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출애굽기 30:22-33
요절: 출애굽기 30:29-30
오늘은 붓는 기름에
대해서 말씀을 증거 하겠습니다. 기름은 성령을 예표합니다.
성경에서는 피, 물, 기름이 가장 중요한 액체로 나옵니다.
사람들은 흔히 피땀 흘려 일한다고 피와 땀을 강조하지만
주님은 피, 물, 기름을 반복적으로 말씀하십니다. 피와 물은
죄의 속죄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피와 물은 깨끗함, 거룩함,
죄의 제거 등을 위한 것이지만 기름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름은 사역, 능력, 섬김, 봉사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기름은
향기가 납니다. 기름을 불을 밝힙니다. 기름은 병을
고칩니다. 기름의 용도는 거의 무한대입니다. 물이 없이 살
수 없듯이 기름이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물과 피, 기름은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나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물은 향기가 없습니다. 물은 빛을 낼 수
없습니다. 물로 불을 피울 수 없습니다. 물은 더러움을
씻어내지만 물로 씻어내지 못하는 때는 기름으로
씻어냅니다. 기름이 없으면 제대로 요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을 구하는 것만큼이나 기름을 구하는데
힘을 씁니다. 기름은 그냥 구하는 것이 아니라 식물의
줄기나 열매를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농사를 지으면
참깨, 들깨, 콩 등 거의 모든 열매에서 기름을 짜내려고
합니다. 기름은 식용으로, 약제로, 에너지로 갖가지 용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성막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이 쓰는 물두멍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주님은 성막 봉사에 사용할 기름의 제조법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물로 씻음받은 성도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거룩한
기름부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맨 먼저 피로 죄를 사함 받아야 합니다. 물로 자신을
씻어야 합니다. 다음에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필요합니다.
“사역자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과도한
사역이 아니라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없이 하는 일 때문이다”란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을 힘들고 지치게 만드는 것은
예배나 기도나 찬양이나 말씀 사역이 너무 무겁고
힘들어서가 아닙니다. 성려의 기름 부으심 없이 그런 일들을
행하려고 하기 때문에 쉽게 지치고 힘든 것입니다. 영적인
사역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없이는 단 하나도 제대로 되는
법이 없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목자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위에 주의 성령이 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자신이 하는 일이 너무 힘들다고 불평했을 때,
주님은 모세 위에 있는 영을 취하사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내가 내려와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 위에
있는 영(靈)을 취해 그들 위에도 있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담당하지 아니하리라.](민11:17).
모세는 자신이 힘들다고 일을 분담해 주시기를 구했는데,
주님은 단지 모세 위에 있는 영을 취하사 70명에게 나누어
주셨을 뿐입니다. 이는 모세에게 충분히 필요한 능력과
권능과 지혜를 주셨음을 보여 주는 예입니다. 이미 우리는
받은 것들을 없다고 생각하거나 적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능력에 맞는 일을 구하지 말고
일에 맞는 능력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값없이, 풍성하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제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무는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활동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행하시는 하나님은 같으시되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나심을 주신 것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유익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통하여 지식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통하여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통하여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기적들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대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여러 종류의 타언어들을,
어떤 사람에게는 타언어들 통역함을 주시거니와 이 모든
것은 같은 한 /성/령께서 행하사 자신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고전12:4~11).
