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출애굽기 30:17-21
요절: 출애굽기 30:20
오늘은 물두멍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성막에는 죄를 씻는 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들이 주님을 섬길 때 씻어야 할 물이 있습니다. 피는
죄를 씻기고, 물은 육체의 더러움을 씻습니다. 피와 물은
우리를 정결하게 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두 가지
요소입니다. 이 둘 중 어느 하나만 없어도 우리는 완전히
정결해 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정결한 물로 씻겨졌으니
믿음의 충만한 확신 속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자.](히10:22). 피는 마음의 죄를 씻고, 물은 몸을
씻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것은 피만이 아닙니다. [그
군사들 가운데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찌르니
즉시로 거기서 피와 물이 나오더라.](요19:34). 주님은 피와
물을 다 쏟으셨습니다. 요한일서 5:6에는 이렇게 증거합니다.
[이분은 물과 피로 오신 분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오신 것이 아니요, 물과 피로 오셨고 증거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니 그 까닭은 /성/령께서 진리이시기
때문이라.](요일5:6). 주님은 물과 피로 오셨습니다. 물은
씻음, 피는 죄사함을 위한 것입니다. [땅에 증거하는 셋이
있으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하나로
일치하느니라.](요일5:8).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나타내는 동시에 기록된 말씀을 예표합니다. 피는 하나님의
피입니다. 이 셋은 하나로 일치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하게 되고, 말씀의 물로
날마다 씻음 받아야 하며,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피로써 죄를 제거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물이
필요합니다. 피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면
물은 하나과의 친교를 위한 것입니다. 주님께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피와 물이 모두 필요합니다.
성막에 물두멍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물로 자신을 깨끗이 씻음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란 점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분께서
말씀을 통해 물로 씻음으로 교회를 거룩히 구별하시고
정결하게 하시며](엡5:26). 주님께서도 교회를 말씀의 물로
씻기십니다. 이 시간 우리는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이 물두멍에서 자신을 씻었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
자신의 영적 생활의 본을 삼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는 새삼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힘이 장사였던
삼손이 나귀의 턱뼈로 천명을 죽이고 난 후 그는 물이 없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물이 없어서 목이 말라 죽게
되었습니다. 천하의 삼손이라도 물이 없으면 죽습니다. [삼손이
심히 목마르므로 [주]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께서 주의 종의
손에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져야 하리이까? 하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턱의 우묵한 곳을 쪼개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 나오므로 삼손이 그 물을 마시매 그의 영이
돌아와 그가 회복되었으므로 그곳의 이름을 엔학고레라
하였으니 이것이 이 날까지 레히에 있더라.] (삿15:18~19).
주님은 그에게 물을 주셨고, 그의 영이 돌아와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물은 더러움을 씻기도 하지만 물은 영을 회복시키고,
소생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아브라함은 천사들이 왔을 때
발을 씻을 물을 내어 놓았습니다. [이르되, 내 {주}여, 이제
내가 주의 눈앞에서 은총을 입었으면 원하건대 주의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고 원하건대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소서.
또 당신들의 발을 씻고 나무 밑에서 쉬소서.] (창18:3~4).
여행길에 발을 씻을 수 있다는 것은 원기를 회복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번제단에서 곧 바로
성소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놋 제단에서 번제 희생물을
드린 다음에는 반드시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어야만
합니다.
17-18절입니다. [또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또한 물두멍과 그 받침을
놋으로 만들어 그것으로 씻게 하되 그것을 회중의 성막과
제단 사이에 두고 그 속에 물을 담을지니](17-18). 주님은
물두멍과 그 받침을 놋으로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물두멍은
여인들이 거울로 쓰던 놋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놋은 단순한
놋이 아닙니다. 여인들이 거울로 쓰던 놋들을 바친
것들입니다. [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만들었으니 곧 회중의 성막 문에 모인 여인들의
거울들로 만들었더라.](출38:8). 거울에 쓰던 놋이
제사장들이 손과 발을 닦는데 쓰는 물두멍이 되었습니다.
