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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Pastor. Yoon


욥의 아내에 대해(2)


2018/02/13 - [목자칼럼] - 욥의 아내에 대해(1) 이어지는 글입니다.



욥의 아내는 어느 날 갑자기 재산과 자식들을 모두 잃었습니다. 욥도 욥의 아내도 이 재앙의 원인을 알 수 없었습니다. 욥의 고난은 욥 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에게도 재앙이었습니다.  재산과 자식을 잃는 것은 부부 모두의 어려움이지 한 사람 만의 고난이 아닙니다. 그러나 욥의 아내는 욥과 달리 직접 자신의 몸에 재앙(질병)을 겪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가산을 다 잃고, 자녀들 다 죽고, 곁에 있던 남편에게 엄청난 병이 들었다면 그 자체로 이것은 욥의 고난이 아니라 욥의 아내의 고난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욥기를 읽을 때 늘 욥의 고난, 욥이 받은 고난이라고 하지만 이 일은 "욥의 아내의 고난"이기도 합니다. 다만 동일한 시험에서 욥은 승리했고 욥의 아내는 실패했을 뿐입니다. 욥의 아내는 병든 남편을 위로하고 간호하면서 함께 시험을 견디고 이겨낸 것은 아닙니다.


사탄은 하나님 앞에서 욥에 대해 두번의 예언을 했습니다. 욥의 소유에 손을 대면 그가 주의 얼굴 앞에서 저주할 것(욥1:11)이라고 했지만 그의 첫번째 시험의 결과 그의 예언은 빗나갔습니다. 욥의 소유에는 재산과 자녀들이 포함되었지만 *욥의 아내는 빠졌습니다. 사탄이 욥을 시험할 때 욥의 아내를 빼앗지 않았는데 이는 욥에게 그의 아내마저 빼앗기에는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해서 긍휼을 베푼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욥의 아내는 사탄의 이용물이었습니다(고후2:11). 마귀는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사역자들을 왕궁에 두고, 교회에 두고, 직장에 두고,가정에 둡니다. 우리는 마귀의 이용물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은 사탄이 우리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의 계략들에 대해 무지하지 아니하노라.”(고후 2:11)


사탄이 주 앞에서 쏟아낸 말, 욥에 대한 그의 예언은 틀렸습니다. 거짓 대언자의 특징 중의 하나는 예언이 문자적으로 성취되지 않는 것입니다. 점치는 영에 사로잡힌 자들이 하는 말이 때로 맞기도 하지만 100% 다 맞지는 않습니다. 오늘날 예언의 은사를 가졌다는 사람들이 하는 예언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대언자가 {주}의 이름으로 말하는데 그 일이 뒤따라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성취되지도 아니하면 그것은 {주}께서 말씀하지 아니하신 것이요, 오직 그 대언자가 자기 뜻대로 그것을 말하였나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신 18:22).


저는 수많은 유대의 랍비들, 예언자들이란 사람들이 쏟아낸 예언들을 듣고 읽어보았습니다. 최근에는  Blood Moon에 대해 설교하면서 종말의 날짜를 계산하며 혹세무민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메시아닉 유대인이라 불리는 목사들 중에 이런 자들이 제법 많습니다. 


사탄은 한 번의 실패에 다시 한 번 주님께 도전했습니다. 이번에는 소유가 아니라 욥의 몸을 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의 손을 내미사 그의 뼈와 살에 대소서. 그리하시면 그가 주의 얼굴 앞에서 주를 저주하리이다, 하매"(욥2:5)

사탄의 예상, 예언과 달리 욥은 주를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 욥의 부인은 자기 남편 욥을 돕는 대신 사탄을 도왔습니다. 

“¶ 이에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아직도 당신의 순전함을 지키느냐?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 하되”(욥 2:9).


자, 그럼 욥의 아내는 욥이 재앙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순전함을 지키면서, 주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는 것이 꼴보기 싫었고 그런 남편의 태도, 자세를 볼 때 분노가 일어난 것입니다. 욥의 아내는 남편의 순전함에 도전을 받고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악한 마음을 회개하는 심정이 든 것이 아닙니다. 그는 사탄의 뜻대로 하지 않는 남편에게 도전하며 욥기 1:11, 2:5절의 사탄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 남편을 공격했습니다.


