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시험하시는 몇 가지 성경적 예
신명기 8:16절입니다.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것은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tempt) 마침내 네게 선을 행하려 하심이었느니라.](신8:16). 주님이 광야에서 백성들을 시험하셨던 것은 그들로 선을 행하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시험을 통해 육신을 무너뜨리고, 자기 의를 무너뜨리고, 그들의 불신과 완악함을 드러냄으로써 이 모든 일이 주의 은혜요 긍휼에 기인한 것이지 자신들의 의나 선함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시기 위해 시험하셨습니다. 때로 우리를 인생의 광야에 두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안이 좋아서, 태어날 때부터 머리가 좋아서, 아니면 포기하지 않는 노력파여서, 운이 좋아서 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낮추시고 시험하십니다. 마음이 교만하고 완악한 사람들일수록 이런 시험을 많이 받게 됩니다.
신명기 13:3입니다. [너는 그 대언자나 그 꿈꾸는 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 이는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가 너희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시기 때문이니라.](신13:3). 주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거짓을 사랑하는지 알기 위해서 시험하십니다. 진리를 사랑하는지 표적이나 이적이나 자기 유익이 될만한 것들을 사랑하는지 시험을 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순금인지 합금인지는 불에 녹여 보면 알 수 있듯이 마음은 시험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는지 그렇지 않는지 알려 하십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그렇게 믿습니다. 맞습니다. 틀림없이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마음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교회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자기 회사나 집보다 더 사랑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해서 사랑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알려 하사 시험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탐욕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합니다.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합니다.
[그들이 [주]를 두려워하여 이와 같이 자기들 중에서 가장 천한 자들을 취해 산당들의 제사장으로 삼았더니 이들이 그 산당들에서 그들을 위하여 희생물을 드리니라. 이와 같이 그들이 [주]도 두려워하고 또한 어디서부터 민족들을 사로잡아 왔든지 그 민족들의 풍속대로 자기 신들도 섬겼더라.] (왕하17:32~33).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신다면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에 순종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시험을 통해서 자신의 갈라진 마음을 보게 됩니다. 사사기 2:22입니다. [이것은 그 민족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자기 조상들처럼 [주]의 길을 지키고 그 길로 걷나 걷지 아니하나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삿2:22). 하나님은 주의 길을 지키고 그 길로 걷나 걷지 아니하나 시험하십니다. 여호수아가 죽고 출애굽의 세대들이 완전히 사라지자 이스라엘은 과연 조상들이 가졌던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살 것인지 그렇지 않는지 주님께서 시험하셨습니다. 조상들처럼 믿음을 지키면 그들은 여호수아가 승리했던 것처럼 승리할 것입니다. 한 번의 시험을 통해 많은 교훈을 얻고 영적 체험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단지 이론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실제로 믿음으로 전쟁을 치러 보아야 그들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 막대기들, 인생 채찍을 들어 우리를 치시는 것은 우리 안에 이전처럼 주님만 믿는 믿음이 있는가? 주님을 통해 영적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가?를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육신의 싸움이 아니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것입니다. 혈과 육에 대항하는 싸움이 아니라 영적 악에 대적하는 싸움을 싸우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사사기 3:1, 4절을 보십시오. [이제 [주]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의 많은 자들을 시험하려 하시며 4.이 민족들이 이스라엘을 시험하였으니 이것은 그들이 [주]께서 모세의 손으로 그들의 조상들에게 명령하신 [주]의 명령들에 귀를 기울이려 하는지 /그분께서/ 알고자 하심이었더라.](삿3:1,4). 주님은 이들을 시험하셨습니다. 주님은 신실한 성도라 할지라도 시험하십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히스기야는 믿음의 성도였습니다. 기도함으로 적을 물리치고, 기도로 자신의 생명을 15년 간이 연장받았던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 그에게 시험이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바빌론의 통치자들이 사신들을 히스기야에게 보내어 그 땅에서 생긴 이적(異蹟)에 관하여 묻는 일에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그를 떠나시고 그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친히 그를 시험하셨더라.](대하32:31). 그 결과 히스기야는 마음이 교만해져서 이기지 못하고 시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대언자 이사야를 찾지도 않았고, 주께 묻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시험이 임한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만입니다.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자기에게 행하신 은혜대로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 위에 진노가 임하게 되었더라.](대하32:25). 은혜를 입은 성도가 마음이 교만해질 때 주님은 그를 시험하십니다. 주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우리는 늘 자신을 낮추고, 더욱 낮춤으로써 주님의 더 많은 은혜를 입어야 할 것입니다(약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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