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부모를 공경하라!
1. 현세적인 보상이 있는 유일한 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honour라는 단어를 잘 뜯어보면 부모님을 존중하라, 기쁘게 하라, 물질과 시간을 투자해서 극진히 대접하라,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라, 남들 있는 데서 부모님의 품위와 명예를 높여 드려라.. 등등.. 다 됩니다. 이게 성경에서도 얼마나 중요한가 하면,
첫째, 구약 율법인 십계명 중에서, 잘 지켰을 때 당근이 주어지는 유일한 계명입니다. 무조건 해라, 하지 마라만 있는 게 아니며, 그렇게 안 하면 죽는다고 저주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 보상을 줍니다.
그리하면 주 네 하나님이 네게 주는 땅에서 네 날들이 길리라. (출 20:12)
즉,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얘기입니다. 신명기로 가면, 그렇게 하면 인생이 잘 될 거라는 약속까지 추가됩니다. go well with thee. (신 5:16)
둘째, 신약 성경에도 사도 바울이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 있는 첫째 명령이니 이것은 너로 하여금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게 하려 함이라. (엡 6:2-3)
게다가 “당근”까지 그대로 똑같이 인용했습니다. 그렇게도 내세나 영적 보상을 강조하는 신약 성경에서 구약의 “현세적인 보상”까지 그대로 인용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그 반면에, 부모를 멸시하는 자들에 대해 성경이 뭐라 말하나 보세요. 먼저 모세오경,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 21:15)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 21:17)
누구든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니 그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였은즉 그 피가 그에게 돌아가리라. (레 20:9)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업신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할 것이요, (신 27:16)
그리고 잠언,
누구든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면 그 사람의 등불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꺼지리라. (잠 20:20)
누구든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강탈하고서도, 이것은 범죄가 아니라, 하는 자는 곧 파멸시키는 자의 벗이니라. (잠 28:24)
자기 아버지를 조롱하며 자기 어머니에게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들이 쪼아 내고 독수리 새끼들이 먹느니라. (잠 30:17)
오, 정말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두렵고 떨립니다. 내가 불효막심한 죄인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동현의 교훈 같은 거하고는 스케일이 비교가 안 됩니다.
내가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 받은 말씀이라고 믿는 이유 중 하나는, 내용의 우월성에서 드러나는 압도적인 권위. 한낱 인간은 인간을 스스로 정죄하는 기분나쁜 내용의 경전을 저런 단호한 말투로 절대로 못 씁니다. 특히 성 윤리와 관련된 내용은! 사람들이 기를 쓰고 성경을 미워하며 거부하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죠.
2. 인간 말종이 판을 치는 세대
한편, 그런 성경이 인간의 말세에 대해서 뭐라 말하는지 볼까요?
자기 아버지를 저주하며 자기 어머니를 축복하지 아니하는 세대가 있느니라. (잠 30:11)
마지막 날들에 위험한 때가 이르리니 이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탐욕을 부리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며 부모에게 불순종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타고난 애정이 없으며 협정을 어기며 거짓 고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멸시하며 ... (딤후 3:1-4)
또, 데모데후서 4장을 가면 앞으로 인간은 건전한 말, 바른 말 쓴소리를 견디질 못할 거라고도 나와 있습니다.
인간이 진화한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이성은 감성과 군중심리로 대체되고, 정신연령은 갈수록 떨어져서 동물만도 못한 존재로 변하고, 궁극적으로는 마귀의 형상으로 퇴화하지! 그러니 하나님이 저런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죄인을 괜히 지옥으로 보내는 게 아닙니다. 제 발로 지옥 가겠다는데 하나님인들 어떡합니까? “죄인이 천국에 가면 천국이 더는 천국이 될 수 없습니다.”
굳이 “진화”라는 말을 쓰려면 예수 믿어 거듭나고, 자기 육신을 죽여 성령으로 충만해서 예수님의 형상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그게 인간의 진짜 진화입니다. 여기서 진화와 퇴화의 차이란, 쉽게 말해 모든 사람이 나처럼 행동하고 그렇게 변했을 때 내가 느끼기에 세상이 살 만하고 지속될 수 있겠냐의 차이입니다.
