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말씀




말씀: 출애굽기 26:31-33

요절: 출애굽기 26:33


주님은 성소 안에 휘장을
둠으로써 지성소와 성소를 나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휘장을 만들게 하셨는데 휘장의 의미는 분리입니다.
제사장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은 휘장 밖 성소까지입니다.
휘장을 기준으로 성막은 둘로 나누어지고 성소를 첫째 성막,
휘장 안을 둘째 성막 즉 지성소라고 불렀습니다. [이제 /주께서/
이 모든 것을 이와 같이 제정하시매 제사장들이 항상 첫째
성막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수행하였거니와
오직 둘째 /성막/에는 대제사장이 홀로 해마다 한 번씩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잘못으로 인하여 /주께/ 드리는 피
없이는 들어가지 아니하였나니
](히9:6~7)라고 합니다.
제사장들을 항상 첫째 성막 안에서만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수행했습니다. 둘째 성막에는 일년에 단 한번 대제사장이
피를 들고 들어가 속죄의 피를 뿌리는 것을 제외하고 누구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론은 회중의 성막 안
곧 증거/판/의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주] 앞에
계속해서 그것을 정비(整備)할지니 이것이 너희 대대로
영원한 법규가 될지니라.
](레24:3). 주님은 휘장을
두심으로써 제사장들은 휘장 밖에서 주님을 섬겨야
했습니다. 주님의 얼굴을 마주 보며, 주님의 직접적인 임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주님을 섬긴 시대가 바로 구약의
율법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 휘장을 만들게
하신 것은 인간은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휘장이 가로 막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휘장을
걷어주시지 않는 이상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 역시 우리와 직접적으로 대면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휘장을 만들게
하신 것은 하나께서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분리하시고
구분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리와 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흔히 세속적인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은 통합과 연합의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너무나 다릅니다. 하나님은 혼합을 유난히
싫어하십니다. 간단한 예를 보겠습니다. [네 포도원에
여러 가지 씨를 섞어 뿌리지 말지니 그리하면 네가 뿌린
씨의 열매와 포도원의 열매가 더러워질까 염려하노라. 너는
소와 나귀를 함께하여 밭을 갈지 말지니라. 너는 양털과
베실로 섞어 짠 것같이 여러 가지로 섞어서 짠 옷을 입지
말지니라.
](신22:9~11). 주님은 이스라엘의 생활 방식에서
조차도 혼합을 거부하도록 하셨습니다. 구분과 경계를 두는
것은 순결과 거룩함의 첫째 요건입니다. 오늘날
유전공학이라고 해서 여러 가지 종자의 성질을 혼합해서
변종을 만드는 것은 주님이 매우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내 법규를 지킬지어다. 네 가축을 다른
종류와 교미시켜 /새끼를/ 낳게 하지 말고 네 밭에 씨를 섞어
뿌리지 말며 아마와 양털을 섞은 옷을 입지 말라.
](레19:19).


하나님은 유대인들이
이방인들과 결혼하는 것을 극히 싫어하셨고, 가증이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인종통합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국제결혼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연합하거나 세상 사람들과 멍에를
같이 메는 것을 결코 원치 않으십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들과 공평하지 못한 멍에를 메지 말라. 의와 불의가 어찌
사귀겠으며 빛과 어둠이 어찌 친교를 나누겠으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일치하겠으며 혹은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어찌 한 몫을 나누겠으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들이 어찌 조화를 이루겠느냐?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이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고 그들 가운데 거닐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주}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가운데서 나와 /너희 자신을/
분리하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아들딸이
되리라. 전능자 {주}가 말하노라, 하셨느니라.
] (고후6:14~18).
신자가 불신자와 결혼하여 몸이 연합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며, 그리스도인들이 믿지 않는 자들과 집회를 하면서
마음을 같이하는 것을 주님은 원치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분리를 명하십니다.

성막에서 주님의 분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한 가지가 바로
‘휘장’입니다. 휘장은 하나님과 인간을 분리합니다.
휘장이 있는 한 인간은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없습니다.


31절입니다. [너는
정교한 솜씨로 청색과 자주색과 주홍색 /실/과 가늘게 꼰
아마 /실/로 휘장(揮帳) 하나를 만들되 그룹들을 /수놓아/
그것을 만들지니라.
](31). 휘장을 만든 재료는 4가지 청색,
자주색, 주홍색, 흰색(아마) 실로 가늘게 꼬아 만들고 그
위에 그룹들을 수놓아 만들었습니다. 이는 마치 사복음서가
주님의 4가지 면을 조화롭게 보여 주듯이 주님의 인성과
신성을 골고루 보여 주고 있습니다.