여인들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자신의 거울을 드렸습니다. 이
거울들은 여자들이 자신을 살펴보고, 맵시를 내는데 쓰여
졌던 것들이었습니다. 거울은 거울을 들여다보는 각 개인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비춰주는 데 사용됩니다.. 거울은
육체의 영광과 옛 성품의 만족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거울들은 인간의 허영과 교만을 위한 것들입니다. 하나님은
거울에 사용하는 놋들을 모두 바쳐서 정결하게 씻는
물두멍을 만드는 데에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물두멍은 육신과 세상, 그리고 옛 성품의 교만과 정욕과
습관과 죄로부터 구별되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새로운
거울인 물두멍을 통해 자신의 속사람을 판단하고, 비춰보고,
관찰하여 이렇게 발견된 잘못들을 제거하고 깨끗케 하는 데
사용될 것입니다.
거울로 만든 놋으로
물두멍과 그 받침을 만들었다면 제사장들은 물속을
관통해서 자신들의 모습을 그대로 비추어 주는 놋 대야에서
손과 발을 씻었다는 것입니다. 물두멍은 훌륭한 거울을
겸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말씀의 거울을 예표합니다. 말씀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물은
정결하게 하는 샘입니다.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기
위한 샘이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의 거주민들을 위하여
열리리라.](슥13:1). 놋은 하나님의 심판을 말합니다.
물두멍의 놋은 자신의 백성을 시험하고 심판하시며
하나님과의 교제를 훼손하는, 그들의 잘못을 정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의(심판)를 보여 줍니다. 놋 위에 담겨진 물은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로 비유됩니다(약1:23-25). 우리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보듯이 말씀을 통해 자신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독특한
점은 주님께서 치수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주님은 만들어야 할 재료 외에 크기나 높이나 너비 등에
대해서 일체 언급이 없습니다. 놋 제단의 치수에 대해서는
상세히 언급했지만 물두멍의 치수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놋 제단은 운반할 수 있도록 고리와
막대기가 있었지만, 물두멍에는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놋
제단은 이스라엘이 한 진영에서 다른 진영으로 이동할 때
덮개에 대한 지침이 있었지만 물두멍은 전혀 그러한 언급이
없습니다. 놋 제단은 불을 사용했지만 물두멍은 물을
사용하는 데 쓰였습니다. 놋 제단은 모든 사람의 희생물을
동일하게 받아들였지만, 물두멍은 제사장에만 그 이용이
한정되었습니다. 물두멍은 섬김의 직무를 위한 것입니다.
성막 기구 중에서 유일하게 아무런 치수나 무게가 주어져
있지 않은 기구가 바로 물두멍입니다. 물두멍이 아무런
치수가 언급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끝이
없습니다. [내가 모든 완전한 것들의 마지막을 보았사오나
주의 명령은 심히 넓으니이다.] (시119:96). 물두멍은
제사장이 성소로 들어가는 길에서 두 번째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물두멍과 관계된 모든 것들은 놋 제단과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놋 제단은 나무와 놋으로 만들어졌지만
물두멍은 놋으로만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는 모양이
사각형이었지만 다른 하나는 둥근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구원받은 후에
성막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 차려놓은 빵이 놓여있는 상과
등잔대 그리고 중보의 향단에서 섬기기 전에 먼저 거쳐야 할
단계는 말씀으로 자신을 정결하게 씻고, 진리로 거룩히
구별되는 것입니다. 은혜와 사랑이란 말이 넘치는 이 시대에
거룩함과 진리란 말이 더욱 넘쳐야 합니다.
주님께서 물두멍의 크기에
대해 조금도 언급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주님의 은혜가 한없으심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성도들에게
무한히 많은 탈선과 죄가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라도 자신을 씻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자백할 때마다 우리의 잘못을
제거하시고 회복시키실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물두멍에 접근할
때, 먼저 자기 자신을 보게 되고, 물로 자신을 정결하게
합니다. 성경은 양날 달린 검입니다. 우리의 깊은 속까지
모두 살피시며, 죄에 대한 찔림을 주고 정결하게 하며,
드러내주고, 치유하며, 책망하고 거룩히 구별하며, 순결하게
해주며, 경고하고 씻어 줍니다. [이제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깨끗하게 되었으니] (요15:3). 말씀으로 깨끗해
집니다. [아버지의 진리로 그들을 거룩히 구별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17:17). 말씀으로 거룩해
집니다.