그런데, 자식이 부모에게 싸가지없게 굴고 “내가 어쩌다가 이 모양으로 태어났어? 내가 왜 이런 환경에서 태어났어?” 이렇게 뎀비는 것은 퇴화한 인간 말종의 극치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개차반인 자식은 부모 권한으로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죽여 버릴 권한도 줬습니다. (신 21:18-21) 그 정도로 하나님은 패륜죄를 미워하십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은 부모가 부모 노릇 제대로 못하고 있을 때도 공경하라는 말입니다. 이건 성경의 다른 명령에 대해서도 예외가 없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 백성은 통치자에게 순종, 피고용자는 고용주에게 순종... 선과 악을 가르는 기준은 환경에 따라 변하는 게 아닙니다.
그 반면 마귀는 인간의 죄성을 이용하여 계속 하나님이 정하신 인간 관계와 사회 질서를 파괴합니다. “이래도 성경대로 살 수 있겠어?”
그러나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야말로 크리스천과 불신자의 행동이 차이가 나야 합니다. 크리스천은 원칙주의자입니다. 자기 믿음의 분량이 허락하는 한도 안에서는 기도하고 죽기까지 죄와 싸우고 성경대로 살아야 합니다.
특히나 아버지에게 맞아 죽을지언정 아버지를 죽이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만에 하나 자식을 부당하게 죽인 아버지가 있다면, 그는 나라의 법대로 재판 받고 사형을 당하는 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복수를 하라고 세상 공권력을 허락하신 게 아닙니까?
그러니 사형 제도가 없으면 성경도, 하나님의 뜻도 이루어질 수 없고, 나라는 개판에 무질서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덧붙이자면 사형 제도가 없으면 구원의 영원한 보장, 사별한 배우자와의 재혼, 낙태 문제 등, 육체와 생명을 다루는 기독교의 거의 모든 교리에서 논리적으로 구멍이 뚫립니다.
3. 부모가 되기를 싫어하는 풍조는 망국병
요즘 나라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빈부 격차는 심해지고 자영업자, 중소기업은 죽어납니다. 대학까지 나오고 나서 한창 땀흘려 연구하고 생산을 하고 뛰어야 할 고학력자들이 전부 공무원, 고시에 몰리고 있습니다. 부모 허리를 휘게 하는 사교육비는, 가히 조선 말기에 삼정 문란 때문에 받았던 백성들의 고통에 비견되는 것만 같습니다. 먹고 사는데는 아무 지장 없는데 상대적 빈곤은 더해져만 가고 생활에 여유는 갈수록 사라집니다.
이건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는 것에 만족할 줄 모르고, 땀흘려 일해서 돈 벌기 싫어하는 인간의 죄성이 효율을 빌미로 양극화를 부추기고, 돈의 가치를 왜곡시키고 있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입니다. 인간이 자초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비롯해서 누구도 탓할 수 없습니다. 대세는 이미 너무나 기울어 있기 때문에 죽은 대통령을 무덤에서 “모셔 온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닙니다.
그와 더불어서 요즘 이슈화되고 있는 게 세계 최악의 저출산입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냐?
첫째, 드디어 인간의 가치가 돈보다 떨어졌음을 인류가 스스로 인정한 것입니다. 물질 만능주의와 성경에 어긋나는 여권 신장 운동, 페미니즘이 만들어 낸 마귀의 대승리입니다.
둘째, 인구가 줄어든다고 해서 입시, 취업 경쟁이 줄어들 거라고 여기는 건 멍청한 발상입니다. 그러면 학교나 기업은 바보입니까? 인구가 줄어드는 것보다 더 규모를 줄이고 구조조정됩니다. 아니면 해외로 빠져 나가거나... 경쟁은 변하는 게 없고, 오히려 젊은 사람들이 먹여 살려야 할 노인은 더 많아지고... 결국은 이 땅에 남은 사람들만 과도한 부담을 떠안다 자멸하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제일 심각한 문제.
요즘 환경호르몬 물질이 문제가 되고는 있습니다만, 인간의 능력(?)은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출산율만 급격히 떨어졌다면, 그건 그냥 이루어진 게 아닙니다. 잉여 능력은 상당 부분 변태적이고 비정상적인 경로로 표출되기도 했다고 봐야 합니다.