여러분이 자신의 필요를 구할 때 주님은 그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성도들이 성령 없이 수행하는 일을 주님은
결코 받으시지 않습니다. 피가 뿌려지고, 물로 씻은 후에
반드시 기름부음이 있어야만 합니다. 주님의 직무를
수행하는데 이 셋 중 하나라도 빠지면 그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영적인
제사장으로서 구약의 예를 통해 훈계를 받고, 깊은 경고를
받아야만 합니다. 또한 말씀을 통해 우리 역시 주의 거룩한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이란 사실을 알고 주님을 어떻게 섬길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모든 일은 반드시 성령 안에서
행해야 하며, 성령 안에서 걸어야 하고, 성령을 통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22-25절입니다. [[주]께서
모세에게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또한 으뜸가는 향료를
취하되 순수한 몰약 오백 세겔과 그 절반 만큼의 향기로운
육계(肉桂) 이백오십 세겔과 향기로운 창포(菖蒲) 이백오십
세겔과 성소의 세겔에 따라 계피 오백 세겔과 올리브 기름
일 힌을 취하여 그것으로 거룩한 기름을 만들되 약제사의
제조법대로 기름 혼합물을 만들지니 이것이 기름부음에 쓸
거룩한 기름이 될 것이니라.](22-25). 성소의 기름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재료들과 제조법입니다. 재료는 순수한
몰약, 향기로운 육계, 향기로운 창포, 계피를 정해 주신
비율대로 썩어서 만들었습니다. 주님은 이것들을 “으뜸가는
향료”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단순히 기름이 아니라
기름에는 진한 향기가 나는 기름을 만들게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최상의 향기를 낼 수 있는 거룩한 기름을 만들게
하기 위해서 재료와 비율을 정해 주셨고, 최상품을 사용하게
하셨습니다.
순수한 몰약 오백 세겔은
당시 최상의 향료였습니다. 몰약은 거의 아라비아에서
발견할 수 있는 낮은 가시나무에서 추출되는 귀중한 것으로
좋은 연고를 만드는 중요한 성분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시체의 부패를 방지하는 역할을 하며, 의약품과 향수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몰약은 3개의 작은 잎이 모여 한 잎을
이루고 이것은 어긋나오는데, 나무 원줄기에 상처를 내거나
또는 자연히 흘러내린 진액입니다. 이는 우리 주님의 십자가
사역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몰약을 포도즙에 타면
강력한 마취제 역할을 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셨을 때 사람들이 그 입에 몰약을 제공한 것은
십자가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감해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막15:23).
놀랍게도 몰약은 우리 주님께서 동방의 현자들에게 받은 세
가지 선물 중의 하나입니다. 니고데모는 주님의 몸을
거두어서 그 안에 몰약을 넣었습니다. [또 처음에
예수님을 밤중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알로에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오니라.](요19:39). 주님은
태어나시면서 몰약을 선물로 받으셨고, 죽으실 때 몰약을
받으셨습니다. 몰약으로 시작된 인생이요, 몰약으로 마감한
이 생이었습니다.
주님은 몰약 꾸러미가
되십니다.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이는 내게 몰약
꾸러미가 되시나니 밤새도록 내 젖가슴 사이에
누우시리로다.](아1:13). 이는 내게 몰약 꾸러미인
주님으로 인해 우리는 고통을 받지만 고통을 잊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내게 몰약 꾸러미인 주님으로 인해 우리는 향기를
품습니다. 내 안에 주님을 품고 있으면 저절로 향기를
품습니다. [이는 우리가 구원받은 자들 중에서나 멸망하는
자들 중에서나 하나님을 향한 그리스도의 향기로운
냄새이기 때문이니](고후2:15). 우리 주님은 몰약의 향기를
풍기십니다. [왕의 모든 옷은 상아 궁궐에서 나오는
몰약과 알로에와 계피의 향내를 풍기오니 이것들로
사람들이 왕을 즐겁게 하였나이다.](시45:8). 성막에
기름에 사용된 향료들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주님께서 향기로운 육계를
몰약의 반에 해당하는 이백 오십 세겔을 넣게 하셨는데
육계란 말은 우리에게 매우 생소한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계피라고 하는데 우리 성경에서 육계라고 번역한 것은
계수나무 껍질을 벗겨 외피(外皮)를 제거하고 건조시킨 것
중에, 새로 나온 어린가지로 지름이 1㎝이하의 연한 나무
껍질을 벗긴 것을 계피(桂皮)라 하고, 다소 굵은 가지나
줄기의 껍질을 벗긴 것을 육계(肉桂)라 했기 때문입니다.
