럼에도 불구하고 (0) | 2006.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