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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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마 24:1-51 
요절: 마 24:45-46

마태 복음 24장입니다. 이곳은 사도행전 2장, 히브리서 6장, 마태복음 25장과 함께 가장 많은 이단들이 속출하는 장입니다. 24장의 해석을 위해서는 먼저 제자들의 질문인 24:3에 유의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두 가지를 물었습니다. [우리에게 말씀해 주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들이 있겠사오며 또 주께서 오시는 때의 표적과 세상 끝의 표적이 무엇이리이까? 하니](3). 마태는 “어느 때에 이런 일들이 있겠사오며...”에 해당하는 주님의 답변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이 일은 누가복음 21:20-24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세상 끝의 표적에 대한 주님의 답변을 기록하고 있는데 4-28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이 말씀은 세상 끝의 이야기이지 지금 이 세대, 즉 교회 세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많은 교파들에서 이것을 교회에 적용하는 잘못을 범함으로서 해석의 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다니엘서 9:20-27에 묘사된 70째 주의 이야기입니다. 요한계시록으로 보자면 6-19장의 대환란 기간에 해당하는 기사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성/전을 떠나서 가실 때에 그분의 제자들이 /성/전의 건물들을 보여 드리려고 나아오매](1). 주님은 성전에서 떠나심으로 다시 예루살렘 동문으로 들어와서 다윗의 보좌를 차지할 때까지 지상의 성전은 의미가 없어졌습니다1). 제자들은 성전의 건물들에 관심이 있었지만 주님은 이미 자신의 몸을 성전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요2:19). 마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그분의 제자들 가운데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여기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하매](막13:1)라고 구체적인 진술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한 사람은 당연히 가룟 유다입니다. 영적인 것과 내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은 외적인 것에 도취하게 마련입니다.

2절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아니하느냐?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 하시니라.](2). 이 일은 이미 과거에 느부갓네살에 의해 역사적으로 한번 있었던 일입니다. 그리고, 주후 70년 로마의 Titus 장군에 의해서 일어날 일이었습니다. 대환란 때 성전은 다시 한번 이방인들과 적그리스도에 의해 더럽혀 질 것입니다(살후2:3-8, 계11:1-4). 주님은 단지 예루살렘 성전의 운명을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성전에 대한 3중 적용이 가능합니다. 우리의 몸은 주님의 성전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성전입니다. 이 우주는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히1:10-12).

3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올리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은밀히 그분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에게 말씀해 주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들이 있겠사오며 또 주께서 오시는 때의 표적과 세상 끝의 표적이 무엇이리이까? 하니](3). 제자들은 예언을 듣고 싶어했습니다. 성경 공부에서 우리의 관심과 흥미를 가장 끌어당기는 것은 예언입니다. 성경은 예언의 등불입니다. 부지런히 주님 앞에 나아와 물어야 합니다. 누구나 재림의 시점과 그 때의 징조에 대해서 알고 싶어합니다. 예수님께 은밀히 나아온 제자들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 안드레였습니다(막13:3).

4절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아무도 너희를 속이지 못하도록 주의하라.](4). 이 말씀은 오늘날 거의 95% 이상의 교회와 성도들이 무시하는 구절입니다. 5,11,24절은 누가 속이는 자들의 정체입니다. 거짓 그리스도, 거짓 대언자, 거짓 교사들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아무도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엡5:6, 골2:8, 살후2:3, 요일3:7). 성도들은 강력한 경고를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만군의 [주]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가운데 있는 너희의 대언자들과 너희의 점쟁이들이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고 너희가 꾸고자 하여 꾼 꿈들에 귀를 기울이지 말지니](렘29:8). 속임수는 말세의 첫 번째 표적입니다.

5절입니다. [이는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라 하며 많은 사람을 속일 것임이라.](5). 주님께서 한 두 사람을 언급하지 않으시고, 많은 사람이라고 말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와서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벧후2:1-4, 딤전4:1-5, 딤후3:1-6).

