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구약으로 가서 보면
제사장이 아니지만 기름부음을 받은 예가 있습니다. 바로
왕입니다. 사울이나 다윗, 솔로몬은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사무엘이 또한 사울에게 이르되, [주]께서 나를 보내사
왕에게 기름을 부어 자신의 백성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사오니 그런즉 이제 왕은 [주]의 말씀들에 귀를
기울이소서.](삼상15:1). 사울은 주께 기름부음을 받아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소개할 때 “주께 기름부음 받은 자”란 말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이는 그가 이 사실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보여 주는 예입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왕에게 구원의 망대를 주시며 자신의 기름부음 받은
자 곧 다윗과 그의 씨에게 영원토록 긍휼을 베푸시리로다.](삼하22:51).
마찬가지로 우리 주님은 왕이십니다.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이십니다. 주님이 회당에서 처음 읽은 성경 구절이
이것입니다. [{주}의 영께서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음이라.](눅4:18a). 주님은 자신이 기름부음
받으셨음을 선포했는데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란
타이틀이 주는 의미입니다. 후에 베드로는 이스라엘
회중들에게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이는 진실로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가 이방인들과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모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주}의 거룩한 아이 예수님을 대적하였음이오니]
(행4:27). ‘주께서 기름 부으신’- 이것이 바로 주님의
직분입니다. 왕은 권능이 필요합니다. 권능이 없으면 아무도
맡겨진 일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님께 성령님과 권능으로 기름을 부으시매](행10:38).
주님이 행하신 사역은 성령님과 권능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결과입니다.
우리 역시 모두
왕들입니다. 현재 종들처럼 살고 있지만 우리는 미래의
왕으로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계1:6, 5:10, 20:6). [하나님 곧
자신의 아버지를 위하여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분께 영광과 통치가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계1:6).
주님은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기름부음이 있습니다. 기름부음이 있다는
증거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일2:20).
‘기름부음을 받고’라고 말씀합니다. 누구에게? ‘거룩하신
분에게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시험과 공격을 이겨내고, 죄의
권세를 이기고, 육신의 정욕을 이겨내는 모든 일들은
주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거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강력한 권능이 없다면 아무도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없고, 되는대로 대충 살다 가는
것이 전부일 것입니다. 열매도 없고, 빛도 없고, 향기도 없고,
맛도 나지 않는 소금처럼 무능력하고 무기력하게 그렇게
사는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이 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기름 부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성령과 권능을
받는 방법이나 무슨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는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우리가 무엇을 받았는가?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 위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아들딸들은
대언하며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들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 위에 부어 주리니 그들이 대언하리라.](행2:17-18).
사도행전의 오순절에 성취된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누구에게 부어 준다고 합니까? “내 남종과
여종들 위에...” 이것이 핵심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주님의 남종이요, 여종이라면 부어 주십니다.
기름부음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어떤 이는 오랜 기도 생활이나 금식이라고
합니다. 어떤 이는 전도라고 합니다. 어떤 이는 사역자로
나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름부음을 받는 근거가
아닙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그분께서 하나님의
오른손으로 높임을 받으시고 아버지께로부터 성령님을
약속으로 받으셨으므로 너희가 지금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2:33).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셨다! 이것이
성령님을 부어 주신 근거입니다. 주님은 하늘로 들림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성령님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믿는 자들 위에 부어 주신 것입니다. 성령이
부어지는 것은 우리의 힘과 의지와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일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또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그 성령님을 풍성히 부어 주셨으니](딛3:6).
성령님은 중생과 더불어 우리 안에 부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성령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채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대부분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에서 늘 보이는
현실입니다. 자신의 몸이 성령의 전인 줄도 모르고(고전3:16,
6:19) 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첫째는
교회를 다니긴 하지만 거듭나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러나
너희 안에 하나님의 영께서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나니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롬8:9). 둘째는
죄로 인해 성령을 소멸(억누름)한 경우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기름부음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고, 내
안에 어떤 능력이 없다면 기름부음을 구하십시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체험하고 있다면
성령 충만을 구하십시오.
제사장, 왕 외의 기름부음
받은 사람은 대언자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으면 주님의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과업을 수행하도록 주의 영을
주시는 것입니다. 주의 영이 임할 때 주의 말씀을 합니다.
다윗은 말하기를, [[주]의 영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시니
그분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삼하23:2)라고 합니다.
주의 영이 임하면 누구라도 대언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울조차 주의 영이 임했을 때 일시적으로 대언자가
되었습니다. [사울이 라마의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영께서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가 라마의 나욧에 이르기까지
가면서 대언을 하였으며](삼상19:23). 이교도의 제사장
발람도 주의 영이 임했을 때 메시야 예언을 했습니다.