다시 17-18절을 보십시오. [또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또한 물두멍과
그 받침을 놋으로 만들어 그것으로 씻게 하되 그것을 회중의
성막과 제단 사이에 두고 그 속에 물을 담을지니](17-18).
물두멍의 위치에 주목하십시오. 물두멍은 성소 안이 아니라
제단 뒤 성막 앞입니다. 주님은 성막과 제단 사이에 두고
거기서 씻으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번제단에서 희생물을
드린 다음에 말씀의 물로 자신을 씻어야 합니다. 순서가
바뀌어서는 안됩니다. 물두멍은 성막의 양식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다가 제사장이 임명 된 후에 비로소
언급됩니다. 이는 이것이 전적으로 제사장들을 위한 것이란
점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왕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주님께
영적인 희생물을 드려야할 제사장들입니다. 물두멍은
제사장용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자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피로써 자신의 죄를 사함 받았다고 해도
더러움을 제하지 않고는 금 향단에서 섬길 수 있는 자격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더러운 손과 발 그대로 성소에
들어갔다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두 번씩이나 “그들이
죽지 않게”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처럼 그들에게
치명적인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먼저
물두멍에서 씻지 아니한 채로 우리는 하나님의 집으로
경배하러 갈 수 없습니다. 바깥뜰에서 우리들의 죄를
자백하고 먼저 씻는 일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미
구원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주님의 피를 믿습니다.
그러나 더욱더 여러분 자신을 살펴보고 더러움을 씻어내야
합니다.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살펴보고
너희 자신을 입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고후13:5). 성경은 분명히 자신을 살펴
보라고 명령하십니다. [너희 자신을 살필지니 이로써
우리가 이룬 것들을 우리가 잃지 아니하고 충분한 보상을
받게 되리라.](요이1:8). “너희 자신을 살필지니”란
명령은 엄숙한 경고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자신을 살피지
않고, 물로 씻는 일을 하지 않았다가 징계를 받았습니다. [오직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뒤에야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이는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자기를 위하여 정죄를 먹고 마시기
때문이라. 이런 까닭에 너희 가운데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많도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판단하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우리가 판단을 받으면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과 함께
정죄를 받지 아니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11:28~32).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생각없이 성찬에 참여하다가 몸이
약해지고, 병들고, 때로 죽습니다. 이것은 의사들이 결코
진단할 수 없는 병입니다. 먼저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죄를 고백하고, 씻음받아야 합니다. 주님의 상(table)에
나아가기 전에 우리의 손과 발을 물두멍에서 씻어야 합니다.
성막과 제단 사이란 말은
죄인들을 향한 구원의 초대의 문과 죄를 대신하는 번제단 즉
칭의의 제단 후에 물두멍이 있습니다. 양의 문이신 주님을
통해 갈보리 십자가를 통고한 사람 앞에 놓이는 것이
물두멍입니다. 회중의 성막 앞에 있다는 것은 회중의 성막이
섬김(예배, 봉사)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제사장들의 사역지입니다. 물두멍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몸소 보여 주신 섬김의 예에서 잘 드러나 있습니다. [베드로가
그분께 이르되, 절대로 내 발을 씻지 못하시리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느니라. 시몬 베드로가
그분께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하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온 몸이 깨끗하니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요13:8~10).
우리는 이미 모두 목욕한 자들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온
몸을 깨끗하게 씻어 줍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신의
긍휼에 따라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고](딛3:5). 구원은 중생의 씻음입니다.