6-8절입니다. [또 너희가 전쟁과 전쟁의 소문을 들을 것이나 주의하여 불안해하지 말라. 이는 이 모든 일들이 반드시 일어나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며 또 민족이 민족을, 왕국이 왕국을 대적하여 일어나고 곳곳에 기근과 역병과 지진이 있을 것임이라. 이 모든 것이 고통의 시작이니라.](6-8). 이것은 주후 70년의 이야기가 아니라 대환란 때의 이야기입니다. 잦은 전쟁, 기근, 역병, 지진은 시작이지 끝이 아닙니다. 세계는 하나라고 하면서도 전쟁은 더 늘어만 갑니다. U,N 통계에 따르면 현재도 평균 38개국이 분쟁 가운데 있으며, 무력 충돌을 하고 있습니다. 산업 발전으로 기근은 영원히 추방될 것 같지만 현재 기근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은 전 세계의 2/3나 됩니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면서 ‘배고픔을 느끼며 잠자는 사람’이 지구 인구의 65%나 됩니다. 대환란 때는 이루 상상할 수 없는 전쟁, 기근, 역병이 온 지구를 강타할 것입니다.

9절입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넘겨주어 핍박받게 하겠고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으로 인하여 모든 민족들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고 서로 배반하여 넘겨주고 서로 미워할 것이며 거짓 대언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속일 것이고 불법이 성행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9-12). 물론 초대 교회로부터 많은 순교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모든 민족들에게 미움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환란 때의 구절입니다. 문자적으로 적용할 때 생기는 어려움은 9절입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사도들을 직접적으로 언급한다면 이들은 휴거 후에 부활하여 이스라엘을 위해 사역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겔37, 마19:23). ‘너희’를 일반적인 유대인이나 환란 때 성도들이라고 적용한다면 별 무리는 없습니다.

13절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 곧 그는 구원을 받으리라.](13). 이 말은 많은 신자들이 오해하는 구절입니다. 여기서 끝은 죽을 때까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환란이 끝날 때까지’를 말하는 것입니다(24:14,21,29). 이 구절은 환란 때의 문맥이므로 교회 시대의 성도들에게 적용하는 ‘믿음으로 얻는 은혜의 구원’과는 다릅니다. 환란 때는 믿음 뿐만 아니라 끝까지 견디는 믿음의 행위가 필요합니다. 환란 때 유대인들은 여전히 안식일을 지킬 것입니다(25:15-20). 그들은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24:15). 이들은 영적 유대인이 아니라 육적인 유대인들입니다(롬2:29).

주님이 바울을 통해 성도들에게 주신 약속과 비교해 보십시오. 고린도전서 1:7,8을 볼 것.

14절을 보십시오. [이 왕국의 복음이 모든 민족들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선포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14). 여기서 주의해야 할 말은 왕국 복음이란 말입니다.

THE GOSPEL OF THE KINGDOM

THE GOSPEL OF GRACE

왕으로서의 그리스도

구주로서의 그리스도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

눈에 보이는 교회

지상에 세워짐

하늘에 세워짐

주로 물질적, 가시적

주로 영적, INVISIBLE

라킨 목사님은 성경에 나오는 4가지 복음을 정리했는데, 왕국 복음(삼하7:16,단2), 은혜의 복음(고전15:2-5)-나의 복음(롬2:16, 엡3:1-7), 영원한 복음(계14:6), 영광스런 복음(고후4:4)입니다. 왕국 복음은 물질적이고, 눈에 보이는 메시아 왕국이오, 다윗의 왕국이며, 예루살렘에 정치적으로 세워질 왕국입니다.

15절입니다. [그런즉 대언자 다니엘을 통하여 말씀하신바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너희가 보거든](15). 성경을 거부하는 신학자들은 이 구절은 168 B.C에 성취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외경에 근거한 것입니다. 로마캐톨릭은 주님께서 배척하신 14권의 외경과 위경을 성경으로 인정하는데, 마카비서에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계시록 11:1-4, 데살로니가후서 1:1-6에 나오는 실제 성전으로 대환란 때에 있을 일입니다.

