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들은 성경을 일컬어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담은 책"이라고 합니다.
어떤 이는 성경은 사랑하는 이를 향해 쓴 연서(戀書-love letter)라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뜨거운 사랑을 한 예들이 많이 나옵니다. 창세기부터 성경을 읽어 내려가노라면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 인물들이 줄줄이 등장합니다.
- 아담은 아내 이브를 사랑했습니다. 아담은 아내를 위해 죽음을 택했습니다(딤전2:14). 이 세상의 모든 부부 사랑의 기원은 아담에서 비롯됩니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그런 남자의 사랑이라면 아담보다 더 좋은 예가 없습니다. *아담이 오실 자의 표상이라 불린 이유가 이것입니다.
- 아브라함은 이삭을 사랑했습니다.
야곱은 아들 요셉을 사랑했습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을 사랑했습니다(삼하19:4). 다윗은 아버지로서 자신을 향한 칼을 빼든 반역자인 아들 압살롬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왕이 크게 격동하여 문 너머에 있던 방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이같이 말하기를, 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랴! 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삼 하18:33). 이 사랑은 하나님께 반역한 죄인들을 향해 보여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는 예표입니다.
- 야곱은 아내 라헬을 사랑했습니다. 얼마나 사랑했든지 성경은 야곱의 사랑을 어떤 소설가의 명분보다 더 압축적으로 보여 줍니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을 섬겼으나 그녀를 향한 사랑으로 인해 칠 년을 며칠같이 여겼더라.](창29:20)고 말합니다.
- 다윗과 요나단은 친구간의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 주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혼이 다윗의 혼과 밀착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혼같이 사랑하니라.](삼상18:1).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하여금 다시 맹세하게 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혼을 사랑하는 것 같이 그를 사랑하였기 때문이더라.](삼상20:17). 크리스천의 형제 사랑의 모델이라고 한다면 단연 다윗과 요나단입니다.
자, 이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신격 중 ‘전능하심’은 창세로부터 이미 밝히 보이고, 입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 크심, 무한하심 역시 그분의 창조를 통해 다 보여 지고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거룩하심은 율법을 통해 만천하에 공개되었고 드러났습니다. 죄를 미워하시고 진노하시는 모습 역시 노아의 홍수나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통해서 밝히 보이고 드러났습니다.
그렇다면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에서 볼 수 있습니까?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밝히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말씀하실 때마다 ‘십자가’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당당히 제시하시느니라.](롬5:8). 갈보리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자신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설명해 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사랑을 보여 주는데 필요한 것은 말과 혀가 아니라 ‘행동, 실천’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보여 달라고 말합니다.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네 사랑을 내게 보이라.
네 온유함을 보이라.
너의 능력을 보여 다오...
뭐든지 보여 달라고 말합니다.
성경 역시 성도들을 향해 ‘보여 주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로서, 세상의 빛으로서 무엇인가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과 혀로써’ 자신의 사랑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독생자를 주심으로써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은 무엇이든지 보여 주셨습니다. ‘모든 오래 참으심을 보여 주셨고’(딤전1:16), ‘모든 일에서 자신을 선한 행위의 본으로 보이셨고’(딛2:7), 섬김을 보이셨고, ‘순종’을 보이셨습니다. 우리 역시 보여야 합니다. 신중함과 성실함을 보이고(딛2:7b), 전적으로 선하게 충성하는 것을 보이고(딛2:10), 모든 사람에게 온유함을 보이고(딛3:2), 우리의 믿음과 형제 사랑을 보여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 주는 방법-선한 행실, 행위, 삶으로 나타나 보이면 됩니다.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네 사랑을 내게 보이라.
네 온유함을 보이라.
너의 능력을 보여 다오...
뭐든지 보여 달라고 말합니다.
성경 역시 성도들을 향해 ‘보여 주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로서, 세상의 빛으로서 무엇인가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과 혀로써’ 자신의 사랑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독생자를 주심으로써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은 무엇이든지 보여 주셨습니다. ‘모든 오래 참으심을 보여 주셨고’(딤전1:16), ‘모든 일에서 자신을 선한 행위의 본으로 보이셨고’(딛2:7), 섬김을 보이셨고, ‘순종’을 보이셨습니다. 우리 역시 보여야 합니다. 신중함과 성실함을 보이고(딛2:7b), 전적으로 선하게 충성하는 것을 보이고(딛2:10), 모든 사람에게 온유함을 보이고(딛3:2), 우리의 믿음과 형제 사랑을 보여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 주는 방법-선한 행실, 행위, 삶으로 나타나 보이면 됩니다.
Pastor. Peter Yoon
'목자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건전한 교리, 그리스도의 교리 (0) | 2009.03.01 |
---|---|
죽음보다 강한 것 두 가지 (0) | 2009.02.28 |
위로의 하나님 (0) | 2009.02.24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사실인가 허구인가? (2) | 2009.02.07 |
본이 되신 주님 (0) | 2009.0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