이것은 일생에 단 한 번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발은 매일
씻어야 합니다. 발은 매일 땅을 밟고, 땅과 직접적인 접촉
부위이기 때문에 쉽게 더러움을 탑니다. 섬김과 교제는
우리가 계속해서 이 악한 현 세상의 길을 걷는 동안 더러운
오염된 것들을 제거하도록 “우리의 발을 씻을 것”을
요구합니다.
다시 태어남의 씻음은
단번에 영원히 된 것이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서는 은혜의 왕좌 앞에 매일 나아가야만 합니다.
자신을 점검하고 죄를
씻는 일은 매일의 작업입니다. [자기 죄들을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누구든지 죄들을 시인하고 버리는 자는
긍휼을 얻으리라.] (잠28:13). 성막에서 제사장들이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었듯이 우리는 늘 손과 발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물두멍은 우리에게 섬김에 대한 올바른 준비가
필요함을 가르쳐 줍니다. 주님은 성막을 섬기는 자들에게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고, 분리를 명하셨습니다. [너희는
떠날지어다. 너희는 떠날지어다. 너희는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너희는 그 땅의 한가운데서
나올지어다. 주의 기구들을 나르는 자들아, 너희는
정결할지니라.](사52:11). 이는 신약 성도들에게 내려진
동일한 명령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기초는
확고히 서 있으며 거기에 이같이 새겨진 말씀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신의 백성인 자들을 아신다, 하시고 또,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법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그런데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사람이 이런 것들로부터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하게 쓰는 그릇 곧 거룩히 구별되어 주인이
쓰기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된 그릇이 되리라.](딤후2:19-21).
우리는 모두 물두멍에서 씻지 않고 곧 바로 성소로 들어가는
잘못을 범하고 있지 않는지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물두멍을 지나쳐서 빵을 차려 놓은 상으로 가거나 금향로로
갈 때 주님은 우리의 섬김과 기도를 가증이 여기시며, 받지
않으십니다.
19절입니다. [이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물두멍에서 손발을 씻을 것임이라.](19).
주님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물두멍에서 손발을
씻으라고 하십니다. 흔히 성막은 먼지 한점 없는 거룩한
곳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막에서
사역하는 사람들은 죄가 침투할 틈이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제사장들은 누구보다도 더욱 자주 손발을
씻어야만 합니다. 성막에는 의자가 없고 마루가 없습니다.
이것은 대제사장 자신의 일이 결코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대제사장은 “첫번째 성막이 서 있는”한(히8:8)
언약궤 “오른 쪽에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매일 날마다
희생제물을 드리는 제사장은 서 있어야만 합니다(히 10:11)
등잔대, 금 향단, 놋 제단, 차려진 상 위에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갈보리 십자가에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시기 전까지 결코 안식이 없습니다. 성막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지고 나서(마27장), 위대한 대제사장은
앉아 계시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히12:2).
우리는 모두 제사장으로서
주님이 재림하셔서 “다 이루었다”(계21:6)고 말씀하실
때까지 부지런히 움직여야 합니다. 우리는 현재 육신의 장막
속에 거하고 있습니다(벧후1:3). 우리의 손과 발은 먼지로
흙으로 더럽혀집니다. 우리는 모두 말씀의 거울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씻어야 합니다(약1:23,24). 물두멍의 놋은
놋 거울이었고, 물을 통해 반사되었습니다. 영적으로
우리에게 적용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의롭다
함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부정함과
죄로 가득 차 있는 세상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더러움과 죄악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불신자들입니다. 온종일 더럽고
추잡하고 저주하는 소리를 듣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런 모든 사실들과
육신의 연약함을 알고 계셨기에 우리가 계속 깨끗하게 되는
길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말하면
스스로를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는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8-9). 죄의
해결책은 죄를 자백고, 시인하는데 있습니다. 우리의 유일한
해결책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물두멍에 손과 발을 씻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자주 이
깨끗하게 하심을 받아야 하는가? 성막에 있는 물두멍은
치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물의 양도 규정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처럼 한계가 없습니다.