거룩한 곳은 성소를 말합니다. 적그리스도는 성육신해서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할 것입니다(살후2). 적그리스도는 자신을 높여서 경배받고자 할 것입니다(계13). 그의 정체는 바로 가룟 유다입니다.

16절입니다.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에 있는 자는 집에서 무엇을 가져오려고 내려가지 말며 들에 있는 자는 옷을 가지러 되돌아가지 말지어다. 그 날들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오직 너희가 도피하는 일이 겨울이나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16-20). 이 부분을 자세히 보고 싶으면 계시록12장, 미가서7:14-16, 예레미야 50:19-20, 호세아 2장 등을 보십시오.

주님은 ‘유대에 있는 자들’이라고 지역을 한정하셨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도망을 가야 하기 때문에 그 날에 임신을 하거나 젖먹이 아이들이 있으면 화가 있을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크리스찬들에게 아이들이 있는 것을 화라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구약에서 아이를 갖지 말라고 말한 유일한 대언자는 예레미야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이 느부갓네살에 의해 초토화되고, 바빌론으로 포로로 잡혀 갔기 때문입니다. 느부갓네살은 적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왕입니다. 피난가는 일이 얼마나 급했든지 집으로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 말라고 합니다. 겨울은 춥기 때문에 옷이 더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옷가지조차 챙기지 못한 채 도피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안식일에 비행기를 띄우지 않습니다. 그 날이 안식일이 되면 도피하는데 상당히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이나 겨울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계12:14).

21-25절입니다. [이는 그때에 큰 환난이 있을 것임이니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이때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이후에도 없으리라. /주께서/ 그 날들을 짧게 하지 아니하시면 어떤 육체도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로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짧게 하시리라. 그때에 누가 너희에게 이르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그 말을 믿지 말라. 이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대언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이적(異蹟)을 보여 할 수만 있으면 그 택하신 자들까지도 속일 것임이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21-25). 여기서 말하는 대환란(큰 환란)은 성도들이 일상에서 겪는 환란과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대환란은 기간이 있는데, 주님께서 그 기간을 단축해 주실 것입니다. 다니엘서에는 4번에 걸친 다른 기간이 나옵니다. 1260일(단7:25,계13:5). 1290일(단12:11), 1335일(단12:12), 2300일(단8:14). 26절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너희에게 이르되, 보라, 그리스도가 사막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그리스도가 은밀한 방에 있다, 하여도 그 말을 믿지 말라.](26). 재림 때에 거짓 그리스도들, 거짓 대언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이적을 보여 택하신 자들까지 속일 것입니다. 이적과 표적이 절대 기준이 아닙니다. 오직 기록된 말씀만이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재림은 너무나 분명해서 그리스도가 어디에 있다고 말해도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은 천사들과 함께 영광 가운데서 오실 것이며 누구나 다 볼 수 있게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7절입니다. [이는 번개가 동쪽에서 나서 서쪽까지 번쩍이는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할 것임이요,](27). 지구 저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라도 주님의 오심을 보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동에서 나서 서쪽까지란 표현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동에서 시작해서 서로 가는 것은 주님의 방향입니다.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부름을 받아 서쪽으로 이동했습니다. 느헤미야의 주도 아래 이스라엘의 회복 역시 동에서 서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야곱이 라반에게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방향 역시 동에서 서입니다. 대제사장이 성막에 들어가는 입구는 동쪽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승리의 입성 역시 동에서 서쪽입니다. 복음은 동에서 서로 전파되었습니다. 태양이 솟아오르는 것 역시 동쪽입니다(말4장).

28절입니다. [또 어디든지 사체(死體)가 있는 곳이면 독수리들이 함께 모여들 것임이라.](28). 대환란 때 포식하는 동물이 독수리들입니다. 먹을 것이 너무 많을 것입니다. 계시록 16:14,14:20, 19:15-18절을 참조하십시오.