육계는 일반적으로 시나몬(Cinanamon) 또는 시론 시나몬(Ceylon
Cinnamon)이라는 영명으로 통용되며, 히브리어로는 Kinnamon으로
학명은 Cinnammomun Zeylanicum(C.Verum)입니다. 육계는 열대성
상록수입니다. 높이 10m까지 자라며, 길이 15∼20㎝에 폭 6㎝의
큰 잎에 세 줄의 굵은 엽맥과 광택이 있으며, 가지 끝의
엽액에서 황백색의 잔꽃이 많이 피며 1㎝정도의 둥근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이 나무의 포기에서 새로 나오는 어린
가지를 골라서 그 껍질을 벗겨 외피를 제거한 후에 건조시킨
것이 시나몬(시론계피), 즉 육계(Cinnamon Bark)인데 담황갈색의
종이처럼 매우 엷은 껍질입니다. 이것을 몇 장씩 포개어서
돌돌 만 것이 'Quill'이라는 가장 고급품의 계피인데, 고상한
향이 있으며 씹으면 상쾌한 맛과 단맛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흔히 쓰는 계피 같은 매운맛이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육계(시나몬)는 옛부터 향료, 향수, 향미료, 약용
등에 아주 귀하게 쓰인 값비싼 무역상품이었습니다(겔27:19,
잠7:17, 아4:14, 계18:13, 시편 45:8). 성경에 나오는 육계는 주로
여인들이 자신의 방을 치장하며 향기를 내는 향료입니다. 이는
질투를 상징하는 향료입니다. 우리 주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성전에서 주를 향한 열심(zealous-질투)을
여과 없이 보여 주셨습니다.
향기로운 창포 이백 오십
세겔은 우리 주님께서 신부인 교회를 지칭할 때 사용하신
말씀하십니다. [네 초목들은 아름다운 열매를 지닌
석류나무와 나드 향을 내는 고벨화와 나드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나무와 모든 유향나무와 몰약과 알로에와
으뜸가는 모든 향료요,](아4:13-14). '창포'라고 하면,
우리는 5월 단오 날에 창포 잎을 삶은 물(창포탕)에 머리를
감아서 액막이 하는, 오랜 전통의 민속에 얽혀 있는 창포(菖蒲
: 白菖)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성서 식물학에서 창포만큼
논란이 많은 식물도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 창포로 번역된
히브리어 카네(Kaneh)라는 식물은, 벼과에 속해 있는 향기로운
다년초인 '새(Cymbopogen)'를 지칭한 것으로서, 주로 아시아의
열대와 아프리카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식물
학자들은 Kaneh는 창포가 아니라 '향기새(진저 그라스:Ginger
grass)'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 향초(香草)는 잎을
비벼보면 짙은 향기가 나는 것이 특징인데, 그 향기에
따라서 이름이 각각 다르게 붙여져 있습니다. 창포는 소나
양이 먹으면 그 우유로 만든 버터에까지 그 향기가 그대로
풍깁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열면 3000년이 지났지만 창포
향기가 난다는 고고학자들의 증언도 있고 보면 이 향기가
얼마나 강한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1881년에 이집트에서
매장된 지 3,000년이 지난 20∼21대의 이집트왕조의 파라오
왕릉을 발굴하였을 때, 카멜 그라스의 강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것으로써 매장용 향료로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을 접한 성도들이 어디서나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고,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주님의
향기는 온 세상을 진동하고 있음을 볼 때 주님께서 왜 이
창포를 사용하게 하셨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창포는 잎이나 줄기를
베어서 짓이겨서 사용했는데, 우리 주님이 사악한 자들의
손에 넘겨져서 얼마나 철저하게 짓이겨 지셨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짓이겨짐으로써 향기를 내는 창포와 같이 우리
주님은 죄인들의 손에 맞으시고, 침 뱉음을 당하시고, 못
박히시고, 창에 찔리심으로 그 향기를 내셨던 것입니다.
계피는 오백 세겔을 넣게
하셨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계피는 매우 익숙합니다.