결혼해서 부부하고만 평생 좋은 금슬을 나누면서 믿음의 분량대로 아이도 듬뿍 낳아서 키우는 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결혼은 남녀가 서로 알 거 다 아는 나이가 되면 빨리 하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요즘 그런 말 하면 칭찬은커녕 무식하다는 소리 듣죠? 학교에서도 조선시대에 나쁜 조혼 관습이 있었다는 말만 하지 정작 결혼에 대한 바른 관념은 거의 안 가르칩니다.
그 대신에 동성애, 변태성욕, 아니면 성범죄, 성매매와 낙태, 사생아 수출 등등... 이게 “유식한” 사람들이 하는 짓입니다. 딸 키우기가 무서운 세상이죠. 그래도 그들이 성경보다 더 유식한가요?
저출산 하면 이런 망국 풍조를 먼저 떠올리고 걱정해야 합니다. 성경이 옳았는지, 인간의 요즘 세상적인 사고방식이 옳았는지는 늙어 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사랑이 가정을 지탱하는 원동력이 돼야
성경을 보면 아이를 못 낳는 것은 여자의 수치 중의 수치였습니다. 자식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고 보상이라고 말합니다. (시 127:3) 그냥 자식도 아니고 젊었을 때 낳은 자식은 용사의 손에 있는 화살과 같이 든든하고(시 127:4), 그 부모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거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시 127:5) 늙어서 자식도 없거나 자식에게서 버림받은 채 길거리에서 객사하는 건 정말 추하고 민망한 꼴이지요. 가정이 제 역할을 못하고 이런 노인들이 많아지면 나라는 엄청 골치아파질 겁니다. 복지 제도를 개선하기에 앞서 가정을 먼저 회복시켜야 합니다. 시 127:3-5가 통용되지 않는다면, 그건 성경이 틀리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게 아니라, 그 사회가 문제가 있고 망조라는 뜻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성은 결혼한 부부끼리만 은밀하게 즐기고 나누어야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여자는 바지만 입어도 창녀처럼 여겨졌고, 여자에게 섹시하다는 식으로 말을 했다간 따귀 맞았습니다. 또, 부모님이 특히나 딸에게 몇 시 안으로 반드시 집에 들어오게 한 거... 그게 다 여자를 보호하고, 더 나아가 훗날 태어날 아이를 보호하고, 궁극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시킨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던 게 나중에는 잘못된 여성 억압으로 변질되었고, 지금은 그에 대한 반감으로 광기어린 페미니즘이 이어진 것입니다. 사람들은 학교와 언론을 통해 진화론보다 더 세뇌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여성의 능력을 몰라보고, 여성이 사회로 나서지를 못해 세상이 발전하지 못했던 것처럼 말합니다. 아닙니다. 여성이 여성 역할을 하길 거부하면 그때야말로 가정이 망하고, 사회와 국가도 뒤이어 망합니다.
가정의 역할은 절대로 사회가 대신해 주지 못합니다. 아이는 돈만 쏟아붓는다고 절대로 바르게 크지 않습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얼마나 헌신하고 정성과 사랑을 쏟아붓고 바르게 가르쳤냐에 따라 아이의 모습이 바뀝니다. 특히 어머니의 희생! 세상의 수많은 부모의 절제, 헌신과 사랑 덕분에 세상이 이나마 유지되었고, 또 어른인 부모 자신도 죄와 타락의 길로 빠지지 않았습니다. (보편적인 경우) 본인조차도 성경은 부모님보다 조금 더 많이 알고 “이럴 때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조금 더 정확히 알지 몰라도, 내 자식을 지금 나의 부모님처럼 헌신적으로 키울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그렇게 하기를 싫어합니다. 즐길 것만 즐기고 의무와 헌신은 하기 싫어합니다. 성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아무 곳에서나 노출하면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으려 합니다. 부모 세대들은 무슨 바보이고 고리타분한 구시대 사람이어서 그렇게 산 줄로 압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젊은이가 많으면 정말로 우리나라는 희망 없습니다.
뺀질거리지 말고, 부모님을 무조건적으로 공경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님에게서 받은 사랑을 내 자녀에게 물려줄 준비를 해야 합니다. 부모가 부모 노릇 제대로 못 하고 있거나 성경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한다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사랑으로 부모의 마음을 바꾸게 하는 것이 자녀의 도리입니다. 심지어, 결손가정에서 자라서 부모로부터 사랑을 제대로 못 받았다고 하더라도 크리스천은 불신자가 베풀 수 없는 사랑을 베풀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죄사함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2006년 6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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