29절입니다. [그 날들의 환난 뒤에 곧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그 빛을 내지 아니하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들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29). 주의 할 말은 ‘그 날들의 환난 뒤에’란 어구입니다. 대환란의 바로 직후 있을 징조들입니다. 구약에서 주의 날에 대한 징조로 자주 언급되어 있는 현상들입니다. 계시록 6:12, 8:12, 16:12, 요엘2:10, 3:15, 아모스8:9, 하박국 3:11, 이사야13:10, 예레미야 15:9).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표현은 천사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현상입니다(계1:20,9:1).

“하늘들의 권능이 흔들리고”란 말은 에베소서 6:10에 높은 곳들에 있는 존재들 중의 하나입니다. 계시록12:1-4, 7-9절도 마찬가지입니다.

30절입니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의 표적이 하늘에 나타나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지파(支派)가 애곡하며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가지고 하늘의 구름들 가운데서 오는 것을 보리라.](30). 사람의 아들의 표적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습니다. 참고 구절이 없습니다. 짐작해 보건대 초림때 처럼 메시야의 별이 나타나든가, 아니면 태양이나 달의 어떤 변화가 있지 않을까?하는 정도입니다. 무지개(계10:1)를 표적으로 보여 주실 수도 있겠습니다.

여기서는 모든 민족이란 말대신 모든 지파라고 했는데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스가랴12:9,10).

31절입니다. [그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자기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의/ 네 바람으로부터 함께 모으리라.](31). 이 나팔은 계시록 11:15에 나오는 일곱 번 째 나팔이며 마지막 나팔입니다.

32절입니다. [이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아직 연하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너희가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들을 보거든 그때가 가까이 곧 문들 앞에 이른 줄 알라.](32). 무화과 나무는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막11:14). 누가복음 13:6에서 포도원(사5)에 심겨진 무화과 나무가 3년이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기사가 나오는데, 이는 주님의 사역 기간 내내 회심하지 않는 이스라엘의 상태를 말해 줍니다. 무화과 나무는 주님의 재림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가리키는 시계로 사용됩니다.

34절입니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들이 성취되리라.](34). 여기서 “이 세대”란 세대의 길이가 얼마냐?는 논쟁이 많습니다. 30년, 40년, 60년 등 다양하게 제시되어 있지만 성경적인 근거를 찾아 보면 40년일 것입니다. 히브리서 3:8-10,17을 볼 것. 그러나 확정적으로 못박기에는 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모세는 시편 90편에서 한 세대를 70년으로 잡았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서 한 세대는 약 42년입니다. 창세기 15:13에서는 백년입니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이 독립국가를 건설한 1948년을 시작점으로 잡습니다. 그렇다면 빠르면 1988년이 되고 늦으면 2048년이 될 겁니다. 문제는 우리의 달력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런 날짜 계산을 허용하지 않으셨습니다.

35절입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35). 하나님의 말씀은 보존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결코 떨어지지 않습니다. 시편 102:25-27, 벧후3:10-13, 믹1:3-4, 계21:1). 말씀은 하나님 자신과 동일시됩니다(요1:1). 말씀은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는 도구입니다(시33:6). 말씀이 없어질 수 있다면 세상 역시 없어지고 맙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기록하신 말씀들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출24:4,신9:10,27:1-3,8, 렘30:1-2,4,32).