계피는 한방에서 가지, 잎 등을 증류하여 계피유(Cassia Oil)를
만들어서 약용과 향료로 쓰고 있습니다. 계피는 건위, 발한,
해열, 진통제로 중추신경 계통의 흥분을 진정시키며
수분대사(水分代謝)를 조절하는 탁월한 효능이 있으므로
한방에서 감기나 신체의 동통 등에 쓰고 있습니다. 덜 익은
열매를 'Cassia Buds'라고 하여 향신료로서 고급과자에
쓰입니다. 계피 떡, 계피 사탕, 수정과 등에 특수한 맛을
내는 향신료로도 사용됩니다. 계피는 그 식물의 이름이 갖는
어근이 ‘복종하다, 구부리다’입니다. 이는 우리 주님의
생애를 잘 예표합니다. 주님은 모든 일에 완전한 순종을
보이셨습니다.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이상에서 4가지 재료는
모두 주님을 잘 예표합니다. 몰약은 주님의 죽으심을,
육계는 하나님을 향한 주님의 질투를, 창포는 주님이
당하시는 고난을, 계피는 주님의 순종과 겸손을 각기
예표합니다. 4가지 재료는 성령을 예표하는 올리브기름과
섞여서 거룩한 기름이 됩니다. 주님의 모든 말씀과 사역은
성령을 통해 하나님께 드려지며, 우리 안에 이루어집니다.
주님의 죽으심이 어떻게 나의 죽음이 됩니까? 성령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성령께서는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믿는 자를
믿는 순간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줌으로써 그리스도의
모든 것이 내 안에 들어오게 합니다. 주님의 죽으심이 나의
죽음이 되게 하며, 주님의 장사지냄이 나의 장사 지냄이
되게 하십니다. 주님의 부활을 나의 부활이 되게 합니다. 이
모든 일은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24-25절입니다. [성소의
세겔에 따라 계피 오백 세겔과 올리브 기름 일 힌을 취하여
그것으로 거룩한 기름을 만들되 약제사의 제조법대로 기름
혼합물을 만들지니 이것이 기름부음에 쓸 거룩한 기름이 될
것이니라.](24~25). 주님은 4가지 향료들을 올리브 기름 일
힌을 취하여 거룩한 기름을 만들게 하셨는데, 약제사의
제조법대로 기름 혼합물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이는
불순물이 전혀 들어가지 말게 하라는 것입니다. 약제사는
약에 쓸 기름을 만들 때 조금이라도 상하거나 작은
미생물이라도 들어가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합니다. 2:1:1:2의
비율은 약제사의 조제 비법에 해당합니다. 기름이 곧
약입니다. 이는 우리 주님께서 기름을 부으사 병을
치유하시는 사역을 예표합니다. [{주}의 영께서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음이라. 그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구원을,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선포하고 짓밟힌 자를 자유하게 하며](눅4:18).
주님의 우리의 몸을 고치실 뿐 아니라 우리의 상한 영과
혼을 고치십니다. 오늘날 은사주의자들이 몸의 치유를 신유
은사의 전부인줄 알지만 신약 성경은 몸의 치유보다 상한
마음의 치유를 더욱 중요하게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몸이
병든 자를 고치시기 전에 먼저 죄를 사하신 점에 주목해
보십시오. 사람의 영이 온전해 지고, 속 사람이 강건해지면
육체의 질병은 거뜬히 이겨내는 법입니다. [사람의 영이
그의 병약(病弱)한 것을 지탱하려니와 상처 입은 영은 누가
감당하리요?](잠18:14). 사도 바울이나 디모데나 그의
사역자들이 몸이 약했지만 은혜로 강건해지고, 영이
강건했기에 모든 질병을 거뜬히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약제사의
제조법대로 혼합하여 기름을 만들게 하신 것은 구약에서
기름이 매우 중요한 약제로 사용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몰약, 육계, 창포, 계피는 한방에서도 매우 중요한 약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구약 성도들은 성경대로
믿고 살기만 하면 신체적 질병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르시되,
네가 [주] 네 하나님의 음성에 부지런히 귀를 기울이고 내
눈앞에서 옳은 것을 행하며 내 명령들을 귀담아 들으며 내
모든 법규를 지키면 내가 이집트 사람들에게 내린 이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치유하는 [주]이기 때문이라, 하시니라.](출15:26). 신약의
성도들은 이런 약속은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이런
약속이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장로들은 {주}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약5:14).
