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말씀




말씀: 출애굽기 31:1-11

요절: 출애굽기 31:2-3


출애굽기 30:34-38절은 이미
앞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곧바로 31장으로 넘어갑니다. 오늘
본문 역시 31:1-11절이지만 7-11절까지는 이미 앞에서 다룬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산으로 부르셔서 성막의
모형과 제작 방법을 상세히 말씀해 주셨는데, 문제는 이것을
누가 만드는가? 입니다. 아무도 이 모양대로 제대로 만들 수
없다면 주님의 말씀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성막
제작을 천사들에게 맡기지 않으셨고, 모세와 아론에게
만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성막을 제작할
일꾼들을 따로 세우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그
방면에 탁월한 재주나 능력이 있는 사람을 공개적으로
모집해서 테스트를 해 본 다음에 설계도를 제작하고 재료를
모으고, 일꾼들을 뽑고, 감독을 세우고 일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성막은 일반 건축물을 건축하듯이 간단하게 지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건축양식인데다 말을 하면 그 말을 받아서 듣고 만들어야
했습니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목수로 일하던 일꾼들이나
장인 정신이 투철한 사람들, 손재주가 좋은 사람들 중에서
자원자를 뽑은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친히 성막과 성막 안에
기구들, 제사장의 옷 등을 만들 사람들을 지정한 사람들에게
맡겼습니다. 성막은 주님이 거하는 처소란 점에서 짓는 방법
등에 대한 기술적인 문제도 중요하지만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작업이었습니다. 모세나 아론이 성막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레위 지파에게 만들라고 한 것도
아닙니다. 주님은 친히 일꾼을 세우셨습니다. 주님은 무슨
일이든지 먼저 말씀하시고 거기에 합당한 일꾼들을
세우십니다. 그리고 그 일에 맞는 능력과 지혜를 주십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매우 귀중한 진리를 보여 줍니다.


주님은 유다 지파와 단
지파에서 일꾼을 세우셨는데 이 두 지파는 성막에 관한 일을
하는 특권을 맡았습니다. 유다와 단은 성경에서 ‘사자’로
언급되는 지파입니다. 유다 지파는 예수 그리스도를, 단
지파는 적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사자들입니다. 유다 지파는
보좌의 홀을 지닌 유다 지파의 사자 예수 그리스도를
배출하는 반면, 단은 뱀처럼 물어뜯는 울부짖는 사자 마귀와
연관되어 있습니다(신33:22, 창49:17). 단 지파는 이스라엘
가운데 가장 먼저 배교한 지파이며, 레위 지파 대신
단독으로 제사장을 세우고 우상들을 만들어 섬기며,
독자적인 종교를 만들었는데 이들이 도입한 사제 제도는
오늘날 로마 캐톨릭이 됩니다. 사사기 17:5을 보십시오. [
사람 미가에게 신들을 섬기기 위한 집이 있으므로 그가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자기 아들들 중에서 하나를 거룩히
구분하여 자기 제사장으로 삼았더라
.](삿17:5). 미가는
자기 우상들을 섬기는 집이 있었고,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어
자기 아들들 가운데 하나를 제사장으로 삼아 버렸습니다.
오늘날 소위 Cell Church니 Home Church니 하는 것의 기원은 바로
미가였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그는 제사장으로 제격인
사람을 하나 만났습니다. [유다 가족에 속한
베들레헴유다에 한 청년이 있었으니 그는 레위 사람이며
거기서 머무는 자더라. 이 사람이 거할 곳을 찾으려고 그
도시 베들레헴유다를 떠나 이동하다가 에브라임 산으로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매 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너는
어디에서 오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베들레헴유다에서
온 레위 사람으로 거할 곳을 찾으러 가노라, 하매 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거하며 나를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십 세겔과 의복 한 벌과
양식을 주리라, 하므로 그 레위 사람이 /거기로/ 들어갔더라.
이 레위 사람이 그 사람과 함께 거하는 것을 만족스러워
하였으며 이 청년이 미가의 아들들 가운데 하나같이
되었더라. 미가가 이 레위 사람을 거룩히 구분하매 이
청년이 미가의 제사장이 되어 그의 집에 거하므로 미가가
이르되, 레위 사람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주]께서
내게 선을 베푸실 줄 아노라, 하니라
.] (삿17:7~13). 미가는
즉시 아들 대신 레위 사람 하나를 고용하여 제사장으로
임명하여 미가의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미가는 이 일을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레위 사람이 자기 제사장이
되었으니 주님께서 자기에게 선을 베푸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소위 오늘날 회사나 병원에 예배실 하나 만들고
목사 한명 초빙하면 거기에 주님이 복을 쏟아 부어 주실 줄
아는 졸부 기독교인들의 원조(元朝)가 바로 미가입니다.
미가의 제사장은 일개 한 집안의 제사장이었다가 단 지파
전체의 제사장이 되는데 이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아닌
우상 숭배자들이었습니다(삿18:19-20). 이들은 결국 12지파에서
제외되고 말았습니다. 단 지파는 성막 제작에 한 축을
담당했지만 그들은 제사장직을 더럽힘으로 배교해
버렸습니다. 어느 시대나 제사장 직분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은 곧 배교로 끝나고 맙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교회를 사회 단체화하고 있습니다. 성도들 역시 사회 참여를
기독교의 본분이요, 하나님의 가르침인 줄 압니다. 이것이
바로 제사장직을 더럽히는 일입니다. 이런 교회, 이런
성도들은 10년이 지나지 않아서 완전히 배교합니다.