36-41절입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각은 결코 아무도 알지 못하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오직 노아의 날들과 같이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 이는 홍수 이전 시대에 노아가 방주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쓸어버릴 때까지 알지 못하였음이니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이와 같으리라. 그때에 두 사람이 들에 있으매 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질 것이요, 두 여자가 방앗간에서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지리라.](36-41). 이 구절은 흔히 휴거의 동시성에 대해 해석하는 구절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휴거가 아니라 대환란 때 사람들이 짐승의 군대로 징병되는 모습니다. "그 날과 그 시각은 결코 아무도 알지 못하나니..."란 말씀은 휴거에 적용하는데 휴거와 지상의 대환란은 동시 사건입니다. 성도들에겐 휴거(그리스도의 날), 불신자들에게는 대환란(주의 날)입니다. 이 날은 언제일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갑작스럽게 닥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 때에"란 말은 우리가 휴거될 때, 지상에 대환란이 될 때를 말합니다. "두 사람이 들에 있을 때 하나는 붙잡혀 가고....두 여자가 방앗간에서 맷돌을 갈고 있을 때 하나는 붙잡혀 가고...."란 말은 휴거에 적용하면 신자는 하늘로, 불신자는 땅에 남는다는 말입니다. 이 구절을 대환란에서 남은 자들에게 적용해서 '짐승의 군대'로 징용되는 것, 붙잡혀 가는 것으로 보면 강제 징집에 해당합니다.28절을 보면 이들이 전쟁에 끌려간 용사들이요, 모두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42-44절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이는 어느 시각에 너희 {주}가 올지 너희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이것을 알라.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경점(更點)에 올 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자기 집에 들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이는 생각하지도 않은 시각에 사람의 아들이 오기 때문이니라.](42-44). 주님의 오심은 도둑 같다고 했는데, 이는 도둑이 오는 시각이 낮이 아니라 밤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시대는 분명히 밤입니다. 도둑은 몰래 옵니다. 주님의 공중 재림은 세상이 모르게 옵니다. 도둑은 귀한 물건만 가져 갑니다. 세상은 잃은 후에야 그것을 알아 차립니다. 주님은 자신의 보물이 성도들을 취해 가실 것입니다.

45-51절입니다. [신실하고 지혜로운 종이 되어 주인으로부터 그 집 사람들을 넘겨받아 다스리며 제 때에 그들에게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겨 다스리게 하리라. 그러나 그 악한 종이 마음 속으로 이르기를, 내 주인이 오시기를 늦추시는구나, 하며 자기 동료 종들을 때리기 시작하고 술 취한 자들과 함께 먹고 마시게 되면 기대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잘라 내고 위선자들과 함께 그의 몫을 받게 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45-51)

우리는 작은 일에 신실한 종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잘하였도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란 칭찬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본문은 영적으로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마태복음 24장의 전체 내용이 환란 때의 문맥이란 점을 염두에 둘 때, 환란 때의 이스라엘에게 적용한다면 믿음을 가졌다가 포기하는 사람들, 끝까지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악한 종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는 영원히 안전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흘릴 눈물은 유업의 보상을 받을 때 흘릴 후회와 아쉬움의 눈물이 될 것입니다(계7:17).

주님의 다시 오심에 대해 늘 생각하고, 의식하는 성도들이라면 거기에 합당한 삶을 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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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경은 주님의 재림에 행로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민수기 20:17,21:22에 보면 “왕의 대로”(king's highway)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주님은 성도들과 함께 먼저 시내 산으로 와서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의 경로를 거쳐 올리브 산으로 오실 것입니다. 이사야 11:16에서는 "큰 길", 이사야 40:3에서는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을 위해 큰길을 곧게 만들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내 산에서 출발하여 파란(Paran) 산과 세일(합3:3), 에돔(보스라-사63:1-3), 셀라, 시혼을 지나, 헤스본과 길갈과 여리코를 거쳐 예루살렘 동문으로 입성하실 것입니다. 재림의 여정은 에돔을 지나 북쪽으로 향하다가 모압과 암몬인들의 땅에 이르러서는 동쪽으로 돌아 사해 북쪽으로 올라가 요단을 건너는 것이다(민21,시78). 그리고 주님께서는 2000년 전에 자신이 침례를 받으신 요단 강을 지나서 길갈을 가로질러 아라비아를 지나 올리브 산에 서실 것이다. 이때 올리브 산은 두 동강으로 나뉘어 지게 될 것입니다(슥14:4). 그리고 예루살렘 동편 문을 통과해 들어가서 다윗의 보좌를 차지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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