오늘날 좀처럼 실행되지 않는 규례 중의 하나입니다. 약하고
병이 잘 드는 성도들은 영을 강하게 하시고 주님 앞에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사람의 영이 그의 병약(病弱)한
것을 지탱하려니와](잠18:14a)란 말씀대로 영을 강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26-29절입니다. [너는
그것으로 회중의 성막과 증거궤에 바르고 상과 그 모든
기구와 등잔대와 그 기구와 분향 제단과 번제 헌물 제단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그것들을 거룩히
구별하고 지극히 거룩하게 할지니 그것들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지 거룩하게 되리라.](26-29). 기름의 용도는
일차적으로 바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막과 증거궤에
바르게 하셨습니다. 상과 모든 기구, 등잔대, 분향 제단,
번제 헌물 제단, 모든 기구, 물두멍, 그 받침에도 바르라고
하셨습니다. 성막의 모든 기구는 모두 철저히 주님의 사역을
예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섬기는 우리들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피만 뿌린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피와 더불어 기름이 필요합니다.
우리 주님의 구속 사역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성령을
통해서만 이루어 졌습니다. 주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성령 충만함을 입으셨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셨고, 성령을
통해 일하셨습니다. 성령을 통해 자신을 제물로 드리셨고,
성령의 능력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는
일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성막의 모든 부분에 기름이
발라져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모든 일에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는 생각, 말, 행실에서
집이나 직장이나 학교에서, 교회나 어디에서 주님의
피뿌림과 말씀의 씻음과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어야 함을
거듭 기억해야 합니다.
30-31절입니다.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기름을 붓고 그들을 거룩히
구분하여 그들로 하여금 제사장 직분으로 나를 섬기게 하라.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이것은 너희
대대로 내게 기름부음에 쓸 거룩한 기름이 될지니](30-31).
주님은 성막의 기구들에 바르는 동일한 기름을 자신의
제사장들에게 부으십니다. 기름부음이 없다면 아무도
주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피로 죄를 사하고, 물로 자신을
씻어 정결하게 한 다음에는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어야만
합니다. 제사장 직분으로 주님을 섬기는데 필수적인 자격은
기름부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주님에게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님께
성령님과 권능으로 기름을 부으시매 그분께서 두루
다니시며 선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억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하셨음이라.](행10:38).
주님이 능력 있게 행하신 모든 일은 기름 부으심 때문입니다.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께서 즐거움의 기름을 주에게 부어
주의 동료들보다 높이셨나이다, 하시고](히1:9).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역자로 삼아 줍니다.
구약의 왕, 제사장, 대언자들은 주님의 기름 부음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제사장
사독과 대언자 나단은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이렇게 기름부음을 받은 것은 하나님 앞에서 직분을
받았음을 말합니다. 반면에 아합이나 오므리가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까? 그들은 왕이었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기름 붓지
않았습니다. 반면 악한 왕이었지만 예후는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기름을 부었다는 것은 주님이 임명장을 주신
것과 같습니다.