1-2절입니다.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내가 유다 지파에 속한
훌의 손자 우리의 아들 브살레엘을 지명하여 부르고
](1-2).
훌의 손자 브살레엘이란 유다, 바레스, 훌, 갈렙으로
이어지는 족보인데 갈렙의 아들을 일컫습니다(대상2:5,9,18).
브살레엘은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훌륭한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두었습니다. 브살레엘이란 이름은 “하나님의
그늘 안에서”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친히 지명하여
부르신 사람들을 세우십니다.


주님은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일을
할 사람을 부르십니다. 열 두 제자는 모두 그렇게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오니라.
](막3:13). 이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순종하고 응한 사람들은 제자들이
되었습니다(마4:21). 요한이나 야고보나 베드로나 세리 레위
등은 모두 일터에서 부름을 받았고, 부름 받은 즉시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랐습니다. 주님은 이들을 왜 부르셨습니까?
[이에 그분께서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것은 자기와 함께
있게 하고 또 내보내어 /복음/ 선포도 하며 병 고치는 권능과
마귀들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더라.
] (막3:14~15).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께서 성막 제작을 위해
필요한 일꾼을 부르시듯이 몸 된 교회를 위해 사람을
부르십니다. 부르심을 받으면 주님은 그 사람에게 성령을
충만케 하십니다. [이는 이 약속이 너희와 너희 자녀와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부르시는 모든 사람을 향한 것이기 때문이라, 하고
](행2:39).
이 말씀은 성령을 주시고, 충만케 하신 기사입니다.
부름받지 않는 사람들이 사역을 한다고 할 때 주님은 지혜도
능력도 권위도 주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부르신 자들을
사용하실 뿐입니다.


모세나 아론이 부름을
받았고, 아브라함이 부름을 받았으며 야곱은 태어나기도
전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부르심이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자신이 부르심을 받았음을 이렇게 증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구별되었으니
](롬1:1).
부르심이야 말로 사역의 출발이며 핵심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부르심만 언급하지 않습니다. [너희도 그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니라.
](롬1:6).
성도들 역시 부르심을 받았음을 증거합니다. 모든 성도는 다
주님께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브살레엘이 성막을
짓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처럼 여러분은 형제들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남은
생애를 육체의 정욕대로 살지 않고 주를 위해 살기 위해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는 주의 발자취를 따르도곡 부름을
받았습니다(벧전2:21). 주님은 우리를 고난으로 부르셨습니다(벧전3:9).


그러나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자신들이 부르심을 받았는지 조차 모르고 있거나
부르심의 소망이나 소명에 대해 희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부르심의 소망에 대해서 알기를 기도했습니다. [너희의
지각(知覺)의 눈을 밝히사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 있는 그분의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하며
그분의 강력한 권능의 활동을 통하여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지극히 큰 권능이 어떤 것인지 너희로 하여금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1:18-19). 여러분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부르심과 그 부르심에 따라 주어진 주님의 강력한 권능의
활동, 믿는 자들에게 베푸신 지극히 큰 권능을 아는 지각의
눈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와 능력을 모르면 우리는
그것을 묻어 두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므나를 주시고, 그것으로 장사하게 하셨는데 묻어 두었다면
칭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주어진
부르심의 소망, 권능의 활동에 대해서 눈을 뜨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부르심을 알아야 부르심의 상을 향해 달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푯대를 향해 달려가노라.
](빌3:14).