청색은 하늘의 색입니다.
이미 앞에서 언급했듯이 하늘을 나타내는 색이 청색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나신 분이시며, 하늘에서 오신
분이십니다. [첫 사람은 흙에서 나서 땅에 속하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로부터 나신 주시니라
.](고전15:47).
주님은 친히 말씀하시기를, [이는 하늘로부터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자 곧 그가 하나님의 빵이기 때문이라.
](요6:33),
[이는 내가 내 뜻을 행하려고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려고 내려왔음이니라.
](요6:38).
주님은 하늘로부터 내려 오셨습니다. 이것이 청색이
상징하는 영적 의미입니다. 주님은 하늘에서 오셨고, 하늘에
계신 분이셨습니다(요3:13). 주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셨는데 청색은 사복음서 중
요한복음이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요한복음


자주색은 왕이나 귀족들이
입던 고급 옷감에 사용되는 색입니다. 자주색은 부와 존귀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왕들은 대부분 자주색 옷을
입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드온이 미디안을 쳐서
전리품을 취한 장면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기드온이
요청한 금 귀고리의 무게가 금으로 천칠백 세겔이요, 그
외에 장식과 목걸이와 미디안 왕들이 입었던 자주색 의복과
또 그들의 낙타 목에 둘렀던 사슬이 있었더라.]
(삿8:26).
자주 색 옷이 왕복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요하심과 왕권을 상징하는 색입니다. 주님은
유대인의 왕이시며, 만왕의 왕이십니다. 시편8:6에 [
주께서 그로 하여금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들을 지배하게
하시고 모든 것을 그의 발 아래 두셨사오니
] 라고
말씀하신대로 주님은 모든 것을 발아래 두신 지배자요
왕이십니다. [이들이 어린양과 전쟁을 하려니와
어린양께서 그들을 이기시리니 이는 그분께서 주(主)들의
주시요, 왕들의 왕이시며 또 그분과 함께 있는 자들이
부르심을 받고 선택받은 신실한 자들이기 때문이라, 하더라.
](계17:14).
이를 통해 볼 때 자주색은 왕되신 주님을 상징함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빌라도의 법정에서 자주색 옷을 입고
이스라엘의 군중들 앞으로 불려 나오셨습니다. [2군사들이
가시나무로 왕관을 엮어 그분의 머리에 씌우고 자주색 긴
옷을 입히고...5이에 예수님께서 가시나무로 엮은 왕관을
쓰고 자주색 긴 옷을 걸치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을 보라! 하니
](요19:2,5). 주님이 입으실
옷은 사람들이 입혀 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스스로 옷을
입으십니다. 자주색은 사복음서 중에 마태복음이 증거하는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마태복음


주홍색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고난을 상징합니다. 마태복음에는
주님이 주홍색 옷을 입으신 것으로 나옵니다. [그분의
옷을 벗기고 주홍색 긴 옷을 입히더라.](마27:28). 주홍색은
우리가 지은 죄의 색이기도 합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이제 오라. 우리가 함께 변론(辯論)하자. 너희 죄들이 주홍
같을지라도 눈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어지리라/.
](사1:18). 우리의 죄는 주홍 같으며,
진홍같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흘린 피로 이 죄를 씻기십니다.
-누가복음


흰색 아마포 옷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입혀 줄 의의 옷이며, 주님께서 입으실
옷입니다. 흰색은 순결과 의를 나타냅니다. 흰옷은 이기는
자들이 입는 옷입니다. [사데에도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몇 이름이 네게 있어 그들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걸으리니 이는 그들이 합당한 자들이기 때문이라. 이기는 자
곧 그는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의 이름을 생명 책에서
지워 버리지 아니하고 그의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분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계3:4-5). 하늘에서 입게 될
옷이 모두 흰 옷입니다. -마가복음