저와 여러분 역시 이런
기름부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영적인
제사장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게 세우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분은 하나님이시니 그분께서 또한 우리를 인치시고 우리
마음 속에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느니라.] (고후1:21~22).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의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고, 말씀의 물로 자신을 씻는
사람은 성령의 기름 부음이 풍성합니다. 오순절에 믿는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했는데, 베드로는 이것이 성령의
기름부음임을 증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 위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아들딸들은 대언하며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들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 위에 부어 주리니 그들이
대언하리라.](행2:17-18). 구약처럼 어떤 사람이 우리 위에
기름을 부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사 승천하신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믿는 자들
위에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직접 성령을 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하나님의 오른손으로
높임을 받으시고 아버지께로부터 성령님을 약속으로
받으셨으므로 너희가 지금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2:33). 때로 사람들은 느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입에서 방언이 터지고 황홀경에
빠지고, 배나 가슴이 갑자기 뜨거워지고, 머리가 확 뚫리는
어떤 체험이 있어야 성령을 받은 것인 줄 아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령을 받은 증거가 무엇입니까? 예수를 주로
믿고 시인하며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 말하는 자는
아무도 예수님을 저주받은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님을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을 {주}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이것이야 말로 성령받은 증거입니다. [이는 우리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나 모두 한 /성/령에
의하여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요, 곧 /한
성령에 의하여/ 마시게 되어 한 /성/령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라.](고전12:13). 우리는 모두 성령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예수 믿고 나서 몇 년 후에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는 즉시 일어나는 영적 현상입니다. [또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그
성령님을 풍성히 부어 주셨으니](딛3:6).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의
오심을 기다리게 하셨는데, 이미 그 당시 제자들은 모두
십자가의 피와 말씀의 물로 씻김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한 가지 성령의 기름부음만이 필요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일러준 말씀으로 깨끗하게 해 주셨습니다.
신약 성도들에게 중생과 성령의 기름부음은 동시적
연속성입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신의 긍휼에 따라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고 또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그
성령님을 풍성히 부어 주셨으니] (딛3:5~6). 저는 누구에게
목사 안수를 받은 적이 있지만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훨씬 이전에 주님을 영접할
때 확실히 받았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날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제 자신의 변화에
대해 설명할 수 없었지만 제가 구원받았다는 사실과
변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은 제
주변에서 먼저 저의 변화를 감지하고, 변화에 대해서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일2:20). [그러나
너희에게는 그분에게서 받은 기름부음이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 기름부음이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며 또 그것이 진리요 거짓이 아닌즉 그
기름부음이 너희를 가르친 대로 너희가 그분 안에 거하여야
하리라.](요일2:27). 이는 성경 교사가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주란 사실,
하나님이란 사실을 누가 우리에게 가르쳐 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 사실을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지식이 아니라 계시를 통해 주어진
지식입니다. 성령의 기름 부음은 여러분에게 마법과 같은
신기한 기술이나 요술을 부리도록 해 주는 능력이 아닙니다.
주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소원과 의지를 주며, 자기를
부인하고, 세상의 정욕을 거부하려는 마음을 주는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은 내 안에 거룩해 지고자 하는 소원과
경건에 대한 열망이 불러 일으켜 지는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은 기도와 찬양, 말씀과 경배 등에 대한 소원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어떤 희생과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기꺼이 그런 것들을 택하리라 생각하고 결단하는 것이 바로
우리 안에 부어진 성령의 기름부음의 역사입니다. 주를
증거하고 고백하고 시인하는 일 역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강력하게 활동하는 증거입니다.
32-33절입니다. [사람의
살에 붓지 말며 그 혼합 방법대로 그와 같은 것을 만들지
말라. 이것은 거룩한 것이니 너희에게 거룩한 것이 될지니라.
누구든지 이와 같은 것을 혼합하는 자나 혹은 이것을
조금이라도 타국인에게 붓는 자는 자기 백성에게서
끊어지리라, 하라.](32-33). 성령을 예표하는 기름이 사람의
살에 부어져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영적 할례를 행한
우리의 몸 안에 있는 속 사람에게 기름을 부으시지 우리의
썩어질 육신에 기름을 붓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육은
육이요, 육신 안에는 아무 선한 것도 거하지 않습니다.