사람은 저마다 자신을
부르신 주님의 부르심이 있습니다. 이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복된 삶이며, 하나님이 받으시고 기뻐하시는 삶이
됩니다.


3절을 보십시오. [지혜와
명철(明哲)과 지식과 온갖 기술에서 하나님의 영으로 그를
충만하게 하여
](3). 주님께서 자신이 부르신 사람을
지혜와 명철과 지식과 온갖 기술에서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케 하셨습니다. 주의 영으로 채움받지 않고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 일은 세상의 지혜대로
하면 됩니다. 육신의 일은 육신의 힘으로 하면 됩니다.
그러나 영적인 일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도무지 할 수
없습니다. 이는 결과나 현상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의
문제입니다. 육신에게서 난 것은 육신일 뿐이며, 육은
무익합니다. [그가 내게 대답하며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이르시되,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내 영으로
되느니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슥4:6).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영으로만 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된 일이 아니면 하나님의 일이 아니며, 하나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힘의 우선과 능력제일 주의를
추구합니다. 힘[실력]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힘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무엇이나 공허한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어릴 때부터 교육에
투자합니다. 능력을 개발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다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내 영으로
되느니라.
] 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힘과
능력보다 주의 영으로 충만해지기를 구해야 할 터인데
그리스도인들도 이것을 구하는 대신 힘과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경쟁하며, 추구합니다. 그런 힘과
능력은 매우 좋아 보이지만 실상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무
힘도 능력도 아님을 알게 됩니다. 주의
영으로 충만하면 힘과 능력은 절로 충만해지며 지혜와
지식과 기술 역시 충만해 집니다
. 성도들에게
주어진 명령 가운데 하나는 [술 취하지 말라. 거기에는
과도(過度)함이 있나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
](엡5:18)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해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은 성령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마귀로 채워집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사탄으로
마음이 가득 채워졌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할 마음이
마귀로 가득 찬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는 순간
성령으로 가득 채워집니다. [또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그 성령님을 풍성히 부어
주셨으니
](딛3:6). 갓 거듭나는 순간 영이 채움 받지 못하는
일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처음 구원받았던 순간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때 하나님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성령님을
풍성이 부어 주셨고, 하나님의 사랑이 넓게 부어진 체험이
있을 것입니다(롬5:5). 주님은 구원받는 순간 우리에게
영적인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힘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어느 순간부터인가 성령을
슬프시게 하고, 성령을 거역하고, 성령을 근심케 하므로
성령을 소멸시키지 않았습니까? [/성/령을 억누르지 말라.](살전5:19).
성령은 매우 섬세하면서도 지성과 의지와 감성을 모두
소유한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우리가 육신의 정욕대로 살
때 소멸되고 맙니다. 불이 꺼지듯이 그렇게 꺼집니다.
성령은 물질이 아니지만 마치 바람과 같고, 등불과 같아서
소멸합니다.


성령은
인격적인 분이시기에 슬픔을 느끼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구속(救贖)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엡4:30). 죄악을
범할 때마다 주를 의지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하지 않을 때 성령은 슬퍼하십니다. 우리는
순간순간 성령을 슬프시게 하는 죄를 범하고도 회개하지
않음으로써 성령을 더욱 근심하게 합니다.