흰 옷은 수치를 가리는
옷입니다. 희다는 말은 깨끗하다는 뜻입니다. 덕분에 그만큼
더러움을 쉽게 타고, 약간만 신경 쓰지 않으면 금방 얼룩이
지고, 때가집니다. 이는 교회와 성도들 역시 조금만
부주의하면 금방 더러워진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성도들에게 검은 색 옷을 입게 하셔서 때가 타도 먼지가
앉아도 보이지 않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천사들이 입은 옷의 색도
흰 옷입니다.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그 /성/전에서
나오는데 순결하고 흰 아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띠를
띠었더라.
](계15:6).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흰 말을 타고 그분을 따르더라.
](계19:14).
부활하신 예수님의 동굴에 있던 두 천사들 역시 흰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막16:5,요20:2). 우리 주님이 입으신 옷도 흰
옷입니다. 주님은 변화산에서 이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사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옷이 빛같이
희게 되었더라
.](마17:2). 우리는 자주 빨래를 하는
아낙네들처럼, 자신의 몸을 씻는 사람들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 받고 말씀의 물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죄를 씻기는 것은 피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온 몸이 깨끗하니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요13:10a). 우리는 매일
발을 씻듯이 그렇게 자신을 깨끗하게 씻을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 약속들을 가졌은즉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완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모든 더러움에서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고후7:1).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주님께 귀한 그릇으로 쓰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이런 것들로부터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하게 쓰는 그릇 곧 거룩히 구별되어 주인이
쓰기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된 그릇이 되리라.
](딤후2:21).
깨끗함을 입은 성도가 개가 자기가 토한 것으로 되돌아가
가고, 씻겨진 돼지가 진창 속에서 뒹굴 듯이(벧후2:22) 옛
생활의 습관 속으로 돌아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매일 성소에
들어와서 지성소 앞에 가려진 휘장을 볼 때마다 이들은 이
점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시 31절을 보십시오. [너는
정교한 솜씨로 청색과 자주색과 주홍색 /실/과 가늘게 꼰
아마 /실/로 휘장(揮帳) 하나를 만들되 그룹들을 /수놓아/
그것을 만들지니라.
](31). 주님은 정교한 솜씨로 휘장
하나를 만들게 하셨습니다. 대충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정교한 솜씨란 숙달된 기술자의 노련한 능력을 다 발휘해서
최상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정교한 솜씨로 만들라고 한
것은 휘장(앙장)과 흉패에만 사용한 말씀입니다. 모든 것을
다 정교하게 만들어야겠지만 성막에서 주님은 이 두
가지에만 정교한 솜씨로 만들라고 특별히 명하셨습니다.


정교한 솜씨란 주님께서
지혜와 명철과 지식과 온갖 기술에서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케 하심으로 일하게 하신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역시
일을 할 때 주님께서 일을 할 수 있는 지혜와 명철과 지식의
영을 주시도록 구해야 합니다. 성령은 단지 마음 속에 영적
평안, 정신적인 기쁨, 추상적인 개념과 관념에만
역사하신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생활,
우리의 작업하는 일손에 직접 역사하십니다. 창의력과
기술은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무엇을 디자인을 하든,
몸에 침을 놓든, 사진을 찍든, 정원을 꾸미든, 페인트를
칠하든 모든 일에 주님의 영으로 충만할 때 놀라운 솜씨가
발휘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보라, [주]께서 유다 지파에 속한 훌의 손자 우리의 아들
브살레엘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지혜와 명철(明哲)과 지식과
온갖 기술에서 하나님의 영으로 그를 충만하게 하사 정교한
일들을 고안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일하게 하시며 보석을
깎아 물리며 나무를 새겨서 온갖 정교한 것을 만들게 하셨고
또 그와 단 지파에 속한 아히사막의 아들 아홀리압의 마음
속에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넣어 주셨으며 마음의 지혜로
그들을 충만하게 하사 온갖 일을 하게 하시되 곧 조각하는
일과 정교한 일과 청색과 자주색과 주홍색 /실/과 고운 아마
/실/로 수놓는 일과 짜는 일과 그 어떤 일이라도 하게 하시고
또 정교한 일을 고안하게 하셨느니라.
] (출35:30~35).


주님은 휘장에 그룹들을
수놓게 하셨습니다. 그룹들의 일차적인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룹은 늘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은 그룹들 사이에
거하신다는 점에서 주님의 임재를 표시하시기 위함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휘장 자체가 사람이 되신 주님의
육체를 나타내는 것이라면 휘장에 그룹들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룹이 수 놓여 있다는 말은 그
안에 주님이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고로 휘장은 주님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그룹은 인간이 타락하여
쫓겨난 에덴의 낙원을 지키는 존재들이었습니다. 불 칼을
들고 인간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지키는 모습을 통해
죄악된 인간이 나아갈 수 있는 곳이 그룹들 앞까지란
사실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자신을 지으셔서 두신 곳,
자신을 부르시던 곳에 다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룹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휘장에 수 놓인 그룹들은 인간의
죄악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룹들이 그 자리에서
철수하기 전에는 절대로 우리는 주님께 돌아갈 수 없습니다.
휘장이 찢겨짐으로 수놓이 그룹들 역시 찢겨졌는데 더 이상
그룹들은 인간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것을 막아 설 수
없다는 점을 말해 줍니다.