우리가 언제라도 몸이 더러워지고 씻어야 될 필요가 있을
때면 가서 몇 번이라도 씻을 수 있습니다. 하루에 몇 번을
씻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정결하게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깨끗하고, 의롭고, 경건하고,
거룩하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죄를
회개하고 자백하면 정결케 되는 것은 주님의 무한하신
은혜입니다.
제사장들이 씻어야 할
부위는 손과 발입니다. 손은 봉사를 의미하고 발은 걸어
다니는 것(행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갈보리 십자가로
죄와 범법의 씻김을 받은 자들에게(딛3:5), 믿음으로 걷는
생활 가운데서도 깨끗하고, 정결하게 살아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물두멍은 제사장들을
정결하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놋 제단에서 죄를
다루고 또 그것을 제거했습니다. 금 향단은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는 곳입니다. 놋 제단과 금 제단 사이에 물 두멍이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절묘한 일입니까? 구원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손에 피를 묻히고, 발이 죄악 가운데로 향하면
주님은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물 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지 않는 성도의 섬김은 진정한 섬김과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순례의 길 가운데서
더러워진 것들은 성소로 들어가기 전에 제거해야만 했는데,
하나님의 영원한 거처에 대하여 이르시기를 [더럽게 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며 또
무엇이든지 가증한 것을 이루게 하거나 거짓말을 만드는
것도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 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계 21:27)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은 백성들이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들고
오는 소와 양을 잡고, 그 피를 뿌리고, 번제단 위에 태우면서
정작 자신들의 손에 피가 묻고, 불결한 것들로 더럽혀집니다.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손과 발은 더 더럽혀집니다. 이는
오늘날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죄 문제로 상담하고,
그들을 권면하고, 이야기를 듣고, 함께 기도해 주는 일을
하면서 영혼은 더욱 더러워집니다. 들을 소리, 못들을 소리
다 듣고 앉아 있다 보면 영혼이 지치고 파리해지는 경험을
합니다. 이럴 때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불신자들과 구령 상담을 하든, 때로 신앙 상담을 해
보십시오. 주님을 영접하고 말씀을 받아 들인 경우에는 힘을
얻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끝난 후에 여러분의 영혼이
파리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중생하지 못한 자들과
교제하므로 우리의 손과 발이 더럽혀진 사실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도 사랑하지도 않는 자들과 함께 거한
결과로 얻어진 불결함을 우리는 주님 앞에서 말씀의 물로
씻어야 합니다. 때로는 죄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비성경적이고, 비영적인 이야기를 묵묵히 들으면서 동조해
주었던 죄악을 회개해야 합니다.
때로 영적인 일들을
한다면서 우리는 불신자들에게 강한 영향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사업 이야기, 정치 이야기, 결혼 이야기, 학교
이야기, 가정 이야기, 자식들 이야기 등을 성경과 하등의
상관없는 세상 가치관으로 한 참을 이야기 한 후에야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자각하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한 동안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란 사실도 잊어 버린 채 토론도 하고,
다투기도 하고, 맞장구도 쳐 놓고 보면 영혼은 황폐해져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런 일이 우리의 구원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과의 교제를 방해합니다.
물두멍에서 자신의 손과
발을 깨끗하게 씻기 전까지 우리는 제사장의 특권을 누릴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벧전 2:5) 그 직무를 수행할 수도
없습니다. 물두멍은 성막에 있는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우리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풍족하신 하나님을 보여 줍니다.
20절입니다. [그들이
회중의 성막에 들어갈 때에는 물로 씻어 죽는 것을 면할
것이요, 섬기려고 제단에 가까이 가서 불로 예비하여 [주]께
드리는 헌물을 태울 때에도 그리할지니라.](20).
제사장들은 성막에 들어갈 때 물로 씻지 않으면 죽음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비록 놋 제단에서 제물을 태우고,
희생 헌물을 제대로 드렸다 할지라도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손과 발을 씻어야만 합니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이곳 물두멍에서는 “성도들의 죄”가
취급되고 있습니다. 번제단에서는 “죄의 형벌”이 단번에
영원히 해결되었으며 여기서는 거듭난 후에 성도들이 범한
더러운 죄들이 철저하게 처리됩니다. 그러므로 이 물두멍은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결하게 됨으로
세상으로부터의 분리를 보여 줍니다. 또한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기 위해서 자신을 부인하며,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됨을 말해 줍니다.