육신은 죄의 몸입니다. 거룩한 기름을 사람의 살에 부을 수
없습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하며,
육은 성령을 거스르고 대적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속사람에게 기름을 부으시지 우리 겉사람 위에 기름을
부으시는 법이 결코 없습니다. 때로 사람들이 우리의 육체에
짜릿한 흥분과 어떤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완전히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주님은 거룩한 기름을
만드는 혼합 방법대로 그와 같은 것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는 아무도 흉내내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성막에서 사용되는 기름을 일반 백성들이 만들어서
자신들끼리 사용하거나 붓는 일을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오늘날 교회에서 성도들이 인위적으로 성령을
흉내내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짓 은사들을 성령의
은사로 속이고, 인위적인 꾸밈으로 성령의 열매인 것처럼
속이고, 자신들이 마치 주님의 사도인양 거짓 표적을 행하며(주로
방언과 병 고침) 사도라고 주장하는 일 따위가 모두 성령을
모독하며 흉내 내는 자들입니다. 방언이 외국어라고 가르쳐
주면 천사의 방언이라고 합니다. 자신은 사람이지 천사가
아닌데 어떻게 천사의 방언이 주어집니까? 천사들의 언어는
히브리어입니다. 성경에서 천사들은 히브리어로 말했지
따따부따 하지 않았으며, 천사들이 하는 말은 사람들이
통역없이도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마리아,
요셉, 바울, 베드로, 아브라함, 사라, 롯, 마노아, 다니엘,
요한 등 누구도 천사의 말을 듣는데 통역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히브리어를 구사했습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에는 타 언어라고 알기 쉽게, 정확하게,
분명하게 번역함으로써 사사로운 해석들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습니다. 때로 자신들이 안수해서 방언을 받게 해
준다고 하든지, 성령을 받게 해 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역시 사기꾼들입니다.
다음과 같은 구절은
초신자들의 믿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이르되, 너희가
믿은 이래로 성령님을 받은 적이 있느냐?] (행19:2a).
이들은 요한의 침례만 알고 있는 자들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주님이 누구신지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믿지 않는
자들이었다는 점을 숨긴 채 단지 “너희가 믿은 이래로
성령님을 받은 적이 있느냐?”라고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이미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질문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더 황당한 구절은 사도행전 8장을
들어 자신들의 안수없이는 성령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엉터리 목사와 사이비 부흥사들입니다. [이제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그들에게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님을 받도록 기도하니 (이는 아직
성령님께서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내려오지 아니하셨고
그들이 다만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만 받았음이라.)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니 그들이 성령님을
받으니라.](행8:14~17). 여기서 우리는 물로 침례를 받는
일이 구원이 아니며, 성령 침례가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과 연관된 물 침례를 통한 구원,
침례를 통한 중생은 사마리아의 신자들을 통해서 여지없이
무너집니다. 대신 여기서는 안수를 통한 성령 받기란 새로운
이단 교리가 등장합니다. 사도행전 2장의 유대인들은 누구도
사도들의 안수가 필요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는
예루살렘의 유대인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령님께서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많은 거짓 사도들이 교회의 성도들에게 안수를 통해 성령을
받게 하는 특별 부흥회를 엽니다. 이들이 사마리아인들이란
점에 유의하지 않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반
유대인들입니다. 이들은 주님을 배척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과 사마리아를 하나로 합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마리아는 자신들의 성전을 두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예수님과 성령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모세 오경만 성경으로 인정했습니다. 이런
사마리아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침례를 받았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와 동일하게 된 것입니다. 유대의
사도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안수했다는 것은 그들을
다시 동족으로 인정했다는 뜻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회복되었음을 공인한 것입니다. 이 때까지 유대의 사도들은
여전히 유대 민족주의에 매여 있었으며, 아직 이방인들이
믿음으로 자신들과 동일한 구원을 받는다든지, 성령을 받는
일에 대해서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주님은 사도들이 그들의
머리에 안수하게 함으로써 이제 둘이 더 이상 둘이 아니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같은 주를
그리스도로 믿고, 동일한 성령을 받음으로 이제 유대와
사마리아는 둘이 아니라 완전히 하나가 된 것입니다. 이를
위해 주님은 사도들의 안수가 있기 전까지 성령을 주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믿는 순간 즉시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행10).
이런 진리를 숨긴 채 교회 내의 성도들을 사마리아인
취급하면서 자신들이 유대의 사도들인 양 행세하는 거짓이
너무 횡횡합니다.
성막의 기름을 만드는
법을 안다고 해서 기름을 혼합하여 만들거나 타국인에게
붓는 자들을 죽이신 것 같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흉내
내고, 위조하고, 아무렇게나 안수하는 등의 일은 모두
주님의 저주를 받을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