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이런 사람들의 비술적 행동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권의 책들이 나와 있습니다. 저의 책이 처음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건대, 대부분의 경우, 이런 책들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많이 팔리는 책들은 학자들의 책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쓴 책은 다른 사람의 책에서 그냥 짜집기한 것들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런 사람들의 자서전이나 자필문들과 같은 '중요 자료들'을 살펴 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너무 바쁩니다. 대학 교수들은 업무가 너무 많습니다. 덕분에 저도 이런 주제를 연구하는데 만 하루 4시간에서 12시간씩 썼기 때문에 주님은 저를 불명예 은퇴를 시키셨다고 생각합니다.
다방면에 걸친 연구와 조사를 하겠다는 생각은 거의 할 수 없으며, 실제 매우 드뭅니다. 텔레비젼 드라마 같은데서나 여러 분야에 박학한 사람이나 전문가가 나옵니다. 예를 들면, 신약학 한 분야에서만 헬라어 문법학자는 여러분에게 헬라어 운율과 음운 현상에 대해서만 말합니다. 교회사가들은 여러분에게 터툴리안이 무엇이라고 말했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줄 수 있습니다. 세상의 학자들이 웨스트콧이나 홀트와 그들의 플라톤 사상에 대해 읽을 때 놀랄만한 어떤 일을 전혀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신약 성경의 다른 분야에 대해 연구하거나 공부하는데 시간을 보낼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제가 저술한 대학 교제 중의 한 권인 <Design Process and Cognitive Behaviour>란 책은 여러 분야의 학문들의 교차 작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혁명적인 발견과 통합적인 힘에 대해서 기술한 것입니다. 저는 연구 분야를 전환함으로써 신학을 전공한 학자들이 생각하지 못한 주제에 대해 객관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이런 것을 잘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교만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사람이 정보를 얻는 능력을 상실하게 만듭니다. 오바댜 3장에서 말하기를 "네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느니라"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교만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그들은 기만이 들어 올 수 있는 문을 활짝 열어 놓은 것입니다. 다니엘 5:20은 벨사살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이 높아졌고, 그의 마음은 교만으로 굳어 졌으며"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고전8:1). 기만은 연에 달려 있는 꼬리와 같이 따라 다닙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순수성과 보존성을 믿는 사람들에 대해 분노하는 목사님들과 성경 교사들을 볼 때 저는 잠언 13:10 말씀이 생각납니다. "다툼은 교만으로부터 오나."
교만을 훨씬 능가하는 문제의 뿌리가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10은 말씀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악의 뿌리니라". 너무나 많은 목사들과 학자들이 자신들의 은퇴 후를 걱정하며, 급료, 승진, 수입 등에 대해 염려합니다. 이런 물결을 거슬러 행하는 것은 분명히 수입 문제에 위협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대답할 수 없는 문제가 있을 때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건은 문제의 뿌리가 "돈"(price)아니면 "교만"(pride)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학자들이 이런 것을 보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영적인 문제는 어떤 것도 분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쓴 뉴 에이지 성경 역본들의 부록편에 보면 영적인 것들을 어떻게 분별하는지에 대해서 써 놓았습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마음'의 문제이지 '머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2:14은 말하기를 성경의 말들은 영적으로 분별된다고 합니다. 부록 C에 성경의 일곱 가지 인에 대해서 말합니다. 성경은 "봉인된 책"이라고 합니다.
로마서 1:31-32에 "깨닫지도 못하고10)...모두 죽음에 처해져야 한다는..." 말씀을 볼 때, 영적인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죄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지 정보의 부족에 문제가 있지 않습니다. 다니엘 12:10은 "악인은 아무도 깨닫지 못하리라"고 말합니다. 역시 정보의 부족으로 인한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는가와 관련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너희는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아직도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마음'이란 단어와 '깨달음'이란 단어가 같은 구절 내지 한 두 구절 사이에 같이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이해하는 것(깨닫는 것)과 사람의 마음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을 깨닫는 첫 번째 방법은 "거듭남"(born again)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그러므로 학자들이라 해도 "반드시 거듭나야" 합니다.
두 번째 방법은 학자들이 성경을 공부하기 전에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신학교에서 수업하기 전에 기도가 이루어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야고보서 1:5은 "너희 중에 누가 지혜가 부족하거든, 그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군가 먼저 자신께 구하지 않는다면 영적인 모든 정보를 숨겨 놓으십니다.
세 번째 방법, 학자들이 할 일은 성경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잠언 17:24에서 말씀하시기를 "지혜(성경)는 명철을 지닌 자의 앞에 있고, 어리석은 자의 눈은 땅 끝(T.V, 잡지, 신문...)에 있느니라."고 하십니다. 학자들은 온 세상의 책들을 쭉 훑어보지 않습니까? 텔레비전이나 잡지나 목록들을 보면서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그런 것들보다 훨씬 더 깊이 봅니까?
네 번째는 우리의 생각과 연관된 것입니다. 시편 119:99은 "내가 나의 모든 스승들보다 더 명철하오니, 이는 주의 증거들이 나의 묵상이 됨이니라." 고 합니다. 주의 말씀을 묵상하기 위해서는 즉 다시 말해 주의 말씀들을 온 종일 생각하기 위해서는 말씀들을 암송하고 있어야 합니다. 새 역본들이 교회에 소개되면서 성경 암송과 묵상은 교회 뒷문으로 모두 빠져나가 버리고 만 것 같습니다(킹제임스 성경은 어휘와 운율이 잘 조화되어 있어 암기하기에 매우 용이함. 새 역본들은 음수율이 파괴되었다는 의미임-역주).
다섯 번째는 하루도 빼 먹지 않고 날마다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잠언 8:34은 "내 말을 들으며 날마다 나의 문들에서 지켜보고...복이 있도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루 단위로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여러 날" 또는 "주(週)", "달"(月)을 뛰어 넘어서는 안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만나를 얻으러 나가야 했습니다. 그들은 만나를 저장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들의 일상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자신도 이점에서는 자주 죄를 짓습니다.
여섯 번째는 하나님께 순종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시편 119:100은 말하기를 "내가 노인들보다 더 깨달았으니, 이는 내가 주의 법규들을 지킴이니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은 영적인 문제에 관한 한 자신의 삶 가운데 은밀한 죄를 숨겨 놓은 채 신학적 이론만 가득 지닌 박사님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무엇이냐의 문제입니다. 시편1:2은 말하기를 "그의 즐거움이 주의 법에 있으니, 그가 주의 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진실로 행복하고 멋진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십니까? 멋진 요리를 해 드십니까? 아니면 쇼핑을 합니까? "뭔가 새로운 일을 합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하십니까? "아, 가서 성경을 읽어야지" 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사람들은 영적인 것을 깨닫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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