32절입니다. [너는
시팀나무로 만들어 금을 입힌 네 기둥에 그 휘장을 걸고
기둥의 갈고리들은 금으로 만들어 은으로 만든 네 개의
밑받침 위에 둘지니라.
](32). 나무로 만들어 금을 입힌 네
기둥에 휘장을 걸었습니다. 휘장은 네 기둥에 걸리고
팽팽하게 고정되었습니다. 그냥 펄럭이거나 접히거나 고이
보관된 것이 아닙니다. 네 기둥 역시 사복음서와 마찬
가지로 주님의 인성과 신성을 골고루 조화롭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33절입니다. [또 너는 그
휘장을 갈고리들 밑에 걸어 놓고 증거궤를 휘장 안에 들여
놓을지니 그 휘장이 너희를 위하여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리라.
](33). 이로써 성소와 지성소는 완전히 분리되고
말았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기를,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성막은 지성소라 일컬음을 받나니
](히9:3)라고 한
그대로입니다. 이곳은 거룩히 구분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휘장이 주는 영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휘장은 그 자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가리킵니다. 성경이 직접 말하기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새롭고 살아 있는 길로 지성소에 들어갈 담대함을 얻게
되었나니 이 길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휘장
곧 자기의 육체
를 통해 거룩히 구분하신 것이니라.
](히10:19~20)고
말씀합니다. 성막의 휘장이 가르쳐 주는 진리는 그것이
주님의 육체란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온 몸에서 피와 물이 쏟아졌을 때 성소와
지성소를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갈라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외치시고 숨을
거두시니라. 이에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둘로
찢어지니라.
](막15:37~38). 육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께서
숨을 거두실 때 정확하게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둘로 찢어졌다는 것은 주님이 바로 휘장의 본체임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이 거하시는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휘장으로 막혀 있지 않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몸으로
휘장을 제거하심으로써 믿는 자는 누구든지 주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늘의 하나님께 언제든지 두려움 없이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더 이상 접근을 막는 불 칼을 든 그룹들은
없습니다. 대신 우리에게는 죄없는 대제사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4:16).
우리는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담대함을
가지고 확신 있게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엡3:12).
저는 모든 성도들이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십자가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기도를
한다는 것은 주님의 희생과 십자가를 더욱 높여 드리는
일이며, 가치 있게 하는 일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일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소망을 가져 오셨습니다. 이 소망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 갈 수 있습니다. [이는 율법은
아무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하였으되 /주께서/ 더 나은
소망을 가져오심은 /완전하게/ 하였기 때문이니 우리가 이
소망을 힘입어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느니라.
](히7:19).
기도한다는 것은 주님께 소망을 둔 사람이란 증거이며,
믿음의 표현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소망이 있습니까?
주님이 주신 산 소망, 복된 소망, 영광스런 소망이 있다면
여러분은 분명히 기도의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믿음의
대상이 그리스도이듯이, 소망의 대상 역시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신비의 영광이
이방인들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가를 자신의 성도들에게
알게 하려 하시나니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시니라
.](골1:27). 여러분 안에 있는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는 담대히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가고, 필요한 것을 아뢰고, 모든 것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있는 소망입니다.


히브리서 6:19에 [우리에게
있는 이 소망은 혼의 닻과 같아서 확실하고 굳건하여 휘장
안에 있는 곳으로 들어가나니
](히6:19)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이 소망은 이스라엘의 소망이요, 성도들의
소망인데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혼의
닻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확실하고 굳건한 혼의
닻이어서 저 우주의 창공을 넘어서 유리 바다를 통과하여
하늘의 보좌에 계신 하나님 앞으로 우리를 빠르고 안전하게
인도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향해
발하는 기도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 인해 저 하늘에 있는 보좌로 그대로 연결됩니다.
그래서 어느덧 우리는 이미 지성소 안에 들어가 주님 앞에서
대화하는 것과 동일한 상태가 됩니다.


휘장 안에 있는 곳 즉
지성소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이는 우리가 마리아나
캐톨릭 교회가 지정한 성인들이나 교회의 성직자들을
통해서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곧 바로 직접
아버지께로 갈 수 있음을 말해 줍니다. 구약에서 휘장 안에
들어갈 수 있었던 사람은 1년에 단 한 차례 대제사장이 피를
들고 가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히브리서 9:7에 [오직 둘째 /성막/에는
대제사장이 홀로 해마다 한 번씩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잘못으로 인하여 /주께/ 드리는 피 없이는 들어가지
아니하였나니
]라고 증거 합니다(레16:15참조). 우리는
짐승의 피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를 통해
지성소에 언제나 들어갈 수 있습니다.