우리의 불신과 불순종은 성령을 괴롭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반역하여 그분의
거룩한 영을 괴롭게 하였으므로 그분께서 돌이키사 그들의
원수가 되어 친히 그들과 싸우셨느니라
.](사63:10). 불신과
불순종은 성령을 괴롭게 하는 공격적 행위요, 가학적인
일입니다. 여러분은 개나 고양이나 벌레를 괴롭혀 본 적이
있습니까? 남편이나 아내나 자녀들, 친구들이나 부모를
괴롭게 해 본 적이 있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을 괴롭게
한 적도 있을 것입니다.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
받지 못한 자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님을 거역하되 너희
조상들이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는도다.
](행7:51). 불신이야
말로 성령님을 거역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거룩함을 버리고 부정함에 이를
때, 자신을 더럽힐 때 성령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정함에 이르도록 부르신 것이 아니요,
거룩함에 이르도록 부르셨음이니 그러므로 무시하는 자는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요, 우리에게 자신의 거룩한 영을
주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니라.
] (살전4:7~8). 여러분은
무엇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생각합니까? 주님은 마음 속에서
나오는 것들이 우리를 더럽힌다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잔과 대접은 물론이요, 손과 발을 깨끗하게 닦았습니다.
음식을 정결하게 먹었습니다. 누가 손을 씻지 않고 먹는
날에는 눈을 부라리며 엄중하게 꾸짖고 혼을 내 주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기 자신을 정말 더럽히는 것들에 대해서는
무지(無知)했습니다. ①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마음 속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또 그분께서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이는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악한 생각, 간음, 음행, 살인,
도둑질, 탐욕, 사악함, 속임, 색욕(色慾), 악한 눈, 신성 모독,
교만, 어리석음 등이기 때문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속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막7:20~23). 진정으로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속에서 즉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란
점입니다. 이런 것들이 성령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② 우리를
더럽히는 또 한 가지는 우리의 혀입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법의 세계라. 이와 같이 혀는 우리의 지체들 가운데 /하나로/
온 몸을 더럽히고 본성의 행로에 불을 붙이며 자기도 지옥
불로 불타느니라.
](약3:6). 혀를 잘못 쓰면 그는 온 몸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성령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③ 우리를 더럽히는 또 한 가지는 쓴 뿌리입니다.
[/너희는/
부지런히 살펴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게
하고 쓴 뿌리가 돋아나 너희를 괴롭게 하거나 그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더럽게 되지 않도록 할지니
](히12:15). 쓴 뿌리는
자기 자신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모두 더럽히는 강한
전이성(轉移性)을 띠고 있습니다. 마음 속에 쓴뿌리는
성령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④ 마지막으로 신약 성도들이
조심해야 할 것은 음행입니다. [결혼은 모든 것 가운데
존귀한 것이요, 잠자리는 더럽히지 말아야 하거니와 음행을
일삼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리라.
](히13:4).
구약 성도들에게 금, 은, 돌, 나무로 만든 우상 숭배만큼
흔한 죄가 신약 성도들에게는 음행입니다. 영화, 잡지,
인터넷, 신문, 소설, 만화 등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음행이야 말로 몸과 혼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모든 죄가 몸
밖에서 이루어지지만 음행은 몸 안에다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음행은 성령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을 제한하고 성령을
제약하는 일이 있습니다.
[오 너 야곱의 집이라
이름하는 자야, [주]의 영이 제약을 받으시냐? 이 일들이
야곱이 행한 바냐? 내 말들이 곧바르게 걷는 자에게 선을
베풀지 아니하냐?
](미2:7). [참으로 그들이 뒤로 돌이켜
하나님을 시험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제한하였도다.
](시78:41).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할 때 우리는 우리의 사고와
이성과 경험의 틀 속에서 주님을 제한하게 됩니다. 주님은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우리 {주}는 위대하시고 권능이
크시며 그분의 명철(明哲)은 무한하시도다.
](시147:5).



주의 대언자들을 통해 전해지는 말씀을
믿지 않는 일은 성령을 거역하는 죄입니다.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 받지 못한 자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님을 거역하되 너희 조상들이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는도다.
](행7:51). 오늘날 강단에서 선포되는 설교를
제대로 듣지 않는 것은 성령을 거역하는 죄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설교 시간에 졸면서
말씀을 비판적으로 듣고, 설교를 씹습니다. 말씀에 대해 쓴
뿌리를 품고 불순종하는 것은 성령을 거역하는 일입니다.



양심을 속이고 위선을 부리는 일은 성령을 시험하는
죄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가 서로
합의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묻은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은즉 또한 너를 메고
나가리라, 하니
] (행5:9). 아나니야와 삽비라는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나바의 행동을 보고 그와 같은
영성과 존경을 받고 싶어 흉내를 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위선이요, 속임수였는데 베드로는 이것이 성령을 시험한
죄라고 지적했습니다. 성도들이 흔히 짓는 위선과 거짓,
사람들 앞에 높임을 받고자하는 것은 성령을 시험하는
죄입니다.



주님을 믿지 않고 주님의 일을 사탄의
역사라고 하는 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죄입니다.

죄는 바리새인들이 지었던 죄입니다. [누구든지 말로 사람의
아들을 대적하면 용서받되 성령님을 대적하여 모독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하리라.
](눅12:10).