욥은 자기 아내의 말에 눈도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욥은 자기 아내를  충분히 이해한다, 그 심정 알고도 남음이 있다고 위로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여자'라고 책망했습니다. 욥은 아내에 관한 한 멘탈 갑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가 그녀에게 이르기를, 당신이 어리석은 여자들 중의 하나가 말하듯 말하니 무슨 까닭이냐?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서 좋은 것을 받으며 또 나쁜 것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서 욥이 자기 입술로 죄를 짓지 아니하니라."(욥 2:10)

욥은 여자(아내)에게 속아 죄를 짓지 않는 남자의 표본입니다.  삼손은 여자에게 속아 종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의 미모에 끌려 간음을 행했습니다. 욥은 이런 점에서 예외의 인물입니다. 그는 고난 중에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 견디는 자, 이기는 자, 남는 자로서 환란 성도들의 예표가 됩니다. 대환란 때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짐승에게 속지 않고, 거짓 대언자에게 속지 않습니다. 42개월 동안 연속되는 시험에도 끝까지 견디며 주를 저주하거나 욕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들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의 입에서 교활함을 찾을 수 없었으니 그들은 [하나님]의 왕좌 앞에서 잘못이 없도다."(계 14:5).

욥의 입에는 교활함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욥의 친구들이 욥이 고난 받은 이야기를 듣고 위로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올 때에 욥과 함께 애곡하고 그를 위로하려고 약속한 상태였습니다. 

"...그들이 와서 그와 함께 애곡하고 그를 위로하려고 서로 약속하였더라." (욥 2:11).


욥의 친구들이 함께 왔을 때 욥의 상태가 얼마나 나빴던지 그들은 전혀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욥의 아내라도 곁에 있었다면 별 문제 없었겠지만 곁에 있어야 할 욥의 아내는 욥의 곁에 없었습니다. 욥의 아내를 변호하는 이들 중에는 욥의 아내가 욥의 곁에 있었을 것이라고 하지만 곁에 있었다면 욥을 위로하며 함꼐 아픔을 나누는 동역자가 아니라 자기 남편을 더 괴롭히는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그녀가 욥에게 한 사탄의 말을 후회하거나 회개했다면 욥의 친구들이 욥을 정죄할 때 한마디라도 변명하거나 방어해 주거나 대신 싸우거나 욥의 친구들을 아예 쫓아내 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내로서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 같은 친구들이 아무 말하지 못하도록 고함을 지를 수도 있었겠지만 욥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소리를 높여 울며 자기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해 자기 머리 위에 티끌을 뿌리고 밤낮으로 이레 동안을 그와 함께 땅에 앉았습니다(욥2:12). 욥의 친구들은 욥의 고통이 극심한 것을 보았기에 아무도 그에게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욥 2:13). 성경은 욥의 아내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가인과 그의 아내, 롯과 그의 아내처럼 그 이름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집트 왕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지만 히브리 산파들의 이름은 기록합니다. 

“¶ 이집트 왕이 히브리 산파들에게 말하였는데 그들 중 하나의 이름은 십브라요, 다른 하나의 이름은 부아더라.”(출 1:15)

하나님은 부자의 이름은 기록하지 않으시지만 거지 나사로의 이름은 기록합니다. 주님께서 기억하시는 이름은 위대한 자, 부자가 아닙니다. 지옥에 간 자들은 이름이 없습니다. 이와 달리 주님께서 때로 의인들의 이름도 기록하지 않으시고, 악인들의 이름도 기록하실 때가 있는데 이는 본으로 남겨 경고와 훈계, 배움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어쨋든 욥의 아내는 친구들이 왔을 때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욥과 친구들의 대화, 엘리후의 대화, 그리고 하나님과 욥의 대화가 있은 뒤 욥은 자신을 주 앞에서 회개했습니다. 욥의 회개는 회개의 본을 보여 주는 백미입니다.