성도들은 주의 영이 임하면 복음을 증거하며, 하나님의
왕국과 다가올 심판을 증거 합니다. 그가 배웠던지 못
배웠던지 성령이 임하면 놀랍게 말씀을 증거하고 선포하는
대언자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전혀 복음을 전하지 못할 때 그들을 향해 주님은 [짖지
못하는 개], [잠자는 파수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의
영께서 옷니엘에게 임했을 때 그는 메소포타미아 왕
구산리사다임을 이겼고(삿3:10), 주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했을 때 백성들이 그를 따랐고 그는 겁쟁이에서 용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의 영께서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다 모여서 그를 따르고](삿6:34).
주의 영이 입다에게 임했을 때 그는 버림받은 천출(賤出)에서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되었습니다(삿11:29). 삼손에게 주의
영이 임했을 때 그는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습니다. [[주]의 영께서 그에게 크게 임하시매 그가
손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염소 새끼를 찢는 것같이 그
사자를 찢었으나 자기가 행한 일을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고하지 아니하였더라.](삿14:6). 주의 영이
임할 때마다 삼손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곤 했는데 도무지
인간의 힘이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었습니다(삿14:19, 15:14).
핵심은 주의 영이 임하는가 그렇지 않는가입니다. 사울에게
주의 영이 임했을 때 그는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또
네게 [주]의 영께서 임하시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대언을
하고 다른 사람으로 변하리라](삼상10:6). 우리는 구약
성경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이들에게 임한 성령이
우리에게도 임하였으면 하는 소원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역시
구약의 대언자들, 왕들, 제사장들에게 임한 주의 성령이
자신들에게 임할 날들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요엘2:28-29).
이들은 구약의 말씀이 성취되어 자신들 위에 성령이 넘치게
부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의 영이 성도들 위에 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곧 이어 사마리아인들에게도 성령이
부어지는 것을 보았고, 심지어 이방인들 위에도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령이 임하는 유일한 조건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었습니다. 성령이 임하는 것은
혈통이나 율법이나 조상들이나 전통이나 그 무엇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주님을 구주로 믿는 것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성령을 받는 유일한 조건은 주님을 믿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필요충분조건입니다.
오순절이란 명절에 모인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7주 전에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성령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구약의 예언이 사도들을 통해 선포되고, 실제로
일어나는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이제 이 놀라운 진리가
자신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저는 이미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을 신학적으로 교리적으로 지식적으로 늘
깨닫고 있었지만(고전2:12, 고전12:3) -[이제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난 영을 받았으니](고전2:12a)
- 실제적으로 성령으로 충만한 경험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능력 있는 목회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령의 열매로
가득 찬 성품도 아닙니다. 엘리야나 엘리사는 제쳐두고라도
D. L 무디나 사보나롤라, 크리스마스 에반스, 찰스 피니, 쟌
웨슬레, 휫필드, 죠지 뮬러나 토레이 목사가 받았다는
성령의 권능도 제게는 분명히 없었습니다. 빌리 선데이는
이사야 61:1을 펴 놓고 설교하다가 설교 도중에 성령이
그에게 임했던 놀라운 이야기를 간증했지만 저는 지금까지
그런 경험이 없습니다. 심지어 잭 하일스 목사님도 자신에게
임했던 성령에 대해서 간증했지만 저에게는 도무지 그런
경험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바울도, 스데반도 모두 성령
충만했음을 봅니다. 저는 어느 날 새롭게 성령의 기름부음과
성령 충만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속에서 불타올랐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이런 식으로 앞으로 살아간다면 죽는
것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주의 영, 성령,
하나님의 영 등에 대한 말씀을 찾아보면서 그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과 같은 저희 교회 2층에서
90일 기도회는 그렇게 시작된 것이며, 하루도 중단없이 오늘
마치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동일한 은혜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 자발적으로 몇 명이
참석하도록 권면했습니다. 저의 이런 뜻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참석한 분들도 있고, 교회의 성장이나 부흥을 위해
참석한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왕 변화될 것이라면 목사
한 명 변화 받는 것보다야 같은 믿음의 동역자들이 모두
은혜를 받고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던
것이 전부입니다.
제가 이번에 붙들고
기도했던 말씀은 이것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내 뿔을
유니콘의 뿔같이 높이시리니 내가 신선한 기름으로
기름부음을 받으리이다.](시92:10). 다윗은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다시 기름부음을 받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신선한 기름부음이 필요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방법도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희는
내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내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잠1:23). 이것이
전부입니다. 이 말씀을 얼마나 많이 암송하고 외쳤는지
모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특별한 경험이나 느낌을
구하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임재는 믿음으로 구하는
것이며, 권능으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의 순간에,
시련에, 일상의 삶에서 그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주님의
평강과 기쁨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변화된 삶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흥입니다.
☜ 암송할 말씀: 시92:10, 잠1:23
☜ 생각해 볼 문제:
- 내 안에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는가?
- 성령의 기름 부으심의 목적에 대해서 말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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