주님은 자신이 부른 사람들에게 일에 맞는 지혜와 지식과
능력을 주십니다. 일에 맞는 모든 것을 주십니다. 여러분은
능력에 맞는 일을 구하지 말고, 일에 맞는 능력을
구하십시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믿음을 통해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겨자
씨 만한 믿음만 있으면...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만일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에게 이르기를, 뿌리째 뽑혀 바다에
심겨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눅17:6)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믿음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믿을 때 세상과 육신을 통해 타협을 제안해 오는
마귀를 단호히 물리 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하시니
](막9:23). 믿음으로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참된
비결의 소유자들입니다. 비결이 무엇입니까?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4:13).
믿음이 없는 성도들은 믿음으로 일해 본 적이 없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손가락 하나 들어 본 적이 없기에 이런
영적 진리들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합니다. 다만 학교 가서
배우고, 인맥을 튼튼히 하고, 돈을 버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대로 잘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승리요, 믿음인 줄 알고
간증합니다. 믿음으로 살아 본 적이 없는 성도들에게 믿음은
뜬 구름 잡는 이야기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성경에
기록들은 설교 시간에나 울려 퍼지는 공허한 메아리요, 교회
문을 나서는 순간 자신이 아는 방법을 향해 달리며,
연구하고, 추구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시며,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에게는 이것이 불가능하나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하시니라.
](마19:26). [그분께서 이르시되,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것들이 하나님께는 가능하니라,
하시니라.
](눅18:27).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느니라.](눅1:37).
여러분 부디 성령을 거역하지 말고, 제한하지 말고,
괴롭히지 말고, 소멸시키지 말고, 슬프시게 하지 말고,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
]는 말씀대로 충만하시기를 빕니다.
우리에게는 하늘과 땅이 없어져도 변할 수 없고, 흔들릴 수
없는 기도의 약속이 주어져 있습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마21:22).



브살레엘은 주의 영으로 충만하여 성막 제작을 했지만
대언자 미가는 주의 영으로 충만하게 되어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나는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권능과 공의와
능력으로 충만하게 되어 야곱에게는 그의 범죄를,
이스라엘에게는 그의 죄를 밝히 말하리라
.](미3:8). 주의
영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설교자들은 결코 죄를 밝히 말하지
못합니다. 꾸짖지도 못하고, 책망하지도 못합니다. 모든
대언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대언했을 뿐 아니라 백성들의
죄를 선포하고 밝히 드러내며 공개적으로 책망했던
사람들입니다. 이사야에게 맡겨진 사역은 성경 강론이
전부가 아닙니다. 백성들의 죄를 보여 주는 것이 사역입니다.
[너는 크게 외치라. 네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소리 같이 높여서 내 백성에게 그들의 범죄를, 야곱의
집에게 그들의 죄들을 보여 주라.
](사58:1). 이는 신약 교회의
목회자들에게도 동일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첫
감독으로 세움을 받은 디모데에게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죄짓는
자들은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다른 사람들도 두려워하게
하라.
](딤전5:20).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의 목자였습니다.
크레테 교회의 첫 감독은 에바브로 디도였습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이 증거가 참되도다. 그러므로
그들을 엄히 꾸짖으라.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믿음 안에서
건전한 자가 되게 하여
](딛1:13). 바울은 디도에게 “엄히
꾸짖으라.”고 명령했습니다. 이것은 힘과 능력이 아니라
주의 영으로 충만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으로 충만하면 무엇을 하게 되는가? 전도를
하게 됩니다. 베드로가 성령 충만했을 때 그는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백성의 치리자들과 이스라엘의
장로들아
,](행4:8). 다른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기도하기를 마치매 함께 모인 곳이 흔들리더니 모두가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니라.
](행4:31).
성령으로 충만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복음을 전도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도를 못하는 사람들은 많은 이유를
대지만 이유는 단 하나 ‘성령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구령과 복음 선포는 성령 충만의 증거입니다.