"지식도 없이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그런즉 내가 깨닫지 못한 것을 말하였으며 내게는 너무 놀라운 일들 곧 내가 알지 못한 일들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주께 간청하오니 들으소서. 내가 말하겠나이다.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내게 밝히 알리소서. 내가 귀로 듣는 것을 통해 주께 대하여 들었사오나 이제는 내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내 자신을 몹시 싫어하고 티끌과 재 속에서 회개하나이다, 하니라."(욥42:3-6).


하나님은 욥의 세 친구에게 진노가 불타오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욥42:7). 그들은 욥과 마찬가지로 옳은 것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엘리후는 제외입니다. 엘리후는 옳은 것을 말했습니다. 욥은 회개했고 욥의 친구들은 죄로 인해 번제 헌물을 드려야 했습니다. 욥은 자기를 정죄하고 판단한 친구들을 위해 기도해 주었고(욥42:9) 주님은 그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셨습니다(욥42:10). 욥은 마귀의 올무에 걸려 있었습니다. 마귀의 정죄 가운데 있었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을 위로하러 왔다가 사탄의 이용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분노하셨습니다. 


자, 여기서 욥은 번제 헌물을 드리고 기도할 때 자기 친구들보다 더 큰 죄를 지은 '자기 아내'를 위해 기도하거나 번제 헌물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네 아내를 위해' 뭔가를 하라는 말씀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욥의 아내는 욥이 회개할 때, 기도할 때, 욥의 친구들이 욥에 대해 한 말로 번제 헌물을 드릴 때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욥의 아내는 회개가 필요 없었습니까? 아닙니다. 그 여자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욥의 아내가 욥과 함께 했더라면 당연히 죄를 회개하고 욥의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번제 헌물을 드려야 합니다. 욥은 친구들을 위해 중보했듯이, 전에 자식들을 위해 헌물을 드렸듯이 '자기 아내를 위해' 뭔가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말씀이 일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복을 주시고 이전보다 갑절로 더해 주셨습니다. 포로에서 돌이켜 주셨습니다. 이것이 회복입니다.

"욥이 자기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주}께서 그의 포로 된 것을 돌이키시고 또 {주}께서 욥에게 그가 전에 소유했던 것의 두 배를 주셨더라."(욥 42:10).


하나님은 이전에 욥이 소유했던 것(재산)은 두 배로 주셨습니다. 욥이 소유했던 자식들은 아들 일곱, 딸 셋 그대로 10명을 주셨습니다. 여기서도 욥의 아내에 관한 말씀은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장면에서 욥의 처는 떠나지 않았고, 욥에게 다시 10명을 낳았다고 주장하고, 욥은 재혼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성경은 쓸데 없는 말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어떤 면에서 일방적인 희생자요, 욥 못지 않는 아픔과 고난을 당한 욥의 아내에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핵심은 주께서 욥의 포로된 것(마귀의 포로, 정죄, 올무)에서 그를 돌이키셨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남녀 차별이 아닙니다. 욥의 아내는 롯의 아내처럼 뒤로 물러난 자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그러나 어떤 사람이 뒤로 물러가면 내 혼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에 이르는 자들에게 속하지 아니하고 믿어서 혼의 구원에 이르는 자들에게 속하느니라.”(히 10:38,39)


욥의 자식들에 대해 대부분의 유명한 주석은 죽은 열 명의 자식은 하늘에 있고 다시 열 명의 자식을 주심으로 두 배인 20명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거의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욥의 회복, 욥의 친구들의 회복과 더불어 욥의 자식들도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욥은 고난에서 회복되었고, 몸의 상처(건강)에서 회복되었고, 욥의 자녀들은 죽음에서 회복되었습니다. 죽음에서 회복이란 '부활'입니다. 욥의 고난이 대환란의 모형이라면 욥의 죽은 자녀들은 환란 중에 죽은 성도들의 모형입니다. 욥이 고난에서 회복되었다면 욥의 자녀들은 '죽음'에서 회복(부활)된 것입니다.  

"주의 죽은 자들은 살겠고 그들이 나의 죽은 몸과 함께 일어나리이다. 흙 속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할지어다. 주의 이슬은 채소의 이슬 같으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 내 백성아, 올지어다. 너는 네 방들로 들어가 네 주변의 네 문들을 닫고 격노가 지나갈 때까지 잠시 숨을지어다."(사 26:19,20). -환란 성도의 부활에 관한 말씀입니다. 