이미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를 씻기는 것은 피와 물 두 가지입니다.
죄인들은 피로써 정결하게 되었다면 피를 뿌린 후에
제사장들은 물로 씻을 것을 요구 받고 있습니다. 물두멍
안에 든 물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의 명백한 모형입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자기 길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에 따라
자기 길을 조심할 따름이니이다.](시119:9). [이제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깨끗하게 되었으니](요15:3).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정결한 물로 씻겨졌으니 믿음의 충만한 확신 속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자.](히10 22). [너희가 성령을
통해 진리에 순종함으로 너희 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없이
형제들을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순수한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벧전1:22). 물이 말씀을 상징하는 예는
부지기수입니다.
이제 우리는 말씀을 좀 더
유의해서 보아야 합니다.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회중의 성막 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출29:4). [거룩한
아마 속옷을 입고 그 살 위에 아마 반바지를 입으며 아마
허리띠를 띠며 아마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의복이라.
그러므로 그가 물로 몸을 씻고 그것들을 입을 것이며](레16:4).
여기서는 다른 사람이 제사장을 씻어준 것입니다. 이 씻음은
온 몸의 씻음입니다. 이는 중생의 씻음(딛3:5)입니다. 오늘
본문의 물두멍에서 씻는 일은 자신들이 씻어야 합니다. 누가
씻어 주는 것이 아니며, 온 몸이 아니라 손과 발만을 씻었다.
남이 씻어 주는 일은 단 한번에 끝나며, 반복되는 일이
아니었으며, 후자는 매번 금 향단이 있는 성소에 들어갈
때마다 씻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온 몸이 깨끗하니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요13:10). 중생
때의 씻음(다시 태어남의 씻음)이나 목욕은 되풀이할 필요가
없지만, 발을 씻는 것은 더러워질 때마다 씻어야 합니다.
순례의 길에서 더러워진 것은 다시 중생해야 할 필요성을
야기 시키지 않습니다. 신앙 생활하면서 우리가 짓는 죄들로
인해 우리는 다시 거듭나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은
단번에 영원히 이루어진 일입니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베드로에게 주님은 친교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베드로가 그분께 이르되, 절대로
내 발을 씻지 못하시리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느니라.](요13:8) ‘나와’라고 함은 사귐에 관한
것으로, 그분과의 교제를 말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물두멍에
나아가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21절입니다. [이와 같이
그들이 손발을 씻어 죽는 것을 면할지니 이것이 그와 그의
아들들에게 그들의 대대로 영원한 법규가 될지니라.](21).
우리의 구원은 십자가에서 시작되었지만 이것은 목표점이
아니라 출발점입니다. 거듭난 신자들은 이제 다음 단계로
발걸음을 계속해서 옮겨가야 합니다. 그래서 마침내는
하나님의 임재가 계시는 지성소까지 계속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번제단을 지나 제사장은 이제 그 다음 단계로
깨끗하게 씻는 물두멍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물두멍은
놋으로 만들어졌으며 언제나 깨끗한 물을 가득 담아
놓았습니다. 우리는 이 물두멍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면 손과
발의 더러움을 씻고서 주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성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여인들의 놋 거울로
물두멍을 만들었듯이 우리 주님의 발을 씻겨 주신 것은
절묘하게도 여인들 뿐이었습니다. 물두멍을 만들기 위해서
여인들의 거울이 사용되어 졌듯이, 복음서에서 자신의
물질로 그분을 섬긴 유일한 기록이 누가복음 8:2-3절에
나오는데, 헌신된 여인들이 자신들의 물질로 그분을
섬겼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또한 그분의 발을
눈물로 씻기고 그에게 기름을 부은 자는 사도들이 아니라
그것 역시 여인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어느 한
부분을 보아도 정교한 설계자의 오묘한 이치를 늘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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