4-5절입니다. [정교한 일들을 고안하고 금과 은과 놋으로
일하게 하며 보석을 깎아 물리고 나무를 새겨서 온갖 기술로
일하게 하였노라.
](4-5). 저는 이 구절을 읽을 때면 늘
생각하는 일은 성경 번역에 대한 일입니다. 우리나라에는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하고 출간하는 일을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러 부류 있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성경을 번역하고 출간하지만 아무도 제대로 된
번역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은 성막을
제작하시는 일에 브살레엘과 아홀리압을 주셨는데, 성경을
번역하고 출간하는 일에 이런 성령을 통해 능력과 지혜와
지식과 정교함을 주시지 않았다면 말이 되지 않습니다. 각자
자신의 능력으로, 자기 지혜로 성경 번역에 착수하다 보니
여러 종류의 성경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일이나 설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어디서 배운 지혜대로 설교를 하고, 성경을 가르친다면
교리는 수백, 수천 가지가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지 않으면 결코 영적인 설교나 성경 해석이 나올 수
없습니다. 주님은 필요한 주제, 필요한 어휘, 필요한 모든
것을 설교자에게 쏟아 부어 주심으로 설교자는 그것을
성도들 앞에서 선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웅변에 지나지 않습니다.



3-5절에 브살레엘에게 주어진 성령은 이사야 11:2에 나오는
것들입니다. [[주]의 영 곧 지혜와 명철(明哲)의 영이요,
모략과 능력의 영이요, 지식과 [주]를 두려워하는 영께서 그
위에 머무시며
] (사11:2). 주의 영, 지혜의 영, 명철의 영,
모략의 영, 능력의 영, 지식의 영, 주를 두려워하는 영
이렇게 일곱 가지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종류는 많아도 다
하나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혜가 부족한 자에게는 지혜를 주십니다(약1:5).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기 때문에 여러분의 부족한
것들은 구하기만 하면 됩니다(빌4:19). 그러나 많은 성도들이
주님께 구하는 대신 학교나 사람들에게 달려가 거기서
무엇을 배우는데 시간을 다 써 버립니다. 성도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주의 영으로 충만케 해 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가운데 하는 일은 열매가 있으며,
오류가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무슨 직업을 갖든지 그
직업에서 최고가 되기를 원한다면 성령 충만을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번뜩이는 영감, 창의성, 놀라운 지혜 등은 성령이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성경 공부에 처음 나오신 어떤 Handy Man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분은 그다지 똑똑하거나 정규 교육을
잘 받으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Handy man이란 직업이 고난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직업도 아닌 것 같은데 그분은 자신의
직업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직업이란 확신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이유인즉 자신은 무엇을 고치기 전에 늘
기도하면서 고치고, 기도하면서 어떻게 고쳐야 할지 지혜를
구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평생 동안 단 3건을 못 고쳤을
뿐 모두 다 쉽게 고쳤다고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모르는 난제들은 자신의 차에 가서 핸들을 잡고
간절히 기도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몇 분이고
기도하면서 지혜를 구하면 주님께서 생각을 주시고, 지혜를
주셔서 고치곤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얼마 전에 견적이
3,000불이 나온 큰 공사를 하게 되었는데 주인이 돈이 없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또 차에 들어가 한 참을 기도하면서
가장 빠르고 쉽고 안전하게 고치게 해 달라고 했답니다.
그는 150불을 들여서 3,000불 짜리 일을 처리한 간증을
했습니다. 못 고친 3건은 기도를 했더니 하나님께서 ‘그
일에서 손을 떼라’는 마음만 주셔서 아예 고칠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분은 매우 실제적인 신앙을 가졌을
뿐 아니라 성령을 통해 일하는 법을 누구보다 더 잘
숙지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분 외에도 이런 부류의
간증을 수없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혜와 능력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 한 분에게 기도하고 성령 충만을 구하며
일했으며, 공부했고, 은혜로 승리한 생생한 체험들을
이야기해 주곤 했는데 성도의 삶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여러분이 교과서에서 본 사람 가운데 ‘유달영 박사’가
있습니다. 이분은 한국의 달가스란 별명을 가지신 분으로
이스라엘, 덴마크 등을 돌면서 한국에 비닐하우스, 낙농업,
원예업 등을 도입한 사람입니다. 이분은 심훈이 쓴 상록수의
주인공 최 용신과 농촌 계몽을 운동을 벌였는데 ‘성서조선’의
창간인 김교신 목사의 제자입니다. 1946년부터 서울대 농예
원예학 교수로 재직하다 박정희 대통령의 명을 받고 조국
농업의 근대화를 이루는 일에 뛰어 들었습니다. 그가
이스라엘, 네델란드, 덴마크 등을 돌면서 그들의 농업
기법을 배워서 새마을 운동에 접목하는 일을 했는데 문제는
언어를 몰랐습니다. 무작정 공항에 내리기는 했지만
이스라엘어나 덴마크어나 네델란드 말을 할 수가 없어서
공항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자신이 공항에 내리는 나라마다 그 나라의 언어를
재빠르게 터득했고 그 나라의 농업 기술을 배워 한국에
소개했습니다. 저는 그분의 간증을 읽고 성령께서
브살레엘에게 [지혜와 명철(明哲)과 지식과 온갖 기술에서
하나님의 영으로 그를 충만하게 하여
](3) 일을 하게 하신
것처럼 동일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6절입니다. [또, 보라, 내가 그와 함께 단 지파에 속한
아히사막의 아들 아홀리압을 주었고 지혜로운 마음을 지닌
모든 자의 마음에 지혜를 주어 그들로 하여금 내가 네게
명령한 모든 것을 만들게 하였으니
](6). 주님은 아홀리압과
몇몇 동역할 일꾼들을 세워 주셨습니다. 주님이 명령한 일을
수행하는 일을 하기 위해 주님이 성령을 주시고 각양 은사를
주신 것은 매우 놀랍습니다. 7-11절은 주님께서 이들에게
해야 할 일들을 명하신 것인데 지금까지 모두 살펴 본
것들입니다.