에스겔 37장에도 죽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마른 뼈들의 골짜기에서 문자적으로 부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오 내 백성아, 내가 너희 무덤들을 열고 너희로 하여금 너희 무덤들에서 나오게 하며 너희를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리라."(겔 37:12)


대환란 때 죽은 성도들은 42개월(3년 반)이 지난 후에 부활합니다(계20:4,5). 욥기는 42장으로 되어있고 환란 중에 있는 마귀에게 포로된 성도들의 고난과 회복을 다룹니다. 마귀는 사망의 권능을 가진 자입니다. 그는 주께서 허락하지 않으심으로 욥의 생명을 취하지 못했지만 욥의 자녀들의 생명은 모두 취했습니다. 그는 살인자입니다. 사망의 권능을 가진 자입니다(히2:14). 구약 성도의 죽음을 '포로로 잡힌 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그분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실 때에 포로로 잡힌 자들을 포로로 이끄시고 사람들에게 선물들을 주셨도다, 하시느니라.”(엡 4:8).


성경을 유의해서 보십시오. 주님은 욥의 포로된 것을 돌이켰다고 하십니다.

"욥이 자기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주}께서 그의 포로 된 것을 돌이키시고 ..."(욥42:10).

그렇다면 욥의 회복, 욥의 자녀들의 부활은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참고로 욥의 나이를 추정해 봅시다.

욥이 고난을 받은 뒤 첩을 얻지 않고 10명의 자녀를 낳았다면 년년생으로 낳거나 2-3년 터울로 낳았다고 할 때 최소 10년에서 최대 30년이 걸렸을 것입니다.성경에 따르면 욥은 고난에서 회복된 후 10명의 자식을 얻은 후에 140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리고 아들들과 손자들을 4대까지 보았다고 합니다. 고난 받기 전에도 10명의 자식이 있었습니다. 그냥 자식이 아니라 장성한 자식들이었습니다. 당시 족장들의 결혼 연령이 매우 늦었던 것을 감안하면 욥의 나이 40세(이삭이  40세 결혼, 야곱은 84세에 결혼)에 결혼해서 막내가 태어난 시점에 고난을 당했다고 가정해도 욥의  나이는 적어도 70-80세는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따르면 욥이 고난 받을 때 욥의 자식들은 어린아이들이 아니라 모두 장성한 어른들이었습니다(욥1:4,18). 욥이 일찍 20-30대에 결혼했다고 해도 막내까지 장성한 상태라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70세 정도는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10명의 자식을 낳은 후 140년을 더 살았다면 욥은 최소한 230세나 240세 정도에 죽었다는 말이 됩니다. 욥은 아브라함보다 2세대 정도 후 즉 야곱이나 요셉과 같은 세대입니다. 그 때는 족장들의 나이가 150을 넘기지 못하던 시점입니다. 욥이 예외적으로 200세를 넘긴다고 해도 자식 10명을 더 낳은 후 140년을 더 살았다는 것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언제나 예외가 있습니다. 욥이 70세에 고난을 받고 30년간 열명의 자식을 낳고 140년을 더 살았다면 240세에  죽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성경에 기록대로 하나님께서 욥의 포로된 것을 돌이켰다는 점에서 욥의 자녀들이 부활했다는 것 역시 충분히 가능합니다. 


참고로 70인역이나 전승에 따르면 욥은 70세에 고난을 받고, 고난을 받은 후 30년 동안 재산이 갑절로 불어났고 그 사이에 아이들 10명을 얻었고, 그 후 140년을 더 살다 240세에 죽은 것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욥은 고난을 시작한 때서부터 170년을 더 살았고 따라서 그는 모두 240년을 향수하고 죽었다”(70인역, 욥42:16). 이것은 제가 대충 계산한 나이와 거의 일치해서 제가 더 놀랐습니다. 이래서 성경 변개가 가능하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사람들의 추측이나 견해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는 것은 옳지 못하기에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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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 Peter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