지성소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자기 자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히 구별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느니라. 그런즉 우리가 그분의 수치를
짊어지고 진영 밖에 계신 그분께로 나아가자.
] (히13:12~13).
진영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진영 밖에
계신 그분께로 나아가지 않는 사람은 결코 휘장 안에 있는
곳으로 갈 수 없습니다. 갈보리 십자가의 언덕을 거치지
않고 저 하늘의 보좌로 가는 길은 없습니다. 갈보리에서
흘린 하나님의 피를 얻은 사람만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피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에
따라 거의 모든 것이 피로써 깨끗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면(赦免)이 없느니라
.](히9:22). [이는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니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 위에 /뿌려/ 너희 혼을 위해 속죄하게 하였나니 이는
피가 혼을 위해 속죄하기 때문이니라
.](레17:11). 주님은
자기 자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히 구별하시기 위해서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피는 모든 죄를 다 사해 주며
깨끗하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씻지 못할 죄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저는 지난 세월동안 제가 지은 죄만
생각해도 끔찍하지만 계속해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죄성을 생각하면 저주스럽습니다. 죄는 권세가 있습니다.
죄는 강한 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죄에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
여러분은 죄의 욕망과 죄의 권세로 인해 나도 모르게 짓던
죄로부터 해방되며, 자유함을 입는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유전인 줄 알았던 것이 사실은 죄의 습관이었습니다. 성격인
줄 알았던 것이 사실은 죄 문제였습니다. 생활 습관인 줄
알았던 문제가 사실은 죄의 정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이런 죄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사망에서 해방시켜 줍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를 더 이상 죽음의 종노릇하지 않게
합니다. 죽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피의 능력은 죽음의 공포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줌으로써 원수 된 사망을 이기게 해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보혈은 저주에서 해방시켜 줍니다. 예화-종교 개혁을 단행한
신앙의 영웅 마틴 루터가 몹시 아파서 병상에 누워 있는데
어느 날 마귀가 들어와서 루터를 비웃듯이 응시하더니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안고 온 큰 두루마리 책을 마루에다
두르르 펴놓는데 보니까 마틴 루터가 평생 지은 죄를 다
기록해 놓았더랍니다. 루터는 주눅이 들고 낙심이 돼서
침묵하고 있다가 갑자기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큰소리로
“너 한 가지 잊은 것이 있구나. 이것은 다 사실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이 모든 죄를 다 씻었다”라고 외치자
참소하는 마귀와 두루마리가 사라져 버리고 말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주님을 찾아야 하겠습니까? 성문 밖입니다. 성문 밖에
나가려 하지 않고 계속 성문 안에서만 머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적으로 성문 밖의 용례를 찾아보면 첫째, 성문
밖은 나병 환자와 부정한 자에게 주어진 거처였습니다(레13:45-46).
그곳은 또한 죄 헌물을 가져다 놓는 곳으로 그 몸은 완전히
태워졌습니다(레4:11,12;16:27). 둘째, 이스라엘이 주 하나님
대신 금송아지를 구원자로 경배함으로 자신들을 더럽히자,
모세가 진영과 멀리 떨어져서 회중의 성막을 친
곳이었습니다(출33:7-11). 셋째, 주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기
위하여 끌고 간 곳이었습니다. 성문 밖은 마치 추방당한
사람들의 거처와 같은 곳입니다. 주님을 성문 밖으로 끌고
갔던 것은 성문 안에는 주 예수님을 위한 장소가 없음을
드러낸 것입니다(요 21:17,18; 히 13:12). 세상 어디에도 주님이
계실 곳이 없었습니다. 진영 밖이란 하나님의 죄의 심판,
악으로부터의 분리, 그리스도의 배척당하심을 나타내는
말이기에 우리는 그곳으로 가야만 합니다. 성문 밖은 하나님
앞에 우리를 가로막는 휘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가
찢긴 곳입니다.


저 셋째 하늘의 하나님
보좌로 가는 길인 Heaven gate는 갈보리 언덕에 있습니다.
이곳은 공개된 비밀 장소입니다. 하늘로 가는 길을 찾는
사람들이 세상 어디에서도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죽으신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
바로 그곳이 하늘의 보좌로 갈 수 있는 출발 장소이며
직통으로 연결된 길인 것입니다. 하늘로 가는 새롭고 산
길이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여러분은 휘장이신 주님께서
휘장을 찢으신 갈보리 십자가로 나아가 주님을 만나고 휘장
안으로 들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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