주님은 각 성도들에게 은혜의 분량대로 은사를 주시며, 각양
좋은 것들을 주십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일을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을
맡기셨습니까?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화해의 직분, 말씀
선포의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부르시고 맡기셨다면 그에
따른 모든 것이 주어집니다. 여러분이 필요를 구하면
구하는대로 더 주십니다. 필요를 채우십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나심을 주신 것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유익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통하여 지식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통하여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통하여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기적들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대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여러 종류의 타언어들을,
어떤 사람에게는 타언어들 통역함을 주시거니와 이 모든
것은 같은 한 /성/령께서 행하사 자신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 (고전12:7~11). 여러분이
무엇을 구하든 그것은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요,
그것으로 말미암아 유익을 얻게 하기 위함이요, 주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란 점을 기억하십시오. 사람들이 자기의
유익을 구하고, 자랑 거리를 구하고, 주님이 주신 은사와
능력으로 세상에서 성공하려 한다면 주님이 왜 그것을
주셔야 하겠습니까? 주님은 그렇게 하도록 주신 것이
아닙니다. 누구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 다니엘과
솔로몬에게 주셨던 지혜를 주시면 좋으련만, 엘리야나
엘리사에게 있던 능력이 내게 있었으면...바울이 가졌던
은사가 내게 있었으면...왜 그게 필요합니까? 바울이 많은
지혜와 계시와 은사를 지녔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는 모든 것을 행하되 오직 너희를
세워 주기 위하여 하느니라.
](고후12:19b). 어떤 은사도 자신을
위해 사용하려 한다면 그는 주님을 이용해 먹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형제들아, 그런즉 어찌하리요? 너희가 다 같이
모일 때에 너희 각 사람에게 찬송시도 있으며 교리도 있으며
타언어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통역도 있나니 모든 것을 /남을/
세우기 위하여 할지니라
.] (고전14:26). 만약 브살레엘과
아홀리압이 주님이 주신 지혜와 기술로 목기나 만들고
도자기나 빚고 장사나 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위대한
예술 작품이나 훌륭한 골동품을 남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일을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성막을
제작하라고 주신 능력이요, 지혜요, 기술입니다. 성령
충만을 구하는 사람들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지 못하는
이유는 성령으로 장사를 하려하고 학위를 받으려 하고,
성공하려는 은밀한 야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성령으로 장사하려는 시몬의 마음과 같습니다(행8:18-19). [사도들이
안수함으로 /사람들이/ 성령님을 받는 것을 시몬이 보고
돈을 주며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내가
누구에게든지 안수하면 그가 성령님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행8:18-19). 실제로 시몬과 같이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을
구하다가 망하는 성도들이 수두룩합니다. [베드로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돈과 함께 네가 망할지어다. 하나님의 눈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일에는 네가 차지할 몫도 없고
나눌 것도 없느니라.
](행8:18~21). 시몬과 같은 마음으로
금식하며 능력을 구하는 목사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 앞에서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차지할 몫도 없고
나눌 몫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자신을 먼저 살핀 후에
마음을 깨끗이 하고 성령으로 충만케 해 주시기를 함께
기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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